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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저를 공격하는 건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32년간 아사히신문 기자를 지낸 우에무라 다카시 씨(58·사진)는 26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는 1991년 일본에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2014년 아사히신문을 퇴직할 무렵부터 본인은 물론이고 한국인 아내와 10대 딸에 대한 일본 우익의 협박과 살해 위협이 시작됐다. 그가 쓴 위안부 기사가 날조됐다는 허위 주장이 일본 주간지에 실린 것. 우에무라 씨가 퇴직 뒤 가려던 대학은 갖은 협박에 시달리다 임용을 취소했다. 강사로 있던 대학에도 협박이 이어졌지만 뜻있는 일본인들이 그를 보호해야 한다며 나서기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한국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로 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책에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낱낱이 담겨 있다. 그는 “‘날조 기자’란 말은 기자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돈만 내면 끝이 아니며, 위안부 합의는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그 기억을 이어 가도록 해야 양국 간 진정한 화해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991년 8월 11일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최초로 보도한 일본 기자가 있었다. 3일 후 증언을 했던 여성은 김학순이라는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오는 물꼬가 트인 것이다. 일본 기자는 그 해 12월 김 할머니의 한스러운 삶과 일본 정부를 제소한 사실에 대해 기사를 썼다. 32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친 일본 기자는 일본 고베의 한 여대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악몽 같은 현실이 시작됐다. 2014년 1월 일본 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에 과거 위안부 기사를 쓴 사실이 보도되면서 일본 우익들의 협박이 시작된 것. 이들은 대학에 어마어마한 양의 협박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결국 임용이 취소됐다. 그는 물론 한국인 아내, 10대인 딸 역시 온갖 협박과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 씨(58)의 이야기다. 일본 우익은 우에무라 씨가 정신대를 위안부로 표기했고, 양아버지가 위안부로 팔았음에도 강제 연행된 것처럼 기사를 썼다며 그를 '날조 기자'로 몰아붙였다. 당시에는 정신대를 위안부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했고 '전쟁터에 연행되었다',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고 썼을 뿐이었다. 우메무라 씨가 강사로 있던 대학에까지 우익들의 협박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나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직을 제안했고, 올해 3월부터 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담은 책이 올해 초 일본에서 출간됐고 최근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에무라 씨와 나눴던 질의 응답을 정리했다. ―한국어판 책을 출간한 소감은? "일본에서는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연표 등 관련자료의 양이 더 많다. 내가 왜 그렇게 일본에서 공격받아야 하는지 너무 황당하다. 1991년 8월 정신대 이름으로 전장에 갔다고 기사를 썼다. 당시 위안부를 정신대라고 쓴 건 한국, 일본 여러 매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우익은 내가 쓴 기사에 대해서만 '정신대는 위안부와 다르다'고 공격했다. 일본의 리버럴한 언론사(아사히신문) 저널리스트로서 공격받은 것이다. 날조 기자란 말은 기자에게 사형 선고다. 없는 사실을 조작하는 게 날조다. 날조 기자라면 해직돼야 하는데 아사히신문은 내 기사를 인정했다. 날조기자란 말은 그냥 욕이 아니라 내 기자 인생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말이다. 뉴욕타임즈,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같은 유력 일간지들이 나에 대해 보도했다. 날조 기자라면 어떻게 보도를 할 수가 있었겠는가. 가톨릭대에서도 어떻게 날조 기자에게 수업을 맡기겠는가.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일본 언론의 자유, 위안부의 인권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끝까지 싸우려 한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딸이 협박받았을 때였다. 딸은 내가 기사를 쓴 한참 뒤인 1997년에 태어났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의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실어 비방하는가 하면 이지메를 하라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자살하라는 말까지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딸이 강하게 견뎌 줘서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었다. 딸을 협박한 남성에 대해 지난달에는 도쿄지방법원이 '미성년자에 대한 악질적인 인격공격'이라며 170만 엔(약1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딸이 재판에서 이겼듯이 나도 이길 것이다."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변호사와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170명의 변호인단이 꾸려져 무료로 변호를 해준다. 내가 공격을 받는 건 일본에서 언론의 자유가 없어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원자들이 기금을 모았고, 개인 돈도 쓰고 있다." ―협박은 여전한가. "가톨릭대를 협박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는 아직까지 많은 협박글이 남아 있지만. 일본의 여러 대학과 시민단체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 뉴욕대, 시카고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등에서 강연했다. 올해 4월에 유엔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조사하는 분이 나를 인터뷰 했고 보고서도 나왔다. 국제 사회가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아직 있지만 상황은 예전보다 좋아졌고 앞으로 차츰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태도는 어떤가? "아사히신문은 위안부 문제를 열심히 보도했지만 요즘은 많이 쓰지 않고 있다. 여러 사안으로 공격을 많이 받아서 위축된 측면도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들도 옛날에 비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많이 안 가지는 것 같다. 한 기자는 '위안부 기사를 쓰고 우에무라 씨처럼 될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나를 공격해 언론 자유를 압박하려는 우익의 노력은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 여름에 규슈나 홋카이도 나고야 등에 강연하러 간 내용이 아사히신문에 났다. 퇴직 후 우익의 공격으로 대학 임용이 취소되자 아사히신문에서 복귀하라고 제안도 했지만 내가 정중히 거절했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 선후배들이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모아 활동비로 쓰라고 보내주고 있다." ―기자 시절 위안부 보도에 일정 부분 거리를 뒀다고 했는데 이유가 뭔가? "1990년대는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다. 나는 그 때 다른 곳에서 특파원을 하고 있었다. 