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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이 11일 조선 단종(재위 1452~1455)이 묻혀 있는 강원 영월군 장릉에 그의 왕비 정순왕후(1440~1521)의 능인 경기 남양주시 사릉에서 채취한 들꽃을 옮겨 심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오전 유산청 등은 사릉에서 중요한 일을 치르기 전 그 사유를 조상에게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지냈다. 이 행사는 500여 년간 떨어져 있던 부부의 아픔을 ‘꽃’이라는 매개로 치유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허민 유산청장이 제사를 지낼 때 첫 번째로 술을 올리는 제관인 초헌관을 맡았다. 이어 사릉 전통수목양묘장에서 키운 들꽃 800여 본을 장릉 ‘정령송’ 주변에 옮겨 심는 식재도 진행됐다. 유산청을 비롯해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장·사릉봉향회, 장릉제례보존회 등이 함께했다.이번 식재는 단종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 흥행 등을 계기로 추진됐다. 국가유산청은 “이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산청은 매년 7~8월 장릉과 사릉에서 풀씨를 채취해 기른 뒤, 이듬해 한식 무렵 서로 교환해 심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펜을 집어 들고 묻는다. “제가 방금 이걸 들기로 결정했는데, 그게 제 통제 밖의 일인가요.” 대부분은 이를 ‘개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및 의과대 신경학과 교수인 저자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다. 그 행동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축적된 조건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생물학과 신경과학 연구를 토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란 환상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세계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인간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서 저자는 단호하게 결정론의 편에 선다. 전작 ‘행동’에서 인간의 폭력성과 이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던 그는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는 감각 자체를 지적한다. 인간의 행동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핵심 논지다. 몇 초 전의 신경 신호, 몇 시간 전의 호르몬 변화, 어린 시절의 환경, 태아기의 조건, 더 나아가 진화와 문화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현재의 선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원인이 이어진 흐름 속에선 독립적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1980년대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의 실험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심하기 약 0.3초 전에 이미 뇌는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결정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실제 결정 이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관점을 구체화한다. 1000건이 넘는 사법 판결을 분석한 결과, 판사가 식사한 지 오래됐을수록 가석방 허가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배고픔이라는 신체 상태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스트레스 호르몬의 변화는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결정을 유도하고, 수면 부족 역시 판단력을 흐린다. 개인의 성장 환경과 교육 경험, 문화적 배경까지 고려하면 특정 행동은 의지의 결과라기보다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의 누적된 산물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졸업식장의 졸업생과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의 삶을 맞바꾸는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개인의 성취와 실패가 순수한 선택의 결과라는 믿음을 흔든다. 유전자와 환경, 성장 배경을 바꾼다면 두 사람의 위치도 뒤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 이는 노력과 성취를 개인의 공로로만 돌리는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확장된다. 논의는 범죄와 처벌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 범죄를 개인의 도덕적 선택으로만 보는 관점은 설득력을 잃는다. 저자는 ‘응보(應報)’에 따른 처벌 대신 격리와 재활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뇌전증이나 조현병이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치료의 대상이 된 것처럼,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처벌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인간 행동이 다양한 원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과,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전면 부정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좁게 정의한 뒤 이를 부정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펜을 드는 사소한 순간부터 삶의 중요한 선택까지, 우리가 ‘내 결정’이라 믿어 온 경험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선택’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제기 자체의 힘이 큰 책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펜을 집어 들고 묻는다. “제가 방금 이걸 들기로 결정했는데, 그게 제 통제 밖의 일인가요.” 대부분은 이를 ‘개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및 의과대 신경학과 교수인 저자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다. 그 행동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축적된 조건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생물학과 신경과학 연구를 토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란 환상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세계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인간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서 저자는 단호하게 결정론의 편에 선다. 전작 ‘행동’에서 인간의 폭력성과 이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던 그는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는 감각 자체를 지적한다.인간의 행동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핵심 논지다. 