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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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4-12~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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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떻게 옮길까?[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까요? 작품을 상자에 넣어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 이상의 훨씬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그 작품이 바다 건너 먼 해외에서 온 것이라면 말이죠.얼마 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이 그랬습니다.이 전시는 프랑스 조르주 루오 재단, 말랭그 갤러리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소장품이 한 자리에 모였답니다.전시가 끝나고 작품들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야했는데요. 이 모든 과정은 미술관에 소속된 ‘쿠리에’(작품 호송인)가 점검합니다.이 역할을 위해 한국을 찾은 퐁피두센터의 보존복원가 A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이가 개인 사정으로 익명을 요청해 A씨로 표기합니다.)모든 것은 ‘쿠리에’의 눈 앞에서지난달 29일 전시가 끝나고 작품 철거 날, 퐁피두센터의 쿠리에(작품호송인)를 기다리던 미술관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프랑스 파리에서 전남 광양까지 온 쿠리에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죠. A씨는 “한국에 올 좋은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했습니다.미술관에 도착한 A씨는 가장 먼저 작품들의 변화를 체크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루오 작품은 종이 위 유화로 그린 것이 많아 재료 특성상 세밀한 점검이 필요했습니다.여기에 각 작품마다 포장법도 세세하게 다릅니다.작품을 이동 상자인 ‘크레이트’에 어떻게 넣고 보호재는 무엇을 넣을지, 세워서 운반할지 눕혀서 운반할지, 손으로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등 여러 방법이 자세히 정해져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쿠리에가 확인합니다.그 다음에는 작품을 차에 실어 세관을 거쳐 비행기로 이동하겠죠? 작품이 파리에 도착해도 바로 열 수 없습니다.“갑자기 박스를 열면 기온, 습도의 급변으로 작품이 손상될 수 있어요. 비행기 진동, 온도, 습도에 따라 사용하는 크레이트의 재질부터 여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사전에 합의되어 있습니다.”작품을 빌려주는 퐁피두센터와 전시를 여는 전남도립미술관이 이런 상세한 부분들을 상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입니다.쿠리에는 이 합의된 과정이 잘 진행되는지 봐야하기에, A씨가 자리에 없으면 작품 포장이나 운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각 단계마다 상태를 체크하고, 변화가 있다면 어느 시점에 생긴 것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죠.작품 보존에는 ‘윤리’가 필요하다전시를 관람하는 경험이 대부분인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미술관들이 왜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A씨는 이런 과정을 ‘윤리’로 설명했습니다.관계자가 상황이나 조건에 타협해 작품에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을 객관적 연구와 매뉴얼로 방지한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즉 시간이나 예산이 부족하다고 임의로 저렴한 크레이트나 보호재를 사용하는 사태를 막는 것이죠. 당장에 큰 손실은 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작은 균열도 큰 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A씨는 프랑스의 예술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1889~1963)의 드로잉 100여 점을 복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수년에 걸쳐 이뤄진 작업은 과학적 검사, 미술사 연구, 가치 결정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쳤습니다. 특히 콕토가 종이에 붙인 스카치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것을 두고 긴 숙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테이프의 흔적은 작가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테이프의 점착 성분으로 생긴 갈색 얼룩이 시간이 지나면 더 진해지고, 제거하기도 어려워진다는 판단 아래 없애기로 결정했죠. 손상은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지만, 미술관 작품은 후대의 사람들도 보아야 하는 것이니까요.”물질의 화학적 반응을 고려해 ‘과학자’처럼 느껴졌지만, 콕토 작품의 의미를 고려하는 부분은 ‘미술사가’로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예측·연구하며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철학적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그는 ‘보존복원가의 윤리’를 강조했습니다.“보존복원의 모든 가치 판단은 직업윤리가 바탕입니다. 특정인이나 대중의 요청에 따른 무분별한 보존복원, 즉 개인의 미적 판단에 의하거나 진정성을 무시한 복원 처리를 해서는 안 되죠. 작품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미술사적 연구 등 윤리적 검증을 하며 작업에 임해야 합니다.저는 A씨의 이야기를 통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공적 자금(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은 시민들이 봐야 할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볼 수 있도록 보존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연구하고 알리는 것이 그 역할이겠지요.A씨는 “루오가 한국에서 누구나 알만한 작가는 아니지만, 풍부한 미술사를 보여주는 전시였다”며 “향후에도 이런 시도로 한국 미술관들이 앞으로 나아갈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독자 여러분도 이번 주말은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미술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 어떠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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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서스펜스가 되어버린 엄마의 노동

    식탁 위 하얀 우유가 엎질러진 모습을 표지로 담은 이 소설은 한 엄마가 자신의 아홉 살짜리 아들 ‘유’를 폭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바로 유를 사랑하는 다정한 엄마 아스미의 일상으로 전환된다. 전업주부이자 한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 행복을 느끼는 그녀에게 대체 어떤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할 무렵, 소설은 또 다른 ‘유’를 독자 앞에 들이민다. 책에는 총 세 명의 ‘유’와 엄마가 등장한다. 세 아이의 엄마는 각각 아스미, 루미코, 가나. 아스미는 남편의 안정적 수입으로 세 엄마 가운데 가장 윤택한 삶을 누린다. 루미코는 프리랜서 작가, 가나는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간 남편과 헤어진 싱글 맘이다. 세 가정의 모습이 교차되는 가운데, 엄마들은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부딪힌다. 아스미는 차분하기만 했던 아들 유가 학급 친구들을 괴롭히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유는 아빠와 할머니에게도 거친 언행을 일삼는다. 그녀의 남편은 아들의 문제를 회피하며 “네가 교육을 잘못했다”고 비난만 한다. 루미코의 남편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남편은 자신의 일이 줄어들며 무기력해지자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게 된 루미코를 되레 비꼬기 시작한다.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해달라는 아내의 제안에 억지로 응하더니 급기야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가나의 아들 유는 가장 착한 아이로 그려지지만, 같은 반 친구의 계략으로 도둑이라는 누명을 쓴다. 이 세 명의 유 중 엄마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이는 누구일까. 긴장하며 소설을 읽게 되는 건 세 엄마가 처한 상황이 자칫하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식탁 위 컵에 담긴 흰 우유가 엎질러지듯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양육의 책임을 떠넘기는 남편 등의 요소가 결합되면 엄마는 무너지고 행복했던 집은 하루아침에 지옥이 된다.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한계 상황을 현실적으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제3회 가나자와서적 대상 수상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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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만에 픽셀 감옥으로부터 탈출”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픽셀’을 이용해 작업해 온 홍승혜 작가가 사각형 픽셀을 벗어나 한층 자유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국제갤러리 개인전 ‘복선을 넘어서II’를 통해서다. 홍 작가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들어 작업하는 프로그램을 포토샵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바꿨다”며 “20년 만에 네모(픽셀)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서울점의 1관과 3관에서 벽화 조각 사운드 조명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1관에서는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담은 평면 작업들이 설치됐다. 평면 이미지를 입체로 만든 자화상 조각 ‘홍당무’, 기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모던 타임스’도 볼 수 있다. 3관에선 작가가 만든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픽셀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형물들이 춤을 추는 듯한 ‘무도회장’ 콘셉트로 공간을 구성했다. 조명이 바닥을 비추고 알록달록한 꽃 조형물이 곳곳에 장식돼 있다. 이 공간은 햇빛이 들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이를 보여주기 위해 갤러리는 매주 수요일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3월 19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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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각 거목’ 한 스승 아래… 제자들 4가지 세계를 빚어냈다

