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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녹취록(일명 ‘X파일’)을 인용해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인터넷 등에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서울 노원병)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한 법 규정에 따라 노 대표는 이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새누리당 이재균 의원(부산 영도)도 이날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최소 2곳에서 4월 재·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새누리당 김근태(충남 청양-부여) 심학봉(경북 구미갑), 무소속 김형태 의원(경북 포항남-울릉)도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어 4월 재·보선 규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 안철수 출마할까 서울 노원병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여야의 수도권 대결이란 점에서 여론의 주목도가 높다. 새누리당에선 현재 당협위원장인 허준영 전 경찰청장, 민주통합당에선 이동섭 지역위원장, 박용진 대변인, 강현우 전 국회의장 기획총괄비서관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민주당이 진보정의당과 후보단일화를 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출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 전 후보가 3월 초 귀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 만큼 4월 선거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안 전 후보 캠프에 있었던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전 후보의 재·보선 출마 시기에 대해 10월을 언급한 바 있다. ○ 김무성, “부산 영도 출마” 대법원은 노 대표에 대해 “삼성이 검사들에게 로비를 시도한 것은 노 의원의 폭로(2005년)보다 8년 전의 일로 중대한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고 볼 수 없고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올린 것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 대표는 200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앞서 X파일에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고 이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기소됐다. 대법원 판결 뒤 노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기회가 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사면을 받지 않으면 선거법상 공직에 10년 동안 출마할 수 없다. 진보정의당은 15일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한편 새누리당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공석이 된 부산 영도 재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적인 정부가 되게 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동용·최창봉 기자 mindy@donga.com}

민주통합당이 3월 말∼4월 초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하면서 당권 경쟁이 본격화됐다. 지도부 선출 방식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자 후보자들이 속속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비주류 좌장 격인 김한길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친노(친노무현)-주류 측에서는 문재인 전 대선후보의 캠프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김부겸 전 의원을 연대 대상으로 두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김 의원은 지난달 말 한 의원실이 대의원 1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비주류에서도 비토가 강하지 않다는 점과 당의 취약 지역인 대구경북 출신이란 점이 강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의원과 함께 문 전 후보의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박영선 의원, 광주 지역 3선과 재선인 강기정 이용섭 의원, 당의 유일한 부산 지역 3선인 조경태 의원도 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486그룹은 임종석 전 의원에게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정세균 의원의 선택도 주목된다. 정 의원 측 한 인사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사람이 당권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적절한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위원의 경우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의 우원식 이목희 의원이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 재선인 유성엽 의원도 출마할 뜻을 나타냈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13일 모바일 투표 존치 여부 등을 논의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지난해 대선에 대해 “정당인이 아닌, 정치권 밖 사람으로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응원단장’으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했다. 그만큼 문 후보의 패배에 허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보수적 개혁’을 통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남북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새 정부의 임무이자 진보가 살길이라고 본다는 취지다. 그러나 그는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인터뷰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1시간 45분간 진행됐다. 조 교수는 지난해 12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선 때문에 연기한 ‘묵언안거(默言安居)’에 들어갑니다. SNS 활동 및 언론 노출 일체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조 교수의 안거 이후 첫 인터뷰였다.동아일보는 조 교수를 시작으로 진보진영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릴레이로 게재한다.―‘걱정이 된다’고 했는데….“박 당선인이 (선거 때) 밝힌 정도의 복지 개혁을 실현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본다. 보수적 복지국가가 이뤄진 다음에 또 한 번의 새로운 논쟁과 멋진 대결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박 당선인은 보수진영에서 볼 때 혈육 같은 느낌을 준다.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보수의 아이콘이지 않나. 정통 보수라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이 복지개혁을 했을 때 누가 박 당선인에게 좌빨이라고 하겠나. 그러려면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의 총체적 능력에 대해 신뢰를 가져야 하는데 윤창중 이동흡 김용준 인선을 보면 걱정이다. 야구로 보자면 3자 삼진 아웃이다. 1번, 2번, 3번을 최정예 선수로 내보내야 하는데 함량 미달이었다.”―박 당선인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어떤 사람의 의견을 듣고 저 세 ‘타자’를 뽑았는지 여당 의원들도, 언론도 잘 모른다. 그럼 본인(만)의 데이터베이스나 수첩, 파일이 있거나, 십수 년 된 비서진의 의견만 듣는 것인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의사결정구조 자체가 어떻게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 식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원화되고 언론자유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아버지처럼 몇십 년 할 수도 없다. 