몇 초 전의 신경 신호, 몇 시간 전의 호르몬 변화, 어린 시절의 환경, 태아기의 조건, 더 나아가 진화와 문화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현재의 선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원인이 이어진 흐름 속에선 독립적인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1980년대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의 실험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심하기 약 0.3초 전에 이미 뇌는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결정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실제 결정 이후일 수 있다는 뜻이다.책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관점을 구체화한다. 1000건이 넘는 사법 판결을 분석한 결과, 판사가 식사한 지 오래됐을수록 가석방 허가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배고픔이라는 신체 상태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스트레스 호르몬의 변화는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결정을 유도하고, 수면 부족 역시 판단력을 흐린다. 개인의 성장 환경과 교육 경험, 문화적 배경까지 고려하면, 특정 행동은 의지의 결과라기보다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의 누적된 산물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른다.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졸업식장의 졸업생과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의 삶을 맞바꾸는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개인의 성취와 실패가 순수한 선택의 결과라는 믿음을 흔든다. 유전자와 환경, 성장 배경을 바꾼다면 두 사람의 위치도 뒤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 이는 노력과 성취를 개인의 공로로만 돌리는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확장된다.논의는 범죄와 처벌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 범죄를 개인의 도덕적 선택으로만 보는 관점은 설득력을 잃는다. 저자는 ‘응보(應報)’에 따른 처벌 대신 격리와 재활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뇌전증이나 조현병이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치료의 대상이 된 것처럼,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처벌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다.물론 이러한 주장은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인간 행동이 다양한 원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과,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전면 부정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좁게 정의한 뒤 이를 부정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그럼에도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펜을 드는 사소한 순간부터 삶의 중요한 선택까지, 우리가 ‘내 결정’이라 믿어온 경험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선택’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제기 자체의 힘이 큰 책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비결 같은 건 없어요. 기적과도 같다고 할 수 있죠. 핵심은 음악을 함께 만들고 연습하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자매인 카티아(76), 마리엘(74) 라베크는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약 반세기 동안 듀오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26일 서울 LG아트센터, 2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미국 현대음악의 거장인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장 콕토 3부작’을 연주한다. 두 사람의 단독 내한 리사이틀은 2008년 이후 18년 만이다. 장 콕토 3부작은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 장 콕토(1889∼1963)의 영화 ‘미녀와 야수’, ‘오르페’, ‘앙팡 테리블’을 바탕으로 글래스가 작곡한 오페라를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재구성해 자매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공연에선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강렬한 타건이 돋보이는 30여 곡이 연주된다. 카티아는 “글래스 음악의 놀라운 점은 두 대의 피아노만으로도 오케스트라에서 들을 수 없던 풍부한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마리엘은 “미녀와 야수 중 ‘정원 산책’을 연주할 때면 영화의 흑백 이미지들이 떠오른다”며 “장 콕토의 영화를 미리 감상하고 오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라베크 자매의 시작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던 두 사람은 ‘솔로 피아니스트’라는 기존의 성공 공식 대신 남다른 듀오의 길을 택했다. “파리 음악원에서 솔리스트로 1등상을 받았음에도 피아노 듀오로 활동하고 싶다고 하자 음악원 측은 처음에 ‘피아노 듀오를 정식 실내악 범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거절했어요. 하지만 결국 카티아가 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해 설득했고, 성공했죠.”(마리엘) 자매의 개척자 정신은 재즈, 바로크, 현대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거침없는 행보의 발판이 됐다. 특히 1981년 발매된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는 50만 장 이상 판매됐다. 2016년 오스트리아 빈 쇤브룬 궁전에서 가진 야외 공연은 관객 10만 명이 운집했고, 세계 시청자 100만 명에게 생중계됐다. 두 사람은 “솔로 활동에 대한 갈망을 느낀 적은 없다”며 듀오로서의 특별함을 강조했다. “피아노 듀오의 매력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과 무대를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카티아) “저희는 무대 위에서도, 삶에서도 매우 다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개성이 함께 드러날 때 피아노 듀오 음악이 더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해요.”(마리엘)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910년대 일제가 훼손한 덕수궁 ‘조원문(朝元門)’의 흔적이 발견됐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원문 권역 발굴조사 결과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를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조원문은 1902년 중화전을 중층으로 건립할 당시 경운궁(현 덕수궁)의 중문으로 건립된 문이다. 궁궐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대안문·조원문·중화문으로 이어지는 ‘삼문(三門)’ 체제를 갖췄는데, 이번 조사로 조원문의 위치와 형태가 드러났다. 이번 발굴조사 과정에서 문의 기초를 이루는 기단석과 모서리석이 확인됐다. 조원문 주변에서는 궁궐 담장 기단과 화재 예방 및 초기 대응을 위해 설치된 ‘소방계(消防係)’, 일제강점기 왕실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이왕직사무소’의 흔적도 함께 발견됐다. 