또 아내가 한국인이고 장모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간부여서 내가 위안부 기사를 쓰면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다고 할까봐 거리를 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요즘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 보도를 별로 안 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위안부는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이번 일 역시 내 문제가 아니라 용기를 내 증언한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다."―아베 정권이 바뀌면 일본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베 정권 때문에 역사에 대한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역사를 모르니까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고노담화의 정신은 계승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말고 인류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합의에는 고노 담화 같은 내용도 있어서 한일 양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에 보니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 것이었다. 돈만 내면 문제가 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위안부 합의는 끝이 아니라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한 시작점이 돼야 한다. 일본 교과서에도 나오고 젊은 세대도 그 기억을 계승해야 한다." ―한국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본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책에는 나를 돕는 시민단체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80년대 후반 연세대 어학당을 다녔고 1990년대 서울특파원을 지냈다. 앞으로 일본과 한국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화학제품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기자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가습기에 꼬박꼬박 부어 썼던 살균제만 모아도 몇 박스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화학제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꽤 도발적인 이 책에 눈길이 간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남편과 세 아이를 둔 저자는 2009년 베르너 보테 감독의 영화 ‘플라스틱 행성’을 본 후 정신이 번쩍 드는 충격을 받는다.(이 영화는 2011년 국내에서도 상영됐다.) 세계의 가정집에서 플라스틱 물건을 모조리 집 밖으로 꺼내 전시하고 플라스틱으로 범벅이 된 곳곳을 보여준 것.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물질은 기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유독성 여부를 알 수조차 없는 현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려서부터 쓰레기 만드는 걸 싫어했던 저자는 세 아이를 천 기저귀로 키우고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데 만족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이도 보통 수준은 넘는다. 가족의 지지 속에 시작한 이 실험은 플라스틱 없는 삶이 정말 가능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2년간의 여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첫 번째 장보기 결과는 처참했다. 플라스틱 손잡이가 없는 주전자는 찾을 수 없었고 친환경제품 전문 매장에서조차 비닐 포장이 안 된 상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이들이 아니었다. 가족,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블로그를 통해 도움을 구하며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종이에 포장된 화장지를 구하지 못해 뒤처리를 할 때 신문지나 나뭇잎, 인도식으로 왼손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까지 논의하며 기겁한다. 그러다 골판지 상자에 담긴 종이 손수건을 찾아내고 종이 상자에 담긴 면류를 파는 슈퍼마켓을 발견할 때면 함께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환경보호라는 무게감에 짓눌리는 대신에 보물찾기를 하듯 즐기는 이들의 실험기는 유쾌하다. 블로그에 연재한 글을 엮어 책으로 펴냈기에 구어체로 정리된 데다 우리말로 재치 있게 번역돼 에너지가 통통 튀는 이야기꾼을 마주한 기분이다. 텔레비전, 냉장고, 청소기, 컴퓨터처럼 대체할 수 없는 제품은 사용하고 가족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 점은 실험의 지속성에 힘을 더했다. 실제 저자의 남편은 나무 칫솔대에 돼지털이 꽂힌 칫솔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냥 길을 한번 떠나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저자의 생각은 압박감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내는 주문 같다. 실험이 계속되면서 저자는 끝없는 소비를 통해 지탱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실감하게 된다. 살 물건은 신중하게 선택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쓰지 않음으로써 점점 간소한 삶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직접 키운 토마토에 모차렐라 치즈를 얹어 먹는 가족의 큰 기쁨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 대목에서는 짠한 마음도 든다. 모차렐라 치즈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오기에 비닐로 포장되지 않은 건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실험을 시작한 이후 삶이 훨씬 안락해졌고 실험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고. 그는 지방의회 의원에 선출된 데 이어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주위의 온갖 플라스틱 제품이 매직아이처럼 눈에 들어왔다. 작은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 원제는 ‘Plastikfreie Zon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지칠 때 산이나 공원처럼 나무, 꽃, 풀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충전이 되는 느낌이 든다. 자연의 힘은 신기하고 오묘하다. ‘김산하의 야생학교’(김산하 지음·갈라파고스·1만5000원)에서 영장류 학자인 저자는 수년간 정글에서 살며 긴팔원숭이를 관찰했다. 다양한 생물이 각각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자연의 원리임을 몸소 깨닫는다. 다른 생명들을 무감각하게 파괴해 온 인간의 행태에 일침을 가한다. 개발을 위해 숲을 파괴하는 행위를 돌아보게 하고, 일회용 컵이나 화장지, 샴푸 사용을 조금씩이라도 줄여보자고 제안한다. 도시에도 인간뿐 아니라 비둘기, 참새, 매미, 개미 등 많은 생명이 존재한다. 가혹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이 생명체들을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그래, 함께 살아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호모사피엔스 한 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버려지고 떠돌다 미혼모인 엄마와 같이 살게 된 무, 자신도 모르게 무지막지한 욕설을 토해 내는 장애를 가진 윤, 미국 유학을 갔지만 고등학교도 못 마치고 돌아온 도진, 뭐든 잘 훔치는 기하. 상처를 지닌 소년 네 명이 ‘틈새’라고 불리는 분식집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틈새 보이스’(문학과지성사·사진)가 최근 출간됐다.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 표’ ‘들키고 싶은 비밀’ 등으로 유명한 황선미 작가(53)의 세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틈새…’에는 외로움이 많이 투영돼 있다. 