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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울대학교’라는 책이 있었다. 서울대 합격 수기집으로, 1990년대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모의고사 후 OX 노트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과를 짰던 방식 등 세세한 공부법을 담은 책을 돌려가면서 읽었다.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욕망을 대놓고 자극한 고색창연한(?) 제목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아이도 있었다. 서울대에만 합격하면 인생의 비단길이 펼쳐질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팽배했던 분위기였기에. 막노동을 하며 공부해 서울대 법학과에 수석입학한 장승수 씨(현 변호사)가 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전국을 강타했다.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울대, 그것도 법대를 갈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그의 삶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섹시한 제목은 ‘○○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각종 패러디를 낳았다. 홍정욱 전 국회의원(현 헤럴드 회장)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과정을 담은 ‘7막 7장’은 국내 명문대에 쏠려 있던 시선이 해외 명문대로 옮겨가고 있던 당시 변화상을 반영했다. 인생의 여러 단계가 한참 남았다는 의미에서 문장마다 마침표 없이 쓴 이 책은 아이비리그를 꿈꾸게 만들었다. 입시제도는 갈수록 복잡해졌다. 고학력의 학부모조차 대입 전형표를 해석해 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화제를 모은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정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 명문대 합격에 필수적인 3요소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던 때였다. 요즘에는 아주 ‘핫한’ 입시 전략책이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어려운 환경이나 부진한 성적을 딛고 명문대에 합격한 저자들이 쓴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미쳐야 공부다’ 등이 주목받고 있지만 모두가 알 만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왜일까. 대학 서열화를 비판하며 활동했던 시민단체인 ‘학벌 없는 사회’가 올해 3월 자진해산한 건 학벌의 위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단체는 학벌보다는 자본의 힘이 훨씬 강력해졌다며 해산 이유를 설명했다. 명문대에 가려면 자본이 필요하고, 자본 없이 학벌만으로는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 힘든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나와도 흙수저는 영원히 흙수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아이의 사교육에 쏟아붓는 부모가 적지 않다. “명문대 나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안정적으로 살 확률이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 초등학생 자녀를 둔 친구의 말이다. 반면 사교육 시킬 돈을 모아 아이가 컸을 때 가게를 사는 데 보태주는 게 더 낫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부모도 봤다. 점점 작아지는 명문대 졸업장의 힘은 세월의 흔적이 쌓인 책장 속에서 그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에 대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출판사들은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판권을 따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선인세(인세 중 계약금 성격으로 미리 지급하는 금액)가 수억 원으로 치솟았고, 출판계에서는 5억 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종 승자는 현대문학 출판사였다. 올해 4월 ‘직업…’이 출간된 후 현재까지 판매된 물량은 5만여 권. 선인세를 회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대문학 측은 “생각보다 판매가 안 돼 추가 인쇄를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루키가 작가가 된 계기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이 책은 평단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폭발적인 판매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지난달 출간된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문학동네)는 빠르게 판매돼 추가 인쇄를 했고 현재까지 5만 권을 제작했다. 문학동네는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돼 누적 판매 부수가 10만 권은 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인세는 충분히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 출판계에서는 발랄한 하루키의 문체에 익숙한 독자들이 진지하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직업…’ 대신 경쾌하고 편하게 읽히는 ‘라오스…’를 선택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독자 반응이 예상과 다른 책은 적지 않다. ‘앵무새 죽이기’로 유명한 하퍼 리가 쓴 소설 ‘파수꾼’(열린책들)은 뜨거운 관심 속에 지난해 7월 출간됐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며 10만 권을 찍었지만 판매량은 7만 권을 채 넘기지 못했다. 3만여 권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았다. 이에 비해 2013년 낸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은 누적 판매량이 60만 권에 이른다. 지금도 매달 3000권 이상 나간다. 김영준 열린책들 주간은 “북유럽 소설은 생소해서 선인세로 1000만 원 조금 넘게 줬는데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역시 스웨덴 작가인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도 5만 권 정도 팔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지난해 5월 출간된 후 현재까지 30만 권이 나갔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김영사·2007년 출간)도 기대를 뛰어넘었다. 김윤경 김영사 편집주간은 “3만 권 정도 팔리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충돌 등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면서 모두 18만 권이 나갔다”고 말했다. 지금도 매달 500권씩 판매되고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이야기와 짜임새, 문체가 중요한 소설은 독자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운 반면 인문과학, 경제·경영서 등은 독자층이 정해져 있어 비교적 예상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화 ‘인천상륙작전’ 개봉(27일)에 맞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 ‘맥아더’(미래사)가 재출간됐다. 