자기는 5년밖에 못 한다.”―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위험하다는 말로 들리는데….“그는 자기 확신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실제 자신이 치른 선거를 다 이겼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도 당원 투표에서는 이겼다. 어릴 때부터 권력의 냉혹함과 생리를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권력을 잘 아는 ‘생래적 정치인’이다. 이게 역으로 ‘내가 다 알아’라고 하기 쉽다. ‘아버지나 내 앞에서 어떻게들 행동하는지, 어떻게 배신하는지 다 봤어. 어떻게 하면 발발 기는지도 알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권이 새롭다고 느끼지 않고, 자기 집(청와대)에 다시 간다고 생각할 것 같다. 가업(家業)을 잇는다는 느낌 아닐까. 결국 국정 운영을 해 보지 않았는데 해 봤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이 위험하다. 그 신호가 최근 세 번의 인사로 드러났다.”―그러나 박 당선인은 인사청문회가 신상 털기 식이라고 했다.“잘못됐다. 자기 성찰을 안 하신 거다. 당선되기 전까지는 자기 세력을 결집하고 모든 문제를 아(我)와 타(他)로 구별한다. 아군은 결집하고 적군은 죽여야 하는 것이다. 집권할 때까지 선거는 현대의 변형된 전쟁이다. 저도 (박 당선인이 보기에) 얼마나 밉겠나. 죽여야 할 놈 리스트에 오른 것 아닌가. 조선시대 같으면 참수 대상이거나 적어도 귀양 갔다. 다행히 민주주의 사회니까…. 그러나 집권 후에는 자기방어 기제에서 자기 성찰로 바뀌어야 하는데 박 당선인처럼 승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자기 성찰이 봉쇄당한다. 진짜 원했던 (대선) 승리를 한 순간 승자의 역설이 시작되는 것이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박 당선인은 틀림없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정관정요’에 나오는 통치론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비자가 군주에게 악이 되는 여덟 가지 장애로 열거한 ‘팔간(八姦)’을 들여다보고 ‘충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반대파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하지는 않겠다. 제 이야기를 듣겠나.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세월은 지나간다. 지금 기세라면 내년 지방선거는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태로 2016년 총선을 한다? 저는 질 거라고 본다.”―박근혜는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돼야 할까.“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라고 했으니 복지국가를 건설하라는 것이다. 5년 뒤 어떤 대통령으로 남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보수적 복지국가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냐, 아니면 단순히 아버지의 딸이었느냐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는 독재를 했지만 복지 측면에서 의료 개혁을 한 점은 기억된다. 아버지의 모자랐던 반쪽을 채워주려는 열망이 있을 거라고 본다. 박 당선인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5년을 망치면 ‘봐라, 이럴 줄 알았다’라든가 ‘생물학적 DNA 외에 정치적 DNA가 있는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박 당선인 주변은 어떻게 해야 하나.“정권 창출에 누구보다 애를 썼지만 이제는 목숨 걸고, 자리 욕심 없이 직언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나서야 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다. ‘박 당선인을 옹위하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망치고 대한민국을 망친다. 당선 전에는 진보진영이 (단일화 과정에서) 잠시 내려놓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깃발을 낚아채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진보가 제기한 시대정신을 받은 것이다. 시대정신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시민과 대중의 요구 아닌가. 적어도 담론의 차원에서는 우리나라 전체가 진보화됐다. 그러나 당선 후에는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박 당선인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대선 때 말한 복지나 경제민주화 공약으로만 보면 메르켈처럼 보인다. 그걸 지키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보다도 못할 것 같다. 대처는 정책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했지만 측근과 고위직 인사 관리에 탁월했다. 측근이 누군지 안다면 언론이나 주변에서 감시할 수 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측근이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다.”―박 당선인의 헤어스타일을 지적했다.“왜 그런 머리 모양을 고수할까. 자기 자신을 육영수 여사의 외양, 박 전 대통령의 정신과 일체화하기 위한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지자들도 두 사람이 겹친 모습으로 보고 있다.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킨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모습으로 선포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본다. 당선 전과 후에 달라져야 한다고 했는데 부차적으로 머리 모양도 바꿨으면 한다.”―범진보진영은 어떻게 해야 하나.“제가 48%에 속하지만 상처가 크다. 승복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문재인, 안철수, 민주당, 나 등등 다 했을 때 범진보진영의 실력이 부족해서 선거에 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제기한 복지 담론과 시대정신을 반대파가 집권한 5년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해야 한다.”―구체적으로 뭘 고민해야 하나.“여야 공약의 공통분모를 확정하고 빠른 시기에, 올해 내로 즐겁게 통과해야 한다고 본다. 전체 공약을 100이라고 하면 적어도 30%는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공통공약을 처리하기 위해 진보진영과 박 당선인 정부 간에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다. 박 당선인도 상생정치를 하려면 합의된 공통공약부터 정리하고 가야 한다.”―박 당선인의 성공을 진보진영도 바랄까.“진보진영에 있는 분들도 박 당선인 흠집잡기나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진보의 의제였는데 보수의 의제로 바뀐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실현되도록 요구하고 이뤄 내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다. 동시에 새 정부가 오만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판하고 경계해야 한다. 지금 박 당선인 진영은 축제분위기일 텐데 3년 뒤에는 어떨까. 예수님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더라도 3년 뒤에는 어떨지 모를 것이다. 완벽한 대통령, 완벽한 정권, 완벽한 인간은 없다. 박근혜 정부가 초기 2년에 자신의 개혁성과를 합의해서 이루고 중반기부터는 그 다음 레이스로 들어가야 한다.”―‘번짐’의 미학은 진보와 보수 사이에도 유효한가.“당연하다. 번져야 한다. 여당이 야당이 되고 다시 여당이 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안착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야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 그전까지는 복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대를 알게 되면 스스로 공격의 강도와 범위를 조절하게 된다. 