유산청은 “확인된 조원문 유구는 ‘경운궁 중건배치도’ 기록과 일치한다”며 “근대기 덕수궁 공간 구조 변화와 활용 양상을 보여주는 학술적 성과”라고 설명했다. 궁능유적본부는 ‘덕수궁 복원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올해 조원문 권역 복원 및 정비를 위한 설계를 진행하고, 2029년까지 조원문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910년대 일제가 훼손한 덕수궁 ‘조원문(朝元門)’의 흔적이 발견됐다.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원문 권역 발굴조사 결과.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를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조원문은 1902년 중화전을 중층으로 건립할 당시 경운궁(현 덕수궁)의 중문으로 건립된 문이다. 궁궐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대안문·조원문·중화문으로 이어지는 ‘삼문(三門)’ 체제를 갖췄는데, 이번 조사로 조원문의 위치와 형태가 드러났다. 이번 발굴조사 과정에서 문의 기초를 이루는 기단석과 모서리석이 확인됐다. 조원문 주변에서는 궁궐 담장 기단과 화재 예방 및 초기 대응을 위해 설치된 ‘소방계(消防係)’, 일제강점기 왕실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이왕직사무소’의 흔적도 함께 발견됐다. 유산청은 “확인된 조원문 유구는 ‘경운궁 중건배치도’ 기록과 일치한다”며 “근대기 덕수궁 공간 구조 변화와 활용 양상을 보여주는 학술적 성과”라고 설명했다.궁능유적본부는 ‘덕수궁 복원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올해 조원문 권역 복원 및 정비를 위한 설계를 진행하고, 2029년까지 조원문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유산청은 “덕수궁의 삼문 체계를 회복하고, 그 가치를 국민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비결 같은 건 없어요. 기적과도 같다고 할 수 있죠. 핵심은 음악을 함께 만들고 연습하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자매인 카티아(76)·마리엘 라베크(74)는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약 반세기 동안 듀오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26일 서울LG아트센터, 28일 강릉아트센터에서 미국 현대음악의 거장인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장 콕토 3부작’을 연주한다. 두 사람의 단독 내한 리사이틀은 2008년 이후 18년 만이다. 장 콕토 3부작은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 장 콕토(1889~1963)의 영화 ‘미녀와 야수’, ‘오르페’, ‘앙팡 테리블’을 바탕으로 글래스가 작곡한 오페라를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재구성해 자매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공연에선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강렬한 타건이 돋보이는 30여 곡이 연주된다. 카티아는 “글래스 음악의 놀라운 점은 두 대의 피아노만으로도 오케스트라에서 들을 수 없던 풍부한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마리엘은 “미녀와 야수 중 ‘정원 산책’을 연주할 때면 영화의 흑백 이미지들이 떠오른다”며 “장 콕토의 영화를 미리 감상하고 오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라베크 자매의 시작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던 두 사람은 ‘솔로 피아니스트’라는 기존의 성공 공식 대신 남다른 듀오의 길을 택했다. “파리 음악원에서 솔리스트로 1등상을 받았음에도 피아노 듀오로 활동하고 싶다고 하자, 음악원 측은 처음에 ‘피아노 듀오를 정식 실내악 범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거절했어요. 하지만 결국 카티아가 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해 설득했고, 성공했죠.”(마리엘)자매의 개척자 정신은 재즈, 바로크, 현대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거침없는 행보의 발판이 됐다. 특히 1981년 발매된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Rapsody in Blue)’는 50만 장 이상 판매됐다. 2016년 오스트리아 빈 쉔브룬 궁전에서 가진 야외 공연은 관객 10만 명이 운집했고, 세계 시청자 100만 명에게 생중계됐다. 두 사람은 “솔로 활동에 대한 갈망을 느낀 적은 없다”며 듀오로서의 특별함을 강조했다. “피아노 듀오의 매력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과 무대를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카티아) “저희는 무대 위에서도, 삶에서도 매우 다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개성이 함께 드러날 때 피아노 듀오 음악이 더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해요.”(마리엘)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국가유산청이 국가무형유산 ‘화각장(華角匠)’ 보유자로 한기덕 씨(52)를 인정 예고했다. 국가유산청은 8일 “한 씨는 화각 제작에 필요한 전통 기법과 도구를 충실히 계승·복원하는 데 기여해 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화각장은 쇠뿔을 얇게 펴 만든 투명한 판에 채색을 더해 나무 가구 등을 장식하는 기술. 한 씨는 경기도 화각장 보유자였던 고 한춘섭 씨의 아들로, 2002년 경기도 이수자, 2005년 경기도 화각장 전승교육사로 인정돼 활동해 왔다.국가무형유산 ‘입사장(入絲匠·금속 표면에 문양을 새긴 뒤 금실 또는 은실로 장식하는 기술)’ 보유자로는 승경란 씨(65)가 인정됐다. 또 ‘궁중채화(宮中綵花·꽃가루와 밀랍 등을 활용해 궁중 의례 및 연회용 조화를 만드는 기술)’ 명예보유자엔 황을순 씨(91)가 인정 예고됐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2012년 11월, 한 남매가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기발한 자작곡 ‘다리꼬지마’를 부를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 남매의 성장을 10년 넘게 지켜보게 되리란 걸. 그리고 갈수록 더 깊어지는 이들의 음악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오래도록 이어지리란 것도. 오빠 이찬혁과 여동생 이수현으로 구성된 남매 듀오 ‘악뮤(AKMU)’가 7일 정규 4집 ‘개화(FLOWERING)’를 발표했다. 지난해 12년간 몸담았던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난 뒤 선보이는 첫 앨범이다. 2019년 발표한 ‘항해’ 이후 7년 만의 정규 앨범이기도 하다.‘개화’는 전반적으로 컨트리풍의 편안함과 봄기운을 머금고 있는 싱그러운 앨범이다. 특히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을 포함해 앨범에 실린 11곡 대부분을 정갈한 우리말 가사로 채운 게 인상적이다. 한글이 가진 직관적이고 섬세한 정서가 영어 가사가 범람하는 요즘 가요계에서 보다 선명한 개성으로 다가온다. 잔잔한 템포의 타이틀곡 ‘기쁨, 슬픔…’은 악뮤 특유의 서정성과 기발함이 돋보인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감정을 선악으로 나누지 않고 모두 아름다움으로 끌어안는 마음. 일상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내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찬혁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흔히 슬픔 뒤 기쁨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기쁨 뒤 슬픔이 오면 슬픔에 너무 빠져들어 기뻤던 순간을 왜곡하기도 한다”며 “기쁨 때문에 슬펐다면, 기쁨의 가치가 슬픔으로 인해 증명된다는 생각이 들어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앨범은 이찬혁이 2017년 자신의 입대 뒤 슬럼프를 겪었던 여동생을 ‘꺼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걸 떠올리면 여운이 한층 깊어진다. 