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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간밤에 용꿈을 꿨지 뭐예요.” “당신 늦둥이라도 낳으려는가. 하하.” 1993년 12월 12일 오후 8시 반.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능산리 사지) 발굴 현장에 있던 신광섭 당시 국립부여박물관장(65·현 울산박물관장)은 이날 아침 출근길에 아내와 나눈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거대한 용이 온몸을 비틀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용의 아가리 위로 연꽃이 피고 다시 그 위로 첩첩산중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펼쳐졌다.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가 150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신선 세계 묘사한 백제의 특급 문화재 백제금동대향로는 지금껏 발굴된 백제 문화재 가운데 가장 걸작으로 손꼽힌다. 얼마나 귀한지 국외 반출 금지 문화재로 지정돼 지금껏 한번도 한반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향로는 백제 후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높이 61.8cm, 무게 11.8kg에 이르는 이 대형 향로는 중국의 박산향로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예술성이나 규모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꼭대기에 봉황이 달린 향로 뚜껑에는 23개의 산이 다섯 겹에 걸쳐 이어져 있다. 봉우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활을 쏘는 무사부터 머리를 감는 선인(仙人), 각양의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樂士)들까지 총 18명의 인물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이뿐인가. 호랑이와 사슴, 사자, 반인반수(半人半獸) 등 65마리의 온갖 동물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광섭이 꼽는 백미는 향로 전체를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용이다. “역동적인 용틀임은 누가 봐도 힘이 넘쳐요. 특히 용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은 ‘연화화생(蓮華化生·연꽃에서 만물이 탄생한다는 세계관)’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500년 깊은 어둠을 뚫고 다시 세상으로 향로가 출토된 과정은 용꿈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발굴팀은 당시 신광섭을 비롯해 부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김정완(현 국립대구박물관장), 학예연구사 김종만(현 국립공주박물관장) 등으로 구성됐다. 부여군이 나성(羅城)과 능산리 고분 사이에 관람객을 위한 주차장을 짓기로 함에 따라 1993년 마지막 발굴이 시작됐다. 여건상 예산이 부족한 데다 시간에 쫓겨 자칫 능산리 절터는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부여 토박이인 신광섭은 예부터 이곳에서 기와가 대량으로 출토된 사실에 주목했다. 다음은 그의 회고. “왕릉(능산리 고분)과 나성에 인접한 곳이라면 뭔가 중요한 시설이 있을 것 같다는 감이 왔어요.” 신광섭은 박물관계에서 ‘불도저’로 통한다.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그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노태섭 기념물과장(전 문화재청장)을 만났다. 발굴 현장을 많이 다녀본 노태섭도 남다른 감을 갖고 있었다. 과장 전결로 2000만 원의 예산 지원이 즉시 이뤄졌다. 신광섭은 한발 더 나갔다. 당초 시굴(발굴에 앞서 유구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일부만 파보는 것)로만 발굴 허가가 났지만 과감히 절터 서쪽 건물터(나중에 공방 터로 밝혀짐)에 대한 전면 발굴에 나섰다. 발굴 성과가 제때 나오지 않으면 주차장 공사가 강행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도왔어요. 여기서 향로가 나올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1993년 12월 12일 오후 4시. 현장을 지휘한 학예연구사 김종만이 향로를 처음 발견했다. 절터 서쪽 공방터 안 물웅덩이에서 금속편이 살짝 노출된 것이다. 오래전 지붕이 무너져 내려 너비 90cm, 깊이 50cm의 웅덩이에는 기와 조각과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조사원들은 인근에서 나온 금동광배의 조각으로 알았다. 김종만의 보고를 받은 신광섭이 곧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는 인부들을 모두 퇴근시킨 뒤 엎드린 자세로 손수 기와를 하나씩 빼냈다. 웅덩이 안에서 솟구치는 물을 스펀지로 계속 닦아 내야 했다. “유물이 다칠까 봐 몇 시간 동안 맨손으로 파냈어요. 추운 겨울 저녁에 연신 손을 찬물에 담갔더니 점점 감각이 없어집디다.” 오후 8시 반. 3시간여의 작업 끝에 드디어 향로 뚜껑과 받침의 윤곽이 모두 드러났다. 고고학계는 백제 말기인 사비시대에도 문화예술이 고도로 융성한 사실을 금동대향로가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종래는 백제의 공예 기법이 무령왕릉이 조성된 웅진시대에 절정에 달한 뒤 사비시대부터 점차 쇠퇴한 것으로 봤다. 특히 금동대향로를 중국 남조에서 수입한 것으로 봤던 견해는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2007년과 2009년 부여 왕흥사지와 익산 미륵사지에서 각각 출토된 사리장엄(舍利莊嚴·사리를 봉안한 공예품)은 백제가 금동대향로와 같은 고도의 예술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췄음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부여=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spin-off·원작에서 파생된 새로운 작품)가 연극 대본 형식으로 올 7월 발표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7월 30일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될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의 대본이 하루 뒤인 31일 책으로 출간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학수첩이 한글로 번역해 올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대본은 원작자인 조앤 롤링이 다른 작가들과 함께 집필했다. 이번 연극 대본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2007년에 출간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로부터 19년 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리 포터는 세 명의 아이를 둔 가장으로 ‘마법부(Ministry of Magic)’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제목에 언급된 저주받은 아이는 해리 포터의 둘째 아들인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경 문학수첩 대표는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봤더니 지문과 대사로 구성된 전형적인 연극 대본이었다”며 “형식과 내용 면에서 해리 포터 8권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시리즈와 연결성이 있는 만큼 ‘해리 포터 8번째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첫 권이 나온 해리 포터 시리즈는 지금까지 총 4억5000만 권이 팔렸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집트 전시로 실패한 박물관은 없다고 하더라.”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가장 주력하는 전시로 ‘이집트전(展)’을 꼽으면서 꺼낸 말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할리우드 영화 소재로 자주 다뤄지는 등 대중의 관심이 높은 편이다. 