팩트(fact·사실) 신경 쓰지 않고 정파적 목적을 위해 공격하는 사람은 소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 정권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조 교수는 그의 저서 ‘보노보 찬가’에서 장석남 시인의 시 ‘수묵정원9―번짐’(‘너는 내게로/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번짐/번져야 살지’)을 인용해 번짐의 미학이 진보진영 내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진보 집권 플랜 2’를 만들 생각은….“없다. 지난 세 번의 선거에 소요했던 기간(2년여)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어떤 정치적 활동도 하지 않고, 여의도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응원단장도 안 할 거다. 조선시대를 보면 출사했다가 왕이나 훈구파와 싸워서 안 되면 조용히 서당으로 돌아온다. 정치에서는 자기 선거를 한 사람 중심으로 가야 한다. 밖에 있는 사람을 끌어와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국 교수 프로필△1965년 부산 출생△1982년 부산 혜광고 졸업△198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9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법학박사 △2001년 서울대 법대 교수 임용△2012년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상임대표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박근혜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한 51.6%가 아니라 그를 반대한 48.0%에 속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의 말이다. 정치권 밖 진보진영의 대표적 인사로 대선 기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던 조 교수는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당선인이 선거 기간 스스로 이야기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임기 내에 이루지 못한다면 나라 전체가 5년 뒤 또다시 ‘좌빨’이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들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조 교수는 박 당선인에게 “보수적 개혁을 강화해 복지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진보진영의 집권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댓돌론’에 비유해 풀이했다. 박 당선인의 보수적 복지 개혁을 댓돌 삼아 진보진영은 거기에 플러스알파를 더해 박 당선인이 하지 못하는 진보적 복지 개혁을 하겠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논지다. 그는 “(진보진영의) 집권은 정부의 꼬투리를 잡고 망하기를 기다리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여러 작은 에피소드와 업적을 통해 (진보진영의 능력과 실력이) 대중에게 각인될 때 찾아온다”라며 “한 번에 한 칸씩 올라가는 것이지 두세 칸을 비약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 개혁을 취임 후 2년 내지 2년 반 안에 해내려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최근 인사 문제가 초반부터 신뢰를 깨고 있다”라며 “박 당선인은 이를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 당선인이 “신상 털기 식 인사청문회는 문제가 있다”라고 한 발언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는 지적도 했다. 특히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자기 주도로 숱한 승리의 경험을 맛본 박 당선인은 이전 대통령들보다 오만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그는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까지는 당파적으로 움직여도 되지만 당선 후에는 51%의 대통령이 아니라 100%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라며 “대통령은 48%를 챙겨야 할 헌법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을 관리와 협상의 대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새 정부의 또 다른 임무”라며 “박 당선인이 북한의 김정은을 만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1990년 추석을 나흘 앞둔 토요일 이른 아침 서울 을지로4가 국도극장(현 국도호텔 자리) 매표소에서 시작된 줄은 극장을 끼고 조명기구상점이 밀집한 골목으로 50m쯤 꺾어져 들어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올 영화가 아닌데….’ 의아하던 마음은 곧 풀렸다. 조조(早朝) 관객 100명에 한해 호화 팸플릿을 준다는 광고를 보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방법을 쓰면서까지 영화사는 개봉일에 극장 앞이 사람으로 가득하길 바랐다. 극장 앞 장사진(長蛇陣)을 봐야 제작자, 감독, 극장주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화예매도 흔치 않던 1990년대 후반까지 관객의 행렬은 입소문의 주요 수단이자 흥행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은 지금처럼 한 영화관에 스크린이 여러 개인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객석이 많은 극장이었다. 이곳에서 히트작이 상영될 때는 매표소부터 시작된 줄이 극장 뒤편으로 돌아 필동 ‘한국의 집’까지 늘어서거나, 극장 앞 지하도 입구로 내려가 왕복 8차로 건너편 극동빌딩 앞 지하도 출구로 나오기도 했다. 종로3가의 피카디리나 단성사는 주로 극장 앞 작은 광장에 똬리를 튼 줄이 몇 겹이냐로 흥행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었다. 개봉관이나 제작사는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찬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신문에 광고를 냈다. ▷장사진과 더불어 영화가 요샛말로 대박이 터졌음을 알리던 말이 ‘만원사례(滿員謝禮)’였다. 1933년 2월 미국 감독 조지 힐의 작품 ‘태평양 폭격대’를 상영하던 단성사가 동아일보에 ‘연일 만원사례 흥행’이라는 1단 광고를 실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서울 개봉관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편제’를 상영했던 단성사 문에는 100일 넘게 만원사례가 붙어 있었다. 1970, 80년대만 해도 개봉 첫날 전 회가 매진되면 제작사는 커피 한잔 값의 돈을 넣은 만원사례 봉투를 감독, 배우, 제작진에게 돌리는 것이 미덕이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1월 입장권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한국영화를 본 관객이 1198만4471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제까지 최고였던 지난해 같은 달의 824만2562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외국영화를 포함한 관객 수도 역대 최다인 2036만1298명이었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고 총 관객도 사상 최다를 기록한 여세를 이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많게는 1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하고 인터넷 예매가 주를 이루는 요즘 극장가에서 장사진이나 만원사례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고구마튀김을 씹으며 언제 앞의 줄이 줄어드나 초조해하던 그 시절은 추억의 앨범이 됐다.민동용 정치부 기자 mindy@donga.com}