두 권짜리 양장본인 ‘맥아더’는 2007년 같은 출판사에서 원제 그대로 ‘아메리칸 시저: 맥아더 평전’으로 냈다. 당시에는 3000권이 판매됐다. 재출간한 책은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더 단순화시켰다. ‘맥아더1’은 6·25전쟁 발발일에 맞춰 지난달 25일 출간했고, ‘맥아더2’는 이번에 냈다. 영화 개봉과 리엄 니슨의 출연에 따른 언론 보도로 독자들이 2007년에 비해 좀 더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고영래 미래사 대표는 “교보문고에 ‘맥아더1’을 100권 입고한 후 재주문이 들어와 80권을 추가로 넣었다”며 “한 달 동안 ‘맥아더1’을 여러 서점에 1500권 배포했는데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맥아더’는 고상하면서도 비열하고, 오만하면서도 수줍음을 타는 맥아더의 양면성을 있는 그대로 조명했다. 1권에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맥아더의 성장기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승리한 내용이 담겼다. 2권에서는 6·25전쟁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과정을 다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김웅진 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게놈연구소장(59)이 한국에서는 자신의 책을 팔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로 지난해 현직에서 물러나 캘리포니아 주에서 개인적인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김 전 소장은 2000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미국립보건원(NIH)의 휴먼게놈프로젝트(HGP)에 참여해 유명해졌다. 서울대 출신의 유명 생물학자인 그가 지난해 1월 출간한 저서 ‘생물학 이야기’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인증한 우수과학도서에 선정됐다. 이 책은 올해 초까지도 저명인사들이 직접 추천한 도서로 언론에 소개돼 서점에서 잘 팔리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소장은 2014년부터 페이스북에 “김일성은 정말 대단한 리더다. 아무도 그를 대체할 수 없다. 북한의 권력 계승은 효율성과 국가 보전을 위한 일이다. 북한은 최고의 체제”라며 북한을 찬양하고 나섰다. 또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공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세기와 더불어 8권 전부 구글에 있습니다. 필독서. 완독하지 않은 무지한 자와는 대화가 불가능”이라는 글을 올렸다. 11일 올린 “한쪽(북한)에서는 어찌해서라도 외세가 갈라놓은 조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다른 한쪽은…제 동족을 물어뜯고 해코지하고 짖어대며 통일을 막으려고 발광한다”고 썼다. 김 전 소장의 이런 이중적인 행태에 미래부는 올해 그의 책에 대한 우수과학도서 선정을 취소했다. 일부에서는 “한국에서 책을 팔아 영리활동을 하는 사람이 북한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게 말이 안 된다. 그의 정체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 찬양 세력들은 김 전 소장이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활발히 댓글을 달고 있다. 이 중에는 간첩단 ‘일심회’ 총책으로 7년 징역 후 2013년 국내에서 추방된 장민호 (미국명 마이클 장·54) 씨도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 등 국내 인사들과도 페북 친구로 교류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의 ‘DPRK(북한) 스터디 그룹’ ‘우리는 하나’ 등 친북한 그룹에 가입해 노동신문과 북한 관련 기사를 올리며 활동 중이다. 문제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해도 해외에 서버를 둔 SNS에서 활동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글이지만 해외 서버에 저장됐다면 해당 기관에 공조를 요청해야 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어 통제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전주영 aimhigh@donga.com·손효림 기자}
“잘 운영해 최대한 버텨 보려고요.” ‘고양이책방’ ‘음악책방’ 등 특색 있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한 말이다. 운영비만 건지면 계속 문을 열겠다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인건비까지 확보돼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니까.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정영희 옮김·남해의 봄날)은 도쿄의 유서 깊은 책거리 진보초(神保町)에서 50년간 인문 서점을 운영한 시바타 신 씨(86)를 인터뷰한 책이다. 매일 서점으로 출근하는 그는 ‘진보초 북 페스티벌’을 지휘하고 역시 고령이 된 2세 서점 경영인들을 독려한다. 그가 말하는 양서란 ‘세상에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된 문장으로 표현하고 편집한 책’이다. 그러면 사는 손님이 반드시 있단다. 양서가 있고, 이를 알아보는 이들로 북적대는 한국의 서점들을 상상해 본다. 마음이 풍성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여름휴가 피크인 ‘7말 8초(7월 말 8월 초)’가 다가왔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를 때, 곁에 책을 둔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책의 향기팀’ 기자 4명이 휴가철에 권하고 싶은 책을 4권씩 골라 이야기를 나눴다.》○ 더위 피해 이야기 속으로 ▽김지영=추천 16권 중에서 소설이 7권이네. 역시 휴가철에는 소설이야. ▽손효림=책 고르는 게 만만치 않더라. 성별, 직장인, 전업주부 등 대상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고민되고. ▽김배중=완전 동감. 책장을 바라보며 머리를 감싸 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니까. ▽조종엽=‘고래’(천명관)는 자신 있게 추천해! 파리 출장 가는 비행기에서 읽었는데 10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어. 어른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 같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향연이어서 다 읽고 나면 꿈을 꾼 느낌이야. ▽지영=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작품 중에 제대로 ‘터진’ 책 중 하나지. ▽종엽=‘왕좌의 게임’(조지 R R 마틴)은 말이 필요 없어.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 판타지야. “겨울이 오고 있어!”. 휴가 끝도 곧 오겠지. ▽배중=윽, 갑자기 슬퍼지려고 한다.(웃음) ▽효림=멀리 놀러가지 않고 시원한 데서 책만 읽어도 좋잖아. ‘인페르노’(댄 브라운)는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전형적인 댄 브라운 스타일의 작품이야. 대표작 ‘다빈치 코드’처럼. 실제 휴가 때 시원한 카페에서 읽었는데 이탈리아와 터키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더라. 