작가 역시 “기댈 데 없이 외로웠던 청소년기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 “상처 있는 아이들 보듬어 주길” 작가는 가난한 집 5남매의 둘째로 중학교를 못 가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공부 잘하는 오빠를 뒷바라지하기도 벅찬 상황이었거든요.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반항하느라 아무것도 안 하고 글만 썼어요. 열세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고교에 진학했지만 학교는 여유 있는 형편에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도시락 반찬만 봐도 집안 형편이 다 드러나잖아요.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제가 명문대 진학을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며 절대적인 ‘벽’ 같은 걸 느꼈어요.” 오기와 반감이 그를 에워쌌다. 친구들이 입시 준비에 몰두할 때 그는 홀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 선생님이 눈총을 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단다. ‘틈새…’에서 어릴 때 자신을 성적(性的)으로 학대했던 친척 할아버지가 숨지자 장례식장을 찾아가 뒤엎어 버린 해리의 강단 있는 모습이 연상됐다. 그 강단이 해리와 비슷하다고 하자 황 작가는 미소를 지었다. “‘틈새…’의 아이들은 학교든 어디든 온전히 소속되지 못하고 혼자 웅크리고 있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한데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마음으로는 다가가고 싶어 했더라고요. 상처 있고 외로운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여 주고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몸으로 하는 작업, 글쓰기 그는 20년 넘게 작가 생활을 하며 50여 권의 작품을 썼다. 한 해 평균 두세 권을 쓴 셈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써요. 그래야 감을 놓치지 않으니까요. 작가는 몸으로 하는 거예요. 묵혔다가 쓰라는 사람도 있지만 ‘개꼬리 3년 묵혀도 황모(黃毛) 못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쓰는 게 몸에 배야 해요.” 그는 글을 쓸 때 가장 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가 될 줄은 몰랐단다. 대학(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도 친구가 권해서 갔지만 ‘작가는 무지개 너머에 있는 존재인 줄 알았기에’ 지금의 현실은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각국 언어로 번역돼 세계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독자층도 어린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예전에는 강연을 가면 아이들만 있었는데 요즘은 중년층은 물론이고 노인층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와요. 제 작품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징검다리가 되면 좋겠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국내 대표 온라인 서점인 예스24는 1999년 문을 연 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갈수록 도서 시장이 침체되고 서점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예스24는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고 독자와의 접점을 확대함으로써 계속 커나갈 수 있었다. 국내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2010년 모바일 쇼핑 서비스를 시작했고, 경기 파주시와 대구에 물류센터를 설립해 당일 배송이 가능한 주문 시간도 늘렸다. 공연, 영화,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로도 사업을 확대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독자 욕구에 신속 대응 예스24의 회원은 올해 9월 현재 1200만 명을 넘었다. 국민 4명 중 1명이 회원인 셈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판매된 책은 모두 3억1200여만 권으로 이를 쌓아올리면 6799km에 이른다. 한라산 높이(1947.269m)의 약 3500배가량 되는 분량이다. 올해 상반기 누적거래액은 2746억80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었다.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올해는 오프라인 중고서점인 ‘예스24강남’, ‘예스24목동’을 열어 중고책 시장도 개척하고 있다. 영풍문고, 쿠팡과는 전략적 제휴를 추진 중이다. 경기 파주시와 대구에 물류센터를 설립함으로써 당일 배송이 가능한 주문 시간이 연장됐다. 올해 3월부터는 서울, 경기 지역의 당일 배송 가능시간을 1시간씩 확대했다. 서울, 부산은 오후 3시까지 주문하면 당일에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책 이외의 엔터테인먼트 분야로도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공연, 영화, 음반, DVD 등도 함께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이 인터넷에서 책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를 포착해 이에 대응한 것. 엔터테인먼트 사업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113% 늘어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콘서트 티켓을 단독 판매하는 계약을 맺어 엑소, 샤이니 등 유명 아이돌그룹의 단독 콘서트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SK텔레콤과 제휴를 맺고 멤버십 영화 예매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다. 독자와 작가와의 교류도 확대해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독서 인구를 늘리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만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600여 차례 열렸다. 강연회뿐 아니라 북콘서트, 티타임, 원데이 클래스, 트레킹, 답사 등 색다른 형태로 독자와 작가가 만나는 방식을 도입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만남의 형태에 따라 작가와 독자를 합쳐 5명을 넘지 않도록 구성하는가 하면 많게는 450여명의 독자가 모이는 등 행사의 성격에 맞춰 규모를 조정한다. 지난달에는 정유정 작가와 300여 명의 독자가 함께하는 ‘2016 소설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연극으로 각색해 선보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예스24 측은 “작가와 독자가 깊이 있게 소통하고 교감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연구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첨단 기술로 책과 교감하세요” 예스24는 지난해 모바일 연매출이 1000억 원을 넘었다. 2010년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모바일 쇼핑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연평균 10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K페이 등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매출 확대에 상당히 기여했다. 모바일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560만 건이 넘었다. 웹 매출 대비 모바일 매출 비중은 2014년 15%에서 지난해 23%였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32%까지 늘었다. 전자책 앱을 만들어 꾸준히 투자하고 서비스를 개선한 것도 모바일 매출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기술인 TTS(Text to Speech)를 활용하면 우리말은 물론이고 영어로도 책 내용을 들을 수 있다. TTS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속도를 선택할 수 있어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직장인이 많다. 