    광복 이후 초창기 대학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1950∼19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으로부터 지도 받은 작가 4명의 작품을 모아 ‘분화(分化)’전을 개최한다. 김종영은 서울대 미대가 창설된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1세대 교수다. 1953년 영국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각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제자 송영수(1930∼1970),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최의순(89)의 조각 19점, 드로잉 38점을 선보인다. 스승은 어떤 철학을 갖고 제자들을 가르쳤을까.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유고집에서 김종영 선생은 예술 교육은 말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말없이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며 “작품으로 먼저 보여주고 제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 이끌어주는 정도만 해야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서울대 재학 시기는 6·25전쟁 기간과 겹친다. 교수진과 직원들은 피란 중 부산에 임시 교사를 만들어 수업하다 1953년 9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김종영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실기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박 실장에 따르면 당시 대학을 다니는 학생 수가 적었기에 제자들은 일대일 교육을 받는 수준이었다. ‘분화’전이 열리는 미술관 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송영수의 작품은 철을 재료로 작업해 선선과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두 인물이 손과 발을 맞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듯한 ‘곡예’(1966년)와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토템’(1970년) 등이 전시됐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학 입학 전 조각가 박승구(1919∼1995)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던 최만린의 작품 중에선 서예의 필치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작들이 출품됐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최종태의 작품은 서사가 있는 회화와 여인상이 주를 이룬다. 최의순은 건조 시간이 짧아 빠르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석고를 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최종태, 최의순 작가는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Record: 김종영미술관 20년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고 20주기인 2002년 12월 15일 개관했다. 이때 만든 본관 ‘불각재’는 생전 김종영이 작업실에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김종영이 강조했던 ‘깎지 않고(不刻)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신관 사미루(四美樓)는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이라는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 사랑채 건물에 걸려 있던 현판에 새겨진 글자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종영의 작품, 그리고 과거 전시 사진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3월 26일까지 열린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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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편의 소설과 시를 쓰듯 건축물 만들어”

    푸른 대지를 칼로 자른 듯,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간 미국 워싱턴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공공 기념비 중 하나다. 크고 높게 지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용히 어우러져 ‘부끄러운 상처’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2년 23세 예일대 학생일 때 디자인 공모에서 우승해 이 기념비를 만들고, 지금은 미국에서 존경받는 건축가인 마야 린(64)이 지난달 31일 한국을 찾았다. 중국계 미국인인 린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작은 개인전 ‘자연은 경계가 없다’를 열고 있다. 전시장에는 한반도에서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과 한강을 표현한 ‘핀 강―임진과 한’(2022년) 등 조각·설치 작품 5점이 걸려 있다. 이날 갤러리에서 만난 린은 “(국경과 관계없이) 흐르는 물과 산맥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예술과 건축을 병행하는 그는 “건축은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것과 같고 예술은 시를 쓰는 일 같다”며 “그리고 기념비는 상징성과 건축적 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에 이 둘을 합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대표작인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대해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살을 베이는 듯한 고통”이라며 “언젠가는 이 상처가 낫겠지만 흉터는 남는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땅을 칼로 벤 듯 잘라낸 뒤 드러난 단면에 반짝이는 화강암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국인 5만5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이 기념비에는 지금도 매년 수백만 명의 발길이 이어진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그는 2025년 완공될 시카고 오바마 대통령 센터의 공공 조각 제작도 맡고 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 예술인에게 시상하는 ‘크리스털 어워드’를 수상했다. 3월 1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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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뿌리에서 나와…4색의 꽃을 피운 한국의 조각가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대학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했을까?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1950~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의 교육을 받은 작가 4명의 작품을 모은 ‘분화(分化)’전을 개최한다. 김종영은 1948년 서울대 미대가 창설될 때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1세대 교수다. 1953년 영국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작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해 주목을 받았다. 전시장에서는 그의 제자 송영수(1930~1970),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최의순(89)의 조각 19점, 드로잉 38점이 전시됐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김종영은 유고집에서 예술 교육이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말없이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며 “작품으로 먼저 보여주고 제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 이끌어주는 정도로만 해야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시장 속 작가들이 학교를 다닐 무렵은 6·25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다. 교사와 직원들도 피난을 가 부산에서 임시 교사를 만들었다가, 1953년 9월 다시 서울로 왔다. 김종영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실기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작품을 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거의 없었기에 1:1 교육을 받는 수준이었다고 그는 전했다.‘분화’전이 열리는 미술관 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송영수의 작품은 철을 재료로 해 선적인 요소와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두 인물이 손과 발을 맞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듯한 ‘곡예’(1966)와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토템’(1970)등이 전시됐다. 지하 1층 전시장에는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학 입학 전에도 박승구(1919~1995)에게 조각을 배운 최만린은 서예의 필치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 작품들이 출품됐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최종태는 서사가 있는 회화와 여인상 작품이 주를 이룬다. 최의순은 건조 시간이 짧아 빠르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석고를 재료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최종태와 최의순 작가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Record: 김종영미술관 20년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고 20주기인 2002년 12월 15일 개관했다. 이 때 만들어진 본관 ‘불각재’는 생전 김종영이 작업실에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땄다. 김종영이 강조했던 ‘깎지 않고(不刻)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신관 사미루(四美樓)는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 등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 사랑채 건물에 걸려있던 현판의 내용이다. 이처럼 공간에 담겨진 뜻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종영의 작품, 그리고 과거 전시 사진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3월 2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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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백색 바탕에 십자가-꽃… “미래에 대한 기대 담아”

