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대기자

대기자

구독 212

추천

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4-03-29~2024-04-28
칼럼100%
  • [김순덕의 도발]대체 윤 대통령의 국정 비전은 뭔가

    아직 혼이 덜 난 모양이다. 친윤 원내대표를 세우겠다는 집권세력말이다. 대통령 때문에 총선 참패하고도 답정이(李)라니! 흥분해 이런 소리를 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나라를 구했다고 도사처럼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라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주로 우파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재명 대통령’의 탄생을 막은 것만으로도 할 일은 다 했다는 거다. 만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면 어떤 대한민국으로 바뀔지는, 그림이 그려진다. 기본소득이 온 국민을 받쳐줘 일 안해도, 노력 안 해도(학생은 공부 안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없는 안심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중국에도, 대만에도 ‘셰셰(謝謝·고맙습니다)’하는 기막힌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될지 모른다. 물론 정반대가 될 공산도 크다. 2년 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후보를 찍은 48.56% 민의 중 상당수는 이런 걱정근심의 반영이었다.● ‘공정과 상식’은 국정원칙이었다윤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 때 어떤 대한민국일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의 나라? 이미 깨졌다.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보니 심지어 ‘공정과 상식’은 국정운영의 원칙이었다.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고,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치의 원칙을 고수’한다고 친절히 설명한다. 헹. 김건희 여사 문제만 봐도 공정과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연금·노동·교육 개혁?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윤 대통령도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는 앞으로 수십 년간 지속할 수 있는 연금개혁의 ‘완성판’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2022년 말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밝혔다. 차질 없이 진행된대도 임기 중엔 개시도 못한다는 소리다. 같은 날 윤 대통령은 노동유연성 개혁도 강조했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3류, 4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 발표된 로드맵에 따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이미 작년 하반기 이뤄졌어야 했다. 이런 식이면 3년 후 우리는 3류, 4류로 전락한 나라에서 살 판이다. ● 국정비전이 ‘다시 대한민국!’이라고? 그럼 교육개혁이라도 성공하면 우리 아이들은 좋아질까. 2025년 우리나라는 국가교육과정에서 세계 최초로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한 나라가 된다(는 계획이 나왔다). 하지만 수능과 대입제도가 그대로면, 사교육에 목매는 현실도 그대로일 게 뻔하다. 그밖에 또 윤 대통령이 무슨 일을 도모해 어떤 나라로 이끌어갈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하도 답답해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국정비전’이라는 문패를 클릭하니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가 뜨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비전이 그거였다니! 취임사에서 강조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한다는 뜻인 듯하다. 취임사 맨 끝에서도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라고 재차 강조했었다. 말은 좋되… 공허하다. 윤 대통령이 자유를 수십번 강조한 것은 알겠는데, 지금 적잖은 정치평론가와 기자들이 방송에 나와 “이런 말하면 고소당할까 봐…” 우려한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자유를 외치는 건 코미디다. 윤 대통령-검찰 연대가 확고한 것은 알겠는데, 총선에서 야당 찍은 이들은 “대통령 주변은 당당하냐” 코웃음 친다. ‘인권과 공정과 연대의 가치가 기반인 나라’는 조롱거리가 된 거다. ● 참모가 써준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그래서 대통령의 ‘비전’이 절실한 것이다. 앞으로 3년 꾹 참고 윤 대통령을 지지하면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 그림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SK의 전신인 선경그룹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 후 장기 경영 목표를 정보통신사업 진출로 정하고 ‘2000년대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기업’을 새 비전으로 제시했었다. KT를 인수하기 한참 전부터 이런 비전이 있었기에 오늘의 SKT도 가능했을 터다.하다못해 노태우 대통령(1988년 2월~1993년 2월 재임) 시절엔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비전이 있었다(비전대로 됐느냐고 따지지 마시길. 다만 ‘권위주의 종식이라는 그림만은 분명히 그려지지 않는지?) 그 불후의 구호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는 실은 유능한 참모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김영삼 대통령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는 회고록 ‘시대의 조정자’에서 이렇게 썼다. 노태우 대선 후보의 연설문을 전담했던 김학준 전 서울대 교수(회고록 속 표현. 당시엔 민정당 의원이었다)가 하루는 대선에서 매우 중요한 연설문이라며 민정당 정책위의장이던 자기 방을 찾아왔더란다. 읽어보니 밋밋하고 신문사에서 쓰는 말로 ‘야마’(山·강조점)가 없었다.생각 끝에 “위대한 평민의 시대를 열겠다”는 구절을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김학준은 ‘평민’을 ‘보통 사람’으로 바꾸면 어떠냐고 했다. ‘위대한 보통 사람의 시대’라는 비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 윤 대통령은 왜 참모들 도움을 받지 않나‘물태우’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노태우가 무탈하게 대통령 임기를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하게 참모들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남재희는 평가한다. 유능한 참모들의 집합적 합의에 따라 정치를 한 결과였다는 거다(회고록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김학준 공보수석이 청와대를 떠나는 퇴임식 때도 김학준 자신이 써준 말씀자료를 그대로 읽더라고 했다^^ 하지만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은 노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했다. ‘대통령 퇴임식’ 말씀자료를 그대로 읽었다는 게 팩트다.).‘물’과는 거의 상극일 듯한 윤 대통령은 연설문도 직접 쓴다고 알려져 있다. 검찰 공소장을 많이 쓴 경험에다 자신이 제일 잘 쓴다는 자신감 때문일 터다. 취임사도 윤 대통령이 다듬고 수정해 거의 새롭게 쓴 원고였다(그래선지 기억에 남는 명구절은 없다). 국민을 가르치는 것 같은 51분간의 의대 관련 대국민담화, ‘그러나’와 ‘하지만’이 15번이나 들어간 총선 참패 국무회의 모두발언 역시 윤 대통령이 손을 댔다는 후문이다.올초 KBS 신년대담에서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써준 예상 질문과 답변을 보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게 바로 재앙이었음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혈세 내는 입장에선 가슴이 미어질 판이다. 손해가 곱절이서다(제 할 일 못하는 국정메시지비서관한테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줘야하느냐고요!). ● 사람을 부리는 것이 임금의 능력신하는, 요즘 말로 관료는, 자기 일 잘하면 최고다. 하지만 임금은 달라야 한다.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도 없지만 자신이 더 잘 한다고(그리고 잘 안다고) 신하가 할 일까지 떠맡아 하는 임금은 임금답지 않다. ‘신하는 스스로 어떤 일을 자임하는 것을 능력으로 삼고 임금은 사람을 부리는 것으로써 능력을 삼는다’. 중국의 인재학 고전 ‘인물지(人物志)’에 나오는 귀절이다. 유능한 참모를 찾아 앉히고 제대로 부려먹는 것이 대통령의 능력이라는 의미다. 비서실장 하나 바꾸는데도 그리 뜸을 들이더니 어쨌든 새 사람이 들어왔다. 정상적 대통령실이라면 5월 10일 대통령 취임 2주년을 기해 기자회견을 마련해야 마땅하다. ‘김치찌개 간담회’로 퉁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윤 대통령이 “김치찌개” 소리 할 때마다 슬프다. 기자가 김치찌개에 환장한 줄 아시는지). 정진석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이 과연 유능한지, 윤 대통령이 사람 볼 줄 알게 됐는지, 기자회견에서 재차 확인될 것이다.● 자칫 ‘박절한 정부’로 기억될 수도 있다대통령 모두 발언만은 제발 참모가 써준 대로 읽기 바란다. 그 속에 국민을 어떤 나라로 이끌겠다는 비전을 다시 담아 분명히 전달해주었으면 한다. 취임사에 쓴 ‘글로벌 리더 국가’나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 1도 다가오지 않는다(총선 참패한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길…). 설 명절 때 대국민 메시지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노래를 부른 것이 국정운영 비전인 ‘따뜻한 정부’를 부각시키려고 그랬다는 건데 아…그게 비전인지는 동아일보 기사보고 처음 알았다. 정말 안타깝지만 이 정부가 따뜻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한남동과 대통령 주변이 아니라면).‘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는 윤 대통령만의 비전이랄 수 없다. 차라리 “공정과 상식으로 돌아가겠다”며 지난 2년의 과오에 고개 숙인다면, 국민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자신 없으면 이제라도 국민이 기억할 만한, 그리하여 희망을 갖고 따라갈 만한 비전을 새롭게, 제대로 제시해주기 바란다. 또 타이밍을 놓치면 윤석열 정부는 ‘박절한 정부’로 기억될 수도 있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1일 전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DJ냐, 박근혜냐… 윤 대통령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역사에 답이 있다. 먼 과거까지 갈 것도 없다. 총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만 비교해도 답은 금방 나온다. 대통령 중간평가인 4·10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으로 대파, 아니 대패한 윤석열 대통령이 당장 어째야 하는지.집권 3년차 2000년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맞은 DJ는 대국민 특별담화를 냈다. “총선 민의는 여야가 협력해 나라의 정치를 안정시키라는 지엄한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소회를 밝히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여야영수회담을 제의했다. 패배 나흘 만에 TV로 생중계된 담화였다. ‘총재회담’ 대신 입때껏 안 써왔던 ‘영수회담’이라는 용어를 쓴 것도 시선을 끌었다. ● DJ 대국민 담화-朴, 청와대 모두발언 집권 4년차인 2016년 4·13총선에서 1석차로 패한 ‘박근혜 청와대’는 달랐다. 청와대 대변인 명의로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들의 이러한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달랑 두 줄짜리 논평을 내놨을 뿐이다.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그 흔한 크리셰조차 없었다. 대통령 육성은 총선 닷새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다. 늘 그랬듯 단호한 표정으로 그는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고 했다. ‘국회 심판론’을 외쳤던 대통령 자신을 변호하듯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즉 국회가 변해야 한다고 일침까지 놨다. 당연히 영수회담 제의 같은 건 없었다. 6분 간의 모두 발언 중 총선 관련 발언도 꼴랑 45초였다. 여당에서조차 답답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이 의례적인 사과라도 당연히 표명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물론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주로 하는 소리였지만. ● 국무회의 모두발언 택한 ‘윤석열 모델’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모델’로 가는 듯하다. 물론 현재까지 얘기다. 총선 패배 다음날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기자들 앞에 나타나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대통령의 말씀을 제가 대신 전해드리도록 하겠다”더니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44자(공백 포함하면 56자)를 읽었다. 박 전 대통령 때는 그래도 두 줄이었는데 이번엔 김밥처럼 고작 한줄이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고 했다. 2016년처럼 비서들 앞이 아니라 국무위원들 앞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기자회견도 아니고, 국무위원들 듣는 형식을 왜 굳이 국민이 알아서, 새겨들어야 하는지 부아가 난다. 총선 압승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거듭 촉구했던 대통령과의 만남도 대통령실에선 아직 결정을 못한 눈치다. 패배 6일만에 하는 육성고백이면(이미 박근혜 때보다 하루 늦었다) 윤 대통령은 제대로 해주었으면 한다. 국민들 대신해 질문해줄 기자들이 없어 궁금증은 다 풀 수 없겠지만 제발 여당 내에서조차 답답하다는 소리는 안 나오게, 담아야 할 내용은 다 담아서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 대통령이 아니라 나라 걱정하는 국민을 위해서다. ●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한다대국민 담화 일주일 뒤 열린 여야영수회담에서 DJ와 이회창은 ‘국민대통합의 정치’를 약속하는 공동발표문을 내놨다. 물론 다 지켜졌다고 하긴 어렵다. DJ는 한달 뒤 새총리에 자민련 총재 이한동을 임명하고 총선 과정에서 폐기되다 시피했던 DJP 연대도 복원했다(이회창은 DJ의 ‘인위적 정개 개편’ 에 분노보다 환멸을 느꼈다고 자서전에 썼다). 이렇게 여소야대를 극복한 놀라운 정치력으로 DJ는 종국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것이다. 반성 할 줄 몰랐던 박 전 대통령이 그 뒤 어떤 길로 갔는지, 멀지 않은 역사가 말해준다(정말이지 그 끔찍한 단어를 쓰고 싶진 않다). DJ 반의 반 만큼의 정치력도 없어 보이는 윤 대통령이 ‘민생’만 강조해 현 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들이 많다. 시중엔 윤 대통령이 과연 변할 것인가, 안 변할 것인가를 놓고 말들이 분분하다.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택한 것 보면, 그 오만해 보이는 스타일이 변할 것 같지가 않다. “지도자가 통치스타일을 바꾸지못하는 것은 타고난 성향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노선을 추구함으로써 항상 성공해 온 경우에는 그것을 포기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마키아벨리가 한 말이다. ‘윤통 스타일’ 때문에 정권은 총선에서 심판받았다. 포기해야 할 이유는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국무회의 모두발언 속에 “5월 10일 취임 2주년을 기해 반드시 기자회견을 마련하겠다”는 말이 들어간다면, 또 한번의 희망은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04-15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대통령만 빼고 다 바꾸라’는 성난 민심

