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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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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칼럼100%
  • [오늘과 내일/우경임]‘스무고개’로 나온 숫자 의대 증원 2000명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5분 국무회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동안 국무위원 10명 중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조용히 경청했고, 계엄 지시 문건을 공손히 받았다. 영상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의대 증원 추진 과정’ 감사 보고서는 ‘5분 국무회의’ 같은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일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의대 2000명 증원이 결정됐다’는 감사 보고서의 결론보다 행간에 담긴 상식을 벗어난 국정 운영에 놀라고 말았다. 윤 전 대통령은 한 번도 2000명이라는 숫자를 콕 찍어 지시한 적이 없었다. 대통령실 참모, 정부 관료가 거친 성정의 대통령을 거스를까 마치 ‘스무고개’를 풀 듯이 집단 지성을 발휘한 결과였다.“충분히 증원” 대통령 지시 맞히기의대 증원 방안의 첫 보고는 2023년 6월이었다. 2025년부터 매년 500명씩 늘리는 방안이었다. 이에 대해 조규홍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증원에 관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여 보는 차원에서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연 400명 증원을 참고해 제시한 숫자”라고 진술했다. 처음부터 과학적 추계나 의료계와의 합의는 제쳐두고 대통령의 뜻을 알아보려는 ‘간 보기 숫자’를 내밀었단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것 가지고 문제 해결이 되겠나. 1000명 이상은 늘려야 하지 않겠나”고 이를 반려했다.복지부는 같은 해 10월 대통령 보고 초안을 다시 만들었다. 이번에는 2025년부터 3년간 매년 1000명씩 늘리고 이후 정원을 재조정하겠다고 했다. 이를 사전에 검토한 안상훈 당시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이 “1000명 정도로 보고하면 혼날 수도 있다”며 박민수 당시 복지부 2차관에게 다시 만들라는 뜻을 전달했다.대통령실 참모가 정책적 합리성도, 정무적 판단도 아닌 단지 대통령에게 혼날까 봐 수정을 지시했는데 그 지시가 또 통했다. 복지부는 초안을 고쳐 3년간 1000명씩 늘리고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2000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더 늘려라”고 재차 지시했다. 그 자리 참석자 누구도 대통령에게 ‘충분히’의 뜻을 묻거나 적정 증원 규모나 의대 교육 여건을 설명하지 않았다.누구도 “안 된다” 하지 않았다두 번이나 보고가 퇴짜 맞자, 조 전 장관은 “대통령이 충분한 증원을 계속 지시했는데 복지부 장관으로서 충분히가 어느 정도인지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주무 부처 장관 고민의 수준이 이랬다. 그제야 복지부는 보고서 3건을 종합해 2035년 부족 의사 수 1만 명이라는 근거를 찾았다.복지부의 ‘1만 명 부족’ 추계를 보고받은 이관섭 당시 정책실장은 ‘2000명’이라는 숫자를 처음 꺼냈다. 조 전 장관에게 “첫해부터 2000명 일괄 증원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 복지부는 이를 반영해 같은 해 12월 ‘900∼2000명 단계적 증원안’과 ‘2000명 일괄 증원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단계적 증원안에는 반대했고 일괄 증원안에는 “더 검토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2월 6일, 복지부는 대통령이 비토하지 않은 ‘2000명 증원안’을 대통령의 뜻이라고 보고 발표했다.그리고 1년 7개월간 의정 갈등으로 온 나라가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토론은커녕 지시에 토도 달지 못하니 의대 증원 같은 비합리적인 정책이 나오고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처럼 국력이 낭비됐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계엄으로 폭주했다. 직에 걸맞은 책임감이라고는 없던 ‘예스맨’ 관료들의 비겁함도 동력을 제공했을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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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분노 미끼’

    옥스퍼드 사전이 2025년 올해의 단어로 ‘분노 미끼(Rage bait)’를 선정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분노나 짜증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도록 설계된 온라인 콘텐츠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속어인 ‘어그로 끌다’, ‘낚시질하다’와 뜻이 통한다.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건 2002년. 깜빡이를 켜고 추월하려는 차를 보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거나 해서 ‘분노 미끼’를 던지는 운전자를 설명한 데서 유래했다. ▷올해 들어 ‘분노 미끼’ 사용 빈도는 3배가량 늘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조작하려는 기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딥페이크 영상, 인공지능(AI) 챗봇, 가상 아이돌 등 인간의 감정을 조정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술도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감정, 감정이 일으키는 행동까지 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분노 미끼’는 이를 꿰뚫어 본 단어라는 것이다. 지난해 단어는 ‘뇌 썩음(Brain rot)’이었다. ‘분노 미끼’는 클릭을 유도하고, 알고리즘은 이런 콘텐츠를 확산시킨다. 끝없는 클릭으로 정신적 탈진을 겪으면 ‘뇌 썩음’ 상태가 된다.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존 본능에 가깝다. 달콤한 열매보다 숨은 호랑이를 빨리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충격’ ‘최악’ ‘박살’ 같은 ‘분노 미끼’를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클릭 버튼을 누르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분노는 행동을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분노를 느끼면 댓글을 달고, 연관 영상을 계속 클릭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SNS상 체류 시간 늘리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미끼가 없다. 분노가 정의감과 결합하면 후원금을 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정치 유튜브는 ‘분노 미끼’를 던지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유튜브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슈퍼챗(후원금) 수입 상위 30개 채널 가운데 10개 채널이 정치 관련 채널이었다. 상대 진영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분노를 땔감 삼아 돈을 벌었다. 유튜브와 현실 정치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사회를 양극단으로 몰아가는 기제가 바로 이것이다. ▷3만 명이 넘게 참여한 온라인 투표에서 ‘분노 미끼’와 함께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던 최종 후보 단어로는 ‘아우라 파밍(aura farming)’이 있다. ‘아우라 파밍’은 자신의 지위나 매력을 은근하게 전달하며 과시하는 행동이다. ‘SNS에 명품백 사진을 올리며 아우라 파밍을 했다’는 식으로 쓴다. 우리는 왜 ‘분노 미끼’를 덥석 물고 빠른 속도로 클릭하고, ‘아우라 파밍’에 몰두하고 있을까. 옥스퍼드 사전이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쓰는 언어를 탄생시킨 시대정신을 성찰하자는 뜻이라고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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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비만약 덕에 시총 1조 달러 넘은 제약사