    서양화가 윤형재(70)의 개인전 ‘백색 미래’가 서울 강남구 부띠크모나코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십자가’, ‘미래의 기호’, ‘마음의 꽃’, ‘빛의 드로잉’ 등 신작 20여 점으로 구성됐다. 홍익대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한 윤 작가는 작업할 때 흰색을 수차례 덧칠한다. 그렇게 표현한 순백색 바탕에 간결한 형태의 십자가, 꽃 등을 담았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예술가의 십자가’에 대해 윤 작가는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절대자의 인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며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뜻에서 순수한 정신적인 의미를 십자가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마음의 꽃’은 깨진 화분을 표현했다. 그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해져도 누군가는 꿈을 키우며 살아가기에 갈등을 깨진 화분으로, 꿈은 꽃으로 표현했다. 각자 의견이 달라도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담았다”고 말했다. ‘미래의 기호’는 미래의 언어를 음악적 기호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 제목 ‘백색 미래’에 대해 그는 “미래는 백지이고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했다. 그는 2001년 점자를 결합해 시각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외환위기 이후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미술 작품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떠올리고 작업한 것. 당시 아버지로부터 처음으로 “아들을 화가 시키길 잘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가족이 나의 예술에 공감해 준 것에 감동했다. 그때부터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는 부띠크모나코 뮤지엄은 올해 재개관했다. 부띠크모나코 뮤지엄 이사장인 이병주 플래닝코리아 대표는 “기술적 측면이 주로 부각됐던 건축 분야를 미술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2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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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텔란에게 물었다 “바나나 먹혔을 때 기뻤죠?”[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지난주 뉴스레터에서 막 개막한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소식을 전해드렸었는데요.사실 1월부터 리움미술관 연간 전시 계획에 카텔란이 있는 것을 보고 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답니다.“카텔란 인터뷰는 안하나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데이비드 다투나가 바나나 먹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고 싶어요… 카텔란이 그거 답 하나만 해줘도 재밌는 얘기가 될 거 같아요…”그런데 카텔란은 평소에도 언론 인터뷰를 잘 하지 않고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뒤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연락을 미술관에서 받았고, 전시 개막 다음날 바로 질문을 보냈습니다.카텔란이 거의 일주일만에 답을 보내와 오늘은 뉴스레터로 서면 인터뷰 내용 전문을 공개합니다.🔥답변을 받은 제 느낌은.“이 사람 정말 새침하고 냉소적이네…!” (혹은 그런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하네)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레터를 구어체로 작성했는데 오늘은 서면의 느낌을 살려 문어체로 정리해보겠습니다.카텔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 전시를 열었을지, 한 번 감상해보세요!솔직히 말해봐요, 바나나 먹혔을 때 기뻤죠?제 첫 질문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관객이 바나나를 먹었을 때 기뻤죠?’였습니다.‘기분이 어땠나요?’가 아니라 ‘기뻤죠?’라고 물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 때의 해프닝이 작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카텔란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당신의 작품 ‘코미디언’의 바나나를 데이비드 다투나가 먹었을 때 기뻤나?“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흥미롭지가 않았고, 어쩌다 그런 모양이 나왔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모형 바나나를, 그 다음엔 금속 모형을 몇 달 동안 갖고 구상해보았는데, 전시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매력적인 버전이 없었다. 그 때 테스트한 작품을 집에 아직도 갖고 있다.그러다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 ‘그냥 바나나를 그대로 설치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다 재활용이고, 일종의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역시나.. ‘그 작품 그렇게 대단한 것 아냐’라는 아주 새침한 답변으로 제겐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사에 새로운 거 없잖아? 어차피 다 재활용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니? 라며 반문하는 모습입니다.다음 질문. 또 다른 ‘카텔란 스캔들’의 서막. 2016년 작품이자 18K 황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에 관한 해프닝도 물었습니다.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백악관이 구겐하임미술관에 반 고흐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이 미술관 큐레이터는 반 고흐 대신 ‘아메리카’를 트럼프에게 제안합니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내비친 아주 도발적인 제안이었고 이것 역시 굉장한 화제가 되었습니다.저는 물었습니다.― 당신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2016)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나?“그 결정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백악관이 반 고흐 작품을 요구했을 때,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가 ‘아메리카’를 대신 빌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낸시는 아주 날카로운 정신을 가진 훌륭한 큐레이터다. 또 그녀는 큐레이터로서 구겐하임 소장품 무엇이든 나와 상의 없이 외부에 대여해 줄 권리가 있다.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다.”저는 ‘아메리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잘 어울릴 것 같냐고 물었는데, 카텔란은 즉답은 피했습니다. 당시 결정에 자신은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면서요… 그럼에도 백악관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겠다는 답으로 대신했네요.왜 그렇게 선 넘는 걸 좋아해요?그 다음 질문은 리움미술관 전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미학적으로 열심히 감상하기보다 그냥 슬쩍 보고 ‘이렇게 선을 넘네’라는 단상의 연속이죠.― 당신은 사람들을 도발하는 것을 좋아하나? 미술계 사람들도? 그렇다면 왜 그런가?“나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하고, 여기엔 권위에 대한 반골 기질을 지닌 내 성향이 작용한다고 본다. 나는 모든 형태의 정해진 권력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그것에 언제나 저항하려고 한다.도발은 전쟁도 시작할 수 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그랬고,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가 그랬다. 나는 예술이 이렇게 역사를 바꿀만한 파워를 가지길 바란다.과거에 예술은 그런 힘이 있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성에 대해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 작품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예술은 언제나 권위와 맞서는 과정에 있으며, 아픈 곳을 긁어주는 손톱이다.“이 답변에서 흥미로웠던 대목은 도발과 전쟁에 관한 비유였습니다. 선을 넘는 도발이 폭력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태까지 감수하더라도 예술이 이런 힘을 갖기를 바란다고 그는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돼?’라고 느꼈던 대목과 연결되는 관점이지요. 호불호는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당신은 작품의 창조자일뿐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왜 스스로를 작품의 플레이어로 결정했나?“어떤 일을 처음 할 때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 않나. 나도 처음엔 내 얼굴을 넣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시작을 했다. 자화성은 굉장히 직설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내면의 몰랐던 부분을 드러내는 무의식적인 고백이 되기도 한다.그래서 자화상은 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것이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의 역사에 모든 작가들도 자화상을 그리며 이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화상은 미술사의 전통적인 주제(topos)다.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도 찰스 디킨스의 반자전적 작품으로 볼 수 있지 않나.“시니컬한 갑옷 속 숨은 고백…‘나는 죽음이 두렵다’― 당신의 전시는 미술관을 잘 만들어진 소극(farce)이 펼쳐지는 극장, 혹은 어둡고 우울한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리움 미술관의 공간을 어떻게 접근했나?“그 작품들은 어디에 전시되든 공간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장 누벨이 만든 미술관 공간은 무척 아름답다. 분명 도전적인 장소였지만, 공간 일부가 내게는 지하철역을 연상케 했다. 또 전시관은 상점의 쇼윈도처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공간에 맞춰 작품을 약간 수정했고, 건축가가 만든 공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전시 제목은 ‘WE’이다. 이 제목은 냉소적 의미인가 아니면 긍정적 의미인가?“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THEY)’로 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러면 완전한 냉소적 의미가 표현됐을 것이다. 인생은 마지막 페이지의 결론은 정해져 있되 그 앞장은 알아서 써내려가야 하는 한 권의 책 아닌가?“저는 이 답변이 재밌었습니다. 전시장에 가면 정말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한데, 전시 제목이 ‘WE’여서 조금 헷갈렸거든요. 이 어두운 냉소가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걸까(냉소적 의미), 아니면 이런 어두움도 스스로의 일부로 인정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말하는 걸까(긍정적 의미) 궁금했습니다.