역사 문화 과학 지식이 총출동해서 지적으로도 뭔가 풍요로워진 듯하고. ▽지영=‘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폴 오스터)는 담배 가게 주인이 물건을 훔쳐간 소년의 지갑에서 주소를 발견하고 돌려주려고 집으로 찾아가. 그곳에서 손자를 기다리는 눈먼 할머니를 만나자 손자 역할을 대신하지. ▽효림=한강 작가를 더 알고 싶다면 ‘내 여자의 열매’를 보면 좋을 것 같아. 여기선 아내가 진짜 식물이 돼. ‘채식주의자’의 프리퀄을 보는 기분이랄까. ▽지영=맞아. 난 참 독특하고 좋았어.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은 사립고의 보건교사 겸 퇴마사인 교사가 학교의 귀신을 잡아내는 내용인데 진짜 웃겨. ▽배중=싸우자 귀신아! ‘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마크 트웨인)은 ‘사탄’이라는 이름의 천사가 사람을 만들었다 죽여 버리는 모순을 보여줘. 하지만 다른 이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존재는 결국 인간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 ○ 묵직하게 혹은 부담 없이 ▽종엽=‘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오정근)은 상사에게 깨지고 작은 일로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광대하게 탈출하자는 의미로 골랐어. 우주로 시야를 확대하면 이런 일은 진짜 별거 아니잖아. 보고 들을 수 없을 뿐이지 중력파가 우리 몸을 일렁이며 지나가고 있는 걸 상상해 봐. ▽효림=오, 표현이 완전 문학적이야. ‘잉카 최후의 날’(킴 매쿼리)은 잉카 멸망 과정을 상세하고 드라마틱하게 썼어. 잉카가 단시간에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복종하지 않은 다른 부족을 잔인하게 다뤘는데, 그 부족들이 잉카를 공격하는 스페인 군대를 도와 길잡이도 하고 식량도 댔다고 해. 대규모 전투 장면도 웅장하게 펼쳐지고. ▽종엽=호기심이 확 생기는 걸. ▽효림=‘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 씨가 외아들을 잃고 쓴 일기를 엮은 에세이야. 힘들 때 여러 번 읽었어.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라는 절규에 ‘왜 너여서는 안 되는가’라는 걸 깨닫지. ▽지영=생전의 박 씨는 진짜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일도 잘하고 자녀도 잘 키우려 온 힘을 다하셨지. 사람들은 잘못한 게 없으면 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잖아. ▽배중=맞아. 현실은 그렇지 않지.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을 고른 건 휴가 때 마음먹고 고전읽기에 도전하는 이에게 잘 맞다고 생각해서야. 두껍지 않고 판형도 작아서 그리 부담스럽진 않아.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누리는 게 자유라는 걸 말하고 싶어. ▽종엽=아, 너무 무거워. 난 휴가 때 다 풀어헤치고 쉬고 싶어. ▽효림=‘중력파…’ 추천한 사람이 그런 말하면 좀 이율배반적인 거 아냐?(웃음) ▽종엽=‘중력파…’는 술술 읽히게 쉽게 썼어. 진짜야. ▽배중=‘조선의 엔터테이너’(정명섭)는 기생, 음담패설의 대가, 못생겨서 유명했던 광대 등의 이야기인데, 짧은 에피소드로 돼 있어 물가에서 수박 먹으면서 읽다가 덮다가 하기 좋아. ▽지영=휴가 때 더 바쁜 엄마 아빠들에게 추천하는 건 시집이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마종기)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어. 시어도 어렵지 않고. ▽종엽=경남 통영 뒷골목에서 혼자 술 먹으면서 읽으면 좋겠다. ▽배중=결혼하고 아이 생기면 휴가 때 묵직한 책은 읽기 어렵겠지? ▽종엽=(끄덕끄덕) ‘자유론’이 제일 신선했어. 엄지 척! 그런데 정말 휴가 때 이걸 읽고 싶니?정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양이 구슬’이라는 제목의 일본 사진집을 펼치자 온통 ‘땅콩’(수컷 고양이 고환을 가리키는 은어)들이 가득했다. 갈색, 검은색,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의 털로 뒤덮인 하트 모양의 ‘땅콩’이 여러 각도에서 찍혀 있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길에 6월 문을 연 고양이책방 ‘슈뢰딩거’에서 인기 있는 책이다. 17일 찾은 18m²(약 5.5평) 규모의 이 책방은 엽서, 스티커, 열쇠고리, 펜, 메모지 등 고양이와 관련된 것들로 가득했다. 음악책방, 문학책방 등이 최근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그림책방, 여행책방, 술 파는 책방 등이 몇 년 사이 서울 마포구 홍익대 입구를 중심으로 생긴 데 이어, 보다 세분화된 주제의 책을 다루는 작은 서점들이 눈길을 끈다. ○ ‘고양이 덕후’의 사랑방 슈뢰딩거를 연 김미정 씨(31·여)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 출판계에서 일한 적도 없지만 그저 고양이와 책이 좋아서 저지른 일이란다. 회사원인 남편의 응원도 컸다. “몰라서 용감한 거예요. 고양이는 도도한 줄만 알았는데 애교도 많고 ‘허당’ 짓도 잘해요. 반전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슈뢰딩거는 밀폐된 상자 속에 독극물과 함께 있는 고양이의 생존 여부를 이용해 양자역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다. 고양이 발바닥만 찍은 사진집, 혀를 내민 고양이만 담은 사진집을 비롯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양이에 대한 추억을 쓴 그림책 ‘후와 후와’도 반응이 좋다. 책장을 빨리 넘기면 고양이가 마중 나오는 모습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플립 북(flip book)과 계란을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프라이할 수 있는 에그몰드도 있다. 고객은 남성이 30%나 된다. “고양이 얘기를 원 없이 나눌 수 있어 참 재미있어요. 완전 ‘덕업일치’(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같음)죠.”(웃음) 지난달엔 할머니와 길고양이의 동거 생활을 담은 에세이 ‘무심한 듯 다정한’(정서윤 지음) 출간을 기념해 사진전을 열었다. 고양이 드로잉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1년간 적자 볼 각오를 하고 있어요.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게 목표예요. 책방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의 플랫폼이 됐으면 좋겠어요.” ○ 음악, 문학… 취향 따라 오세요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에 5월 문을 연 ‘라이너 노트’는 음악책을 전문적으로 판다. 이름은 음악 해설문을 뜻한다. 음반공연기획사인 ‘페이지터너’가 만든 책방이다. 박미리새 페이지터너 이사는 “음악가의 이야기와 작품을 책과 콘서트, 강의를 통해 직접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트럼펫 연주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4차례 연주회를 열었고, 재즈 평론가 황덕호, 김현준 씨가 강연도 했다. ‘슈만, 내면의 풍경’(미셸 슈나이더 지음), ‘쇼팽 노트’(앙드레 지드 지음) 등이 많이 판매됐다. 벌써 임차료와 운영비를 벌 정도다. 소설책과 시집을 파는 ‘검은책방 흰책방’은 소설가 김종호 씨(46)가 16일 조선대 정문 앞인 광주 동구 백서로에 낸 서점. 커피와 그가 직접 만든 목공예 소품도 판다. 직장을 다니는 김 씨는 아내와 함께 서점을 운영한다. 김 씨는 “서울에서 4년 전 내려왔는데 문화 공간이 많지 않아 갈증이 컸다”며 “낭독회도 열고, 세미나 공간도 제공해 운영비가 나오는 한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당신, 숙제 다 끝냈어요?” 