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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팩트를 알게 되면 생각과 주장도 달라져야 한다. 나는 ‘당정 분리’가 민주적 원칙 또는 상식이고 따라서 대통령이 당 대표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은 반(反)민주인줄 알았다. 그래서 작년 9월 ‘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고 칼럼도 썼다. ▶[김순덕 칼럼]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참여정부 출범 때 당정분리를 최초로 도입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7년 “당정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했다는 걸 난 최근에야 알았다(이런…). 그렇다면 당정분리 명분으로 대통령의 당 총재 겸임을 금지한 것도 재검토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 급히 정당개혁과 민주주의 관련 자료를 뒤졌다. ● 바쁘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면…결론은 역설적이고 착잡하다. 바쁜 분들을 위해 전체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당정분리 실패를 공개 인정했다. ②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1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취임 후 당정일체를 실천했다.③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정당개혁은 한국 정당개혁의 원형이 됐다. 그러나 정당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키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반면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네트워크 정당모델이라는 논문도 있다. ④‘정당 민주화’가 포퓰리스트를 등장시켰다는 실증적 해외연구는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목도된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는 강한 정당의 ‘걸러내기’ 기능이 작동됐다면 통과될 수 없는 대통령이다. ⑤대통령제+우리 식 양당제에선 정부여당의 실패가 정권교체를 보장한다. 야당은 똘똘 뭉쳐 정부여당 발목을 잡는데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고수하는 건 온당한가.● 노무현 “당정분리는 책임 없는 정치”2002년 대선 후보 때부터 당정분리를 주장한 사람이 노무현이다. 그는 2002년 12월 26일 대통령 당선자로서 “당정분리가 나오게 된 계기가 대통령이 당 총재로서 당을 지배함으로써 빚어지는 하향식 문화를 막자는 것”이라며 “당정분리는 당직임명권과 공천권을 확실하게 배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개념은 계속 바뀐다. 당 운영에 간섭 않기, 정책은 협의하기, 나중엔 그것도 않기…마침내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에선 이렇게 발언했다. ‘한국식 민주주의’, 말하자면 후진적 제도 몇 개를 개혁해야 됩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었지요….(중략) 한 마디로 5년 단임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 아니다는 증명이고요. ‘X팔린다’는 이런 뜻입니다.당정 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만, 그동안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당정 분리를 채택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당정 분리도 재검토해 봐야 합니다. 책임 안 지는 거 보셨죠?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대통령이 책임집니까, 당이 책임집니까? 당이 대통령 흔들어 놓고 대통령 박살내 놓고 당이 심판받으러 가는데…같은 겁니까, 다른 겁니까? 어떻게 심판해야 하지요? 책임 없는 정치가 돼 버리는 것이지요.● 문재인은 사실상 당정일체 운영 정치의 중심은 정당입니다.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당정분리라는 것도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지난번까지는 부득이했지만 이제는 넘어설 때가 된 거 아니냐. 왜냐하면 당을 지배하는 제왕적 권리는, 이제 권력의 부작용은 많이 해소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노무현 스스로 정치개혁 하겠다며 도입한 당정분리였다. 이게 후진적 제도라고 자백하다니…아무리 말을 함부로 했던 대통령이라 해도 막말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노무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인정했다. 2017년 1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에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이렇게 말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은 제왕적 (당)총재가 돼서 공천도, 재정도, 인사도 좌지우지하는 제왕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지 당정간 거리를 두는 당정분리는 정당책임정치라는 점에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심지어 2017년 3월 마지막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선 “당정일체로 ‘민주당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언을 했다. ● 정당 실패해도 제왕적 대통령 잘 나갔다실제로 문재인은 집권 후 그렇게 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주당 의원 고민정이 7일 방송에서 여당 당 대표 경선 과정을 언급하며 “문 전 대통령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헹. 인간 기억력을 우습게 보는 꾀꼬리 같은 소리다. 당 전체가 거의 친문이어서 누가 돼도 친문 당 대표인데 대통령이 뭐 하러 경선에 관여하겠나. 2020년 총선 공천도 그렇다. 고민정 자체가 당정일체의 증거다. 그럼 아나운서 말고 다른 경력도 없는 고민정이 무슨 수로 지역구 공천을 땄겠는가. 2020년 총선 당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출마자 무려 30명(민주당 28명+열린민주당 2명) 중 19명이 국회 입성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호위무사를 국회로 보낸 이가 문재인이었던 거다.개혁의 화신 노무현이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이후 모든 정당의 개혁 모델이 됐다. 그러나 2004년 총선에서만 반짝 성공했을 뿐. 그 뒤로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했고 2007년부터 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탈당하면서 2008년 총선을 치르기도 전 자멸했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어지는데도. ● 집권당이 국정파트너가 아니면? 열린당은 대통령에게 당정관계 복원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대통령이 당직이나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 건 좋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3년 3월 대북송금특검법안에 거부권 행사 않겠다, 4월 이라크 파병, 2005년 6월 야당과의 대연정을 불쑥불쑥 발표했다. 여당과는 한마디 협의도 없이. 대통령이 집권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게 강원택 서울대 교수 지적이다. 여당 의원이 고무도장에 불과하면 국민이 왜 비싼 세비를 세금으로 바쳐야 한단 말인가? 국가 통치자로서 노무현은 국민을 직접 상대했다. 정당을 기반으로 선거를 통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투입을 위한 정당의 역할은 최소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노무현이 열린당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은 이후 정당들에 의식적 무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일종의 원형이 됐다는 연구결과는 의미심장하다(김인균 2020년 ‘3김의 퇴장과 정치개혁 담론, 그리고 정당개혁’) 의정논총에 실린 이 논문은 “이 사례를 통해 현재 한국의 정당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무현이 불러온, 그래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가장 큰 문제는 노사모, 지못미, 개딸 같은 팬덤 정치다. 당정분리론이 산업사회에서 이어진 전통적 혹은 시대착오적 대중정당모델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인데, 요즘 시대에는 딱 맞는 ‘의원-유권자네트워크정당’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다(채진원 2014년 논문 ‘노무현의 당정분리론과 비판에 대한 이론적 논의’).● 독재자 걸러낼 문지기가 정당이여야 바로 이 때문에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등장했다면 어쩔 것인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9년 ‘도발’ 첫회에서 소개한 그 책)는 정당이, 정당 지도자가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라마다 정당 민주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을 확대 개방했더니 도널드 트럼프 같은 선동적, 잠재적 독재자에게 홀랑 넘어가더라는 거다. 사회가 분열되고, 극단화 양극화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선거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유독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우리 이니’ 빽을 믿고 언론, 사법부, 검찰, 안보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5년 단임제였기에 현명한 다수 국민이 문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지만 4년 중임제라면 체제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책임 정당’이라는 책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라는 부제대로 강하고 위계적인 정당이 민주주의에는 필수라는 역설적 결론이다.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당 내에서 반드시 민주주의를 해야 할 것까진 없다는 연구결과는…섬뜩하다. 관객에게 최고의 발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발레리나의 발은 처참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 “대통령이 여당 수장해야 정당이 바로 선다”왜 우리는 협치를 못 하느냐고 언론은 참 쉽게 썼다. 정치권도 이유가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처럼 대통령제+기율 강한 양당제인 정치문화가 최악이란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까지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실패가 곧 정권교체’로 믿고 죽자고 반대만 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여당이다. 이에 당정분리로 대응할지 당정이 연대해 대응할지 국민의힘도, 대통령도, 보는 국민도 복잡하다. 아니 나라가 잘못될까 걱정이다. 용산이 저 난리인 것도 그 때문일 터다(그래서 분탕질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여소야대 노태우 정부 시절 정무장관을 지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여당 대표로 나서 야권과 협치하라”고 진작 말했다(작년 9월 시사저널). 당정분리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이 여당에서 분리됐는데 대통령이 여당 수장 역할을 해야 정당이 정당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삼권분립 원칙도 있지만 현실정치에선 혼란을 야기한다며 정치학자들이 좀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 당무개입, 하려면 당당하고 투명하게 물론 윤 대통령은 당무개입 않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다. 그러고도 가만있지 않았음을 국민도 안다. 정말 선의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당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하는 게 낫다.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헌법 아래 2001년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지냈다. 이 헌법 아래서 대통령 김영삼(YS) 신한국당 총재도 1995년 총선 때 원희룡 남경필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 등 ‘새 피’를 수혈해 눈부신 승리를 이끌어 냈다. YS는 친YS만 공천하는 속 좁은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일 이번 대표 경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헌 7조 변경을 공약할 경우(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조항을 겸임 조항으로), 다음번엔 ‘대통령 겸임 당 대표’가 나올 수도 있다. 혹시 아는가.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동급으로 마주 앉아 제대로 협치할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엄마들의 로망은 딸과 친구 같은 엄마가 되는 거다. 딸들은 그렇지 않다. 친구 많은 그들은 성모마리아 같은 엄마를 원하지, 엄마와 친구처럼 놀기를 원치 않는다. 내 딸도 그랬다. 설을 끼고 딸과 휴가를 갔는데(그래서 도발을 2주 제꼈답니다^^;) 갑자기 “엄마는 왜 늘 ‘아니’ 하고 말을 시작해?” 하는 것이었다.“아니, 내가 언제?”… 했다가 나도 놀랐다. 열두 살 때도 내게 테러를 감행해 날 충격에 빠뜨리더니 이번엔 한국인에게 ‘아니’로 말을 시작하는 부정적 버릇이 있다는 충격 발언으로 에미를 단박에 아다다로 만들었다.그러고 보니 옛날 코미디언 임희춘이 “아니, 그게 아니구요” 했던 게 생각난다. 아니 나는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사전에는 ‘아니’에 부정이나 반대의 뜻도 있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쓰여 강조의 의미로 쓰이는 어법도 나와 있다. 아니 사실은, 아니 근데, 아니 내 말은, 아니 그게, 아니 있잖아…영어로 말하면 By the way! 아니, 라는 말을 안 하려니 그 담부터는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 돈 쓰고 내 딸 모시고 힘들게 돌아와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는 걸 발견하곤 만세를 불렀다. 국방부 전 대변인 부승찬이다. ● ‘아니’는 나만의 말버릇이 아니었다부승찬은 작년 4월 1일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 행사 때 남영신 당시 육군총장이 화장실까지 쫓아와 이른바 도사라는 천공이 대통령직인수위 고위관계자와 함께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에 있는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는 말을 했다고 ‘권력과 안보-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에다 썼다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람이다.그는 3일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나와 21분 55초간 방송하면서 무려 열아홉 번 ‘아니’를 말했다. 주진우와 주거니 받거니 한 것으로 치면, 우하하 줄잡아 1분에 한번 아니를 말한 거다. 그러니까 아니 아니 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미리 밝혀두자면 이건 흉이 아니다. 글로 써놓고 보니 눈에 띄는 것이지 귀로 들으면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이번 기회에 각자의 언어습관을 점검해 보시어요. 참고로 대통령은 에, 에 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천공의 관저 결정 개입설을 옳겨 썼다가 나까지 고소당할까 봐 분명히 밝히는데 이 글의 주제는 천공이 아니라 ‘아니’라는 부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다(후덜덜)!● 아니 공관장이 총장한테 허위보고 하겠냐고방송을 시작한 주진우가 “대통령실에서 고발했더라고요, 바로. 어떻게 보셨어요?” 묻자 부승찬은 “아니①, 저는 김종대 전 의원과는 달랐죠”라고 곧장 ‘아니’를 발사했다. 본인도 의식 못 했을 거다. 그리고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지금 고발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하고 이어갔다.주진우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한테 들었다는 거죠?” 묻자 부승찬은 “공관장이 자기 즉 남영신 총장한테 보고했다”고 답했다.◆부승찬: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아니②, 용모를 보십시오. 흰 수염에 도포 자락 날리면 그게 말이 됩니까?◇주진우: “말이 됩니까?” 그러는데 총장이 뭐래요?◆부승찬: 아니③, 그러면 무슨 뭐 공관장이 허위 보고하겠냐고 총장한테.● ‘아니’만 들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전체 말고 부승찬의 ‘아니’가 나오는 부분만 들어도 맥락을 알 수 있다는 건 중요하다. 아니가 들어간 부분은 화자가 강조하고픈 대목이어서다. 부승찬이 아니 하는 부분은 기실 그가 의식하지 않고도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다. 