카텔란은 전시 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하고도 싶었다며, 냉소의 끝판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답을 해주었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풀어서 말하면 이거죠.“우리 어차피 다 죽을 건데, 그 전에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야 되잖아?”이제 마지막 질문과 답변입니다.― 리움 미술관은 당신의 작품 ‘모두’(2007)와 ‘우리’(2010)가 한국인들에게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작품들을 전시하기로 한 것은 서울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기 전이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나는 나의 작품 ‘모두’가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을 존중하는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내 작품 ‘우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관이라고 생각해 놀랐다. 관에 두 명을 함께 넣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그러면서 나의 작품 상당수가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놀랐다. 아마 일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작품에서 죽음의 악령을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죽음과 냉소의 기운을 리움미술관에 퍼뜨린 카텔란. 그 자신도 어쩌면 죽음이 두려워 계속 작품 속에서 죽음의 악령을 물리치고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네요.전시장 속에서 카텔란의 새침하고 무심한 냉소를 마주한 다음, 그 차가운 껍질 안에 숨겨진 겁먹은 인간을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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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장애인의 삶, 불쌍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죠”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저자는 농인 부모 이상국 씨와 길경희 씨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비청각장애인)’다. 저자가 일본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같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농인 부모님의 세상은 견고해요. 그러나 그 사회가 항상 밝고 아름답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농인이 농인을 대상으로 범죄와 사기 행위를 벌이기도 하고, 계모임을 하다 도망치는 일도 벌어지죠. 누군가를 대상화해 무조건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 건 또 하나의 선입견 아닐까요?”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년)로 풀어내 주목을 받았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장애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이 섣부른 착각일 때가 많다고 말한다. 장애를 지닌 이를 불쌍하게 보거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양극단으로 대상화된 이미지 속에서 장애인들의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은 쪼그라들고 만다. 저자는 장애인의 삶의 풍부한 면면을 자신의 언어로 써내려 나간다. 특히 삶의 여러 순간에서 마주한 경험과 단상을 논픽션 책이나 다큐멘터리 속 이야기와 엮어 풀어냈다. 어릴 적 반지하방에서 호떡 장사를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 너머를 상상하곤 했던 경험이 그 출발점이다. 일본의 농인 사진가 사이토 하루미치의 책 ‘서로 다른 기념일’에서 청인 아이를 낳고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최대한 아이와 맞대고 잤다는 대목을 읽으며, 저자는 농인 부모는 소리를 못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농인을 위한 미국의 종합대학인 겔러뎃대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데프 U’가 농인의 연애, 인간관계, 가십 등 일상을 가감 없이 그려낸 것을 보고,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농인 문화의 아름다운 부분만을 부각했음을 깨닫는다. 미래의 삶, 페미니즘과 결혼 제도, 창작에 대한 고민도 담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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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현대미술가 호른 ‘한국의 풍경 그리기’, 30년만에 되살린다

    벽면에 달린 기계 팔이 붓을 들고 빨강, 파랑, 초록, 검정 물감을 묻힌 뒤 흰 벽에 칠한다. 물감의 일부는 흘러내려 아래로 떨어지고, 하단 나무판들에 이 물감이 묻으며 또 다른 그림이 생긴다. 인체를 탐구한 독일 현대 미술가 레베카 호른(79)이 1993년 대전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 ‘한국의 풍경 그리기’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호른은 1993년 대전 엑스포와 함께 열린 미술전 ‘미래저편에’에 참여하며 한국에 관한 작품을 만들게 됐다. 전시는 프랑스 퐁피두센터 초대 관장 폰투스 훌텐(1924∼2006)이 한국 큐레이터 임세택과 공동 기획했다. 호른의 ‘한국의 풍경 그리기’가 30년 만에 원형으로 복원된다. 대전시립미술관은 “9월 예정된 ‘미래 저편에: 대전 1993/2023’ 전시에서 호른의 복원된 작품을 공개할 것”이라고 9일 밝혔다. 호른은 자신의 몸에 커다란 뿔이나 긴 손가락, 연필이 달린 가면 등을 부착해 신체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1986년 카셀도쿠멘타상, 1988년 카네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가 됐다. 이후 작가의 몸에 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 신체’ 작품을 선보였다. 대전시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도 이 연작 중 하나다. 작품은 현재 붓과 팔레트, 이것을 움직이는 기계 신체만 남아있고 하단의 나무판과 이를 설치하기 위한 지지대가 유실된 상태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1993년 미술전 ‘미래저편에’가 엑스포 본행사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며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시 모습과 드로잉 자료를 최근 확보해 원형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당시 발간된 사전·사후 도록을 비교하면 호른은 처음 구상 단계에서는 작품 하단에 하이힐을 배치했지만 현장에서 나무판으로 바꿨다. 그가 남긴 드로잉에서 이를 확인했다. 김 실장은 “훌텐이 전시 기획을 위해 수개월간 한국에 머물렀다. 이때 경북 경주 안압지를 본 뒤 전시장 형태를 이와 비슷하게 만들고 주제도 과학·기술보다 한국적 측면을 강조하자고 제안했다”며 “호른 역시 하이힐이 한국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형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복원 작품을 선보이는 ‘미래 저편에: 대전 1993/2023’ 전시는 대전 엑스포 개최 30주년을 맞아 1993년 열렸던 ‘미래저편에’ 전시를 복원 재현한 것이다. 당시 선보인 다니엘 뷔렌, 장 팅겔리, 니키 드 생팔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백남준, 이우환 등의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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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객이 바나나 작품 먹었을때? 예술은 어차피 재활용”

    “도발은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예술 역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란다.” 미술관 입구에 노숙자 조각을 설치하고, 박제된 비둘기 떼로 로비를 점령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게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당신은 도발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엔 권위에 대한 반골 기질을 가진 내 성향이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 역시 도발적인 작품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전시장 허공에 축 늘어진 말의 사체를 내건 작품 ‘노베첸토’(1997년) 등으로 음침한 미술관 풍경을 만들어 냈다. 7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무료이며 2주 단위로 사전 예약할 수 있는데, 티켓은 공개 직후 모두 나갔다. 한미소 리움미술관 전시홍보담당 선임은 “하루 평균 2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널리 알린 작품 ‘코미디언’(2019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코미디언’은 그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내놓은 작품으로 생바나나를 은색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인 것이다. 당시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치우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플라스틱, 금속 바나나 모형을 갖고 이리저리 만들어 보다가 결론을 내지 못해 그냥 생바나나를 붙였다”며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재활용이고,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술의 힘이 도발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촉발한 9·11테러처럼 예술이 폭발적 힘을 갖길 바란다. 나는 예술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이 구겐하임 미술관에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대여를 요청했을 때, 미술관 측이 역으로 카텔란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를 제안한 바 있다. 실제로 성사되진 않았다. 이에 대해 카텔란은 “미술관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된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리움미술관은 붉은 카펫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의 모습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모두’(2007년)가 한국인에게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카텔란의 생각도 물었다. 그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전시 결정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기 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작품이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상징이 되길 바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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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라리오갤러리, 옛 공간사옥 옆 이전… 1년만에 재개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던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인근 원서동 옛 공간사옥 옆 부지로 옮겨 1년 만인 1일 다시 문을 열었다. 