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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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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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죽이는 좀비가 날 살려… 사회불만 커질수록 좀비물 더 인기”

    최근 에세이 ‘날 살린 좀비’(연두)를 출간한 정명섭 소설가(48·사진)는 ‘좀비 덕후’다. 2000년대 중반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년)을 우연히 보고 좀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2011년 전업 작가를 선언한 뒤 출판사로부터 연거푸 기고를 거절당할 때마다 유튜브에서 좀비 영상을 찾아보며 비참한 현실을 잊으려 했다. 좀비에 빠진 덕일까. 그는 2012년 좀비가 우글대는 서울을 그린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네오픽션)을 시작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소설을 9편 출간했다. 영화 ‘부산행’(2016년)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019년)이 인기를 끌며 그는 각종 리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죽이는 좀비가 나를 살렸다”고 말한다. 그를 전화로 만났다. ―좀비란 무엇인가. “우리가 아는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시작됐다. 이 영화는 시체들이 좀비가 돼 일어나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공격받은 인간도 죽었다가 좀비가 돼 일어나는 좀비의 전형을 만들었다. 최근엔 좀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과 연애도 하고 우주복을 입기도 한다.” ―좀비가 대중문화에서 인기 있는 소재가 됐는데. “인간 문명에 대한 불신과 공포심이 좀비물의 인기를 이끌고 있다. 디스토피아를 다루기에 좀비물만 한 소재가 없지 않나. 특히 코로나19 같은 재앙 때문에 우리의 삶과 미래가 예측 불가능해졌다. 하루아침에 삶이 붕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우리 안에 있는 좀비를 깨운 것이다.” ―한국 좀비물이 세계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좀비물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이젠 선진국이 됐다. 그 배경엔 좀비 연기자들의 노력이 있다. 한국 좀비들은 꿈틀거리는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안무가에게 전문적인 연기 지도를 받는다. 좀비 역만 전문적으로 하는 연기자도 늘고 있다. 연기자들이 탄탄해 어떤 좀비물이 나오더라도 성공한다.” ―좀비물이 앞으로도 인기를 끌까. “좀비가 나타나면 인간 문명은 멸망한다. ‘세상이 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 아닌가. 대중문화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만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좀비물은 더 각광받을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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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회 퍼진 팬덤 정치, 화약 안은 연애처럼 위험…열광하다 배반당할 수도”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에게 ‘정치’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주제다. 학생들에게 정치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도,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도 그렇다. 2018년 9월 명절 때 만나는 친척들의 오지랖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은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로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가 정치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어크로스)를 10일 냈다. 1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정치인이 자신을 홍보하려고 쓴 책, 특정 정치적 견해가 강하게 드러난 책, 정치학 이론을 딱딱하게 담은 책은 많다”며 “하지만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신간은 그가 2019∼2021년 일간지들에 연재한 정치 관련 칼럼에 별도로 쓴 글들을 더했다. “한국 사회엔 특정 정당에 대한 극단적인 열광이나 정치에 대한 회의가 팽배해요. 하지만 열광과 회의 사이의 거대한 공백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죠. 그 공백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이날 그는 정치에 대한 생각을 ‘사랑’에 비유해 풀었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엔 팬덤 정치 문화가 퍼지고 있다”며 “팬덤으로 정치가 얼룩지는 건 화약을 가슴에 안고 연애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연예인에게 열광하듯 정치인에게 흠뻑 빠졌다간 결국 정치에 배반당하게 돼 있다”며 “정치인 역시 먼저 팬덤을 형성해 인기를 얻으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올바른 정치 문화가 자리 잡는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엔 정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된 이들이 매일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의사를 조율하는 것처럼 사회에 속한 인간에게 정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사람이 홀로 사는 ‘단수’가 아니라 함께 사는 ‘복수’가 되는 순간부터 정치는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정치가 필요한데 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세상에 정치가 필요 없을 수 있겠어요? 징글징글하다면서 성급한 정치 혐오에 빠져선 안 돼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각종 네거티브와 의혹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이런 정치를 혐오하지 않을 수 있냐고, 한국 정치가 발전할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마지막도 사랑에 대한 비유로 답했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건 그냥 좋아서입니다. 좋아하다 보면 즐기고 관심을 쏟고 관계가 발전하죠.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고 한국 정치가 나아지지 않을까요. 물론 정치인들의 비리, 사적 이익 추구가 사라져야 시민들이 반응하겠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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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류, 낙원을 가꾸다