박물관 전시에서도 충분한 흥행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자국(自國) 문화재의 요람인 국립박물관이 외국 문화재를 소개하는 전시에 주력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관람객 수가 중요한 평가지표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속내는 단순하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관람객 유치에서 저조한 성과를 거뒀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총 228만9264명으로 2014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4%나 줄었다. 게다가 용산 이전 10주년을 맞아 지난해 의욕적으로 준비한 메인 전시인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특별전은 2개월 동안 고작 3만8220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반면 전시 기간이 2개월로 엇비슷한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 특별전에는 9만9413명이 방문했다. 한국과 아시아 주요국의 불교조각을 총망라한 메인 전시가 한-체코 수교 25주년 기념전보다 훨씬 저조한 성적표를 기록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불상이 전시 소재로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박물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한 박물관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의 불상 특별전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았다”며 “각 불상이 왜 여기 전시돼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조차 없어 전문가들도 갸우뚱거리더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해 12월 개막한 국립민속박물관의 ‘밥상지교(飯床之交)’ 특별전은 라면 그릇 안에 동영상 디스플레이를 설치하는 등 톡톡 튀는 전시 아이템을 활용해 불과 40일 만에 3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정우택 동국대 교수(동국대 박물관장)는 “일반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전시 설명을 개선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소크라테스 역시 또 하나의 소피스트에 불과하며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를 망친 장본인이라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어떨까. 당장에 “너도 소피스트냐” “궤변 늘어놓지 마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소피스트의 궤변과 이에 맞선 성인(聖人)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일반인의 머릿속에 선악의 대결로 공식처럼 틀어박혀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같은 서양철학의 통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소크라테스의 합리성이 그리스 문화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예술적 본능을 질식시켰다는 게 니체의 주장이었다. 이 책은 서양 근대화를 이끈 18, 19세기 유럽 사상사의 거대한 흐름을 정리하면서 저자의 비판적인 통찰을 곁들였다.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출신인 저자는 사상가들에 대한 찬사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역사에 남긴 오점도 함께 다뤘다. 내공이 있는 학자가 아니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시도다. 이를테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장 자크 루소에 대해 저자는 솔직함과 위험성이라는 극단적 평가를 함께 내린다. 사회 제도의 규율을 받기 이전, 자연 상태의 인격을 모색하기 위해 루소는 성적 욕망을 채운 자신의 경험까지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시민종교(civil religion)를 위반한 자에게는 죽음의 형벌도 불사해야 한다는 루소의 주장에는 음험함마저 감돈다. 저자는 “(루소의 사상에는) 미래의 세속 집단주의 이상향을 꿈꾸는 정치사상 곧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씨앗이 될 만한 요소가 많다”고 평가했다. 사상가들의 본의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원전을 일부러 길게 인용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 책을 보면서 최근 국립경주박물관의 일본고분 특별전에서 관람한 후지노키(藤の木) 무덤이 떠올랐다. 이 무덤은 고대 동아시아 문화의 전파 루트를 중국→한반도→일본 열도의 도식으로 보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금동 말갖춤 유물들은 단순한 이미테이션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한반도의 신라, 백제는 물론이고 중국 남북조의 양식을 골고루 취사선택해 자신들의 스타일로 소화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무덤을 조성한 6세기 후반에 이르면 정반합(正反合)의 창조적 변용이 일본 열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불교 조각을 전공했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도 한중일의 금동불상을 심층 비교하면서 3국 문화 교류의 도식적인 접근을 탈피했다. 서기 6∼7세기 무렵 한반도의 금동불 제작 수준이 창조적 단계에 진입하면서 일본은 물론이고 불교 전래지인 중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다. 일종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인 셈이다. 예컨대 6세기 후반 중국 산둥 지역에서는 북위(北魏)풍의 삼존불상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한반도에서 유행한 금동일광삼존불(金銅一光三尊佛·하나의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삼존불을 배치한 불상)이 종종 등장한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제작된 금동일광삼존불은 21개에 달해 산둥 지역보다 더 많다. 저자가 소형 금동불상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건 무거운 석불(石佛)에 비해 비교적 가볍고 이동이 용이해 3국 문화교류의 매개체로 각광받았다는 점에서다. 저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유의 불상 양식을 발전시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후속으로 나올 2편에 통일신라 이후 금동불에 대한 고찰을 담을 예정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 발해 전시실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전시품의 절반가량을 교체했는데, 이는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뒤 최대 규모다. 고려실에서는 일제강점기 개성 만월대(고려 왕궁 터)에서 출토된 무늬벽돌과 청자 기와 등을 선보인다. 지난해 만월대에서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공동 발굴을 벌여 고려활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를 발견하기도 했다. 박물관은 전시실 안에 금속활자와 목판인쇄 방식을 비교할 수 있는 영상 전시물을 신설했다. 고려실은 기존 3개 전시실에서 2개 실로 줄이면서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했다. 고려 1실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918년 이후부터 무신정권 이전까지, 2실은 무신정권부터 고려 말까지를 대상으로 했다. 1실에서는 지난해 일본에서 사들인 나전경함을 비롯해 청자, 귀금속, 옥 장신구 등 왕과 문벌귀족들이 애용한 물건을 관람할 수 있다. 이 밖에 고려 지방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철조 아미타불상도 전시됐다. 고려 2실은 무신정권 이후 원의 간섭에 따른 사회 변화와 고려왕조의 쇠퇴를 주제로 삼고 있다. 조선 건국의 염원을 담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발원 사리구를 볼 수 있다. 