갤러리 공간 디자인은 카페 ‘블루보틀’의 건축 디자이너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나가사카 조가 맡았다.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재료, 외벽 벽돌을 유지하되 내부는 밝고 하얀 갤러리 공간으로 바꿨다. 외관의 검은색과 내부의 흰색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재개관 첫 그룹전으로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가 참여하는 ‘낭만적 아이러니’를 개최한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층별로 작가가 한 명씩 맡아 각자 개인전을 꾸린 듯 전시를 구성했다. 지하 1층 갤러리에는 안지산 작가가 눈폭풍 속 사냥을 주제로 그린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 1층에서는 김인배, 2층 수장고를 지나 3층은 이동욱, 4층은 노상호 작가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권오상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5층 공간은 통창이 둘러져 원서공원과 창덕궁이 한눈에 보인다.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 작품의 형태를 본뜬 작품들에선 만화 ‘원피스’ 문신이 새겨진 일본 야쿠자의 몸, 모델 지지 하디드의 얼굴, 밴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5층은 이번 전시에만 공개하고, 향후 VIP 라운지로 사용할 예정이다. 3월 18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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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객이 내 바나나 먹었을 때? 큰 감흥 없었어…예술은 어차피 재활용”

    “도발은 전쟁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예술이 이렇게 역사를 바꿀 힘을 갖길 바란다.” 미술관 입구에 노숙자 조각을 설치하고, 로비는 비둘기 떼로 점령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게 “당신은 도발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나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엔 권위에 대해 반골 기질을 가진 내 성향이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도발로 가득 찬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의 카텔란 개인전 ‘WE’가 화제다. 2주마다 열리는 사전 예약 티켓은 공개 직후 거의 매진된다. 리움미술관 관계자는 “현장 표를 구하려는 관객이 매일 로비부터 입구까지 줄을 서고 있다”며 “하루 평균 2000명이 방문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술관에 이렇게 음침한 풍경을 만들어 낸 카텔란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서면 인터뷰로 그를 만났다.먼저 그를 널리 알린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2019)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19년 아트바젤에서 관객이 당신의 바나나를 먹어 치웠을 때 기뻤나?’고 물었다.“그 작품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플라스틱, 금속 바나나 모형을 갖고 이리저리 만들어 보다가 결론을 내지 못해 그냥 생바나나를 붙였다.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재활용이고,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 미술사에서 새로운 작품은 없고, 언제나 과거의 것들을 모방하고 패러디하며 예술이 이어진다는 신랄한 평가를 그는 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의 힘이 도발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처럼 예술이 폭발적 힘을 갖길 바란다. 과거 예술은 그런 힘이 있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을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이 구겐하임 미술관에 반 고흐 작품 대여를 요청했을 때, 미술관은 카텔란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를 제안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카텔란이 ‘아메리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궁금했다.“미술관의 결정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가 ‘아메리카’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된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다.” 리움미술관은 전시장 2층에 놓인 9개의 대리석 조각 ‘모두’(2007)가 한국인에게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 카텔란의 생각도 물었다.“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작품의 전시 결정은 이태원 참사가 있기 전이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그 작품이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은연중에 고백했다.“‘모두’뿐 아니라 내 많은 작품이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일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작품에서 죽음의 악령을 쫓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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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자, 노라 노, 앙드레 김… 국내 1세대 패션의 매력에 풍덩

    “저도 못 봤던 의상들이 꽤 많았어요. 아버지가 즐겨 입었던 슈트를 오랜만에 다시 보니 기분이 이상해져 전시장 밖으로 나와 버렸네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1935∼2010)의 아들 김중도 앙드레김 아뜰리에 대표는 6일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 ‘의(衣)·표(表)·예(藝), 입고 꾸미기 위한 공예’ 전시 개막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그 슈트를 하루에 세 번씩 갈아입어 수십 벌이 있었지만 돌아가신 뒤 1, 2벌만 남겨 기증하고 나머지는 전부 태웠다”고 했다. 고인이 저승에서도 옷을 입으려면 불에 태워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슈트 한 벌을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공예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1세대 패션디자이너인 최경자(1911∼2010)와 노라 노(95), 앙드레 김의 작품과 아카이브 60여 점을 선보인다. 옷감의 주름과 비즈, 자수 등에 담긴 공예적 요소를 찾고 이들의 장인정신을 조명했다.●앙드레 김 초기 디자인, 차분한 분위기 화려한 자수와 여러 겹의 원단을 겹친 풍성한 드레스로 유명한 앙드레 김도 1960∼80년대 디자인은 차분한 분위기를 띠었음을 전시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최경자가 1939년 국내 최초로 설립한 패션 전문 교육기관인 국제패션스쿨에서 교육받은 영향이라고 이승해 공예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설명했다. 앙드레 김은 1962년 ‘살롱 앙드레’를 설립하고,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다. 그의 1990∼2000년대 디자인은 화려하다. 배우 장동건과 김희선이 모델로 선 패션쇼의 스케치 수기와 장동건이 입었던 꽃무늬 슈트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김중도 대표는 “앙드레 김이 1990년대 초 선보였던 파워 숄더 디자인이나 화려한 자수가 최근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했다.●화려한 최경자, 실용적인 노라 노 국제패션스쿨과 함께 국내 최초로 모델 양성 기관인 국제차밍스쿨을 세워 ‘한국 패션계의 대모’로 불리는 최경자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에서는 특히 화려한 색감과 발랄함이 돋보이는 ‘시프트 드레스’(1970년)와 감각적 드로잉을 연상케 하는 ‘이브닝코트’(1963년)가 눈에 띈다. 이브닝코트는 해 달 별 사람 나비 등의 도안을 옷감에 물감으로 그린 뒤, 그 위에 구슬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주름이 무늬를 만드는 ‘타이 넥 드레스’(1981년)는 최경자가 즐겨 입었던 옷이다. 1962년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청자 드레스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한 자료도 전시됐다. 최경자는 디자이너의 의도를 옷으로 만들기 전 미리 스케치하는 스타일화를 처음 도입해 활용했다. 그는 생전 패션 교육을 “옷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노라 노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가 관객을 맞는다. 어깨와 소매가 연결되도록 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면서 치마 앞단에 주름을 넣어서 걸을 때 편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노라 노는 1952년 서울 중구 명동에 ‘노라 노의 집’을 개업하고, 1974년 한국 브랜드 최초로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소재 개발과 해외 진출에 앞장섰다. 그가 사용했던 옷본과 프린트 견본도 전시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승해 학예연구사는 “관객이 다양한 패션 디자인을 감상하며 자신의 패션도 자유롭게 상상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4월 2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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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드레김 아들 “아버지 흰 수트 보니 울컥”…1세대 패션디자이너 재조명