    제목에 꽂힌 독자들은 말할지 모른다. 아니, 우린 대통령을 바꾸고 싶은 것이라고. 그럴 방도가 없어 촛불 혹은 짱돌을 들 듯 분노 투표, 시위 투표, 응징 투표를 한 것이라고. 누가 뭐래도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었다. 내각제 같으면 총리를 쫓아내고 정권을 갈아 치우는 야당 승리다. 국민의힘이야 참패가 슬프다고 해도 여전히, 엄연히 집권당이다. 지금까지와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당 대표 쫓아내라면 쫓아내고, 내부 총질 없이 대통령의 ‘체리 따봉’에 감읍하면 그만이다. 물론 야권은 하늘을 쓰고 도리질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오만한 대통령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듯 오만한 야권도 결국은 심판받는다. 2000년 4·13총선이 그랬다. 소수파 정권이었던 김대중(DJ) 대통령은 신년 초 ‘대통령당’인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며 “정치가 국정의 발목을 잡는 사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거대 야당의 횡포를 비판했다. 그러나 집권 3년 차에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집권당은 고작 115석이었다. 한나라당(현 국힘)은 DJ 정권 심판론으로 133석을 차지해 제1당을 지켰지만 ‘제왕적 총재’ 이회창은 3년 후 대선에서 패하고 말았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꿈은 정권 재창출”이라고 DJ는 회고록에 썼다. 윤 대통령에게도 3년의 시간이 있다. 대통령만 빼고 다 바꾼다면, 총선 패배를 딛고 그래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킨 대통령으로 정권 재창출에 기여할 기회는 살아있다. 패배 나흘 뒤 DJ는 담화문을 통해 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을 제의했고 실제로 만나 상생 정치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암만 담화문을 내고 지금껏 안 만났던 야당 대표와 회담을 한대도 윤 대통령 스스로 달라지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국민 신뢰만 잃을 수 있다. 작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이 끝나고도 그랬다. “저와 내각이 반성하겠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고 말했다지만 바뀐 건 없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개각 인사 천거를 요청받은 한 인사는 자신이 건넨 괜찮은 명단이 참모진의 평판조회를 거치면서 괜찮지 않게 돼버리더라고 한탄을 했다. 결국 비서실 찔끔 개편과 총선용 개각에 그쳐 마침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구청장 하나 바꾸는 ‘쪼만한 선거’일 뿐 정권 중간평가는 아니라고, 대통령에게 ‘내 귀에 캔디’ 같은 소리나 했던 그들이 간신이다. 대통령이 국힘 대표들을 갈아 치울 때 “그건 아니다” 한마디 못 하고 북 치고 장구 친 그들이 간신이다. 학예회 같은 민생토론회나 연출했던 참모진과 내각은 물론이고 ‘입틀막’에 이어 ‘파틀막’ 사태까지 번지게 만든 경호처에도 간신이 수두룩하다. 이들 무능한 간신들은 곧 분출할 대통령실-내각 개편 요구에 대해서도 몇 달 전 단행한 걸 또 할 필요 있느냐며 제 한 몸 보존에 급급할 것이다. 당이 문제이지 대통령은 잘못 없다며 심기 경호에만 골몰하는 간신이 들끓지 않고서야 2년 전 ‘공정과 상식’을 들고나와 “무도한 문재인 정권 교체”를 외쳤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은 어디 갔는지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그때의 윤석열은 지금, 없다. 지긋지긋한 내로남불 박살낼 줄 알았는데 부인과 동창, 검찰 특수통 등 내 식구에게는 박절하지 못하면서 내 식구 아니면 잠재적 피의자로 아는 검찰주의자 윤석열만 보일 뿐이다. 조국혁신당이라는 유아적 당명을 짓고 대표직에 오른 조국이 돌풍을 일으킨 것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당신들은 떳떳한가’ 싶은 배신감 때문이었다. 이대로 3년을 갈 순 없다. 대통령을 갈아 치울 수 없으니 대통령 빼고 다 바꾸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 정무감각이 꽝이니 정치 경험 많은 비서실장을 들이라는 것이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며 부인만 감쌀 게 아니라 진짜 게이트 생기기 전에 제2부속실을 설치하라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뒤에도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았던 충암고 후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제라도 경질하라는 것이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뚜벅뚜벅 가겠다고 오기즉생(傲氣則生)할 때가 아니다. 국민 앞에 고개 숙이고 사즉생(死則生)하는 모습을 안 보이면 나라가 망할 것 같아 불안하고 불길한 것이다. 살아생전 김수환 추기경은 2000년 월간지 신년호에서 DJ에게 남은 임기 3년간 당적을 떠나 온 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펴줄 것을 건의한 바 있다고 했다. 우리 곁에 큰 어른이 있다면 분명 같은 조언을 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변화를 가시적으로 드러내 국민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악착같은 야권 공격에 ‘불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4-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이생망” 아닌 “이총망”… 대통령은 전공의들 보쌈이라도 해오시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젊은이들이 하는 말이란다. ‘이총망(이번 총선은 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1일 대국민 담화에 ‘애국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가슴을 친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긴 침묵 끝에 대통령이 앞에 나섰으면, ‘의대 2000명 증원’ 문제로 지치고 불안한 국민 심신을 풀어줘야 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계속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해소해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송구한 마음”이라면서도 정부가 옳고 의사들이 틀렸다고 ‘나는 불통 대통령’ 같은 표정으로 51분간 원고만 읽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기자들 질문받기는커녕 출입까지 막았다. 검찰총장도 이런 식으로 수사결과 발표를 하진 않는다. 그날 나는 총선 유세현장을 가보려고 국민의힘 서울 한 지역구 후보의 동선을 먼저 물어보고 있었다. 오전만 해도 곧 알려주겠다던 출입기자 말이 오후가 되자 달라졌다. ‘이총망’…대통령 때문에 이번 총선은 망했다는 분위기라며 오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 2년 전에도 자칭 ‘애국보수’ 애태우더니2년 전 대선을 코앞에 두었을 때도 윤석열 당시 국힘 후보는 어지간히 지지자들 애를 태웠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혼자 힘으로 대통령 된 게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이 대선 2주 전인 2022년 2월 22일 깨졌는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차이가 달랑 1%포인트였다(윤 37%, 이 38%로 지고 있었다·갤럽 조사). 하도 답답해 2월 26일 ‘도발’에다 ‘윤석열은 안철수를 보쌈이라도 해오라’고 썼을 정도다. 지금은 이렇게 써야하나 싶다. “윤 대통령은 전공의들을 보쌈이라도 해오시라.” 원래 지지율도 안 챙기고,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지는 대통령이라고는 한다(대통령 탈당을 주장했다 철회한 서울 마포을 함운경 국힘 후보는 대선 후보 시절 자신의 가게를 찾아왔던 대통령에 대해 “사실관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별로 신경을 안 쓰시더라”고 했다). 선거와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인식이다. 2021년 9월 이재명의 대장동 의혹이 터지면서 다시 뒤집힌 지지율은 김건희 여사의 허위이력이 불거졌는데도 한사코 사과도 안 하고, 국힘 내 갈등까지 폭발하면서 2022년 1월 초 26%(윤)-36%(이)까지 뒤졌다(죄송해요. 욕설 아니에요). 이걸 다시 뒤집은 것이 이재명 부인 김혜경의 과잉의전 논란이다. 공식선거운동 개시일 2월 17일 41%까지 올라갔던 지지율은 일주일 만에 또 뒤집혔다. 누가 누가 더 싫은가, 더 부도덕한가를 가리는 듯한 역대급 비호감 대선. 여론조사 공표 마지막 날인 3월 2일 지지율은 39%(윤)-38%(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12%였다. ● 대선 때도 1주일 전 후보 단일화마침내 다음날 아침. 안철수가 ‘조건 없는 윤석열 지지’를 발표하고 후보를 사퇴했다. 대선 꼭 일주일 전이다. 전날 밤 마지막 TV토론회 뒤 윤석열과 머리를 맞대고 두 시간 반 동안 서로의 정치철학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는 거다. 그 장소가 이번 총선 전에 ‘책임을 지고’ 불출마를 선언했던 찐윤 장제원 의원의 매형 집이었다. 그리하여 결과는 48.56%(윤)-47.83%(이). 0.73%포인트. 역대 최소 격차였다.눈치 빠른 독자들은 2년 전 얘기를 꺼내는 이유를 알아챘을 것이다. 총선이 코앞인 지금, 엄정한 ‘정치중립’을 해야 마땅한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의정갈등을 일으켰다 전격 해결에 나선 것이라곤 보지 않는다. 그러나 총선과 상관없이, 풀 것은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 젊은 의사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마침내 윤 대통령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과 만날 모양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비상대책위원회 조윤정 홍보위원장이 2일 브리핑에서 “박단 (전공의협의회장) 대표에게 부탁한다”며 “만약 윤 대통령이 박 대표를 초대한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보라”고 말한 다음, 대통령실에서 신속하게 “대통령이 전공의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 제발 입을 닫고 귀를 여시라만나거든, 윤 대통령은 제발 좀 듣기 바란다. 전공의 대표를 만나 또 혼자 계속 자기주장을 되풀이하면, 꽝이다. ‘역시 대통령은 꼰대 중에 상꼰대…’ 젊은 의사들은 실망해 차갑게 마음을 닫을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만나는 것만 못하다. 전의교협 조윤정이 대통령과 전공의들의 만남을 간곡히 당부하는 말에 문제 해결의 단초가 담겨 있다. 그는 “대통령의 열정과 정성만 인정해도 대화는 시작할 수 있다”며 전공의들을 향해 “대통령의 열정을 이해하도록 잠시나마 노력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을 향해서는 “우선 이 젊은이들의 가슴에 맺힌 억울함과 울음을 헤아려 달라”며 “대통령께서 먼저 (전공의들에게) 팔을 내밀고 대표 한 명이라도 딱 5분만 안아 달라”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자정 무렵이 돼서야 그날의 한 끼를 해결해야만 했던, 새벽 컨퍼런스 시간에 수면 부족으로 떨어지는 고개를 가눠야 했던 젊은 의사 선생님들이 바로 지금까지 필수 의료를 지탱해왔던 분들”이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조윤정은 브리핑 도중 목이 메면서 “법과 원칙 위에 있는 것이 상식과 사랑이라고 배웠다. 아버지가 아들을 껴안듯 윤 대통령의 열정 가득한 따뜻한 가슴을 내어달라”고 했다. 이보다 감동적인 말을 찾을 수 없어 그대로 옮기는 거다. 그렇게 대통령이 공감력을 키우고, 그리하여 대통령이 달라질 수 있다는 모습만 보여준대도…다수 국민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사족 1. 대통령과 전공의 간의 ‘조건 없는’ 만남을 요청했던 조윤정은 3일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 철회와 대통령 사과가 우선”이라고 밝히고 홍보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하루새 얼마나 힘들었을지…이해한다. 그럼에도 만남은 이루어지길.사족 2. 대선 일주일 전, 윤 대통령은 지금 잊었겠지만 절체절명의 시기에 후보직을 양보했고, 그 뒤 대통령실로부터 말 못할 수모도 겪었던 던 의사 출신 안철수 국힘 의원이 2일 대안을 제시했다. 의료계와 전문가, 시민단체, 국제기구로 구성된 협의체를 조속히 꾸리되 시간이 부족하면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내년으로 넘기자고.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4-03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여당 속 야당’ 한동훈이 자임하라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란 옛말이 있다. 임진왜란 때 전시행정을 총괄하는 도체찰사 류성룡이 지방에 보낼 공문을 하달했는데 다음 날 고칠 부분이 생겼다. 난감한 순간, 공문이 아직 안 내려갔음을 알게 됐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괘씸해 문책하자 부하는 “공문이 달라질 수 있어 사흘 있다 보내려 했다” 하더란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얘기다. 급하게 추진하고, 또 금방 잊고 잘못을 반복하기. 우리 성정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밀어붙이는 대통령이나 ‘진보정권 몰락’을 몰고 온 조국을 잊고 조국혁신당에 환호하는 국민이나 오십보백보다. 너나없이 조급하고 건망증도 심하지만 그래도 반성할 줄 아는 리더십도 있어 우리가 이만큼 왔다. 총선을 2주 앞둔 지금은 어디를 봐도 답답하다. ‘정부 견제론’이 커지는데 야당은 더 믿을 수 없어 불안하다. 범죄(혐의)자로 그득한 정당들이 복수혈전에 골몰해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할지 의문이다. 대안은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여당 속 야당’ 역할을 선언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이철희는 “청와대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여당”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오버’할 가능성이 많은데 야당 반대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여당이 “NO” 하면 다시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힘도 과거엔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여당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당과 정례회동을 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동기 전 민정수석의 감사원장 사퇴 등 당의 건의를 수용한 전례가 적지 않다. 국힘은 ‘내부 총질’을 못 견뎠고 윤석열 대통령은 상명하복의 검사 체질을 버리지 못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정무수석은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의원에게 감히 “아무 말 안 하면 아무 일 안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은 한동훈에게 물러나라는 대통령 말을 전하기까지 했다.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는 간신들 언행에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이젠 민심이 당심이고, 당 중심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공을 돕겠다고 한동훈이 나서야 한다. 이유는 첫째, 정부 견제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믿을 수 없어서다. 한동훈이 27일 동아일보에 밝혔듯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당이라 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적어도 방탄 걱정 없는 한동훈이 여당 속 야당 역할을 자임하면, 차라리 믿고 정부 견제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브라질도 7대 경제 강국이었다가 사법독재와 검찰독재 때문에 갑자기 추락했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주장은 야당 대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브라질에 빗대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를 비판하려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이재명이 2년 전 대선 후보 시절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에 관해 했던 말을 또 했다는 것은 2년간 어떤 발전도, 배움도 없었다는 의미다. 그 나라 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남미 최대 건설사 오데브레시로부터 정치자금 33억9000만 달러(약 3조9000억 원)를 받아 국내외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뿌린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 연방법원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오데브레시에 35억 달러 벌금을 선고했다. 무엇보다 대장동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재명이 할 소리는 아니다. 혈세가 제 돈인 양 퍼준다고 외치는 식견은 더 불길하다. 2016년 탄핵당한 지우마 호세프는 첫 임기 때 재정회계법을 위반하며 예산을 헤프게 써 재선 1년 후인 2015년 국가부채 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린 전력이 있다. 검찰독재 때문에 그 나라가 돌연 추락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한동훈이 여당 속 야당을 자임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고려공사삼일’이라는 우리 성정 때문이다. 당장은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불고 있지만 조국은 나라의 ‘도덕적 안전망’을 무너뜨린 인사였다. 지지자들이 “같은 잣대를 윤석열 정부에 들이댄다면 과연 떳떳한가” 묻는 건 안다. 그러나 총선 뒤면 손가락 자를 유권자가 적지 않을 터다. 한동훈이 여당 속 야당으로서 그 질문을 정부에 하고, 또 답변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한동훈은 ‘의대 정원 사태’ 중재에 나섬으로써 과연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 보여줄 시험대에 섰다. 윤 대통령은 전두환의 4·13호헌 선언처럼 ‘의대 정원 2000명 고수’를 밝힌 바 있다. 류성룡에게는 선조의 마음을 눅이면서 경청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한동훈이 제2의 6·29선언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정부 견제론을 흡수하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3-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이재명-윤석열, 누가 더 제왕적인가