그 부분만 발췌 소개한다.◆부승찬: 네, 핵심 인물 천공이 왔다. 저는요. 고발을 안 당할 자신 있는 게 뭐냐 하면 거기 뭐 경호처나 이런 사람들 저는 1도 관심 없어요. 이 사람들은 당연히 가야죠. 아니④, 의무잖아요. ◇주진우: 네, 네. 알아볼 수도 있죠.◆부승찬: 아니⑤, 그건 당연한 거고 그건 1도 관심 없어요. 저는 민간인 천공이 핵심이고 나머지 분들 뭐 일면식도 없다. 제가 일면식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까? ◇주진우: 만약에 (CCTV) 공개했는데 천공이 안 나오거나 천공하고 관련이 없다면 책임을 지셔야죠.◆부승찬: 아니⑥, 뭐 책임은 지는데 저도 기록…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겁니다.◇주진우: 그래서 기록하셨어요?◆부승찬: 아니⑦, 그래서 그때 당시 기록이었고 저장 날짜도 작년 4월이 마지막 저장이었고. 그러니까 이제 저는 그 기록을 가지고 아니⑧, 국방부의 어떤 군사 비밀을 제외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천공 기록이 있는데 이걸 빼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죠. ◇주진우: 알겠습니다. 경호처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하고 있고요. 그런데 당시 CCTV를 빨리 공개하면 될 일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데 부승찬 대변인을 고발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언론사 두 곳은 어떤 이유로 고발됐을까요?◆부승찬: 아니⑨, 사실은 언론사 한쪽은 뉴스토마토죠. ◇주진우: 그러면 이 사실관계는 어떻게 밝혀야 됩니까?◆부승찬: 아니⑩, 그러니까 이게 제가… 결국은 이제 총장님의 큰 결단이 저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이고요. 그게 가장 우선시되고 그다음에 CCTV나 이런 것들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현행법들을 넘어서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주진우: 아무튼 참모총장께서 대변인하고만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대변인도 그 얘기를 듣고 혼자서 가슴을 끓이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부승찬: 아니⑪, 저는 그거는 명확히 말씀드리지만 지켰습니다. ◇주진우: 알겠습니다. 분명히 또 하기는 했을 텐데 이렇게 또 관저나 그리고 청사를 이렇게 기록하는 기록물들 있을 텐데. 카니발 승용차가 2대가 왔고 어디에 누가 탔고 그런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왔어요?◆부승찬: 아니요(이것은 부사가 아니어서 세지 않았다). 제가 들은 거는… 아니⑫, 그거는 뉴스토마토에서.◇주진우: 알겠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천공 국회 청문회로 부르겠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해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부승찬: 아니⑬, 그거는 어찌 됐든 지금 양분된 그런 국가적 분열 상태를 천공이라는 인물 하나로 해서 이렇게 되는 거는 정말 안타깝기 때문에 어찌 됐든 이거는 밝혀야 된다. ◆부승찬: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안 갔다는 뭐 육군공관 CCTV… 아니⑭, 지금은 안 되겠지만 그때 당시는… ◇주진우: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천공 의혹에 대해서 “김용현 경호처장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더라. 폰이랑 CCTV 공개하겠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폰과 CCTV 공개할 것 같습니까?◆부승찬: 아니요(이것도 세지 않음). 전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주진우: 안 할 것 같아요? ◆부승찬: 네. 아니⑮, CCTV에 대해서는 명확히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고요.◇주진우: 대통령과 관련됐기 때문에?◆부승찬: 아니⑯,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통령경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과 그다음에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이 법을 뛰어넘어야죠.◇주진우: 그러면 그냥 하는 말입니까, 이거?◆부승찬: 아니⑰, 저는 그거는 그냥 하는 말이라고 봐요.◇주진우: 그래요?◆부승찬: 네. 아니⑱, 본인들이 밝히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본인이 무슨 CCTV를 밝혀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핵심 관계자인 천공을 데려다 놓고 하면 돼요. ◇주진우: 아, 대통령경호법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천공만 조사해 보면 된다?◆부승찬: 아니⑲, 당사자는 안 나서고 왜 대통령실에서 실드를 쳐주냐 이거지.● 아니 왜 천공은 조사 안하느냐고?부승찬은 왜 천공을 직접 조사하지 않느냐고 했다. 조사는 아니지만 취재한 사람 있다. 신동아 기자 출신 프리랜서 기자 조성식이 작년 10월 24일 천공 측 정법시대 법무팀장에게 질의서를 보낸 거다. ‘조성식의 통찰’이 소개한 법무팀장의 마지막 답변은 “스승님이 답변하시지 않을 것 같으니 편하게 보도하시라”였다.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정도면 천공의 육참총장 공관 방문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봐야 옳다. 심지어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조성식은 작년 11월 하순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해 옛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과 외교부 장관 공관(현 대통령 관저) 및 육군 서울사무소의 출입자 명부와 CCTV 영상에 대한 정보공개를 국방부에 청구했다. 12월 11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결정통지서가 날아왔는데 날짜를 가리고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육참총장 공관을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은 2022. *.**. ~ *.**. 국방부 청사 내 육군서울사무소/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의 출입기록 및 CCTV 영상은 개인정보 보호법, 국방 정보공개 운영 훈령,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공개가 제한됨을 안내 드립니다.즉 공개 못 한다는 얘기다.● 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 아닌가대통령실은 3일 “중대한 의혹을 제기하려면 최소한 천공의 동선이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거나 관저 출입을 목격한 증인이나 영상 등 객관적 근거라도 있어야 한다”면서 부승찬과 기자들을 고발했다.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인데 기자들한테 객관적 근거를 대라는 건 공정한가. 단언컨대 대통령 손바닥의 임금 왕(王)자부터 시작해 허연 머리 휘날리는 도사님 좋아할 ‘궁민’은 많지 않다. 정권의 비선실세라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단속도 못 하면서 대통령실이 잘하는 건 기자들 고발뿐이다. 대통령실 만세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번지는 사태를 막고 싶은가. 그러려면 천공을 잡으시라. 언론을 잡지 마시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집권당이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엔 관심 끊을 작정이었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당’이어서 죽다 살아난 정당이 다시 대통령당 되겠다고 당헌까지 바꿨다. 민심을 받든다며 국민 여론조사 30% 반영하던 경선 룰을 당원 선거인단 투표 100%로 갈아 치운 건 일반 국민은 상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그럴 바엔 정당 운영도 당비 100%로 할 것이지 왜 피 같은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아먹나 싶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후보를 발견했다.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를 약속한 조경태 의원이다. 5선 의원인 그는 “후진적 한국 정치가 계속되는 이유 중 가장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가 정당 국고보조금”이라며 당비보다 많으면서도 통제받지 않는 국고보조금이 정당 자생력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당심 1위 나경원, 한때 민심 1위를 달리던 유승민이 ‘윤따’(윤석열 대통령의 따돌림) 끝에 불출마를 선언한 뒤 윤심과 윤힘(윤 대통령에게 힘) 후보가 양강을 다투는 가운데 신핵관, 심지어 대통령 부인 팬클럽 회장 출신까지 뛰는 판이다. 이 속에서 대통령 팔지 않는 후보가 당원들한테 인기 없을 게 뻔한 공약을 들고나왔으니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안다. 정당 국고보조금제는 헌법 사안이다. 헌법 8조 ③항에서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헌법을 만들 때 도입된 것임을 알고도 고수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당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신설됐다는 논문까지 봤다면 ‘민주 정당’으로서 면이 안 서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치자금 부패에 빠지지 않기 위해 국고보조금이 필수라는 정당인이 있다면, 중학교 사회 교과서를 봐주기 바란다.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만든 단체라고 정의돼 있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정책을 만들고, 국가기관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며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정당 역할이다. 그런 정당이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보조금에 의지하면, 더 이상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들으려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국가와 카르텔을 형성한 ‘카르텔 정당’이 되는 거다. 기득권 정당들이 민심에 따라 정책 경쟁을 하는 대신 여당은 윤심에만 신경 쓰고, 야당은 당 대표 방탄에만 골몰하는 것도 결국 돈 때문이다. 그들은 ‘살인마 정권’이 퍼주기 시작한 돈뭉치 속에 안존할 수 있어 좋겠지만 국민으로선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에 강제 기부금을 바치는 꼴이다. 돈에 눈멀어 정당이 유지되는 추태도 벌어진다. 국민의당 비례의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018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바른정당과 합친 것도, 뜻이 다른 의원들이 서로 “네가 나가라”며 당에 붙어 있던 것도 돈 때문이었다며 선거보조금 타먹는 구태정당의 극치를 봤다고 회고록에 썼다. 민주주의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당처럼 민심을 외면하고, 당내 다른 목소리는 내부 총질이라며 압박하고, 주군에게만 충성하는 정당들이 혈세에 의존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심지어 경상보조금 외에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 전에 선거보조금, 선거 후엔 선거비용 보전금까지 이중 지급된다. 2022년 그렇게 부자 정당들에 퍼준 세금이 무려 1420억 원, 최근 정부가 취약 계층에 예비비로 긴급 지원한 난방비 1000억 원보다 많았다.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이 2021년 발간한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정당’에 따르면, 유럽 정당들도 국고보조금을 받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선거비용 보전을 받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독일은 국고 지원이 당 자체 수입을 절대 넘지 못하게 규정해 놨고 국고지원 총액도 제한한다. 초당적 감시와 통제를 하는 건 물론이다. 우리처럼 2001년부터 2020년까지 1조2570억 원의 보조금을 받고도 감사 받은 적 없고, 홈페이지 공개도 않는 정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양대 진영 정당이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최대의 혜택을 누리고, 대안적 정당의 부상이 저지될 수 있게 했다”는 대목을 보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윤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지원 체계를 재정비하겠다며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카르텔 정당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만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선 비용 보조금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대장동 비리 의혹 관련 검찰 출석 요구에 응한다고 밝혔다. 다만 “많은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주중엔 일을 해야겠으니 (소환 날짜) 27일이 아닌 28일(토요일) 출석하겠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민생 문제에 몰두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야당 대표로 알 판이다. 실제로는 입만 열면 주로 이재명 자신의 방탄이다. 12일 새해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도 “정치권 모두의 힘을 모아 민생과 미래 개척에 집중해야 될 때”라면서 “이를 위해 야당 말살 책동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기자들 질문 11개 중 첫 번째와 마지막 질문까지 6개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였다. 회견 제목은 ‘국민의 오늘을 지키고 나라의 내일을 바꾸겠습니다’지만 실상은 ‘이재명의 오늘을 지키려 나라의 내일도 바꾸겠다’는 선사후공(先私後公) 정당 선언이 된 꼴이다. 이재명이 현재 민주당 대표가 아니라면 어떨지 상상해 보시라. 민주당도, 나라도 이렇게 제자리 맴맴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가 57%나 되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이 30%대 초반(1월 둘째 주 갤럽 여론조사)에 머물 리도 없다. 요컨대 이재명이 당 대표로 있는 한, 다수 국민은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민주당이 지자체장 시절 비리 의혹이 덕지덕지한 이재명에게 ‘접수’당해 꼼짝 못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재명은 민주당 홈페이지에 “계파도 학벌도 지연도 없이 정치를 시작했기에 오직 국민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렇게 성남시장으로, 경기도지사로, 대선 후보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으로 국민이 저를 삶을 바꿀 도구로 써주셨다”고 썼다. 사실관계가 틀렸다. 2010년 그가 민주당 후보로 성남시장에 당선된 데는 이재명의 성남시민모임 활동과 김미희 민주노동당 시장 후보와의 단일화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2013년 9월 성남시의원 정용한은 시의회에서 “이재명 시장이 김미희 (통진당) 의원을 인수위원장에 앉히고 인수위원회에 종북 세력인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다”고 발언했다. ‘공동 정부’ 약속 때문이다. 시장 시절 이재명이 경기동부연합과 통진당 세력에 넘긴 행정 권한이나 이권 사업 등을 보면, 성남시는 민주당의 당적을 가진 이재명을 통해 엉뚱한 세력에 접수됐고 이재명은 그들의 도구가 아니었나 싶다. 검찰이 이재명과 ‘정치적 공동체’라고 규정한 전대협 출신 정진상은 성남시민모임에서 만난 사이다.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때부터 이재명을 도운 이재명의 측근 김용은 한총련 정책위 지도위원을 지낸 운동권 핵심이었다. 김용이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 간첩단 일심회와 왕재산 사건의 활동가 등과 연관된 종북라인 관리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재명이 이 모든 걸 알고도 그들의 도구가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영악한 이재명은 도구에 머물지 않았다. 소년공 출신 인권변호사로서 ‘변방 장수’가 됐다는, 기득권에 맞서는 이미지와 사이다 발언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낙마 이후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민주당 접수에 성공했다. 그가 2020년 7월 16일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받은 이틀 후 ‘자주통일충북동지회’는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에 “이재명 지사가 민주·진보·개혁 세력 대선 후보로 광범위한 대중 조직이 결집되도록 본사에서 적극적 조치를 취해 달라”는 통신문을 보냈다. 이 단체 일부는 2021년 간첩죄로 구속돼 재판 중이다. 