    “저도 못 보던 의상들이 꽤 많았어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즐겨 입었던 수트를 오랜만에 다시 보니 기분이 이상해 전시장 밖으로 나와버렸네요.” 6일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을 찾은 고 앙드레 김(1935~2010)의 아들 김중도 앙드레김 아뜰리에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아버지가 그 수트를 하루에 세 번씩 갈아입어 수십 벌이 있었지만, 돌아가신 뒤 1, 2벌만 기증을 하고 나머지는 전부 태웠다”고 했다. 고인이 저승에서도 옷을 입으려면 불에 태워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것 중 한 벌을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의(衣)·표(表)·예(藝), 입고 꾸미기 위한 공예’전에서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시는 서울공예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1세대 패션디자이너인 최경자(1911~2010), 노라 노(95), 앙드레 김의 작품과 아카이브 60여 건을 선보인다. 옷감의 주름, 비즈, 자수 등 패션 의상에 담긴 공예적 요소를 찾아보고 이들의 장인 정신을 재조명했다.○ 앙드레 김의 초기 디자인 화려한 자수와 여러 겹의 원단을 겹친 풍성한 드레스로 유명한 앙드레 김도 1960~80년대 디자인은 차분한 분위기를 띠었음을 전시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최경자가 1939년 국내 최초로 설립한 패션 전문 교육기관인 ‘국제패션스쿨’에서 교육받은 영향이라고 이승해 공예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설명했다. 앙드레 김은 1962년 ‘살롱 앙드레’를 설립하고, 1966년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다. 전시장에서는 앙드레 김의 1990~2000년대 화려했던 디자인도 볼 수 있다. 배우 장동건과 김희선이 모델로 선 패션쇼의 스케치를 수기로 적은 기록과 장동건이 입었던 꽃무늬 수트도 전시됐다. 김중도 대표는 “앙드레김이 1980~90년대 초 선보였던 파워 숄더 디자인이나 화려한 자수가 최근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최경자, 실용적인 노라 노 최경자는 패션 학교는 물론 모델 양성 기관인 ‘국제차밍스쿨’도 국내 최초로 열어 ‘한국 패션계의 대모’로 불린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옷으로 만들기 전 미리 스케치하는 ‘스타일화’도 처음 도입해 활용했다. 생전 그는 “옷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패션 교육을 설명했다고 한다. 화려한 색감과 발랄함이 돋보이는 ‘시프트 드레스’(1970)와 감각적인 드로잉을 연상케 하는 ‘이브닝코트’(1963)가 눈에 띈다. 이브닝코트는 해 달 별 사람 나비 등의 도안을 먼저 옷감에 물감으로 그린 뒤, 그 위에 구슬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주름이 무늬를 만드는 ‘타이 넥 드레스’(1981)는 최경자가 즐겨 입었던 옷이다. 1962년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청자 드레스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한 기록도 전시됐다. 전시장 입구에는 노라 노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가 있다. 어깨와 소매가 연결되도록 디자인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되, 치마의 앞단은 주름을 넣어서 걸을 때 편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노라 노는 1952년 명동에 ‘노라 노의 집’을 개업하고, 1974년 한국 브랜드 최초로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소재 개발과 해외 진출에 앞장섰다. 그가 사용했던 옷본과 프린트 견본도 전시됐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승해 학예연구사는 “봄이 다가오는 만큼 관객이 다양한 패션 디자인을 감상하며 나의 패션도 자유롭게 상상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했다. 18일부터 매주 토요일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시장에 표현된 공예 기법을 활용해 에코백을 꾸미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4월 2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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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종의 시대…예술도 선 넘기가 유행![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최근 국내에서 개막한 유명 작가의 두 전시를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무라카미 다카시 개인전, 그리고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입니다.두 작가는 소셜 미디어와 언론에서 독특한 겉모습이나 황당한 해프닝으로 화제가 되며 비교적 잘 알려져 있죠. 전시된 작품들이 흥미롭고 유명하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고, 또 즐겁게 보신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오늘 뉴스레터에서는 무라카미와 카텔란의 개인전에 대한 좀 더 솔직하고 개인적인 리뷰를 써보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편하게 의견 보내주세요!독하고 별나야 눈에 띈다올해 기대되는 전시 중 하나였던 무라카미와 카텔란의 개인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선 넘기’였습니다. 무라카미는 작가의 캐릭터를 통해, 카텔란은 도발적인 작품을 통해 선을 넘으면서 영리하게 미디어의 주목을 이끌어 냈죠.기자간담회를 위해 부산을 찾은 무라카미의 모습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카메라 앞에서 ‘시그니처 포즈’를 취해주며, 때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모습이 재밌으면서도 사업가나 셀러브리티 같은 치밀한 면모가 느껴졌거든요. 그런 모습이 나쁘다기보다는 작가만의 캐릭터이자 생존 전략으로 느껴졌습니다.카텔란은 작품 세계 자체가 ‘선 넘기’로 점철되어 있죠. 2016년 구겐하임 미술관에 18K 황금 변기(아메리카)를 설치한 바 있고요. 이 변기를 관객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 화제가 된데다, 영국에서 전시할 때는 도난을 당해 또 한 번 해외 언론에서 대서특필 되었습니다.그다음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바나나 사건.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작가가 벽에 덕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인 작품 ‘코미디언’에서, 바나나를 누군가 떼어먹어 최대 화제작이 됐습니다.두 작가를 보면 치열한 예술가들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기를 품고, “이래도 내 작품 안볼거야?”라고 외치는 모습이 상상됩니다.선 넘기는 어디까지?두 전시 모두 작가의 주요 작품의 한자리에 모아 알차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개인전은 특히 한 번도 전시되지 않았던 작가의 초기작이 전시돼, “아 예전엔 이런 시도를 했었구나”하고 보는 재미도 있었고요. 카텔란 개인전은 마치 연극을 보듯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되어서 흥미롭게 볼 수 있었죠.그럼에도 개인적 의견으로 몇몇 부분은 ‘이렇게까지 선을 넘는다고?’ 싶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무라카미가 미술사의 유명한 작품들을 변주한 부분이었는데요.물론 무라카미의 예술 세계가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든다’, 즉 뭐든 쉽고 재밌게 만든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예술관에는 충실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아.. 이 색깔을 이렇게 바꿨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또 카텔란의 개인전에서는 곳곳에서 동물을 박제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허공에 말의 사체를 매달아 놓은 작품 ‘노베첸토’나, 비둘기를 박제한 작품 ‘유령’이 있었죠.미술관 측에 따르면 모든 동물 박제 작품은 자연사한 동물의 사체를 소재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풍기는 죽음과 냉소의 분위기가 섬뜩한 기분을 자아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여기에 교황이나 히틀러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었는데요. 작가는 아마 이런 작품들을 보고 불쾌해할 누군가가 항의하거나 논란을 만들어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더 알려지고, 언급될 테니까요. 다다이즘 예술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다카시와 카텔란에게 공통으로 느껴진 건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는 반문입니다. 다카시는 무겁고 어려운 예술을 치워버리고, 귀엽고 가벼운 것을 제시하며. 카텔란은 ‘예술가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도발과 파격을 내세웁니다.이 점에서 저는 다시 한 번 다다이즘 예술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요. 마르셀 뒤샹이 미술관에 변기를 가져다 놓은 것(샘), 그리고 만 레이가 다리미에 압정을 박은 것(선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 즉 인류의 눈부신 과학 기술 발전이 가장 많은 죽음을 낳게 한 비극이 있었기에 작가들은 세상을 냉소하고 허무를 노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 결과 뒤샹의 샘은 황당한 작품에서, 미술사의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그렇다면 다카시와 카텔란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파괴와 충격의 맥락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이 없다면, 냉정하게 보았을 때 두 작가는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많은 예술가가 선보인 다다 예술의 쉬운 모방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인상파 작가의 작품이 100여 년을 넘어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재해석하고 그려내듯, 이 작가들도 다다 예술을 쉽고 재밌는 버전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죠. 물론 미디어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해 낸 영리한, 재치있는 작가라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된 사실입니다.여러분도 뒤샹의 변기와 다카시의 캐릭터, 카텔란의 바나나를 한 번 비교해서 떠올려보세요. 예술의 의미에 관한 흥미로운 사색을 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전시 정보- ‘이우환과 그 친구들 IV: 무라카미 좀비’전, 부산시립미술관, 2023. 1. 26. ~ 3. 12. 무료-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리움미술관, 2023. 1. 31. ~ 7. 16. 무료※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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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계 이민자 2,3세 짠내 나는 고군분투기, 세계인이 감동”[글로벌 포커스]