    창업주의 이름을 딴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1876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약국에서 시작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대령 출신 약사 일라이 릴리가 약을 제조하는 실험실을 갖추고 가짜 약이 판치던 시기에 ‘화학자가 만든 약’이라며 말라리아, 매독 치료제를 팔았다. 그렇게 출발한 이 회사가 최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기며 제약 산업의 역사를 다시 썼다. ‘빅테크’와 겨루는 ‘빅파마(Big Pharma)’로 성장한 것이다. ▷일라이 릴리 주가는 올해 들어 42% 급등했다. 당뇨 치료제 ‘마운자로’, 똑같은 성분이지만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은 ‘젭바운드’의 폭발적 성장세 덕분이다. 미국 상장 기업 가운데 시총 1조 달러가 넘는 기업은 10곳뿐이다. 1∼8위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가 차지하고 있다. 빅테크가 아닌데 1조 달러 클럽에 입성한 기업으로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가 하면 머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 6곳의 시총을 모두 합쳐도 1조 달러에 못 미친다. ▷제약 산업은 테크 산업처럼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일단 시장 규모가 작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많다. 감염병 유행 등 약의 수요에도 부침이 크다. 일라이 릴리는 2차 세계대전 동안 페니실린 대량 생산으로 급성장했다가 종전 이후에는 수요 급감으로 고전했다.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보통 10년 남짓이다. ‘기적의 항우울제’로 불리던 프로작이 2001년 특허가 만료되자 일라이 릴리는 다시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규제나 약값 정책의 영향도 크다. ▷일라이 릴리가 시총 1조 달러 클럽에 등극한 건 제약 산업이 이런 한계를 딛고 범용 시장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비만약 선두 주자였던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가 공급 부족으로 주춤한 사이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감량률은 더 높고 부작용은 더 적다는 임상 결과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제치고 올해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 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라이 릴리는 먹는 비만약 개발 경쟁에서도 한발 앞섰다는 평가다. ▷10년 뒤면 세계 비만 인구가 19억 명이 넘고 비만약 매출이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프지 않아도 먹는 약’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새로 창출된 것이다. 일라이 릴리는 프로작, 자이프렉사 등의 특허 만료로 휘청였을 당시 오히려 신약 개발에 몰두했고 지금 그 성과를 누리고 있다. 비만약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빅파마’가 탄생하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길 기대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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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챗GPT 3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같은 순간이 될 수 있다.” 2023년 5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이 활자 인쇄처럼 인류의 역사를 바꿀 기술이라고 했다. 인쇄술은 소수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량 복제함으로써 신이 주인공이던 중세 시대를 끝내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젖혔다. 그는 AI도 지식의 생산, 유통 방식을 혁신해 우리 사회를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2년 11월 30일 올트먼이 만든 챗GPT가 처음 공개됐다. 3년이 지난 지금, 올트먼의 예언처럼 인류 역사는 ‘AI 이전’과 ‘AI 이후’로 나뉜다. 현재 세계 성인 인구의 10%가 넘는 8억 명가량이 챗GPT를 사용한다. 오픈AI가 사용자가 챗GPT와 나눈 대화 100만 건을 분석했더니, 올해 들어 조언을 구하는 ‘질문’이 업무를 위탁하는 ‘수행’을 앞질렀다. 업무 보조 도구를 넘어 쇼핑, 건강 같은 일상적 의사 결정까지 AI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AI가 ‘제2의 나’가 된 셈이다. ▷아직 서툴고 종종 엉뚱한 대답을 내놓던 챗GPT의 발전 속도는 놀랍다. 문자만 다루던 시스템은 음성을 소화하고 이미지를 인식하더니 이제는 외부 서비스와 연결되는 전천후 AI로 진화했다. 회사에선 비서로, 학교에선 교사로, 병원에선 의사로, 심지어 전장에선 동료 군인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인간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그 결과, 일자리 시장이 재편됐고 AI와 협업하는 인간과 그러지 않는 인간 사이 생산성 격차가 벌어졌다. ▷AI 등장에 따른 규범 정립이 지체되면서 ‘AI 아노미’ 현상이 나타났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AI가 만든 가짜 정보가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선거를 교란한다. 권위주의 국가에선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수집돼 ‘빅브러더’의 통제가 쉬워졌다. AI 기술을 선점한 기업과 개인이 부를 독식해 양극화가 심화한 것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딥페이크 음성을 이용한 사기, 영상을 이용한 포르노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도 증가했다. 인류의 지적 발전을 추동해 온 엄격한 연구 윤리도 무너지고 있다. ▷AI는 문자로 쌓인 인류의 지식을 거의 흡수한 상태다. 의사·변호사 시험에 척척 붙고, 어떤 분야에선 박사급 지식을 보여준다. 지식에만 능한 줄 알았는데 창의적이기도 하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무수한 패턴 조합으로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내놓는다. AI 가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AI 작가가 쓴 책이 팔린다. 아직 육체노동을 대체하진 못했지만, 곧 피지컬 AI가 보급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숨 가쁘게 진화하는 AI가 우리에게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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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선행은 돌고 돈다” 작은 친절에 목마른 한국 사회