당시 북측은 “이재명이 대선 후보로 나서자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회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자체장 시절 이재명이 왜 그리 대북사업에 열성이었는지 의문이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쌍방울의 대북송금 의혹, 쌍방울 사내이사 출신이 회장이던 아태평화교류협회가 ‘이재명 대북 코인’이라며 팔았다는 가상화폐 의혹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어제 이재명은 “검찰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편파적으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주장했다. 턱도 없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당 대표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이 이재명이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이재명이) 여의도와 국가 정치에 국정의 에너지와 공간을 잡아먹어 당의 리스크를 넘어서 국가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이 계속 대표 자리에 앉아 권력을 남용하면 그는 민주당을, 우리나라를 까부수는 도끼가 될 수도 있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초한전(超限戰)을 중공만 하고 있겠느냐는 점이다. 공산독재정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중공에서 배운 초한전을 우리에게 펼치고 있는지 주시할 때다.’작년 말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를 놓고 쓴 ‘도발’을 이렇게 마무리하면서(악마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 중국 비밀경찰서처럼) 나는 생각했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에서 자유세계를 대상으로 펼치는 공작이 이제야 드러났다. 그럼 북한 통전부는 ‘자기네 밥’ 같은 남한을 놓고 놀고만 있겠나? 아니나 다를까. 전임 문재인 정권 때는 꼭꼭 숨어있던 사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민중자주통일전위’를 만든 경남 창원의 부부 반정부단체 활동가, 북한 공작원과 접선 뒤 진보정당과 농민단체 등을 포섭해 ‘ㅎㄱㅎ’(조국통일 한길을 수행하는 한길회)을 조직한 진보정당 전직 간부 등이 국가정보원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다.● 문재인 복심도 간첩 사건의 실체 인정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북한 인사와 접촉한 뒤 정치인 보좌관 시절 북한에 난수표(암호문) 보고를 했던 정치권 인사도 내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다. 북한 드론이 대통령실 상공을 뚫기에 앞서 북한 지령은 이미 국회를 뚫었다는 의미다.더불어민주당 의원 윤건영의 반응이 놀랍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그는 12일 “최근에 보도된 간첩 사건은 최소한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들여다보고 수사해 왔던 사건들”이라고 했다. 좌파가 흔히 주장하는 ‘간첩 조작’이 아니라 실체가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윤건영은 왜 이 시점에 윤석열 정부가 요란하게 수사하는지, 정치적 이용을 하는 게 아닌지를 되레 의심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문 정권 때는 대체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기에 간첩이 활개 치는 걸 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투쟁, 간첩이 하는 일탈북자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간첩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언을 했다. 김정은 시대 간첩의 기본 사명은 단순한 정보수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이라는 거다. 김정은 집권 이후 대남 공작부서를 확대 개편해 공작 영역도 경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투쟁, 조직 설립, 합법 및 비합법 투쟁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벌일 때마다 반미 등 정치구호를 외치고 일부 세월호 단체가 지원금으로 북한 김정은 찬양교육을 벌인 것도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느냐.” 태영호 의원이 던진 의문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단체들은 문 정권 5년간 진보정당을 넘어 국회, 청와대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왔다”고도 했다.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재인은 대통령 시절 북한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보증인처럼 거듭 확인했다. 개뿔이었다! 김정은이 2022년 핵무기 개발은 자위용 아닌 선제타격용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듯, ‘남조선혁명을 통한 전조선혁명’이라는 김정은 왕조의 최종목표는 변한 적 없다.● 문 정권에 손 내민 김정은의 통일전선전술이 무서운 의도를 감추기 위해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 통일전선전술이다. 주적을 타도하는 데 자파세력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때 필요한 동조세력을 획득하고, 그들과 잠정적 동맹체를 형성해 투쟁하는 전술 말이다. 핵심은 기만술이다.그러고 보면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우리 민족끼리’를 수차 언급하며 문 정권에 대화 제스처를 보인 것부터가 통전술이었다. 반색한 문재인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미국과의 회담을 주선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대한민국을 무장해제하듯 김정은 집단의 요구도 들어줬다.2020년 4월 총선에서 대북 유화적 민주당이 대승한 뒤 북한은 제도권과 직접 교감하는 합법적 방법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상층부 통일전선을 구축할 것이라고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밝혔다(2020년 논문 ‘북한 대남통일전략의 추진구도와 전개양상’). 그 결과가 이번 수사를 통해, 태영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난 꼴이다.● “민주당은 조선로동당 1중대냐, 2중대냐”간첩 잡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 정권 때 통과된 법에 따라 2024년부터는 경찰로 완전히 넘어간다. 해외조직이 없는 경찰에서 북한 공작원과의 해외접촉 같은 수사는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익히 알고 만든 법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대공수사권은 국정원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민주당은 결사반대다. 그래서 태영호가 따져 물었던 거다. “도대체 간첩이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두려는 민주당은 조선로동당의 1중대냐 2중대냐”고.우리 신문 단독 보도에 따르면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단 활동과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한마디로 나라가 넘어갈 뻔했다”는 거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는 ‘우리 민족끼리’ 같은 통전술에 넘어가는 문 정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다수 국민의 분노와 각성이 기여했다.윤 대통령이 작년 10월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라며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나흘 뒤 문 전 대통령은 “책을 추천하는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콕 찍어 추천했다. “32년 전 ‘빨치산의 딸’을 기억하며 읽는 기분이 좋았다”고도 했다. 이러다…개헌으로 대통령 중임제가 되면 문재인 대선 후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민족끼리에 또 넘어가면 나라가 넘어갈 수도 있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구멍가게만한 기업도 사람이 바뀌면 달라진다. 심기일전(心機一轉·어떤 동기가 있어 이제까지 가졌던 마음가짐을 버리고 완전히 달라짐). 이걸 하라고 연말이면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인사를 하고, 5년마다 나라에선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윤석열 정부 출범 여덟 달이 지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따지면 열 달. 사람으로 치면 없던 아이도 낳았을 기간이다. 성과는… 아직 모른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청문회와 북한 무인기 침투, 그리고 대응을 보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공직사회는 1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취임 석 달도 안 된 경찰청장이 만취?윤희근 경찰청장은 이태원 참사 청문회에서 “주말 저녁이면 저도 음주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총수도 휴무일 술 마실 권리가 있다는 인권선언! 하지만 경찰청장 된 지 3년쯤 됐으면 모른다. 임명된 지 석 달도 안 된 초대 경찰청장이 주말이라고 지방에서 만취 상태로 잠든다? 그것도 MZ세대에는 크리스마스보다 더 핫한 핼러윈데이에?취임 다음날 윤희근은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의 허위경력 의혹과 이준석 국민의힘 성접대 의혹 등을 수사해온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을 서울 성동경찰서장으로 옮기는 등 정권이 원하는 총경 전보인사를 단행한 경찰 총수였다. 위에는 빠릿빠릿하되 국민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난 관료의 특징이다. ‘공무원은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도 항상 소재파악이 가능하도록 연락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칙이 있다. 경찰 총수부터 이 복무규정을 어겼다. 한마디로 공직기강이 빠진 거다. 그러니 112신고가 빗발치는데도 류미진 당시 서울청 상황관리관이 “112상황실 아닌 자기 방에 머무는 게 관행”이라고 했던 거다. 현장 책임자인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구급대를 지원해 달라”는 무전을 듣고도 “흘러가는 무전 정도로 생각했다”고 하는 거다.기사 없으면 꼼짝 못하는 정부혁신 주무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 총애를 받는 장관은 이렇게 행동해도 된다’를 보여주는 연구 모델이다. 대통령 앞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도 국민 앞에선 가장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장관이라고 단언한다(유시민도 장관 때는 그러지 않았다).작년 11월 8일 국회 예결위에서 이상민은 “최종 컨트롤타워는… 재난 구조라는 면에서는 제가 맞다”고 했다. 그러고도 작년 말 국조에서 이태원 참사 당일 첫 보고를 받은 뒤 8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는 지적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라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했다. 늦게 간 이유는 더 황당하다. 일산에 사는 운전기사가 자신의 강남 자택까지 와서 이태원 현장에 태워가길 기다렸기 때문이란다(정부혁신을 맡은 책임자로서 참 비혁신적 언행이다).참사 현장에 있던 유해진 소방관은 청문회에서 “너무 외로웠다. 통제가 안 돼서 소방관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소방청장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안 오면 그만이다. 중앙사고대책본부는 명령할 수 있다. 행안부 장관이 설치하면 된다. 그걸 이상민은 하지 않았다. “재난은 종료됐고 중대본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이유다. 이런 주무장관에 대해 경찰 특수본은 조사 한번 하지 않고 수사를 끝낼 모양이다.용산 대통령실 상공만 중요한가? 국민 보호는?관료들의 무책임한 대응이 의도적일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징글징글하게 이용된 ‘세월호’로 인해 이번에도 휘둘릴 수 없다는 경계심도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관료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면 심각하다. 인사권자에만 잘 보이면 그만, 국민에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자세 말이다.작년 12월 26일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침투 사태를 보자. 당초 용산 대통령실 상공 침투를 부인하던 군 당국이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통령실 보호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용산 이북 지역, 나머지 국민은 보호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태원 희생자들처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군의 비정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문재인 정권 때 ‘청와대’처럼 건물인지, 참모인지 내각 머리 꼭대기에 서서 정책방향을 발표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출범한 지 여덟 달이 되도록 뭘 했기에 여태 전임 정권 탓만 하는지 믿음이 안 간다.공직자 감찰조사로 관료개혁 되겠나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강조하며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평생 관료로 살아온 윤 대통령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기득권 유지에 목맨 집단으로 관료보다 더한 집단이 또 있는지 말이다. 3대 개혁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먼저 관료가 달라져야 국민이 믿고 따른다는 얘기다.24인의 국가 원로·학자들이 고뇌에 찬 토론을 모아 최근에 낸 책 ‘한국의 새 길을 찾다’에서 강조한 것도 공공개혁이다. “국가·사회적 창조와 혁신에는 우선순위가 있다”며 “제일 먼저 손대야 할 부분은 공공부문”이라고 못 박았다. 정치는 흉물이 됐고, 관료는 잘못된 정치에 굴종해 권력을 누리기만 하며 책임은 지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정부 부처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103명 중 현 정부에서 임명된 96명을 분석한 결과 관료 출신이 절반인 48명이었다. 노동, 연금,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관료개혁은 필요하다. 3대 개혁은 국민의 협조가 절실하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관료개혁은 윤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음악 한 소절이 머릿속을 맴도는 날이 있다. 국민교육헌장이 문득 떠오른 날도 그랬다. 1968년 반포됐고 20년 전인 2003년 공식 폐지됐지만 그 시절 국민학교 다닌 사람은 안다. 얼마나 혼나면서 외웠는지. 그리고 암기의 중요성도. 내용을 다시 보니 알겠다. 틀린 말이 없다. 물론 국가주의적이라고 비판도 받았을 터다. 그러나 삼신할머니 랜덤으로 태어났어도 우리가 다른 나라 아닌 대한민국에 태어난 데는 이유가 없을 리 없다. 나는 축구에 관심 없지만 영국서 뛰는 손흥민까지 포함해 우리 축구팀의 월드컵 16강 진출이 2022년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건 맞는 말이었던 거다. 내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전임 문재인 정권에는 못내 못마땅한 듯하다. 특히 2021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추도사를 보면, 문 전 대통령의 정체성을 알 수가 없다.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당시 국가권력은 제주도민에게 ‘빨갱이’ ‘폭동’ ‘반란’의 이름을 뒤집어씌워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했다. 아무리 제주에 두 개의 역사가 흐르고 국가 폭력은 단죄해야 마땅하대도, 4·3의 본질은 남로당 반란이다. 그 과정에서 선량한 도민 다수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제주 출신 소설가로 4·3을 겪었던 현길언은 ‘정치권력과 역사 왜곡’에서 “4·3은 남로당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이라고 썼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좋은 나라를 꿈꿨던 제주도의 4·3”이란다. 김일성의 북한이 좋은 나라이고 대한민국은 완전한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건가. 그가 2일 경남 양산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했다. 기이한 일이다. 설마 남로당 박헌영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아니겠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는 건지 궁금해 2018년 개정한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을 찾아봤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민족운동의 전개’ 단원 학습요소에 ‘다양한 민족운동의 전개’가 있다. 무장투쟁, 의열투쟁, 실력양성운동과 함께 사회주의운동이 들어가 있다. 