두 사람은 지난해부터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고, 올 초엔 닭가슴살 식단과 강도 높은 운동이 이어지는 ‘정신 개조 캠프’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이수현이 “오빠는 나의 구원자”라고 말하기까지, 그들 사이에 있었을 우여곡절을 떠올리면 애틋함이 더해진다. 앨범 ‘개화’는 전곡을 이찬혁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다. 특히 수록곡 ‘햇빛 Bless You’는 이찬혁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이수현을 위해 만든 노래다. “걸어 잠근 창문 속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Open the door, 햇빛 bless you”라는 가사와 따뜻한 멜로디는 지친 마음을 딛고 일어서고 싶게 만든다.악뮤가 노래로 풀어낸, 버거운 현실로 인한 슬럼프와 감정의 진폭을 통과하는 과정은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개화’는 그와 비슷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로 다가온다. 악뮤는 “긴 항해 끝에 발견한 각자의 강점과 취향을 활짝 피워냈다”며 “어느새 곁에 모인 동료들과 만들어 낸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낙원’을 모두가 즐겁게 맞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악뮤 정규 앨범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며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인디록과 컨트리를 잘 결합해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표현했다”고 평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2012년 11월, 한 남매가 SBS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에서 기발한 자작곡 ‘다리꼬지마’를 부를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가요계에 또 하나의 신예가 나타나는구나’ 정도의 감상에 그쳤다. 사실 그 땐 몰랐다. 이 남매의 성장을 10년 넘게 지켜보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성장의 순간마다 더욱 깊어지는 음악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오래도록 이어지리라는 사실도 말이다.오빠 이찬혁, 여동생 이수현으로 구성된 남매 듀오 ‘악뮤(AKMU)’가 7일 발표한 정규 4집 ‘개화(FLOWERING)’는 이들이 12년 간 몸담았던 YG엔터테인먼트를 지난해 말 떠난 뒤 선보이는 첫 앨범이다. 2019년 발표한 ‘항해’ 이후 7년 만의 정규 앨범이기도 하다.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과 선공개곡 ‘소문의 낙원’을 포함한 11곡 전곡을 이찬혁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다. 악뮤는 앨범 소개에서 “긴 항해 끝에 발견한 각자의 강점과 취향을 활짝 피워냈다”며 “어느 새 곁에 모인 동료들과 만들어 낸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낙원’을 모두가 즐겁게 맞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전반적으로 컨트리풍의 편안함과 봄기운을 머금고 있는 싱그러운 앨범이다. 특히 곡의 대부분을 정갈한 우리말 가사로 채운 점이 인상적이다. 이제는 영어 가사가 K팝의 표준처럼 자리잡았지만, 오히려 한글이 가진 직관적이고 섬세한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이 앨범이 오히려 선명한 개성으로 다가온다.잔잔한 템포의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은 악뮤 특유의 서정성과 기발함이 돋보이는 노래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감정을 선악으로 나누지 않고 모두 아름다운 존재로 끌어안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일상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 가사는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이찬혁은 최근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흔히 슬픔 뒤 기쁨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기쁨 뒤 슬픔이 오면 슬픔에 너무 빠져들어서 기뻤던 순간을 왜곡하기도 한다”며 “기쁨 때문에 슬펐다면, 기쁨의 가치가 슬픔으로 인해 증명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만든 곡”이라고 했다.특히 이찬혁이 2017년 자신의 입대 이후 슬럼프를 겪던 여동생을 ‘꺼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는 걸 떠올리면, 앨범에 담긴 여운은 한층 깊어진다. 두 사람은 지난해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고, 올 초에는 닭가슴살 식단과 강도 높은 운동이 이어지는 ‘정신 개조 캠프’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이수현이 “오빠는 나의 ‘구원자’”라고 말하기까지, 그들 사이에 있었을 우여곡절의 시간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애틋함이 더해진다.수록곡 ‘햇빛 Bless You’는 힘든 시간을 보내던 이수현을 위해 이찬혁이 만든 노래다. “걸어 잠근 창문 속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Open the door, 햇빛 bless you”라는 가사와 따뜻한 멜로디는 지친 마음을 딛고 일어서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이밖에도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은 ‘소문의 낙원’, 악뮤 초기의 엉뚱한 감성을 떠오르게 하는 ‘벌레를 내고’, 우리 안의 얼룩덜룩함마저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얼룩’까지 용기를 주는 곡들이 가득하다.악뮤의 서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이 앨범이 더욱 깊이 와닿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버거운 현실로 인한 슬럼프와 감정의 진폭을 통과하는 과정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화’는 비슷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로 다가오는 앨범이다.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번 앨범을 두고 “악뮤 정규 앨범 중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라며 “이찬혁의 지난 솔로 앨범이 신스팝에 가스펠을 결합해 동시대적인 사운드를 한국적으로 풀어낸 작업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인디록과 컨트리를 잘 결합해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표현했다”고 분석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50이란 숫자에 대한 소회를 축약하자면, ‘부끄럽다’ ‘장하다’ 정도입니다. 이 이야기 속엔 ‘저는 조금 더 할 건데요’란 말이 포함돼 있어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세계와 독특하고 허스키한 음색.