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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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중현 논설위원입니다.

sanjuck@donga.com

취재분야

2026-04-12~2026-05-12
칼럼100%
  • [횡설수설/박중현]비혼 축의금

    “친구들 결혼 때마다 꼬박꼬박 내왔다면 본인이 ‘비혼(非婚)주의’를 선언하고 요구할 경우 당연히 줘야 한다.” “축하하려고 낸 거지 순번 정해 타려고 곗돈 부은 건 아니잖나. 돈 아까워 회수하겠다는 심보다.” 몇 년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논쟁거리로 등장하는 비혼 축의금 논란의 찬반양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중장년 세대에겐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 솔로 청년들은 정색하는 문제다. ▷작년 1월 PD 겸 방송인 재재가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비혼식(式)’ 경험을 공개했다. 친구들을 모아 비혼을 선언하고 축의금도 받았다고 했다. 올해 4월에는 한 인터넷 동호회에 ‘비혼이니까 축의금 안 내겠다는 친구’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하나가 첫 번째로 결혼하는데 다른 친구가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니까 축의금을 내지 않겠다. 결혼식 참석은 하되 밥도 안 먹겠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나중에 번거롭게 비혼 선언하고 축의금을 돌려받느니 아예 처음부터 안 내겠다는 거다. ▷결혼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결혼 안 한 여성은 22%, 결혼 안 한 남성은 37%뿐이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는 남성의 35%, 여성의 22%가 ‘결혼 자금 부족’을 들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을 피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주변 사람들의 결혼에 부담스러운 축의금을 내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LG유플러스가 내년 1월부터 비혼 직원에게 기본급의 100% 축의금, 유급휴가 5일을 주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 회사는 근속 5년 이상, 만 38세 이상 직원이 사내 경조 게시판에 ‘비혼 선언’을 등록하면 결혼하는 직원과 동일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다만 ‘먹튀’를 막기 위해 축의금 등을 받고 2년 안에 이직하면 페널티를 준다. 다른 직원과 형평성을 고려해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결혼하더라도 중복 지원은 하지 않는다. ▷롯데백화점도 올여름 만 40세 이상 결혼 안 한 직원에게 경조금과 휴가를 주는 제도를 도입했고, 결혼식 화환 대신 반려식물을 보내주기로 했다. 매년 ‘비혼 선언의 날’을 정해 신청한 직원들에게 유급휴가와 축의금을 주는 외국계 화장품 회사 한국지사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기업들까지 독신자를 ‘아직 결혼 못한’ 미혼(未婚)이 아니라 ‘결혼 안 하기를 선택한’ 비혼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제 비혼 축의금에 거부감을 드러냈다간 ‘꼰대’란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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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 ‘사이다’ 일산대교 무료화의 텁텁한 뒤끝[오늘과 내일/박중현]

    전 국민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지난주 경기 고양 일산, 김포 주민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뉴스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일산대교를 지나는 차에 통행료를 물리는 게 타당한가를 따진 일산대교 주식회사와 경기도의 소송 결과다. 작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고 경기지사직을 던지면서 임기 중 마지막 결재로 통행료를 무료화한 데 대한 1심 판결이었다. 결과는 일산대교 측 승리. 지난해 10월 26일 당시 이 지사의 조치에 지역 주민들은 환호했다. 한강 다리 가운데 유일하게 비싼 통행료를 받는 일산대교를 지나다니며 쌓인 불만을 단번에 털어내는 사이다 결정처럼 보였다. 150만 지역 표심에도 영향을 미쳐 이 대표의 대권 행보에 날개를 달아줄 터였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경기도의 공익처분으로 시작된 무료 통행은 곧바로 제동이 걸렸다. 직후 일산대교 측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2차 공익처분을 내려 무료 통행을 연장했지만 일산대교 측도 다시 가처분 신청을 했고, 이 또한 받아들여져 작년 11월 18일 통행료는 되살아났다. 경기도는 일산대교가 총 22일간 받지 못한 통행요금 18억 원을 도민 세금으로 물어줘야 했다. 그리고 지난주 수원지법 행정4부는 “통행료가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가 이용자 편익에 대비해 기본권이 제약될 정도로 크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일산대교 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경기도의 3전 3패다. 후임 민주당 소속 김동연 지사가 항소 방침을 밝혔지만 법원의 일관된 판단을 볼 때 2심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애초부터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일산대교 주식회사는 국민연금의 100% 자회사다. 2008년 다리를 준공해 30년간 운영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던 대형 건설사들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빠지면서 운영권을 국민연금에 넘겼다. 8년 적자를 내다가 간신히 흑자로 돌아선 이 다리를 지자체가 권한을 행사해 무료화할 경우 미래에 벌어들일 수입까지 물어줘야 한다. 시장이 평가하는 가치는 6000억∼7000억 원 정도다. 결정 당시 이 대표는 “보상 금액은 2000억 원대”라며 가치를 깎아내렸지만 제값을 안 치를 경우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손해를 본다. 경기도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간 배임 문제도 발생한다. 작년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이 가처분 신청과 소송을 낸 이유다. 경기도가 제값을 치르려면 관련 지자체들과 함께 큰돈을 나눠 내야 하는데 다리를 주로 이용하는 이 지역 운전자를 위해 다른 지역 주민, 비운전자가 낸 세금을 써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 건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일산대교의 미래 가치를 축소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큰 후유증이 따른다. 지난 정부가 담당 공무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을 윽박질러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을 낮춰 잡음으로써 수명보다 일찍 폐쇄했을 때 바로 그런 식이었다. 일산대교 건설은 김대중 정부 때였던 2002년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임창열 경기지사가 결정했다. 당시 경제성이 낮게 평가돼 정부 예산 대신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야 했다. 기업의 투자 없이는 세워지지 못했을 다리다. 20년 지나 그런 기억은 희미해지고 통행료 부담은 남았다. ‘사이다 맛 포퓰리즘’이 먹히기 딱 좋은 상황이다. 공공 부문이 상황에 따라 안면을 싹 바꾸는 일이 자주 생기면 더 이상 한국에 일산대교 같은 다리는 지어지기 어렵게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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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코인계 워런 버핏’의 몰락