이영우 학교법인 이화학원 이사장(79)은 매주 주말이 다가오면 아내 김승애 씨(74)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이 이사장의 ‘숙제’는 미국, 홍콩에 사는 손주 5명에게 동서양의 격언과 그에 대한 생각을 영어로 정리해 e메일로 보내는 것. 20년 넘게 해외 근무를 해서 영어는 익숙했다. 그는 한국수출보험공사(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을 지냈고, 현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도 맡고 있다. 그는 2011년 10월부터 시작해 4년 반 동안 매주 보낸 격언을 엮어 최근 ‘할아버지의 선물’(호미)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한국어판과 영문판 두 가지다. 미국에서 휴가 중인 그는 17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더 많은 아이에게 삶의 지혜를 들려주면 좋겠다는 아내의 권유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삼남매를 둔 그는 멀리 있는 손주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눌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0년 큰아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충격으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하지만 손주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슬픔에 사로잡혀 있게 둘 수만은 없었어요. 멀리 떨어져 살지만 우리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줘야겠다고 결심했죠.”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일이 격언과 그에 대한 설명, 당부를 적은 메일을 매주 보내는 것이었다. 인터넷과 책을 뒤져 자료를 찾을 때면 가슴이 설렜다.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도 숙제는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메일에 환호했다. 꼬박꼬박 답장도 보냈다. 한 번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격언을 보내자 당시 일곱 살이던 손녀 카이아(11)가 진지하게 물었다. ‘할아버지, 우리 옆집 가족이 어제 이사 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그는 폭소를 터뜨리며 차근차근 설명하는 내용의 메일을 다시 보냈다. 첫째 손자 태희(16)는 “할아버지는 마술사 같아요.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면 어떻게 아시고는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는 말씀을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한층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태희 군의 말에 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자주 업어주셨죠. 연세가 드신 지금, 몸으로는 업어주실 수 없지만 좋은 말씀으로 저를 계속 업어주고 계세요.” 그는 요즘도 메일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결혼도 해야 하잖아요. 성장 과정에 맞춰 필요한 이야기를 해 줄 거예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요. 아이들이 기다리니까요.”(웃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바쁘게 살지 않으면 불안한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가슴을 짓누르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울리히 슈나벨 지음·김희상 옮김·가나출판사)은 그러면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해야 창의성도 생기고 업무도 더 잘할 수 있다는,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한다. 존 레넌, 존 케이지 등 ‘위대한 게으름뱅이들’도 소개한다. 독일의 여성 영화감독 도리스 되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해골이 된 자신을 상상하며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보느냐고 죽은 자신에게 묻는다. 대부분은 우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 영혼의 평안을 지킬 수 있단다. 한데 책 뒤에는 핵심 내용이 요약돼 있다. 바쁜 이들이 후딱 읽을 수 있게 한 거란다. 휴식을 강조한 책인데 말이다! 아이러니한 세상의 축소판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금발머리가 빛나 ‘햇살’이라 부른 아들이었다. 부모는 텔레비전 시청과 설탕이 많이 든 시리얼 섭취를 제한했고 책을 읽어 주고 기도하며 아이를 재웠다. 종이접기를 잘하던 아이는 수줍음을 조금 탔지만 예의 바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고교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폭탄을 터뜨려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을 다치게 한 두 남학생 중 딜런 클리볼드가 바로 ‘햇살’이다. 이 학교 졸업반이던 두 학생은 사건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딜런의 어머니인 저자는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둘째 아들이 ‘괴물’이 된 과정을 16년간 찾아다녔다. 딜런을 키운 18년도 되짚어 보고 또 되짚었다. 마음을 사정없이 베어 버리는 칼날 같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이었지만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아야만 했다. 저자가 마주한 건 완전히 낯선 아들이었다. 천연 항우울제를 복용했고 술도 마셨다. 딜런의 일기장에는 죽기 2년 전부터 우울감과 자살 충동에 대해 적혀 있었다. 학교에서는 호모라고 놀림 받았고, 때때로 맞았다. “좋은 부모라면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죠.” 저자가 너무나 많이 들었던 힐책이다. 누가 봐도 그는 ‘좋은 부모’였다. 아이가 우울함을 언뜻언뜻 내비쳤지만 해석해 내지 못했을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고통을 철저히 감춘다는 사실을 전문가에게 뒤늦게 확인했다. 똑똑할수록 더 치밀하단다. 딜런은 친구들에게는 사건의 단서를 일부 흘렸다. 권총을 사려 한 사실도 친구는 알았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에릭과 어울리면서 딜런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축구 경기에 졌다는 이유로 딜런에게 달려들어 미친 듯이 화낸 에릭을 봤지만 저자와 남편은 참았다. “두 아이를 무자비하게 갈라놓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라며 아이의 친구 관계에 세밀하게 주목하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에릭만을 탓하진 않는다. 에릭은 다른 아이들도 총기 난사 계획에 끌어들였지만 그 아이들은 거부했다. 반면 딜런은 끌려 들어갔다고 담담히 기술한 대목에서는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딜런이 죽기 위해 학교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죽였음을 알게 된 저자는 자살 유족 모임에 참여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뇌의 건강을 잘 살피고 건사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은 딜런에게 그걸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자살 예방 활동에 나선 건 ‘스쿨버스에 탄 아이들을 테러로부터 구하기 위해 내 목숨을 대신 내주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혹은 친구는 전혀 모르는 가운데 한 아이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타인이나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된다. 