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이 있는 가수 한영애 씨(71)는 데뷔 50주년을 맞은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연장 살롱문보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아직 무대가 고프고, 오늘까진 목소리가 점점 더 좋아진다”며 “(나중에)‘나 원 없이 노래해 봤어, 괜찮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1976년 포크 그룹 해바라기 멤버로 데뷔한 그는 1986년 1집 ‘여울목/건널 수 없는 강’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 1기 멤버로도 활동하며 ‘누구 없소?’ ‘코뿔소’ ‘조율’ 등여러 히트곡을 남겼다. ‘소리의 마녀’라는 별칭에 대해 그는 “소리에 관심이 많아서 나쁘지 않게 들린다”며 “무서운 마녀가 아니라 빗자루 타는 마녀, 코믹하지만 바른 소리 가끔 하는 그런마녀이고 싶다”고 했다.이날 발표한 ‘스노우레인(Snowrain)’은 2022년 싱글 이후 4년 만의 신곡이다. 부활의 김태원이 작사·작곡과 기타 솔로를 맡았다. 한 씨는 “10년 전 김태원이 분장실에 찾아와 ‘선배님을 위한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그 약속을 잊지 않고 곡을 완성해 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날 영상통화로 깜짝 연결된 김태원은 “눈과 비를 소재로, 좋았던 기억뿐 아니라 아팠던 기억도 결국 추억이 된다는 걸 담았다”며 “한영애 선생님은 진정한 예술가이자 아티스트”라고 말했다.50년 동안 음악 활동을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 한 씨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대답일 수 있지만,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6월 13,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5개 도시 투어에 나선다.한 씨는 아이돌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함께 사랑받는 환경을 바란다고 했다.“대중가요는 흐름을 타는 것이지만, 1950∼60년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시대에 뒤처진 건 아니잖아요. 2020년대의 감각으로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애정이 생깁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거리낌없이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후배 음악인들에게는 “자신이 음악을 하는 데 ‘뜻’이 있는가를 늘 스스로에게 묻길 바란다”고 조언했다.“제 경우엔 30대 후반에 그 답을 찾았어요. 너무 멋있게 들려서 다른 표현을 찾고 싶었지만, 결국 제 답은 ‘구원은 무대에 있다’였습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50’이란 숫자에 대한 소회를 축약하자면, ‘부끄럽다’, ‘장하다’ 그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엔 ‘저는 조금 더 할 건데요’란 말이 포함돼 있어요.”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세계와 독특한 허스키 음색으로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을 얻은 가수 한영애(71)가 데뷔 50주년을 맞은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7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공연장 살롱문보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아직 무대가 고프고, 오늘까진 목소리가 점점 더 좋아진다”며 “(나중에) ‘나 원없이 노래해 봤어, 괜찮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음 좋겠다”고 말했다.1976년 포크 그룹 해바라기 멤버로 음악계에 데뷔한 그는 1986년 1집 ‘여울목/건널 수 없는 강’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 1기 멤버로도 활동하며 ‘누구 없소?’, ‘코뿔소’, ‘조율’ 등 여러 히트곡을 남겼다. ‘소리의 마녀’라는 별칭에 대해 그는 “소리에 관심이 많았어서 나쁘지 않게 들린다”며 “무서운 마녀가 아니라 빗자루 타는 마녀, 코믹하지만 바른 소리 가끔 하는 그런 마녀이고 싶다”고 말했다.이번에 발표한 ‘스노우레인(Snowrain)’은 2022년 싱글 이후 4년 만의 신곡이다. 부활의 김태원이 작사·작곡과 기타 솔로를 맡았다. 한영애는 “10년 전 김태원이 분장실에 찾아와 ‘선배님을 위한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그 약속을 잊지 않고 곡을 완성해줬다”며 “‘아름답다’, ‘아득하다’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이날 영상통화로 깜짝 연결된 김태원은 “눈과 비를 소재로 해 좋았던 기억뿐 아니라 아팠던 기억도 결국 추억이 된다는 나름의 생각을 담았다”며 “한영애 선생님은 진정한 예술가이자 아티스트”라고 말했다.50년 동안 음악 활동을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서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대답일 수 있지만,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시회, 박물관, 공연장 등을 다니며 모든 경험이 음악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는 습관이 체화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그는 6월 13일과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5개 도시 투어에 나선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신곡을 비롯해 1~6집의 주요 레퍼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영애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지드래곤의 ‘드라마(DRAMA)’를 재해석해 불러보고 싶어졌다”며 “예전에 방탄소년단(BTS)이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2박 3일 동안 그들의 노래만 들으며 분석한 적이 있을 정도로 동시대 음악도 꾸준히 접하려 한다”고 말했다.그는 아이돌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함께 사랑받는 환경을 바란다고도 했다.“대중가요는 흐름을 타는 것이지만, 1950~60년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시대에 뒤처진 건 아니잖아요. 2020년대의 감각으로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애정이 생깁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이어 후배 음악인들에게는 “당신이 음악을 하는 데 ‘뜻’이 있는가를 늘 스스로에게 묻길 바란다”고 조언했다.“제 경우엔 30대 후반에 그 답을 찾았어요. 너무 멋있게 들려서 다른 표현을 찾고 싶었지만, 결국 제 답은 ‘구원은 무대에 있다’였습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32년간 세계 공연계에서 쌓아 온 경험을 한국 문화예술에 더 깊고 넓게 기여하는 일에 보태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장한나 씨(44)가 여성 음악인 최초로 예술의전당(예당) 사장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일 장 씨의 사장 임명에 대해 “1987년 예당이 설립된 이래 첫 음악인 출신 여성 사장”이라며 “문화예술계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K컬처가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시점에 예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도약을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장 씨는 여성 음악인으로는 첫 번째 예당 사장이다. 예당 수장을 여성이 맡은 건 이사장과 사장 직제가 합쳐져 있던 1989년에 임명된 조경희 전 정무제2장관(수필가)뿐이다. 장 씨는 역대 최연소로, 1980년대생이 사장이 된 것도 처음이다. 