    정원(庭園)은 사전적으로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원사이자 식물 연구자인 저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정원은 넓은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관공서에 붙어 있는 뜰이나 대중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까지 정원의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야를 확장하니 우리가 방문하는 곳곳에 정원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약 3000년에 걸친 정원의 역사를 세세하게 펼쳐놓는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림으로 책을 꾸며놓은 덕에 정원에서 산책하듯 독서할 수 있다. 정원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영원히 따뜻하고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낙원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책을 읽으니 여러 황제와 문인들이 정원에 심취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때론 정원은 통치자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쓰였다. 정원에 빠져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이도 있다. 왕보다 화려한 정원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하거나 평생 감옥에 갇혀 산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정원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다. 중세시대 유럽에선 화려한 색을 지닌 꽃을 정원 화단에 가득 채우는 형식이 유행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선 꽃이 사라지고 푸르른 나무가 그 자리를 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 자갈, 조개껍데기로 정원을 다채롭게 꾸미기도 했다.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 정원이 나타나기도 했다. 식생에 영향을 받는 정원은 지역에 따라 꾸밈새가 다르지만 문화적 교류에 따라 이런 특성이 희석되기도 한다.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정원은 어떻게 진화할지 궁금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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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책 고를 땐 ‘팩트’가 1순위… 검증된 고전 ‘코스모스’ 등 추천”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과 누리호 발사 등을 계기로 과학책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1∼10월 과학책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7% 늘었는데, 이 중 우주 관련 책은 53.3% 급증했다. 높아진 관심에도 대중에게 과학책은 여전히 어려운 책으로 통한다. 신간 ‘복잡한 세상을 횡단하여 광활한 우주로 들어가는 사과책’(유영)을 펴낸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58)를 만나 과학책을 제대로 고르고 읽는 법을 들어봤다. 이 대표는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외계지적생명탐사(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를 지낸 천문학자다. ―어떤 과학책을 읽어야 하나. “과학책은 ‘팩트’가 중요하다. 주장의 근거가 되는 과학적 사실이 틀리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 이 때문에 검증된 책을 먼저 읽는 걸 추천한다. 고전이면서도 너무 어렵지 않게 쓰인 책을 먼저 찾아보라. 칼 세이건(1934∼1996)의 ‘코스모스’, 찰스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 리처드 도킨스(80)의 ‘이기적 유전자’가 대표적이다.” ―과학 문외한이 읽기는 어렵지 않나. “과학책을 쉽게 읽도록 안내하는 길잡이를 찾으면 도움이 된다. 최근 과학책을 함께 읽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작은 책방이나 도서관이 늘고 있다. 과학책에 담긴 배경을 알려주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강의를 추천한다.” ―혼자 읽는 방법은 없나. “책을 6주에 걸쳐 읽어라. 1주 차에는 책을 읽지 말고 관련 유튜브 영상이나 기사를 통해 흥미를 돋우자. 재미를 느끼는 게 우선이다. 2∼6주 차에는 책을 분량에 따라 나눠 읽어라. 이때 책을 정독할 필요는 없다. 어려운 내용은 뛰어넘고, 다 읽지 않아도 좋다. 6주 차에 완독하는 게 목표다. 독서 후 짧은 글을 쓰는 걸 추천한다. 과학책에 적힌 사실이 아니라 읽으면서 들었던 궁금증과 생각을 편하게 적어라.” ―과학책을 읽으면 어려워서인지 졸음이 온다. “책에 담긴 지식을 꼭 독서로 습득해야 하는 건 아니다. 과학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로 내용을 이해해도 좋다. 신뢰할 만한 과학전문 출판사가 펴낸 해설서를 읽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코스모스’를 읽기 힘들다면 칼 세이건의 부인 앤 드리앤이 만든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홍승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가 쓴 해설서 ‘나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를 읽는 식이다.” ―요즘 국내 과학자들의 책도 많이 출간되는데…. “과학책 판매량이 늘어난 데에는 과학을 쉽게 풀어쓴 국내 과학자들의 공이 크다. 번역된 해외 과학자의 책보다 가독성이 높고, 한국인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많다. 동료 과학자의 추천사를 눈여겨보면 좋은 책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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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스토옙스키가 그렸던 상대적 빈곤,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

    “대중들이 다가가기 힘든 작가로 여기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작품을 쉽게 소개하거나, 깊이 있게 바라보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약 1년 전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62)는 출판사 열린책들로부터 출간 요청을 받았다. 한국러시아문학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장을 지낸 석 교수는 도스토옙스키 관련 책 4권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낸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올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는 대중입문서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과 연구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를 최근 동시에 발간했다. 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그는 “도스토옙스키는 전혀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11일 출간되는 8권짜리 도스토옙스키 전집(열린책들) 분량만 5640쪽에 달할 정도로 작품이 방대한 데다 심오한 철학·종교사상이 곳곳에 녹아 있어서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요즘 시대에 등장인물 한 명의 대사가 5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쉽게 읽을 수 있겠어요? 또 인물들의 러시아식 이름은 얼마나 길고 어려운가요? 젊은 사람들이 읽으려고 마음먹어도 의욕이 사라지는 악조건이죠.” 이 같은 진입장벽(?)은 그가 대중입문서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을 펴낸 계기가 됐다. 소설 속 주요 장면들을 뽑아 전달하면 젊은 독자들이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봤다. “한 학기 동안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네 형제들’을 읽는 교양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교수님 책이 너무 재밌어요’라는 말까지 들었다니까요.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만 젊은 독자들도 명작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가 뽑은 200개 장면의 문장들에는 지금 읽어도 시대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정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에서 빈궁한 하급관리 마카르는 연인에게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건 돈이 아닌 타인의 조롱과 비웃음이라고 고백한다. “나를 파멸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삶의 이 모든 불안, 이 모든 쑥덕거림, 냉소, 농지거리입니다”라는 마카르의 토로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에도 큰 울림이 있다. 그는 “소설이 발표될 당시에는 모두가 ‘절대적 빈곤’만 강조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상대적 빈곤’을 이야기했다”며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좌절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마음도 마카르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연구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에서는 거장의 문학을 현대과학과 연관지어 살펴본다. 예컨대 장편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인간이 진정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인지에 대한 논쟁을 다룬다. 이는 뇌가 인간의 모든 선택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최신 뇌 과학 연구주제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왜 지금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 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인간이 어떻게 인공지능(AI)과 공존할 것인가가 시대의 화두 아닙니까. 도스토옙스키는 건축학, 수학, 물리학을 폭넓게 공부해 과학에 대한 첨예한 관심이 작품들에 반영돼 있어요. 인간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작가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면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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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낸 상대적 빈곤, 우리시대 청년들의 자화상”

    “교수님.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작가로 여겨지는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작품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거나,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약 1년 전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62)는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에게 이런 요청을 받았다. 석 교수는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의 회장을 지내고 도스토옙스키 관련 단독 저서를 4권과 여러 번역서를 펴낸 도스토옙스키 전문가. 1821년 11월 11일 태어난 도스토옙스키의 탄생 200주년인 이달 11일에 맞춰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는 요청에 석 교수는 꼬박 1년을 매달려 2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난달 30일 함께 펴낸 대중입문서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열린책들)과 연구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열린책들)가 그 주인공이다. 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석 교수는 “도스토옙스키는 전혀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달 11일 출간될 8권짜리 도스옙스키 전집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열린책들)은 5640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고, 그의 작품엔 온갖 심오한 철학·종교 사상이 녹아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요즘 시대에 등장인물 1명의 대사가 5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쉽게 읽을 수 있겠어요? 또 등장인물의 이름은 얼마나 길고 어려운가요? 젊은 사람들이 읽으려고 마음을 먹어도 의욕이 사라지는 악조건이죠.” 아이러니하게도 도스옙스키의 높은 허들이 그가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이라는 대중입문서를 펴내게 된 계기가 됐다. 소설 속의 중요 장면을 뽑아 전달한다면 젊은 독자가 도스옙스키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동안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네 형제들’을 읽는 교양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교수님 책이 너무 재밌어요’라는 말까지 들었다니까요. 만만치 않은 작품이긴 하지만 젊은 독자들도 항상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가 뽑은 200개의 문장엔 지금 시대에 읽어도 낡지 않은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에서 가난한 하급관리 마카르는 자신의 연인에게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하는 것은 돈의 부족 자체가 아닌 타인의 조롱과 비웃음이라고 고백한다. “나를 파멸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삶의 이 모든 불안, 이 모든 쑥덕거림, 냉소, 농지거리입니다”라는 마카르의 자조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그는 “소설이 발표될 당시엔 모두가 ‘절대적 빈곤’만 강조했지만 도스옙스키는 ‘상대적 빈곤’도 이야기했다”며 “여전히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좌절하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의 마음이 마카르와 비슷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연구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에선 도스토옙스키 문학을 현대과학과 연관지어 살펴본다. 예컨대 장편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는 인간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논쟁이 나온다. 이는 최근 뇌가 인간의 모든 선택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신경과학 학계의 연구 주제와 맞닿아 있다. 왜 지금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하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인간이 어떻게 인공지능(AI)과 공존할 것인가가 시대의 화두 아닙니까. 도스토옙스키는 건축학, 수학, 물리학을 수학한 공학도라 그의 작품에는 과학에 대한 첨예한 관심이 폭넓게 새겨져 있어요. 인간 연구에 평생을 투신한 작가의 메시지에 귀 기울인다면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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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리 ‘토지’ 오디오북, 성우 16명이 등장인물 600명 연기