    청각장애인 손님에게 커피를 갖다준 카페 주인이 쪼그려 앉고선 “맛있게 드세요”라고 수어로 인사를 건넨다. 주인이 다가오자 황급히 수어를 멈췄던 손님들이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수어만 오가는 11초짜리 폐쇄회로(CC)TV 영상인데 자꾸 돌려보게 된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사람이 많은지 143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경기 안산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청각장애인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유튜브로 간단한 수어를 익혔다. 카페에 오는 손님 누구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이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선행이 돌고 돌다 보면 세상도 점점 좋아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미 그의 카페에선 작은 친절이 돌고 도는 ‘나비효과’가 일어난다. 이 씨는 평소 손님들에게 양팔로 ‘하트’ 인사를 건넸는데 이젠 손님들이 먼저 하트 인사를 하며 매장에 들어온다. 영상이 화제가 된 후에 수어를 무료로 가르쳐 주겠다거나, 수어 책을 보내준 손님도 있다. ▷친절은 전염성이 크다. 친절한 행위를 목격만 해도 전염된다. 2010년 미국에서 사회 연결망 연구의 원조 격인 실험이 이뤄졌다. 20달러를 받은 실험 참가자가 공동기금에 기부하라고 하면 얼마를 낼까. 참가자로서는 기부를 안 할 때 최대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실험 회차가 거듭될수록 공동기금이 불어났다. 기부 행위를 목격한 참가자가 다음 실험에서 기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참가자 1명의 기부 행위가 최대 3명에게까지 파급됐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거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작은 친절도 이타적인 행위를 퍼뜨려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나사 역할을 한다. ▷ 최근 SNS상에선 작은 미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다. 내복만 입은 치매 노인에게 외투를 입혀 준 편의점 직원, 폭우 속에 배수로를 막은 나뭇잎을 맨손으로 꺼내는 여성, 폐지 노인의 손수레를 밀어주는 청년, 딸에게 싱싱한 부케를 주고 싶어 예식장 주차장에 주저앉아 손수 꽃다발을 엮는 아버지…. 영상마다 ‘따뜻하다’ ‘눈물 난다’ ‘대박 나라’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평범한 이웃의 다정함이 삭막한 우리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우리 사회가 작은 친절에 목말라한다. 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 각자도생하며 정서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에서 우리 사회를 믿을 수 있다는 응답이 54.6%였다. 2019년 조사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친절은 신뢰를 형성하고 협력을 촉진해 좋은 공동체를 만든다. 불안을 줄이고 행복을 고양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한다. 남에게 베푼 친절이 나를 보호하는 안전망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강한 것보다 다정한 것이 생존해 온 이유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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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이공계 인력난’ 원죄는 교육부에 있다

    사실 숫자만 보면 우리나라 이공계 인력은 지난 30년간 부족한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인력은 인구 1만 명당 약 17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독일, 일본, 미국, 중국을 훨씬 앞선다. 심지어 30년간 학령인구가 급감했는데도 이공계 석박사는 꾸준히 늘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 전환기를 맞아 이공계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의 수요와 대학의 공급이 맞지 않는 ‘이공계 일자리 미스매치’ 탓이다. 교육부에 원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등록금을 17년째 묶어 둬 교수들을 ‘앵벌이’ 연구로 내몰았다. 대학 구조조정은 미루고 미뤄 사회적 수요와 동떨어진 석박사를 양산했다. 교육부는 억울해할지 모르겠지만 연구실에서 젊음을 소진하고도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이들에 비할 순 없을 것 같다.“이공계 인력 남아도는 것이 문제”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이공계 인력이 남아도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우리나라 산업 특성상 제조업, 조선업에서 고급 연구 인력이 필요한데 대학은 생명공학, 환경공학 박사만 길러낸다. 교육부 대학 평가나 R&D 지원에서 유리한 분야 중심으로 연구실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학 자체 재정 지원이 ‘0원’인 상황에서 교수들은 국책 과제 수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석박사를 확보해 여러 과제를 돌려 연구비를 충당하고자 한다. 정작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대학이 죽지 않을 만큼만 수액을 놔 주면서 구조조정은 회피했다. 석박사 과잉 공급의 원인이다. 대학교수,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직 자리는 연간 1000개도 되지 않는데 석박사는 그 10배인 1만 명이 배출된다. STEPI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박사 인력 고용률은 84.5%이다. 언뜻 고용률이 높아 보이지만 이들 10명 중 6명은 학력 조건이 박사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에 종사한다. 박사는 석사 자리를, 석사는 학사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뜻이다.인재 공급 기지로 전락한 한국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면 ‘만능’ 연구자로 인정해 줘야 한다. ‘열정 페이’를 참아내며 정부 과제에 따른 온갖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개인 연구까지 해내야 졸업한다. 2013년부터 10년간 이렇게 힘들게 학위를 딴 이공계 석박사 9만6000명이 한국을 떠났다. 국내에 일자리가 없고, 보상 격차가 크다 보니 ‘탈한국’은 개인으로선 응당 합리적인 선택이다. 수능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도 설명된다. 앞으로가 더 암울하다. 최근 한국은행은 2030 이공계 석박사 62%가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전체 이공계 순유출 인력 가운데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이공계 주요 5개 대학 석박사 인력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첨단 산업일수록 탁월한 인재 1명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한은 보고서에서 해외 이직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연봉이었다. 빅테크와 국내 기업 연봉 격차야 비교가 어려울 정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승진 가능성, 고용 안정성, 연구 환경 등 비금전적인 요인도 영향이 컸다. 국내 연구 생태계가 그만큼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손해가 따를 것이 뻔한 등록금 자율화나 대학 구조조정은 거론조차 하지 않는 정치, 그에 편승해 자리를 보존하는 관료들이 만든 불합리한 연구 생태계에서 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신음하다 떠나고 있다. 정부가 이공계 인력 지원 방안을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현금을 찔끔 쥐여주는 식이지 귀한 인적 자원을 싸게 쓰고 버리는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청년을 낭비하는 분야가 어디 이공계뿐이랴.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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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우리 헌법을 AI가 썼다고?