장 신임 사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1992년 7월 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 예당 콘서트홀 무대에 섰다”며 “고국의 팬과 수십 년간 음악의 기쁨을 나눠 온 소중한 무대로 돌아가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이라며 “예당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가까이 열려 있는, 시대를 품는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도록 성실하게 충실하게 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 신임 사장은 1994년 11세에 ‘제5회 로스트로포비치 국제첼로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첼로 영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베를린필하모닉과 뉴욕필하모닉, 런던심포니 등과 협연하며 한국 클래식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부터는 지휘자로 영역을 확장해 유럽과 북미 등에서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왔다. 국내에선 예술감독으로 2009∼2014년 ‘장한나의 앱솔루트클래식페스티벌’과 2024∼2025년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을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초빙특임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장 씨는 이르면 이달 24일 임명장을 받고 3년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예당 사장은 장형준 전 사장의 임기가 지난해 6월 종료된 뒤 10개월 동안 공석이었다. 한편 문체부는 같은 날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에 박혜진 단국대 성악과 교수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이사엔 유미정 단국대 피아노과 교수를 임명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K팝 가수 최초로 2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빌보드는 5일(현지 시간) 차트 예고 기사를 통해 “BTS ‘아리랑’이 힙합 스타 카녜이 웨스트(예·YE)의 신보 ‘불리(BULLY)’와 멜라니 마르티네즈의 ‘하데스(HADES)’ 등을 제치고 지난주에 이어 1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K팝 가수 앨범이 ‘빌보드 200’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건 처음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앨범은 지난해 이 차트에서 비연속으로 1위를 기록했다.‘아리랑’은 BTS의 통산 7번째 빌보드200 1위 앨범이다. BTS는 지난달 20일 이 앨범을 발매하며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컴백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32년 간 세계 공연계에서 쌓아온 경험을 한국 문화예술에 더 깊고 넓게 기여하는 일에 보태고자 합니다.”세계적인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장한나 씨(44·사진)가 여성 음악인 최초로 예술의전당(예당) 사장이 됐다.문화체육관광부는 6일 장 씨의 사장 임명에 대해 “1987년 예당이 설립된 이래 첫 음악인 출신 여성 사장”이라며 “문화예술계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K컬처가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시점에 예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도약을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장 씨는 여성 음악인으로는 첫 번째 예당 사장이다. 예당 수장을 여성이 맡은 건 이사장과 사장 직제가 합쳐져 있던 1989년 임명된 조경희 전 정무제2장관(수필가)뿐이다. 장 씨는 역대 최연소로, 1980년대 생이 사장이 된 것도 처음이다.장 신임 사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1992년 7월 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 예당 콘서트홀 무대에 섰다”며 “고국의 팬과 수십 년간 음악의 기쁨을 나눠 온 소중한 무대로 돌아가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이라며 “예당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가까이 열려있는, 시대를 품는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도록 성실하게 충실하게 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장 신임 사장은 1994년 11세에 ‘제5회 로스트로포비치 국제첼로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첼로 영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베를린필하모닉와 뉴욕필하모닉, 런던심포니 등과 협연하며 한국 클래식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2007년부터는 지휘자로 영역을 확장해 유럽과 북미 등에서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왔다. 국내에선 예술감독으로 2009~2014년 ‘장한나의 앱솔루트클래식페스티벌’과 2024~2025년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을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초빙특임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장 씨는 이르면 이달 24일 임명장을 받고 3년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예당 사장은 장형준 전 사장의 임기가 지난해 6월 종료된 뒤 10개월 동안 공석이었다.한편 문체부는 같은 날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에 박혜진 단국대 성악과 교수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이사엔 유미정 단국대 피아노과 교수를 임명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음악을 사랑하니까 다들 이곳에 모이셨겠죠?” 3일 저녁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Z세대 대표 록스타’로 불리는 가수 한로로의 밝은 목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EBS 라이브 공연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공감)이 3년 만에 재개되는 걸 기념하는 ‘홈커밍데이’ 무대였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 루키’ 출신 뮤지션인 한로로(2022년)와 실리카겔(2016년), 장기하(2008년) 등이 관객 400여 명과 함께 프로그램의 ‘부활’을 축하했다.● 돌아온 음악인들의 ‘집’ 한로로는 통통 튀는 사운드의 ‘먹이사슬’로 공연 문을 열었다. 정사각형 무대를 둘러싼 네 방향 관객과 번갈아 눈을 맞추며 호흡하는 등 한층 단단해진 무대 장악력이 두드러졌다. 2022년 ‘입춘(立春)’으로 데뷔한 그는 청춘의 감정을 담은 서정적인 음악으로 빠르게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사랑하게 될 거야’ ‘0+0’ 등이 빅히트하고, 올 2월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에도 선정되며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한로로는 “‘헬로 루키’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려, 공감은 제게 늘 긴장되는 공간”이라며 “그때는 아무도 저를 몰랐는데, 오늘 응원 슬로건을 보니 기쁘면서도 얼떨떨하다”면서 웃었다. 공연 후반부엔 2일 발매된 새 싱글 ‘애증(LOVE&HATE)’의 타이틀곡 ‘게임 오버?’로 큰 환호를 이끌어 냈다. 