비극이 벌어진 뒤 ‘그때 그랬다면’을 수만 번 되뇌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괴물이 된 아들마저 받아들인 저자의 깨달음에 많은 이가 귀 기울이기를 소망한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도울 수 있다면 세상이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원제는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딸이 태어나니 지금까지 강조했던 인문학 교육법대로 키울 수 있을지 걱정되더라고요. 두려워하니까 안심은 돼요. 지키기 위해 그만큼 애쓸 거니까요.” ‘인문학 전도사’로 불리는 이지성 작가(42)는 지난해 11월 태어난 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갔다. 최근 ‘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차이정원)을 낸 그를 경기 파주시 자택 인근의 작은 북카페에서 12일 만났다. 그는 딸을 자연 가까이에서 키우고 싶어 마당이 있는 집을 지어 5월 이사했다. 딸 이름을 물으니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이가 원할 때까지는 언론에 절대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아내이자 ‘당구 여신’으로 불리는 차유람 씨(29)와의 약속이란다.○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리딩으로 리드하라’, ‘꿈꾸는 다락방’ 등을 펴내며 스타 작가가 된 그는 구체적인 인문학 교육법을 알리고 싶어 ‘내 아이를…’을 출간했다. 일요일에 가족이 서점 나들이를 하고 어릴 때부터 봉사하는 케네디 가문의 교육법을 비롯해 통독과 정독 뒤 필사하기 등 고전 읽는 방법을 안내한다. “인문학 교육법을 아우르는 총론에 해당해요. 앞으로는 ‘내 아이를 위한 논어 교육법’처럼 각론에 해당하는 책을 하나씩 낼 거예요.” 그는 인문학 교육을 위해 2014년 차이에듀케이션을 설립했고, 한국기아대책과 함께 캄보디아, 인도, 라오스 등의 빈민가에 학교를 짓고 있다. 인세와 강연료도 적지 않지만 교육과 기부에 만만치 않은 금액이 들어간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일이다. “고전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행동해야 해요. 실천이 빠진 인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니까요. 인문학을 강조한다면 시간 털고, 재산 털어 교육에 나서야 해요.” 15년 가깝게 무명작가로 설움을 겪었고, 아버지의 빚 때문에 교사 월급을 차압당하며 옥탑방을 전전하는 등 가난을 맛본 그의 말이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상 행복 맛보며 세상 적응 중” 하루 일과가 궁금했다. 몇 시에 일어나는지 물어보자 “일어나고 싶을 때요…”라며 목소리가 작아졌다. 열변을 토하던 스타 강사는 사라지고 머리를 긁적이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글 쓸 때는 이틀, 사흘간 한숨도 안 자요. 밥은 라면, 어묵, 과자로 때우고요. 아내가 ‘그렇게 살다간 빨리 죽는다’며 기겁했어요. 해외 오지에서 봉사하고 폭삭 늙어서 돌아오니 울더라고요. 나이 차(13년)도 많이 나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오전 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기로 약속했단다. “필라테스와 수영도 함께 하기로 했어요. 내일 등록할 거예요. ‘남편 생존 프로젝트’랄까요. 딸이 결혼하는 건 봐야죠. 하하.” 올해 3월 태국 푸껫으로 뒤늦은 신혼여행(2014년 결혼)을 다녀왔고, 4월에는 프랑스 이탈리아도 여행했다. “아내가 해외여행이 처음이래요. 여권에 도장이 가득 찍혀 있지만 모두 경기 등 일하러 간 거라 뭘 구경한 적이 없대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요. 우린 둘 다 외계인처럼 살아서 일상의 행복을 잘 몰라요. 함께 작은 즐거움을 맛보면서 ‘보통의 삶’을 하나하나 배워 가는 중이랍니다(웃음).” 파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 씨의 원화 2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9월 25일까지 ‘앤서니 브라운 전―행복한 미술관’을 개최하고 있다. 브라운 씨의 작가 활동 4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림책 속 작품과 아직 출간하지 않은 최신작의 작품이 공개됐다. 영국 작가인 그는 어린이의 심리를 내밀하게 포착하고 초현실주의를 아우르는 기법을 선보이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2000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윌리의 신기한 모험’, ‘미술관에 간 윌리’, ‘마술 연필을 가진 꼬마곰’, ‘고릴라’ 등이 있다. 국내외 작가들이 브라운 씨의 작품을 주제로 작업한 조형물과 영상물도 있다. 전시장 내에는 앤서니 브라운 도서관을 마련해 책도 읽을 수 있다. 일반 1만2000원, 만 24개월∼18세 9000원. 02-3143-4360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말은 때로 어떤 비수보다도 날카롭고 깊은 상처를 준다. 비수는 뽑아낼 수라도 있지, 말을 잊기란 쉽지 않다. ‘사소한 말 한마디의 힘’(사이토 다카시 지음·양수현 옮김·걷는나무)은 나쁜 대화 습관을 꼬집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대화법을 정리했다. 엄청난 비결을 알려주기보다는 그동안 들었던 말과 자신이 했던 말을 돌아보게 만든다. 무책임하게 격려하는 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단다. 1년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월급도 동결한 회사의 대표가 “지금의 10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하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지쳐 있던 직원들을 다독이는 게 우선이었는데 말이다. 지적할 일이 있더라도 마무리는 칭찬으로 하라고도 권한다. 중요한 건 기술적인 대화법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게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제 자궁을 운반체라고 생각해요. 이 아기를 향한 애정이 너무 깊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제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최대 8000달러(약 928만 원)를 받고 의뢰인 부부의 수정란을 품어 열 달간 아이를 키워주는 인도 대리모 안잘리의 말이다. 또 다른 대리모인 사로즈도 말한다. “시어머니가 저 같은 며느리가 없다며 기뻐하셨어요. 아들은 이런 큰돈을 벌어온 적이 없었거든요.” 사로즈 남편의 월급은 25달러(약 2만9000원)다. 인도에서 대리모 사업 거래액은 한 해에 4억550만 달러(약 5278억 원)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 등 소득이 높은 나라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착잡한가. 대리모는 극단적인 형태일 뿐 과거 가족이 행했던 기능은 대부분 아웃소싱이 가능해졌다. 돈만 있으면 가족의 역할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1983년 펴낸 ‘감정노동’을 통해 인간, 특히 여성의 감정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갈파했던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 지탱되는 구조를 분석한다. 