    《K팝과 K드라마로 지구촌이 들썩이는 가운데 한인 이민자 2, 3세 창작자들이 만드는 영화, 드라마, 출판물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민 1세대 부모들이 정착과 생계유지에 전념해야 했다면 이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소재로 예술적 본능을 꽃피우고 있다. 암 투병을 하다 하늘나라로 간 엄마와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쓴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는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고, 한국계 일본인 가족의 인생 역정을 다룬 소설 ‘파친코’는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말부터 3개월간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창작자 3명과 한국계 배우, 캐스팅 디렉터 등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약자와 소수자로 살아온 한국인들 특유의 ‘짠내’ 나는 도전과 극복의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했다.》●영화감독 ‘앤서니 심’“美, 이민자 부정적 인식 아쉬워성장 뒤 韓문화 애정 생겨”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며 도시락으로 밥을 싸 와 ‘라이스보이’라고 놀림받던 한국인 소년. 엄마와 단둘이 살던 그는 친구들과 다르게 생긴 자신이 부끄러워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푸른색 렌즈를 낀다. 숱한 차별과 혼란 속에서 성장하던 그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 함께 강원도를 찾으며 생전 처음 한국인 친척들을 만나게 되는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밴쿠버국제영화제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쓴 앤서니 심 감독의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줄거리다. 상반기 국내 개봉을 앞둔 이 영화는 서울에서 태어나 8세에 캐나다로 이주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심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민자들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게 아쉬웠다”며 특히 이민자 관객들이 영화의 진정성에 공감하길 바랐다. 그는 “어릴 때는 내가 백인이 아니라는 것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성장하고 난 뒤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인정했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엄마는 직접 집에서 김치를 담그고 목욕탕에서 삼촌이 조카의 때를 밀어주는 장면 역시 경험담이다. 심 감독은 북미 지역에서 20여 년간 배우로 활동하다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예전엔 오디션을 1000번 가까이 봤지만 한국인 배역은 10개도 안 됐어요. 최근에는 한국인 배우 캐스팅 제안이 많이 들어와 거절하느라 바빠요.” 그는 이번 영화가 호평을 받는 것에 대해 “K콘텐츠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인에 대한 인식과 분위기가 크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이야기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아프리카 관객들도 이민자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작가 ‘미셸 정미 조너’“韓콘텐츠는 감성적-로맨틱독자에 한국식 모정 어필” 1인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로 활동하며 평단과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미셸 정미 조너는 2021년 에세이집 ‘H마트에서 울다’를 내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암으로 세상을 뜬 엄마와 엄마가 해준 한국 음식을 기억하며 조너가 진솔하게 쏟아낸 그리움은 전 세계 독자들을 울렸다. 에세이의 배경은 미국이지만 조너와 엄마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보통의 한국 모녀와 다를 바 없다. 엄마는 조너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울긴 왜 울어! 네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닌데”라고 호통쳤다. 마침내 엄마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스물다섯 살에 엄마를 잃은 조너는 끝없는 상실감을 음악과 글에 쏟아냈다. ‘H마트에서 울다’ 역시 무뚝뚝했던 엄마가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했던 지극한 방식인 ‘음식’을 주제로 시작한 글을 모아 펴냈다. 조너는 미국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엄마가 죽어가던 순간에는 오직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다”고 했다. 한인 2·3세 창작자들의 작품에는 이 같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주류 사회에 대한 열망이 미묘하게 뒤섞여 있다. 한국계 창작자들의 작품이 세계인의 감동을 끌어내는 이유에 대해 조너는 “한국인들은 감성적이고 로맨틱하다. 그들의 콘텐츠에도 그런 감성이 담겨 있다”고 답했다. 그녀는 “방탄소년단, 봉준호 감독 등이 국제적인 수상을 하고 주목을 받으며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들에게도 더 많은 ‘문’이 열렸다”고 말했다. 조너의 차기작은 장마다 ‘뚝배기’ ‘뻥튀기’ 같은 한국 음식 이름이 숱하게 등장한 ‘H마트에서 울다’보다 한층 더 ‘한국적’이다. 내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글로 옮길 계획이다. 조너는 “엄마가 생전에 제게 한국에서 1년만 살면 한국어를 지금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전후석’“한국계,하원의원 출사표언더도그 생존기 자체가 감동” 2020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한국계 후보 5명이 연방하원 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4명은 당선됐고 1명은 떨어졌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 재도전했다. 이번 중간선거일을 앞두고 국내 개봉했던 영화 ‘초선’은 이들 한국계 후보 5명의 역정을 섬세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다.‘초선’을 연출한 전후석 감독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변호사로 일하다 영화감독으로 방향을 튼 그는 다양한 배경의 후보자들이 분투하는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한국계 이민 1, 2세대인 이들은 인종, 세대, 종교 등 복합적인 갈등의 전면에 선다. 전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주류 정치에 진입하려는 이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가 현재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갈등 구조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민 2세대인 전 감독은 2019년 쿠바 한인 혁명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로도 주목을 받았다. 전 감독은 “과거 한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 미국으로 갔듯이,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오는 사람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인은 다른 사람들과 공존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라고 강조했다. 전 감독은 “현재 미국 영화계에 ‘코리안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다”면서도 “재외동포 창작자들이 만드는 주체적인 이야기까지 ‘K콘텐츠’로 묶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영화 ‘미나리’나 드라마 ‘파친코’ 등의 성공 역시 “언더도그로서 그들이 겪는 생존기가 보편성을 띠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이 한국 밖의 한국인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국내 개봉했던 ‘초선’은 현재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인터넷TV(IPTV)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배우 ‘박소희’“드라마 파친코 재일교포역자이니치 목소리 낼 기회”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파친코’에서 자이니치(재일교포) 2세인 ‘모자수’ 역을 맡은 재일교포 3세 배우 박소희는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파친코는 ‘한국인’이 아닌 ‘자이니치’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모자수’가 대표하는 재일교포 2세들에게 조국인 한국은 그리움이자 상처였다. 한국식 일본어를 쓰는 부모님을 보며 향수를 느꼈지만, 정작 조국에서는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 반(半)쪽발이’라는 모욕을 받았다. 박소희는 “재일교포는 한국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자이니치’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 이름 ‘박소희’를 간직했던 그는 일본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한국계임을 숨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촬영장에서 마주친 재일동포 배우들도 출신이 드러날까 봐 그를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소수자라는 정체성은 배우 활동에 많은 영감을 줬다면서 “소수자는 존재 자체로 이미 ‘시(詩)적’ 존재”라고 말했다. 201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박소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K콘텐츠의 위상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한인 2·3세대 예술가들의 최근 성과를 한류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에는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그는 “(이민자가 아닌) 한국인들이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들의 작품을 ‘한국 문화’로 편입시킨다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파친코가 성공을 거둔 지금이 재일교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시기라며 “아직은 한국과 일본이 자이니치를 양국의 ‘다리’로 삼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지만 나는 여전히 둘을 잇는 다리이자 대사(大使)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캐스팅 디렉터 ‘수 킴’“2개 문화 접하며 감수성 넓어한국인 배우 찾는 요청 증가” 캐스팅 디렉터 수 킴은 영화 ‘매트릭스’의 거장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8’(작은 사진)로 해외 작품에 한국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을 시작했다. 배우 한효주와 이종혁이 출연한 미국 드라마 ‘트레드스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와 내년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XO 키티’ 등 굵직한 작품에도 참여했다. 한국과 미국의 영화계를 연결하는 수 킴은 “업계에서 ‘아시아 배우’로 뭉뚱그리는 대신 ‘한국 배우’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 확실히 느껴진다”며 “단순히 ‘동양 배우’가 아닌 ‘한국인 억양의 영어를 하는 한국인 배우’처럼 섬세하고 구체적인 요청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선 2000년대 후반까지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한이냐 북한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에 갔을 땐 중동 출신 운전사가 한국 사극 팬이라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는 대사를 한국어로 읊었다”며 웃었다. 미국에 한국 문화를 알린 일등 공신은 ‘K팝’의 성공이지만, 문화예술계 한인 2·3세들의 성장도 한 요인이었다고 수 킴은 말했다. 그는 “예전엔 ‘아시안 어시스턴트’에 불과했던 이들이 업계에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교포들은 어릴 때부터 최소 2개 문화를 접하며 자랐기에 감수성의 폭이 넓은 것 같다”고 했다. 그가 꼽은 한국계 콘텐츠의 강점은 ‘짠내’다.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인내심이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며 “어떤 인종이나 문화권에서 봐도 좋은 수준의 이야기를 창작해 낸다”고 말했다. 수 킴은 “최근 주목을 받게 된 한인 2·3세들이 이어 나갈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이 더 중요하다. 다양한 도전도 이뤄지도록 업계가 초심을 잃지 않고 뒷받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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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장에 매달린 말-운석 맞은 교황… 미술관 가득 ‘독한 농담’