    과연 제왕적 총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결코 박용진을 용납하지 않았다. 과거 성범죄자 변호 이력이 불거져 사퇴한 서울 강북을 조수진 후보 자리에 22일 친명(친이재명) 한민수 대변인을 전략공천했다. 조수진과 경합을 벌였던 현역 박용진 의원은 고려되지도 못했다. 당 최고위와 당무위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이재명 대표가 내린 결정이다. ‘제왕적 대통령’도 국민 눈이 무서워 감히 못할 담대한 결정을 일개 정당 대표가 해낸 셈이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 시대 퇴장과 함께 제왕적 당 총재의 시대도 종말을 고한 줄 알았다. 아니었다. 비록 야당 총재라 해도 공천권과 정치자금을 틀어쥐고 국회의원들을 수족처럼 부리던 전근대적 가산주의(家産主義·patrimonialism)는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자금보다 막강한 개딸 팬덤을 무기로 공천 룰을 바꾸고, 당내 민주주의를 부정한 채 당 대표가 전권을 틀어쥐는 정당의 사당화(私黨化)는 SNS시대에도 가능하다. 이 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임혁백이 2014년에 쓴 저서 ‘비동시성의 동시성’ 민주당 판이다. ● 이재명의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그럼 윤석열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인가. 윤 대통령의 ‘20년 지기’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당 위원장이 21일 대통령 민생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여당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24번에 배정되자 삐져선 사퇴했는데, 하루 만에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대파로 후려치듯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 옆에 세운 거다. 그 전날 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친윤(친윤석열) 핵심 이철규 의원이 한동훈에게 “이재명의 민주당과 뭐갸 다르냐”고 공개 저격을 한 것이다. 윤 대통령과 친분 깊은 주기환을 비례대표 당선권 안에 배치해 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있다고 대놓고 밝히면서 이건 주기환이 당에 공헌했기 때문이지 사천이 아니라고 했다.참 도긴개긴이다.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은커녕 제왕적 총재에 한참 못 미친다고 눈물을 찍어내야 할 것인가. 주기환은 “단순히 술 한 잔 하는 정도가 아니라 속내를 다 털어놓는 관계”라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두 분이 계속 폭탄주를 마시면서 속내를 털어놓으시기 바란다. 개인적 속내 털기에 그치지 않고 하필 총선을 코앞에 둔 이 때 대통령이 찐윤을 공직에 임명하니 ‘정권 심판론’이 솟구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배우자 부실장’ 직책까지 친명이든, 친윤이든 그들의 ‘브로맨스’에 시비 걸 생각은 없다. 아무리 피보다 진한 사이라 해도 ‘관리를 공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군주의 사유물로 여기는 것’이 가산주의다(‘비동시성의 동시성’ 641쪽). 심지어 주기환의 아들도 대선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어 대통령비서실 부속실에서 6급으로 일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공직 임명권이 있어 대통령실에 자리를 만들어줬고, 이재명은 개딸 팬덤과 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빽’이 있어 공천을 준 것이 차이일 뿐이다. 만약 이재명이 대통령이라면 어떤 자리를 만들어줄지 상상초월이다. 윤 대통령 부인도 제2부속실을 안 두고 있는데(그래서 서둘러 설치하라는 판인데) 대통령 후보 시절 ‘배우자실 실장’에 ‘배우자실 부실장’까지 설치했던 이재명 아니던가(그 부실장이 이번에 사천 논란을 딛고 경선 승리한 권향엽 후보다). 아니, 대통령 후보 배우자에 대한 의전이 그 정도면, 김혜경 씨가 대통령 부인 됐으면 어쩔 뻔 했느냐고? 정치학자 임혁백은 “21세기 한국 정치를 선진화하기 위해선 전근대적인 유교적 가산주의 전통을 청산해야 한다”고 저서에서 강조했다. 만일 그가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지 않았다면 2024년 총선으로 인해 한국 정치는 한층 후진화 됐다고 목청을 높였을지 모를 일이다. 임혁백은 이번 공천으로 가산주의의 특징인 이재명의 보스주의, 보스 중심의 인치주의를 굳혀준 것은 물론 한국 민주주의 후퇴에도 기여한 꼴이 되고 말았다. ● 이념에 따라 민주 후퇴 인식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정권 심판론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최근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4’에선 한국을 자유민주주의에서 독재화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국가 중 한 곳으로 꼽았다. ‘검찰 독재 심판’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이 연구소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선 ‘결함 있는 민주주의’라고 본 수리남, ‘하이브리드 정권’이라고 본 부탄을 자유민주주의라고 분류했다는 사실이다(두 나라를 폄훼할 뜻은 전혀 없다^^). 수리남이 민주주의 순위 45위인데 한국이 47위라고?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걸 이해하게 해주는 또 다른 연구를 발견했다. 2023년 초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민주주의 후퇴 인식 조사’를 분석한 조선대 지병근 교수의 ‘민주주의 후퇴 인식의 이념적 편향성’ 논문이다. 응답자들 절대 다수가 윤석열 정부 시기에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되 응답자의 이념이 보수적일수록 윤석열 정부보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민주주의가 가장 많이 후퇴했다고 인식하며, 진보적일수록 이와 정반대로 인식할 가능성이 증가했다는 거다.● 다시 대통령이 드러나고 말았다대선 0.73% 차이가 말해주듯 우리나라는 이념적으로 거의 양분된 나라다. 간신히 정권 교체에 성공했는데 의회권력은 제왕적 야당 총재가 꽉 잡고 있다. 그래서 보수 성향, 아니 윤석열 정부가 곱진 않지만 문 정권 뺨치는 ‘이재명의 민주당’에 계속 의회권력을 줘선 안 된다고 믿는 유권자들은 요즘 애가 탄다. 독불장군 식으로 밀어붙이는 윤 대통령을 덜 보이게 하려고 국힘은 73년생 한동훈을 내세웠다. 강감찬 아꼈다 임진왜란 때 쓸 수 없다며, 급하게 출발했지만 산뜻하게 이재명을 압도하는가 싶었는데, 기어이 대통령은 코끼리만한 덩치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번 주 갤럽 조사에서 ‘정부 견제 위해 야당 후보 당선’ 응답이 51%다. 전 주보다 늘었다. 심지어 중도층에서도 여당(26%)보다 야당(58%), 무당층도 여당(19%)보다 야당(43%) 승리를 원한다. 왠지 아는가. 총선은 대통령 지지율이 좌우한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률이 꼴랑 34%여서다. 전주보다 올라도 시원치 않은데 2%포인트가 떨어졌다. 윤 대통령은 긍정평가 이유 첫 번째가 의대정원 확대(27%)이고 두 번째가 결단력/추진력/뚝심(10%)인데 뭔 소리냐며 격노할 지 모른다. ‘의사들 악마화’에 더욱 매진할까 겁난다. 방향은 옳을수 있어도 2000명씩 5년간 무조건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건 국민을 불안케 한다. 대통령은 아프거나 (만에 하나 일어나선 안 될) 사고가 나도 최고의사가 달라붙겠지만 보통사람은 다르다. 혹시나 병원 갈일 생길까 걱정이 태산이다.● 이재명에게 정부 견제 맡길 수 있나더 늦기 전에 한동훈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말 뒤집기를 밥먹듯 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에 정부 견제를 맡길 수 없다며, 국정운영에 책임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균형과 견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분명히 밝혀야 할 때다. 선거 유세만 할 게 아니다. 의대정원 확대 발표 이후의 의료개혁 문제에 대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책도 내놓아야 한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는 대통령실에도 똑바로 하라고 말하기 바란다. 국힘 승리를 위해서라면, 국정기조 전환이나 대통령 탈당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정권 심판론이 바람을 타는 것은, 여전히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오만한데 대통령 앞에서 유일하게 ‘깡다구’를 보인 한동훈이 총선 뒤 국힘에서 남아나지 못할 것 같아서다. 권력이란, 남자의 질투란 무서운 법이다. ‘총선 후 유학설’에 대해 그는 22일 “저는 뭘 배울 것이 아니라 무조건 봉사하는 일만 남았다”고 했지만 국힘을 지키겠다는 말까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발 윤 대통령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달라고, 비례대표 정당으로 범죄(혐의)자 그득한 조국혁신당을 찍겠다는 응답이 무려 15%나 나오는 것이다. ● 한동훈이 나라를 이끌 비전을 말하라 윤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1월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공천은 당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대통령실은 공천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지만, 아니었다(대통령실 아닌 이철규가 공천에 개입했다). 한동훈이 ‘지르면’ 대통령은 지는 척 받아주고 갈등을 봉합하는 모습을 연출했으나 그 담엔 그대로다. 한동훈이 어렵게 입을 뗀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사건 이후 제2부속실도, 특별감찰관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종섭 호주 대사가 조기 귀국했다고 ‘대통령실 수사 외압 사건’ 의혹이 사라질리 만무하다. 이재명의 ‘망나니’ 노릇을 하는 바람에 학자로서의 명예가 많이 훼손됐지만 임혁백은 저서에서 강조했었다. “한국 정당의 제도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당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 과정의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제도적 통로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도 자신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집권 여당과 상의해야 한다”고. 그래야 집권여당의 권위와 권력도 올라가고, 대통령도 여당과 통합적으로 움직여 성공적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도한 당정분리로 열린우리당은 선거에서 연패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찰떡같은 당정 원팀으로 총선에선 대승했으나 정권을 잃었다. 제왕적 당 대표와 대통령, 어느 쪽이 더 민주주의를, 나라를 말아먹는지는 각자의 이념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책임 있는 여당 대표로서, 그리고 낡아빠진 가산주의를 뿌리뽑고 정치의 세대교체를 해낼 수 있는 73년생 정치인으로서 한동훈은 비전을 밝혀야 한다. 총선에 이길 경우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통령한테 실망한 유권자가 이재명 아닌, 조국 아닌, 한동훈에게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3-23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이재명이 시대정신’이면 국민성 개조될 판

    결국 박용진은 공천 받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꽤 합리적 인물로 꼽히면서 대선 경선, 당 대표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와 맞섰던 그가 4월 총선에 출마도 못 하게 됐다. 이재명은 2022년 8월 당 대표 경선연설회에서 “우리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며 공정하고 합리적인 당 운영을 다짐했다. 어쩌면 지금 이재명은 흐흐 웃고 있을지 모른다. 박용진도 공천 걱정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진짜 만들 줄 알았느냐고. 일찌감치 단수공천 받은 친명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달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다”며 “이재명이 민주당의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이재명 깃발로 총단결해 시대적 소명인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총선에서 승리하자”는 주장이다. 당내 우상화 작업쯤은 모르고 싶다. 하지만 내 혈세까지 당 국고보조금으로 들어가니 모른 척할 수 없다. 민주당이 이재명의 사당(私黨)일 수도 없고 개딸들만의 정당이어서도 안 되는 이유다. 정권심판을 시대적 소명으로 잡는 건 그들 자유지만 이재명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우는 건 심각하다. 비명횡사 뒤 탈당한 홍영표 의원 말을 굳이 옮기자면 “이재명 대표가 시대정신이면 민주당도, 대한민국도 망하는 길”이어서다. ‘하면 된다’ 정신을 불러일으킨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유신 독재라는 역사적 과오는 용납할 수 없지만 박정희의 ‘하면 된다’는 온 국민의 자신감과 자립심을 자극해 가난을 떨쳐내고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다. 이재명이 상징하는 시대정신으로 민주당은 무엇을 들 것인가. 홍영표는 ‘말 바꾸기’를 첫손에 꼽았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가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며 뒤집는 정도는 애교였다. 불체포특권 포기, 위성정당 포기 같은 공약 뒤집기도 이번 공천 사태에 비하면 약과다. 나 같으면 ‘설마’를 이재명의 시대정신으로 꼽고 싶다. 22대 총선 민주당 공천은 한마디로 ‘설마가 사람 잡은 공천’이었다. 국어사전에 ‘그럴 리는 없겠지만’이란 뜻으로 부정적인 추측을 강조한다고 나오는 부사가 이토록 빈번히 쓰인 공천도 없을 거다. 설마 ‘시스템 공천’을 도입했다면서 골대 옮기듯 공천 룰을 고치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에 이재명 지지 모임 대표 출신 송기도 전북대 명예교수를 임명해 물갈이 현역 의원 55명 중 70%에 육박하는 비명(비이재명)을 잘라낼 줄은 몰랐다. 의원 평가에서 하위 10%로 찍혀 30% 감점받는 걸 알게 된 박용진도 지난달 “예상을 이만큼은 했죠, 설마하니 이러랴. 그런데 결과는…” 했을 정도다. 이재명의 시대정신 설마가 겁나는 것은 보통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하고 추측하는 일이 그의 주변에선 태연히 벌어지기 때문이다. 별명이 만독불침(萬毒不侵·만 가지 독에 면역이 있다)이라는 이재명은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반인의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그래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도 ‘이재명은 합니다’. 심지어 이재명은 작년 10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재판에서 재판장에게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을 “한번 안아보게 해 달라”고 청해 끌어안더니, 이번에 공천 룰까지 바꿔 ‘대장동 변호사들’을 줄줄이 지역구에 공천하기까지 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할수록 섬뜩하다. 국민이 이재명의 시대정신을 따르면, 말 바꾸기와 거짓말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설마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도 태연하게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공천받기 위해 “차은우보다 이재명이 더 미남”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듯, 아부는 보통이 될 것이다. 어제 했던 사랑의 약속이나 상법상의 계약을 깨는 것도 우습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만에 하나, 사기죄나 패륜 등으로 붙잡혀 가더라도 무도한 정권에 의한 박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좀 더 용감하면 ‘비법률적 판단’을 받겠다며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에 입당해 공천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어떤 범죄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전 국민 멘털이 강해지고 도덕성 수준이 떨어지면서 가히 국민성 개조가 벌어질 판이다. 전 국민의 이재명화, 끔찍하지 않은가. 설마 이런 이재명이 대통령 되랴 싶겠지만 만독불침 이재명은 또 모른다. 지금은 당내 비명만 자른 당 대표이나 대통령이 될 경우 알 수 없다. 반대세력은 비명도 못 지르게 잘라버리는 이재명의 시대정신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3-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교육·문화독립운동가로 이제야 평가받는 인촌 김성수