    미국에서 인공지능(AI) 판독기인 GPT제로로 미 독립선언문을 돌려봤더니 AI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98.51%로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챗GPT가 출시되기 246년 전 1776년의 글인데 AI가 쓴 것이라 우긴 것이다. AI 판독기는 언제 쓰였는지, 누가 썼는지 등 모든 맥락을 제거한 채 단어와 이어질 단어 사이 통계적 확률만 계산한다. 독립선언문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문장처럼 정제될수록, ‘사람’ 다음에 ‘평등’처럼 특정 단어 뒤에 올 확률이 높은 단어가 배치될수록 AI가 썼다고 판단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대한민국 헌법,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 소감을 세 종류의 AI 판독기에 돌려봤다. AI가 써줬을 가능성이 각각 최대 85∼99%까지 나왔다. 심지어 세 종류의 AI 판독기가 각기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확률을 제시했다. AI 판독기의 오류율을 측정한 논문들은 인간이 쓴 글을 AI가 쓴 것으로 판단할 확률을 약 10∼20%로 보고한다. 논문이나 연설문처럼 감정적인 언어가 배제된 간결한 글일수록 AI가 쓴 것으로 오인받기 쉽다. ▷AI 판독기의 오류율이 상당하지만 기업과 대학에서는 점점 널리 사용되는 추세다. 그 결과 잘못된 판독 결과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자기소개서가 AI 작성물로 판정돼 채용 과정에서 탈락하는 취업준비생, 과제를 0점 처리당하는 학생 등이다. 특히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한 지원자들은 이유조차 모른 채 떨어지고, 설령 AI 판독기의 오류임을 안다고 하더라도 AI와 싸워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그저 통계적인 패턴을 분석한 것일 뿐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괜한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팁이 공유된다고 한다. 영어 논문을 쓸 때 관사(a, the)를 틀리게 쓰거나 생소한 수식어를 붙이는 식이다. MS 워드나 구글 문서처럼 수정 기록이 남아 작업 과정을 증명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것도 권장된다. AI 판독기에 미리 돌려본 뒤 다시 수정해 제출하기도 한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의 글을 AI가 썼다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AI 판독기로 외국인의 토플 에세이와 미국 중학생의 에세이를 돌려봤더니, 토플 에세이의 61%를 AI가 썼다고 판정했다. 미국 중학생 에세이(5%)의 12배였다. 시험장에서 쓰는 에세이는 AI로 작성할 가능성이 0%다. 하지만 외국인은 제한된 단어로 정형화된 문장을 쓰기 때문에 부정행위로 의심받기 쉬워진다. 외국인 연구자의 논문이 AI가 쓴 것으로 판정받는 확률도 높다. 인간보다 오류가 많고, 인간보다 편견이 심한 AI에 심판을 맡기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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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농어촌 기본소득이라는 ‘제로섬 게임’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인구감소지역 7개 군(郡)이 선정됐다. 이곳에 사는 22만 명이 내년부터 매달 15만 원씩 지역화폐로 받는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화폐를 대량 발행하고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농촌 인구가 늘어나지 않겠나”라며 “퍼주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서 현금성 복지를 한다고 ‘퍼주기’로 단정 지을 순 없다. 서울도 청년수당, 상병수당 등 현금성 복지를 늘려 왔다. 같은 정책인데 재정자립도를 잣대로 달리 평가한다면 서울과 지방의 삶의 질 격차를 좁힐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농어촌 기본소득은 결국 ‘퍼주기’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인구가 늘어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탈을 막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줄어드는 인구 두고 ‘빼앗기’ 경쟁 총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소득과 인구 증가의 인과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였던 2022년, 농어촌 기본소득이 시범적으로 도입됐던 경기 연천군 청산면의 인구는 그 이후에도 줄었다. 설령 이번 시범사업에서 인구가 늘어난다 치자. 월 15만 원을 받으려고 수도권에서 이사를 결심하긴 어렵다. 경기 연천군으로, 강원 정선군으로, 충남 청양군으로 인근 지역에서 이사 온다 한들, 지자체 간 인구를 빼앗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질 뿐이다. 지금까지 현금성 복지는 한 번 시작하면 판이 커지고 판돈이 올랐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평가해 2028년부터 모든 인구감소지역 89곳에 농어촌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한다. 시(市)지역도 인구가 감소하고 농민도 거주한다. 곧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벌써 더불어민주당 농어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정부의 추가적인 재정 부담과 시범지역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지역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인구 유입이라는 정책 효과는 상쇄된다. 전국 리그에서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그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재정 부담은 즉각적이다. 이번 시범사업은 국비와 지방비(광역+기초)가 4 대 6 매칭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내년에 약 1700억 원을 투입하는데 지방정부는 이보다 많은 2800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 지자체의 의무지출이 증가해 정작 필요한 곳에 재정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주민 성화에 시범사업을 신청했지만 재정 마련이 버거웠던 일부 군은 탈락 소식에 내심 안도했다고 한다. 공공건물 공사를 늦추거나 보조금 지급을 보류하는 곳도 있다. 재정 투입 역시 ‘제로섬 게임’이란 얘기다.총선 직전 본사업… 누가 효과 따질까 농어촌 기본소득이 인구감소지역 272만 명 모두에게 지급되면 연간 소요 예산은 5조 원까지 늘어난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69개 군이 앞다퉈 신청했다. B 군수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민회 시위, 주민 민원이 이어지니 신청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나야 군만 책임지면 되지만 정부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방 재정이 휘청일 것”이라며 비판적이었던 국민의힘 도지사도 “원론적 반대”였다며 선정된 군에 도비를 매칭하겠다고 한다. 시범사업에 선정된 군수는 치적 홍보에 나섰고, 탈락한 군수는 지방선거 경쟁 후보의 공격과 주민 항의에 시달린다. 농어촌 기본소득과 중복 지급 논란을 빚고 있는 농어민 수당이 있다. 지자체별로 연간 30만∼80만 원을 준다. 지방선거를 앞둔 2021∼2022년 7개 도 중 5개 도가 ‘우르르’ 지급하며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종료되는 2년 뒤, 공교롭게도 총선을 앞두고 있다. 아마 그때는 누구도 정책적 효과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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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車 사고 환자 몰리는 한방병원… 보험치료비 연 1조 원