가사 도우미, 아이 및 노인 돌보미, 웨딩 플래너는 이미 익숙하다. 연애 방법을 지도해주는 러브 코치, 파티 플래너, 정리 컨설턴트, 육아 설계사, 아동 배변 훈련가까지 가족의 기능을 대신하는 직업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가족의 역할, 나아가 개인의 삶이 시장화된 것이다.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더 바빠졌다. 저자는 ‘가정의 시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의 여성들이 가사 및 간병 도우미를 하기 위해 미국, 유럽, 홍콩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과 파장에도 주목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필리핀은 국내총생산(GDP)의 12%, 아이티는 15%, 네팔은 23%를 해외에서 보낸 송금이 차지했다. 남겨진 아이들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굶주리고 때때로 분노하며 지낸다. 이주 여성들 역시 자식 보고픈 마음을 꾹꾹 누른 채 대신 고용주의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붓는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 결과 과연 행복한가. 국가 간 빈부격차 확대, 맞벌이 증가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벌어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자신과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의 입장에 서서 공감해 보라고 제안한다.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피부에 금방 와 닿지는 않는다. 시장화된 가족과 개인의 삶에 대해 만만치 않은 무게의 질문을 던졌다는 것에 이 책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며 ‘응답하라 1988’이 떠올랐다. 엄마가 집을 비운 아이의 밥을 챙겨 먹이고, 수술한 택이 아빠의 병간호를 돌아가면서 하던 쌍문동 아줌마 3인방이. 그런 공동체가 존재한 시절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던 관계였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를 몇 시간 맡기거나 입원한 아버지의 머리를 감기는 등 잠깐 동안의 일도 처리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하기에, 더 악착같이 벌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일단 서로가 조금씩 보듬고 기대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가족의 생활을 공개해야 하고 이웃 혹은 친구 간에 어느 정도의 간섭이나 오지랖을 받아들일 각오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원제는 ‘So How’s the Family?’.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저 말고 그림책협회에 초점을 맞춰 질문해 주시면 안 될까요?”한성옥 그림책 작가(59)는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나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지난달 출범한 그림책협회 초대 회장(임기 2년)으로 선출된 터였다. 하지만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나의 사직동’, 2005년)된 데다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상(‘시인과 요술 조약돌’, 2005년)을 수상한 작가와 어떻게 협회 이야기만 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국에서 낸 ‘시인과 여우’ ‘황부자와 금돼지’는 미국 초등학교 교재로도 선정됐다. ‘한국 그림책 1세대’인 그의 작품은 순간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인정받는다는 건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죠. 한데 그림책 강의를 듣고 새로운 세계와 만났다며 기뻐하는 독자를 볼 때가 진짜 좋아요.”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립대 패션전문학교(FIT) 일러스트레이션 학사,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일러스트레이션 석사를 마친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수염 할아버지’(2002년), ‘나의 사직동’(2004년)으로 한국어린이도서상도 받았다. 그런데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뜻밖이었다. 날카롭기만 해 데면데면하게 지낸 아버지였다. “지병도 없던 분이 갑자기 떠나시자 멍해지는 거예요. 아버지도 가슴에 상처가 많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고요. 사는 게 혼란스러웠어요.” 3년 넘게 홀로 침잠했다. 그를 깊은 늪에서 끄집어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림을 그린 작품이었다. 후배의 간곡한 요청으로 ‘시인과 여우’에 대해 강의하러 간 날이었다. 미국 작가 팀 마이어스가 이야기를 쓴 이 그림책은 그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었지만, 강의를 하다가 새롭게 깨달았다. “시인이 버찌를 따 먹은 여우와 내기를 해요. 멋진 시를 쓰면 버찌를 차지하기로요. 계속 여우에게 퇴짜를 맞죠. 머리를 쥐어짜지만 시를 못 쓴 채 약속 장소로 나가는데, 달빛 아래서 여우를 본 순간 시가 튀어나오죠.” 뭔가 머리를 세게 내려치는 것 같았다. “시를 못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우를 만나러 가잖아요. 인생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가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요즘 에너지를 협회에 쏟고 있다. “그림책진흥법을 만들어 그림책이 독립된 장르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그림책과 동화는 엄연히 다른데 우리는 동화작가로 분류돼요. 이름을 찾아야죠.” 장르가 없다 보니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한국 작가들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이수지, 백희나, 김희경, 유주연 작가 등이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과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에서 수상하는 등 권위 있는 상을 휩쓸고 있다. “출판물 가운데 저작권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장르가 그림책이에요. 한국 그림책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답니다.” 협회를 운영하고 법 제정까지 이뤄내는 건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두렵지는 않을까. “영화계에서 스크린쿼터제를 위해 배우들이 삭발까지 했잖아요. 그 정도 각오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해요. 동료들과 ‘빠샤’를 외치며 함께 나가야죠. 하하!” 지금도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지만 출간은 회장 임기가 끝난 후 할 계획이다. “어린이와 어른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통찰을 담은 책을 내고 싶어요. 나이를 먹으니 봄이 여름을 지나 어떻게 가을을 맞이하는지, 삶이라는 순환의 고리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더라고요.”