성취기준 해설에는 노선별 독립운동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사회주의가 민족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는 과정을 이해하도록 명시돼 있다. 특이하지 않은가. 왜 굳이 노선별 독립운동을 알아야 하는 건지. 조선의용대, 광복군, 신국가 건설 구상도 광복을 위한 노력의 학습요소로 적혀 있었다. 이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금성출판사 자습서엔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병력이 광복군에 편입됐다거나 옌안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선독립동맹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했음이 노란 형광펜으로 강조돼 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 동일 단원 성취기준에는 ‘국내외 민족운동 흐름을 이해하고 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추구하였음을 분석한다’고 돼 있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연설했다. 금성출판사 자습서로 공부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해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에 대해 “마음속으로나마 최고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했던 반면, 2020년 7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6·25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홈페이지 정보란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명시하게 했던 대통령이었다. 우리는 그런 나라를 꿈꾸고, 그런 역사전쟁을 하고, 그런 정체성을 지녔던 대통령을 두었던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2018년 내놓았던 개헌안에서, 아이들 교과서 속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왜 굳이 ‘자유’를 빼려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가. 11개월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40년, 50년 전에 한물간 사회혁명 이념에 도취돼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 세력을 이어가며 이권세력을 구축하고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과 이권을 다 나눠 먹었다”고 집권세력을 직격했고, 당선됐다. 그 ‘문재명 세력’이 감히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며 지금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30여 년 전 나를 뽑아준 편집국장 댁에 몇몇 선배들과 세배를 갔을 때다. 여기자는 한해 한두 명쯤 뽑히던 그 추운 시절(지금은 거의 절반이다), 국장이 “기자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를 보는 기자와 안 보는 기자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걸 들여다보기 시작해 연말이면 이 잡지가 내놓는 새해 세계전망을 들여다보는 게 나만의 연말행사가 됐다(작년 말 이코노미스트는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했다).1년 전 ‘50억 벌어 교수직도 던진 최성락 투자법’이라는 책으로 대박 낸 최성락 전 동양미래대 교수도 젊은 날 비슷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이코노미스트’가 본 본 근대조선’이라는 제목에 꽂혀 그의 책을 샀다. 서문을 보니 대학 때 고품격 영어잡지를 봐야 영어실력이 는다는 영업사원에 홀려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100년 전 조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가 굳이 일본 국립도서관까지 찾아 이코노미스트를 뒤진 건 1843년 창간된 이 잡지가 객관적 시각으로 사건을 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엔 방관자가 사물을 냉정히 바르게 본다(傍觀者淸)는 격언도 있다던가. 청일전쟁 러일전쟁 예견했던 이코노미스트안타깝게도 약소국 조선이 단독으로 다뤄진 기사는 없다. 중일 러일 등 강대국 관계의 대상으로 언급될 뿐이다. 제목이 Korean War인 1894년 9월 24일 기사도 청일전쟁을 다룬 내용이다. “일본군을 목격한 사람들은 장비와 조직의 정밀함을 언급했으며 함대의 상태도 최상인 점에 주목했다”며 일본의 승리를 전망했다(조선에선 죄 청나라 승리를 믿었다).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광무개혁을 시작했던 1898년 1월 8일 기사는 슬프기 짝이 없다. “러시아는 조선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과 완전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거다. 1899년 말부터 ‘극동지역에서의 소문’이라는 제목으로 5년 후의 러일전쟁을 예견한 것도 놀랍다. 1902년 1월 30일 영일동맹을 맺은 뒤엔 “영일동맹은 영국과 일본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2월 15일).1910년 한일병합 기사가 단신 수준이라는 사실은 허망하다. “러일전쟁으로 조선을 손에 넣은 뒤, 일본은 조선에 자신들의 사법과 행정 체제를 밀어붙였다. 이제 일본은 명목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대륙의 권력자가 됐다.”(1910년 8월 27일) 국제정세에 눈감고 권력다툼에 골몰했던 나라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일본 식민사관에 따르면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한 나라였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에 따르면 조선 황실은 국제정세에 무지해 망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삼국간섭으로 랴오둥 반도를 청에 반납했어야 했던 일본이다. 120년 전 임인년(壬寅年) 일본이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과 맺은 영일동맹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세계적 사건이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진작부터 러일전쟁을 예고했듯 국제정세에 밝은 사람은 이 동맹이 일본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볼 수 있었음에도 고종실록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그 무렵 고종실록에 영국이 언급되는 건 딱 하나, “광무 6년 양력 1월 30일(공교롭게도 영일동맹을 맺은 바로 그 날이다) 이재각을 특명대사로 임명하여 영국 황제의 대관식에 참가하게 하다”는 것뿐이었다.차라리 호남 선비 황현이 낫다. 그가 쓴 ‘매천야록’ 1902년 1월엔 “시찰사 파원(派員) 붙이들을 소환하도록 하고, 음직(蔭職;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해 맡은 벼슬)으로 차함(借啣;실제 근무하지 않고 벼슬 이름만 가지던 일)한 자들을 관보에 게재하지 말도록 하였다. 이 때에 영국과 일본이 협조하여 동맹을 맺고 우리나라의 내정을 관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조정의 의론이 흉흉하였으므로 이러한 조칙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유언비어일지언정 지식인은 영일동맹을 들어봤다는 얘기다. 매천야록에는 이 같은 집권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권력다툼에 대한 비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것은 조선의 못난 집권층이었던 거다. 미스터 션샤인과 애기씨의 불꽃같은 사랑 나라가 망했다고 조선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지난 몇 년 간 이뤄진 가혹한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는 원래부터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은자의 나라(Hermit Kingdom) 국민에게서 반항할 만한 기질과 여력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1910년 8월 27일)이 대목을 보는 순간 나는 2018년 방송된 김은숙 극본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떠올렸다. 국가보훈처가 얼마 전 드라마 속 유진 초이 역의 실존 인물인 황기환 선생을 2023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진 초이가 극중 남장 스나이퍼이자 의병인 애기씨 고애신과 불꽃사랑을 한 것이 1902년부터 1907년까지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기였다.물론 드라마이고 고증에 문제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義兵)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는 포스터 문구는 아직도 가슴을 친다. 의병은 있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 지금도? 한중일 문명비평서 ‘풍수화’(風水火)에서 김용운은 “한국의 원형에 귀족의 책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반면 일본 원형에는 의병이 없다”고 썼다. 달리 말하면 일본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는 의미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를 시작하고, 120년 전 영일동맹을 맺고(일본은 늘 최강대국과 동맹을 맺어 국익을 꾀하는 나라다), 국제정세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해 나라를 키우고 지켜온 데는 이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다.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제정세에 무지한 채 한물간 이념에 매달려 죽어라고 근대화를 막던 위정척사파의 후예, 86운동권 정권은 2022년 임인년 대선에서 마침내 국민심판을 받았다. 그러고도 거대야당이랍시고 국회권력을 움켜쥐고는 당 대표 방탄에 골몰하며 국정발목이나 잡는 의원들 몰골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찾을 수 없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슬프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보여주지 못했다. 능력주의 인사라지만 마치 실력 있고 깨끗한 인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양 고관들은 여전히 당당하다. 이러다 ‘아빠 찬스’를 타고 나야 성공할 수 있는 신분사회로 굳어질까 겁난다. 앞으로 4년 반, 윤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만 해준대도 나라 분위기는 달라진다.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존재한다!” 외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깔딱 고개’를 넘어 품격사회로 진화할 것이다. 120년 전 임인년처럼 또 미스터 션샤인이 달려와 “귀하는 조선을 지키시오. 난 귀하를 지킬 터이니…” 해주길 고대할 순 없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맛없는 짜장면은 없다. 불어터진 짜장면은 좀 문제가 있지만(그건 면의 문제이지 짜장면의 죄는 아니라고 본다) 짜장면은 냄새만 맡아도 먹고 싶어지는 국민적 최애 외식메뉴다. 죄 없는 짜장면을 죄스럽게 만든 서울 송파구 한 중국음식점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날 모양이다. 이 중국집이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가 아닌지, 방첩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최근 보도다. 동작 참 늦다. 스페인의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중국 공안당국이 해외 54개국 110곳에 비밀경찰서를 운영 중’이라고 폭로한 게 9월과 이달 초였다. 한국 건은 9월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민주국가에 다 설치돼 있을 정도면 우리 공안당국도 진작 확인했어야 했다. ● 미국과 유럽선 발각됐는데 중국은 부인 물론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부인한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 별도로 설치한 비밀경찰서는 없다”는 거다. 믿기 어렵다. 네덜란드는 10월 26일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 불법 중국 해외경찰서가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FBI국장은 11월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는 중국 비밀경찰서 존재를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 남의 나라에서 중국 공안이 경찰권을 행사하는 건 주권침해다. 중국인 상점이나 식당처럼 위장해놓고 중국에 반체제적, 비애국적 중국인들을 강제 송환시키는 등 불법행위를 한다. 애들이 교육을 못 받게 되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식의 ‘북한식 수법’으로 5개 대륙에서 23만여 명을 중국에 돌려보냈다. 그러자면 자국민 감시를 해야 한다. ‘중국특색의 감시’가 이 땅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게 무섭고 불쾌하다. 중국인만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비밀경찰서는 중국공산당(중공) 통일전선공작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남의 나라에 붉은 영향을 미치려 든다. 2020년 초 총선을 앞두고 “나는 개인이오”라는 기이한 문구가 일으켰던 ‘차이나 게이트 의혹’을 기억하시는지? ● 비밀과 기만은 중국공산당의 철칙 당시 나는 미국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 보고서를 도발에 소개하며 우리나라만 빼놓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친중(親中) 문재인 정권은 내 글을 무시했고 실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공산당 철칙이 비밀과 기만 아니던가. 중공 해외통전 공작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것이 초한전(超限戰)이다. 한자를 빼고 쓰면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 시조 유방의 전쟁을 다룬 초한전쟁(우리에겐 고우영이나 이문열의 楚漢志로 유명한)과 헷갈릴 듯한데, 그건 아니다. 중공이 2000년대 이래 군사안보와 대외전략 추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신전략 개념이다. 초한전이란 중국특색의 대전략 수행방법론을 의미한다(이지용 계명대 교수 2021년 논문 ‘중국의 초한전 전략과 실제; 해외통전 전개 사례를 중심으로’). 1999년 당시 인민해방군 공군대령이었던 차오량, 왕샹수이가 쓴 ‘초한전; 세계화시대 전쟁과 전법 상정’에서 나왔다. 미국서 출판돼 나온 책의 부제는 더 무시무시하다. ‘Unrestricted warfare; China‘s Master Plan to Destroy America’. ● 손자+마오쩌둥+IT+악마성 = 초한전중공은 일단 아시아 지역패권을 잡고, 이를 기반으로 집권 100주년인 2049년까지는 세계 패권을 장악한다는 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혹시 몰라도 중국이 제 실력으로(하드파워든, 소프트파워든) 미국을 꺾고 세계정복을 할 수 없다는 건 중공도 익히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짜낸 전략이 초한전이다. 기실, 전쟁의 궁극적 목적이 뭔가. 적국을 굴복시켜 아국의 의지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 아닌가. 그 수단이 반드시 무력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무조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미디어, 사이버 공간 가릴 것 없다. 전시와 평시, 법과 규칙, 양심이든 뭐든 따질 것도 없다. 전쟁과 비전쟁의 경계를 뛰어넘는 신개념 전쟁이 바로 ‘초한전’의 핵심이다. 이렇게 개념만 바꾸면 전쟁은 갑자기 너무 쉬워진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악용하는 것이야말로 초한전의 극강 마력이다. 투자자문사 설립, 기업 인수합병, 컨설팅업체에 퇴직 관료 군인 영입 정도는 박수 받으며 한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로비와 뇌물로 적국 정치인을 부패시키고 정책 바꿔놓기, 기술 탈취와 저가 상품 공세로 경제교란 시키기, 협박과 선전선동 가짜뉴스로 혼란에 빠뜨리기, 마약이나 범죄조직 침투시켜 뒷골목까지 피폐하게 만들기, 짱깨스러운 친중 인사 동원해 반중 행태 검열하기…중국 공안의 비밀스러운 활약 역시 초한전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 이미 중국은 세계와 초한전 벌이는 중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을 최상으로 본다. 여기에 모택동의 인민전쟁론은 물론 21세기 최첨단 정보 테크놀러지와 중국특색의 비밀과 기만의 악마성까지 교합해 적들을 스스로,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드는 ‘초한전’이 중국의 신개념 전쟁이면…중국은 이미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 중이라고 봐야 한다. 2023년 혹은 시진핑 3기 집권기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인가 아닌가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국내의 중국집 한두 곳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10여년부터 ‘가리봉동 왕중왕’으로 유명했던 그 중국집 운영자 A 씨는 숱한 한중관련단체장 역할을 하면서 2020년 말 여의도 국회의사당 코앞에 지점을 내고 정치인들과 친교까지 다졌다. 지자체장들이 경쟁적으로 나선 중국 지방과의 자매결연은 물론 대학마다 설치된 공자학교도 초한전과 무관치 않다. 