    “할머니가 쓰신 소설 ‘토지’를 더 많은 분들이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지난해 말 고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남무현 마로니에북스 마케팅팀 부장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김 이사장은 토지의 저작권자이고, 마로니에북스는 2012년 토지의 마지막 개정판을 펴낸 출판사. 1년간 제작된 토지 오디오북은 지난달 29일 공개 당일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윌라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김 이사장은 “교과서를 통해서만 토지를 알고 있는 젊은 독자들에게 토지를 쉽게 소개하고 싶었다”며 “방대한 분량의 책을 독자들이 좀 더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1994년에 걸쳐 장기 연재한 대하소설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지주 계층이던 최씨 일가의 몰락 등 가족사를 그린 한국 문학계 수작.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된 토지 20권 세트는 총 9408쪽에 달할 정도로 분량이 방대하다. 이 때문에 드라마로 각색하거나 청소년용 도서, 만화로 펴낼 때는 원작의 분량을 줄였다. 토지의 명성에 비해 원본이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된 경우는 적었던 것. 이번 토지 오디오북은 마로니에북스 판본을 그대로 담았다. 권당 러닝타임은 12시간. 현재 4권까지 나왔는데 내년까지 20권 분량이 모두 공개되면 총 러닝타임은 240시간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12월 미국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열린책들)의 오디오북이 세운 국내 오디오북 최장 러닝타임 66시간을 뛰어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토지 오디오북은 공개 직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윌라에서 공개 후 10일간 재생횟수는 27만 회다. 소설 토지에 친숙한 기존 장년 독자층이 오디오북으로 다시 듣는 경우도 있지만 오디오북 핵심 소비자인 20, 30대의 호응도 높다. 이화진 윌라 콘텐츠팀 부장은 “이렇게 긴 분량의 대하소설이 짧은 기간에 1위에 오른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남무현 부장은 “토지를 읽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방대한 분량 탓에 그러지 못한 젊은 독자들이 오디오 방식으로라도 대작을 읽으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토지 오디오북에는 총 16명의 성우가 투입돼 원작의 사투리를 맛깔 나게 표현하고 있다. 최서희 역을 연기한 이명호 성우는 “사투리 대사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실감 나는 연기에 초점을 맞춰 녹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치수 역을 맡은 김상백 성우는 “토지의 등장인물이 총 600여 명에 달하는 만큼 4권까지 혼자서 학생, 하인 등 10명의 인물 역을 맡았다. 앞으로 더 많은 인물을 연기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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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하소설 ‘토지’ 귀로 듣는다…2030 독자 잡으며 다운로드 1위

    “할머니가 쓰신 소설 ‘토지’를 더 많은 분들이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지난해 말 고(故)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남무현 마로니에북스 마케팅팀 부장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김 이사장은 토지의 저작권자이고, 마로니에북스는 2012년 토지의 마지막 개정판을 펴낸 출판사. 1년간 제작된 토지 오디오북은 지난달 29일 공개 당일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윌라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김 이사장은 “교과서를 통해서만 토지를 알고 있는 젊은 독자들에게 토지를 쉽게 소개하고 싶었다”며 “방대한 분량의 책을 독자들이 좀 더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1994년에 걸쳐 장기 연재한 대하소설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지주 계층이던 최 씨 일가의 몰락 등 가족사를 그린 한국 문학계 수작.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된 토지 20권 세트는 총 9408쪽에 달할 정도로 분량이 방대하다. 이 때문에 드라마로 각색하거나 청소년용 도서, 만화로 펴낼 때는 원작의 분량을 줄였다. 토지의 명성에 비해 원본이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된 경우는 적었던 것. 이번 토지 오디오북은 마로니에북스 판본을 그대로 담았다. 권당 러닝타임은 12시간. 현재 4권까지 나왔는데 내년까지 20권 분량이 모두 공개되면 총 러닝타임은 240시간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12월 미국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열린책들)의 오디오북이 세운 국내 오디오북 최장 러닝타임 66시간을 뛰어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토지 오디오북은 공개 직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윌라에서 공개 후 10일간 재생횟수는 27만 회다. 소설 토지에 친숙한 기존 장년 독자층이 오디오북으로 다시 듣는 경우도 있지만, 오디오북 핵심 소비자인 20, 30대의 호응도 높다. 이화진 윌라 콘텐츠팀 부장은 “이렇게 긴 분량의 대하소설이 짧은 기간에 1위에 오른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남무현 부장은 “토지를 읽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방대한 분량 탓에 그러지 못한 젊은 독자들이 오디오 방식으로라도 대작을 읽으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토지 오디오북에는 총 16명의 성우가 투입돼 원작의 사투리를 맛깔 나게 표현하고 있다. 최서희 역을 연기한 이명호 성우는 “사투리 대사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실감나는 연기에 초점을 맞춰 녹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치수 역을 맡은 김상백 성우는 “토지의 등장인물이 총 600여 명에 달하는 만큼 4권까지 혼자서 학생, 하인 등 10명의 인물 역을 맡았다. 앞으로 더 많은 인물을 연기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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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신춘문예의 계절, 도전은 눈부시다