    플로리다주 비스케인만 해변에 위치한 미국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 안방구장의 이름은 ‘FTX 아레나’다. 거래량 세계 3위, 미국 1위 가상화폐 거래소 소유주 샘 뱅크먼프리드(30)가 작년에 1억3500만 달러를 주고 명명권을 구입해 간판을 고쳐 달았다. 코인 투자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화폐로 돈을 벌어 현실 세계에 꿈의 구장을 사들였다”고 환호했다. ▷이 곱슬머리 청년은 재작년 포브스 선정 미국 400대 부자 중 32위를 기록했다. 20대로는 유일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월가 트레이더로 일하다가 2019년 FTX를 세운 지 2년 만이었다. ‘코인계의 워런 버핏’이란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FTX 파산 사태로 1주 전 160억 달러(약 21조1000억 원)에 달했던 그의 재산은 이제 0원이 됐다. ▷FTX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설립 목표에 따라 수수료 수입의 1%를 기부해 왔다. 공식 석상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하는 수더분한 MZ세대 가상화폐 스타에 청년세대는 열광했다. 이런 면모도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사석에서 무례한 말투를 썼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급성장 비결이 정치권 로비라는 말도 나온다. 최근 미국 중간선거 직전 그는 정치후원자 순위 6위에 올랐는데 그의 회사는 500억 달러(약 66조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밖에선 코인의 제왕으로 추앙받았지만 업계 안에서는 미운털이 박혔다. 정부의 가상화폐 통제 강화에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파산의 직접 계기도 업계에서 시작됐다. 1위 거래소 바이낸스는 지난주 FTX 자체 발행 코인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모두 처분했다. 미국 출생인 뱅크먼프리드는 바이낸스 최고경영자 자오창펑이 중국계란 걸 조롱하곤 했는데 파산 직전 자오는 그의 지원 요청을 뿌리쳤다. ▷이번 사태로 테라·루나 폭락 사태도 재소환됐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1)는 알고리즘으로 가치 하락을 막는다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해 거물이 됐다가 5월 가치 폭락으로 투자자들에게 400억 달러(약 53조 원)의 손실을 끼쳤다. “실패와 사기는 다르다”며 ‘폰지 사기꾼’이란 비판을 반박했던 권 대표는 현재 해외 잠적 상태다. ▷가상화폐 가격은 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폭락하곤 한다. 뱅크먼프리드는 고객자금 일부를 착복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FTX에 투자한 글로벌 금융회사가 많아 ‘코인판 리먼브러더스 사태’ 가능성도 제기된다.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꾀하면서도 투명성,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재무 상태, 자산 건전성을 재점검해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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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 “100년 만의 최장 침체”

    “영국 경제가 100년 만에 가장 긴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 지난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33년 만의 자이언트스텝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내놓은 전망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란은행이 예상한 침체 지속기간은 올해 3분기부터 내후년 중반까지 2년. 선진국들의 과거 평균 침체기간이 1년이 안 된 걸 고려하면 갑절 이상 길고 고통스러운 침체의 시작이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 후유증까지 겹쳐 유럽 선진국 중 물가 상승률이 최고 수준이고, 연말에는 11%까지 오를 전망이다. 이에 대응해 영란은행은 작년 말부터 8번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침체와 실업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물가부터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이로써 올해 3%대인 영국의 성장률은 내년에 0%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코로나19가 터진 재작년 영국의 성장률(―9.9%)은 대혹한(Great Frost)이 발생한 1709년 이후 311년 만에 최악이었다. 작년에는 GDP가 7.5% 반등했는데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생산시설이 풀가동된 1941년 이후 최고였다. 올해는 리즈 트러스 전 정부의 설익은 감세정책으로 파운드화 폭락 사태를 겪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롤러코스터 경제다. ▷경기는 이렇게 ‘확장-정점-침체-저점’ 사이클을 탄다. 통상 2개 분기 연속 GDP가 줄면 침체로 보지만 다른 요소도 고려하기 때문에 정점, 저점이 언제인지는 한참 뒤 알게 된다. 하지만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천천히, 하지만 더 오래, 더 높게’ 기준금리를 높이겠다고 밝히면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년은 물론이고 내후년까지 글로벌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2차 대전 후 12차례 미국의 경기순환에서 확장기간은 평균 64.2개월, 침체기간은 11.1개월이었다. 침체가 닥치면 정부가 재정을 풀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기 때문에 확장보다 침체가 짧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재작년 2월까지 128개월간 확장하던 미국 경기는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단 두 달 주춤했다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풀자 확장으로 돌아섰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오랜 경기확장이 결국 긴 침체라는 후유증을 불렀다. 최근 들어 세계경제 사이클과 ‘디커플링’이 심해진 중국도 사정이 좋지 않다. 수출 상대국 대부분이 침체에 빠지면서 한국의 내년 성장률도 1%대로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동시에 몰아치는 긴 빙하기가 다가오고 있다. 혹한을 이겨낼 체력을 갖추지 못하면 선진국 초입에서 다시 중진국으로 떨어질 수 있는 험로에 한국경제가 서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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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한국판 ‘말뫼의 눈물’

    스웨덴은 조선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였다. 1885년에 어뢰를 탑재한 잠수정을 세계에서 처음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조선업을 주도하던 최남단 항구도시 말뫼는 1970년대 일본, 한국의 조선업에 밀려 빛을 잃기 시작했다. 말뫼의 대표 조선소인 코쿰스에 1973년 세워졌던 높이 140m의 골리앗 크레인은 1987년 조선소 파산 후 오랫동안 무용지물로 남아 있다가 2002년 현대중공업에 팔렸다. 가격은 단돈 1달러였다. ▷세계 조선업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넘어간 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현대중공업이 골리앗 크레인을 해체해 울산행 배에 싣던 날 스웨덴 국영방송은 레퀴엠을 튼 채 중계방송을 했다. 조선업 붕괴로 인한 실업 증가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던 말뫼의 시민들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름하여 ‘말뫼의 눈물’이다. ▷2010년 전북 군산시에 세계 최대 규모 독과 골리앗 크레인을 갖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준공됐다. 준공식도 열기 전에 배를 만들어 팔았을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시작된 조선업 장기 불황으로 2017년 7월에 결국 가동이 잠정 중단됐다. 근로자 5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고, 협력업체 90%가 문을 닫거나 군산을 떠나면서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란 말이 나왔다. 다음 해인 2018년에 한국GM 군산공장까지 폐쇄돼 지역경제는 더 황폐해졌다. 그랬던 군산조선소가 지난달 28일 5년 3개월 만에 재가동 선포식을 열었다. ▷당초 계획보다 2개월 앞당겨진 이번 재가동은 수주 풍년 덕에 가능했다. 현대중공업의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들어 31조4500억 원(184척)에 이르는 선박 주문을 받았다. 연간 목표를 26.5% 웃도는 수치이고,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초과 수주다. 올해 9월 현재 세계에서 발주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82%를 우리 업체들이 수주했을 정도로 한국의 조선업이 다시 살아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운송용 선박 수요가 늘어난 데다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 기술력에서 한국이 중국에 크게 앞서 있기 때문이다. ▷‘말뫼 스토리’는 눈물로 끝나지 않았다. 조선업 붕괴 후 절치부심한 말뫼시는 1998년 버려진 조선소 땅에 말뫼대를 세우고 벤처 창업을 지원했다. 친환경 도시를 목표로 470km의 자전거 길도 만들었다. 고급 인재와 함께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이케아 본사 등 유럽연합(EU)의 주요 기업이 몰리면서 말뫼는 지금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군산이 조선소 재가동에서 멈추지 않고 말뫼처럼 국내외 청년들이 몰려드는 활력의 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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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대통령 임기 1년과 바꿀 만한 정책들