강진 사당리 자기소에서 생산한 자기 등을 전시해 고려시대 특산물을 공납했던 특수행정구역 ‘소(所)’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향과 향로, 청자를 통해 고려시대 국가의례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발해실은 통일신라와 더불어 남북국시대를 연 △발해의 정통성 △수도, 왕권, 통치구조 △발해와 주변 세계 등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여러 출토 유물을 통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면서 발해 문화의 특수성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전통문화의 요람인 전국 14개 국립박물관에서는 설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병신년을 맞아 원숭이와 관련된 민속체험을 마련했다. 원숭이띠 관람객에게는 선착순으로 윷이 담긴 복주머니를 나눠준다. 윷점이나 토정비결 보기, 설빔 입기와 같은 세시행사도 진행한다. 떡국 가래떡 등 전통음식과 더불어 오조니 등 일본 명절음식도 맛볼 수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다. 민속박물관은 ‘설 한마당’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국 각지 공연단을 선보인다. 6일 경기도당굿을 시작으로 7일에는 전라도 걸립농악으로 유명한 ‘필봉 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과 원숭이탈이 등장하는 해학의 한마당인 ‘봉산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이 펼쳐진다. 이어 설 당일인 8일 경상우도 걸립농악을 대표하는 ‘경상도 진주·삼천포 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과 전통의 새로운 해석을 선보이는 ‘전통 예술단 호연’의 공연이 진행된다. 9일 경기남부 지방 농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경기도 오산외미걸립농악’과 원숭이탈이 등장하는 경기도 마당극의 정수인 ‘경기도 양주별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도 볼 수 있다. 이와 별도로 민속박물관 내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차례를 올리거나 세배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을 마련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설날인 8일 열린마당에서 여성농악단 연희단팔산대의 ‘소문만복래’를 공연한다. 연희단팔산대는 2012년 여주엑스포 전통마당 공연 이후 팔산대 붐을 일으켜 영국 템스축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국립공주박물관(관장 김종만)은 6∼21일 ‘설·대보름 전통문화 한마당’을 벌인다. 제기차기와 윷놀이 등 민속놀이와 사물놀이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설 연휴기간인 6∼10일 가족과 함께하는 제기차기 대회와 애니메이션 상영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8일 오후 1시부터는 박물관 옥외광장에서 공주 전통문화예술단 ‘논두렁 밭두렁’이 ‘의당 집터다지기 마당’과 ‘공주에서만 부르는 민요마당’ 등 다양한 공연을 벌일 예정이다. 또 정월대보름을 맞아 20∼21일 ‘금제관장식 모형에 소망지 달기’, 21일 ‘부럼 나눠주기’ ‘가훈·명언·입춘첩 써주기’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6∼10일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도라에몽: 스탠바이미’, ‘로보트 태권V’ 등 인기 애니메이션을 강당에서 상영한다. 9일에는 마임 저글링 버블 마술 등 다채로운 공연을 신라역사관 앞마당에서 펼친다. 이와 함께 요즘 맛보기 힘든 추억의 먹거리인 연탄불 달고나와 뻥튀기 시식행사를 벌인다. 가족과 함께하는 떡메치기나 다식, 떡국 만들기, 차 마시기 등도 즐길 수 있다. 경주박물관에서는 줄넘기 등 전통놀이 경연을 벌여 입상자에게는 기념품도 증정한다. 국립춘천박물관(관장 최선주)도 6∼10일 윷놀이와 투호, 제기차기, 굴렁쇠 굴리기, 사물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6∼7일에는 ‘떡메 쳐서 인절미 만들기’ 행사를 개최해 전통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기회를 선사한다. 이 밖에 6일 ‘괴물들이 사는 나라’, 7일 ‘바니버디’, 8일 ‘박물관이 살아있다’, 9일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등 특선 영화를 상영한다. 12일에는 춘천지역 수험생들로 구성된 청소년 연극 동아리 ‘두드림’이 만든 연극 ‘미라클’을 공연한다. 20일에는 정월대보름 맞이 ‘부럼 나누기’ 행사를 개최한다. 국립부여박물관(관장 구일회)은 어린이박물관 내 세미나실에서 △7일 활 만들기 △8일 연 만들기 △9일 솟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 전시실 로비에서는 7∼8일 ‘가훈·명언 써주기’와 야외마당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당초 이달부터 착수할 예정이던 개성 만월대(고려시대 궁궐터)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것으로 올 상반기에 조사를 재개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해 만월대에서 고려활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가 출토돼 화제가 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려활자 발굴에 힘입어 올해 만월대 발굴 시기를 2월로 앞당기기로 북측과 작년 말에 합의했다”며 “그러나 핵실험 여파로 현재까지 실무협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고 3일 밝혔다. 앞서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지난해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6개월 동안 만월대 발굴을 진행했다. 이는 남북이 만월대 발굴을 시작한 2007년 이후 가장 긴 조사였다. 그동안 만월대 발굴은 남북관계 악화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2011년부터 3년 동안 발굴이 중단됐다가 2014년 재개되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정부는 올해 안에 발굴이 재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해 3월에 갑자기 북에서 연락이 와 발굴이 재개된 적이 있다”며 “만월대는 남북 문화재 교류의 상징이어서 아예 중단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남북 발굴팀은 왕궁 서쪽 건물 터 7000m²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11월에 신봉문 터로부터 255m 떨어진 지점에서 금속활자 한 점을 발견했다. 이와 관련해 고려활자 진위 논란을 빚고 있는 증도가자(證道歌字)와의 연관성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발굴팀의 조사 결과 이 활자는 증도가자와 서체나 크기 등이 모두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중국 뉴허량(牛河梁) 홍산문화박물관에 가면 주 전시관 입구에 고고학자들의 인물사진과 기록이 전시돼 있다. 홍산문화 발굴과 연구에 기여한 수빙치(蘇秉琦), 궈다순(郭大順) 등의 업적을 기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적, 유물만 강조될 뿐 정작 그것들을 땅속에서 찾아내 생명력을 불어넣는 고고학자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광복 이후 첫 발굴인 경주 호우총 발굴 7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고학자들과 함께 발굴 현장을 조명하는 연재 시리즈를 싣는다. 》“누가 이따위로 땅을 팠어!” 1973년 5월 경주 천마총 발굴 현장. 당시 김정기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초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의 불호령에 26세 청년의 낯빛이 사색이 됐다. 두 달 동안 봉토를 걷어낸 끝에 드러난 석렬(石列)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는 호통에 청년은 혼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웬만하면 흥분하지 않는 김 단장이었기에 더 부끄러웠다.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발굴단에 합류했던 청년은 그날 밤 근처 합숙소로 돌아와 몰래 보던 서양사 원서를 책상에서 치웠다. 그러고는 일제강점기부터 당시까지 발간된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보고서를 전부 찾아서 읽었다. 그는 그해 천마총 발굴에 이어 곧바로 황남대총 발굴에 투입돼 현장 인부들을 감독했다. 