    “기말고사는 수업에서 썼던 습작을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우체국 등기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8년 전 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듣던 때였다. 종강이 다가오자 담당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공지했다. 한 학기 내내 쓰고 토론하고 퇴고한 작품으로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응모하라는 것. 자신의 습작이 형편없다고 생각되더라도 ‘도전’에 의미를 두라는 뜻이었다. 수업에서 연거푸 교수 지적을 받고 다른 학생의 날카로운 비평에 좌절했던 학생들은 이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 작품의 오탈자를 고치고 프린트한 뒤 황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품’이라고 써서 신문사에 보냈다. 혹시 우체국 등기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수강생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 책은 2021년 전국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대부분 주최한 신문사들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작품들이지만 한 책으로 모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맘때면 ‘문청’들이 이 책에 담긴 전년도 당선작들을 분석하며 올해 어떤 작품을 쓸지 고민한다. 신인 작가들의 뼈를 깎는 노력의 결정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문학 팬들의 시선도 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건 당선작들에서 하나의 경향성을 쉬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응모자 입장에선 전년도 당선작을 분석해야 입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믿지만, 신춘문예마다 심사위원이 다르니 경향성을 찾는 건 불가능한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당선작은 하나씩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소설은 건조한 문체로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다른 소설은 탄탄한 문장력으로 첫 문단부터 독자를 빨아들인다.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서사를 갖춘 작품도 있고, 작가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따라가는 작품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들에서 완성된 작가는 아니더라도 가능성을 품은 작가 지망생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당선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눈길이 간 건 그들의 연배가 생각보다 높다는 거였다. 202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밸런스 게임’으로 당선된 이소정 씨(43)를 비롯해 오랫동안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들이 꽤 있었다. 이 책을 묶어낸 한국소설가협회의 김호운 이사장이 “오랜 시간 인고의 노력으로 문학을 갈고닦아 소설가로 입문했기에 그 영광이 더욱 빛난다”고 당선자들을 격려한 이유가 이해된다. 11월에 들어서니 신문사들이 속속 신춘문예 공고를 내고 있다. 1925년 국내 최초로 신춘문예를 도입한 동아일보사 역시 2022년 신춘문예 작품을 12월 1일(수)까지 공모한다. 혹 문청들이 자신의 작품이 떨어질까 우려해 응모 자체를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난 뒤 우체국에서 등기 영수증을 받는 ‘도전’만으로도 조금 더 문학적인 삶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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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꽥꽥’ 거위 울음소리가 로마 구했다

    기원전 390년 로마는 갈리아(프랑스) 북부 지역을 지배하던 세노네스족의 공격을 받는다. 세노네스족에게 연달아 패한 로마인들은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갇힌다. 어느 늦은 밤 세노네스족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몰래 잠입해 로마인들을 공격하려 하는데…. 갑자기 ‘꽥꽥’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갈랐다.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로마인들은 침입을 알아채고 간신히 적을 물리친다. 로마의 공신은 거위였다. 헤라의 신전에서 기르던 거위가 침입자를 알아채고 울기 시작한 것. 영역 동물인 거위는 자신의 영역 내에 위험한 일이 생기면 소리를 낸다. 청각과 시각이 발달한 거위가 로마를 구한 셈이다.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는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군인들의 방패에 고양이를 그려 넣었다. 고양이를 신처럼 숭배했던 이집트인의 약점을 공략한 것이다. 결국 이집트는 전쟁에서 패해 페르시아의 속국이 됐다. 1959년 정치인 피델 카스트로(1926∼2016)는 쿠바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 중간에 흰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 보냈지만 비둘기는 다시 돌아와 카스트로의 어깨에 앉았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카스트로 곁에 머무는 장면에 감동받은 쿠바인들은 카스트로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 책은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동물을 소개한다. 동물마다 5쪽 내외로 짧은 에피소드를 담아 가독성이 높은 것이 장점이다. 역사와 동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읽는다면 사소하지만 재밌는 지식이 늘어날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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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공 작가 갤것, 소설 ‘약속’으로 부커상 수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 데이먼 갤것(57)이 소설 ‘약속’(The Promise)으로 영국 문학상 부커상을 3일(현지 시간) 수상했다. 이 작품은 남아공의 행정수도 프리토리아를 배경으로 한 백인 가정의 쇠락을 그렸다. 남아공 출신 중 부커상 수상자는 네이딘 고디머(1923~2014), 존 맥스웰 쿠체(81)에 이어 세 번째다. 부커상은 미국 퓰리처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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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S사이즈가 M으로 깡마름 강요하는 여성복 편하게 입을 자유 허하라”

    김수정 씨(28·사진)는 3년 전 세 살 터울 남동생의 청바지를 입어봤다. 자신이 입던 청바지들이 너무 불편하던 차에 동생은 청바지가 편하다고 말한 게 의아했기 때문. 허리둘레 차이를 고려해도 남동생의 청바지는 정말 편했다. 허리선부터 엉덩이 부위 아래 선까지의 길이인 ‘밑위’부터 전체적인 디자인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여성용 청바지는 실루엣을 강조하느라 밑위를 짧게 정하고 라인이 꽉 끼는 반면 남성용 청바지는 활동성에 초점을 맞춰 밑위가 길고 여유 공간이 많았다. 그날 김 씨는 결심했다. ‘편한 여성복을 만들어 보자’고. 지난달 30일 에세이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시공사)를 펴낸 김 씨는 2018년부터 성별 구분이 모호한 젠더리스 옷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줌 인터뷰에서 “여성의 신체 특성에 맞춰 남동생 바지를 대략 수선한 뒤에 남성복 공장에 들고 가서 제작을 요청했다”며 “그 바지를 입고 나서 외출한 뒤엔 바지 입는 걸 깜빡했나 싶을 정도로 편했다”고 말했다. 최근 젠더리스 패션이 조금씩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복 시장엔 문제가 많다는 것이 김 씨의 생각이다. 여성복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과거에 S 사이즈로 분류되던 사이즈가 최근엔 M 사이즈로 분류되는 식이다. 깡마른 몸매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거식증을 동경하는 형태로 치닫는 ‘프로아나’가 10대 여성들에게 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김 씨는 “여성의 몸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 날씬함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여성복 시장에서 L 사이즈가 사라지고 있다”며 “15년 전 55 사이즈 여성복 바지의 허리 사이즈는 27인치였지만 현재는 25∼26인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패션 유행은 고객보단 의류 기업들이 만든다”며 “10대가 작은 옷을 입으려 하는 건 그들의 생각이 확고해서가 아니라 기업들이 만든 유행에 휩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했고 한때 1년간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다. 그가 여성복에 대해 꾸준히 들은 말은 ‘여성복의 기본은 H라인 치마’라는 것이었다. H라인 치마는 잘록한 허리와 볼록한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편안함을 포기한다. 여유 공간은 1cm에 불과하고 대부분 지퍼는 뒤에 있어서 디자인에 따라 누군가가 옷 입는 걸 도와줘야 할 경우도 있다. 이와 달리 김 씨는 실루엣보단 편안함에 초점을 맞춰 옷을 만든다. 바지나 치마의 허리 뒷부분에 고무줄을 넣어 배가 조이지 않게 하고 밑위를 넉넉히 하는 식이다. 계속 젠더리스 옷을 만들 거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찾지 못하는 여성들이 여전히 있어요. 타이트한 옷을 원하는 이들만큼이나 편안한 옷을 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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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를 펼치면 세상을 이해하는 길이 열린다[책의 향기]