“인사권자여, 오우가(五友歌)를 불러라.”동아일보는 국무총리부터 신설되는 국가안보실장까지 어떤 인물을 등용해야 하는지를 심층 취재한 ‘박근혜 정부-인사가 만사다’를 15회 연재했다. 해당 부처의 전임 수장들과 전·현직 고위 공무원, 그리고 학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총리와 13개 장관(급)을 선정할 때 대통령이 참고해야 할 기준은 모두 67개였다. 이들 기준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시조 ‘오우가’에 빗대어 바위, 대나무, 달, 물, 소나무라는 5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바위처럼 외풍을 막아낼 사람‘정치 외풍’을 소신과 강단을 갖고 바위처럼 견뎌내는 사람이 등용돼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혔다. 정치 외풍은 정부 여당,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이 되는 지역세력, 정권 창출에 일정 역할을 한 조직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세력에서 불어오는 거센 압력과 청탁을 막아내 국민의 이익을 보호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2010년 감사원장 재직 당시) 저축은행 감사에 들어갔더니 오만 군데서 압력이 들어왔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른바 ‘힘센’ 기관들의 외압을 이겨낼 강단이 있어야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정권 덕에 자리에 오른 수장은 자신을 밀어준 세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특정 지역 출신이 국세청장을 비롯해 국세청 고위직을 차지한 적이 있다. 당시 국세청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상대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다. 공정거래위원장도 정권에 따라 역할과 태도가 바뀌다 보니 ‘불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정권, 즉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도 각을 세울 단호함을 가진, 바위 같은 인물을 찾아야 한다. ○ 대나무처럼 소신 있는 사람더 높고 더 나은 자리로 가기 위해 지금의 자리를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곤란하다. 현직에 충실하지 않을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정무직인 장관(급)이 다음에 어떤 일을 할지를 미리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미국에서도 장관은 ‘정치철새(political bird)’로 불리며 항상 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평균 임기가 1년여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러할지 모른다.그러나 정치권력을 좇는 해바라기가 돼서는 곤란하다. 과거 일부 국방부 장관은 다음 자리로 가는 디딤돌로 현직을 이용해 ‘군의 정치 시녀화’ 현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 외풍에 취약한 부처에는 현직을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수장이 있다는 게 거의 통설이다. 국가정보원처럼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곳에서 자신의 다음 자리를 위해 정보를 왜곡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나무처럼 욕심내지 않고 꼿꼿하게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 달처럼 냉철한 전략적 마인드 가진 사람‘오우가’에서 윤선도는 달의 밝음과 과묵함을 강조했다. 먼저 밝음은 명징한 이성을 뜻한다. 냉철한 상황 판단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의 적절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외교통상부 장관은 시시각각 변하는 대외환경 속에서 복잡한 현안을 일목요연하게 풀어 낼 역량을 갖춰야 하며, 국방부 장관은 국가 존립과 국익을 뒷받침할 국방정책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가여야 한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한 해박한 전문성은 조직 장악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과묵함은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다’는 관점에서 해석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 이하 장관(급)들은 대통령의 손발로서 대통령과 비전을 같이하고 정치적 신념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장의 경우 대통령을 대신해 때로는 욕을 먹을 각오가 돼 있는 ‘대(代)통령’이 되어야 한다. 또 대통령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인물이 적합하다. ○ 물처럼 소통해 조직을 장악할 사람물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모든 것을 아우른다.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다. 구성원을 압박하고 통제하기보다는 신념과 열정을 바쳐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적인 리더십, 외압에 맞서기 위해 청와대와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조직에 대한 이해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중요한 판단의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결단할 수 있는 힘도 갖춰야 한다.그러나 미국의 정치학자 휴 헤클로가 말한 것처럼 “장관은 대통령과 공무원(조직 구성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 사이에서 물처럼 유연하게 조정을 잘하는 것은 장관의 몫이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문성만을 갖춘 교수들이, 그것도 얼마 안 되어 바뀌는 현실 속에서는 제대로 조직을 장악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소나무처럼 청렴,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도덕성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과거 정부들의 여러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도 야당의 도덕성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위장전입이 드러난 장관 내정자가 조직에서 신망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나무처럼 겨울 눈 속에서도 홀로 푸를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춘다면 국민이나 조직 구성원에게 주는 롤모델로서의 이미지는 상당하다. 그런 도덕성의 기준은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하다. 조직원의 신망을 받기 위한 기본이다. 특히 감사원장같이 ‘남의 눈의 사소한 티끌’까지도 잡아내야 하는 경우 자신이 도덕성과 청렴함을 갖추지 못한다면 조직 통솔은 여의치 않다. 따라서 청렴성에 대한 엄격함은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남에게 부드럽고 자신에게 엄격함)’의 각오와 용기가 없으면 쉽게 얻기 어렵다.○ 어렵고도 어려운 오우의 잣대오우는 어쩌면 이상이다. 현실에서 오우를 다 갖춘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사람을 찾는 게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인사검증 절차가 강화되고, 인터넷 등을 통한 시민들의 ‘자율적 검증’까지 겹쳐 능력 있는 사람 중 검증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지난 5년의 교훈을 말하자면 대충 ‘이런 정도의 사람이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는 직책별 맞춤형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인사보좌관 역할까지 맡은 대통령법무비서관을 했던 박주선 의원(무소속)은 “능력, 자질, 청렴, 개혁성을 갖춘 인사를 적소에 배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그런 여건을 조화롭게 갖춘 인물을 찾기는 힘들었다”라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대선 패배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사진)의 조기 복귀 가능성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9일 밤 문 전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고, 문 전 후보가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했다고 문 위원장 측이 10일 밝혔다. 문 위원장은 이미 전날 수락 연설을 통해 정치혁신 분야에서 ‘문재인 역할론’을 꺼내놓은 상태. 그래서 당내에선 문 전 후보의 답변을 두고 “당의 요청에 따라 일선에 복귀하겠다”는 뜻이란 해석이 나왔다. 