    신당을 차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석열 정권 ‘조기종식’이란 말을 달고 산다. 총선 목표가 검찰정권 조기종식이라며 대통령 탄핵이란 단어까지 입에 올린다. “좀 더 나아가면 내란 선동”이라는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말을 굳이 전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지난 대선 패배 뒤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이해찬이 했던 말은 전하고 싶다. “5년은 금방 간다.”2심 유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만 남은 조국에겐 단임제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반도 너무 길 것이다. 안다. 하지만 오늘은 총선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미 정해진 대통령 임기 5년도 어떤 이에게는 죽도록 길 수 있다는 사례로 드는 것 뿐이다. 그래서 만약, 눈 떠보니 조국(祖國)은 식민지가 됐고 언제 독립할지 기약없는 100여 년 전이었으면 어땠을지 묻고 싶은 거다.“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단재 신채호는 1923년 ‘조선혁명선언’에서 2000만 민중에게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었다.● 단재 신채호, 교육·문화독립운동을 ‘적’으로 규정 교과서에선 단재를 독립운동가·역사가로 배웠지만 기실 그는 교육적, 문화적, 외교적으로 독립을 추구한 이들을 무조리 ‘적’으로 규정했던 혁명가였다(죽창가를 부르던 조국과 흡사한 점이 없지않다). 그러나 따져보자. 단재 자신은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지만 2000만 백성 전부가 단재처럼 나라를 떠날 순 없다. 더구나 그땐 지금의 조국처럼 3년 반만 기다리면 정권이 바뀌도록 정해진 상황도 아니었다. 언제 독립될지, 그런 날이 올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단재는 “경제약탈의 제도 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존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조선혁명선언에서 개탄했다. “검열·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 ·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스스로 떠들어 대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 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주장했다. 그래놓고 이듬해인 1924년 동아일보 1월 1일자 전면에 ‘조선고래(古來)의 문자와 시가의 변천’이라는 글을 실었으니 신문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1936년 그의 옥중 순국 기사 역시 동아일보에 게재됐다). 외교독립운동에 대해서도 단재는 “탄원서나 열국공관(列國公館)에 던지며…(중략) 국가 존망·민족사활의 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며 폄훼했다. ‘의열단 선언’이라고도 하는 이 글을 쓴 시기엔 무장투쟁만이 피 끓게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100년 전 조선 땅에서, 그 후로도 한참동안 조선총독부 아래 자식들 공부시키며 먹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모조리 총칼 들고 나서긴 힘든 일이다. ● 교육과 문화독립운동 평가한 3·1절 기념사 그럼에도 일제 강점기 이 땅에서 펼쳐온 ‘다양한 운동’은 제 몫의 평가를 받지 못해온 게 사실이다. 우리를 지배해온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상당부분이 의열단 선언 같은 혁명적 사고에서 비롯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3·1절 기념사는 지금껏 가려져 왔던 국내에서의 교육·문화독립운동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형태의 독립운동이 펼쳐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무장독립운동을 벌인 투사들이 계셨습니다. 국제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과 문화독립운동에 나선 실천가들도 계셨습니다.”짐작하시겠지만, 여기서 ‘교육과 문화독립운동에 나선 실천가들’은 인촌 김성수 선생 등을 염두에 둔 것이다(대통령실의 한 수석도 그렇게 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모든 선구적 노력의 결과였다”며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기념사에서 강조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래서 이 기회에 의외로 잘 안 알려진, 동아일보 사람들한테는 참 자랑스러운 3·1운동과 인촌, 대한민국 근대화와 인촌에 대해 전하고 싶다. ● 상층 지주가 근대화에 기여한 유일한 한국근대 이전의 사회는 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진 계급사회였다. 만일 눈 떠보니 당신의 부친이 상층계급 지주라면, 축하한다.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지는 나라라면, 국민도 해피할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그런 나라는 거의 없었다. 역사학자 이승렬은 오늘날 한중일 삼국 차이가 상층 지주세력에서 성장한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존재 여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2021년 벽돌책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 일본 지주들은 청일-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력한 관료제와 군에 휘둘려 군국주의에 포획됐고, 패전 뒤에도 자유주의로 정착하지 못해 지금도 자민당 거의 일당 체제다. 중국 지주 역시 농업관료제에 기생하다 1911년 신해혁명에서 좌절하고 국공내전서도 패했다. 하층 농민에 기반한 공산당은 전체주의 일당독재에서 현재 거의 시진핑 황제체제다. 반면 한국은 진취적 지주 엘리트가 자유주의 세력을 형성해 근대화를 이끌고, 의회주의를 주도한 나라다. 조선의 기득권 세력이던 서울경기, 충청과 황해도 지주 다수는 일본에 협력했지만(이회영 일가 등 소수는 망명해 독립운동) 변방인 호남 지주세력은 달랐다. 농업관료제(의 수탈)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개항 후 기업형 농업과 미곡무역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젊은 부르주아지 2세들은 일본 유학으로 세상 변화를 깨우쳤고, 나라와 미래를 고민했다. ● 중앙학교 숙직실은 3·1운동의 산실축적된 부와 지식을 그들은 자신만의 부귀영화에 쓰지 않았다. 교육과 문화 그리고 경영에 헌신하며 온건한 민족주의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 중심인물이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하고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한 인촌 김성수(1891~1955)였다. 서울 계동의 중앙학교 숙직실은 젊은 인촌의 살림집이자 고하 송진우(1890~1945), 기당 현상윤(1893~1950) 등 동경유학생 출신 중앙학교 교사들이 학교와 민족의 장래, 세계정세를 통론하는 민족 수재들의 사랑방이었다. 3·1운동의 산실도 이 작은 기와집이다. 화제의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3·1운동을 이끈 배경에 이승만 박사가 있다고 보는데 동아일보사가 1985년 발행한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에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1918년 12월의 어느 날 워싱턴에서 재미동포들과 구국운동을 하고 있던 우남 이승만이 밀사를 보내왔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론이 정식으로 제출될 이번 (파리)강화회의를 이용하여 한민족의 노예생활을 호소하고 자주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미국에 있는 동지들도 이 구국운동을 추진시키고 있으니 국내에서도 이에 호응해 주기 바란다.”’● 기미독립선언 33인에 인촌이 빠진 이유하지만 이승만 자신의 진술에 의하면 이승만이 직접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기획하거나 지시한 사실은 없다고 박명수 서울신학대 명예교수는 2023년 논문에서 밝혔다(‘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미친 미주 독립운동의 영향’). 다만 당시 이승만의 명성이 매우 높아서 사람들은 독립운동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계동 김성수의 사랑방에는 1880년대와 1890년대 태어난 고학력 엘리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 경제 언론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났던 국내의 온건한 민족운동에 관여했다”고 이승렬은 저서에 썼다. 인촌과 고하, 기당이 일본유학시절 만든 동경유학생회에서 2·8독립선언서를 들고 찾아온 곳도 바로 계동 사랑방이었다. 3·1운동에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의 대표들을 한데 모으는 데는 중앙학교에 뭉친 이들 진취적 부르주아지 2세대가 가교 역할을 했다. 이들은 위계를 따지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독립의 목표로 공존공영과 평화를 주장했다. 이 새로운 ‘정치적 인간’들이 한국 시민계급의 초석을 놓으면서 자유주의 세력을 확장하여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으로 나아갔다는 것이 이승렬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기미독립선언 33인’에 인촌의 이름이 빠진 이유가 있다. 고하의 우격다짐같은 권유로 인해서다.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은 정말 일조일석, 단판 승부로 얻어지는 건 아닐거야. 밤새도록 혼자 생각해봤는데 이 운동은 영구적인 투쟁이 돼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네…(중략) 성수가 투옥되면? 우리 중앙학교 역시 당장 폐교야!…(중략) 자금은 대줘도 그 자취는 남기지 말고 비밀회의 같은 외부회의에는 나가지 말고!”(‘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 공선사후(公先私後)와 친명횡재는 상극인촌은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현 고려대학교)의 교육을 통해 근대 시민을 길러냈다. 1919년 경성방직 설립은 경제의 근대화,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은 사상의 근대화와 관련이 있다고 이승렬은 썼다(그래서 그의 책 제목이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이다). 우리 헌법 1조 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 역시 인촌이 인수한 보성전문학교 교수였다.민주주의는 알겠는데 공화주의는 추상적이고 어렵다. 모두의 이익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적 이익과 공동체의 안녕을 중시한다는 개념. 우리 사무실엔 ‘공선사후(公先私後)’라는 인촌 정신을 쓴 액자가 걸려 있다. 공사가 부딪힐 땐 무조건 공을 최우선으로 중시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돌리는 것(하다못해 밤중에 취재와 집안일이 겹칠 때도 취재가 먼저였다). 나는 이것이 공화주의를 실천하는 가장 쉽고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촌은 1946년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를 맡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최근 횡행활보하는 민주당 ‘친명횡재-비명횡사’ 공천은 공선사후와 완전상극이다.‘전북 고창과 전남 담양은 개항 이후 미곡시장이 확대되면서 상업적 농업을 통해 자유롭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조선왕조의 주변부여서 새로운 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시대 변화에 민감했으며 차라리 근대화와 학습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열기도 충만했다. 특히 김성수는 지역 인물과 재력을 연결하는 독특한 역할을 했고, 그 이면에는 열린 자세로 뒷받침했던 부모 세대의 노력과 재력이 있었다.’ 이승렬은 저서에 적었다. 호남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들을 키운 땅이었다. 그랬던 호남이 100년 후 광주엔 복합 쇼핑몰 하나 없는 ‘민주당 식민지’ 처럼 되고 말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3-08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민주주의 석학 임혁백은 왜 ‘이재명의 망나니’가 됐나

    ‘문재인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노무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는 것이다.’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이 고려대 교수 시절인 2012년 11월 동아일보 ‘동아광장’에 쓴 칼럼 중 한 대목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 여당 후보의 패배는 민주당 대참패일 뿐 아니라 노무현 통치에 대한 총체적인 국민적 부정이었다고 임혁백은 썼다. 그럼에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노 정부 유산 계승을 선거구호로 내세웠고 캠프는 ‘노빠’로 가득하니 선택은 국민 몫이라는 매서운 내용이었다. 그랬던 임혁백이 28일 서울 종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를 단수 공천했다. 작년 12월 출마 선언하며 “저는 노무현의 사위로 알려진 사람으로 노무현 정치를 계승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했던 곽상언을 공천한 거다. 노파심에 미리 밝히자면, 나는 정치학자 임혁백을 존경해 마지않는다. 민주당 대변인이 말했듯 임혁백은 ‘민주주의의 세계적 석학’이라는 것도 잘 안다. 과거 사형 집행 때 죄인의 목을 베던 ‘망나니’란 용어가 좀 무엄해도 임혁백은 ‘비동시성의 동시성;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이라는 저서를 쓴 만큼, 투명하고 공정하고 또 지엄하게 칼을 휘두르는 공천 관리자 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다. 임혁백의 언동이 막돼서 망나니라는 게 아니고 글과 행동이 달라지는 게 석학답지 않다. 그는 달랑 칼럼 한 편만으로 노 정권을 비판한 게 아니다. 2006년 ‘좋은정책포럼’을 발족해 “한국 진보세력이 정체적 위기, 수권능력 위기, 평화관리 위기의 삼중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하는 등 노 정권 실정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했다. 그래 놓고 자신이 비판한 노 정권을 계승하겠다는 노무현 사위를 ‘선거구 세습’시켜 공천한 것은 전근대적 처사다. 굳이 저서에 맞춰 본다면, 근대성을 완결하고 탈근대로 진입해야 할 시기에 공화주의적 가치관과 사회적 신뢰를 깨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상한 공천은 곽상언만이 아니다. 임혁백의 학자적 양심과 공관위원장의 양식을 무너뜨리는 공천이 한두 곳이 아니다. 곽상언은 이재명의 경쟁자가 아니어서 괜찮을지 몰라도 임혁백은 자기 말까지 뒤집으며 당 대표 이재명을 닮아가고 있다. 심지어 학계에선 석학 임혁백이 달라졌다며 우려가 번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임혁백은 “실질적 심사는 내가 한다. 계파에 관계없이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정치학자 임혁백이었다. 그러나 “당 통합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증오와 폭력 발언 등을 공천 기준에 반영한다”더니 임혁백은 돌연 이재명이 했던 증오와 폭력 발언, 음주운전을 공천 기준에서 빼버렸다.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책임지라고 이재명을 위해서 총대까지 멨다. 총선 뒤 당권 경쟁에서 이재명의 경쟁자가 될 법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절대 공천 못 준다는 얘기다. 2012년 우리 신문에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라’ 칼럼을 썼는데 지금은 민주당 밀실공천을 뻔히 알고 사과까지 하면서도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임혁백은 ‘이기는 공천’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완전 ‘지는 공천’을 한다.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왜 진보적 민주주의 석학이 뒤늦게 이토록 말도 안 되는 공관위원장을 고수하는 것일까. 자신의 ‘방탄’만이 중요한 이재명은 석학 방패막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친명으로 똘똘 뭉칠 수만 있다면, 총선 패배도 상관없다. 대선에서 이기면 그 많은 사법 리스크쯤 ‘셀프 사면’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 터다. 임혁백은 2022년 한 인터뷰에서 한국 정당의 가장 큰 문제가 ‘사인(私人) 정당화’라고 했다. 박용진 의원에게 하위 10%를 알리면서 “나도 (이유를 모르고) 통보만 한다” 할 만큼 임혁백은 이재명 사당(私黨)에서 허수아비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공익, 공적 덕성의 지배다. 이재명에게는 그게 없다. 아니라고? 임혁백이 이재명에게 총선 불출마를 요구해 보시라. 그럼 알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럴 리 없겠지만 지난 대선 때 이재명의 지지 그룹에 몸담았던 임혁백이 총리라도 시켜준다는 약속을 받고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라도 그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바란다. 설령 이재명이 다음 정부 대통령이 된대도 그는 “총리 시켜준다 했다고 정말 시켜줄 줄 알았느냐”고 할 사람이다. “박근혜를 존경한다고 했다고 정말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했던 걸 잊었는가.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 이승만, 러시아-공산 전체주의 본질 꿰뚫은 위대한 정치가