    누구나 지도를 볼 수 있는 시대다. ‘구글 어스’에 접속하면 세계 곳곳의 산 강 도시를 구경할 수 있다. 실제 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스트리트 뷰’ 서비스 덕에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느낄 수도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 표시해주는 만큼 길 헤맬 걱정도 없는 시대다. 정밀한 지도가 만들어 낸 편리한 세상이다. 이런 지도가 한순간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30년 이상 함께 지도를 만들어온 지도 제작 전문가인 부자(父子)가 쓴 이 역사서는 인류가 지도를 만들어 온 과정을 소개한다. 지도 제작의 기술적 측면을 다루기보단 지도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과 비화를 친절히 설명하는 덕에 지도 박물관에서 역사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 같다. 인류 최초의 세계지도는 기원전 6세기 만들어진 고대 바빌로니아 세계지도다. 세계를 위에서 똑바로 내려다본 이 지도엔 당시 인류가 세상을 인지한 시각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이 지도엔 큰 동심원과 작은 동심원이 그려져 있는데 두 동심원 사이에 링처럼 생긴 ‘소금바다’가 흐른다. 소금바다 안쪽은 인간이 사는 세계고, 소금바다 바깥은 인간이 살지 못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당시 바빌로니아인들은 인간이 건너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모든 세상을 둘러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본(기원전 64년∼기원후 23년)이 그린 세계지도엔 미지의 세계가 없다. 이 지도엔 이탈리아, 이베리아반도(스페인·포르투갈), 브리타니아(영국) 등 유럽의 모습이 꽤나 상세히 그려져 있다. 아시아, 아라비아펠릭스(아라비아반도 남부) 리비아(아프리카 북부)의 도시도 표기돼 있다. 기원전 25년 스트라본이 로마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경험과 문헌이 세계지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인간이 갈 수 있는 세계의 크기가 지도 내에서 커진 것이다. 지도는 특히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 시기 급속도로 발달했다.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정밀한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 대표적인 것이 영국이 1802∼1871년에 걸쳐 대대적인 삼각측량 조사를 벌여 만든 인도의 지도다. 삼각측량은 삼각형의 한 변의 길이와 두 개의 끼인각을 알면 그 삼각형의 나머지 두 변의 길이를 알 수 있는 원리를 이용해 지형을 간접적으로 측량하는 방법이다. 영국은 이 지도 덕에 인도를 강력하게 통치할 수 있었다. 지도에 그어진 선이 경제, 문화적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와 메릴랜드주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1769년 지도에 그려진 ‘메이슨 딕슨 선’은 처음엔 각 주의 경계선 역할 정도만 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서 이 선은 노예제도 찬반을 두고 갈라선 미국 남부와 북부를 가르는 군사적 경계선이 됐다.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남부와 북부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구글 어스를 이용해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 야외 수영장을 증축하는 부자 탈세자들을 잡아내고 있다고 한다. 폭탄테러 계획을 치밀하게 짜기 위해 구글 어스를 이용하는 테러범도 생겨나고 있다. 지도가 인류에게 선사한 명암이다. 저자들의 말처럼 지도가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갈 길”이 되기 위해선 지도에 숨겨진 역사적 교훈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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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포시 눈감고 들어봐요” 웹소설이 속삭인다

    “이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재혼 승인을 요구합니다!”(황후 ‘나비에 엘리 트로비’) “뭐… 뭐라고?”(황제 ‘소비에슈 트로비 빅트’) 네이버 웹소설 ‘재혼황후’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오디오 드라마 장면이다. 황후 역의 성우 소연(본명 안소연·48)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황제와 이혼하고, 이웃나라 왕자와 재혼하겠다는 대사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황제 역의 성우 정재헌(46)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인물의 팽팽한 갈등관계가 이어폰을 통해 생생히 전달됐다. 올 3월 시작된 이 드라마의 누적 재생 수는 400만 회가 넘는다. 맛깔나는 대사에 전문 성우들의 연기가 잘 어우러져 기존 웹소설 독자는 물론이고 오디오 콘텐츠 이용자들도 사로잡았다. 김범휴 네이버웹툰 사업부 리더는 “탄탄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성공한 웹소설이 오디오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며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로맨스나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책이나 예능, 드라마를 소리로 들려주는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서 웹소설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이 시장은 작가나 성우 한 명이 책을 낭독하는 오디오북이나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 재생하는 콘텐츠들 위주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웹소설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마치 TV 드라마처럼 만든 오디오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상위 10위권에서 웹소설 원작 오디오 드라마가 ‘재혼황후’(2위), ‘문제적 왕자님’(3위) 등 4개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플랫폼 스토리텔에선 웹소설 원작 오디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가 시리즈물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웹소설이 오디오 콘텐츠에서 강세인 건 순문학과 달리 인물 간 대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듬감을 강조한 구어체 위주의 전개가 오디오 시장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퇴근길이나 집안일 등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오디오 콘텐츠 소비자들의 성향도 한몫하고 있다. 웹소설은 서사와 캐릭터가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다시 들어도 이야기를 쉽게 쫓아갈 수 있다. 박세령 스토리텔 한국지사장은 “웹소설은 중의적인 뜻을 지닌 문장이 적고 한자를 병기해야 하는 단어를 별로 쓰지 않아 음성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가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와 오디오북은 녹음 방식이 다르다. 잔잔한 말투로 문장을 읽는 오디오북과 달리 오디오 드라마는 성우가 목소리를 높이고 감정을 끌어내면서 연기를 한다.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윌라의 이화진 콘텐츠팀 부장은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는 소설 속 갈등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성우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며 “TV 드라마처럼 배경음악과 효과음도 적재적소에 넣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의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웹소설 창작 전공)는 “과거 신문에 연재된 장편소설이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공상과학(SF) 장르 등에 비해 일반인들의 수요가 높은 로맨스물 위주로 오디오 드라마가 제작돼 인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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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우의 맛깔나는 연기에 귀 기울인다…‘듣는’ 웹소설 인기 비결은