어학 공부를 하는 수험생, 대학생들도 자주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문판과 국문판 전자책으로 선보였다. ‘귀가 트이는 영어’ ‘입이 트이는 영어’와 같은 EBS의 인기 영어 프로그램 교재 4종을 전자책으로 내놓았다. 라디오 방송을 듣고 문제 풀이도 가능하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능이 있는 멀티 전자책을 선보일 계획이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전자책 앱을 설치하면 전자책 6권을 무료로 제공한다. 소설, 인문, 비즈니스 분야 등의 인기 있는 책은 전자책으로 10년 대여를 해주고 있다. 10년 대여를 할 경우 가격은 종이책보다 50∼83%가량 저렴하다. 전자책 앱에서는 ‘마이 메뉴’ 기능을 활용하면 구매한 책 권수와 선호하는 분야, 총 독서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독서 습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많다. 김기호 예스24 대표는 “독자의 편의를 확대하고 물류 시스템과 전자책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시도와 투자를 통해 책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도서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책은 물론이고 공연, 영화 관련 서비스도 늘려 더욱 다채롭고 편리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책 판매액이 연간 25조 원에 이르는 중국 출판시장을 집중 분석하는 포럼이 열린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은 경기 파주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26, 27일 ‘중국, 출판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주제로 제11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이 열린다고 20일 밝혔다. 포럼에는 중국 주요 출판사와 서점, 인터넷콘텐츠 기업 기획자와 영국, 미국, 프랑스 출판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합병을 통해 미국, 유럽에 진출하고 있는 펑황출판그룹을 분석해 중국 출판계의 글로벌 전략을 짚어본다. 또한 중국에서 전자책이 주로 거래되는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를 통해 단행본, 게임, 웹툰, 웹소설 등 온라인 콘텐츠 시장의 발전 현황과 기존 출판계와의 교류 가능성을 살펴본다. 출판인을 대상으로 한 제3회 파주 에디터스쿨도 같은 장소에서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주제는 ‘젊은 그들의 새로운 방식’이다. 한국, 중국, 일본, 네덜란드, 영국, 미국의 작가와 출판인들이 참석해 2030세대는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접하는지 등을 분석한다.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에서. 참가비는 기간에 따라 국제출판포럼은 1만∼1만5000원, 에디터스쿨은 1만∼2만 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독자의 e메일은 몇 번씩 읽어본다. 기사에 대한 공감이든 항의든, 메일 주소를 찾아 의견을 보내는 마음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에 대해 항의(혹은 지적)하는 60대 재미교포 남성의 메일을 받았다. 미국의 흑인 저널리스트가 흑인 차별에 대해 15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 에 대한 서평 기사(10일자 17면)를 읽고 메일을 보내왔다. 이 독자는 기사가 감상적이고 편파적이라고 했다. 기사에는 책 내용을 인용해 담배를 훔치다가 혹은 장난감 총을 지녔다가 경찰의 총에 숨진 흑인들의 사례와 엽궐련을 훔친 흑인 소년을 쏘아 숨지게 한 경찰이 기소되지 않자 저자의 아들이 눈물을 흘린 이야기 등이 거론됐다. 올해 41세인 저자는 어릴 때 백인 소년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총을 겨눴고 흑인인 대학 동기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흑인은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신의 딸이 미국에서 주검사를 지냈다는 재미교포 독자는 미국의 검사는 엄정하게 기소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판사들은 잘못 선고하면 낙선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판결에 순응한단다. 최근 흑인들이 숨진 사건은 경찰이 과잉 대응했을 수 있지만 정당한 매뉴얼에 따른 것이었다고 했다. 흑인들이 진짜 권총 같은 장난감 권총을 경찰에게 겨누었고, 물건을 훔치다 서라는 경찰의 명령에 불응해 도망가다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기자는 미국에서 산 적은 없지만 공권력이 철저히 존중된다는 것은 안다. 시위를 하다 경찰 통제선을 넘으면 연방 하원의원도 수갑을 채워 연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이 경찰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이어지고 이에 대한 항의가 들끓는 이유를 살피려면 법절차의 공정성만 따지기보다는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주장이 과격한 측면은 있지만 그가 직접 겪은 일은 흑백 갈등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단순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처리된 사안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 독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비하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독자를 오도하는 기사를 쓰려면 아예 작가로 나서라’ ‘술 마시러 다니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하라’는 말은 접어두고 싶다. ‘미국의 판사는 한국의 정신 빠진, 달달 외우기 고시해서 판사가 된 사람들과 다르다’ ‘미국의 검사는 한국의 부정한 검사들이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기자들은 거기에 아부하는 기생이 될까. 대비하라’는 표현을 보며 씁쓸했다. 법조인, 언론인의 비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한국의 제도와 법조인, 언론인 전체를 매도하며 내리깔아 보는 시선에서 일말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미국 백인 중심의 시각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는 점에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노르웨이의 피오르에서 북극까지 심해에서 사는 원시 생물, 세계에서 가장 큰 육식 상어(크기는 돌묵상어와 고래상어가 더 크지만 이들은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수억 년의 진화를 거치고 피에 맹독이 흐르며 보호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녀석…. 그린란드상어다. 최대 200년까지 살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두 사내가 의기투합했다. 노르웨이의 역사학자, 모험가, 저널리스트인 저자와 아티스트인 후고 오스요르. 이 책은 이들이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1년간 북대서양, 정확히는 노르웨이 북쪽의 로포텐 제도에 머물렀던 시간을 담았다. 실제 상어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고무보트가 뒤집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무모한 도전기이자 탐험기이면서 바다에서 태고와 같은 적막한 시간을 보내며 자연과 자신, 삶과 문학을 떠올리는 사색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왜 그토록 그린란드상어잡이에 사로잡혔을까. 상어잡이를 먼저 제안한 이는 후고였다. 고래를 잡았던 후고의 아버지는 선원들이 죽은 고래를 손질하는 동안 그린란드상어가 심해에서 올라와 고래의 비곗덩어리를 삼키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한 번은 상어를 작살로 잡아 배로 끌어올렸는데 상어가 갑판 위의 고래 고기 큰 덩이를 하나 꿀꺽 삼켰단다. 죽기까지 몇 시간 동안 선원들을 지켜봐 모두를 오싹하게 만들었다는 이 이야기는 후고의 판타지를 키웠다. 