    반쪽이 텅 빈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 윤석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극단적으로 둘로 쪼개진 나라에서 0.73%포인트 차로 대통령이 된 만큼 각오를 단단히 했다고 해도 속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국정철학이 담긴 첫 예산안을 들고 연단에 올랐는데 헌정사상 첫 야당 보이콧이라니. 혹시 이런 걱정에 식은땀이 나진 않았을까. ‘이러다 공약 하나 실현 못하고 임기 5년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 대통령이 스타일을 구긴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한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막아설 기세다. 그 바람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 ‘윤석열표 정책’들은 줄줄이 무산 위기다. 올해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경감은 법 개정 시한을 넘겨 사실상 무산됐다. 대선 기간 중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완화를 약속한 사안인데도 그렇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핵심 과제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도 난망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3%포인트 올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2%)보다 크게 높아진 25% 법인세율을 원상복구하자는 것인데도 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절대 반대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대만 정부가 특단의 반도체산업 육성 방안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날마다 쏟아져서 웬만하면 여야 만장일치로 ‘K칩스법’을 통과시킬 만도 한데 국회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지역화폐 등 포퓰리즘성 예산이 삭감된 것 등을 문제 삼아 ‘예산전쟁’까지 벌이겠다고 한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윤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역정을 냈을 상황이다. 지난 정부와 이 대표에 대한 적폐청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우파 지지층에 ‘정부 정책 마비’는 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있다. 내년까지 ‘공정과 상식’을 철저히 실현해 내후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모두 해결될 문제라고. 하지만 30% 안팎을 맴도는 대통령 지지율, 민주당 몽니에도 늘지 않는 국민의힘 지지 기반을 고려할 때 총선 승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2년 취임덕에 이은 3년 레임덕이 올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뜻이다. 그때가 되면 야권은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며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할 것이다. 플랜B가 필요한 이유다. 총선 후에도 여야의 극한 대치가 계속돼 ‘5년 무성과 정부’ 가능성이 커질 때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성과 없는 5년을 꼭 해야 할 일을 해낸 4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통령 임기 1년과 맞바꿔서라도 꼭 해내야 할 정책이 바로 연금개혁과 재정준칙 도입이다. 현 정부 치하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않은 야당 지지층이 두터운 만큼 야권도 호응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나라의 미래를 고려하면 누군가 당장 총대를 메야 하지만 ‘표 의식하는 정치인은 절대 못 한다’는 게 연금개혁이다. 정치권에 빚진 게 가장 적고 이미 대통령 자리에 있는 윤 대통령이 적임자다. 대통령이 이번 시정연설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지만 헌법, 법률이 정하는 재정준칙을 못 만들면 돈 퍼주기를 선호하는 정권이 들어서는 순간 모두 허사가 된다. 물론 현 정부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YS의 금융실명제, DJ의 인터넷 강국, 노무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같이 나라의 물길을 바꾼 정책 업적은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더 절실해야 하고, 꼭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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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금시장 레고랜드 쇼크[횡설수설/박중현]

    “강원도 관광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지평을 열 것입니다.” 올해 3월 말 춘천시 의암호 중도에서 열린 레고랜드 준공식에서 최문순 당시 강원지사는 감개 어린 표정으로 축사를 했다. 도지사가 된 첫해 시동이 걸린 레고랜드 사업이 11년의 긴 임기 종료를 3개월여 앞두고 비로소 끝났기 때문이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춰 문을 연 레고랜드는 초등학생 자녀와 부모가 함께 갈 만한 테마파크다. ▷덴마크 조립식 장난감 레고를 테마로 한 이 놀이공원이 이번 주 한국 자본시장을 뒤흔든 나비 효과의 진원지가 됐다. 강원도와 레고랜드 운영사인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출자해 만든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문제였다. GJC는 공사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동산 자산 등을 담보로 재작년에 2050억 원어치의 기업어음을 발행했다.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선 이 어음을 10여 개 증권사가 샀다. ▷이 기업어음 지급 기일이 지난달 29일이었다. 그런데 7월 취임한 김진태 도지사가 지급을 거절했다. 여기에 더해 강원도는 법원에 GJC의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도 밝혔다. 회생 절차를 통해 회사 자산을 팔아 빚을 갚겠다는 취지였다. 민주당 소속 최 전 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긴 빚을 국민의힘 소속 새 지사가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떠안을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시장은 받아들였다. 기업어음은 이달 6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급격한 금리 인상, 기업들의 실적 악화 속에서 빌려준 돈이 떼일까 봐 불안해하던 투자자들은 이 소식에 황급히 지갑을 닫았다. 국가와 같은 수준으로 신용등급을 인정받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어음이 부도를 낸 데 쇼크를 받았다. 레고랜드 기업어음을 많이 들고 있거나, 부동산 개발사업 대출이 많은 증권사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말이 돌고 있다. 분양시장이 얼어붙어 자금이 달리는 일부 건설업체들도 덩달아 부도설에 휩싸였다. 강원도는 뒤늦게 “예산을 편성해 내년 1월 29일까지 돈을 갚을 것”이라고 했지만 자본시장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지금 미세한 충격이 막대한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살얼음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관계자, 월가의 투자은행 수장, 저명한 경제학자의 자극적인 말 한마디에 각국 주가와 환율이 요동을 친다. 엔-달러 환율 150엔 선이 깨지자 1997년 태국에서 시작돼 한국 등으로 순식간에 번졌던 ‘아시아 외환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 금융시장 참가자와 기업들 모두 최대한 신중히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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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노벨을 라이트 형제로 바꾼 순발력 발휘할 때

    “노벨이 9·11테러를 설계했다. 이런 황당한 소리가 국민의힘에서 나오고 있다.” 작년 10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는 “이 (대장동 개발) 설계는 제가 한 것”이라는 과거 자신의 발언을 근거로 제기되는 의혹에 이렇게 반박했다. “노벨이 화약 발명 설계를 했다고 해서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설계한 것이 될 수는 없다”고도 했다. 4일 뒤 그는 같은 주장을 펴면서 표현을 조금 바꿨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설계가 알카에다의 9·11테러 설계가 될 수 없다.” 주변에서 ‘9·11은 사실 비행기 충돌 테러’라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미세한 리스크까지 빠르게 대처하는 그의 순발력과 학습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제1야당 대표다. 첫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그는 기본소득 공약을 확장한 ‘기본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월 30만 원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으로 확대하고, 금액도 40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상 65세 이상 노인 대상의 기본소득이다. 대통령은 되지 못했어도 169석 거대야당 대표로서 대선 공약을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도 기초연금 인상을 공약했지만 취임 후 재정부담 때문에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한 단계적 인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제는 그가 기본소득 공약을 내놓던 1년 전과 경제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거다. 3·9대선 직전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코로나19 이후 풀린 과잉 유동성까지 겹쳐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미국은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고 있다. ‘킹 달러’로 인해 자국 화폐 가치가 떨어지자 대다수 나라들이 금리를 높여 환율, 수입물가 상승을 막으려는 ‘역(逆)환율 전쟁’에 뛰어들었다. 경제위기에 대해 급증하는 불안감이 약한 고리를 뚫고 터져 나온 게 영국 파운드화 폭락 사태다.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가 파격적 감세안을 내놓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경기를 일으켰다. 준(準)기축통화인 파운드화 가치는 사상 최저로 떨어지고, 영국 국채금리는 폭등했다.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소득세 감세안을 ‘초부자 감세’로 규정해 저지하겠다고 공언한 민주당은 망가진 영국 감세안에 쾌재를 불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감세가 아니었다. 국가채무비율 100%가 넘는 만성 적자국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5년간 73조 원 감세, 98조 원 보조금으로 돈을 풀겠다고 하자 급등한 국가부도 리스크에 금융시장이 반응한 게 사태의 본질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까지 예고하고 있다. “국가채무비율 100%가 넘으면 문제가 생기나”라고 했던 이 대표는 지금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기본소득 공약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길 바란다. 한국은 영국보다 채무비율이 낮지만 증가 속도는 선진국 중 1등이고,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수출주도형 국가에서 무역수지는 계속 적자인데, 매년 수십조 원 적자국채를 찍어서라도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준다는 계획을 발표한다면 ‘한국 원화 폭락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아니어도 이 대표는 거대야당을 움직여 단독으로 정책을 구현할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노인 기본소득’인 기초연금 인상은 위험성이 더 크다. 국제 금융계의 눈으로 보면 한국 경제에 충격을 주는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차이가 없다. 작은 리스크에도 민감한 이 대표가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해 기초연금 인상 방침을 재고하길 기대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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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착한 정책들의 비정한 결말