비대위 내에 설치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평가위, 전당대회준비위, 정치혁신위 가운데 문 전 후보가 정치혁신위를 맡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당내 비주류 의원들 사이에서는 문 전 후보의 조기 복귀는 옳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돌아오더라도 문 전 후보가 진지한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문 위원장은 이른바 ‘전국 사과 투어 버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박용진 대변인이 전했다. 문 위원장이 곧 임명될 비대위 위원들과 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지지자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문 위원장은 문 전 후보도 같이 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대선 패배 이후 충격에 빠진 민주통합당을 수습할 비상대책위원장에 5선의 문희상 의원(경기 의정부갑·사진)이 선출됐다. 민주당은 9일 국회에서 국회의원·당무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문 의원을 만장일치로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이르면 3월 말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때까지 대선 패배 후유증을 수습하고 당 쇄신과 변화를 지휘한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을 둘러싸고 계파 간 갈등이 여과 없이 노출됐다는 점에서 ‘관리형’인 문 위원장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문 비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각오로 민주당을 바꾸겠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선후보에 대해서는 “새 정치의 에너지를 우리 당에서 흡수해서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또 “새로운 세력을 보충하면서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라고 해 안철수 전 대선후보를 비롯한 당 밖 세력을 아우를 것임을 시사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사무총장에 김영록 의원(재선·전남 해남-완도-진도)을, 정책위의장에 변재일 의원(3선·충북 청원)을 내정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선출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7일까지도 인선의 가닥이 잡히질 않고 있다. 당내 의견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9일 국회의원·당무위원 연석회의에서 합의추대가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지적과 함께 선출되더라도 당내 계파 간 힘겨루기를 재확인한 만큼 강한 리더십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재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박병석 이낙연 원혜영(이상 4선), 박영선(3선) 의원 등이 거론된다. 박병석 의원은 계파색이 옅고 중립지대 의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러나 국회부의장이 임시 당대표인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적절하느냐란 지적이 있다. 이 의원은 중도 성향이지만 대선 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는 점에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 의원은 친노(친노무현)그룹으로 분류돼 비주류 측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점이 부담이다. 이인영 의원 등 초·재선 의원 11명은 박영선 의원을 추대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전직 원내대표단은 7일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기는 3월 말이나 4월 초가 좋고, 비대위는 당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도 높은 지난해 총선, 대선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뜻을 박기춘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 김진표 김한길 박지원 이강래 장영달 천정배 전 원내대표 등 6명은 여의도에서 박 원내대표와 오찬 간담회를 갖고 “비대위원장은 합의추대가 우선 돼야 한다”며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고 박용진 대변인이 전했다.이남희·민동용 기자 irun@donga.com}
새해 예산안 처리 직후 외유성 해외출장을 떠나 여론의 뭇매를 맞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예결위원장인 새누리당 장윤석, 민주통합당 최재성, 홍영표 의원이 6일 새벽 급히 귀국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자책했다. 그는 “의원 생활 9년 내내 공무가 아니면 해외에 가지 않았고 이번에도 세계유소년축구연맹 설립 등과 관련해 케냐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왔지만 예산 처리 직후 간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부인을 동반한 데 대해서는 “아내의 경비는 자비로 부담했다”고 했다. 최 의원은 새누리당 김학용(간사), 김성태 의원, 민주당 홍 의원과 함께 2일 케냐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3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두 김 의원은 9일경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예산안이 해를 넘겨 처리된 직후 한꺼번에 해외 출장에 나선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엄한 질책은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다. 장 의원은 예산안 처리 직후인 1일 새누리당 김재경 권성동, 민주당 안규백 민홍철 의원과 함께 10박 11일 일정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 파나마 등 중미 3개국 방문길에 나섰다 여론이 악화되자 조기 귀국했다. 다른 의원들은 11일 귀국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민주통합당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6일 기자간담회에서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이달 임시국회에서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취득세 감면은 지난해 9월 정부의 부동산 경기 활성화 조치로 시작됐으나 같은 해 말로 만료됐다. 새누리당이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가세하면서 15∼21일 사이에 개회될 것으로 예상되는 1월 임시국회에서 감면 연장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2일 취득세 감면 혜택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취득세 감면 혜택 연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며 민주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도 약속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이 원내대표는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임시국회가 열리기 전이라도 소관 상임위원회(행정안전위)에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핵심은 감면 혜택을 얼마나 연장할 것인지다. 1년 연장될 경우 지방세수는 2조9000억 원가량 줄어든다. 한편 이번 임시국회에서 새누리당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은 쌍용자동차 해고자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새누리당은 해양수산부 부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 박 당선인의 공약 실현을 위해 새 정부의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에 앞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해양부 부활에는 찬성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구체적인 안을 보고 찬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동용·고성호 기자 mindy@donga.com}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 준비에 집중하는 과도기적 성격의 ‘관리형 비대위’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전당대회 경선 룰을 만드는 비대위가 돼야 한다”며 비대위의 역할을 ‘전대 관리’로 국한시켰다. 