한로로는 “게임 속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여기서 끝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느껴 만든 곡”이라며 “미움 뒤의 사랑을 찾아서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이어 무대에 오른 4인조 밴드 실리카겔은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몽환적인 키보드가 인상적인 ‘9’, 청량한 색감과 차가운 기계음의 조화가 재밌는 ‘빅 보이드(BIG VOID)’, 강렬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틱택톡(Tik tak tok)’을 연이어 들려주며 관객을 압도했다. 기타리스트 김춘추는 “공감은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재밌게 보고, 공부도 된 프로그램”이라며 “중단 소식에 아쉬웠는데 다시 돌아와 기쁘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다시는 멈추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 곡 ‘노 페인(NO PAIN)’의 가사인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음악인들의 기쁨을 보여주는 듯했다.피날레는 2세대 인디음악의 아이콘 장기하가 맡았다. 추리닝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특유의 말하듯 이어가는 창법과 자유로운 몸짓만으로 분위기를 장악했다. ‘그건 니 생각이고’, ‘부럽지가 않어’, ‘별일 없이 산다’ 등 히트곡들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2008년 ‘헬로 루키’가 첫 TV 데뷔였다는 장기하는 “당시엔 이 무대가 이렇게 오래 기억될 줄 몰랐다”며 “지금 이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악뮤’ ‘김완선’ 등 공연 이어가 2004년 시작된 공감은 재즈와 록, 포크, 힙합,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저변을 넓힌 프로그램이다. 2007년부터는 ‘헬로 루키’로 국카스텐 등 실력 있는 인디 뮤지션 173팀을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3년 가까이 라이브 공연을 중단했다가, 이후 공정거래법률 위반 혐의를 받던 구글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의 의결로 국내 음악산업 상생기금 300억 원을 EBS에 출연하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공감에선 앞으로 ‘악뮤’ ‘김완선’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날 공연 실황은 다음 달 6일 방송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음악을 사랑하니까 다들 이곳에 모이셨겠죠?”3일 저녁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홀. ‘Z세대 대표 록스타’로 불리는 가수 한로로의 밝은 목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EBS 라이브 공연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공감)이 3년 만에 재개되는 걸 기념하는 ‘홈커밍데이’ 무대였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 루키’ 출신 뮤지션인 한로로(2022년)와 실리카겔(2016년), 장기하(2008년) 등이 관객 400여 명과 함께 프로그램의 ‘부활’을 축하했다.● 돌아온 음악인들의 ‘집’한로로는 통통 튀는 사운드의 ‘먹이사슬’로 공연 문을 열었다. 정사각형 무대를 둘러싼 네 방향 관객과 번갈아 눈을 맞추며 호흡하는 등 한층 단단해진 무대 장악력이 두드러졌다. 2022년 ‘입춘(立春)’으로 데뷔한 그는 청춘의 감정을 담은 서정적인 음악으로 빠르게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사랑하게 될 거야’ ‘0+0’ 등이 빅히트하고, 올 2월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에도 선정되며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한로로는 “‘헬로 루키’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려, 공감은 제게 늘 긴장되는 공간”이라며 “그때는 아무도 저를 몰랐는데, 오늘 응원 슬로건을 보니 기쁘면서도 얼떨떨하다”고 웃었다.공연 후반부엔 2일 발매된 새 싱글 ‘애증(LOVE&HATE)’의 타이틀곡 ‘게임 오버?’로 큰 환호를 이끌어냈다. 한로로는 “게임 속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여기서 끝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느껴 만든 곡”이라며 “미움 뒤의 사랑을 찾아서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이어 무대에 오른 4인조 밴드 실리카겔은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몽환적인 키보드가 인상적인 ‘9’, 청량한 색감과 차가운 기계음의 조화가 재밌는 ‘빅 보이드(BIG VOID)’, 강렬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틱택톡(Tik tak tok)’을 연이어 들려주며 관객을 압도했다.기타리스트 김춘추는 “공감은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재밌게 보고, 공부도 된 프로그램”이라며 “중단 소식에 아쉬웠는데 다시 돌아와 기쁘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다시는 멈추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 곡 ‘노 페인(NO PAIN)’의 가사인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음악인들의 기쁨을 보여주는 듯했다.피날레는 2세대 인디음악의 아이콘 장기하가 맡았다. 추리닝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특유의 말하듯 이어가는 창법과 자유로운 몸짓만으로 분위기를 장악했다. ‘그건 니 생각이고’, ‘부럽지가 않어’, ‘별일 없이 산다’ 등 히트곡들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2008년 ‘헬로 루키’가 첫 TV 데뷔였다는 장기하는 “당시엔 이 무대가 이렇게 오래 기억될 줄 몰랐다”며 “지금 이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악뮤’ ‘김완선’ 등 공연 이어가2004년 시작된 공감은 재즈와 록, 포크, 힙합,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저변을 넓힌 프로그램이다. 2007년부터는 ‘헬로 루키’로 국카스텐 등 실력 있는 인디 뮤지션 173팀을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3년 가까이 라이브 공연을 중단했다가, 이후 공정거래법률 위반 혐의를 받던 구글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의의결로 국내 음악산업 상생기금 300억 원을 EBS에 출연하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공감에선 앞으로 ‘악뮤’ ‘김완선’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날 공연 실황은 다음 달 6일 방송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인구의 30∼60%를 앗아간 대재앙이었다. 도시와 마을은 순식간에 붕괴됐고, 공포와 혼란이 사회 전반을 뒤덮었다. 그러나 학술지 ‘사이언스’ 전문 기자인 저자는 이 사건을 단순한 종말이 아닌 변화의 출발점으로 바라본다. 노동력이 급감하자 살아남은 피지배층의 노동력 가치가 높아졌고, 지배층의 통제는 약화됐다. 그 결과 중세 사회의 경직된 위계 구조는 균열을 맞았고, 보다 평등한 질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책은 이처럼 인류가 겪어온 다양한 시대의 ‘아포칼립스’를 최신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복원한다. 저자는 이를 “한 사회의 생활 방식과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집단적 상실”로 정의하며, 파괴 자체보다 그 이후 인간의 적응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극심한 상실 속에서도 기존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이집트 고왕국의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장기 가뭄으로 나일강 범람이 멈추고 농경이 붕괴되자, 신성시되던 왕권은 약화됐다. 