    작년 12월 퇴임 직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지지율은 70%가 넘었다. 16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남자도 총리 될 수 있나요”라는 농담을 낳을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큰 신뢰를 받았다. 노동개혁을 통해 독일의 경제 체질을 바꿨고, 남유럽 재정위기 등 국제 정세의 고비마다 대외적으로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9개월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높은 평가는 급속히 퇴색했다. 그가 추진했던 러시아 천연가스(LNG) 의존 정책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명적 실책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독일 내의 탈원전, 친환경 여론을 의식해 원전을 멈춰 세우는 ‘착한 정책’을 펴면서 대신 싼 천연가스라는 푸틴의 사탕 발린 독약을 삼켰던 것이다. 독일의 전기요금은 1년 새 10배 올랐고, 겨울나기에 대비해 독일인들은 장작을 사 모으고 있다. 선한 선택처럼 보이던 정부의 정책이 시간이 흘러 명백한 실수로 드러나거나, 국민을 기만한 것으로 확인되는 일은 한국에서 더 흔하다. 지난 정부의 무모한 탈원전 정책 탓에 붕괴됐던 원전산업은 정권교체로 그나마 기사회생의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뒷감당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인 여러 선한 정책들의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1월 신년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드디어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면서 전 국민 코로나 백신 무료접종을 약속했다. 선진국들은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속속 확보하는데 한국은 백신이 언제 수입될지조차 몰라 원성이 커지자 선심부터 쓴 것이다. 물론 코로나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발생 후 2년 반 동안 백신 접종, 검사, 치료에 들어간 비용은 총 7조6000억 원으로 이 중 75%를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비용의 4분의 3이 근로자, 기업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나간 것이다. 나머지 4분의 1도 세금이어서 ‘무료’란 말은 애당초 어불성설이었다. 경증환자의 초음파·MRI 검사비까지 지원해 건보기금을 부실화한 ‘문재인 케어’와 함께 내년 건보료율이 처음 7%를 넘기도록 만든 원인이다. 지난 정부가 작년 7월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내릴 때 전문가들은 좋은 의도와 달리 대부업체의 저신용자 대출을 위축시켜 불법 사금융 피해를 늘릴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문 정부는 정책을 강행했다. 올해 들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조달금리가 급등하자 대부업체들은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가 없는 이들에 대한 대출부터 멈췄다. 3년 전 대학 강사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 대학들은 전임 교원들의 강의를 늘리는 대신 시간강사의 고용을 줄였다. 제도권에서 대출을 거부당한 저신용자 십수만 명은 불법 사채의 수렁으로 내몰리고 있다. 건강보험의 지원을 애타게 기다리던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은 절망에 빠졌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많은 시간강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무책임하게 착한 척하는 정책의 슬픈 결과다. 구조개혁에는 시동도 못 걸고 낮은 지지율의 늪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은 요즘 민생과 ‘약자 복지’를 강조하며 연일 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정부가 확대한 지역화폐, 공공일자리 등 착한 정책 재원이 깎인 내년 정부 예산안을 놓고 “참 비정한 예산안”이라고 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도 여전히 착한 정책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에게 최근 작고한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남긴 금언을 곱씹어 보길 권한다. “작은 선함(小善)은 큰 악(大惡)과 닮았고, 큰 선함(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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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의 민주당’이 답해야 할 질문들[오늘과 내일/박중현]

    이번 주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결과는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으로 굳어졌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작년 11월 “민주당이라는 큰 그릇 속에 갇혀 가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가겠다”고 했던 말이 대통령이 아닌 거대야당 대표가 됨으로써 실현되는 셈이다. 대선에 진 후보가 반년이 채 안 돼 당 대표가 되다 보니 새 정부 출범 100일을 넘긴 지금도 그의 대선공약은 유권자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예전의 낙선 후보들이 외유하거나, 한동안 침잠해 시야에서 사라진 사이 국민의 기억이 깨끗이 리셋된 것과 다른 점이다. 대표 경선의 관심이 친명, 비명의 충돌에 집중되면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어떤 정책 색채를 띨지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의원이 토론회 등에서 현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한 발언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선 전후로 급변한 나라 안팎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진 국민의 눈높이와 이 의원의 시각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감지된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다는 윤석열 정부 세제개편에 대해 이 의원은 “부자들에 대한 감세” “슈퍼 리치, 초대(超大)기업에 대한 감세”라고 비판했다. 9월 국회에서 민주당과 정부·여당이 정면으로 부딪칠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가 올린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1.2%보다 높다. 한국보다 세율이 낮은 미국 대만 일본 등은 반도체, 배터리 산업을 유치, 육성하기 위해 세금 감면, 보조금 등 온갖 지원책을 쏟아붓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제 전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의 기업관과 이 의원의 기업을 보는 눈에는 메우기 힘든 격차가 있다. “고학력, 고소득자,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들은 우리(민주당) 지지자가 더 많다”는 논란의 발언을 보면 본심이 뭔지 더 헷갈린다. 15년 전 정해진 세율 때문에 인플레이션 시기에 저절로 세금이 늘어 중산층 실질소득이 줄고 있는데 이걸 조정하는 걸 부자감세라고 한다. 대선 때 완화를 약속했던 종합부동산세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태도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이 의원이 강조한 “부자들을 존중하는 사회”, “진보적 대중정당”은 무슨 뜻일까. 한편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를 반영했던 ‘소득주도 성장’, ‘1가구 1주택’이란 당헌의 표현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멈췄지만 그 과정에서 이 의원의 대표공약이던 ‘기본소득’을 새로 넣자는 의견이 만만찮았다. 기본소득은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며 국민에게 한 차례 심판을 받은 공약이다. 되살릴 의지가 남아 있다면 이 의원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재정과 관련해선 “국가채무비율이 100% 넘으면 문제가 생기나”라고 하던 생각을 이 의원이 바꿨다는 징후가 없다. 그보다는 감세로 세수가 줄면 지역화폐, 공공 일자리에 쓸 돈이 줄어들 걸 걱정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나랏빚은 1000조 원을 넘었고, 재정을 방만히 운영한 신흥국들은 경제파탄을 염려하는 상황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정부의 막대한 경기부양책이 야기할 인플레 효과를 자신이 과소평가했다고 공개 사과했다. 미국의 긴축, 계속되는 무역수지 적자로 1300원 선을 넘은 원-달러 환율을 보면서 이 의원은 여전히 “우리나라도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할까. ‘누가 되든 반드시 추진하자’고 대선 후보들이 약속했던 연금개혁에 대한 이 의원의 생각이 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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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정치로 까먹은 점수, 정책으로 메울 순 없다