지난해 12월 28일 원내대표로 선출된 직후 “비대위원장은 당 전체를 실질적으로 혁신하는 혁신의 사령탑”이라며 대선 패배에 대한 엄정한 평가, 당 쇄신 및 정치개혁 논의 등을 망라하는 ‘혁신 비대위’를 시사했던 것에서 후퇴한 것이다. 비대위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계파 간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새 지도부를 선출해 당의 수습을 맡기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 상임고문단도 3일 박 원내대표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비대위원장은 전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사람이 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박상천 전 대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등 민주당 전직 의원 80명은 비대위원장으로 정대철 상임고문을 추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비대위원장은 계파를 초월해 노장청의 대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경험과 경륜을 가진 인물이 추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백서요? 그걸 만들었던가요?”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2일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당 차원의 백서(白書)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531만 표 차로 대패한 선거에 대한 당의 공식적인 반성과 분석의 기록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민주당이 2008년 5월 발간한 백서의 내용, 깊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당시 ‘새 출발을 위한 솔직한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대선 백서를 펴냈지만 전체 514쪽 가운데 무려 500쪽을 선거 관련 조직 구성과 활동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대선 패배 평가 및 당 체제 혁신 방안’은 불과 11쪽뿐이었고, 그것도 부록 형식이었다. 이름만 백서지 실상은 선거자료 모음집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백서는 기약이 없다. 패인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 자성(自省)이 절실할 법도 하건만 당 내부에선 “졌는데 무슨 백서냐”란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심의관 이현출 박사는 “백서는 이긴 정당보다는 진 정당에서 중요하다”며 “패자가 실패를 거울삼아 당의 좌표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선 패배 후 2주일이 지났지만 민주당이 아직까지도 책임론을 두고 계파별로 ‘네 탓’ 공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예산 관련 부대의견을 이유로 헌정 사상 초유로 해를 넘겨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게 만든 것도 ‘왜 졌을까’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민주당이 반대한 것이 대선 패인 중 하나로 꼽히는데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방송 보도가 편파적이어서 선거에 졌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민주당의 성찰을 방해할 수 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이날 KBS MBC 등 공영방송 이사진을 여야 동수로 추천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도의 공정성, 편성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지만 “방송이 편파적이었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어서 “또 남 탓이냐”란 비판이 나온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당직자 시무식 인사말과 YTN 인터뷰에서 “말로는 선당후사(先黨後私)를 외쳤지만 사심(私心)을 앞세웠던 것은 아닌지 (대선 패배의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며 “언론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장 인선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을 듣고 있지만 개인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도 있고, 당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말씀도 많았다. 현장에는 사심과 사욕이 득실거린다”며 “사심과 사욕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를 듣는 비대위원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아이돌걸스’ ‘오케이뱅’ ‘캔디마피아’.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아이돌 그룹을 벤치마킹한 다른 나라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아이돌걸스는 ‘소녀시대’와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여성 9명으로 이뤄진 중국의 걸그룹이다. 오케이뱅은 이름부터 ‘빅뱅’을 어설프게 흉내 낸 티를 내는 중국의 보이그룹이다. 캔디마피아는 태국의 걸그룹으로, ‘2NE1’의 헤어스타일과 의상 그대로 무대에 선다. 아시아 각국에서 최근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을 본뜬 ‘짝퉁 아이돌’이 등장해 한류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아이돌걸스나 오케이뱅의 처지였다. 주로 일본 것을 모방했다. 1987년 데뷔한 남성 3인조 댄스그룹 소방차는 역시 남성 3명으로 구성된 일본 댄스그룹 ‘쇼넨타이(少年隊)’를 따라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일본 록그룹 ‘X-저팬’의 노래를 우리 가수나 그룹 서너 명(팀)이 동시에 베껴 불렀다. 자신의 노래가 일본 그룹 ‘튜브’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걸 알게 된 배우 김민종이 가수생활 중단을 선언한 게 불과 16년 전이다. ▷198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 엑셀이 미국에서 잘 팔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 CNN의 뉴스 앵커는 ‘Hyundai’를 ‘현다이’라고 발음했다. ‘현대’보다는 ‘혼다’에 가깝게 들렸다. 일본차의 아류 정도로 인식됐다.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과 삼성전자가 만든 마이마이를 비교하면서 ‘어휴, 언제 워크맨 같은 걸 우리가 만드나’ 하고 한숨지었던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물론 이제 미국인들은 현대를 ‘현대’라고 발음하고 삼성전자는 애플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다. ▷지금이야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과거에는 미래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기 때문에 벌어지고 나면 엄청난 놀라움과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사건을 ‘X-이벤트’라고 한다. 9·11테러나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이 대표적인 예지만 우리 가요를 전 세계인이 부르고,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서며 현대자동차가 혼다를 제친 일은 우리에게 X-이벤트다.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매긴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X-이벤트가 한국 정치에서도 벌어진다면 나쁘지 않겠다. 