(웃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 작품은 뭘 의미하는 거지? 색채의 특징은 뭐야?” 최근 관람한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전(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한 여성이 여중생으로 보이는 딸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 내고 있었다. 딸은 굳은 표정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은 후 약간 주눅 든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어지는 엄마의 말. “그대로 적어.” 두 사람이 와서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만 빌린 경우 이어폰을 한 쪽씩 귀에 꽂고 함께 듣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는 딸만 듣게 했다.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도저히 작품에 집중할 수가 없어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조 당하듯 그림을 보는 여학생에게 이 전시회는 수행평가 과제를 위한 괴로운 작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딱딱하고 무표정한 여학생의 얼굴 위로 발레 공연장에서의 기억이 겹쳐졌다. 발레 공연은 어린이 관객이 많은 편이다. 발레 학원에서 단체로 관람하기도 하고 부모가 발레를 배우는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됐을까. 바로 앞자리에 여자 아이와 엄마가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는 이내 의자에 기대 졸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의 허리를 곧추세우며 손가락으로 무대를 가리켰다. 아이는 잠시 바로 앉는가 싶더니 다시 졸았다. 엄마도 지지 않고 아이 허리를 다잡았다. 잘 수도,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지루함을 참을 수도 없던 아이는 급기야 좌우로 허리를 마구 비비 꼬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의 손바닥이 아이의 등짝을 철썩 내려치기에 이르렀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작은 활극’에 발레리나들의 사뿐사뿐한 동작은 마치 저 세상의 것처럼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큰 맘 먹고 비싼 돈을 주고 왔으니 아이가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기를 바랄 것이다. 건성건성 보거나 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까. 낯설었다거나 흥미로웠다거나 혹은 지겨워 죽을 뻔했다거나, 그 어떤 것을 느껴도 좋다. 대충 본 그림이, 잠결에 들은 음악이나 졸다가 눈을 떴을 때 본 장면이 의식 혹은 무의식에 남을 것이다. 기자도 어린 시절 졸다가 깨다가 하며 봤던 뮤지컬을 커서 다시 봤을 때 ‘어, 이런 장면이 있었나. 옛날보다 훨씬 재미있네!’ 하며 신선하게 감상했던 경험이 있다.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전시장, 공연장을 찾는 가족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감상을 강요하지는 말자. 아이가 전시회, 공연장이란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고 기겁하는 건 부모가 원하는 바도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관람 예의는 지키되 아이가 자유롭게 즐기게 해 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자라고, 문화 체험은 그렇게 쌓여 간다. 알게 모르게.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죽는 순간,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최근 종영한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여주인공은 꼬여 버린 사랑으로 가슴이 아파오자 주문처럼 되뇐다. 지금은 울고불고 해도 죽을 때 돌이켜보면 ‘별거’였던 문제는 과연 몇 개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살아있는 존재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고민도 버릇이다’(스기타 다카시 지음·이주 옮김·팬덤북스)의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20년간 고민에 휘둘렸단다. 그 결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문제를 고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입사 시험에 합격할지는 어차피 기업 인사팀이 결정하니 그 자체를 고민하지 말고 서류 심사나 면접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방법을 고민하라는 것. 고민을 잘게 쪼개다 보면 내가 결코 어쩌지 못하는 게 나온다. 버려야 하는 고민이다. 필요한 건 결단력과 뒤돌아보지 않는 단호함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먹기만 하면 문제가 싹 해결되는 음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용기를 주고, 하늘을 팡팡 날게 해준다면? 엉뚱잼잼 마녀는 얼렁뚱땅 잼을 만드는 게 특기다. 한데 빈 구석이 좀, 아니 제법 많다. 생일을 맞은 용 드랭을 위해 구렁이잼을 만들기로 마음먹지만 덩치 큰 구렁이를 잡는 건 만만찮은 일. 결국 지렁이로 대신한다. 드랭은 냠냠 맛나게 잼을 먹지만 이걸 어째, 요란한 재채기와 함께 불을 뿜고 만다. 몇 해 전 감기를 심하게 앓은 후부터 불을 못 뿜었던 드랭이 말이다. 알고 보니 지렁이 알레르기가 드랭의 불씨를 살려낸 것이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그 덕분에 예쁜 용이 드랭을 쫓아다니게 됐다. 용기를 주는 당근잼이 필요한 토끼 폴린은 잼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밤에 핀 바닐라꽃을 따러 길을 나선다. 부엉이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맞지만 두더지의 도움으로 무사히 바닐라꽃을 따 온다. 자랑스럽게 바닐라꽃을 내민 폴린은 마녀가 정신없이 만들어준 잼을 안고 환호하며 떠난다. 어, 그런데 마녀의 창가에 뭔가가 하늘거린다. 아차, 바닐라꽃이다. 마녀는 건망증에 좋은 깜빡깜빡 호박잼 만들기에 나선다. 발랄한 상상력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사랑스럽다.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감기 몸살로 앓아눕는다면 어떻게 될지, 아가들이 실제 걱정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숲 속 동물들과 마녀의 다채롭고도 생생한 표정은 웃음을 선사한다. 단숨에 읽기보다는 에피소드별로 중간에서 읽기를 멈추고 이후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놀이처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책고래아이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며칠간을 쏟아지는 로켓탄 공격 아래서 보냈다.(중략) 한 시간가량 끊기지 않는 인터넷을 이용해 숙제를 끝낼 수 있었고 남부끄럽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내게는 전형적인 한 주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학생이 대규모 공개 온라인 수업인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수강을 마친 후 강의를 한 세바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에게 보낸 e메일이다. 