바닷가에서 자란 저자는 낚시를 즐겼다. 수많은 생물로 가득한 신비의 세계에 대한 저자의 환상은 점점 더 강렬해졌기에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것. 이들이 그린란드상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미지의 그 무엇을 두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린란드상어는 바다 밑바닥에서 자는 물범을 잡아먹는대, 그린란드상어의 위에서 통째로 삼킨 물범 한 마리와 커다란 대구 8마리, 여러 조각의 고래 비곗덩어리가 나왔대, 상어의 살에는 독이 있어 이누이트족이 개 먹이가 없을 때 먹였는데 개들이 환각에 빠지거나 온종일 몸이 마비됐대….’ 하지만 그린란드상어는 초짜 상어 낚시꾼들에게 잡힐 만큼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었다. 미끼를 물었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실망하는 시간과 함께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저자는 정색하고 후고에게 묻는다. 왜 그린란드상어를 잡고 싶으냐고. 후고는 답한다. “그린란드상어가 심해에서 올라왔을 때 긴장감을 느끼면 돼.” 저자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호기심을 채우고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이에게 왜 그토록 그것을 가지려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오렌지색으로 물든 여름밤 하늘, 때로 빛이 커튼처럼 하늘거리는 오로라 등 이국적인 풍광 속에 펼쳐지는 두 남자의 도전은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바다와 생명을 노래한 시와 소설, 전설을 따라가는 재미도 적잖다. ‘그때부터 나는 시의 바다에서 헤엄쳤네/젖빛 나는 별들이 잠기고, 푸른 창공을 삼킨 바다….’ 아르튀르 랭보의 시 ‘취한 배’다. 랭보는 이 시를 16세 때 썼는데 그때까지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난해 ‘노르웨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고,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인 ‘브라게상’을 비롯해 ‘비평가상’을 받았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명함이 없는 삶은 많은 이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조직에 속하지 않은 자연인으로도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진정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90세 작가의 유쾌한 인생 탐구’(다고 아키라 지음·김선숙 옮김·재승출판)의 저자는 활발히 글을 쓰며 건강하게 생활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별난 사람들에게서 유머와 배려, 유연한 사고를 배운 덕분이라고. 일본의 100세 자매는 방송 출연료를 어디에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에 “노후에 대비해 저축하겠다”고 답했다.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씨는 “모든 것을 녹이는 액체를 보존할 용기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우주 공간도 생각해 두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틀에 갇히지 않은 생각과 유머 감각은 여유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이 역시 노력이 필요한 사항이지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이와 늦은 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랜 친구에게도 못 했던 말을 털어놓게 되기도 한다. ‘여행자의 하룻밤’(이안수 지음·남해의봄날)은 경기 파주시 헤이리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북스테이 ‘모티브원’을 운영하며 만난 이들과의 이야기를 담았다. 6개월간 히치하이킹으로 유라시아를 횡단한 네덜란드인 바르트 씨는 “뉴스를 보면 사람에 대해 실망하지만 세상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면 멋진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방명록에 ‘벽을 만나 갈 곳을 잃어버린 기분’이라는 글을 남긴 이를 보며 저자는 절망에 대해 생각한다. 애써 완전히 절망을 발라냈다고 여긴 순간 또 다른 절망이 자라더라고. 어느 정도의 절망을 품고 가자고 생각하니 오히려 면역 기능을 했단다. 나도 몰랐던 에너지와 영감을 끌어내고 싶다면 익숙한 공간에서 훌쩍 벗어나 보자.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는 매일 아침 흑인 노예들이 지은 집(백악관)에서 눈을 뜹니다.” 올해 7월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 여사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건설에 흑인들의 노동력이 단단히 한몫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15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흑인으로 미국에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적나라하게, 그러나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흑인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값싼 ‘천연자원’이었다. 법적으로는 동등한 인간이지만 흑인의 목숨은 길거리에서 쉽게 증발한다. 무허가로 개비 담배를 팔다 경찰에게 급소를 눌려 숨진 에릭 가너, 장난감 총을 지닌 채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12세의 타미르 라이스….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차다. 이 책은 인권을 부르짖는 나라, 흑인이 대통령까지 된 나라가 인종 갈등으로 왜 갈수록 극심한 진통을 겪는지에 대한 의문을 차갑게 풀어준다. 저자는 11세 때 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권총으로 자신을 겨냥하는 백인 소년을 보며 너무나 쉽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얼어붙는다. 한 백인 여성은 극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빨리 타지 못하는 저자의 어린 아들을 밀치며 ‘아 쫌!’이라고 내뱉는다. 화가 난 저자가 격한 말을 하자 한 백인 남성은 “당신을 체포하게 할 수도 있어”라며 여성을 거든다. 흑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두 배로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저자는 중산층 이상으로 진입하면 다르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대학 동기인 프린스 존스가 2000년 경찰의 총에 숨진 경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경찰은 키 165cm, 몸무게 113kg의 남자를 추적하던 중이었다. 프린스의 키는 192cm, 몸무게는 96kg이었다. 어머니가 박사였고, 교외의 마당 있는 집에서 살던 존스는 성실한 청년이었지만 검은색 피부는 끝내 그를 허망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2001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직접 목도한 저자가 그라운드 제로는 과거 흑인 노예를 경매하던 곳이었음을 떠올린 건 존스의 죽음과도 무관치 않다. 흑인에 대한 시선은 동성애자, 아웃사이더 등 소수 집단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갈파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혐오하는 사람에게 이방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족 내에서 우리를 확인받는다’는 것. ‘증오가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문장은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려준다.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의 아들은 2014년 무장하지 않은 18세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편의점에서 엽궐련 몇 갑을 훔치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지만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후 방으로 들어가 흐느낀다. 