민동용 주말섹션 O₂팀 기자 mindy@donga.com}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착륙하는 순간을 인터넷 생중계로 보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큐리오시티가 화성 대기권에 진입해서 착륙하기까지의 이른바 ‘공포의 7분’에 접어들자 통제실의 NASA 연구원들이 일제히 땅콩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통제실 곳곳에 땅콩을 가득 담은 플라스틱 병이 놓여 있었다. 땅콩 병에는 ‘장대한 일을 꿈꾸라(Dare Mighty Thing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중대한 우주 탐사가 벌어질 때 NASA 연구원들이 땅콩을 먹는 전통은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NASA는 달 표면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하기 위해 레인저라는 무인우주선을 쏘아 올렸지만 여섯 번째까지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1964년 7월 일곱 번째 무인우주선인 레인저 7호가 달을 향해 접근했을 때 누군가가 통제실 연구원들에게 땅콩을 돌렸다. 그 덕분인지 레인저 7호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달 표면을 근접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땅콩은 NASA의 행운의 부적이 됐다. ▷우주왕복선을 발사하기 전, NASA 우주인들은 우주복을 입고 간단한 카드게임을 하는데 대장이 져야만 게임이 끝나고 비로소 발사장으로 향한다. 로켓이 발사되기 전에 우주인들은 멋있게 장식된 케이크를 놓고 기념사진을 찍되 어느 누구도 먹어서는 안 된다. 일종의 터부(Taboo)다. 러시아 우주인들은 좀 더 독특하다. 이들은 로켓에 오르기 직전에 발사장까지 자신들을 싣고 온 차량의 바퀴에 소변을 본다고 한다. 최첨단 기술과 초정밀 수학이 집적된 우주과학 영역에서도 좋은 결과를 바라는 인간의 비과학적 의례는 필수인가 보다. ▷긴장된 일을 앞두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 방편일 수 있는 이 같은 행동이나 신념이 더 두드러지는 분야가 스포츠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국가대표 중에도 경기 직전에 꼭 손톱을 자르거나, 예선부터 결선까지 속옷과 양말을 갈아입지 않거나, 면도를 한 번도 하지 않는 선수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이런 징크스가 아니라 훈련과 노력에 따라 결국 승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을 잘 안다. 프로야구 선수 이승엽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메달을 땄든, 못 땄든 지난 4년 동안 흘린 땀의 대가를 받았을 그들이 진정 챔피언이다. 민동용 주말섹션 O2팀 기자 mindy@donga.com}

▷‘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는 감자를 어린이 손가락 굵기로 길게 썰어 기름에 튀긴 음식이다. 이 프렌치프라이가 ‘프리덤프라이(Freedom Fries)’로 불린 적이 있다. 2003년 프랑스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전쟁 개시에 반대하자 미국 하원은 건물 내 카페테리아 메뉴에서 프렌치프라이를 프리덤프라이로 바꾸게 했다. 프렌치토스트는 프리덤토스트가 됐다. 미국 내 일부 식당도 이에 동참했다. 프랑스에 대한 항의이자,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했다. ▷몇 년 뒤,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던 미국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자 프리덤프라이는 슬그머니 본래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작가 칼 크리스트먼이 2006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리덤프라이: 그리고 손주들에게 설명해야 할 어리석은 짓거리’는 ‘프랑스를 비난하고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던 시위대의 성조기는 모두 중국제였다’고 지적했다. 애국심을 표방한 비상식적인 행동의 이면에 도사린 위선과 모순을 풍자한 것이었다. ▷지난주 미국 사회와 정치권은 중국산 옷 때문에 펄펄 끓었다. 27일 열리는 영국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미국 선수단이 입고 나올 유니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중국산 유니폼을 성토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중국산 유니폼을 모두 쌓아놓고 불태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니폼을 디자인했던 미국의 고급 의류 브랜드 랄프로렌은 성명을 내고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반드시 유니폼을 미국에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랄프로렌이 디자인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미국 선수단 유니폼 역시 중국산이었다. 당시에도 그 사실이 알려졌지만 이번처럼 십자포화를 받지는 않았다. 2008년 이전 10년 동안 미국 선수단의 올림픽 유니폼 또한 미국에서 만들지 않았다. 이미 미국 의류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현재 미국 의류업체의 제품 중 5%만이 미국 내에서 제작된다. 리드 원내대표가 일상적으로 입는 옷도 대부분 미국 밖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그가 자신의 옷도 불태울 수 있을까. 이번 논란이 ‘프리덤프라이’ 소동의 재판(再版) 같아 보이는 이유다. 민동용 주말섹션 O₂팀 기자 mindy@donga.com}

▷10여 년 전 TV 쇼 프로그램에 인기 절정이던 댄스그룹 H.O.T.가 출연했다. 공개홀을 가득 채운 어린 관객의 울부짖음 섞인 환호에 정신이 팔렸는지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외쳤다. “한국의 비틀스, H.O.T.입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해도 일개 댄스 그룹을 비틀스에 비교하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해서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면 이런 일은 애교에 속한다. ‘록의 전설’이니, ‘발라드의 여신’이니 하면서 좀 실력 있는 가수나 그룹은 무조건 만신전(萬神殿)에 올려놓는다. 말(言)의 인플레이션 시대다. ▷말의 인플레이션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언어가 범람하는 이 시대의 현상만은 아니었나 보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동명 원작소설을 쓴 작가 앤서니 버지스는 1964년 펴낸 책 ‘평범해진 언어(Language Made Plain)’에서 ‘그저 선율이 아름다운 팝송을 기막히게 멋지다고 말한다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도대체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며 통탄했다. 그는 ‘과장된 표현이 모든 의미를 망쳐 놓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현 정부를 두고 “패악무도(悖惡無道)한 정권”이라고 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난, 흉악하며 막된 정권’이라는 것이다. 현 정권을 어떻게 칭하건 그건 말하는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궁금한 게 있다. 이 대표는 1970년대 유신독재와 1980년대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대에 저항했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당시의 정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패악무도한 정권이란 연산군이나 로마 시대 네로 황제의 통치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의 절대 약세 지역인 대구에 출마했다 떨어진 김부겸 전 의원은 대구 민심을 돌리기 쉽지 않은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도 이명박 정권이 잘못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 정권이 잘사는 나라를 하루아침에 망쳤다는 식으로 오버하는 걸 싫어한다. 그런 게 자꾸 쌓이니까 민주당에 대해 고개를 돌려버리더라.”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이나 독설보다는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야 너른 공감을 살 수 있다. 민동용 주말섹션 O₂팀 기자 mindy@donga.com}