2011년 스탠퍼드대에서 시작된 무크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포함해 미국 유명 대학으로 빠르게 번졌다. 의지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미국 명문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무크에 세계는 열광했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있기 마련. 수강생의 중도 포기율이 90%가 넘고, 영어라는 언어 장벽이 있는 데다 인터넷 장비가 없는 오지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했다. 한 강의당 수강생이 수만 명에 달하다 보니 평가도 단답형, OX 등 쉽게 채점 가능한 문제 위주로 출제됐다. 댓글로는 깊이 있는 토론이 힘들었다. 논란이 격화될 때는 직접 경험해 보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교육평가 분야에서 일해 온 저자는 행동에 나섰다. 철학 전공에 필요한 모든 수업을 단 1년 만에 무크로 이수하는 자칭 ‘자유학위 1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저자의 학부 전공은 화학이다). 그 과정을 블로그에 연재한 뒤 책으로 묶었다. 무크의 탄생부터 개발 과정과 장단점까지, ‘무크의 A부터 Z’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무크가 뭐지?”라고 묻는 이의 손에 쥐여주기에 딱 좋다. ‘자유학위 1년 프로젝트’ 결과, 저자는 미국철학협회 콘퍼런스의 칵테일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토론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무크의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저자는 강의에 대한 경험도 담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다룬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강의에 등장한 아킬레스와 ‘고대 그리스 영웅’ 강의에서 다룬 아킬레스가 비슷하지 않은 것을 저자가 궁금해하자 다른 수강생들은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쓸 당시 아킬레스에 대해 있었을 법한 자료의 역사적 의미를 알려줬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은 너무 조금 소개돼 아쉬움이 남는다. 온라인 강의의 한계를 무크 역시 극복하지는 못했다. 기존 대학을 대체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 대신 대안교육이나 학습자료로 활용될 여지는 높다. 몽골 고등학생인 바투식 먕간바야르가 MIT 무크를 상위 1% 성적으로 이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MIT에 합격할 수 있었다.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 직접 그를 지도해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층이 아닌 고학력 중장년층이 주요 수강생이라는 점은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서 무크의 역할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무크가 던진 화두다. 이 시대 대학이 제공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감수하고 치열한 경쟁 끝에 손에 쥔 졸업장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대학, 더 나아가 교육의 방식과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 건 무크가 이뤄낸 가장 강력한 성과가 아닐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응당 그랬어야 했건만 다른 문화들을 좀 더 폭넓게 여행하고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정신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는 삶을 돌아본 에세이 ‘고맙습니다’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어디로 갈지 찾아보는 이가 많다. 수많은 곳을 누비고 여행 에세이를 펴낸 ‘여행 고수’들은 원하는 여행이 어떤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포츠, 휴식, 추억…방점은 어디? 사람마다 누리고 싶은 것은 제각각이다. 레포츠를 원할 수도 있고 그저 푹 쉬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김명철 작가(‘여행의 심리학’)는 “외향성, 우호성, 성실성, 개방성, 정서적 안정성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여행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를 쓴 태원준 작가는 레포츠를 좋아하면 라오스 방비엥을, 휴식을 원하면 태국 방콕을 추천했다. 태 씨는 “방비엥은 산과 강에서 고무튜브를 타는 튜빙과 철사를 몸에 연결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집라인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며 “방콕은 낮에는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고 저녁에는 노천 주점과 맛집을 누비기 좋다”고 말했다. 가족 여행지로는 대만 타이베이를 권했다.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고 야시장과 쇼핑센터가 많아 남녀노소 모두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의 저자 정지우 씨는 “여름엔 충북 단양군 일대의 삼림욕장이 바닷가보다 덜 붐빈다”고 귀띔했다. 낯선 이와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면 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앤비, 카우치 서핑(현지의 빈방을 무료로 이용)을 이용해 볼 만하다. 단, 여성 홀로 에어비앤비나 카우치서핑을 이용한다면 혼자 사는 여성 호스트에게 요청하는 것이 안전하다. 아이와 여행한다면 ‘가족친화적’이라고 소개한 호스트에게 가는 것이 좋다.○ 욕심 버리면 즐거움이 쑥 정확한 정보를 알려면 ‘손품’을 팔아야 한다. 최미선 작가(‘사랑한다면 이탈리아’)는 “사람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맛집, 숙소, 관광지에 대해 여러 인터넷 후기를 비교해 봐야 보다 객관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날씨는 여행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위키피디아에는 도시별 날씨가 상세하게 나온다. 장은정 작가(‘나 홀로 제주’)는 “여행하는 나라의 기상청과 관광청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날씨는 물론 검증된 알짜 정보를 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방문지와 관련된 영화를 보거나 역사·문학·예술책을 읽으면 감동은 배가된다. 정지우 작가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사랑, ‘인투 더 와일드’는 청춘,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황혼을 각각 여행과 결부시키며 탐구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불멸의 산책’(장 크리스토프 뤼팽), ‘유럽 문화 기행’(위치우위), ‘인도 방랑’(후지와라 신야)은 깊이 있는 사유가 녹아 있다”고 소개했다.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최미선 작가는 “천천히 다녀야 마음에 남는 곳을 발견하기 때문에 파리, 로마, 피렌체 등 도시에서는 버스나 전철을 거의 안 타고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