그는 말한다. “이것이 너의 나라다. 너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살아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냉정하다.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멈출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래도 투쟁은 필요하단다. 암담하지만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라며 눈이 아플 정도로 강한 조명을 내리꽂는 듯하다. 지난해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챙겨 간 책이다. 원제는 ‘Between the World and Me’.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책마을을 만들 겁니다. 고서(古書)와 헌책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곳이 될 거예요.” 지난달 29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문을 연 삼례책마을을 진두지휘하는 박대헌 이사장(63)은 자신감이 넘쳤다. 5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들뜬 감정도 느껴졌다. 책마을은 고서점을 비롯해 절판 도서 10여만 권을 갖춘 헌책방, 북 카페, 책박물관, 북 갤러리 등이 들어선 3개 건물로 구성됐다. 일제강점기 무렵 지은 양곡창고를 개조했다. 양식창고가 ‘지식창고’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에게 책마을 건설을 제안한 완주군(군수 박성일)은 건물과 부지를 제공하고 사업비도 지원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고서점 ‘호산방’을 운영하던 그는 1999년 강원 영월군의 폐교를 활용해 영월책박물관을 만들었다. 고서를 대거 도난당하고 운영난에 시달리는 등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다 2011년 결국 문을 닫았다. 책박물관은 2013년 삼례로 이전했고 드디어 삼례책마을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박 이사장은 “고서 판매와 도서전, 세미나, 공연을 개최하고 주말에는 마을 광장에서 헌책 벼룩시장을 열어 책과 사람, 자연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고서는 어떤 의미일까. “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아름다워요. 병이라고 해도 좋을 이런 감정을 스무살 무렵 느꼈지요.”(웃음) 그는 고서가 결코 고리타분한 책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서양 술이 뭔지 아세요?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이 조선 관군에게 붙잡힌 후 내놓은 네덜란드산 레드와인이에요. 구체적인 역사와 지식이 담겨 있는 게 고서입니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 거장들이 표지화를 그린 책들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마구 뛴단다. 책마을은 연중무휴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박 이사장은 운영시간을 차츰 늘리고 싶다고 했다. 보유한 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그는 “책의 가치를 아는 눈 밝은 분들은 멀리서도 꼭 찾아오실 거라 믿는다”고 했다. 개관을 기념해 영국 빅토리아시대 그림책 거장인 ‘케이트 그린어웨이’전을 내년 4월 23일까지 열고 있다. 그는 지역에 어린이, 문학 등 작은 전문서점이 들어서고 장기적으로 국제고서도서전도 개최하는 꿈을 꾸고 있다. “여러 나라의 고서를 가진 판매자와 이를 사려는 수집가들이 세계에서 모여드는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필수적입니다. 절판된 책을 구하고 싶은 분, 책에 흠뻑 취하고 싶은 분들은 삼례로 오세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1.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33번에 걸쳐 구강암 수술을 받았다. 말년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는 거부했다. “맑은 정신으로 생각할 수 없다면 차라리 고통을 받으며 생각하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구강이 괴사되며 뿜어내는 지독한 악취에 애완견조차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죽음을 직시했다. “생명체답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죽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글처럼. #2. 수전 손태그(1933∼2004)는 백혈병에 걸리자 71세에 골수이식 수술을 받는다. 완치 가능성이 낮은 걸 알았지만 수술을 원했다. 수술 전 유언장을 작성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친구들이 제안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40대 초반에 유방암 4기 진단을, 60대 중반에는 자궁암 진단을 각각 받았지만 모두 공격적인 치료법을 찾아내 살아난 그였기에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맹렬히 싸웠다. 》프로이트·손태그·모리스 센닥 등위대한 작가-사상가 5인의죽음 과정 통해 삶의 의미 찾아 세계적인 작가들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색깔이 뚜렷하다. 뉴욕대 언론학과 교수인 저자는 존 업다이크, 딜런 토머스, 모리스 센닥까지 모두 다섯 작가의 편지와 일기, 엽서, 수첩은 물론이고 친구, 자녀, 간병인과 인터뷰해 죽음의 과정을 촘촘히 복기해냈다. 잔병치레가 잦았던 저자는 열두 살 때 한쪽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후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됐다고 한다. 고령(82세)이지만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을 강렬하게 끌어당긴 다섯 작가의 죽음을 추적했다. 황혼 무렵을 의미하는 제목은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따왔다. 어둠으로 세상이 서서히 덮여가는 시간이 죽음을 향한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그러기에 포장되지 않은 작가들의 민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이 살아간 방식과 왜 그런 작품을 쓰게 됐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유명한 모리스 센닥(1928∼2012)은 자주 죽음을 접했기에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자세가 돼 있었다. 가난한 이민자였던 부모는 셋째였던 자신을 임신하자 몇 번이나 유산시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을 줄곧 했다. 여섯 살 때는 같이 공놀이 하던 친구가 달려가다 차에 치여 숨지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 대신 공포를 모티브로 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소설 ‘달려라 토끼’로 유명한 존 업다이크(1932∼2009)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글을 쓰고 섹스에 몰두했다. 죽음이 몸을 감춘 채 늘 도사리고 있다고 여긴 딜런 토머스(1914∼1953)는 술을 돌파구로 삼아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택했다. ‘순수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라는 시에서 ‘분노하오 분노하오, 꺼져 가는 빛에 대해’라고 읊조렸던 그였다. 손태그는 “유방암과의 싸움은 열정을 더해 주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 철저히 따르려고 노력하게 되니까”라고 말했다. 실제 손태그는 더 치열하게 사색했고 화학 치료를 받으며 대표작 ‘은유로서의 질병’을 구상했다. 저자는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들의 삶을 압축적이고 선명하게 조명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어떤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가, 외면하려 애쓰는가. 그 시선에 따라 삶의 방향이 좌우될 것이다. 다섯 명의 작가가 그랬듯이. 원제는 ‘The Violet Hour’.