14일 영국 맨체스터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는 흔치 않은 장면이 벌어졌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2011∼2012시즌 우승팀이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로 결정되는 순간 관중석에 있던 홈팬 수천 명이 축구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후반 정규시간이 종료될 때까지만 해도 맨시티는 한 골 뒤지고 있어 44년 만의 1등이라는 영예는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5분의 추가시간에 두 골을 넣어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자 흥분한 팬들이 스탠드를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스포츠 경기가 끝나거나 끝나기 직전에 관중이 경기장으로 난입하는 현상을 영국에서는 ‘운동장 침입(pitch invasion)’, 미국에서는 ‘운동장 돌진(rushing the field)’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대학 미식축구나 농구 경기에서, 영국에서는 하위리그 축구 팀들 간의 경기에서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패배했을 때 분노해서 뛰어드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역사에 남을 만한 극적인 승리를 거뒀거나 약체로 평가받던 홈팀이 예상을 뒤엎고 강팀을 이겼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침입자’ 수는 상관없다. 1만 명이어도 1명이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1970∼90년대 모개너 로버츠라는 운동장 침입자가 유명했다. 이 여성은 주로 메이저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야구장에 뛰어들어 유명 선수의 볼에 키스를 했다. 노히트노런을 7차례나 수립한 투수 놀런 라이언을 비롯해 당대의 스타들이 ‘희생양’이 됐다. 한 신문이 모개너에게 붙인 ‘키스 도둑’이라는 별명은 아예 애칭이 돼버렸다. 나중에는 관중도 선수들도 모개너가 운동장을 질주하면 놀라는 대신 웃음과 박수로 화답해줬다. ▷한국에서는 고교야구가 한창 인기를 끌던 1980년대까지 우승팀 동문이나 학생들이 운동장 침입을 한 적이 있었다. 통합진보당의 12일 중앙위원회 석상에서도 관객이 밀고 들어오는 ‘운동장 침입’이 벌어졌다. 당시 무대 위로 뛰어올라 조준호 전 공동대표의 머리채를 뒤에서 잡아당겼던 여성은 ‘머리채녀(女)’라고 불린다. 키스 도둑의 운동장 침입은 애교라도 있었지만 어금니 앙다물고 아버지뻘 공동대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드는 모습은 악에 받쳐있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민동용 주말섹션O₂팀 기자 mindy@donga.com}

▷16년 전 극장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풀 메탈 자켓’을 본 적이 있다. 영화 전반부는 1960년대 베트남전쟁 중의 미군 해병대 신병훈련소가 배경이다. 동작이 굼뜨고 아둔한 신병 파일은 교관 하트먼 중사의 ‘밥’이다. 사격은커녕 총기 분해조차 제대로 못하는 파일을 하트먼 중사는 모욕적으로 대한다. 파일 때문에 단체 기합을 계속 받아 화가 난 소대원들이 어느 날 밤 잠자는 그를 집단 폭행한다. 결국 정신이 황폐해진 파일은 신병훈련소를 나가기 전날 밤 하트먼 중사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자살한다. ▷영화를 본 나의 소감은 ‘아니, 저런 걸 갖고 뭘 저러나…’였다. 영화에서 ‘고문관’ 파일이 받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수준은 당시 육군(정확히는 카투사) 상병이던 내가 보기에 별것 아니었다. 중학교 때 이미 원산폭격(엎드려뻗쳐 자세에서 팔 대신 머리로 몸을 지탱하는 얼차려)을 경험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교 후문에서부터 현관까지 학생을 때리면서 몰고 오는 광경도 목도했다. 논산 신병훈련소에서 구타는 없었지만 영화 속 파일이 듣던 욕설에 버금가는 폭언도 들어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섬뜩해졌다. 일상의 폭력에 너무 관대해져 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교사가 학생을 손찌검하는 건 상상조차 못하고 얼차려도 옛이야기가 됐다. 군대에서 구타와 폭력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연대장이 고참병들이 때리면 신고하라고 신병들에게 휴대전화가 적힌 명함을 줄 정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폭력 둔감증(鈍感症)이 잔존하고 있다. 신입생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이랍시고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고 때리는 일부 대학 이야기가 매년 어김없이 등장한다. 선배 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의 폭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주 경북 영주에서 또 꽃다운 중학생이 스스로 삶을 등졌다. ‘자꾸 나를 안으려고 한다. …폭력 서클에 가입하라고 한다’는 소년의 유서를 보면서 ‘저런 걸 갖고 저럴 것까지야…’ 하고 생각했을 성인들이 아마 없지는 않았을 성싶다. 학교 안에서 집단따돌림과 일진을 뿌리 뽑으려 애쓴다 해도 학교 밖 사회가 폭력에 둔감하다면 해결의 길은 멀다. 우리 안에 잠복한, 폭력에 대한 내성(耐性)이 두렵다.민동용 주말섹션 O₂팀 기자 mindy@donga.com}

“구겨진 종이가 멀리 날아갑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 경기에 출전한 이승훈 선수가 네덜란드 선수를 한 바퀴 넘게 앞설 무렵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이렇게 외쳤다. 이승훈은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지자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 주위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1만 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살면서 실패를 맛본 적 없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달 제84회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메릴 스트립도 예외는 아니다. 2년 전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그를 두고 당시 영화제 사회를 맡았던 코미디언 스티브 마틴이 말했다. “그는 오스카 후보에 가장 많이(당시까지 16회) 올랐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당시까지 14회) 떨어졌습니다.”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 통산 3만 점 이상을 득점한 4명 중 하나인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1만2000번 넘게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고, 300경기 넘게 졌다. ▷6년 전 정치부 시절에 알게 된 언론사 출신 한 선배와 지난주 통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전남에서 민주통합당의 총선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직후였다. 그는 4년 전부터 출마 지역에서 터를 닦기 위해 애를 썼다. 지역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이려 했고, 틈틈이 서울을 오가며 ‘여의도 정치’의 흐름을 좇는 데도 뒤처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 어쭙잖게 힘내시라고는 했지만 통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목소리는 밝아지지 않았다. ▷전국 246개 선거구에서 모두 927명이 4·11총선 후보로 등록했다. 이보다 약간 많은 수의, 선량(選良)을 꿈꾸던 사람들이 공천에서 탈락의 쓴잔을 들었고 다음 달 11일이 지나면 여기에서 681명의 패배자가 나온다. ‘거듭된 실패가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식의 위로가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나라에도 팬이 적지 않은 일본의 만화가 아다치 미쓰루(あだち充)는 1980년대 히트작 ‘터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 않으면 구겨지지도 않는다. 굳은 신념에서든, 허튼 욕망에서든 어쨌든 뭔가는 해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민동용 주말섹션 O2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