    설 연휴 온 식구가 ‘건국전쟁’을 봤다. 극장이 만원이어서 뿔뿔이 떨어져 앉아야 했다. 덕분에 각자 눈치보지 않고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기자인 나는 습관처럼 메모를 했고 젊은 내 딸은 눈물 훔치는 옆 사람을 구경했다고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자 관객들이 일어나 나오면서 박수를 쳤다. 이쯤 되면 기립박수다. 다큐멘터리와 일반 영화의 차이는 팩트냐 아니냐다. 기사는 사실을 쓰고 소설은 아니다(칼럼은 의견을 쓴다^^). 이승만 칼럼을 쓸 때마다 달리는 댓글이 주로 ‘이승만은 6·25전쟁이 터지자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간 나쁜 대통령’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피난민을 한강에 빠져 죽게 만들고는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켜주십시오” 국민 속이는 방송까지 했다는 건데 김덕영 감독은 그게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그래서 고맙다. 이제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을 한껏 존경해도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켰지만 과오도어렵게 세운 대한민국을 지켜낸 뒤, 사사오입 개헌에 이어 4·19에 이르는 과정까지 이승만을 존경하기는 그러나 쉽지 않다. 한 인간을 단편적으로 평가해선 안 될 일이지만, 또 지금껏 이승만을 지나치게 박절하게 대한 점은 반성하고 시정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무조건 우상화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1950년대 주한 미국인들 사이의 공통된 화제는 80세의 이승만이, 특히 경제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요상하고 멍청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미국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무상원조를 받아내어…헤아릴 수 없는 부정부패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났다.’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가 불편하고 악의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김영명 한림대 명예교수 역시 이승만 정권의 기본구조를 ‘일인체제 또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규정했다(2006년 ‘한국의 정치변동’). 아무도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해본 적 없는 나라에서 이승만은 대통령 자신이 ‘정파를 초월한’ 위치에 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했다. 팔순 고령의 대통령 옆에는 파파의 건강만 챙기는 영부인이 장막을 쳤다. 그 사이를 아첨꾼과 거짓 정보 전달꾼만 파고들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우리 안에 사라지지 않는 ‘한국적 민주주의’ 원조를 보는 듯해서다. “장기집권은 했지만 독재는 아니”라는 다큐멘터리 속 나레이션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이승만이 통찰한 러시아의 침략본능그럼에도 지금 이승만을 다시 보는 이유는 그가 러시아, 그리고 공산전체주의의 본질을 누구보다 앞서 꿰뚫어본 위대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이 ‘철의 장막’을 말한 것이 1946년이었다. 이승만은 1904년 29세 나이에 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서 러시아 전제정치의 본질을 알렸다. 꼭 120년 전이다. 러일전쟁이 터진 1904년 2월부터 넉 달 간 쓴 이 책에서 그는 ‘옛날부터 아라사 사람들의 정치적 목표는 오로지 남의 땅 빼앗는 것’이고 ‘전제정치로 강국이 된 나라’라고 갈파했다. 영국 스웨덴 심지어 일본도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근대국민국가의 시대였다. 러시아는 제 국민을 노예로 아는 전제군주국임을 자부하면서 고종에게 따라하라고 권했다는 걸 젊은 이승만이 알고 있다는 게 되레 놀랍다. ‘전제(專制)나 압제(壓制)나 위에서 하시기에 달려 있는데 어찌 백성이 감히 상관하겠는가…아라사는 전제정치로써 천하의 강국이 되어 만국이 다 두려워하는 바이니 우리를 단단히 의지하면 일본이 감히 어찌할 수 없을 테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장차 큰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였다’(현재 아라사-소련-러시아를 따라가는 나라가 북조선 김씨 왕조 아닌가! ).이승만은 전제정치의 원류로 대(大) 피득(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도 소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역사적 멘토로 삼는 인물이다. 그가 남긴 14조목의 비밀유서엔 약소국가를 뺏어오는 비법이 담겨 있다. 강한 나라와 먼저 힘을 합해 작은 나라를 나누어 없애고 그 후에는 틈을 타서 그 나라를 마저 쳐 없애며, 자유하는 나라에는 혼인이나 결연을 통해 먼저 내정을 간섭하여 권리를 주장하라는 거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2차 세계대전 뒤 어떻게 동유럽을 유린했는지, 한반도 북쪽에 얼마나 서둘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는지 돌아보라. 푸틴이 일으킨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전쟁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도 마찬가지다. 뼛속 깊이 박힌 아라사의 영토 야심, 전제정치 DNA는 소련공산당이 무너졌음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거다. ● “공산주의 따르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1917년 소련공산당 정부가 들어서자 이승만의 반러감정은 반공사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원래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역해가며 국민을 지배하려는 사상체계’로 간주했고 공산주의 이념을 따르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장담했다(홍용표 2007년 논문 ‘현실주의 시각에서 본 이승만의 반공노선’). 임정 국무총리 이동휘가 소련과 연대할 것을 주장할 때도 이승만은 “소련과의 협력은 조국을 공산주의 국가의 노예로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반대했다. 이승만이 1941년 일본의 미국 침략 야욕을 폭로한 ‘Japan Inside Out’에서 소련 공산주의를 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군국주의와 나란히 전체주의로 분류한 것은 중요하고도 의미 있다. 그때만 해도 세계는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었고 소련은 자기네 실상을 감추고 있던 시기여서다. 이승만은 ‘민주주의 대(對) 전체주의’ 장에서 ‘소련, 일본, 나치스, 파시스트 세력들은 자기들 정부와 같은 새 정부를 설립하기 위해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의도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썼다. 그리고 ‘한국의 운명은 세계의 자유민들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다’며 미국의 맹성을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을 연상시킨다. 이승만은 그만큼 세상을 앞서간 인물이었다.● 푸틴까지 이어지는 표트르대제-스탈린 유산답답하게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련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연합국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문제는 러시아”라며 가슴을 쳤지만 루스벨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탈린이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주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박지향 2023년 저서 ‘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300통 이상의 메시지를 분석한 ‘MY Dear Mr. Stalin‘이라는 책도 있을 정도다. 징그럽지 않은가. 또 미국 대통령이 될까 겁나는 트럼프가 과거 북한 김정은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처럼. 목적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산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봤기에 이승만은 미국이 요구한 좌우합작 정부 수립을 단호히 거부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이면 다 똑같은 줄 알고 미국은 동유럽에, 중국과 우리에게 좌우합작을 한사코 권했던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 원하는대로 좌우합작에 나섰다가는, 폴란드처럼 망명정부는 배제되고 민주 지도자들은 추방되거나 처형되고 결국 친소 괴뢰정권이 들어설 게 뻔했다. 백범 김구는 몰랐고 이승만은 꿰뚫어 봤던 점이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소련 공산주의가 망하고도 공산전체주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알렉세이 나발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이 17일 교도소에서 복역 중 급사했다. 47세. 푸틴 독재에 용맹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항거해온 나발니는 러시아 자유의 상징이었다. 푸틴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용병기업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작년 8월 돌연 비행기 사고를 당한데 이어 나발니까지 목숨을 뺏긴 거다. 1940년 지구 반대편 멕시코까지 자객을 보내 정적 레온 트로츠키를 살해했던 스탈린처럼, 푸틴이 멘토로 모시는 대피득처럼, 푸틴도 전제정-공산전체주의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형국이다. 어쩌면 푸틴 이후 또 다른 지배자까지도.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다행히도 우리는 ‘한국적 민주주의’ 망령에서 벗어났다. 우리끼리는 “이게 나라냐” 또 “이건 나라냐” 불만을 터뜨려도, 야당이 ‘검찰독재’라고 목청을 높여도, 대한민국은 세계인구의 7.8%만 경험하는 ‘완전한 민주주의’ 속에 사는 나라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 EIU가 15일 발표한 ‘2023년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 나온다. 167개국을 완전한 민주주의(8점 이상),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6점 이상), 혼합 체제(4점 이상), 권위주의 체제(4점 이하)로 분류했는데 한국은 22등이지만 아시아에선 5개국 밖에 없는 완전민주다(뉴질랜드, 대만, 호주, 일본, 다음이 우리^^). 민주주의 맹주국이어야 할 미국도 완전치 못하다(결함민주). 한때 우리처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었으나 탁월한 지배세력 덕에 우리보다 훨씬 잘살고 있는 싱가포르도 결함민주다(그게 더 나을까?). 세계 인구의 3분의 1정도만 러시아를 비난하거나 서방에 동조하는 국가에 살고 있지, 나머지는 중립 아니면 심지어 러시아를 지지하는 나라에 산다. 옛날부터 만만한 나라는 침략하고, 비판자는 죽이고, 권력자는 부패한 무서운 나라인데도. 남의 나라 한탄할 때가 아니다. 북한은 권위주의 체제라는 말도 아깝고 안타깝다. 165등. 꼴찌에서 세 번째다. 우리에게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전체주의 독재국가 북조선처럼 됐을 공산이 무섭게 크다(‘눈 떠보니 북한’이라고 상상해보셔요. 얼마나 끔찍한지).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추앙할 이유는 충분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4-02-23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우리는 이미 ‘조국의 바다’에 빠져 있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은 억울하겠다. 더불어민주당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부적격자로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분들’을 지목했다. 당장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과 부동산정책 실패에 책임 있는 문 정권 사람들을 뜻한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임종석이 공천을 못 받게 생겼다. 부동산정책 실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엔 동의한다. 하지만 윤 총장 임명을 윤 정권 탄생의 원인처럼 지목하는 건 억지스럽다. 지금의 윤 대통령은 2019년 7월 총장 임명 당시 문 대통령한테 ‘우리 총장님’ 소리까지 들으며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독려받았던 사람이다. 오히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윤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라 해야 옳다. 2021년 알앤써치의 문 정권 국정 평가조사에서도 가장 큰 실정으로 꼽힌 것이 부동산정책(41.8%), 두 번째가 조국 장관 임명(10.2%)이었다. 2019년 8월 대통령이 조국을 장관으로 지명하지 않았다면, 검찰총장이 정권에 ‘도전’하고 야당 대선 주자로 뜨는 일은 없었을 공산이 크다. 어쩌면 자칭 사회주의자 조국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 현재 대통령으로 앉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국 사태’가 한국사회에 끼친 여파는 정권을 뒤집을 만큼 크고도 깊다. 첫째는 이른바 진보의 몰락을 몰고 왔다는 점이다. 강남 좌파를 자처했던 조국은 도덕성을 코에 걸었던 진보의 위선을 부끄럼 없이 노출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률도 법무부 장관 임명-사퇴를 거치면서 취임 후 처음 30%대로 내려갔다. 2019년 ‘서울대인 조국 사퇴 촉구’ 집회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김근태 의원은 “조국 사태가 정권교체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나는 진보”라는 응답도 탄핵 국면인 2017년 1월 37% 최대치에서 내려오기 시작해 윤 총장이 사퇴한 2021년 4월 26%로 “나는 보수”와 동률을 기록했다. 2023년 현재 우리 국민의 주관적 정치 성향은 보수가 30%, 진보가 26%다. 86운동권그룹의 위선적 도덕주의를 선명하게 보여준 이도, 그리하여 86 청산 요구를 불러온 이도 조국으로 봐야 한다. 평등과 공정, 정의와 개혁을 말하면서 자기 딸은 외고에서 고려대 이과계열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보낸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조국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고 발뺌한 적도 있다. 2011년 칼럼에서 이를 지적하자 그는 “내 속의 ‘위선’과 ‘언행불일치’를 고치려고 노력할 것이나 동아의 공격에 위축될 생각은 없다”고 트위터로 나의 ‘저급철학’을 비난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위선과 언행불일치는 날로 심해졌음이 ‘윤석열 검찰’을 통해 드러났다. 허위 인턴십 확인서와 위조 봉사표창장 등 자녀 입시비리로 그는 최근 2심에서 징역 2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가짜 증명서까지 만들어 딸에게 지위를 물려주는 ‘세습 자본주의’의 추악한 죄악을 자행하고도 2016년 ‘재(再)봉건화의 시대, 정의를 말한다’란 강연에서 “내 부모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 노력의 결과가 결판 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 문제”라고 강조했던 강심장이 놀랍다. 둘째, 조국은 대입제도까지 바꿔 놨다. 돈으로도 만들 수 없는 그들만의 스펙 쌓기가 ‘엄빠(엄마 아빠) 찬스 계급’에선 가능하다는 사실을 노출하면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이 졸속으로 발표돼서다. 정시는 확대되고 학생부 등 비교과 활동, 자기소개서가 폐지되자 2018년까지 20조 원 아래였던 사교육비도 급증했다. 2019년 21조 원에서 2022년 무려 26조 원이 됐다. 살림은 더욱 팍팍해졌고 수능까지 어렵게 나오면서 국민 심성까지 파괴되는 형국이다. 셋째, 조국 여파로 이념갈등도 극심해졌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의 ‘2019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서 88.4%가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지역·세대·빈부·노사갈등을 제치고 이념갈등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등극하면서 진영에 따라 인간관계도, 사실관계도 달라지는 상식 파괴, 가치관의 전도 현상이 극심해졌다. 좌파 정치인은 물론 지식인까지 조국의 범죄 아닌 검찰 수사를 공격하며 ‘검찰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처럼 재판 중이어도, 조국처럼 유죄 선고를 받고도 태연히 출마하고, 신당 창당에 나서 대법원 판결 때까지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죄를 짓고도 “모른다” “떳떳하다”며 오리발 내미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조국이 끼친 영향 때문에 우리는 이미 ‘조국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2-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매정하지 못한 대통령 부부… 국민에게는 왜 그리 매정한가

    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 사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이다. 대통령은 7일 녹화 방송된 KBS 특별대담에서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좀’이 아니라 많이 아쉽다. 대담 다음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이기도 하지만(윤 대통령 신년 녹화대담, 내용도 형식도 ‘많이 아쉽다’) 무릇 뭇사람들이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일을 벌일 때는 ‘떡 하나 더’가 아니라 과할 만큼, 그러니까 기대를 뛰어넘는 담대함을 보여줘야 성과가 나는 법이다. 조선제일의 사랑꾼으로 소문난 이가 프로포즈를 하면서 선물을 내민다면 상대방의 기댓값에 0을 하나 더 붙여줘야 감동 이벤트가 된다. 짠돌이 선물이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하물며 두어 달간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던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대통령의 최초 언급 아닌가. 밤 10시부터 TV대담을 보며 이제나 저제나 목 빼고 기다린 국민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은 듣는 이의 마음을 좀더 배려했어야 옳았다. ● “박절하기 어렵다”세 번이나 언급 그럼에도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는 전제부터 깔고 윤 대통령은 시작했다. 박절(迫切)하게. 국어사전에 따르면 ‘인정이 없고 쌀쌀하게’라는 요즘 듣기 쉽지 않은 단어를 세 번이나 언급한 것도 특이하다. 1시간 34분 진행된 대담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린지 무려 53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제 아내가 중학교 때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셔가지고 아버지와의 동향이고 뭐 친분을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앵커 “방문을 접근했던”) “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거기에다가 또 저도 마찬가지고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관저에 있지 않고 이렇게 사저에 있으면서 또 지하 사무실도 있고 하다 보니까 자꾸 오겠다고 하고 해서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앵커가 여당에선 정치공작의 희생자라고 하는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정치공작으로 봐야죠” 하면서도 “정치 공작이다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라고 했다. 그럼 정치공작에 당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령 부인의 처신의 중요하다는 말씀? “박절하게까지야 누구를 대해선 안 되겠지만 조금 더 분명하게 좀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선을 그을 때는 선을 그어가면서 처신을 해야 되겠다는 그런 것”이라니 박절하게 하겠다는 건지, 하지 않겠다는 건지 헷갈린다. 재발 방지를 위해 특별감찰관과 제2부속실 설치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윤 대통령은 또 ‘박절’을 언급했다. “제2부속실이 있었더라도 제 아내가 내치지 못해 가지고 자꾸 오겠다고 하니까 사실상 통보하고 밀고 들어오는 건데 그거를 박절하게 막지 못한다면 제2부속실이 있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 뇌물 거절한 공직자는 매정한가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거다. 아, 윤 대통령과 부인은 박절하지 못한, 참 인정 많고 다정한 사람들이구나. 대통령은 “그 이슈 가지고서 부부싸움을 했느냐”는 질문에도 “전혀 안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 김 여사는 복도 많은 사람이구나. 보통의 공직자 부부라면 김영란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위반 같은 문제가 터지면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게 정상이다. 설령 부부싸움을 안 했더라도 그 밤중에 TV를 지켜보는 국민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은 “국민이 걱정할(실은 매우 실망할) 일이 벌어져 아내에게 싫은 소리 좀 했다” 정도는 말해야 마땅하다. 혹여 나중에 법적 문제가 벌어질까 우려해 대통령이 ‘유감’ ‘사과’ 같은 단어를 입 밖에 내지 못할 순 있다. 그럼에도 나라를 뒤집어놓은 일을 벌여놓고도 대통령 부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건, 그들은 다정했는가 몰라도 국민에겐 참 매정한 소리다. 국민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공감능력 빵점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조선제일의 사랑꾼 아닌 ‘조선제일의 퐁X남’ 소리까지 나오는 거다. 결국 김 여사는 사적 친분으로 만남을 요청한 친북 성향의 목사 최모 씨를 박절하게 거절하지 못했고, 그가 놓고 간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조그마한 백’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일 뿐이다. 박절하게 말한다면, 사적 인연으로 밀고 들어오는 불투명한 방문자를 거절하거나 자그만한 파우치든 큰 명품백이든 뇌물 절대 안 받는 공직자와 그 부인만 매정한 사람인 셈이다.● 김 여사에게는 누구도 박절할 수 없다 대통령실 참모진이 마련한 예상 질문과 답변지를 참고했다면, 윤 대통령이 절대 이렇게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메모 한 장 없이 대담에 임한 대통령은, 즉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기에 더욱 걱정스럽다(앗, 김 여사 빼고). 심지어 윤 대통령은 “개고기식용금지법안 말고도 김 여사와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많이 논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비교적 아내하고 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늦게 들어와 일찍부터 일하고 하다 보니 대화를 많이는 못 합니다마는”하면서도 굳이 아내와 국정을 많이 논의한다는 사실을 털어놓다니, 이 또한 제2부속실 설치 요구 여론에 신경쓰지 않는 매정한 답변이다.국민이 걱정하는 것은 김 여사가 정치공작에 걸려 친북 성향 목사가 놓고간 ‘자그마한 파우치’를 두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의 동선과 예산 등을 국회가 감시할 수 있는 제2부속실 설치는 ‘검토’만 하는 사이, 김 여사는 남북문제에 적극 나서겠다는 식으로 강한 국정 개입 의지를 보이는 것이 두렵고 우려스러운 거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낼 분위기인 걸 보면, 김 여사를 제어할 힘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어린이를 많이 아낀 따뜻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대통령 모습은 과히 따뜻하지 않다. 어린이들은 많이 아끼는지 모르겠으나 야당에는 물론 윤핵관이 아닌 여당 사람들,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매정하기 그지 없다. 신년회견 대신 미루고 미루다 마련된 이번 특별대담은 모처럼 대통령의 통 큰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다. 그걸 아쉽게도 윤 대통령은 박절하게 넘겨버렸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02-09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이재명의 대통령 같은 신년회견