한때 서양사학자를 꿈꿨던 청년은 39년 뒤 비명문대 출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돼 한국 고고학계 석학으로 우뚝 섰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68)의 이야기다.○ 비단벌레 장식, 1600년 만에 빛을 내뿜다 1975년 8월 중순 경주 황남대총 남쪽 무덤. 목곽 안에서 말띠드리개(행엽·杏葉)와 더불어 엎어진 채 땅에 묻혀 있던 안장 뒷가리개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최병현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직접 꽃삽과 대칼(대나무를 뾰족하게 깎은 발굴 도구)을 잡았다. 흙을 걷어낸 뒤 안장을 살짝 들춰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1600년 동안 깊은 어둠 속에서 발하던 영롱한 빛이 그의 눈에 잡혔다. 비단벌레 2000마리의 날개를 일일이 뜯어내 붙인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였다. 발굴 현장은 순식간에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이미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비단벌레 장식 파편을 발굴해 본 경험이 있어서 이 유물이 얼마나 빛과 습도에 민감한지 최병현은 알고 있었다. 즉시 커다란 솜에 물을 묻혀 장식 위에 덮고 발굴을 중단했다. 화학을 전공한 김유선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소장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김유선은 비단벌레 날개 시료를 서울로 가져가 보존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그가 고군분투한 1주일 동안 유물은 물에 젖은 솜을 뒤집어쓴 채 고스란히 무덤에 묻혀 있었다. 마침내 햇볕을 차단한 채 글리세린 용액에 빨리 담가야 한다는 지침이 떨어졌다. 최병현은 유물을 무덤에서 꺼내 나무상자에 넣은 뒤 글리세린을 부었다. 한 사람이 발굴부터 유물 보존처리까지 맡아야 하는 시절이었다.○ 황남대총 발굴, 그 명과 암 황남대총은 길이 120m, 너비 80m, 높이 23m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 무덤이자 대표적인 신라 적석목곽분이다. 규모에 걸맞게 5만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신라 고분에서 최대 발굴로 손꼽힌다. 당시에는 고고학 분야 석학이던 삼불 김원룡(1922∼1993)조차 경주 황오리의 소형 고분만 발굴해 본 정도였다. 김정기를 단장으로 김동현(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건길(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병현으로 이어진 발굴팀은 당시 고고학계에서 경험하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걸은 셈이다. 최병현은 황남대총 등 여러 발굴을 통해 신라 적석목곽분이 서기 4∼6세기 마립간의 무덤임을 규명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신라 적석목곽분의 상한 연대를 5세기로 내려본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탈피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고고학)는 “최 명예교수는 4∼5세기 경주 일대를 제외한 낙동강 동부 지역이 가야 영토라는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부정하고 신라의 영역이었음을 토기 유물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고증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병현은 “지금이라면 황남대총 발굴에 섣불리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 고고학 초창기였던 당시, 정부에 의해 황남대총 발굴이 결정됐다. 천마총과 달리 황남대총 발굴은 급하게 진행돼 토층도조차 그리지 못할 정도로 봉토 조사 등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고 칠기와 금속 등 유물 손상을 막지 못했다. 다음은 최병현의 회고. “김 단장은 당시 ‘현 수준에서 황남대총 발굴은 겁 없는 짓’이라고 했다. 당시 고고학 수준이 미흡한 상황에서 황남대총을 파면 도리어 유물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발굴을 주저했다. 천마총에서 유물이 꽤 나오면 황남대총까지 파지 않아도 될 것으로 기대했다. 황남대총은 지금이라면 발굴에 최소 10∼15년이 걸릴 현장이었다. 신라 고분 연구에 엄청난 영향을 줬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뢰의 정치.’ 이 책을 보고 이 문구를 한 대형 포털에서 검색해 봤다. 정치인들이 이를 언급한 횟수가 작년에만 250번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정치인들이 단골 소재로 삼은 덕이다. 고조선의 8조법이 역설적으로 당시 범죄의 횡행을 알려 주듯,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에서 신뢰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선조에게 미운털이 박혀 가며 경연(經筵)에서 부르짖은 것도 바로 신뢰였다. 왕과 신하 사이의 신뢰는 기본이고, 백성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권력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율곡은 선조가 사림(士林)들을 자주 접하고 그들의 공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으면 그는 임금 면전에서 “군주의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 있는 신하를 기용해 일을 맡겨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요즘 시대에도 상사에게 꺼내기 쉽지 않을 직언을 율곡은 생살여탈권을 쥔 일국의 군주에게 서슴지 않았다. 율곡이 누군가. 불과 13세의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으며 9번이나 장원급제를 하고 이조, 호조, 병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초특급 엘리트였다. 역자는 해제에서 율곡의 투철한 사명의식 이상으로 경연과 사관(史官), 언관(言官)으로 이뤄진 조선의 문치주의 시스템에 주목한다. 실제로 선조는 율곡을 불편하게 여겼지만, 대놓고 힐난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왕이라도 논리적인 지적 앞에선 힘으로 윽박지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교 경전의 도덕 질서는 왕의 권력을 견제하는 중요한 논거의 틀이 됐다. 단순히 공자 왈, 맹자 왈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여론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힘이 된 것이다. 역자는 “인(仁)이라는 내재적 보편 가치를 요구하는 것은 군주에 대한 집단적 협박이 담겨 있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알려진 보물 758호 증도가(證道歌·남명천화상송증도가) 2점이 모두 조선시대에 인쇄된 사실이 보물로 지정된 지 32년 만에 밝혀졌다. 증도가는 중국 당나라 승려 현각이 자신의 깨달음을 시로 읊은 불교 서적. 최근 진위 논란에 휩싸인 증도가자는 증도가 활자본을 찍은 금속활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오용섭 문화재위원 등 서지학 및 서예 전문가 7명이 2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동일 목판에서 찍은 증도가 3점을 비교 조사한 결과 만장일치로 조선시대의 것으로 판정했다. 대상은 보물 제758-1호(삼성출판박물관 소장·1984년 지정), 보물 제758-2호(공인박물관 소장·2012년 지정)와 김모 씨가 지난해 문화재청에 국가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증도가다. 전문가들은 획의 굵기와 지질(紙質), 서체 등을 정밀 감정한 결과 보물 제758-1호 증도가는 조선 세종 때, 김 씨 소장본은 성종 때, 보물 제758-2호는 명종 때 인쇄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목판본들이 조선시대 서책으로 드러난 결정적 근거는 김 씨의 증도가에서 분리된 인수대비 발문이다. 