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페미니스트의 발칙한 도전여자다운 게 어딨어(에머 오툴 지음·창비)=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여자답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며 삭발하기, 겨드랑이 털 기르기, 친척 모임에서 집안일 안 하기 등에 도전한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사소해 보이는 편견을 이겨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을 해부했다. 1만6000원.교토를 통해 본 한일관계서울과 교토의 1만 년(정재정 지음·을유문화사)=천 년 이상 수도였던 교토를 통해 일본의 역사와 한일관계를 분석했다. 백제, 신라, 고구려 이주민이 많이 살았고 윤동주, 정지용의 애환이 서린 곳이자 일제강점기에 노동자로 강제 동원됐던 재일동포 집단거주지가 있는 교토 곳곳을 발로 누볐다. 1만8000원. 진정한 나를 찾는 수행법참선이란 무엇인가?(진제 스님 지음·매일경제신문사)=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인 저자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간화선 수행법과 득도의 경지에 이른 대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문 법어를 한글로 정리하고 영문 번역도 곁들였다. 1만6000원.같은 듯 너무 다른 한국과 일본토끼가 새라고??(고선윤 지음·안목)=일본인은 토끼를 셀 때 왜 네발 달린 짐승이 아니라 새를 세는 단위로 셀까. 일본에서 중고교를 나오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영주 귀국한 저자가 그만의 특별한 시선으로 한국인과 정신적 입출력 과정이 전혀 다른 일본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2만5000원.}
“나이가 드니 안 좋은 게 딱 하나 있어요. 도움을 받을 일이 많아졌다는 거죠.” 원로 연극배우가 말했다.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였지만 80세를 넘기자 걸을 때 자주 부축을 받아야 한단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당당하게 무대를 채우는 그를 보며 ‘역시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나이가 어딨어?’(힐러리 브래트 외 지음·신소희 옮김·책세상)는 60세를 넘겨 배낭을 메고 떠난 이들의 여행기를 모았다. 환갑을 기념해 프랑스, 일본, 영국을 자전거로 달리는가 하면 50년 전 교사로 근무했던 시에라리온의 학교를 찾아가는 이도 있다. 야생 회색곰을 관찰하려 북극권 한계선으로 가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또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걸 알기에 이들은 매 순간을 음미한다. 느리고 서툴더라도 자기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그렇게 가면 된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높이 날아오르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 헛된 걸 알지만 상상할수록 즐거운 일이다. 꿈꾸고 도전하는 것은 우리가 삶을 지속해나가는데 필수적이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 리빙스턴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읽었던 14세 소녀시절부터 지금까지 난 조나단 리빙스턴의 비상을 동경하고 여전히 그것을 소망한다. 그럼에도 ‘날아올라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디로, 언제, 어떻게 비상해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이 힘찬 날갯짓을 주저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데미안’에서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한계를 벗고 나와야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은 수많은 도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매우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나단은 한계라는 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쳤다. ‘가여운 플레처.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 눈이 보여주는 것은 다 한계가 있을 뿐이란다. 너의 이해력으로 보고 이미 아는 것을 찾아 내거라. 그러면 너는 나는 법을 알게 될 게다’라며. 그는 무리에서 추방되었다. 현실에 안주하길 원했던 무리에서 쫓겨난 덕분에 비로소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난 것이 한계를 뛰어넘는 시작이 된 것이다. 낯익은 세상에서 안주하는 이들의 눈빛은 더 이상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리빙스턴을 추방한 무리는 단지 물가의 물고기를 주워 먹거나 그것에 의지하는 뻔한 삶만을 이야기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나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따금 낯선 곳을 찾아간다. 또 발레리나로서 20여 년의 삶이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발적으로 ‘추방된 자’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도전을 향해 날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껍질을 깨야 하는지 알지 못할 뿐더러 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도 가늠하기 어렵다. 어디쯤을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꿈을 꿀수록, 날갯짓을 할수록 더 멀리 나갈 것이라는 생각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분명한 건 한번 시작한 날갯짓과 무한한 꿈 덕분에 드넓은 창공을 항상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힘찬 날갯짓을 한다. 이 날갯짓을 혼자서 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 마리의 새가 하늘을 함께 나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과 같이 하기를 늘 소망해 왔다. 함께 하다보면 무모해 보이는 도전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기에. 김주원 발레리나·성신여대 교수}

“책 속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어요. 책을 읽으면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알 수 있고요. 엄마, 아빠에게 같이 책 읽자고 할 거죠? 약속하고 도장 찍어요!” 31일 오전 경기 화성시 비봉면사무소 앞마당에 세워진 ‘책 읽는 버스’에서 김수연 목사(70)가 여섯 살 어린이들에게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함께 내밀었다. 책 버스는 깔끔한 푸른 매트가 깔려 있고 책 1000여 권과 DVD, 접이식 TV 모니터와 긴 의자 등을 갖춘 이동식 도서관이다. 아이들은 함성처럼 “네에∼”라고 대답하며 김 목사에게 우르르 달려들어 연신 손도장을 찍어댔다. 김 목사는 사단법인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을 꾸려 32년째 도서관을 세우고 책을 기증하는 ‘책 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4대의 ‘책 읽는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다가 중단했는데 이번에 새로 버스를 마련해 시동을 걸었다. 두 달 꼬박 걸려 비봉면사무소 1층에 설립한 ‘고맙습니다 비봉작은도서관’도 이날 문을 열었다. ○ “하늘 간 아들과의 약속 지키는 중” 동아방송과 KBS 기자였던 그가 ‘책 읽기 전도사’가 된 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1984년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이 화재로 세상을 떠난 것. 아들은 “책 사 주세요”라는 말을 자주 했지만 늘 “좀 더 크면”이라며 다음으로 미뤘다. 하지만 ‘다음’은 없었다. “바쁘다며 아들에게 책 한 번 사주지 못했고, 서점과 도서관도 함께 간 적이 없었어요. 아들에게 해 주지 못한 일을 평생 하리라 다짐했어요. 뒤늦게나마 약속을 지키는 중입니다.” 