    어제 신년 기자회견을 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다”며 모두 발언을 시작할 때는 여유가 넘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한 이후 작년에도, 올해도 신년회견을 마다하는 상황이다. 기자들을 한사코 피하는 윤 대통령과 대비되면서 오히려 이재명이 대통령 같은 모습이었다. 질문도 보드랍고 공순했다. 작년 신년회견 때 11개 질문 중 6개나 됐던 ‘사법 리스크’ 관련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선거제에 대한 질문에 이재명이 “의견 수렴 중”이라며 넘어가도 “이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했다 병립형으로 방향을 틀지 않았느냐”며 다시 캐묻는 일 따위도 없었다. 이렇게 쉬운 신년회견을 윤 대통령은 왜 한사코 기피하는지 안타깝다. 대통령 기자회견 같은 모습은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재명은 작년에 했던 정부 비판을 거의 반복했다. 작년 회견에선 “어려운 경제 상황에 안보 참사까지 더해지면서 ‘코리아 리스크’가 전면화되고 있다”며 폭력적 국정과 정적 죽이기 중단을 요구했는데 올해는 저출생과 민주주의를 추가해 대한민국이 4대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간 정적 죽이기에만 올인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진단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다 박수를 치긴 어렵다. 그러나 이재명 죽이기에만 골몰해 저출생 위기까지 왔다는 소리는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자기중심적 분석이다. 심지어 극단적 정치를 끝낼 수 있는 복안을 묻는 질문에 이재명은 “저에 대한 소위 암살 시도, 정치 테러가 개인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권력을 상대를 죽이는 데 사용하게 되니까 국민들도 그에 맞춰서 좀 더 격렬하게 분열하고 갈등하고 적대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일 이재명이 부산 가덕도에서 당한 불의의 습격이 윤 대통령 책임이라는 억측까지 불러일으키는 발언이다. 물론 그의 말대로 “현실을 바꾸는 첫 출발점은 통합의 책임을 가진 권력자가 통합의 책임을 다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개딸(개혁의 딸들)이라는 살벌한 이재명 팬클럽의 그악스러운 행태가 민주당과 나라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 지역구에 “총알 한 발이 있다면 처단할 것”이라는 협박 현수막까지 내걸었는데도 이재명은 방관했다. 이재명 자신의 얄팍하고 편협한 인식과 ‘사이다 발언’이 나라와 국민과 심지어 동맹까지 찢어놓을 지경임을 본인만 모르는 척한다. “대구·경북이 대리인들을 지배자로 여기면서 지배당한 측면이 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마지막으로 가는 게 택시(운전)” “한미일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힐 것”, 심지어 최근엔 “우리 북한의 김정일, 또 김일성 주석의 노력이 폄훼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 등등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이재명이었다. 어제 저출생 대책이라며 발표한 ‘출생기본소득’도 괜한 사회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지난해 경제 해법이라던 기본주거, 기본금융의 연장인데 한국국회학회 주최 2022년 학술회의에서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선거 전략과 실패요인’으로 대장동 비리 의혹 등 신뢰성 추락에 이어 두 번째로 꼽힌 패배 이유가 국민 정서에 안 맞는 기본소득제 공약이었다. 이번엔 대학 교육비까지 지원하겠다며 사립대 등록금을 국공립대 수준으로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대학교육 무상화를 추진하겠다니 차라리 민주당 당명이나 위성정당을 ‘기본민주당’으로 하라고 권하고 싶다. 경기도지사 법인카드로 소고기와 점심 샌드위치까지 알뜰하게 챙겨 먹었다는 공공귀족 일가가 국민 혈세는 마구 걷어 누구 맘대로 퍼주겠다는 건가. 당 대표 1년 반 동안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이재명은 “제 자신이 평가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모처럼 맞는 말을 했다.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 말고 또 뭘 했는지 암만 머리를 쥐어짜도 모르겠다. 이재명은 대통령을 겨냥해 ‘권력 사유화’를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를 비롯한 요직에 자기 사람을 꽂아 넣고, 공천 심사 5개 항목에서도 ‘음주운전’은 쏙 빼놓아 자기만 살겠다는 식으로 ‘당 권력 사유화’를 하는 당 대표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고도 총선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며 151석 과반석을 기대하는 강심장이 놀랍다. 야당 대표 신년회견에 꽉 막힌 심장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이 진정 대통령다운 신년회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1-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윤 대통령은 왜 국민을 이기려 드는가

    ‘약속 대련’ 이었으면 좋겠다. 태권도나 검도에서 양측이 사전에 약속한 방법으로 공격-방어해서 기술을 연마하는 것.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21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사퇴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을 전했고, 한동훈은 “국민 보고 나선 길”이라며 거부해 한방씩 주고받았다. 신문없는 일요일 인터넷판이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백주대낮에 집권당 대표를 만나 “그만두라”는 대통령 말을 전했다고? 안 그래도 수직적 당정관계가 문제여서 은밀히, 쥐도 새도 모르게 작업해도 모자랄 판에 원내대표까지 같이 만났다고? 이 정도면 국민들(한동훈 표현에 따르면 ‘동료 시민’) 다 보고 듣고 아시라고 대놓고 저지른 거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다음날인 22일 윤 대통령은 예정됐던 민생토론회에 30분 전 요란하게 불참을 통보했다. 감기 기운 때문이라지만 덕분에 한동훈은 선민후사(先民後私) 정치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선처후민(先妻後民)으로 지질하게 찍힐 수도 있겠으나 미리 짠 약속 대련이면, 희생과 헌신의 대통령이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말만 안 했을 뿐. ● 6·29를 돋보이게 해준 ‘4·13 호헌’1987년 노태우의 6·29 선언이 혁명적으로 보였던 것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4·13 호헌’ 특별담화가 있어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당치 않은 비유라는 것, 안다. 하지만 하도 ‘한동훈의 6·29’를 고대하는 이들이 많아 되돌아보자는 거다. 당시 신민당의 온건 대표 이민우는 전두환이 띄운 내각제 개헌론에 솔깃해 있었다. 이에 김영삼 김대중 양김 씨가 분기탱천 탈당해 혼돈의 창당 정국이 이어졌다. 전두환이 4월 13일 “개헌 논의 유보, 현행 헌법으로 연내 대선 실시”를 발표하자 야권은 “장기집권 음모”라며 격렬히 반발했다.마침내 6월 16일 전두환은 ‘직선제 개헌 요구 완전수용’의 결심을 굳혔다고 회고록에 썼다. 그러자 그간 잠 못 이루며 고심했던 일이 한낱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며 마음이 한없이 평화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런 전두환의 각본에 노태우는 “제가 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민주화조치를 건의 드리면 각하께서는 크게 노해서 호통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효과가 있겠다”고 말했다(전두환은 즉답하지 않았다). ● 민생보다 김 여사가 그리 중한가6·29와 4·13을 굳이 쓰는 이유는 좀 구차하다. 윤 대통령도 그러지 않았을까 믿고 싶어 전두환 회고록을 들여다 본 거다(영화 ‘서울의 봄’이 떠올라 또 굳이 밝히자면, 정권을 어떻게 잡았는가와 집권 후 어떻게 성과를 올렸는가는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이 한동훈에게 온 국민 다 알게 “관두라”고 외치고, “국민 보고 나왔다”는 한동훈의 한 방을 먹는 약속대련을 펼침으로써, 말하자면 4·13 호헌 선언 같은 악역을 자처함으로써 한동훈에게 자신을 밟고 가는 모습을 만들어준 게 아닌가 믿고 싶은 거다. 그랬다면 마음도 한없이 평화로워졌을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불길하다. 전두환은 그래도 헌법을 지키기 위해 호헌선언을 했던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무엇을 지키겠다고 있어선 안 될 당무 개입 의혹까지 일으킨단 말인가. 설마 부인 김건희 여사가 헌법보다 중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 여사가 대통령에게 민생보다 중한 것은 분명하다. 22일 윤 대통령이 빼먹은 국정 행사가 하필 ‘국민과 함께 하는 민생 토론회’였다. 윤 대통령이 “첫째도 경제(민생), 둘째도 경제(민생), 셋째도 경제(민생)”이라며 해외순방도 민생에 역점을 뒀다고 강조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코로나도 아닌 감기 기운에 민생토론회를 빼먹었다고?? ● 이순자 여사는 청와대 생활 점검했다김 여사는 2022년 6월 서울 연희동으로 이순자 여사를 방문해 90분간 머문 적이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여사도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편치만은 않은 영부인 역할을 했다. 단군 이래 최대 어음사기라던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터진 것이 1982년, 전두환 집권 2년차였다. 장영자는 이순자의 작은아버지의 처제다. 그는 “사실상 나도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한 여자의 대담한 사기행각의 피해자”라고 회고록에 썼지만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도 고슴도치처럼 온 몸에 비난을 받아야 했다. ‘큰 손’으로 온갖 부도덕한 사치와 이권에 개입하는 여자. 탐욕으로 가득 찬 권력형 부정부패의 온상…. 그래서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따로 헤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회고록에 썼을 정도다(2017년 ‘당신은 외롭지 않다’). 그 아픔을 겪으면서 이 여사는 청와대 생활을 점검했다. 우선 주변에 정직한 충고를 부탁했더니 한참들 망설이다 ‘사치스럽고 나서기를 즐겨하는 권력 지향형의 여자’로 보인다고 말해주더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봐도 거부감이 생길만큼 TV에 자주 등장했다. 컬러TV 초기여서 한복에 금박을 박아 입었는데 너무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조용히 공보수석을 만나 부탁했다. “행사 참석 횟수를 줄이고, 부득이 참석하면 TV화면에 내 모습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써달라”고. ● 국민 이간질 대통령실도 문제다현 대통령실엔 민정(民情)이 없다. 그렇다면 참모진 하나하나가 민정이 돼도 모자랄 판에 충심만 가득해 비극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은 대통령 개인이 수취하는 게 아니라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관리, 보관된다”며 김 여사의 순결무구함을 방어하긴 했다. 헹. 대통령 관저의 반려견 토리가 웃는다. 그럼 윤 대통령은 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선글라스를 국가에 귀속해 관리, 보관하지 않고 자신이 쓰고 다니는지 묻고 싶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대통령 부부와 국민을 이간질하는 참모가 바로 세작 같다. 진심 대통령과 나라를 생각하는 비서실장이면, 대통령이 “그만 두라”고 전하라고 할 때 “그건 아닙니다” 해야 하는 것 아닌가.윤 대통령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민생도, 법치도, 우리나라도 아니다. 오직 하나, 영부인뿐임을 온 세상이 알아버렸다. 참 대통령답지 않다. 우리가 기대했던 윤 대통령답지도 않다. 몰래카메라 불법촬영은 그것대로, 법대로 처벌하면 된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한다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우리는 다만 , 뻑하면 ‘격노’만 하는 대통령이 국민에게는 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전임 정권에선 살아있는 권력 앞에 굽히지 않던 사람이었다. 왜 용산-한남동 구중궁궐에 들어간 다음엔 국민을 이기려고만 드는가.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01-23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한동훈은 절박하지 않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명된 지 사흘 뒤면 한 달이다. ‘여의도 문법’에 맞춰 삼고초려 하는 연출을 안 했던 건 산뜻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특권세력 폭주를 막겠다”며 가는 데마다 8도 사나이의 친화력을 보인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삼칠일이면 단군신화 속 곰이 쑥과 마늘만 먹으며 금기를 지키다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의미 있는 삼칠일이 지났는데도 한동훈은 정부여당에 실망한 민심을 돌리진 못하는 형국이다. 한 달 전보다 국힘 지지율(36%)도 높이지 못했고 4월 총선 정부 견제론(35%)도 못 줄였다(갤럽 조사). 물론 정치개혁안을 연달아 내놓긴 했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나 정치적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다. 귀책 시 재보궐 무공천 방침은 개혁안이 아니라 사과를 하며 밝혔어야 마땅했다. 불체포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의원의 재판 중 세비 반납, 의원 정수 감축안도 인요한 혁신위원회에서 권고안으로 이미 발표한 내용이다. 그만큼 한동훈이 절박하지 않다는 얘기다. 5년 전 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에선 ‘총선 승리 3대 법칙’이 혁신공천, 미래비전, 그리고 절박함이라는 정책 브리핑을 내놨다. 공천 잘하고, 단순한 진영 심판론이 아닌 미래 공약을 내놔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그보다 ‘이기기 위해선 못 할 게 없다’는 절박함이 있어야만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공유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은 2020년 4·15총선 전 소득 하위 70%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고도 선거 이틀 전엔 여당 원내대표가 “(서울 광진을) 고민정 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100%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겠다”며 노골적인 현금 살포 작전까지 외쳤던 거다. ‘윤석열 아바타’ 소리까지 듣는, 심지어 민주당에서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 하는 한동훈을 국힘이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은 그의 개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버럭’이 무서워 아무도 못 하는 ‘고양이 방울 달기’를 한동훈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을 터다. 국힘의 아킬레스건은 대통령과의 수직적 관계다. 특히 총선 공천에서 용산 입김을 막고 ‘영부인 리스크’ 해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적잖은 이가 기대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33%, 부정 평가가 59%인 1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부정 평가 이유 두 번째가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였다. 윤 대통령이 밤낮으로 외쳐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민생·물가’ 다음일 만큼 심각하다. 총선 결과는 대통령 지지율에 따라 달라진다. 한동훈은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데 후회 없이 휘두르기는커녕 벌써부터 ‘대통령 사인’에 도리도리하는 모습이다. 작년만 해도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국민 보기에도 그래야 한다”며 총선 후 특검론을 피력했던 그다. 해가 바뀌자 ‘김건희 특검’을 ‘도이치 특검’으로 바꿔 말하며 특검 반대를 밝힌 한동훈은, 시시하다.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은 무너졌다. 이젠 한동훈의 국힘이 무슨 공약을 내놔도 믿기 힘들 만큼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국힘이 총선에서 패해도 한동훈은 손해 볼 일 없을지 모른다. 훌훌 털고 변호사 개업을 해도 전관예우로 수억 원대 연봉을 챙길 수 있다. 해외 유학을 떠났다 2027년 대선 전 해맑은 얼굴로 돌아와도 대선 주자로 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 국민은 다르다. 국회가 비토크라시(vetocracy·반대만 하는 정치)에 휘둘려 윤석열 정부의 남은 3년을 허비하면, 한동훈이 참신하게 외쳤던 ‘동료 시민’의 귀한 3년도 맥없이 낭비된다. 한동훈은 용산 아닌 국힘과 국민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 그리고 사즉생의 자세로 말했으면 한다.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을 국회 재표결 할 경우, 국힘은 당당하게 표결에 임하겠다고 말이다. 취임 한 달 기자회견 자리에서 조사 시점을 총선 이후로 연기하자는 조건을 걸고 밝혀도 좋다. 2020년 10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관련 수사지휘권을 배제당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풀어주도록 이노공 장관 직무대행에게 촉구하는 방법도 있다. 한동훈이 예뻐서도, 대통령 부인이 미워서도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윤석열을 찍었던 다수 국민을 대신해 하는 말이다. 그리해 준다면 한동훈은 한사코 기자회견을 피하는 윤 대통령과 대비되면서 국힘은 물론 종국에는 윤 대통령과 나라를 수렁에서 구한 정치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1-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전쟁 같은 정치라고? 다수 국민은 ‘중도파’다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서울대병원을 나서면서 내놓은 첫 메시지다. 동의한다(그리고 쾌유를 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만 보면 마치 이재명이 적대적 정치인, 즉 정적(政敵)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것처럼 읽힌다.물론 이재명은 “이번 사건이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끝내고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정치를 복원하는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부산경찰청 수사 발표에 따르면 이재명을 습격한 살인미수 혐의자 김모 씨는 정치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범행을 교사한 배후세력은 현재까지 없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12일 민주당은 경찰 수사가 축소됐다며 ‘배후’를 철저히 밝혀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재명은 “사건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되돌아보고 저 역시도 다시 한번 성찰하겠다”고 했으나 성찰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에 매달리는 건 정치인들이지 다수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쁜 독자를 위해 이어질 내용을 세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① 정치적 양극화는 거대양당 문제다.② 강성지지층만 보는 정치는 해법 아니다. ③ 무당파를 움직이는 건 결국 대통령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인 문제증오의 정치에 대해 우려와 경각심을 갖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냉정히, 객관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 즉 ‘정치 양극화’를 정치학에선 이념 양극화와 정서 양극화로 나눠 분석한다. 이 분류가 중요한 이유는 처방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념 양극화란 단순히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게 아니다. 중도가 줄어들면서 보수집단은 더 보수적으로, 진보집단은 더 진보적으로 쏠리는 걸 뜻한다. 진영 내 딴 목소리가 사라지고 충성심을 보여야 살아남는 거대 양당 정치엘리트들이 여기 속한다. 소금을 더 퍼부어 더 짠 소금물로 만들려는 지금의 민주당이다. 오죽하면 ‘원칙과 상식’ 이란 모임을 만든 의원들이 뛰쳐 나왔겠나.하지만 그건 정치인들 얘기고 국민 차원에선 다르다. 유권자의 이념 양극화가 성립되려면, 중도파와 무당파가 줄면서 양당 지지도가 높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는 너무나 많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3년 펴낸 700쪽 넘는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협동연구총서 역시 “유권자들의 이념성향 분포에서 좌우 양극단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21세기 이후 치러진 다섯 차례의 대통령선거 분석에서도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됐다고는 볼 수 없다는 연구 결과다(건국대 김성연 교수 2023년 논문 ‘한국 유권자들의 이념적 양극화와 당파적 정렬’). ● 중도-무당파 유권자가 더 많다이는 갤럽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작년 12월 조사한 작년 말 유권자 정치성향을 보면 중도파(중도적+성향 유보)가 무려 42%다. 스스로 보수적(32%), 진보적(26%)이라고 밝힌 수치를 훨씬 넘는다. 박근혜 탄핵 정국이었던 2017년 1월 중도가 36%(보수 27%, 진보 37%)로 유독 적었을 뿐, 2016~2022년 중도파는 45% 안팎이다. 이들은 무당파와 좀 다르다. 무당파는 지지정당이 없다는 건데 갤럽 조사 결과 2023년 28%가 무당파다. 2022년(22%)보다 늘었고 특히 18~29세 무당파는 37%→48%다. 중도파는 이들 무당파+소극적 지지자 또는 반대자들로, 정책이나 사람 또는 상황에 따라 당을 바꿔 투표하곤 한다. 의원들이 매사 싸우는 것을 꼴 보기 싫어하는 보통사람들이 대개 여기 속한다. 앞서 ‘정치 양극화’는 이념 양극화와 정서적 양극화로 구분한다고 했다. 즉 이념 양극화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나 요란할 뿐 유권자들은 중도파가 더 많다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을 더 싫어하는 정서적 양극화는 유권자 사이에서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22년 대선이 바로 좋아하지 않는 후보를 떨어뜨리려는 ‘비호감 대선’이었다. ● 무당파를 움직이는 대통령 지지율이념적 양극화와 정서적 양극화를 굳이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해결책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유권자가 이념 양극화 경향을 보인다면, 정치는 상대진영 유권자를 설득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2022년 논문에서 지적했다. 지금껏 양당이 증오의 정치, 극단의 정치로 달려간 것도 잘못된 분석 탓이었다. 양당 극단적 선수들은 유권자들도 자기네처럼 이념적, 정치적으로 양극화 했다고 믿고 상대진영을 죽일 듯 공격에 골몰했다. 이런 정치가 일부 극단적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순 있다. 야권 원로 인사인 유인태는 이재명 피습에 대해 “워낙 우리 정치가 서로 상대를 악마화 하면서 증오만 키워온 업보가 아닌가”하고 말했을 정도다. 지금처럼 유권자들이 이념 양극화 없는 정서적 양극화를 보이고 있을 때는 해법도 달라야 한다. 여야는 극단적 정치를 멈추고, 정부는 더 많은 중도파와 무당파를 보고 정책을 펴야 했다.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그래서 부글거리는 ‘조용한 다수’의 요구를 반영해 대통령 지지도를 높여야 정국이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다. 왜 또 대통령 지지도가 나오냐고? 무당파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대통령 지지율이어서다. ● 무당파, 제3지대냐 여당 지지냐흔히 선거는 구도싸움이라고 한다. 거대양당의 소금물에서 빠져나온 두 전직 당 대표를 비롯해 양향자, 금태섭, 또 ‘상식과 원칙’ 팀 등이 제3지대 합종연횡을 모색하는 모양이다. 이들이 ‘적(敵)만 아니면 다 우리편’으로 한데 모여 기호 3번을 엮어낼지는 아직 모른다. 이 당, 저 당, 싸움당 싫은 중도파 및 무당파가 제3당을 주시할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총선 결과를 좌우하는 건 결국 대통령이다. 자꾸 논문을 들이대서 미안하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면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떨어진다(문우진 아주대 교수 2022년 논문). 더 눈에 띄는 것은 무당파의 움직임이다. 이한수 아주대 교수는 2023년 논문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증가하면 여당 대비 야당 비율과, 여당 대비 무당파 비율은 유의미하게 감소한다고 했다(‘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정당 지지 변화에 대한 거시적 탐구’). 대통령에 대한 긍적적 평가를 한 야당 지지자들과 무당파가 여당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2017년 이한수의 연구 결과와 부합한다.● 어게인 2016년? 어게인 실용주의?2016년 제3당의 등장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여당인 지금의 국힘, 즉 새누리당은 ‘진박(진짜 박근혜) 대 비박’ 공천으로 대통령당 변신을 꾀해 국민의 실망을 샀다. 운동권 물을 빼는 듯했던 민주당은 비례대표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도로 친노(친문)당’으로 부활했다. 반면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창당공신들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당 공천 싸움에 실망한 부동층이 몰려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일단 성공했다(오래가진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잊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록은 남아있다. 2021년 12월 12일(공교롭게도 12·12다) 국힘 외연 확장 기구로 만든 새시대준비위원회 현판식에서 당시 대통령후보 윤석열은 “국민의힘도 실사구시, 실용주의 정당으로 확 바뀌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담기가 아직 쉽지 않은 중도와 합리적 진보를 (새시대준비위가) 다 포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때는 그가 대통령 되면 정말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 줄 알았다.용산에 들어가니 달랐을지 모른다. 지나치게 왼쪽으로 치우친 정관계 이념적 양극화를 중간으로 옮기다보니 바른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긴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행정연구원의 벽돌만한 최종보고서 ‘정치양극화 시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방안’은 대통령 1인에 집중된 권력구조, 적대적 공생관계가 특징인 양당제를 바꾸는 개헌과 선거제 개혁 등을 제안했으나…지금은 늦었다. ● 대통령은 과연 무당파를 돌릴 수 있을까정치 양극화는 정치 엘리트만의 현상이라 해도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기에 심각하다. 민주당 소금기가 묽어질 기미는 단언컨대, 없다. 국힘도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을 보면 대통령당으로 달려갈 조짐이 보인다. 이 틈을 뚫고 중도·개혁신당의 제3지대가 꿈틀대는 상황이다. 갤럽 최근 조사 결과 4월 총선에서 ‘정부 지원론’이 35%인 반면 ‘정부 견제론’은 51%였다. 보수 유권자 65%가 여당 승리, 진보 유권자 83%가 야당 승리를 기대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중도층에서 여당 승리(27%)보다 야당 승리(56%) 기대가 많다는 건 정부여당이 가슴을 칠 일이다. 무당층도 마찬가지다. 절반이 신당을 포함한 야당 승리를 원했고 여당 승리를 원한다는 응답은 고작 15%다. 석 달 남은 총선,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한동훈 국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개인기만으론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과연 중도·무당파를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인가.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01-13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역사의 동력, 대통령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나올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관련 특검법을 그냥 넘기지 않을 태세다. 어제도 만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모든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숫자에 약한 나로선 김 여사가 결혼 전 주가를 어쨌다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친윤(친윤석열)계 아닌 의원들이 “검찰에서 탈탈 털었는데도 나온 게 없다”고 한 말을 믿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이 가족 관련 특검을 거부한 적 없다”는 민주당 주장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 관련 특검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반박한 건 실수라고 본다. 측근은 가족이 아닌 데다 2003년 11월 25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힘)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만 빼고 다른 야당과 공조해 열흘 만에 209 대 54로 재의결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여당은 “(대선자금 비리 은폐를 위한) 방탄특검이자 (내년) 총선을 위한 정략특검”이라고 야당을 공격했다. 국힘이 지금 민주당에 대고 하는 말과 다름없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총선을 보름 앞둔 2004년 4월 특검팀 최종 수사 발표에서 특별히 밝혀낸 게 없다는 것도 특검의 아이러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있다. 특검법이 재의결된 뒤 윤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노무현은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하기 이전에 참 부끄럽다”고 언론 간담회에서 거듭 사과를 한 것이다. 물론 ‘정치인에게는 측근이 웬수(원수)’라는 말이 있지만 측근과 가족은 무게가 같지 않다. 그러나 국민 눈에는 대통령 가족도 공적 영역에 포함돼선 안 될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 설령 대통령 부인이라 해도 국민은 권력을 위임한 바 없다. 공적 영역에 사적 관계를 앞세운다면, 그것도 일종의 부패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민생 현장에서 국민 여러분을 뵙고 고충을 직접 보고 들을 때마다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경제 외교, 세일즈 외교는 바로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자리 외교”라고도 강조했다. 그런데 어쩌랴. 국민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건 김 여사가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수십 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명품 숍을 방문한 모습이다. 그러고도 한국에서 뒤늦게 공개된 영상에선 3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을 남겼다. 작년 12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가 62%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김 여사 행보(2%)다. 2022년 2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사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김 여사 행보는 부정평가 이유에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억울하더라도 김 여사는 이미지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이달 중 윤 대통령이 가질 예정인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멋지게 대신 사과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을 설치해 김 여사의 조용한 활동을 보좌하겠다고 밝힌다면, 모질지 못한 우리 국민은 김 여사와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성장 양극화 속에 강남 빼고 전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부글거리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장관 청문회만 봐도 ‘부모 찬스’를 누리고 또 물려주며 세습자본주의를 즐기는 얌체족이 수두룩했다. 대통령은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했으나 검찰 출신 검피아·기재부 출신 모피아는 인사 회전문을 타고 공무원연금까지 받으며 몇 바퀴씩 해먹는 것을 전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고위 관료, 상층 계급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이지 않아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일수록 계속 존경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고, 계속 도덕심을 높여주는 집단이 있어 역사를 이끄는 동력이 나오는데 우리 사회에선 운 좋게 높은 자리 올라간 사람들이 혜택받은 만큼 도덕성과 책임윤리를 보여주지 못해 경제도 더는 도약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것을 윤 대통령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변혁적 리더십의 요체는 비전 달성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69년 대통령직을 사임할 때 대통령 연금조차 사양했다. 국가를 위한 봉사에 대가는 필요 없다는 신념이 있어서다. 조희대 대법원장 같은 유능하고 깨끗한 인선을 계속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공직사회가 달라지고, 보수세력이 달라지고, 젊은 세대 눈빛이 달라지면서, 나라엔 새로운 활력이 넘쳐날 것 같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30년 전 ‘신세대’였던 그대에게, 안녕들 하신거죠?