    요즘 운전 중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면 “일단 한방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응급실로 가봤자 환자 대접은커녕 귀가를 종용받곤 하지만, 한방병원에선 바로 입원해서 치료받기 쉽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환자가 한방병원으로 쏠리면서 자동차보험 한방병원 치료비가 지난해 1조 원을 넘어섰다. 9년간 약 6배가 늘어났다. 지난해 양방병원 치료비가 1329억 원이고 같은 기간 1.6배 늘어난 것에 비하면 그 증가세가 가파르다. ▷교통사고 환자의 94%는 상해 급수 12∼14급에 해당하는 경상 환자이다. 응급실에 가면 엑스레이를 찍고 이상이 없으면 돌려보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교통사고 환자가 몰리는 일부 대형 한방병원에선 자기공명영상(MRI)처럼 비싼 검사를 받고 입원부터 한다. 침도 맞고 뜸도 뜨고 한약도 먹는다. 한방병원은 객관적 임상 데이터보다 의사 진단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적정 치료에 대한 기준이 상대적으로 애매하다. 그래서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환자도 “통증이 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고 몇 달씩 치료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해 4대 손해보험사 경상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한방병원(100만7000원)이 양방병원(32만5000원)의 3배가 넘었다. 한방병원은 양방병원 대비 진료 기간이 2배 가까이 길고, 기본 침을 제외한 대부분이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항목이다. 햄버거·감자튀김·콜라를 묶은 세트 메뉴처럼, 침·뜸·부항을 묶은 ‘세트 치료’ 청구가 급증한 것도 이유라고 한다. 뒤 범퍼를 살짝 긁는 사고를 당한 운전자 커플이 2년 넘게 뒷목 통증을 호소하며 1684만 원의 치료비를 쓴 보험업계의 전설도 있다. ▷적잖은 환자들에게 한방병원이 자기 돈 들이지 않고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고 쉬어가는 일종의 웰니스센터처럼 여겨지나 보다. 여기에 ‘나이롱 환자’를 받아서라도 수익을 올리려는 몇몇 한방병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과잉 진료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가 난 뒤 상대 차주나 보험사가 비협조적이면 ‘어디 당해보라’는 식으로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워낙 치료비가 많이 나오니 보험사가 적당히 보상금을 챙겨 주고 합의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올해 자동차보험은 약 5000억 원대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2500만 명이 가입한 자동차보험료가 내년에 약 3% 오를 요인이 된다. 일부 환자와 병원의 도덕적 해이로 발생한 손실을 온 사회가 나눠서 떠안는 셈이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은 1인당 평균 69만 원의 연간 보험료를 낸다. 이들 상당수는 1년 내내 무사고이고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정직하게 진료하는 의사, 정직하게 치료받는 환자가 오히려 손해를 본다면 그 제도는 바꿔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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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No Kings”

    18일 미국 수도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백악관에 이르는 약 2.5km 구간에 ‘노 킹스’(No Kings·‘절대 권력’은 없다)를 외치는 수천 명의 반트럼프 시위대가 집결했다. 워싱턴 외에도 50개 주에서 700만 명이 넘게 참여해 6월보다 규모가 커졌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는 트루스소셜 계정에 왕관을 쓰고 ‘킹 트럼프’라고 쓰인 전투기로 시위대에 오물을 투척하는 가짜 영상을 공유했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가 이처럼 시위대를 대놓고 조롱한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끝날까 봐 두렵다.” 이번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민주적인 국정 운영과 삼권 분립을 흔드는 권력 남용에 대한 저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헌 다툼이 있는 관세 전쟁을 밀어붙이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불법 이민자 단속과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민주당 아성’ 지역에 주 방위군을 투입한 것도 논란이다. 트럼프 가족 기업의 부정 대출에 소송을 제기했던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을 대출 사기로 기소했고, 자신을 비판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재판에 넘겼다. 정부 기관을 동원해 정적 제거에 나서면서 ‘정치 보복은 없다’는 미국 정치의 암묵적인 합의도 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 킹스’ 시위를 언급하며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했다. 왕은 아니지만 왕을 동경하는 건 사실인 듯하다. 각국 정상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던 그도 영국 왕실 앞에선 공손해진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는 “똑똑하다”, “강하다”며 부러움을 드러낸다. 이들이 다자주의를 비웃고, 민주주의를 하찮게 여겨도 개의치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에 돈바스 지역을 넘기라고 침략국의 편을 들었다. “이 전선 지도, 이제 지겹다”며 전황 지도를 내던졌다고 한다. 양자 회담 내내 수차례 고성이 오갔고, 일방적으로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캐나다에는 “51번째 주가 되라”, 그린란드에는 “100% 가져올 것”이라며 팽창주의적 영토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주권국의 권리를 보장해 온 전후 70년 국제질서를 깡그리 무시하고, ‘아메리카 제국’의 왕이 되고 싶은가 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인터뷰에서 “진정한 힘은 공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가 사업가로서 자신을 부풀리고 과장해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대통령은 다르다. 워싱턴 ‘노 킹스’ 시위에서 연사로 나선 시민은 “트럼프는 뭐가 두려워 이러는 것이냐”고 물었다. 공포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민주적 정당성을 쌓지 못한 그의 권력 행사는 거센 저항을 부를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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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희토류가 뭐길래