    ‘농담꾼(prankster).’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는 미술관에 18K 금 103kg으로 만든 변기 작품(‘아메리카’)을 설치하고,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바나나를 은색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인 작품(‘코미디언’)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특히 ‘코미디언’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치운 것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톡톡 튀는 작품으로 사랑받는 작가 카텔란이 한국을 찾았다. ●죽음, 냉소가 가득한 전시장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에서도 작가 특유의 농담꾼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노숙자와 비둘기다.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든 설치 작품 ‘동훈과 준호’와 비둘기를 박제한 작품 ‘유령’이 바로 그것. 주 전시장인 M2관으로 입장하면 허공에 축 늘어진 말의 사체가 시선을 잡아끈다. 바로크 양식 건물인 이탈리아 토리노 리볼리성 미술관에 처음 전시됐던 ‘노베첸토’(1997년)다. 당시 고풍스러운 건축물 천장에 매달린 말의 모습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 유명해졌다. 그 말은 리움미술관으로 이동해 죽음과 냉소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다. 이 분위기는 전시장 2층에서 극대화된다. 붉은 카펫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의 모습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모두’가 줄지어 누워 있다. 그 옆에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해 모형으로 제작한 ‘무제’와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이 전시됐다. 카텔란의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다. 유명한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은 이번 전시의 핵심이 아니라는 듯 2층 뒤편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전시됐다. 다만 늘 그렇듯 바나나가 전시됐기에, 갈변될 때마다 미술관에서 새 바나나로 교체한다.●도발, 장난으로 풀어낸 신선한 자극 작가의 30년 작업에서 선별한 주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꺼리는 주제를 전면으로 끄집어낸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다. 교황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미국 성조기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낸 작품 ‘밤’(2021년), 히틀러를 소재로 한 ‘그’(2001년)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이력의 출발이 되는 작품은 미술관 로비에 있다. 티켓 부스 왼쪽에 설치된 벽 광고판은 사실 그의 작품 ‘일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이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전시에 초청된 카텔란이 작품을 걸지 않고 대신 그 공간을 광고용으로 판매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향수 브랜드의 광고가 걸렸다. 미술관에서 흔히 기대할 수 없는 도발과 장난을 일삼는 카텔란을 보면,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해 충격을 준 마르셀 뒤샹(1887∼1968)을 떠올리게 된다. 100여 년 전 작품인 뒤샹의 ‘샘’(1917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허무를 담았다. 카텔란의 냉소와 농담이 시대, 역사와 어떤 연결고리를 맺을지는 생존 작가인 만큼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온 작가”라며 “카텔란의 희극적 장치가 담긴 작품을 통해 토론이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1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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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에 축 늘어진 말의 시체…‘바나나 작가’ 카텔란의 독한 농담

    ‘농담꾼’(prankster)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겐 늘 이 수식어가 붙는다. 미술관에 18K 금 103kg으로 만든 변기 작품(‘아메리카’)을 설치하고, 아트페어에는 생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인 작품(‘코미디언’)을 내놓으니 그 별명은 작가가 자초한 것이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관객이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 치운 것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 카텔란이 한국을 찾았다.● 죽음과 냉소가 가득한 전시장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에서도 농담꾼의 면모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노숙자와 비둘기가 관객을 맞이한다.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든 설치 작품 ‘동훈과 준호’와 비둘기를 박제한 작품 ‘유령’이다. 주 전시장인 M2관으로 입장하면 허공에 축 늘어진 말의 사체가 시선을 잡아끈다. 1997년 작품인 ‘노베첸토’는 이탈리아 투린 리볼리성 미술관의 바로크 건물에 처음 전시됐다. 당시 고풍스러운 건축 천장에 매달린 말의 모습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말은 리움미술관으로 이동해 죽음과 냉소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다. 이 분위기는 전시장 2층에서 극대화된다. 이곳에는 붉은 카펫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의 모습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모두’가 줄지어 누워 있다. 그 옆에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 모형으로 제작한 ‘무제’와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이 전시됐다. 카텔란의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을 선보이는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다. 유명한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은 이번 전시의 메인이 아니라는 듯 2층 뒤편 공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전시됐다. 다만 늘 그렇듯 생바나나가 전시됐기에, 갈변할 때마다 미술관에서 새 바나나로 교체해준다.● 다다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작가의 30년 경력에서 선별한 주요 작품을 통해, 모두가 불편해하고 꺼리는 주제를 굳이 전면으로 끄집어 낸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다. 교황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미국 성조기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낸 작품 ‘밤’(2021년), 히틀러를 소재로 한 ‘그’(2001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이력의 첫 출발이 되는 작품은 미술관 로비에 있다. 티켓 부스 왼쪽에 설치된 벽 광고판이 사실은 그의 작품 ‘일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전시에 초청된 카텔란이 작품을 걸지 않고 대신 그 공간을 광고용으로 판매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향수 브랜드의 광고가 걸렸다고 한다. 미술관에서 흔히 기대할 수 없는 도발과 장난을 일삼는 카텔란을 보면, 변기를 전시해 충격을 준 마르셀 뒤샹(1887~1968)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100년 전 작품인 뒤샹의 ‘샘’(1917년)은 제1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허무를 담고 있었지만, 카텔란의 냉소와 농담이 시대와 역사와 어떤 연결고리를 맺을지는 생존 작가인 만큼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온 작가”라며 “카텔란의 희극적 장치가 작동되는 작품을 통해 토론이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1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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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땐 그랬지” 재개발에 사라진 옛 서울로 떠나는 여행

    서울은 수차례 재개발을 거치며 다양한 시간의 흔적이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언덕 위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달동네’는 어느새 누추하고 지워야 하는 공간으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고 이웃이 함께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장소들을 신성하게 바라보자고 제안한 전시가 있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다. ‘뮈에인(myein)’은 ‘신성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전시는 사진작가 김정일 임정의 최봉림 김재경이 1980∼2000년대 서울 재개발 예정지 곳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 196점을 선보인다. 김정일이 촬영한 기억 풍경 연작 53점과, 임정의의 사진 36점은 1980년대 서울을 담았다. 최봉림의 1990년 봉천동 출사 작업 65점은 이번에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다. 김재경의 연작 ‘mute’ 32점은 1999년 세기말 서울을, 후속 작업인 ‘mute2’ 연작 4점은 200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김정일은 1982년 어느 날 신문에 실린 40여 곳의 개발공고를 보고 사라질 공간을 기록했다. 관악구 봉천동의 공용 화장실, 강남구 압구정동의 판잣집, 성동구 금호동 바위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이 사진에 담겼다.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경기대, 계원예술대 등의 건축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달동네를 사진으로 찍으라는 과제를 냈던 임정의는 관악구 신림7동과 봉천5동, 성동구 금호동, 노원구 상계동을 높은 시선에서 바라본다. 최봉림은 1989년 봄 달동네 능선을 피사체로 선택해 집과 그곳 사람들의 풍경을 기록했다. 김재경은 화려한 외관이 아닌 사람들이 표출한 일상적인 환경을 도시의 진짜 모습이라 보고 좁은 골목과 계단을 추상화처럼 담았다. 3월 5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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