    ‘장관들이 국민이 감탄할 정책을 쏟아내 분위기를 확 바꿔줬으면….’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스타 장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안 보인다는 말이 나와도 좋다”고 했을 때 속내는 이런 것 아니었을까. 새 정부의 진심이 담긴 정책이 국민 관심사로 떠올라 도어스테핑, 인사 논란, 여당 내홍으로 깎아먹은 점수를 만회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을 전후해 벌어진 일들은 그런 바람과 많이 달랐다. 대표적 사안이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채무조정 지원 방안이다. 신용 낮은 청년채무자의 대출이자를 최대 절반까지 깎아주고, 3년간 원금 상환도 미뤄주는 프로그램이 특히 논란이 됐다. 금융위로선 과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그랬듯 어차피 한 번은 치르고 넘어가야 할 대규모 채무조정이고, 정부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2030세대의 마음을 돌리는 데 도움도 된다는 심산으로 서둘러 이 방안을 내놨을 것이다. 문제는 청년들마저 “빚을 내 주식,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날린 돈을 왜 세금으로 메워 주냐”며 반발한 것이다. ‘공정’에 한없이 민감한 청년들의 정서를 읽지 못해 생긴 실책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선수들 동의도 없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추진하다가 청년층의 반발에 부딪쳐 허둥대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금융위, 금융감독원, 검찰이 함께 내놓은 공매도 대책도 뒷말이 많다. 코로나19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매도를 통제한 나라는 한국뿐이고, 앞으로 증시에 더 많은 외국 자금을 끌어들이려면 공매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시장의 일반 상식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도전 중인 이재명 의원이 공매도를 싫어하는 개미투자자를 의식한 듯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옹호한 며칠 뒤 정부 대책이 나왔다. 공매도 전면 금지가 아닌 건 다행이지만 검찰이 불법 공매도를 응징한다는 발표는 ‘검찰 공화국’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최근엔 교육부가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1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가 학부모, 교육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나흘 만에 발을 빼는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초기 초등학교 조기 입학 방안을 불쑥 꺼냈다가 물러섰던 일의 판박이다. 대통령실이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국민제안을 모아 정책화하겠다고 했다가 클릭 수 조작 등이 감지됐다는 이유로 취소한 것 역시 어이없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보름 사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해당 부처들로부터 대통령이 직접 보고받고 관심을 표한 사안들인데 대체로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고, 어느 지점에서 반발이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가 허점을 찔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 캐비닛에 묵혀 있던 정책을 급히 꺼낸 듯 정책 소비자의 급변하는 정서와 시류를 읽지 못하는 공무원 특유의 ‘정책 감수성’ 부족이 느껴진다. 정부의 ‘정치 성적’과 ‘정책 성적’은 비슷해야 정상이지만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정책 실패에도 40%대 지지율을 끝까지 지킨 문재인 정부가 증거다. 극단으로 갈라진 좌우 진영, 세대 간 의견 차이가 원인일 것이다. 국민들도 ‘밥 먹는 배 따로, 빵 먹는 배 따로’ 식으로 정치와 정책을 별개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 빠르게 가” 식으로 공무원들을 채근하면 ‘정책 사고’가 반복돼 정부의 신뢰만 하락한다. 임기 안에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할 노동 연금 교육 재정 등 큰 개혁의 동력도 약화될 것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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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리 풍년, 기이한 불황[횡설수설/박중현]

    “매달 40만 개 일자리가 창출되는 지금은 경기침체가 아니다.”(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물가를 잡으려면 5% 이상 실업률이 5년은 이어져야 한다.”(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최근 미국 전현직 재무장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침체(recession) 논쟁의 핵심 쟁점은 일자리다. 각각 조 바이든, 빌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은 둘은 같은 ‘신케인스 학파’로 경제를 보는 시각이 같은데도 이 부분에선 한 치 양보 없이 대립 중이다. ▷2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분기에 이어 마이너스로 나타나자 논란은 더 치열해졌다. 통상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경기침체로 보지만 바이든 정부와 옐런 장관은 실업률을 근거로 부인하고 있다. 미국 실업률은 지난달까지 넉 달 연속 3.6%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4% 미만 실업률은 이직 준비자의 마찰적 실업만 존재하는 완전고용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경기침체를 공식 판정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12차례 경기침체에서 매번 실업률은 6% 이상으로 오르고 근로자 임금은 하락했다. 반면 지금은 기업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임금이 오르는데 침체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 기이한 현상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용이 충만한 경기하강(jobful downturn)’이라고 표현했다. ▷수수께끼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풀린 유동성 때문에 저축, 자산가치가 늘어난 미국인이 일을 덜 한다는 설, 베이비부머들이 인생관을 바꿔 서둘러 퇴직해 근로자가 부족하다는 분석, 긴축 속도가 너무 빨라 실물경기와 시차가 생겼다는 설명 등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의 정반대지만 ‘고용과 성장이 따로 논다’는 면에선 유사한 현상이란 해석도 있다. ▷한국도 사정이 비슷하다. 식당, 카페들은 종업원을 못 구해 영업시간을 줄이고, 알바 중개 플랫폼에는 ‘사람을 찾아 달라’는 주문만 쌓이고 있다. 중소기업 생산직, 알바 일자리는 MZ세대 눈높이에 맞지 않고, 원할 때 필요한 만큼 일할 수 있는 배달 일자리 등이 늘어난 게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정부가 만든 세금알바 등도 경기와 실업률의 괴리를 키웠다. ▷경기침체냐 아니냐, 침체 강도는 깊을까 얕을까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건 저성장과 일자리 호황은 동시에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를 골라 내놓으며 경제 현실을 호도해온 과거 정부들의 행태를 고려하면 일자리가 넘쳐나는 경기침체에 헛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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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칩4 동맹