    희토류(稀土類)는 이름과 달리 희귀하지 않은, 원소주기율표에 있는 금속이다. 네오디뮴(Nd), 세륨(Ce), 프라세오디뮴(Pr) 등을 포함한 17개 원소를 일컫는다. 희토류가 첨단 기술의 ‘소금’이 된 것은 극소량으로도 기능을 향상시키고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는 특성 때문이다. 애플 아이폰(0.24g), 테슬라 전기차(520g), F-35 전투기(408kg) 등에 고루 쓰이며 심지어 핵잠수함에도 필요하다. ▷올해 4월 미국이 중국에 145%의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보복 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금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발광다이오드(LED), 풍력 발전, 반도체, 전기차,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의 필수품인 희토류가 막히자, 미국 제조업이 마비 위기에 몰렸다. 다급한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5월 무역 협상을 통해 관세를 115%포인트씩 낮추기로 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재개가 당시 휴전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중국이 9일 다시금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 미국 증시는 경기를 일으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높이 존경받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는 아첨을 하게 만들 만큼 중국은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다. 희토류 전쟁에서 패하면 기술, 군사 패권 전쟁에서도 승산이 없다. 희토류는 매장량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17개 원소가 화학적 성질이 비슷해 분리가 어렵다. 이때 독성이 강한 황산, 염산 등을 용매로 사용하는데 폐수가 흘러나와 땅과 물을 오염시킨다. 우라늄 같은 방사성 원소가 포함돼 그 폐기물 처리도 골칫거리다. 희토류 1t을 생산할 때 방사성 폐기물 1t이 나오고, 산성 폐수는 20만 L가 배출된다. ▷지금은 고비 사막 끝자락에 있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바오터우 광산이 ‘희토류의 수도’로 불리지만,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마운틴패스 광산이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2002년 이 회사는 문을 닫았다. 환경 규제로 인한 법적 다툼에 휘말린 데다 가격이 몇분의 1, 몇십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중국산 희토류의 공습으로 타산이 맞지 않았다. 미국에서 희토류 산업은 퇴출당했고 갈수록 중국에 의존하게 됐다. ▷희토류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본 중국은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며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이제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가공의 90%를 장악했다. 환경 오염에 개의치 않고, 값싼 노동력을 동원하는 중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환경단체들은 네이멍구 바오터우 광산 인근 지역이 유독한 폐수로 식수가 오염되고, 토양은 방사성 물질 범벅이라고 경고한다. 중국은 미국의 급소를 겨눌 무기를 갖게 됐으나, 그 대가로 자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내줄 참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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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필수의료 해법으로 ‘병원 간 빅딜’은 어떤가

    전공의들이 복귀했고 의정 갈등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필수, 지역 의료의 고사 위기라는 현실은 바뀐 것이 없다. 전공의들은 응급실, 수술실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역으로도 가지 않았다. 당정 논의대로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든, 공공의료사관학교를 설립하든 의사가 배출되려면 지금부터 10년은 걸린다. 그동안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환자가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복권 당첨만큼 희박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 대책에는 당장 필수, 지역 의료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무한 경쟁에 장비 과잉-의사 고용 기피 우리나라 병원의 95%는 민간병원이다. 건강보험이라는 ‘공보험’ 아래서 민간병원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덕분에 한국 의료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이런 구조가 한계에 달했다고 본다. 병원 간 과잉 경쟁으로 의료 자원이 심각하게 낭비되고 있다. 건보는 진료의 질보다는 양이 많을수록 수익이 나도록 설계돼 있다. 병원마다 수십 개 진료 과목을 운영하고, 최신 의료 장비를 앞다퉈 도입하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는 인구 100만 명당 38.7대,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는 45.3대로 각각 OECD 평균 대비 1.8배, 1.4배에 달했다. 암 치료를 위한 중입자 가속기는 전 세계 14기 남짓인데 우리나라에만 3기가 있다.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6개로 OECD 평균의 3배다. 환자 1명을 두고 동네의원, 전문병원, 상급종합병원이 무한 경쟁을 벌이면서 병상, 장비 투자가 무분별하게 이뤄진 탓이다. 최근 병원 간 무한 경쟁 구조를 바꿔 필수 의료 의사 부족을 해결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A병원에 뇌혈관센터, B병원에 심혈관센터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의사가 부족한 필수 의료 진료 과목에 ‘규모의 경제’를 도입하면 응급실 뺑뺑이 같은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과잉 투자를 해소해 산업 경쟁력을 키웠던 ‘기업 간 빅딜’처럼 ‘병원 간 빅딜’을 하자는 것이다.