이 발문에는 조선 초기 문신 김수온(金守溫·1409∼1481)이 성종 재위 기간인 1472년 6월에 글을 작성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문화재위원들은 김 씨 소장본에서 개장(改裝·책을 뜯어내 새로 제본하는 것)을 시도한 흔적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이 소장본이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보이도록 일부러 발문을 떼어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만약 의도적으로 떼어낸 것으로 드러나면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인수대비가 간행” 발문 떼고 제본 흔적 ▼“보물 ‘증도가’ 2점은 고려 아닌 조선 목판본”… ‘3번째 증도가’ 문화재 신청 과정 확인 보물 제1208-1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가천박물관 소장)은 1994년 국가문화재 지정 당시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위조돼 있었다. 누군가가 책에 적힌 발행 연도를 선덕(宣德·명나라 선종의 연호) 6년(1431년)에서 선광(宣光·원나라 소종의 연호) 6년(1374년)으로 글자 하나를 몰래 고친 것이다. 위조 사실은 동일 목판본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드러났다. 춘추좌씨전은 희귀성 때문에 보물 지위를 유지했지만 조선시대 판본으로 문화재 등록정보가 수정됐다. 고려시대 목판본은 수량이 극히 적어 경매시장에서 조선시대 목판본보다 값이 두 배 이상이기 때문에 위조한 것으로 보인다. 1984년과 2012년에 각각 보물로 지정된 증도가(證道歌) 2점 역시 같은 목판에서 찍은 또 따른 증도가(김모 씨 소장)가 새로 공개되면서 고려시대가 아닌 조선시대 목판본으로 밝혀졌다. 원래 김 씨 소장본에는 뒷부분에 인수대비 발문(跋文)이 있었고 이를 찍어둔 사진도 있었다. 그러나 김 씨가 지난해 문화재청에 국가문화재 지정을 신청할 때는 이 발문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2010년 말 촬영된 발문 사진을 최근 입수한 문화재청은 김 씨가 신청한 증도가는 물론이고 기존 보물 2점도 함께 감정하기로 했다. 2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감정한 문화재위원 3명을 포함한 전문가 7명은 김 씨 소장본에서 책을 뜯어내 새로 제본한 흔적을 발견했다. 총 6쪽인 인수대비 발문은 목판본인 본문과 달리 조선시대 금속활자인 갑인자(甲寅字)로 찍어냈다. 발문은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선왕(세조, 예종)들과 죽은 남편(덕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증도가 200부를 간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문신인 김수온이 성화 8년(1472년·성종 3년) 발문을 썼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김 씨 소장 증도가의 본문과 발문의 왼쪽 상단에는 이전 소유자 이모 씨의 도장이 하나씩 찍혀 있다. 문화재위 관계자는 “도장 모양은 물론이고 책의 여백에 남아있는 얼룩까지 발문과 본문이 서로 일치해 사진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전문가 전원은 김 씨의 증도가가 1472년에 인쇄된 조선시대 판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씨 소장본과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보물 제758-1호), 공인박물관 소장본(보물 제758-2호)은 모두 같은 목판에서 인쇄됐다.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들 증도가 목판본은 각 장에 표기한 장인의 이름과 글자의 목리(木理·나뭇결), 칼자국 등이 서로 같다”고 말했다. 증도가 목판본 3점 사이의 선후 관계나 인쇄 시점은 획의 굵기와 글자의 탈락, 필사(筆寫)로 보완한 정도 등을 기준으로 분석됐다. 임인호 금속활자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은 “목판본은 찍어낼수록 글씨가 닳아서 획이 점점 굵어진다”며 “상대적으로 굵은 획의 목판본은 인쇄 시기가 그만큼 늦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보물이 된 증도가 2개 판본은 조선시대 것으로 수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보물 지위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위 관계자는 “현존하는 증도가는 김 씨 소장본을 포함해 단 3점뿐이어서 조선시대 판본이라도 문화재로서 가치는 높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파악된 증도가 3개 판본의 획 굵기 정보를 증도가자(證道歌字) 진위 검증에도 활용할 방침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삼광사 치유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불안감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됐습니다.” 부산에 사는 김선광(가명) 씨는 지난해 여름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전통차를 마시고 다른 참가자, 스님들과 대화를 하는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삼광사의 명상 프로그램은 조용히 참선에만 집중하는 형식이 아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과 스님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연꽃등을 만들면서 깊이 교감한다. 전문 심리상담가에게 상담을 받거나, 외부 공연단체의 음악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김 씨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과 깊이 소통할 수 있었다”며 “사찰 뒷산에 올라서 스님께 들은 말씀이 마음의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삼광사 명상 프로그램 중에는 편백나무 숲을 걸으며 쉼을 얻는 체험도 포함돼 있다. 삼광사 내 대웅보전을 시작으로 무궁화 이야기 동산, 불두화숲, 소나무샘, 백천공원, 자비동산, 힐링나눔언덕, 힐링숲길, 행복길, 동행길, 하늘길을 따라 편백나무 숲길과 차밭 사이를 산책하는 명상 프로그램이다. 힐링 산책로를 걸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깨달음을 구하는 방식이다. 걷기는 뇌의 활동을 활성화해 노화를 예방하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걷는 것은 느림의 미학을 상징하는 것으로 명상과도 잘 어울린다. 삼광사 주지 무원 스님은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기 쉽다”며 “걷기 명상은 집중력을 유지시켜 주고 자연의 좋은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삼광사의 ‘힐링 명상’ 체험은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다문화가정에도 널리 열려 있다. 사찰은 부산, 경남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손잡고 다문화가정과 일반시민 1000여 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힐링 치유 문화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무원 스님은 “힐링 치유 문화축제가 불교의 화쟁 정신으로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대한불교천태종의 힐링 사찰인 부산 삼광사는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다문화가정도 함께 참여하는 명상 치유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삼광사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인 ‘나눔광장’과 ‘힐링광장’이 부산, 경남지역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족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5월 13일 ‘힐링 치유 문화축제’를 연다. 이번 행사에선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방한하는 베트남 중앙불교협회 운영위원인 틱광누언 스님을 비롯해 선교위원 틱티엔투안 스님, 바리아 붕따우 스님, 세계불교 승가연합회 위원 틱한바오 스님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부산, 경남지역 다문화가정과 베트남 근로자, 유학생 등이 대거 참가하기로 했다. 힐링치유문화 축제에선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힐링 사찰답게 명상 치유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가운데 ‘다도 테라피’는 부산 차인(茶人) 연합회와 손잡고 조용한 음악 아래 차를 마시면서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차의 유래 △차를 활용한 건강 지키기 △차의 효능 알기 △다기 명칭 알기 △차 우려내는 순서 등에 대한 다양한 강의도 함께 이뤄진다. 차 한잔을 끓여놓고 명상에 빠져든 경험을 노래한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낭송하는 시간도 갖는다. ‘자연의 숲 걷기’ 명상 체험도 진행한다. 