    일할 땐 “프로”…삶은 “즐겁게”. 30년 전인 1993년 4월 동아일보 창간 73돌 기획으로 열 달간 연재했던 ‘신세대’ 시리즈 첫 회 제목이다. 좀 유치한가(맞다. 내가 썼다ㅠㅠ). 젊은 날 한껏 모양을 내고 찍었던 빛바랜 앨범 사진을 들춰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당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동아일보답지 않게 톡톡 튄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73년생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젊은 날 서태지와 아이들을 소환했다. “동료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라고 외친 ‘환상 속의 그대’에서 따왔다는 후문이다. ‘신세대 30주년 기념 도발’을 세 줄로 줄이면 이렇다.① 신세대는 모든 청춘의 공통점 말고도 특이점이 있었다. ② 잘 자란 신세대가 한동훈이라면 퇴행적 그룹은 한총련이다.③ 주류가 되지 못했다는 신세대, 이제 다시 뛴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왜 30년 전 ‘신세대’였을까. 93년 신군부 전두환-노태우 시대를 종식시키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71%의 국정지지율로 벅차게 출범했다. 91년 소련이 무너졌고(좌파는 꼭 이걸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졌다고 한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기성세대에 문화충격을 던진 다음이었다. 미국선 베이비 부머 세대의 2세, 도무지 알 수 없는 X세대가 등장했다. 생애 전반기에 맞는 ‘첫 번째 인상’이 개인의 가치와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도 70년 전후 경제성장기에 태어났고 교복자율화와 민주화 속에 성장해 자의식과 욕망과 대중문화에 진심인, 생전 처음 보는 인류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었다. 시리즈 첫 회 부제가 ‘자유와 개성의 삶’이다. 태양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으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심지어 직장에서도 “나는 나”라고 주장했던 ‘한국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가 그들이었다. 88서울올림픽과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신세대에게 철학이 있다면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 무렵 신세대 여성을 사로잡았던 불후의 광고 카피가 있다. 채시라가 당당한 직장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다수 여성들의 롤 모델로 등극한 광고.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이 정의(正義)”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청춘이 다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5회 직장인 편에서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맡겼더니 첫마디가 “안 될 것 같다”여서 놀랐다는 한 팀장의 하소연. 요즘 MZ세대의 ‘3요’(이걸요? 제가요? 왜요?)에 쇼크 먹는 임원들 얘기와 흡사한가. “큰 정의(Great Cause)의 시대는 가고 이제 ‘내가 열심히 사는 게 정의다’라고 믿는 일상의 정의가 정착되는 것이 신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당시 서울대법대 안경환 교수는 법대에선 그게 공부로 나타난다고 했다. “부모가 잘난 것도 내가 잘난 것과 마찬가지고, 그걸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며 기회”라는 계급의식도 신세대는 스멀스멀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주류로 성장한 신세대 중 한 사람이 국힘 비대위원장 92학번 한동훈이 아닐까 싶다. 심규진 스페인IE대학 교수는 최근 저서 ‘73년생 한동훈’에서 “한동훈의 능력주의 서사엔 기존의 능력주의가 가지고 있는 촌스러운 ‘짠내’, 동정과 눈물을 요구하는 신파가 없다”고 썼다. 인생이 축복이고 혜택 받았다고 여기는 기득권층이라면, 어렵게 자랐다고 세상에 적개심을 갖는 그래서 반칙과 탈법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 “한동훈의 확고하고 도덕적이며 귀족적인 자의식은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책임의식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연결된다”고 심규진은 썼다. 책임의식만으론 부족하다. 동료시민 앞에 보여주고, 정책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지 온 국민이 주시하는 상황이다. ● 민주당에 어른대는 97운동권 한총련 신세대 시리즈에서 놓친 부분이 93년 봄 출범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었다. 시리즈를 거의 전담했던 내가 운동권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총련이 너무나 마이너였던 이유가 크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92년 단행본 ‘역사의 종언’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승리를 선언했고, 극단적 좌파 이념과 학생운동은 신세대 관심사와 거리가 멀었다. 제일기획부설 마케팅연구소의 여론조사결과 60%이상의 20대 젊은이들이 아예 정치는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했다. 젊은 세대라고 다 미래를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젊음의 폭발력으로 역사의 퇴행을 몰고 오기도 한다. 1928년의 독일은 청년들이 주축이 된 나치 돌격대가 바이마르 민주주의를 황폐화시켰고 곧이어 나치 체제가 확립되면서 독일의 민주주의가 사망했다고 신진욱은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지적했다. 세계화 바람 속에서도 세상 변화에 눈감은 한총련은 출정식에서 “외세와 독재에 맞선 전대협의 투쟁정신을 계승해 자유·민주·통일을 향한 백만학도…”를 외쳤다. 94년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로 표어를 바꾸면서 한총련은 더 외골수로, 강경 주사파로 달려갔다. 97년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때려 숨지게 한 이종권 사건과 이석 사건 뒤에 한총련 간부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을,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내년 총선 공천을 노리는 건 또 무슨 퇴행인가. ● 그들이 유독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93년 12월 시리즈 마지막은 좌담으로 마무리된다. 큰 제목은 ‘사회변화 이끄는 전위(前衛) 부상-합리 바탕 기존질서 해체 성향’. 장상수 당시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업도 신세대에 맞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정보지식사회로 나아가는 미래사회의 흐름을 주도할 세대가 지금의 신세대”라고 했다. ‘주류 질서의 전복자’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를 발표한 것도 93년이었다. “예예예예예 야야야야야 예이예이예이 야이야/너에게 모든 걸 뺏겨버렸던 마음이/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문화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그들이 96년 1월 돌연 은퇴를 발표했다. 그리고 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한국사람 모두에게 IMF사태는 충격이었지만 당시 신세대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대학 졸업 무렵 취업절벽을 맞았거나 부친의 사업 실패 또는 명예퇴직으로 자신의 미래도 암울해졌다는 서사가 적지 않다.전례 없이 커졌다가 갑자기 포기된 욕망은 크나큰 정신적 내상으로 남는다. 특히 보수정부에서 IMF사태가 닥쳤고, 2009년 또 다른 보수정부에서 신세대가 만들었던 대통령 노무현이 목숨을 끊었다(고 그들 일부는 믿는다). 신세대가 40대가 된 지금 유독 반(反)보수층,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서사와 무관치 않다.● 그런 세대는 없다? 신세대는 살아있다? 모든 세대는 자기들 세대가 가장 불행하다고, ‘낀세대’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40대는 특히 더해서 586세대와 MZ세대 사이에 꽉 끼어 사회 주류로 뜨지 못하고 늙어가는 ‘낀낀세대’라는 소리도 나온다. 고령화·정년연장 덕에 86세대는 여전히 활동하는데 젊은 날 신세대였던 그들은 승진도 늦고, 권한도 누려보지 못한 채 MZ세대에 밀려나고 있다는 불만도 부글거린다. 중앙대 신진욱 교수(사회학)는 2022년 ‘그런 세대는 없다’고 아예 책 제목에 썼다. 586으로 뭉뚱그려진 1960년대 생 중 4년제 대학에 간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정치권에선 86운동권이 오랜 영화를 누리는 바람에 한총련 출신 97(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그룹이 오래 굶었는지 몰라도 요 몇년 새 집값 폭등 때 자산 최상위층이 늘어난 쪽은 3040대였다. 요컨대 세대 내 불평등과 계층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지 (젊은층) 꿀 빠는 꼰대세대와 얼떨결에 패싱 당한 낀세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둘러보면 맞는 말이다. 30년 전 386이 지금 모두 기득권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30년 전 신세대가 현재 모두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당대의 두드러진 현상을 취재 보도하는 게 저널리즘이고, 마침내 30년 후 확실한 주류로 뜨고 있는 신세대를 목도하고 있다. 30년 전 신세대로 열심히 살아온 그대들, 그동안 안녕들 하셨던 거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12-29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73년생 한동훈, 가짜 민주화세력 끝장내고 세대교체를