    “8월까지 ‘칩4(Chip4) 동맹’ 참여 여부를 확정해 알려 달라.” 지난달 말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한국 정부에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 칩4는 올해 3월 미국이 한국 대만 일본에 제안한 반도체 동맹이다. 작년 초 “21세기엔 반도체가 편자의 못”이라며 중국을 뺀 반도체 공급망 재편 의지를 밝힌 바이든 대통령이 이제 마감시간을 정해 한국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칩4 동맹은 미국이 추진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의 산물이다. 설계 장비 생산 등 반도체 산업의 전 영역을 국경 안에 두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우방, 동맹국과 연합해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동맹이 완성되면 미국으로선 중요한 대중 견제 시스템을 확보하게 된다. ▷미국은 휴대전화, PC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최고의 설계업체들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설계만 하고 생산은 해외 파운드리 업체에 맡긴다는 점이다. 파운드리 분야 1, 2위는 대만 TSMC(54%)와 삼성전자(16%)로 대만, 한국을 합한 비중이 80%다. 기억장치로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설계, 생산에서 존재감이 없는 일본이 낀 이유는 장비산업의 큰손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 시장은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일본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 ASML 등 4개 업체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장비 판매를 중단하면 대만, 한국 반도체 기업은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다. 미국 한국 대만 일본 등 4개국이 연합하면 석유업계에서 OPEC가 갖는 것 같은 영향력을 반도체 산업에서 발휘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참여 시 중국의 반발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를 경험한 한국 기업들로선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 반응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립도 70%를 달성한다는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 30%에 못 미쳤다. SMIC 등 파운드리가 약진한다고 하지만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10% 수준이다. ▷대만, 일본은 이미 칩4 동맹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한국은 장고 중이다. 4개국이 함께 움직이면 중국도 한국만 표적 삼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기술’과 중국의 ‘시장’ 중 하나를 굳이 골라야 한다면 기술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시장을 잃으면 다른 데서 개척할 수 있지만 첨단기술에서 단절되면 산업 경쟁력 자체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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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국뽕’은 값이 비싸다

    얼마 전부터 서울 지하철이 다른 나라, 특히 일본 지하철보다 얼마나 훌륭한지 소개하는 영상을 유튜브가 추천하기 시작했다. 각국 지하철을 타본 서구 여행객들이 “한국 지하철의 쉬운 환승, 쾌적성, 저렴한 가격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사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작동해 전기를 절약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놀라웠다”는 식이다. 나 자신도 몰랐던 ‘국뽕 취향’을 구글 알고리즘에 들킨 것 같아 좀 민망해진다. 교통카드 한 장으로 여러 지하철 노선과 버스를 갈아탈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경쟁력이 높다. 운영 주체가 여럿이라 환승이 복잡하고 값도 비싼 일본, 낡아서 냉난방도 잘 안되는 미국, 유럽의 지하철과 비교하면 감탄이 나올 만하다. 문제는 이런 국뽕 콘텐츠들이 숨겨진 비용에 대해선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7년째 요금이 묶인 서울 지하철은 매년 1조 원씩 적자를 낸다. 준공영제 버스 역시 연간 수천억 원 적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요금 인상, 노인 무임승차 혜택 축소 등 인기 없는 정책에 총대를 메는 정치인은 드물다. 어쩌다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 최고”라고 칭찬하고, 유튜버들은 그런 모습을 콘텐츠로 만들어 돈을 벌지만 누적되는 적자는 결국 국민이 언젠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그래도 외국인의 칭찬에 유독 약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국뽕 콘텐츠는 인기가 높다. 부정적 감정, 경쟁심을 느끼는 나라와 비교한 콘텐츠는 카타르시스가 배가된다. 어깨 으쓱한 기분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정부의 정책이나 정치가 이런 감정에 편승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한 2019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은 ‘죽창가’를 소환했고,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거북선 횟집을 찾았다. 일본 의류점 고객에게 유튜버들은 카메라를 들이댔고, 청소년들은 일본 필기구를 내버리는 영상을 올렸다. 반일감정을 자극해 ‘토착왜구’를 공격하는 건 정치적으로 손해 보지 않는 게임이었다. 이때 시작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 3년의 성과는 아직 결론 내기 어렵다. 일부 품목은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다른 많은 소재, 부품의 대일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그나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고객을 놓칠 수 없었던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공장을 지은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부랴부랴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대체품을 개발하는 데 기업들이 얼마를 썼는지는 집계된 적이 없다. 만만찮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상이 중국으로 급선회했다. 중국을 빼고 자유민주 진영 국가끼리 글로벌 공급망을 짜려는 미국 움직임에 한국은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중국을 통한 수출호황 시대는 끝났고, 중국을 떠나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대중 수출·수입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쉽지 않아 문제다. 당장 식자재 가격이 오르자 ‘알몸배추 파동’ 후 줄었던 중국산 김치 수입이 사상 최대로 늘었다. 중국 폭죽 수입이 어려워지자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가 곳곳에서 취소된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둘인데 중국과 한국이고, 중국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한국’이란 말이 있다. 국민 80%가 중국에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정치적 유혹도 있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뽕의 비용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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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주 52시간 근로’ 숨통 트기

    ‘판교 등대’ ‘구로 등대’ ‘오징어잡이 배’. 경기 성남시 분당구나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게임업체 빌딩들은 한때 이렇게 불렸다. 촉박한 게임 출시 일정을 맞추려면 밤샘근무가 예사여서 늘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된 뒤 오후 7시면 건물에 불이 꺼진다. 한국 게임업체들이 한 해 내놓는 신작 게임의 수와 출시 속도도 급감했다. ▷어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이란 제목으로 브리핑을 하면서 “주(週) 최대 52시간제의 기본 틀 속에서 운영 방법, 이행 수단을 현실에 맞게 개편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에 시동을 걸겠다는 신호다. 지금은 주 단위인 근로시간 규제가 노사 합의를 통해 월 단위로 바뀌고, 1∼3개월로 돼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도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주 52시간제 운영이 유연해지면 기업들은 인력 운용에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된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핵심 인력의 업무가 급증하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나 게임 분야의 기업, 에어컨 생산·설치 등 계절성이 강한 기업들이 특히 반길 만한 변화다. 반면 소규모 게임업체 근로자들은 새로운 게임을 내놓을 때마다 회사에서 숙박하며 일하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가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금융 등 연봉이 높은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개혁안 중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White-collar Exemption)’ 도입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정 연봉 이상 전문직에게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로, 미국에선 연봉 13만4004달러(약 1억7400만 원) 이상 근로자는 연장근로 시간에 제한이 없다. 네이버 직원 평균연봉은 작년 1억2915만 원에서 올해 10% 인상됐고, 카카오는 작년 1억7200만 원에서 올해 15%가 올랐다. 미국 기준으로 봐도 상당수 직원이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선진국 중 연간 근로시간이 제일 길어 줄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 등 후발국과 경쟁도 포기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 노동법상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4시간이지만 많은 중국 기업들이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과 경합하려면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나중에 그만큼 쉴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1년 단위 총 근로시간 안에서 기업과 근로자가 협의해 근무 형태를 조정하는 일본, 프랑스의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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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권 따라 출렁대는 4대강의 운명 [오늘과 내일/박중현]