뇌혈관 전문의 몰아주는 ‘규모의 경제’ 3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인데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결국 사망했다. 뇌혈관 전문의가 2명뿐인데 마침 1명은 해외 학회, 1명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서울 주요 대형 병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강북권역의 상급종합병원 4곳의 뇌혈관 전문의를 A병원 뇌혈관센터로 모아보자. 전문의 10명이 당직을 돌면 ‘워라밸’ 확보가 되니 전문의 수급이 수월해진다. 하 교수는 “보상이 적은 것을 알고도 그 과목을 선택한 사람들이니 주 60∼70시간만 일한다면 올 것”이라고 했다. 고가 검사, 치료 장비를 병원마다 중복 투자할 이유도 없다. 각 병원이 한 해 200번씩 하던 수술을 센터 1곳으로 몰면 800번이 된다. 투자 비용 회수가 빨라진다. 임상이 축적되므로 숙련된 의사 양성도 된다. 지역 의료 공백의 해법도 될 수 있다. 대구에는 상급종합병원 5곳이 있지만 뇌혈관 전문의가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런데 포항 전문병원에는 10여 명이 근무 중이다. 경직된 행정체계가 아니라 질병의 발병률, 이송 가능 시간을 따져 질병 권역으로 묶어 필수 의료 특화센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수천억 원을 들여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정부가 병원 간, 의사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민간병원에 개입한다는 부담도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의료 시스템을 협력의 틀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정부, 병원, 의사, 환자 모두 패자가 될 상황이다. 지금까지 필수, 지역 의료 대책은 예산은 흩어지고 효과는 없었다. 관성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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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아픈 사람 안 받는 동네 의원 2300곳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마다 병원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 막상 아프면 갈 만한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다. 피부과 간판을 내걸었지만 정작 건선, 습진 같은 피부질환 환자는 받지 않는다. 아이가 뛰어놀다 상처가 나면 예전 같으면 동네 피부과나 외과에서 간단히 봉합했지만 요즘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밟지 않은, 임상 경험이 전무한 일반의의 개원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진료 수가가 낮아 기피하는 탓도 있다. 병원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환자들은 피부과 대신 피부관리과, 성형외과 대신 미용외과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아픈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운영 중인 의원 가운데 건강보험 청구 실적이 ‘0건’인 곳은 2304곳이었다. 2022년(1540곳)에 비해 50%나 늘어났다. 폐업이 아닌데도 건보 청구를 하지 않았다는 건 질병 진료나 치료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부분 피부 시술이나 미용 성형에 집중하는 병원들이다. ▷피부과, 성형외과가 밀집한 서울 강남구의 경우 성형외과의 79%(358곳), 일반의원의 42%(311곳)에서 건강보험 청구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 많은 중구(명동), 젊은 인구가 많이 찾는 마포구(홍대 앞)도 건보 급여를 청구하지 않는 의원 비율이 높았다. 필러나 리프팅 등 ‘쁘띠 성형’과 레이저 스킨부스터, 제모 등 미용 시술만 하는 의원들로 추정된다. ‘1만 원 보톡스’ ‘5만 원 필러’ 같은 미끼 상품을 내세운 공장형 의원도 많다. ▷피부 5cm 열상을 봉합하면 수가는 최대 3만 원 정도라고 한다. 필러 주사를 놓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지만 보상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러니 미용, 성형 시장에 의사들이 몰려간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도수치료, 수액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가 팽창하는 이유다. 이제는 건보 체계를 아예 이탈해 고가 의료 서비스만 제공하는 제3의 시장이 형성됐다. 지난해 의료 미용 시장은 3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가 부족한데 피부, 성형 시장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하며 의사 배분도 왜곡됐다. 면허 제도를 통해 의사 공급을 제한하고 의료 행위를 독점할 권한을 부여하는 건 국민 건강이라는 공익에 종사하는 대가다. 그런데 아픈 사람을 외면하는 의사도 이런 특권을 누리며 수익을 보장받는 것이 맞나. 영국 미국 호주 등에선 추가적인 교육과 임상을 거친 간호사가 필러, 보톡스, 제모 등 미용 시술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정부는 이와 비슷하게 미용 시장 개방을 추진했다가 의정 갈등 속에 포기하고 말았다. 병을 고치는 의사다운 의사에게 박탈감만 안겨주는 잘못된 보상 체계는 바로잡아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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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트럼프 쇼’ 무대된 조지아주 한국 공장

    미국 조지아주 친(親)트럼프 정치인 토리 브래넘은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을 자신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신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공장은 우리에게 자산이 아닌 부담”이라고 했다. 극우 성향을 가진 ‘관종’ 정치인의 말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미국인은 고용하지 않으면서 우물을 마르게 하고 세금 면제까지 받는 한국 공장에 대한 백인 저소득 노동자의 반감을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한국 공장은 어쩌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표적이 된 것일까.불법 고용-안전사고 증거 모은 노조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이번 단속이 수개월간 수사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꼭 6개월 전인 올해 3월 CBS 계열 조지아주 서배너 지역 방송인 WTOC는 현대차 메가 사이트에 대해 보도했다. 이번에 단속된 배터리 공장과 앞서 완공돼 가동을 시작한 전기차 공장 부지다. 현지 업체를 쓰지 않는다는 지역 건설 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5월에는 배터리 공장의 안전사고도 다뤘다. 이번 단속은 친트럼프 정치인 1명의 제보가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이 아니다. 