    “이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재혼 승인을 요구합니다!”(동대제국의 황후 ‘나비에 엘리 트로비’) “뭐…뭐라고?”(동대제국의 황제 ‘소비에슈 트로비 빅트’) 네이버 웹소설 ‘재혼황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오디오 드라마 한 장면. 황후 역을 맡은 성우 소연(본명 안소연·48)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황제와 이혼하고, 자신도 이웃 나라의 왕자와 재혼하겠다고 외치자 황제 역의 성우 정재헌(46)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등장인물의 팽팽한 갈등 관계가 스피커나 이어폰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다. 올해 3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이 오디오 드라마의 누적 재생 수는 400만 회 이상이다. 맛깔 나는 대사에 프로 성우의 연기가 잘 어우러져 기존 웹소설 독자는 물론 오디오 콘텐츠 청자까지 사로잡은 것. 김범휴 네이버웹툰 사업부 리더는 “탄탄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성공한 웹소설이 오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며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로맨스, 로맨스판타지 분야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의 호응이 높다”고 했다.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서 웹소설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엔 작가나 성우가 홀로 책을 낭독하는 오디오북이나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해 재생하는 콘텐츠가 다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웹소설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마치 TV 드라마처럼 만든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네이버 오디오 클립 종합 10위 안에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가 4개에 달한다. ‘재혼황후’(2위) ‘문제적 왕자님’(3위) ‘울어봐, 빌어도 좋고’(6위) ‘내 남편과 결혼해줘’(9위) 순이다.웹소설이 오디오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건 순문학과 달리 인물들 간의 대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 구어체를 자주 사용하고 리듬감을 강조한 웹소설의 특성이 오디오 시장에서 강점으로 발휘되고 있는 것. 또 오디오 콘텐츠는 출퇴근길이나 집안일 등 다른 일을 하며 느슨하게 소비되기 때문에 웹소설처럼 서사가 단순하고 직관적인 대화가 많아야 다른 생각을 하다 다시 들어도 놓치지 않는다.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스토리텔 관계자는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는 서사와 캐릭터가 단순하고 명확해 다른 일을 하다가 잠시 이야기를 놓친 뒤 다시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중의적인 뜻을 지닌 문장이 적고 한자를 병기해야 하는 단어를 쓰지 않아 음성으로 쉽게 전달된다”고 했다. 녹음 방식도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와 오디오북이 다르다. 잔잔한 말투로 문장을 읽는 오디오북과 달리 성우가 목소리를 높이고 감정을 드러내며 ‘연기’를 한다.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윌라의 이화진 콘텐츠팀 부장은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는 소설 속 갈등을 살아있는 것처럼 전달하기 때문에 성우가 과장된 표현으로 연기한다”며 “TV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연출하기 위해 배경음악과 효과음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의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 창작 전공 교수는 “과거 신문에 연재된 장편소설이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일반인이 낯설게 느낄만한 장르적 특성이 남아있는 웹소설보단 대중성이 높은 작품으로 오디오 드라마를 만든다면 인기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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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스승은 수감자… 환자로 보니 병든 삶도 보였죠”

    나이 스물아홉, 의사가 됐다. 그런데 근무지는 병원이 아닌 교도소. 진료실 문을 열고 앉으니 머리를 빡빡 깎은 수감자들이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수감자들은 때로는 의사 말을 무시하고 기싸움을 벌인다. 진료실 책상 밑에 호신용 테이저건이라도 숨겨둬야 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주눅들 틈이 없다. 매일 80명의 환자들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능숙한 직업인으로서 이들을 치료해야 한다. 3년간 교정시설 공중보건의로 일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 ‘진짜 아픈 사람 맞습니다’(어떤책)를 20일 펴낸 최세진 씨(32) 이야기다.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최 씨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와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탄탄대로만 걸어온 그는 보통의 공중보건의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군 대체복무로 2018년 4월부터 올 4월까지 순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공중보건의로 자원해 일한 것. 교정시설은 공중보건의들이 기피하는 근무지다. 의사들의 하루 평균 진료 건수가 277건에 달해 지원자가 별로 없다. “공중보건의들에게 교도소는 다른 근무지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야 오는 곳이죠. 저는 의료계가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는 환자들을 치료해 보고 싶어 1지망으로 지원했습니다. 혐오, 차별 등 사회 문제가 어떻게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쓴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의 영향도 크게 받았어요. 부모님이 걱정하시고 선배들도 뜯어말렸지만 평소 순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곳인지 더 궁금했어요. 겁이 없었죠.” 교도소에서의 진료는 만만치 않았다. 호기롭던 처음 마음가짐과 달리 수감자를 볼 때마다 해를 당할까 공포심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감자들이 자신의 환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 본드 흡입 후 약물에 손대기 시작하고, 정신질환을 앓고도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른 수감자를 돌보며 병은 환자가 처한 사회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심을 받고 싶어 볼펜을 삼키고, 깨진 거울로 손목을 긋는 수감자를 보며 이들에게 필요한 건 신체적 치료보다 정신적 치료라는 걸 절감했다. 그는 “수감자가 불면증을 겪은 건 출소 후 생계 걱정 때문이었고 간염에 걸린 건 가난 탓에 예방주사도 못 맞았기 때문”이라며 “병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수감자가 왜 병에 걸렸는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을 마냥 온정적으로만 대하지는 않았다. 약물 오남용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했다. 정신질환자나 성소수자 행세를 하면서 마약성 진통제를 요구하는 수감자를 가려냈다. 일부 수감자들은 최 씨와 대화하며 자기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선 약이 아닌 재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마약성 진통제를 줄이거나 끊는 수감자들을 대할 때마다 희망이 보인다”며 “그들이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게 의사로서 제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며 배운다. 내게 의사로서의 자세를 처음 가르쳐준 곳은 교도소이며 나의 첫 스승은 교도소 수감자”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체복무 소집해제 후 서울대병원 수련의(인턴)로 일하고 있다. 교정시설 근무 후 인생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환자를 치료할 때 그들의 삶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진료 시 신체 상태를 점검할 뿐 아니라 환자와 대화하면서 왜 병원까지 오게 됐는지 확인합니다. 병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의사의 사회적 역할도 고민하게 됐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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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 아닌 교도소로 출근한 의사 “모두가 말렸지만…내 첫 스승은 수용자”