삼광사 대웅보전∼자비동산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참가자들이 천천히 걸으면서 명상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편백나무 숲이 뿜는 피톤치드와 맑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스트레스에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다문화공예품 만들기와 페이스페인팅, 캘리그래피, 캐리커처 그리기 등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다채로운 볼거리를 통해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다. 지관전에서 진행하는 ‘힐링 치유 토크 콘서트’도 눈길을 끈다. 외부의 전문가 패널들을 초청해 다문화가족과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치유 문화에 대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전문 공연팀의 ‘힐링 치유 음악 콘서트’도 이어진다. 다문화가정과 일반인이 장기를 뽐내며 함께 어우러지는 한마당 행사도 마련됐다. 특히 이날 진행될 ‘문화공감 프로젝트’ 공연에서는 실력 있는 젊은 뮤지션들이 대금과 소금, 가야금, 피리, 태평소, 베이스, 드럼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악기로 실험적인 자작곡을 들려주는 시간을 갖는다. 삼광사의 힐링 활동은 ‘나눔광장’과 ‘힐링광장’이 주도하고 있다. 사찰 주지인 무원 스님이 상임대표를 맡고 지역 기관장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두 사단법인은 다문화가족 지원을 비롯해 어린이 합창단 운영, 템플스테이, 법률 지원, 실버 지원, 저소득 취약계층 사회서비스 제공, 자비나눔 무료급식 등 사회봉사 활동과 지역민을 위한 문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삼광사는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봉축 전야 점등 대법회’를 봉행한다. 33인등을 비롯해 연등, 동물등, 12지신장등, 탑등에 이르기까지 4만여 개에 이르는 등이 점등 의식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삼광사 연등축제에는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관광객과 외국인이 몰려 매년 50만 명 이상이 다녀가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이 ‘한국의 아름다운 관광명소 50선’으로 삼광사 연등축제를 다루기도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아파트와 상가만 짓게 돼 있는 뉴타운 재개발 사업의 빗장이 풀린다. 재개발 지역에 코엑스몰, 타임스퀘어 같은 대규모 복합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허용돼 아파트만 지을 때보다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리모델링의 사업성을 떨어뜨리던 ‘내력벽(건물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된 벽) 규제’도 완화된다. 고장이 잦은 신차를 교환, 환불해 주거나 공항 출국장 이용을 개선하는 등의 국민 생활과 밀접한 ‘손톱 밑 가시’도 빠진다. ○ ‘아파트’ 뉴타운, 복합개발로 판 커진다 27일 국토교통부는 올해 업무계획을 통해 재개발 사업에 용도지역상 허용되는 모든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행위 제한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준주거·상업지역에 들어서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오피스텔을 지을 수 있게 허용한 데 이어 한 번 더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리츠, 신탁사 등의 투자 자본이 유입돼 재개발 사업의 판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준주거·상업지역을 포함한 재개발구역은 서울 57곳, 대구 52곳, 경기 49곳을 포함해 전국 218곳에 이른다. 국토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하반기부터 복합개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형 상가나 컨벤션센터를 지을 만한 지역이 많지 않아 도심 역세권 단지가 수혜 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전체 면적의 46%인 5만809m²가 준주거지역인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이다. 이태원 관광특구와 가까워 컨벤션센터, 비즈니스호텔 등이 들어설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전체 면적의 24%가 준주거지역인 흑석뉴타운을 비롯해 영등포구 영등포뉴타운(준공업지역), 동대문구 이문뉴타운(상업지역) 등도 다양한 사업 계획이 논의될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재개발 지역은 재건축 지역보다 기반시설이 열악하고 규제도 복잡해 사업 진행이 더뎠다”며 “복합개발이 허용된 만큼 사업 기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주택을 리모델링할 때 다양한 평면이 나올 수 있도록 안전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 내력벽 철거도 일부 허용할 방침이다. 리모델링 사업 주민 동의 요건을 재건축과 동일한 4분의 3으로 완화하고 안전진단 비용 등 초기 사업비를 지방자치단체 도시정비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낡았지만 용적률이 낮아 재건축을 진행하기 어려운 데다 리모델링도 지지부진했던 경기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6월 기준 1기 신도시에서 15년 이상 지난 아파트는 460개 단지, 29만2252채에 이른다. 또 45만6000채의 도시지역 빈집을 임대주택이나 텃밭 주차장 등 공공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빈집 등 소규모 주택정비 특례법도 제정된다. 한편 부산 면적보다 넓은 문화재 주변 지역에 대한 건축 규제도 완화된다. 문화재청은 “전체 역사문화환경보존지구의 30%에 해당하는 800km²의 면적에 대해 높이 제한과 같은 건축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를 기준으로 반경 500m 안에 속한 지역에 대해 1∼5구역으로 나눠 고도 제한과 신축 금지 등의 건축규제를 차등 적용하고 있다. 김홍동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국가지정문화재 1854건 가운데 올해 500여 건이 건축규제 완화 대상”이라며 “내년에도 추가로 200건의 규제 완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고장 잦은 신차 교환·환불받을 수 있다 새 차의 고장이 반복되면 교환이나 환불받을 수 있는 제도도 도입된다. 국토부는 무상수리 기간 내에 엔진, 변속기, 브레이크 등 안전과 관련된 주요 장치·부품을 4번 이상 수리하거나 신차 구입 후 한달 안에 여러 번 반복해 결함이 발생하면 차를 바꿔주거나 환불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2억 원의 벤츠 승용차를 산 차주가 주행 중 시동이 세 차례나 꺼졌는데도 하자로 인정받지 못하자 벤츠 판매점 앞에서 골프채와 야구 방망이로 차를 부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밖에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에 시간 단위로 차를 나눠 쓰는 ‘카셰어링’ 전용 공간이 마련된다. 관련 사업을 위한 시범 도시도 지정된다. 주차장 요금을 하이패스로 낼 수 있는 ‘하이패스 페이’도 5월부터 시행된다. 최근 벌어진 인천국제공항 수하물 대란과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인천공항 출국장 개장 시간을 오전 6시 30분에서 6시로 앞당긴다. 6월부터 김해공항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을 거쳐 해외로 가는 항공기 탑승객의 추가 보안검색이 면제된다. 보안검색을 마친 후 출국장에서 구입한 음료의 기내 반입도 허용된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북부 구간과 인천대교 통행료 인하도 추진된다. 항공기 좌석 수준의 프리미엄 고속버스와 우등형 시외버스는 6월 시범 운행에 들어간다. 수도권 출퇴근 승객을 위해 광역 급행버스 노선(M버스)을 추가로 신설하고 6월부터 경기 수원시, 김포시에 2층 버스도 도입할 예정이다. 한편 국토부는 제주2, 울릉, 흑산공항에 이어 새만금과 서산, 백령도의 공항 건설 타당성을 검토하는 방안을 ‘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반영하기로 했다. 새만금 지역에 김제, 군산공항의 기능을 대체하는 공항을 건설하고 서산의 경우 군 비행장에 공항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백령도에는 소형 공항을 건설하는 방안에 대한 타당성 분석이 진행된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천호성·김상운 기자}