    류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에게서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해 처음 들은 건 2006년 하반기 어느 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운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집권 후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설명한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의 첫인상은 ‘황당하다’는 거였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기 위해 조령산맥에 터널을 뚫고, 갑문과 리프트를 이용해 배가 산을 넘도록 한다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막대한 건설 비용만큼의 경제성을 확보하긴 어려워 보였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도 “부산에서 인천까지 배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게 훨씬 효과적”이란 의견을 냈다. 청계천의 성공을 발판으로 대권을 잡은 이 대통령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집권 초 대운하에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광우병 촛불시위로 지지율이 뚝 떨어진 뒤에야 포기하고 수자원 활용 중심의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전환했다. 2009년 말 착공된 4대강 사업은 2년 만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바닥을 준설하고, 16개 보(洑)를 만들면서 임기 중 마무리됐다. 정권교체 같은 정권연장을 통해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곱게 보지 않았다. 단기간에 밀어붙인 부작용도 실제로 있었다. 건설업체 사장 출신 이 대통령의 ‘가격 후려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동원됐던 건설업체들은 손해를 줄이려고 담합을 했다가 막대한 과징금을 물었다. 환경단체들은 보 때문에 강물이 ‘녹조 라테’가 됐다고 비판했다. 좋아한 건 ‘22조 원짜리 자전거길’을 이용하는 라이더들 정도였다. 박 정부에서 4대강은 금기어가 됐다. 박 정부 임기 3년 차인 2015년 하반기 43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극적 반전이 시작됐다. 4대강 보에 모인 물이 필요해진 것이다. 국토교통부 공식 문건에 ‘4대강 활용 방안’이란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야당 소속 지자체장도 4대강 물을 끌어 쓰자고 했다. 국토부 공무원, 관련 공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르는 홍길동 신세에서 이제야 벗어났다”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4대 강은 복권(復權)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 탄핵 후폭풍이 4대강에 밀려왔다. ‘4대강 재(再)자연화’를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보름도 안 돼 규모가 큰 6개 보의 상시 개방, 4대강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지시했다. 4대강 사업은 청산해야 할 적폐로 낙인찍혔다. 보를 개방해 강줄기가 약해지고 강바닥이 허옇게 드러났지만 환경론자들은 모래톱에 온 왜가리, 백로 사진을 찍어 올리며 “자연이 돌아왔다”고 환호했다. 지난주 환경부 금강홍수통제소는 4년간 물을 흘려보내던 공주보의 수문을 닫아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가뭄도 가뭄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4대강 사업을 잘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6·1지방선거에서 여당 출신 세종시장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지금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이 아니라 ‘문 정부의 4대강 보 해체 결정’의 타당성을 감사하고 있다. 4대강 보가 완공된 게 11년 전이다. 그 사이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전돼 올해 전 세계는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미중 신냉전 속에서 반도체를 안보의 방패로 삼은 대만은 작년에 물 부족이 심해지자 농민이 쓸 물까지 반도체 업체에 제공했다. 이렇게 강산과 세계가 급변하고 있지만 4대강을 둘러싼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끝없는 돌림노래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젠 이념, 진영이 아닌 과학에 판단을 맡겨 4대강의 오염을 줄이면서 모은 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쓸 방법을 고민할 때도 되지 않았나.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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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문라이팅’ 말고 풀타임으로 일할 자유

    윤석열 대통령이 부친에게서 대학 입학 선물로 받아 검사가 된 뒤에도 들고 다니며 읽었다는 애독서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다. 직접 고쳤다는 대통령 취임사에 ‘자유’란 말이 35번 들어간 데도 이 책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러시아에서 직업이 매력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흔히 불법적이거나, 아니면 법규에 저촉되지 않는 ‘부업’의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모스크바에서 가구집기, 시설이 고장 날 경우 국영 수리점에 전화하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업자’를 고용하면 대개는 국영 수리점 직원일 게 뻔한 일이지만, 가구는 신속히 고쳐질 것이다.” 구소련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비효율과 이중성을 꼬집은 내용인데 원문에 사용된 부업이란 단어는 ‘문라이팅(moonlighting)’, 부업하는 사람은 ‘문라이터(moonlighter)’다. 해가 떠 있는 낮에 하는 일이 본업이라면 밤에 달빛 아래서 하는 일이 부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월광 소나타’를 쳤다는 전 청와대 대변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의 부업인구, 복수의 직업을 가진 ‘N잡러’는 크게 늘었다. 작년 월평균 부업인구 수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부업하는 걸 감추는 사람이 적지 않아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기그(Gig) 이코노미’의 확산으로 부업이 늘어나는 건 세계적 추세지만 한국 부업인구는 노동자의 자발적 선택보다 정부 정책, 제도의 실패로 늘었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정부 초 최저임금이 2년 만에 30% 가까이 급등하자 식당, 카페, 편의점 주인들은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치를 더 얹어줘야 하는 주휴수당을 아끼려고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잘게 쪼갰다. 그 바람에 한곳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던 직원, 알바생들은 두세 곳 일터를 옮겨 다니는 N잡러가 됐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 수가 올해 4월 역대 최대인 154만 명으로 불어난 이유다. 경직적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에 적용되자 초과근무 수당이 줄어든 근로자들은 부업을 찾아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영업시간이 제한된 동안에는 자영업자 사장들도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 음식배달 오토바이를 몰아야 했다. 본업만으로 원하는 소득을 얻을 기회가 제도적으로 제한되면서 구소련에서 그랬듯 부업이 생계유지의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 사회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본질적 경제적 자유로 ‘자기 소득을 어떻게 쓸지 선택할 자유’, ‘재산을 소유할 자유’와 함께 ‘자기가 소유한 자원을 가치관에 따라 사용할 자유’를 꼽았다. 신체, 두뇌가 유일한 자원인 노동자에게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자유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개혁’을 강조했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 터키에만 남아 있는 주휴수당은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뒤떨어진 제도다. 주 52시간제와 관련해 한국처럼 월 단위로 근로시간 제한을 맞추도록 하는 선진국도 거의 없다. 임금을 많이 받는 전문직 노동자는 근로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로 이어지던 정치의 계절은 끝났다. 코로나19도 진정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새 정부는 대선을 통해 약속한 노동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조각난 일자리, N잡러를 양산한 각종 제도를 손봐 국민에게 마음껏 일할 자유를 돌려주는 게 그중 제일 급한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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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성공하고도 실패한 文의 ‘주류세력 교체’