중앙집권 체제는 해체됐고 지역 단위의 정치 질서가 등장했다. 권력은 더 이상 신성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고,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통해 유지돼야 했다. 지역의 평민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억압됐던 창의력이 자유로이 발산됐다. 역사서에 ‘멸망’으로만 간단히 기록됐던 아포칼립스의 순간을 ‘실패’가 아닌 ‘적응과 재편’의 과정으로 해석한 점이 흥미로운 책. 팬데믹과 기후위기, 정치적 불안이 겹친 오늘날 역시 또 다른 전환의 시기일 수 있다. 재난을 단순한 파괴로만 볼 게 아니라 그 이후 어떤 변화가 가능해지는지를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귀를 때리는 듯한 빗소리 위로 배우 이제훈의 낮은 내레이션이 스며들었다. 김광균의 시 ‘노신(魯迅)’이 낭송되자 어두운 무대엔 하얀 타이포그래피가 솟아올랐다. 이중 프로젝션으로 입체화된 글자들은 구름처럼 부유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1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하슬라 인 서울―추일서정: 김광균’은 한국 모더니즘 시를 대표하는 김광균(1914∼1993)의 작품 세계를 음악과 낭송, 미디어아트로 풀어낸 종합예술 공연이다. 지난해 강원 강릉시에서 열린 ‘하슬라국제예술제’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서울에서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하슬라(何瑟羅)는 삼국시대 강릉의 옛 이름이다. 강릉 공연과 달리 이제훈의 녹음 내레이션이 더해진 서울 공연은 김광균의 대표 시 9편을 중심으로 16개 장면으로 재구성됐다. 눈과 비, 바람, 바다, 안개, 기적 등 시 속에서 반복되는 감각적 이미지들이 음악과 영상으로 다채롭게 표현됐다. 배우 김미숙의 낭송을 중심으로 소프라노 이명주,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참여했다. 각 장면은 시와 음악이 맞물리며 선명한 이미지로 살아난다. 소복이 쌓이는 눈과 외로이 켜진 호롱불의 대비가 돋보이는 ‘설야(雪夜)’에 드뷔시 ‘눈 위의 발자국’이 흘러나왔다. 서재처럼 꾸며진 무대 한가운데 김 배우가 직접 앉아 낭송하자, 눈 내리는 밤의 고요와 쓸쓸함이 손에 닿을 듯 깊이 다가왔다. 특히 음악은 단순한 반주를 넘어 공연 전체를 이끄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명주는 최우정 작곡가가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한 가곡 ‘목련’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아련하게 그려냈다. 또 다른 초연 가곡 ‘와사등’ 역시 왈츠 리듬으로 도심 속 외로움을 표현한 시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사무엘 윤이 샹송 ‘파리의 다리(Sous les ponts de Paris·술레 퐁드 파리)’의 가사를 생전 시인이 즐겨 부르듯 “술에 빠진 파리”라고 바꿔 부르자, 객석에도 웃음이 번졌다. 인터스텔라에 삽입돼 유명한 샤를 뒤몽의 ‘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에선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조화가 돋보였다. 이국적인 이미지를 통해 쓸쓸한 가을날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낸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이 기적 소리와 함께 마지막을 장식하자, 관객들은 한참 긴 여운 속에 잠긴 듯했다. 이날 무대는 김광균 시가 지닌 고독과 공감각적 이미지를 생생하게 구현하며, 관객이 한 편의 시 속을 천천히 걸어 나오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프리뷰 공연 ‘추일서정’에 이어 올 10월 16∼25일 강릉 전역에서 열리는 제3회 하슬라 국제예술제는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더욱 확장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재혁 예술감독은 “‘추일서정’은 하슬라국제예술제가 추구하는 예술적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서울에서 시작된 감동이 가을날 강릉에서 펼쳐질 ‘사랑과 우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귀를 때리는 듯한 빗소리 위로 배우 이제훈의 낮은 나레이션이 스며들었다. 김광균의 시 ‘노신(魯迅)’이 낭송되자 어두운 무대엔 하얀 타이포그래피가 솟아올랐다. 이중 프로젝션으로 입체화된 글자들은 구름처럼 부유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1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하슬라 인 서울―추일서정: 김광균’은 한국 모더니즘 시를 대표하는 김광균(1914~1993)의 작품 세계를 음악과 낭송, 미디어아트로 풀어낸 종합 예술 공연이다. 지난해 강원 강릉시에서 열린 ‘하슬라국제예술제’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서울에서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하슬라(何瑟羅)는 삼국시대 강릉의 옛 이름이다.강릉 공연과 달리 이제훈의 녹음 나레이션이 더해진 서울 공연은 김광균의 대표 시 9편을 중심으로 16개 장면으로 재구성됐다. 눈과 비, 바람, 바다, 안개, 기적 등 시 속에서 반복되는 감각적 이미지들이 음악과 영상으로 다채롭게 표현됐다. 배우 김미숙의 낭송을 중심으로 소프라노 이명주,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참여했다.각 장면은 시와 음악이 맞물리며 선명한 이미지로 살아난다. 소복이 쌓이는 눈과 외로이 켜진 호롱불의 대비가 돋보이는 ‘설야(雪夜)’에 드뷔시 ‘눈 위의 발자국’이 흘러나왔다. 서재처럼 꾸며진 무대 한가운데 김 배우가 직접 앉아 낭송하자, 눈 내리는 밤의 고요와 쓸쓸함이 손에 닿을 듯 깊이 다가왔다. 특히 음악은 단순한 반주를 넘어 공연 전체를 이끄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명주는 최우정 작곡가가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한 가곡 ‘목련’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아련하게 그려냈다. 또 다른 초연 가곡 ‘와사등’ 역시 왈츠 리듬으로 도심 속 외로움을 표현한 시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사무엘 윤이 샹송 ‘파리의 다리(Sous les ponts de Paris·술레 퐁드 빠리)’의 가사를 생전 시인이 즐겨 부르듯 “술에 빠진 파리”라고 바꿔 부르자, 객석에도 웃음이 번졌다. 인터스텔라에 삽입돼 유명한 샤를 뒤몽의 ‘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에선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조화가 돋보였다.이국적인 이미지를 통해 쓸쓸한 가을날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낸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이 기적 소리와 함께 마지막을 장식하자, 관객들은 한참 긴 여운 속에 잠긴 듯했다. 이날 무대는 김광균 시가 지닌 고독과 공감각적 이미지를 생생하게 구현하며, 관객이 한 편의 시 속을 천천히 걸어 나오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프리뷰 공연 ‘추일서정’에 이어 올 10월 16~25일 강릉 전역에서 열리는 제3회 하슬라국제예술제는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더욱 확장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재혁 예술감독은 “‘추일서정’은 하슬라국제예술제가 추구하는 예술적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서울에서 시작된 감동이 가을날 강릉에서 펼쳐질 ‘사랑과 우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