전임 문재인 정권이 국민적 심판을 받은 데는 중국과 공동운명체를 자처하며 초한전을 방치한 친중 행각도 작용했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초한전을 중공만 하고 있겠느냐는 점이다. 공산독재정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중공에서 배운 초한전을 우리에게 펼치고 있는지 주시할 때다. 북한에서 날아왔던 드론은 물론이고!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지난 주말, 120년 만에 열린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회를 보았다. 1902년 임인년은 고종 황제 등극 40년과 망륙(望六·51세)의 겹경사 해였다. 그해 음력 11월 사흘간 경운궁에서 거행됐던 임인진연(壬寅進宴)을 국립국악원이 ‘임인진연의궤’ 기록대로 재현해 눈이 호강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의 시점으로 보면 좀 민망하다. 1897년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해 위엄을 떨쳤다고는 하나 3년 뒤 그러니까 1905년이면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뺏길 위기 상황이었다. 드라마처럼 고종이 환생해 잔칫상을 받았다면 “40년 다스림에 억조의 백성이 즐거우니” 같은 치사와 “장하신 태평성대 무엇으로 보답하리” 같은 가무악 가사가 죄스럽지 않았을지 온몸이 오글거렸다. 당시 유라시아에서 대영제국과 러시아제국이 벌인 그레이트 게임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으로 바뀌어 전개되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그러나 고종은 개혁은커녕 전제군주가 통치제도의 상위에 있다며 군주권만 틀어쥐었고, 지배층은 권력 다툼에 골몰하고 있었다.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사람 볼 줄 모르고 아첨 좋아하는 군주와 양반들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비판이 슬프게 이어진다. 1900년 기록 중에는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가 한국을 나누어 갖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신문사 사장 남궁억이 이러한 사실을 (황성)신문에 실어 알렸다. (의정부 참정) 조병식이 민심을 놀라게 한 것이라 하여 구속시킬 것을 상주하였다”는 대목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층이 비판적 언론을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국권을 빼앗겼던 대한제국과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비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 “수시로 언론과 소통하겠다”며 용산 집무실 이전을 강행했던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래 놓고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나 20일 청년 200명과의 간담회처럼 ‘엄선된 국민’하고만 소통하며 흡족해했다는 뒷말엔 임인진연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권력의 속성일까.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과 장관의 소통을 보좌하도록 내각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 정부’가 “부처 위에 군림하며 권력만 독점한다”며 수석·보좌관회의가 국무회의보다 주목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엄연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윤 정부의 수석비서관회의 기사와 국무회의 기사를 동아일보 검색 시스템으로 찾아보면 수석비서관회의 기사가 좀 더 많다. ‘대통령실’과 ‘윤석열’을 키워드로 넣으면 5배는 더 많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포인트 인하로는 사실상 법인세 인하에 따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는 동아일보 17일자 기사를 보면 ‘대통령실’이 부처 위는 아닐지 몰라도 여당 위에 군림하는 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을 없애고 대통령 부인은 내조에만 전념토록 하겠다고 약속한 기록은 1년도 지나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는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비자 문제 해결을 요청하고, 20일 간담회에선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환경은 인류가 지켜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발언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는 모습이다.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던 윤 대통령이 “당원 투표 비율 100%” 당 대표 경선 룰에 관여하고, 윤핵관 먼저 관저에 초청하는 ‘관저 정치’를 하는 것은 전제적 군주를 연상케 한다. 그리하여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에서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수 있다면 유감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지지층만이 모인 임인진연 같은 행사에나 참석해 “장하신 태평성대 무엇으로 보답하리” 같은 소리만 듣는다면, 윤 대통령은 현실을 제대로 보고 국운을 개척하기 어렵다. 정녕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면 차라리 윤 대통령이 퀵서비스 배달 현장이라도 찾아가 생생한 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던 윤 대통령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다지만 ‘날리면 파문’ 이후 1층 프레스센터 앞에 칸막이를 친 용산, 참모들로 인의 장막을 친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은 벌써 군주적 대통령으로 변한 듯하다. 대통령이 진정 민심을 알고 싶다면, 매일 악플까지 챙기며 국민과 만나는 기자들과 까칠한 신년회견을 갖는 게 백번 낫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시작도 전에 파열음이 요란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일요일인 11일 처리함으로써 국민의힘에 ‘합의 파기’ 명분을 안겨준 거다. 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3당 국정조사 특별위원들은 13일 국민의힘을 빼고라도 국조를 진행하겠다는 듯 “오늘 중으로 국정조사 복귀 의사표명을 하지 않을 시 국정조사 일정과 증인 채택에 대한 모든 권한을 야3당에 위임한 것으로 이해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국정조사에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안전한 국민, 일 잘하는 정부’라고 홈페이지에 써놓은 이상민을 감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선(先) 진상조사 후(後)문책’ 방침을 수없이 밝혔다. 충암고 후배라고 싸고도는 모습이 질투가 날 만큼 곱지 않지만, 비판이 나올수록 버티는 게 우리 대통령의 청개구리 스타일인 걸 어쩌랴.● 여야 모두 국정조사 의지는 있나 그렇다면 야당 전략도 달라야 했다. 이상민을 국조 청문회 증인으로 세워놓고 조목조목 죄상을 밝혀내 대통령이 장관을 당장 자르지 않을 수 없게끔 해야 한다는 얘기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들에게 이상민의 법적 책임을 밝혀낼 능력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국힘이 국조 파투를 은근히 바라는 듯한 모습도 곱지 않긴 마찬가지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듯 국조특위 위원 7명은 11일 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조 보이콧 선언을 하고 싶어 죽겠지만 새해예산안이 통과될 때까진 일단 참는 눈치가 역력했다. 야당의 국조 공세가 정치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날벼락 같은 재난으로 생때 같은 젊은 목숨을 잃었으면, 그 발생과 대응과정에서 행정부 잘못이 없는지 공론화하는 것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할 일이다. 여당은 야당에서 정치쇼로 몰고 가지 못하도록 제어하며 행정부의 잘못을 따져야 마땅하다. 대통령과 행정부만 싸고돈다면 그게 ‘용궁’ 시녀이지 어디 집권당인가. ● 이태원 수사하는 건가, 덮는 건가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보듯,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과 치안능력은 남부럽지 않다고 믿는다. 이상민 역시 행안부 홈피 장관 인사말에다 “행정안전부는…(중략)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국정운영의 중추부처”라고 자랑해 놨다. 행안부가 제 할일을 잘했다면…(이번엔 말줄임표)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민은 참사 다음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라는, 역사에 남을 발언을 했다. 집권당은 이런 무식하고 무책임한 안전주무장관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해임건의안 거부를 건의했다. “장관 하나 지키지 못하느냐”는 대통령 진노에 뒤늦게 아차 했는지 몰라도(어쩌면 관저에 불려가지 못할까 우려해서인지도) 국민은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수사를 잘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13일)로 45일째. 참사 당일 밤 어슬렁거리며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던 현장책임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한 구속영장조차 기각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경찰 잘못을 떠먹이듯 찍어줬음에도 못 잡아낸 걸 보면, 능력부족인지 의지박약인지 제 식구 봐주기인지 경찰에 경찰 수사를 맡긴다는 것부터 우습기 그지없다. 그 수준으로 이상민 같은 윗선 수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검찰 출신이 대통령돼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나라인 거다. ● 선진국에선 즉각 의회 내 진상조사위 구성아직 우리에게는 아물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이 남아있다. 무슨 특별조사 소리만 나오면 경기(驚氣)가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선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정당 간 합의에 의해 즉각 의회 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세월호 3년 후에 펴낸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라는 논문집에서 이재열 서울대 교수가 밝힌 내용이다. 세월호의 경우 90일간 국정조사 말고도 국가기관 조사만 8년간 아홉 차례나 했지만 진상규명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물론 있다. 하지만 맞아 죽을 각오로 쓴다면(그리고 강원택 교수의 논문 한 대목을 굳이 인용하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대형 해상 재난 사고였다. 선장부터 청해진해운, 해경과 규제기관까지 각 단계마다 ‘경계’를 넘자 시스템의 여러 다른 문제와 결합해 침몰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책임은, 진실은 오직 한가지라고 규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패로부터 배우기 위해선 조사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는 ‘외재화’가 중요하다고 이재열 교수는 강조했다. 야당의 ‘비난의 정치화’를 막으면서 국힘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진상규명 보고서를 토대로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적 처방을 이끌어낸다면 우리사회는 좀더 나아질 수 있다. ● ‘세월호 정치화’…정부실패 감추려던 靑 책임이었다 ‘왜 세월호 참사는 극단적으로 정치화 되었는가’를 쓴 박종희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수세적 태도가 광우병 사태의 재현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공격적 야당, ‘외부세력’의 정치적 선동도 없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의 ‘극단적 정치화’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참사대응 과정에서 정부 실패를 감추려 했던 청와대와 행정부에 있다는 거다. 아프게 돌이켜 보면, 사고 당일 책임 논란을 불러온 ‘대통령의 7시간’ 동안 비선실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검색 절차 없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고 대통령의 중앙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2018년 3월 박영수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결국 당당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대통령은 진상 규명을 원치 않았고, 여당도 제도권 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게 ‘사회적 이유와 정치 갈등’을 쓴 강원택 교수의 지적이다.세월호를 되돌아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다시 대형 참사의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이번 국정조사에선 ‘당파적 정치화’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그리고 대통령실도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작년 이맘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2022년 세계전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예측했다. 12월 첫 주 갤럽 여론조사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36% 동률이었다. 이 잡지는 “윤석열이 현 정부의 부진한 백신 보급률에 대한 대중적 불만의 혜택을 받으면서 청와대의 자리를 빼앗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나는 2022년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대결이라면 ‘윤석열의 민주주의’가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의 대결은 2022년의 10대 트렌드 중 이코노미스트가 첫손에 꼽은 것이었다. 물론 예로 든 것은 한국의 대선 아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다. 집권당의 무덤이라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종신 집권을 코앞에 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놓고 보면, 그때만 해도 미국이 훨씬 불안했다. ‘서방이 쇠망(衰亡)한다’고 믿는 시진핑은 10월 당대회에서 “21세기 중엽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사실상 미국을 꺾고 패권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주도 안 돼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반체제 운동으로 번질까 두려워진 중국은 마침내 ‘위드 코로나’로 돌아서고 말았다. 독재가 슬픈 점은 근본적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고지도자 주변이 옛 소련처럼 충성파뿐이기 때문이다. 2023년 전망은 중국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중국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희망찬 전망은 사라졌다. 민주화될 것 같지도 않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백지 시위를 벌인 청년이 다음 날 공안에 잡혀가 며칠째 소식도 없다는 기사를 전했다. 2017년 12월 방중한 자리에서 “양국은 함께 번영해야 할 운명공동체”라고 했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새삼 소름이 돋는다. 반면 11월 미 중간선거에선 민주당이 뜻밖에 선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과 ‘미친 팬덤’에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경제보다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이는 우리의 민주당에 주는 시사점이 작지 않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법적 문제도 한둘이 아닌 상태다. 이재명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믿는 개딸들과 일부 의원들이 제발 꿈에서 깨주기를 바라는 바다. 미 백악관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지구적 투쟁의 중심’이라고 규정한 우크라이나의 선전(善戰)도 민주주의에 희망을 준다. 한반도 반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우리 대선에서도 이슈였다. 이재명은 TV토론회에서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충돌했다”고 주장해 외교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가 “말로만 하는 종전선언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도 기억에 생생하다. 2023년 세계의 이목은 우크라이나에 집중될 것이다. 