    몇 주간 우리 사회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특이한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후임 하는 일이 마뜩지 않다고 퇴임할 대통령이 불편한 감정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내비친 적은 없었다.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덕담하고 떠나는 게 정상인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 정부는 우리 정부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다시피 하는 가운데 출범하게 돼 우리 정부의 성과, 실적, 지표와 비교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디 잘되나 보자’는 앙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퇴임하는 날 청와대 앞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다시 출마 할까요”라고 한 말도 단순한 농담같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문 전 대통령의 캐릭터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전인 2017년 1월 펴낸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유를 찾는 게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는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이라고 썼다. 주류 교체 의지는 취임 후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전직 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냈고, 비주류였던 김명수 대법원장을 필두로 사법부 주류도 싹 바꿨다. 2020년 4·15총선에선 팬데믹으로 인한 ‘국기 결집 효과’와 재난지원금의 힘을 빌려 180석 거대여당을 키워냈다. “한국 사회의 주류가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완전히 교체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 뒤에는 검찰 수뇌부까지 바꿨다. 권력 핵심부만 교체된 게 아니다. 실패한 경제정책으로 혹평받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세금 일자리 등은 지지세력 확장에 효과가 있었다. 최저임금 선상에 몰려 있던 20대 직장인들은 따로 임금협상을 안 해도 연봉이 5년간 40% 넘게 올랐다. 그중엔 여성이 많다. 20대 여성 58%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게 국민의힘의 반(反)페미니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금 일자리로 생계에 도움을 받는 노인도 수십만 명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수많은 이해 관계자를 만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5년 만에 주류세력 교체와 지지층 확장에 모두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마지막 주까지 유지된 40%대 지지율이 그런 생각을 뒷받침했을 것이다. 정권 교체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저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 없다”고 답한 데에서 ‘대선에서 진 건 내가 아니다’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그가 뭐라고 생각하든 ‘문재인의 주류세력 교체’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바로 그 주류에게 칼을 들이댔다가 고초를 겪고 물러난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됐다. 주류 교체를 목표로 폈던 편 가르기 정치, 정책들은 더 많은 국민들에게 환멸을 줬다. 지지세력만 바라본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 성장률을 깎아먹은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에 무능한 좌파’ 이미지를 강화했다. 문 전 대통령이 애지중지 키운 주류가 이젠 교체의 대상이다. 그들의 적폐를 새 정부가 낱낱이 파헤치길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거대 야당은 다음 총선까지 최소 2년간 국회를 쥐락펴락할 기세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공공기관장 257명은 바꿀 수도 없다. 정권 말 밀어붙인 ‘검수완박’은 자신들에게 손댈 생각도 말라는 뜻이다.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란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작심하고 사회의 주류를 바꾸겠다고 나설 때 국민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그 끝은 또 얼마나 허망한지 이미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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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엔低, 나쁜 원低 [횡설수설/박중현]

    한국과 일본의 화폐 가치가 요즘 경쟁하듯 하락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55.9원으로 2년여 만의 최고 수준이었다. 같은 날 도쿄 외환시장의 엔-달러 환율은 20년 만의 최고인 131엔으로 상승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달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에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화, 엔화 가치가 나란히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엔저’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에 있다. 2013년 아베 전 총리의 지명을 받아 취임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디플레이션 극복을 명분으로 마이너스 금리, 무제한 돈 풀기 정책을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낮은 엔화 가치로 일본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경제를 살리는 게 목적이다. ▷문제는 일본의 생산시설이 이미 해외로 대거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일본 자동차 기업 차량의 3분의 2가 해외에서 생산된다. 엔저의 수출 확대 효과가 크게 줄었다. 반면 천연가스, 원자재 등 수입 가격 인상 부담은 엔저로 배가되고 있다. 기대한 효과 대신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수입품 값이 올라 일본 소비자만 가난해진다는 게 ‘나쁜 엔저’ 논란의 핵심이다. ▷엔저와 달리 ‘원저’는 한국 정부가 의도한 게 아니다. 달러 강세와 중국의 성장률 하락이 겹치면서 위안화를 따라 원화가 급락했다. 원저를 이용한 수출 확대로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했을 정도로 과거엔 원저가 수출에 호재였다. 지금은 경쟁국인 중국 대만 일본의 화폐 가치가 동시 하락해 수출 증대 효과가 희석되고 있다. 증시에서도 환차손을 피하려는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가 나타나고 있다. ▷원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3, 4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나면서 한국도 ‘나쁜 원저’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작년 100대 기업의 해외법인 매출이 국내 매출과 맞먹을 정도로 한국 기업의 생산시설도 이미 해외로 많이 이전돼 수출 증대 효과가 줄었다. 미국, 유럽연합(EU)이 ‘자국 내 생산’을 강조하면서 반도체, 배터리 분야 신규 투자도 대부분 해외에서 이뤄진다. ▷일본은행은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56%로 금리를 올리면 정부 이자 부담이 폭증해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 재정 사정이 일본보다 나은 한국은 금리를 올려 원화 가치를 지킬 수 있지만 막대한 가계부채 탓에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 서둘러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도 일본의 뒤를 이어 더 깊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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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단순 노무직 찾는 청년들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나가쿠보 도루(長久保徹)가 1985년 자신의 노래에 사용한 ‘프리아르바이터(free+arbeiter)’란 말은 “취직의 틀에서 벗어났어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2년 뒤 취업정보업체 리크루트가 이 말을 줄인 ‘프리터’를 ‘원할 때 필요한 만큼 일하는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한창이어서 짧게 일하고도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동아일보 취재팀 분석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15∼29세 청년 취업자 중 배달 판매 경비 등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는 청년의 수가 41만3000명이었다. 40만 명이 넘은 건 처음이고 전년 대비 증가율도 11.3%로 전체 청년 취업자 증가율 3.0%보다 훨씬 높았다. 양질의 일자리 취업이 어려워 비숙련 단기 일자리에 머물러 있는 프리터족(族)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같은 단순 노무직이라도 용돈 벌려고 일하는 것과 생계를 유지하려고 일하는 건 다르다. 일본의 프리터도 경기가 좋던 시절 취직을 거부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높은 임금을 챙긴 1980년대 ‘거품기(期) 프리터’와 버블이 꺼진 1990년대 이후 취업이 안 돼 저임금을 받으며 생활비를 번 ‘빙하기 프리터’로 나뉜다. 지금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는 한국 청년들은 마음에 차는 직장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년의 단순 노무직 증가는 코로나19 이후 음식배달, 택배 등 배달 일거리가 급증한 영향이 크다. 유통, 배달업체들이 적자까지 봐가며 배달 속도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배달비가 건당 최대 1만 원까지 치솟아 배달 일만 해도 돈을 웬만큼 버는 청년이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5년간 41.6%나 오른 최저임금도 한몫했다. ▷대학진학률 70%가 넘는 한국 청년들의 ‘하향 취업’은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 큰 손실이다. 20, 30대에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일 기회를 놓치면 나이 들어 청년층, 외국인 노동자와 질 낮은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본에선 청년기에 프리터로 살다가 40, 50대에 부모 연금에 의지하는 ‘기생형 싱글’이 사회 문제다. ▷다행히 전문 기술을 쌓기 위해 전문대에 ‘유턴 입학’하는 대학 졸업자들이 늘고, 미취업 청년 대상으로 삼성이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교육에도 지원자가 몰린다. “평생 알바 하며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청년들의 말은 아직까지 취업난에 지쳐서 하는 푸념에 가깝다. 이들이 탈진하기 전에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만들고, 교육 과정도 손봐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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