    노파심에 고백하자면 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일면식도 없다. 하지만 한동훈이 ‘윤석열 아바타’는 아니라고 본다. 검찰 때 일 잘해 윤 대통령 총애를 받았다지만 첫째, 한동훈은 술을 입에도 못 대기 때문이다. 둘째, 구리구리한 꼰대가 아니다. 셋째, 옷도 잘 입고 정제된 언어로 말도 잘해서다. 한동훈이 내년 총선 망하게 생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을 모양이다. 당 대표를 둘이나 끌어내린 대통령실이 힘을 썼다는 소리가 나온다. 또 검찰 출신이냐 싶다. 안 그래도 ‘검찰 공화국’ 비판을 듣는 판에 그가 사실상 당 대표인 비대위장을 맡으면 국민의힘은 용산의힘이 되고 ‘윤심 공천’도 KTX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한나땡”(한동훈이 나와 주면 땡큐) 외칠 만하다. 이미 정치인 뺨치게 진화한 한동훈이 과연 그럴까.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은 검찰 출신도 아닌데 “나라님” 운운하며 대통령한테 한마디 못했다. 의사지만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실패 이유를 오진하고 용산 아닌 당에 메스를 댔다. 능력주의로 무장한 한동훈은 19일 공공선이 자신의 기준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 초 한 인터뷰에선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가치를 공유하는지는 몰라도 이익을 공유하거나 맹종하는 사이는 아니다”라고 했다. 누구처럼 허언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상명하복에 익숙한 검찰 출신 대통령 앞이라 해서 할 말을 못 하거나 할 일을 못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럴 자신 없으면 비대위장 자리는 맡지 말아야 한다. 한동훈을 위해 무난한 비대위장을 내세워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강감찬 아꼈다 임진왜란 때 쓸 요량이겠지만 고려가 망하면 조선도 없다. 당연히 임진왜란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감찬 위하려다 고려 왕이 죽듯, 국힘이 총선에서 지면 대통령도 제 역할 못 한다. 국힘과 대통령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내 나라와 우리 아이들 미래가 억울해서 하는 말이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숙주 삼아 나라를 친북·친중으로 몰고 갔던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출신들이 총선에 나올 태세다. 전대협 벼슬의 전직 고관대작 때문에 오래 굶은 97(90년대 학번·70년대생) 한총련 출신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현역 의원 물갈이 공세를 벌이고 있다. 1980, 9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는 그들은 가짜 민주화 세력이었다. 국민 앞에선 “주사파와 관련 없다” 주장했지만 북한이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명의로 내보낸 구국의소리 방송 지령대로 인민민주주의혁명을 꾀했다는 게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출신 민경우의 증언이다(최근 저서 ‘스파이외전-남조선해방전쟁 프로젝트’). 86그룹 맏형이던 ‘돈봉투’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이” 꼰대질을 하자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수십 년간 시민들 위에 군림했다”며 ‘후진 정치’를 세련되게 질타한 사람이 한동훈이다. 시대착오적 ‘×팔육 정치’를 종식시키고 전대협보다 극단적 좌파인 한총련의 정치 진입을 막으면서, 지긋지긋한 보스정치 팬덤정치를 끝내고, 멀쩡한 보수를 넘어 태도 또한 괜찮은 쿨한 보수로 가려면 73년생 신세대 정치인 한동훈이 ‘세대교체’를 들고나와야 한다. 관건은 용산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더는 안고 갈 수 없다는 보수층 민심을 똑똑한 한동훈이 모를 리 없다. 1982년 장영자-이철희 사기 사건 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친구 노태우 체육부 장관은 장문의 읍소편지로 대통령 처가 일족의 구속과 공직 사퇴를 설득했다. 1987년 6·29선언은 전두환 각본에 “각하께서 호통을 쳐달라”는 노태우 연출이 덧붙여졌다는 후문이다. “권력과 국민의 이익이 배치될 때 힘들고 손해 보더라도 국민 편을 들라고 이 나라 법과 국민들이 검사에게 신분 보장도 해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한동훈은 작년 1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일개 공직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자신의 말을 기억한다면 편지를 쓰든 ‘아름다운 뒤통수’를 치든, 한동훈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할 것이다. 총선 공천도 공공선과 당선을 최우선으로 두면 답이 나온다. “대통령의 국민과의 소통이 90점”이라는 간신 같은 용산 출신에게 공천 주는 일들이 벌어지면 총선 승리는 물론이고 한동훈에게 ‘별의 순간’은 없다. 다행히도 2022년 윤석열의 대선 승리를 전망했던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전망에서 국민의힘이 총선 과반수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썼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1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 황제의 아킬레스건은 아내였다

    영화 ‘서울의 봄’에 가려졌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도 퍽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영화다. 물론 스콧 경이 한국 상황을 고려했을 리 없다. 프랑스에선 영국 출신 감독이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나폴레옹을 찌질하게 연출한 반(反)프랑스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란 평가도 분분하다. “영화가 다큐멘터리냐?” 일갈했다는 감독은 최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게 막강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인물이, 어떻게 아킬레스건을 가질 수 있을까. 나폴레옹에게 아킬레스건은 한 여자였다. 그래서 나는 핵심을 파고들었던 거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관계라는.” “위대해지고 싶겠지.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 말해봐(You want to be great. You are nothing without me. Say it).” 유럽 인구 절반을 다스린 제국의 황제가 나폴레옹이다. 그런 위대한 남자를 손끝으로 가지고 놀던 유일한 사람이 조세핀이었다. 날름거리는 촛불 아래 그 여자가 속삭이듯, 아니 씹어 뱉듯 이렇게 말하는데 불현듯 우리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작년 1월 MBC ‘스트레이트’ 가 방송되기 전, 당시 대통령 후보 부인이었던 김건희 여사가 7개 내용에 대해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안타깝게도 내용이 유출돼 버렸는데 그 중 하나가 이거였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내가 아는 많은 남자들은 껄껄 웃었다. 실은 자기도 집에서 만날 듣는 소리라며 그게 무슨 대수냐고 했다. 참 속도 좋다. 남편이 집에서 라면 하나 못 끓여먹어 마누라가 챙겨줘야만 한다는 투정과,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 얘기는 같은 급이 아니다. 국정까지 대통령 부인이 챙겨줘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면, 나라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스콧 감독이 해석하는 영화 속 나폴레옹은 그런 모습이다. 전쟁터에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쳤을지언정 조세핀 앞에선 바보멍청이일 뿐이었다. 유럽 대륙을 정복한대도 사랑이라는 전쟁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패자(敗者)다. 이건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사랑하지 않았고, 이혼할 때야 비로소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고(조르주 보르도노브 ‘나폴레옹 평전’). ● “가장 행복한 기억은 아내를 만난 것”윤석열 대통령은 올 4월 미국 국빈 방문에 앞서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어서 늦게, 50(살)이 다 돼서 제 아내(김건희 여사)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 가장 기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대통령 취임 1년이 다가오는 시점이었다. 그것도 미국 방문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대통령 당선’도 아니고(정권교체를 원했던 다수 국민은 구국의 심정으로 2번을 찍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아니고, 김건희 여사와의 결혼을 언급한 거다. 이런 개인사 발언이 대통령 이미지를 부드럽게 해주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나의 아킬레스건은 내 아내’라고 공표한 것과 다름없다. 윤 대통령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 사람이 대통령 부인인데 누가 감히 “여론이 안 좋은데 김 여사와 처가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을 둬야 한다” “대통령비서실에 김 여사 일정과 예산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을 따로 둬야 한다”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나(원래 이렇게 ‘짖어대라’고 비서실장이 있는 거라고 도널드 럼스펠드는 강조했다). 대통령과 대통령부인 활동이 별도 게시되는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와 달리 우리 대통령실엔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 사진이 함께 올라가 있다. 그래서 용산에서 VIP1, VIP2 소리가 나오는 거다(심지어 VIP제로란 말도 들린다). ● 황제의 아내는 노련한 정치가였다조세핀은 어려서 점쟁이한테 프랑스 여왕이 된다는 운명적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너무나 여성스럽고 우아해 남들이 몰라봤을 뿐, 남자를 조종할 줄 아는 조세핀은 노련한 정치가였다. 영화에선 조세핀의 부정 때문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부랴부랴 오는 걸로 나오지만 실은 나폴레옹이 소환 명령도 안 받고 돌아올 것이란 정보를 경무대신 푸셰에게 전해준 스파이가 바로 조세핀이었다(슈테판 츠바이크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온통 황제뿐인 주변국과의 관계를 위해 후계자를 필요로 한다. 결국 ‘국민의 이익’을 우선해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택하는 것이다. ‘행운의 별’ 조세핀과 헤어진 뒤 패배를 거듭하다 죽음 앞에서 듣는 그 여자의 환청은 섬뜩하다. “내가 당신을 파멸시켰지. 다음 생엔 내가 황제가 되고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거야.” 실제로 조세핀은 제1통령의 아내로서, 황제비로서의 역할은 훌륭하게 해냈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앙드레 모로아는 ‘프랑스사’에서 파리는 조세핀에게 ‘승리의 성모’라는 칭호를 바쳤다고 했다. ● 김 여사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노련한 독자들은 내가 왜 먼 길을 돌아왔는지 알 것이다. 검찰은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을 고발함에 따라 1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소환 조사 없이 서면 조사만 했다는 검찰이 명품백 수수 의혹이라고 바짝 수사할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두고 볼 일이다. 작년 9월 그 명품백을 받은 자리에서 몰래 찍었고 올해 11월 말 공개한 그 영상에서 자칭 통일운동, 보통 친북 활동가로 알려진 재미교포 목사에게 김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객관적으로 전 정치는 다 나쁘다고 생각해요” “막상 대통령이 되면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김 여사는 과거 공개된 녹취록에서 “내가 정권 잡으면 하하하 거긴 무사하지 않을 거야”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도 아니고, ‘남편이’도 아니고, ‘내가 정권 잡으면’이다. 그런 의식이 살아 있으니, 그리고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으니 이 영상에서도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 (해결에) 나설 생각”이라며 “우리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일하자”고 작년 9월 마치 대통령처럼 말한 게 아닌가 싶다. ● “드러나지 않게 잘하라고 했다”더니대통령 선거 전에 했던 김 여사의 사과를 전 국민이 기억한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 초 윤 대통령은 한 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취임해 보니 배우자도 할 일이 적지 않더라”며 “드러나지 않게 겸손하게 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윤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면, 개인적 희극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의 비극이다. 작년 9월 ‘도발’ -‘“우리 남편은 바보”…녹취록은 윤석열 리스크였다’에서 나는 스페인 방문 때 둘렀던, 재산신고 때 빼먹은 6200만 원 짜리 반 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도 늦었지만 신고하고(아, 지인에게 빌렸다니 선물 반환 창고에 보관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감찰관도 임명해 ‘김건희 리스크’를 끊어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대통령의 애처증은…안타깝지만 죄다. 나폴레옹의 아킬레스건이 조세핀이듯,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김 여사다.▶[김순덕의 도발]“우리 남편 바보”…녹취록은 ‘윤석열 리스크’였나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반복한다. 내년 총선에서 폭망하지 않으려면, 곧 구성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쫓기듯 임명하지 않으려면, 특별감찰관과 제2부속실장 임명을 윤 대통령 스스로 속히 단행하는 게 낫다. 그것이 영화 속 나폴레옹처럼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길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12-16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