교착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승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확신했다. 천연가스를 무기화함으로써 서유럽 민주국가 연대를 깨뜨리려는 푸틴의 시도는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전투로 가장 강하게 단련된 군대를 보유한 서구지향적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고맙기까지 하다.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 크리미아반도는 한반도와 묘하게 닮았다. 170년 전 러시아는 크리미아 전쟁에서 패배하자 동방의 부동항을 겨냥해 한반도 진출을 노렸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조선 개방을 추진했고 1885년엔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는데도 조선은 점령당한 줄도 몰랐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120년 전 일본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었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만큼 국제무대 주역이 됐다. 문 정권은 위기 때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양 선출돼 언론자유와 독립적 사법제도를 무너뜨렸고, 선거제도를 바꿔 20년 집권을 시도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소개했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즉 독재로 가는 공식이다. 윤 대통령이 지금 무너진 자유민주주의를 바로잡는 길을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단, 그 일 또한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자본주의독재, 일당독재, 정실민주주의, 또는 검찰독재 소리를 듣지 않는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문재인 전 대통령이 1일 재임 중 벌어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건 ‘안보 정쟁화, 안보 체계 무력화’라고 했다.# 민노총은 총파업을 발표했다. 언제? 2월 10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화물연대 사태를 예견한 듯 9월 말·10월 초 총파업을 의결한 거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1191명이 지난달 28일 중고교 역사책 속의 ‘자유민주주의’ 표기에 반대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세 장면은 일견 서로 관련 없는 별개의 사건 같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 한번 ‘성공의 맛’을 본 이념과 체제 전복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한 몸이다. 2008년 3·1절 기념식에서 “이제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은 연설했다. 착각이었다. MB를 증오한 좌파는 그로부터 두 달도 안 돼 광우병 소고기 괴담을 퍼뜨리며 촛불시위를 벌였다. 윤석열 정부는 같은 수렁에 빠지지 않겠다는 교훈을 얻은 듯하다.● “이념의 시대는 갔다”는 착각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우리 공무원이 피살되기 3시간 전 북한 해역에서 표류 중임을 보고받고도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때 TV에선 사전 녹화된 ‘한반도 종전선언’ 유엔 연설이 방송되고 있었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10·4공동선언 주요 내용 중 하나다. 노무현이 못했던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등 후속 조치, (북핵과 동행하는 불안한) 평화체제를 이뤄내는 것이 문재인으로선 ‘남쪽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했다는 얘기다.화물연대는 2003년에도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구호를 내걸고 파업을 벌였다. 올해와 같은 구호다. 문 전 대통령은 2011년에 쓴 ‘운명’에서 “화물연대가 파업에 이르기까지 정부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남의 일처럼 논평하고는(그때 그는 민정수석이면서 노동문제도 담당했다) “결국 파업은 합의 타결됐다. 사실은 정부가 두 손 든 것”이라며 “노정(勞政)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측면이 있다”고 고백했다.그런 민노총에 ‘지분’을 주고 집권한 것이 문 정권이었다. 이미 올 2월 민노총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연말 총파업 벌일 것을 의결한 바 있다. 위원장 양경수는 내란선동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과 같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11월 호주 국제노총 세계총회 참석해 “체제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기조연설 했다. 쉽게 말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거다.● 민노총이 꿈꾸는 ‘미국 없는 체제’3일 민노총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과 부산신항에서 화물연대 총파업에 힘을 싣기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가자, 총파업’, ‘단결 투쟁’이 적힌 붉은 머리띠를 메고 “화물안전 운임제 확대하라” “업무개시 명령 철회하라!”를 외쳤지만 기세는 전 같지 않다. 6일로 선포한 총파업이 과연 이뤄질지도 미지수다.연초 민노총이 내다본 2022년 세계정세는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종주국인 미국 패권의 악화’가 출발점이었다. 미국이 저무는 해로 바뀌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패권을 허용치 않는 신냉전 체제가 들어서고 있다고 본다. 중-러, 이란 북한에 남미의 핑크타이드까지 등 반미전선이 다층화되는 상황에 윤석열 정부가 한미 가치동맹을 맺은 것은 중-러 봉쇄령에 돌격대로 앞장서는 것과 같다는 분석이다.그런데 어쩌나. 미국이 저무는 해로 바뀌었다는 건 좌파의 오랜 바람일 뿐이다. 한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대말 미국을 추월한다는 ‘중국몽’이 유행했지만 제로 코비드 정책에서 보듯 공산당 독재와 억압정치는 중국 발전의 장애물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미국 추월은 21세기 중반까지도 어려울 것이라는 ‘깨몽’이 이어진다. 호주 로위연구소, 미국의 경제학자 로런스 서머스에 이어 최근엔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이 경종을 울렸다. 중국의 인구·부채·생산성 등 지표를 종합한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3연임하며 큰소리친 대로 2035년까지 중진국이 될지도 의문이라고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썼다.● 인민민주주의로 통일돼도 괜찮다는 건가미국 패권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판단 아래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외치는 민노총의 전략은…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노총 같은 정세판단을 하는 세력이 민노총뿐이냐는 점이다. 문 전 대통령 때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했던 헌법 개정안이, 그리고 결국 삭제했던 역사교과서가 섬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2018년 2월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 전,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으로 고친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믿고 싶진 않지만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로 통일이 돼도 상관없다는 뜻인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비슷한 일은 역사 교과서에서 고스란히 반복됐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상당수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북한은 미화한 사실이 2004년 국회 국감에서 드러났다. 좌파 학계와 교육계, 지금의 민주당 반발로 그때 못 고친 것을 2011년 MB정부 때 고쳤다. 대한민국 정체성과 관련된 ‘민주주의’ 표기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거다. 2018년 문 전 대통령은 교육과정 집필기준에서 ‘자유’를 빼버렸다. 개헌에서 못 이룬 한을 푼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그걸 되살리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를 하자 똑같은 반발이 일어났다.● 자유민주주의 실천으로 모범 보이길“21세기 냉전의 핵심은 이념과 체제”라고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러시아의 도전이었다. 민노총 같은 좌파는 푸틴의 승리를 점친 모양이지만 인권과 자유, 법치 등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의 연대를 거스를 순 없다.1948년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추구하는 정치사회 세력의 갈등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채택했다. 좌편향 교과서들은 김구 김규식의 좌우 합작운동을 비중 있게 서술하며 마치 ‘가지 않은 길’이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을 현혹한다. 그러나 김규식의 비서였던 송남헌은 평양행에 앞장섰던 김규식의 또 다른 비서 권태양이 북측의 간자(間者)였음을 1995년에야 알았다고 ‘송남헌 회고록-우사 김규식과 함께 한 길’에 썼다. 만에 하나, 지난 좌파 정권에북의 세작 또는 공작이 있었음이 몇십 년 후에 밝혀질지 모를 일이다.이념과 체제를 논하는 것이 철 지난 논쟁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핵을 지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로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당선도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이재명은 이와 거리가 멀다는 다수 국민 열망의 반영이었다.MB정부처럼 중도주의로 끝내면 또 반복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확고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민노총 총파업에, 북한의 도발에, 좌파가 걸어온 체제전쟁에 정부가 말로만 법과 원칙만 외치는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실천으로 모범을 보이는지 지켜볼 일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제야 ‘지방권력 사유화’라는 본질을 파악한 듯하다.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뇌물 수수,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22일 검찰 관계자는 “지방자치 권력을 매개로 민간사업자와 유착관계를 만들어 거액의 사익을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그 막강한 권한을 괜히 가졌을 리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측근이어서 갖게 된 힘이다. 검찰이 비로소 이재명 조사의 필요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참 징글징글하게 늦었다. 이재명은 2005년 성남시민모임 활동을 할 때 쓴 경원대(현 가천대) 행정대학원 석사논문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진작 이를 밝혀냈다. 견제받지 않는 지자체 권력, 사유화한 지방권력.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국가권력의 사유화 아니었던가. 이재명이 작년 말 대선 과정에서 “인용 표시를 다 안 해 석사논문을 반납했다”고 했을 때 웬일인가 싶긴 했다. 대선 뒤 가천대가 핵심 내용엔 문제가 없다며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로 그 ‘핵심’을 감추고 싶어 극구 논문 반납을 강조했다면, 우리는 이재명에 대해 많은 걸 짐작할 수 있다. “지방정치 과정에서 부패는 중앙정치와 달리 극복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재명은 논문 2쪽에 이렇게 썼다. ‘중앙의 경우에는 탄핵이나 해임 등 제도적 견제장치가 존재한다.’ 대통령은 아무리 제왕적이라 해도 언론과 의회의 매서운 감시와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게 못마땅해 도어스테핑도 중단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너무나 자유롭다. 대장동도 2021년 8월 31일 한 지방지에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 칼럼이 나올 때까진 이목을 끌지 못했다. 선출직 공직자는 ‘형사상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견제 수단도 없는 게 현실’이라는 거다. 지방의회는 시녀에 불과하고 중앙정부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막강 지방권력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똑똑한 이재명은 2005년에 벌써 알아버렸다. 석사논문을 쓰며 파악한 숱한 부패 수단을 2010년 성남시장이 돼 활용하기 시작했다면, 슬픈 일이다. ‘지방정치 부패는 주로 당선이나 재선을 목표로 선거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특혜를 주거나 권한을 행사한다’며 이재명은 인허가·용도변경, 인사권·공유재산 처분과 지역개발 수단까지 두루 나열해놨다. 심지어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 씨가 2011년부터 관용차(체어맨)까지 탔는데도 비판받지도 않고 넘어간 것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울고 갈 일이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에선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냄새가 난다. 검찰은 성남시 전략추진팀장 A 씨를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이재명과 정진상이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대장동 사건에서 유동규가 사장 노릇을 한 것처럼 성남시 정책실장일 뿐 성남FC에선 아무런 직함도 없는 정진상이 사실상 사장 노릇을 하며 광고도 유치하고 해외 출장도 다니며 성과급도 챙겼다는 것이다. 김경율 회계사는 최근 서민 단국대 교수와 함께 쓴 책 ‘맞짱: 이재명과의 한판’에서 “이재명의 문제는 이렇듯 공적 조직을 무시하고 측근들이 중심이 된 정치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이런 이가 나라를 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는 거다. 문제는 이재명이 논문에 썼다시피 지자체장의 부패가 대개 합법적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재명이 저리도 당당하게 당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만 지자체장의 경우 뇌물 수수 등 명백한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런 현실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형석 감사원 감사연구원 연구관은 2021년 논문에서 “지방공무원의 잘못을 밝히기엔 어려움이 많고 공무원 스스로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장동 의혹은 이재명이 대선 후보로 나왔기에 불거졌지, 다른 지역에선 문제가 있더라도 묻히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이재명은 논문 말미에서 오늘을 내다본 듯 “힘겹게 적발해 낸 지방정치 비리사범을 양형 및 집행 과정에서 비호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대로 민주당이 제발 정신 차려주길 바란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이 제목은 내가 붙인 게 아니다. 수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가 2020년 5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제목이다. “한국이 당면한 정치•외교적 위기는 근원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이성 결핍’에 있다”고 선생은 암 투병을 하면서 피를 토하듯 글을 남겼다.19일 서울 도심에선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선동했다.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한다. 그러나 설령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탄핵 사유가 없는 한,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는 것이 민주주의다. 데모로 정권을 갈아치우겠다는 건 민주주의(democracy) 아닌 ‘데모cracy’라고 선생은 마치 예견하듯 써두었다.민족의 집단무의식이 역사적 사건과 시대 상황을 여과하며 특유의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이 선생의 원형사관(原型史觀)이다. 툭하면 광장에 뛰쳐나와 시위하고, 정치인은 분당(分黨)이나 하는 것도 집단 무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단군신화를 보면 안다…분열의 집단무의식단군신화를 보시라. 주인공 환웅은 부족장 천군의 서손(庶孫)이었다. 백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곰은 여자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고, 호랑이는 못 견디고 도망갔다고? 