전북 익산시 쌍릉(雙陵)의 대왕묘에서 1917년 출토된 유물 가운데 신라 토기와 여성 인골이 포함된 사실이 밝혀졌다. 백제 왕릉에서 신라 토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시신이 여성인 데다 신라 토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선화공주가 묻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왕묘의 주인이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이라는 역사학계의 통설을 뒤집는 발견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1917년 일제강점기 쌍릉 대왕묘에서 출토된 치아 4점을 분석한 결과 20∼40세 여성의 것으로 분석됐다고 26일 밝혔다. 예순을 넘겨 사망한 무왕이 대왕묘에 묻혔다고 보기는 힘든 셈이다. 학계는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하려고 계획한 데다 대왕묘가 인근의 소왕묘보다 봉분이 더 크다는 이유 등으로 대왕묘는 무왕, 소왕묘는 왕비가 각각 묻힌 것으로 봤다. 치아 4점은 아래쪽 어금니 2점과 위쪽 송곳니 1점 등으로 서로 중복되지 않으면서 마모 정도가 균일해 한 사람의 치아로 분석된다. 이주헌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치아 4점 모두 목관 안에서 발견됐고 7세기 백제에는 순장 풍속이 없었기 때문에 무덤에 묻힌 사람은 여성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물관 측은 “석실 내 목관 앞에 놓여 있던 토기 1점을 찍은 1917년도 흑백사진을 분석한 결과 7세기 전반의 신라 토기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적갈색의 이 토기는 회백색의 편평한 백제 토기와 달리 바닥이 둥글고, 표면을 물레로 마무리한 흔적이 발견돼 신라 토기로 추정된다. 이 실장은 “백제 왕릉에서 신라 토기가 발견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며 “제사용 토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쌍릉 대왕묘에 묻힌 주인공이 무왕이 아니라면 과연 누굴까. 일각에서는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西)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에 ‘사택왕후의 발원으로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담긴 사실을 들어 사택왕후가 묻혔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백제 유력 귀족 출신인 그의 무덤에 신라 토기를 부장했다고 보기는 부자연스럽다. 더구나 일본서기 기록에 따라 서기 642년에 숨진 ‘의자왕의 어머니’를 사택왕후로 본다면 사비(부여)에 머물던 의자왕이 익산까지 와서 어머니의 묘를 조성했다고 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국유사와 서동요를 통해 무왕과 혼인을 맺은 것으로 전해지는 신라 출신의 선화공주가 대왕묘에 묻혔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신라인으로서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신라 토기를 무덤에 부장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해 4월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도 ‘백제 사비기 익산 개발 시기와 그 배경’ 논문에서 선화공주가 쌍릉에 묻혔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쌍릉이 선화공주의 묘라면 익산 천도를 계획하고 선화공주, 사택왕후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무왕은 정작 어디에 묻혔을까. 이 실장은 “장례가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의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비에 머물던 의자왕이 능산리 고분에 아버지 무왕의 무덤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소왕묘의 주인공은 미지수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펭귄 한 마리를 살리려고 국경을 넘어 세관 직원과 맞닥뜨리는 위험을 감수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저 지독한 동물 애호가가 쓴 ‘달려라 래시’류의 뻔한 에세이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1970년대 초반 남미의 우울한 사회상과 광활한 남미대륙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적절히 녹아든 수작이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영국인 저자는 모험심 풍부했던 20대 초반을 회상한다. 넓은 세상이 궁금했던 젊은이는 아르헨티나 기숙학교의 교사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우체국으로 달려간다. 한때 전 세계를 주름잡던 영국인의 기질은 역시 남다른가.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와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스리랑카, 짐바브웨 등에서 살았던 그의 가족내력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23세 청년은 우루과이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바다에 유출된 기름에 뒤덮여 폐사한 펭귄 무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녀석을 발견한 저자는 숙소로 데려와 기름때를 벗겨준다. 이후 국경을 넘어 일터인 아르헨티나 기숙학교로 펭귄을 데려오기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뺨칠 정도의 온갖 고난이 청년을 기다리고 있다. 펭귄을 씻기다 심하게 물려 깊은 상처를 입는 건 기본이고, 몇 시간을 타야 하는 버스에서 감춰놓은 펭귄이 실례를 하는 바람에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살아 있는 동물을 몰래 데리고 들어오는 건 중범죄”라고 윽박지르는 아르헨티나 세관원에게 붙들려 곤욕도 치른다.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경험이었다. ‘후안 살바도’라고 명명된 이 펭귄이 그와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값진 추억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기숙사의 동료 교사와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들, 그리고 학생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고 반기는 후안에게 푹 빠져든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후안에게 줄 청어를 시장에서 사오고 함께 놀아주는 수고를 자청한다. 후안은 청어를 받아먹고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깊은 위로를 받는다. 세탁실 근무자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낮은 임금으로 고통받는 자신들의 얘기를 후안에게 털어놓는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1970년대 초반 군부 독재정권이 붕괴된 직후의 혼란스러운 아르헨티나 상황을 보여준다. 테러와 무질서로 점철된 아르헨티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표를 바꿀 정도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현물에 비해 현금 가치를 형편없이 떨어뜨리는 인플레이션의 특성상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졌다. 월급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야 하는 기숙학교 직원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당시 교사들은 월급을 받자마자 시장으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였다. 현금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하나라도 물건을 더 사서 지인들끼리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서였다. 