    나이 스물아홉에 의사가 됐다. 그런데 근무지가 병원이 아닌 교도소다. 출근길엔 휴대 전화를 반납하고 여러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 진료실 문을 열고 앉으니 머리를 빡빡 깎은 수용자들이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수용자들은 때론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일부러 기 싸움을 벌인다. 진료실 책상 밑에 호신용 테이저 건이라도 숨겨 둬야 하나 싶다. 하지만 주눅들 틈이 없다. 매일 80명의 ‘환자’들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능숙한 직업인으로서 이들을 치료해야 한다. 3년 간 교정시설 공중보건의사로 일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 ‘진짜 아픈 사람 맞습니다’(어떤책)를 20일 펴낸 최세진 씨(32) 이야기다.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최 씨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와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체복무로 2018년 4월~2021년 4월 순천교도소, 서울구치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의사로 대체 복무를 하는 방법은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병역판정의사 등 크게 3가지다. 교정 시설은 공중보건의 중에서도 기피하는 곳이다. 700여 명의 공중보건의사 동기 중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이는 20명 내외였다. “교정 시설은 의사 한 명당 1인 진료가 하루 평균 277건에 달해 지원하려는 의사가 거의 없어요. 다른 곳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야 오는 곳이지만 전 1지망으로 교정시설에 지원했습니다. 부모님이 우려하고 선배들도 다 ‘절대 가지 마라’라고 말렸지만 순응적인 스타일이 아니라서 어떤 곳인지 더 궁금해졌어요. 겁이 없어서죠.” 그의 첫 근무지는 전남 순천시에 있는 순천교도소다. 수용자가 1500명에 달하지만 그가 유일한 상주 의사였다. 호기롭게 교정 시설에 지원했지만 처음 간 교도소의 스산한 느낌에 긴장되고 무서웠다. 살인범을 마주한 것도 이곳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곧 교도관이 항상 진료에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과도한 경계심을 내려놓으면서 수용자가 아닌 환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을 앓아 음식을 거부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고, 폭력 범죄 탓에 뇌 이상이 발견되고, 어릴 때 본드 흡입 후 약물에 손대기 시작한 수용자를 치료하며 병(病)은 환자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들이 불면증을 겪은 건 출소 후 뭐 먹고 사나 걱정해서였고, B형 간염에 걸린 건 가난 때문에 기초예방주사도 못 맞았기 때문”이라며 “병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다보니 그들이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수용자를 온정적으로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약물 오남용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했다. 정신질환자,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며 방 변경을 요청하거나 진통제나 약을 더 달라며 꾀병을 부리는 환자들도 가려냈다. 잠을 못자니 수면제를 처방해달라고 주장하는 수용자에겐 수면제를 처방하기 보단 수면 일기를 적어보도록 권했다. 고혈압, 당뇨 환자에게 무조건 약을 많이 처방하기 보단 왜 그 병이 위험한지, 식습관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계속 말했다. 어떤 수용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료를 소홀히 한다는 명분으로 고소하겠다고 소리를 질렀고, “최 선생한테 진료 안 받겠다”고 강하게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수용자들도 자신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선 진통제보단 삶의 교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갔다. 그는 “마약중독자들 중에 약을 줄이거나 끊는 수용자들을 볼 때마다 희망을 본다”며 “필요한 약만 주고 결국은 중독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의사로서 제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며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로서 내게 첫 자세를 가르쳐준 곳은 교도소이며 나의 첫 스승은 교도소 수용자”라고 했다. 소집해제 후 서울대병원 수련의로 일하고 있는 그의 퇴근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시작된 인터뷰는 오후 6시 20분 끝났다. 그는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하는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헐레벌떡 돌아갔다. 교정시설에서 근무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환자를 보는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환자가 왜 병원까지 오게 됐는지 신체적 상태 뿐 아니라 배경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죠. 의사의 사회적 역할도 고민하게 됐고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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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반짝반짝 빛나는 원고를 쓰는 방법

    매주 문학·출판 담당 기자에겐 수백 권의 신간이 배달된다. 책을 소개해 달라고 출판사가 보낸 홍보용 책이 대부분이지만 작가가 직접 보낸 책도 수십 권 된다. 책이 들어 있는 황색 봉투 겉면에 ‘담당 기자 귀하’라 쓰고 행여 봉투가 찢어질까 스카치테이프로 수십 번을 포장한 것도 있다. 가급적 많은 책을 검토하려 하지만 시간상 모든 책을 제대로 읽진 못한다. 제목이나 만듦새가 조악한 책은 빠르게 훑고 다른 책을 검토한다.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다. 이 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출간 팁을 담은 글쓰기 책이다. 출판 기획자인 저자는 매일 원고를 검토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자에게도 업무시간이 한정돼 있는 만큼 원고를 거르는 데엔 제목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책의 주제가 담기지 않은 제목의 e메일은 열지 않는다. “먼저 전화 오는 출판사에서 출간하겠다”며 타 출판사와의 경쟁을 부추기는 제목의 e메일도 보지 않는다. 제목이 흥미로워 열어봤지만 첫 문장부터 오탈자 범벅인 원고도 있다. 저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다시 수정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지만 출판 기획자에겐 검토해야 할 원고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역량이 부족해 귀하의 책을 출간할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거절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선 ‘출간 기획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출판 기획자의 눈에 들기 위해선 원고의 핵심을 요약한 기획서가 도움이 된다는 것. 기획서엔 자신의 책이 왜 출간되어야 하는지, 누가 읽어야 하는지, 책의 주제와 기획 의도는 무엇인지가 간결하게 담겨 있어야 한다. 출간 기획서가 있는 원고는 매력적이다. 저자는 “원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출판사 대표나 편집자가 그 원고를 열어보게 하는 힘에 있다”며 “출간 기획서는 핵심만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은 예비 저자와 짧은 시간을 들여 결정해야 하는 출판사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출판사를 고를 때도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말한다. 책의 분야를 고려해 자신의 책에 관심을 기울일 출판사에만 투고하라는 것. 큰 출판사를 무조건 선호하거나 무작위로 여러 출판사에 투고하는 건 실패의 지름길이다. 또 투고할 때 출판사의 이름을 틀리게 적는 건 성의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절대 금물이다. 책을 출간하는 데 ‘최소’ 20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출판사 직원의 월급과 1쇄 인쇄 유통·비용을 합친 금액이다. 결국 출판사에 시장성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출간은 불가능하다. 작가가 출판사에 초판은 무조건 팔린다며 호언장담하거나 자신의 원고가 왜 계약되지 않았는지 따져 물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원고를 쓰고 나선 어떻게 내 책을 출판사에 소개할지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발견되는 한 알의 진주가 되려면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법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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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나오고 예능서 소개하면 ‘베셀’… 출판계 점령한 미디어, 독일까 약일까