그건 신화 속 아름다운 얘기일 뿐이다.현실로 번역하면, ‘분열’이다. 항복한 곰족과 정복군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났지만 반대파인 호랑이족은 떠남으로써 분열의 집단 무의식이 형성됐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들 사이 분열도 극심했다. 일본군을 탈출해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청년 장준하(1918~1975)가 “실상을 알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통곡했을 정도다. 호랑이족은 8•15해방 후 돌아와 곰족 ‘친일파’를 색출했다. 말이 되는가.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데 없어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을 친일파로 몬다는 것이(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소리다)!6•25 전쟁 때도 그랬다. 서울이 수복되자 부역 시비가 벌어져 서로에게 비수를 겨눴다. 조선왕조 500년을 주자학 원리주의로 유지했던 이 땅의 지배계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들만 옳다며 적폐청산, 제2의 건국,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걸고 보복질을 해댔다.당나라 끌여들여 삼국통일…사대주의 국가이성우리끼리만 잘난 척하면 또 모른다. ‘국가이성’은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지도자의 대외노선으로 이 역시 집단무의식 즉 원형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라가 망했는데도 외교적 마찰을 빚은 일도 없지 않다.한국사를 관통해온 갈등은 삼국통일을 위해 나당연합군이 벌인 백강전투(663년)에서 기인한다고 선생은 통찰했다. 신라가 당나라를 불러들이자 백제는 왜(倭)와 끌어들인 최초의 국제전이다. 여기서 백제가 패해 삼국통일과 통일신라가 나왔지만 동북아시아에 남긴 집단 무의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한반도는 부국강병 없는 사대주의다. 반면 왜는 백강전투 이후 일본으로 국명을 바꾸고 조선을 혐한(嫌韓)하며 일치단결해 목적만을 향해 매진했다. 진시황 이래 천하통일을 추구하는 중국의 집단 무의식은 지금도 계속되고.역사는 되풀이된다…한국인의 비극적 충동성이런 역사의 되풀이 구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평양-원산에서 끊어진 통일신라 국토는 중국과 일본이 원하는 한반도 분단선의 마지노선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비밀리에 명나라에 요구했던 분단선이었고, 조선 왕조 말기 러시아가 일본에 제안한 39도 선이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도 ‘세계질서’에서 “6•25 전쟁 때 미국이 여기서 북진을 멈췄다면 중공군의 참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한일간의 외교 마찰이 집단 무의식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해석도 있다. 한반도 이주만 봐도 우리는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도 바닥까지 내려간 원리주의다. 역사도 항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은 우리와 다르다. 외교협정을 맺고도 정권 바뀌었다고 충동적으로 뒤집으면 분쟁이 일어나는 거다.한국인 개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해도 정치•외교가 그렇지 않은 이유는…그것이 집단적 공동체 문화여서다. 이성은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는 ‘지적 정직성’을 의미하지만 정치인은 표에 반응한다. 국력의 기본은 민족의 이성에 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인의 충동성은 유명하다. 1979년 미중 국교 정상화 회담 때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이 저우언라이에게 했던 말이 “충동적인 한국인이 유발하는 전쟁을 피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였다.해법은 있다…이성 교육과 언어 정화우리 근현대사의 불행은 역사의 되풀이 구조에 있다. 대통령부터 군중까지…정치부터 외교까지…충동적이고 국가이성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이성을 높이려면 사회가 지적 정직성을 회복해야 하고, 학교에서 수학과 인문학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선생은 눈을 감기 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언어 정화다.언어는 인간의 본질이고 인지능력과 직결되는 이성이며 해당 민족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언어의 오염은 민족정신과 이성의 오염이다. 욕설이 유난히 많은 우리의 언어 습관을 되돌아볼 일이다.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中)언어 정화로 이성이 밝아지고, 그리하여 나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해볼 만하지 않은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경북 봉화 광산 사고에서 열흘 만에 구조된 박정하 씨의 인터뷰를 들으며 혼자 목이 메인 적이 있다. 혹시 사람들이 나를 포기하면 어떡하나, 구조를 포기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느냐고 7일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가 짐짓 물었을 때다. 목소리도 선한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제가. 왜냐하면 제가 광부들의 습성을 좀 알아요. 동료애라는 건 다른 직종의 동료들보다 굉장히 더해요, 사람들이…진짜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조직 같은 그 형태의 사람들인데, 조금 사람다운 냄새나는 그런 질릴 정도로의 끈기 있는 인간애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절대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끈기 있는 인간애가…그래서 동료들이 절대 구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221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부터 이태원에서 112 신고를 했던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압사 사고 일어나기 전에 경찰이 달려올 것이라고. ● 안전주무장관 이상민이 무슨 고생을 했나 물론 그 안타까운 참사 현장에 늦게나마 달려왔던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광부들보다 훨씬 잘난, 윤석열 정부 꼭대기의 높은 몇몇 분들은 그러지 못했다.오히려 책임회피에 급급한 나머지 질릴 만큼 끈끈한 ‘그들만의 인간애’를 과시해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심지어 16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은 마중 나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악수하며 “고생 많았다”고 격려까지 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을 수립·총괄·조정하고 비상대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주무장관이 바로 행안부 장관이다. 윤 대통령은 순방을 떠날 때도 이상민의 어깨를 남들 보란 듯이 툭툭 두드려주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태원 참사를 백날 수사해봐라. ‘내 식구’ 이상민은 못 건드린다…는 신호로 읽히지 않은 분은 손들어보기 바란다.● ‘내 식구주의’에 사회자본이 무너진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같은 날 이상민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피의자 신분에 올려놓긴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표 나게 이뻐하는 충암고 후배 장관을 어떤 간 큰 경찰이 감히 수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대통령의 그런 ‘내 식구주의’ 때문에 윤 정부의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라는 무시무시한 책에서 한국은 한마디로 불신사회라고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진단했다. 그게 벌써 2019년이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이 끔찍해 과반수 국민이 정권을 갈아치운 거다. 그런데 윤 대통령까지 내 식구만 싸고돈다는 건 국민에 대한 ‘배배배신’이다. 그리하여 신뢰라는 사회자본이 추락하면 이 정부만 실패할 공산이 커지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고꾸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우리는 계속 불신·불만·불안·불운·불행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다(노파심에 밝히자면 나는 이상민과 일면식도 없다). ● 위대한 개츠비가 알려준 상류층의 죄이상민의 잘못은 안전과 재난정책, 비상대비의 주무장관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안 보였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사시에 합격해 판사가 됐고 200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퇴직한 뒤에도 그는 거대 로펌 변호사, 대기업 사외이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하면서 사회 지도층으로서 참 폼 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들은 무심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저것, 동물과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나서는 자신들의 망망한 무심이 자리하고 있는 돈 속으로, 또는 그들을 짝으로 유지시켜주는 그 무엇인가로 되돌아갔고, 자신들이 벌여놓은 난장판은 다른 사람들이 치우도록 했다.’-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말미에서 미국 상류계급(더 정확히는 상류계급의 자격이 없는 톰과 데이지)을 묘사한 대목이다. 여기서 ‘무심한 사람들’(careless people)이라는 표현은 중요하다. 번역자에 따라 careless는 ‘무책임한’ ‘경솔한’으로 나오기도 하고 영한사전에는 부주의한, 조심성 없는, 되는 대로의, 무관심한…으로 등장한다. 이상민이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는 문자인터뷰를 날렸을 때, 상류계층의 이 치명적 무심함이 문득 떠올랐다. ● 이상민 장관, ‘문 정권의 조국’처럼 될 텐가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미국선 세상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 감성이 없으면 상류계층에 못 낀다. 미국서 9년간 미 연방 공무원으로 일한 김명훈이 ‘상류의 탄생’에 쓴 말이다. 지난여름 윤 대통령은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다른 아래쪽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되더라”고 했던가. 이상민이 눈물을 머금고 물러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 목숨 158명이 사라졌는데 책임지는 공직자가 없다니 X팔려 못 살겠다. 전임 문 정권 때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물러날 때 물러나지 않고 질질 끄는 바람에 정권에 큰 부담을 안겼다. 고교 선배 윤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이상민 사퇴를 계기로 지난 6개월은 없었다 치고, 깨끗하게 새 출발 해주기 바란다. 윤 대통령을 뽑은 국민이 제발 마음 편히 지지할 수 있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가슴이 꽉 막히다 못해 터질 것 같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정말이지 뜨거운 울화가 치민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 우리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는 희생자와 아무 관련 없는 보통 시민들이 병원 문 열기 전부터 와서 기다린다고 한다.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건 전 용산경찰서장의 해괴한 행태다. 참사 당일 오후 9시 반쯤 저녁식사 중 용산서에서 상황 보고를 받은 그는 밥 다 먹고, 걸어서 10분 거리를 굳이 관용차를 타고 11시 5분에야 이태원파출소 옥상에 올라가 현장을 지켜봤다. 마스크 없는 첫 축제인 핼러윈데이, 인파가 몰릴 게 뻔한데도 경찰청장부터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까지 조직적 작당을 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일제히 자리를 비웠다. 지난 7월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전국 총경들이 벌였던 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이 연상될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도 기가 막혔는지 7일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경찰을 질타했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경찰 책임으로 규정하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앞세워 경찰 ‘개혁’을 제대로 해낼 태세다. 그러나 경찰만 붕괴된 게 아니다. 참사 발생 직전인 오후 10시 12분 ‘숨을 못 쉬겠다’는 119 신고에도 구조대원은 출동하지 않았다.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목소리에 생기가 있어” 출동하지 않았다니, 숨이 막힐 노릇이다. 이런 소방청과 경찰청을 다 거느린 관청이 행정‘안전’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작년에 구축을 완료한 재난안전통신망도 행안부가 관장한다. 그 행안부 수장 이상민은 참사 다음 날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무책임하고 무식하게 말해 국민 염장을 질렀다. 나중에 ‘깊은 유감’을 표했지만 이상민은 이미 주무장관으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대통령과 고교·대학 동문이어서 절대 안 잘린다고 믿기 때문인지 8일 국회에서 그는 “경찰에 대한 지휘 권한이 없다”고 했다. 6월 경찰국 신설 기자회견에선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청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휘 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해놓고는 한 입으로 두말한 거다. 그러고도 사고 수습, 재발 방지책 마련을 하겠다니 윤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의심스럽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실에 있음을 8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의 국회 답변 태도를 보고 느꼈다.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해 “사의(辭意)를 표한 사람도 없고, 건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후진적으로 본다”는 오만방자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국가는 분명히 없었던 것”이라고 총리가 인정을 하는 상황에도 스스로 책임지는 주무장관, 대통령 참모 한 사람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냐고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긴 트라우마와 끈질긴 정치화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을 모르지 않는다. 진솔한 사과와 문책에 인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출범 전부터 ‘윤석열 퇴진’과 ‘체제전환’을 꾀해 온 좌파세력의 준동에 두 번 속을 국민은 많지 않다. ‘2014년 지방선거에 세월호 사건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서강대 이현우 교수의 논문을 보면, 세월호의 영향을 받았다는 유권자의 60%는 지지하던 정당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극은 2016년 총선 때 ‘진박’ 공천과 국정농단 때문이지 세월호 사과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윤석열 정부 출범 반년이 지났다. 전임 문재인 정권의 비정상을 바로잡는 국정운영의 방향은 맞다 해도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나만 옳고, 내가 많이 안다고 믿고, 혼자 말하는 스타일이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런 리더십이 검찰 고위직의 특징이라며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냉혹하게 묻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했다. 2021년 6월 21일 윤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그리고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 눈에 실력주의’인 데다 안팎으로 내 식구만 챙기는 독불장군 리더십에 분노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마침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떠난다. 돌아올 때는 새로 취임하는 것처럼 다시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 2기’는 이상민 장관 경질, 대통령실 쇄신으로 출발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지금은 수습과 위로에 총력을 다할 때라고 했다. 