고향 영국으로 돌아갔던 저자가 40년 만에 아르헨티나를 다시 찾아가 해양 동물원 ‘문도 마리노’에서 들은 펭귄의 생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사육사는 “펭귄은 무리 동물이기 때문에 한 마리만 방사하면 결국 살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후안을 구한 뒤 다른 해변에 놓아주려고 했지만 후안은 끝까지 자신을 따라왔다. 그때 후안의 행동이 저자에겐 오랜 세월 의문이었지만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마침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제자리에 딱 맞게 자리를 잡은 기분이었다”고 썼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최근 경매에 나왔다가 장물 의혹이 제기된 조선시대 삼국유사(三國遺事) 목판본이 도난품인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날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 현장 감정을 한 결과 신고자가 제출한 사진(영인본)과 삼국유사 목판본의 서체나 얼룩 등이 일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앞서 목판본이 경매시장에 매물로 나온 직후 “돌아가신 아버지가 도난당한 삼국유사 목판본이 경매시장에 나왔다”며 유족이 도난 신고를 해왔다. 문화재계에서 장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4년 전 국립대 도서관을 ‘장물 세탁’에 이용한 대범한 범죄가 경찰에 적발됐다. 범인은 1만 권 가까운 고서(古書)를 훔친 뒤 이를 경북대 도서관에 10년간 위탁했다. 도난품 공소시효 10년이 지나자 위탁해지를 해 도서관에서 고서를 되돌려 받은 뒤 고미술상 등에 팔아넘겼다. 이 중 조선시대 재산 상속 과정을 기록한 ‘홍치(弘治·명나라 홍치제의 연호) 6년 분재기(分財記)’는 1493년 작성돼 분재기 중에선 가장 오래된 것이어서 보물급 가치를 갖고 있었다. 고서를 처음에 훔친 박모 씨는 공소시효가 경과해 빠져나갔고 위탁을 맡긴 건설업자 백모 씨만 장물은닉 등의 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85년 이후 문화재 도난 신고 건수는 705건으로 이 중 회수된 문화재는 29.6%(209건)에 불과하다. 유통 경로가 복잡한 고미술 시장의 속성상 최종 소유자가 도난품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는지를 규명하기가 까다롭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장물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물 구입이나 국가문화재 지정 과정에서 출처나 유통 경로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2012년에 보물 제758-2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공인박물관 소장본)의 경우 지난해 3월 “1988년에 도난당한 물건”이라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문화재청이 8개월 뒤에야 방문 조사를 할 정도로 무관심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국가문화재 지정 단계에서 소유자가 출처나 소장 경위를 입증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조선시대 삼국유사(三國遺事) 목판본(사진)이 경매를 앞두고 장물 의혹이 제기돼 경매가 중단됐다. 문화재청은 “최근 미술품 경매시장에 매물로 나온 삼국유사 목판본에 대해 장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과 함께 조사에 들어갔다”고 20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을 21일 경매회사로 보내 감정에 나설 방침이다. 경매회사는 이날 의혹이 제기되자 삼국유사 경매를 중단했다. 경매회사 코베이에 따르면 매물로 나온 삼국유사는 보물 제419-2호로 지정된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추정된다. 완본이 아닌 권2의 기이(紀異) 편만 수록돼 있으며, 문무왕부터 경순왕까지의 왕실 기사 등을 담고 있다. 서지학계에서는 수량이 적은 조선 초기 목판본이어서 보물급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신고자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도난을 당한 삼국유사 목판본이 경매시장에 나왔다”며 소유 당시 촬영한 사진(영인본)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 현장 감정은 영인본과 실제 목판본의 서체 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목판본 소유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물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삼국유사 목판본은 희귀 고서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경매 시작가가 3억5000만 원으로 정해졌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앞마당이 된 만주에서 조선혁명당이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한인 무장투쟁 조직이 중국 관내(만주를 제외한 중국 본토)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학계의 기존 견해와 다른 사실이다. 황필홍 단국대 교수(개화공정미술 대표)는 “최근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조선총독부가 1934년 작성한 ‘국외 조선인 불온 단체 분포도’를 입수했다”고 19일 밝혔다. 가로 120cm, 세로 80cm의 종이 위에 한반도 북부와 중국 만주 지방이 그려진 이 지도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쇼와 9년(1934년) 12월 작성했다고 적혀 있다. 한국 독립운동 단체의 이름과 소재지는 물론 핵심 간부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재돼 해외 항일투쟁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앞서 2011년 같은 제목의 1930년판 지도를 김재기 전남대 교수가 발견해 공개한 바 있다. 총독부는 각지에 풀어 놓은 밀정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년 이 지도를 만들었다. 1934년판 지도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1930년판 지도와 비교하면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독립운동 단체들의 세력이나 근거지가 크게 바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도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만 그려져 있지만 상하이와 베이징, 난징, 항저우 등에서 활약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애국단, 한국독립당, 한국혁명당, 한국혁명동지회 등의 조직도가 별도로 적혀 있다. 이 밖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뉴욕, 하와이에 근거지를 둔 대한독립당과 대한국민회, 동지회 등도 들어 있다. 이 가운데 항일 단체 국민부와 산하 기관인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이 1934년 당시 남만주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것으로 기록된 점이 눈길을 끈다. 학계에서는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33년 말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이 중국 관내로 이동한 것으로 봤다. 1929년 9월 중국 지린 성에서 결성된 조선혁명당은 ‘일본 제국주의를 박멸하여 한국의 절대 독립을 이룬다’는 강령 아래 조선혁명군을 조직하고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진탁과 양세봉이 이끈 조선혁명군은 1932년 중국 의용군과 힘을 합쳐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국립공주박물관은 백제 금속공예의 뛰어난 상감기법을 보여주는 ‘한국의 고대 상감: 큰 칼에 아로새긴 최고의 기술’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천안 용원리 출토 ‘용봉무늬 고리자루칼’과 공주 송산리 29호분 출토 ‘금상감 고리자루칼’ 등 유물 70점을 선보인다. ‘용봉무늬 고리자루칼’은 봉황의 머리와 용의 몸을 함께 표현해 5세기 백제의 화려한 금속공예를 엿볼 수 있다. 백제 상감기법과 낙랑에서 출토된 상감 유물을 비교하는 전시도 마련됐다. 다음 달 28일까지. 041-850-6362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