    17일 종영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대본집 2권이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차지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다음 달 8일 출간 예정인 ‘갯마을 차차차 2’(북로그컴퍼니)와 ‘갯마을 차차차 1’은 예약판매만으로 이달 둘째 주 기준(7∼13일) 종합 1, 2위에 각각 올랐다. 드라마 대본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1, 2위까지 차지한 건 이례적이다. 북로그컴퍼니 관계자는 “무삭제 대본이라 드라마 방송시간상 편집된 장면, 등장인물의 뒷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며 “미리 독자에게 궁금한 점을 전달받아 드라마 작가를 인터뷰한 내용을 넣고, 남자 주인공 홍두식(김선호)과 여자 주인공 윤혜진(신민아)의 미공개 연애편지를 수록한 게 인기를 끌었다”고 밝혔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소개된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휩쓰는 데 비해 출판사의 자체 기획 도서 판매량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달 둘째 주 기준 예스24 종합 10위 안에 든 출판사 자체 기획도서는 강사 설민석 씨가 운영하는 단꿈아이 출판사의 학습만화서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0’(8위)이 유일하다. ‘갯마을…’에 나온 책도 판매량이 급증했다. 홍두식이 읽었던 에세이 ‘월든’(은행나무)과 시집 ‘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은 각각 예스24 에세이 분야 11위, 시 분야 3위에 올랐다. 판매량은 각각 3.7배, 32.6배 늘었다. 이 책들은 간접광고(PPL)로 등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인기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보니 출판사가 드라마 PPL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대형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1년에 1, 2건 정도 출판사로부터 책 PPL 요청이 들어온다”고 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일부 출판사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작가에게 책을 소개해 달라고 읍소하기도 한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작가에게 e메일을 보낸 데 이어 시청자 게시판에도 책 소개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며 “오랫동안 팔리지 않던 책도 MC 유재석이 소개하면 서점가 순위 상위권을 휩쓰는 건 기본”이라고 말했다. 유튜버의 영상이나 카카오의 콘텐츠 구독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된 글을 출판사가 받아 책으로 펴내는 사례가 늘면서 출판사가 책의 인쇄, 판매처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판계에서는 각 출판사들의 기획 능력이 떨어진 데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한 대형 출판사 편집자는 “출판사가 사회 현상을 분석해 저자를 섭외하고 책을 기획해 도전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미디어에 소개되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주요 78개 출판사 매출액이 4조8080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4.1% 감소하는 등 업황이 계속 위축되는 것도 출판사의 기획 여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사들이 자체 기획도서에 투자하고 기획력이 있는 젊은 편집자를 키우지 않으면 기획력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형 출판사 편집자는 “출판사들이 시도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홍보 효과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책 판매량이 늘어나는 게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김태희 예스24 예술·에세이 MD는 “출간 당시에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거나 잊혀졌던 작품이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며 화제가 되는 건 독서 문화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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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예능 나와야 팔린다… 미디어셀러로 뒤덮인 서점가

    TV 프로그램과 관련된 책들이 연달아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출판계의 미디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드라마를 글로 옮긴 책인 대본집이 서점가를 점령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면서 출판사의 자체 기획 능력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다음달 8일 출간 예정인 ‘갯마을 차차차 2’(북로그컴퍼니)와 ‘갯마을 차차차 1’(북로그컴퍼니)은 예약 판매만으로 각각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에 올랐다. 17일 종영한 tvN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대본집인 이 책들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도 차지했다. 배우의 친필 사인이 수록됐다는 점이 드라마 시청자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는 평가다. 특히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2권에 실려 1권보다 인기를 끌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대본집은 드라마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려는 소장 상품에 가깝다”며 “드라마 시청자가 주 소비자인 대본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책들도 판매량이 급증했다. 남자 주인공이 드라마에서 읽었던 에세이 ‘월든’(은행나무)과 시집 ‘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은 각각 예스24 에세이 분야 11위, 시 분야 3위에 오르고 판매량이 3.7배, 32.6배 늘었다. 올해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소개된 작가의 저서 역시 방송 출연 직후 판매량이 크게는 수백 배 높아진 바 있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돼 인기를 끄는 ‘드라마 셀러’ ‘예능 셀러’가 서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계에선 출판사의 자체 기획 능력이 떨어진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씁쓸한 현상이라는 평가다. 출판사가 직접 사회 현상을 분석해 저자를 섭외하고 책을 기획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미디어에 소개되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일부 출판사 편집자들은 방송 작가들에게 “우리 책을 소개해 달라”고 대놓고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출판 일은 영원한 벤처사업”이라며 출판사의 자체 기획을 강조하던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 등 기존 출판인들의 도전 정신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중형출판사 편집자는 “출판사들이 어렵고 현학적인 문장을 쓰며 대중과 멀어지는 동안 ‘유퀴즈 온 더 블록’의 MC 유재석은 대중이 궁금해할만한 작가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대중에게 다가갔다”며 “출판사들이 최근 시도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가 효과적이었는지 뒤돌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유튜버가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책은 최소 72종이다. 유튜버가 모든 것을 기획하거나 영상에 담은 것을 그저 글로 옮긴 책이 상당수다. 한 대형출판사 편집자는 “자신의 채널을 홍보하려는 유튜버와 유튜버의 ‘셀링 파워’를 이용하려는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현상”이라며 “카카오의 콘텐츠 구독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된 글을 출판사가 받아서 펴내는 위태로운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출판사는 책의 인쇄, 판매처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78개 출판 기업 매출액은 4조8080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4.1% 감소했다. 이처럼 갈수록 침체되는 출판계에서 미디어를 통해 책 판매량 자체가 늘어나는 일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김태희 예스24 예술·에세이 MD는 “출간 당시에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거나 잊혀졌던 작품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화제되는 현상을 독서 문화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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