이후 그는 목사가 됐고 사재를 털어 책 읽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학교마을도서관 254개를 개설했고 2008년부터 KB국민은행 후원으로 작은도서관 56곳도 만들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도 6년째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도서관의 책장 책상 의자 등 집기는 원목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직접 업체와 접촉해 저렴한 가격에 들여오는 방식을 도입한 것. 전기, 도배 등 다른 설비도 마찬가지다. 제한된 예산에서 책 구입 비용을 늘리고 좋은 독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은 욕심에 발로 뛰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날 비봉작은도서관의 원목 책상을 연신 문지르며 “천연 오일로 두 번 칠하고 사포질도 세 번 해서 이렇게 매끈한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가 운영할 책 버스는 지역 축제나 주요 관광지 등에서 책(명심보감 논어 탈무드 도덕경)을 나눠주고 책 읽기를 권장할 예정인데 벌써 지자체, 시골 학교 등 30곳 정도에서 요청이 들어온 상태다.○ “책은 인생의 이정표”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지만 32년간 외길을 걷기는 녹록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주변에서 “올해만 쉬자”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한 번 쉬면 다시 못 할 것 같았어요. 맥을 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는 책이 인생의 이정표라고 말했다. “책이 그냥 유용한 지식을 주는 도구라면 이렇게 열심히 하진 않았을 겁니다. 책은 인생의 길을 미리 알려줍니다. 모르는 길을 가면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아는 길을 가면 여유가 생기잖아요. 책이 미리 알려주니 삶이 여유 있고 행복하게 되는 겁니다.” 그는 강원 고성군, 제주도는 물론이고 마라도까지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1년에 차로 30만 km를 뛰는 건 예사다. ‘책 할아버지’라는 별명도 생겼다. “하나님이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을 살려둔 이유는 소중한 일을 하라는 뜻이 있을 겁니다. 책을 읽어주다 길 위에서 죽는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겁니다.”:: 김수연 목사가 책과 함께 걸어온 길 :: △ 학교마을도서관 254개 개설△ 작은도서관 56곳 건립△ 책 100여만 권 기부△ ‘책 읽는 버스’로 전국 400여 곳 300여만 km 누빔△ ‘논어’ ‘탈무드’ ‘도덕경’ ‘명심보감’ 20여만 권 제작·배포화성=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다 검사가 자살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아래에 있으면 마구 짓밟는 행태를 고위층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고 있어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79)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 고위층을 질타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평생토록 사회계급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는 최근 출간한 ‘특혜와 책임’(가디언)에서 누리기만 할 뿐 책임지지 않는 한국 고위층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책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가 역사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고 한국 고위층의 형성 과정과 문제점을 분석했다. 그는 고위 관료들의 병역 면제 비율이 일반 국민의 7∼10배인 현실을 지적하며 “고관들이 ‘높은 자리는 우리가, 죽을 자리는 국민이’라는 식으로 행동해서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송 교수는 영국과 미국, 일본이 200년 이상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요인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말했다. 책에서는 ‘충성스럽고도 희생적이며 공고히 단합된 엘리트 집단이 있는 나라는 오래오래 존속한다’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 언급된다. 육필(肉筆)을 고집하는 그는 한국의 현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 횃불을 드는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만년필로 적어 나갔다고 했다. 집필에는 1년이 걸렸지만 20년 이상 모은 자료가 바탕이 됐다. 이 책이 생애 마지막 저서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80세가 다 된 노인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웃음) 한 주제만 깊이 파고든 책을 쓰고 싶지만 만만찮은 작업이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송 교수는 한국 정치권의 천박함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지역 기관장들의 대화가 공개된 ‘초원복집 사건’을 들었다. ‘똘똘 뭉쳐야 한다’ ‘지역감정이 좀 일어나야 돼’라는 저질 언어가 난무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보다는 자기 쪽에 유리한 것이면 뭐든 해도 괜찮다는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과 고위 관료, 법조인 등이 지금 누리는 것을 노력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명문대 입시, 고시 등은 대부분 0.5∼1점 차로 당락이 갈립니다. 합격자는 운이 따랐음을 깨닫고 떨어진 사람들의 몫까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송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단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다 보니 도덕성과 희생정신을 내면화할 시간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고위층 역시 맨주먹으로 상층에 오르느라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역사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빛난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신라 시대, 정확하게는 법흥왕 초기(514년)부터 문무왕 말기(681년)까지 167년간이다. “신라 지도층은 풍부한 지식과 판단력, 정확한 정세 분석, 강한 희생정신과 도덕성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 장군이 이끄는 부대에 맞서 목숨을 던진 관창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가정에서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시작돼야 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이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장 무서운 사회는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가장 치열한 매도의 대상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좌절과 폭압이 횡행해요. 많이 가진 이가 선각자가 돼야 합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세상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보이는 대로 보는 방법과 고뇌 끝에 열린 마음의 눈으로 보는 방법 말이다. 전용수 전 인하대 부총장은 최근 출간한 ‘세상으로 열린 두 개의 창’(기파랑)에 육안뿐 아니라 마음으로 본 세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인생은 하루하루가 모인 삶의 궤적임을 깨달았다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습관을 갖고, 자신의 모습을 자주 거울에 비춰 보며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자고 제안한다. 서양에서 마을 근처에 공동묘지를 둔 것처럼 죽음과 친해지고,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기억하고 산다면 그런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