공당(公黨)의 대표다운, 책임질 줄 아는 자세다. 그처럼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과 학위 반납을 강조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가천대(2005년 당시 경원대) 행정대학원 논문에 대해 작년 말 대선 과정 때는 “인용 표시를 다 안 해서 표절을 인정하고 (2014년) 학교에 반납했는데 안 받아주더라”고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서…일 것 같지는 않다. 대선 뒤 가천대가 그의 논문을 재조사한 결론은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였다. 도입부와 배경 설명에 일부 인용 부실이 확인됐지만, 연구 결과 등 핵심 영역은 베끼지 않았다는 거다. 어쩌면 이재명은 바로 그 ‘핵심’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눈 비비고 다시 본 논문 제목이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심지어 2쪽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지방정치과정에서의 부패는 중앙정치와는 달리 극복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자체장 부패는 견제수단 없다 중앙정부의 부패는 공직자 탄핵이나 해임 등 제도적 견제장치가 있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도 활발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방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견제수단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재명은 논문에서 지적했다.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 솟는 것 같았다. 그때 벌써 이재명은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자체에선 ‘대장동 게이트’ 뺨치는 부정부패가 벌어져도 견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논문 쓸 당시 그는 ‘성남시민모임’ 활동도 하고 있었다(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 나온다. 성남시는 경기 동부지역 운동권이 집결하는 곳이라고도 했다).이 석사 논문은 그래서 신기하다. 2005년 논문인데 어째서 대장동 냄새가 날까(어떤 것은 성남FC 냄새까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본문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독자가 판단하시기 바란다. ● 민선단체장 선거자금 받되 합법적으로 지방정치의 부패문제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중략) 민선단체장과 의원들의 선출과정 및 업무수행과 관련된 것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중략) 주로 당선이나 재선을 목표로 선거자금을 조성하거나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이익이나 혜택 편의를 제공하거나 권한이나 예산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경우일 것이다.(14쪽)부패의 수단을 중심으로 볼 때, 각종 인허가권 및 규제건과 관련된 부패, 조직 및 인사와 관련된 부패, 평가심사•통제•감독 권한을 직접 이용하거나 그 권한을 가진 하위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권 개입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15쪽)실제로 지방정치가가 업무와 관련되어 돈을 받는 경우에도 대개 합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고, 잘못된 정책 결정이나 집행을 하는 경우에도 절차나 형식을 위배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27쪽)-이재명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경원대학교, 2005년) ● 토지개발 용도변경 과정에서 특혜 석사논문을 쓰면서 이재명은 지자체장이 어떻게 필요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영업비밀’을 알아낸 듯하다.(지방)단체장이 축재 또는 차기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주로 이용하는 통로도 건설 분야다. 지자체마다 쉴새 없이 대형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공사를 벌여야 ‘떡고물’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쪽)특히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은 요기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자체별로 특색있는 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재정확충을 위해 개발사업을 많이 시행하게 되는데, 토지개발•용도변경•계획설계 과정에서 정보유출•특혜 등이 발생한다.’(33쪽) 그러면서 이재명은 지적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2005년 논문에서다. ‘우리의 지방자치, 이 중에서도 선출직 공직자는 권한은 크되 통제감시장치는 미흡해 독선과 전횡이 가능한 상태에 있다.’(46쪽) ● 성남시에서 인허가권 사유화됐다고? 성남시는 민선 8기 성남시장의 공약에 따라 6~7월 정상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10~2022년의 시정을 평가했다. 이재명의 논문 핵심과 비슷하다는 건 신기하기 짝이 없다(그래서 그 논문을 제발 취소해달라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게 해달라고 했던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지난 12년 성남시정의 특징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행정을 통해 인•허가권이 출자수단으로 바뀌어 사유화되고, 인사권은 이러한 편법과 불법을 기획 내지 묵인하는 공직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남용되었다는 것임. 이 과정에서 시 내부감사 기능은 전무하였고, 시 의회의 견제 기능도 충분하였다고 보기 어려움’성남시 정상화특별위는 보고서 맨 첫머리에 대장동 사건 특별보고를 올리고 다음의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재명에 대한 수사 의뢰, 위법한 인허가권 행사에 관한 특별감사 권고, 범죄수익 환수방안 마련.’ 보고서 맨 마지막에 이재명의 친형 고 이재선 회계사 사건이 ‘인권 침해 문제’로 거론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인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측근들의 비정상적 행정을 지적했던 ‘내부 고발자’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남욱 변호사(수감 중)는 작년 10월 18일 수사를 받겠다고 미국서 제 발로 귀국한 사람이다. 그가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국에 며칠만 일찍 들어왔으면 (여당) 후보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네요.”(2월 27일 보도) 남욱 귀국 8일 전, 그러니까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선출한 상태였다. 누적 최종투표율 50.29%. 8월 말 불거진 대장동 의혹 때문에 이재명의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었다. 이낙연 후보 측에선 이재명 대장동 사업 당시 성남시장의 배임 혐의와 구속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때 남욱이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9일 체포돼 사흘 만에 구속됐다. 남욱은 대장동 민간사업자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다. 그는 벌써 감을 잡았던 거다. 자신이 2021년 4∼8월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에게 전달한 8억여 원이 여당 대선 후보 경선에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정권이 바뀌면서 검찰도 제자리를 찾았다. 남욱의 폭탄선언을 뭉갰던 ‘문재인 검찰’이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에 따르면 이재명 대선 캠프 조직을 맡았던 김용이 작년 2월 정치자금 20억 원을 유동규→남욱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남욱이 가만 생각해보니 시기적으로 봐서도 자신이 정민용 변호사를 통해 유동규→김용에게 전달한 돈이 대선 경선에 쓰인 게 아닌가 싶었을 터다. 물론 김용은 자금 수수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재명이 24일 검찰의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무실 압수수색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서 이 역사의 현장을 잊지 마시고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꼭 지켜주시기 바란다”며 울먹인 것은 황당하다. 검찰은 여당 대선 후보라고 봐주느라 안 했던 수사를 이제야 하는 것뿐이다. 바로 그 검찰 수사가 두려워 이재명은 대선 낙선 석 달 만에 불체포 특권을 노리고 보궐선거에 나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고도 민주당을 ‘이재명당’으로 만들어 보호막을 쌓겠다고 당 대표로 나섰고, 검찰이 기소해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방탄 당헌’으로 고쳤다. 국가로 치면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개헌을 한 꼴이다. 민주당이 이재명에게 볼모로 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유서깊은 제1 야당이 ‘이재명당’으로 탈바꿈했다. 정당의 사유화다. 2024년 총선을 앞둔 민주당 사람들은 당 대표의 공천권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이재명은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꾸려 친문 인사들을 대거 배치하기까지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 정권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친명으로 전향해 이재명 자신부터 살려내라는 의미일 터다. 이런 이재명에게 “그만하면 됐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달라”고 옳은 소리를 한 김해영 전 의원에게는 ‘개딸’들의 욕설이 쏟아졌다. 정말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2차 세계대전 중 미 전략사무국이 극비보고서로 발간한 ‘히틀러의 정신분석’을 보면, 아돌프 히틀러는 특히 여성에게 보호본능과 안쓰러움을 자극했던 지도자였다. 이재명이 개딸들에게 유독 신경 쓰는 점이 기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23일엔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5개월 만에 직접 글을 올려 지지자들에게 결백을 호소했다. ‘화천대유 대선자금이라니, 동기 없는 범죄’라며 “이 터무니없는 음해를 널리 알려 달라”는 거다. 이재명이 동정심을 호소하듯 수시로 눈물을 보이는 것도 히틀러를 연상케 한다. 어린 시절 부친의 폭력에 시달렸고, 선전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인간심리를 꽤 파고들었다는 점도 흡사하다. 이재명은 ‘설득의 심리학’ 등 수십 권의 심리학 책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을 연구했다고 2017년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밝힌 바 있다. 불굴의 정신을 지닌 히틀러처럼 극도로 실패한 뒤에도 바로 재도전하는 이재명이 존경스럽긴 하다.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도 비슷하다면, 앞으로도 이재명은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여당을 적처럼 비난하며 극단으로 나라를 몰고 갈지 모른다. 검찰이 누가 봐도 공정한 수사로 민주당을 최면에서 깨워주기 바랄 뿐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재임 중 마지막 신년 회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2021년 1월 18일, 그러니까 북한 김정은이 8차 당 대회에서 전술핵무기로 남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처음 공식화한 지 닷새 만이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 수역에서 북한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구조하라는 말 한마디 않던 대통령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감능력을 발휘해 김정은에게는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자신했는지 궁금하다. 문 전 대통령은 “다만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그 대신에 미국으로부터 확실하게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고 또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는 했다. 2018년 3월 정의용 대북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북측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덧붙인 것과 똑같은 말이다. 마치 비혼(非婚)주의자가 결혼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 강남 아파트 한 채 사주고 또 대통령도 시켜주면 고려해 보겠다고 덧붙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결혼하기 싫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쪽에서 분명 결혼한다고 했으니, 미국이 호화 아파트와 대통령 자리부터 내놓으라고 중매쟁이 노릇을 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문 전 대통령이 잘못 본 대목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미 국무부 동아태지역 박정현 부차관보가 ‘비커밍 김정은’에서 분석했듯, 김정은은 보기와 달리 샤프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왕조 세습에 성공한 김일성에게 노하우를 배운 김정일의 아들이다. 체제 안보는 물론 정통성 확보에 핵이 필수적임을 안다. 부친 사망 두 달 전 리비아의 원수 알 카다피의 죽음을 보고 절대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되새겼다. 적절할 때 방향을 전환하고 전술을 바꾸는 탁월한 능력까지 갖췄다. 그가 ‘연장자를 제대로 대접(하는 척)하는 데’ 문 전 대통령이 넘어갔을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 특히 북한의 협상엔 공식이 있다는 것쯤은 문 전 대통령도 알아야 했다. ①큰 원칙에 (때로는 감동적으로) 합의한다 ②합의를 멋대로 해석해 세부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한다 ③제 뜻대로 안 되면 일방적으로 결렬을 선언한다 ④상대에게 결렬 책임을 전가하는 식이다. 문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회담과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은 정확히 이 공식에 따라 진행됐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감동의 도구였을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몰랐다면 한심하고, 알고도 국민을 속였다면 그 죄를 씻기 어렵다. 국민 앞에 미안했는지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문재인의 5년 대담’에서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긍정적이냐’는 질문에 “지금은 평가하기에 적절한 국면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됐고 이것은 분명히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제 북한이 선제타격을 포함한 핵무력 법제화에 이어 전술핵 운용 부대의 실전훈련까지 하는 상황이 됐다. 여권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대담’ 당시 문 전 대통령은 “북이 핵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한국도 핵을 가져야 된다라는 주장이 비등해질 수 있는데 정치인들이 삼가야 할 주장,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 기본이 안 된 주장이고, 정말로 나무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문 전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군사경계선 상공에서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9·19남북군사합의를 체결해 우리 안보를 위태롭게 만든 사람이 바로 문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9·19합의를 체결한 뒤 ‘사후 통보’해 동맹국을 격노시켰다고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문재인 한국에 재앙’이라는 책에서 폭로했을 정도다. 남한 내 주사파들은 최근 “조선이 전술핵무기 10종을 보유했다”며 “조선의 핵무력 입법화는 72시간 내 가능한 ‘남조선해방전쟁’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선전선동까지 하고 나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어렵게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번영을 누릴 것이며 안보를 확보해줄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서도 뜬금없는 책 소개로 소일하는 듯하다. 여러 세대에 걸쳐 북한 독재자에게 핵 선제공격까지 가능하게 해준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