지역 노조와 방송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다. 이번에 구금됐던 한국인은 대부분 전기 설비 관련 인력이다. 배터리 공장이 없는 미국에선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숙련공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일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들어 전문직 취업비자(H-1B), 주재원(L) 비자, 투자사 직원(E2) 비자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하청업체들은 사실상 자격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단기 상용(B1) 비자조차 한꺼번에 직원 수십 명이 거절당한 경우도 있었다. 공장을 세워야 일자리를 만들 텐데 투자는 하라면서 비자는 틀어막았다. 미국이 뒤늦게 구금된 인력이 남아 미국인을 훈련하라고 권한 건 이런 사정을 파악해서일 것이다. 중간선거 최대 접전지에서 벌어진 쇼 우리 기업이 빌미를 줬다 하더라도 ICE, HSI,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국세청(IRS)까지 연방 및 주 정부 10개 기관에서 400명 넘게 투입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말대로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까. 내년 중간선거에서 조지아주는 최대 접전지로 꼽힌다. 현직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 2명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주는 이민자가 늘며 선거마다 민주당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주를 사수해야 상원을 장악할 수 있고, 비(非)트럼프계인 브라이언 캠프 주지사 교체까지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프 주지사의 업적이자 지역 노조의 표적이 된 현대차 공장을 급습했고 전 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현지에서 트럼프의 최대 지지 세력인 백인 노동자 결집을 기대하고 철저히 기획된 쇼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지아주 바닥 민심을 읽은 민주당 의원까지 이번 단속의 무도함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한국 공장 단속은 ‘마가’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미국 정치가 어디로 내달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해 줬다. HSI는 “조지아주 주민과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며 불법 고용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를 피하려다 ‘마가 리스크’를 마주한 셈이다. 숨을 고르고 대미 투자의 손익을 냉정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정부도 당장 317명의 구금 한국인이 풀려난 것을 두고 “양 정상의 신뢰 관계가 쌓이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포장할 때가 아니다. 이번 단속 결정 과정을 들여다보고 향후 파장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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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미국행 공포증

    최근 미국 방문자들 사이에서 도착 공항에서 ‘진실의 방’이라 불리는 집중조사실(Secondary Inspection Room)에 끌려갔다는 공포스러운 경험담이 넘쳐난다. 주로 입국 목적이 의심스러울 때 추가적인 조사를 받는 곳이다.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조사관이 “거짓말하지 말라”며 집요하게 추궁하기 때문에 ‘진실의 방’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관광지가 아닌 곳을 방문하는 기술 인력이나 20, 30대 여성들이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되돌아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5일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이 급습당하기 이전부터 이미 미국 출장 경계령은 울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일하려면 전문직(H-1B) 비자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매년 3월마다 신청해야 하므로 건설 공정에 따라 적시에 인력을 파견할 수 없고 이마저도 신청자 10명 중 1명도 받지 못한다. 주재원(L) 비자는 미국 법인이 있어야 발급돼 협력사들은 애초에 해당 사항이 없다. 마지막 선택지가 단기 상용(B1) 비자인데 지난해 거절률이 27.8%에 달한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길이 막혀 있으니 관광·상용·경유 목적으로 최대 90일까지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이스타(ESTA)로 입국하는 편법이 쓰였다. 그런데 미국 국토안보부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6월 미국 미시간 공장에 생산라인 설치 및 점검을 하기 위해 시카고 공항에 도착한 LG에너지솔루션 엔지니어가 무더기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들은 B1 비자를 다시 신청했지만 발급을 거절당했다. 5월에는 현대차 기술 인력이 조지아주 애틀랜타 공항에서 돌아와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직전 이스타 거절이 통보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이 비자 장벽을 높게 쌓으면서 유학생 사회도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학생(F) 비자의 거부율은 41%로 역대 최고였다. 어렵게 학생 비자를 받아 입국했더라도 과속 딱지 같은 경범죄 기록만으로 추방당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1600명이 F 비자를 취소당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인도, 중국, 한국인 유학생이 많았다. 최근 국토안보부는 F 비자 유효 기간을 4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무자비한 불법 이민 단속은 아무리 인건비가 비싸고 숙련도가 떨어지더라도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압박이다. 깐깐한 유학 비자 발급은 비싼 등록금은 내되 일자리를 구할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다. 표면적으로 일자리 보호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외국인 차별과 다름없다. 미국은 다양성과 포용성의 힘으로 혁신을 창출했고, 그 덕에 부유해졌다. ‘미국을 다시 하얗게(Make America White Again)’란 말이 더 들릴수록 미국은 경쟁력을 잃어갈 수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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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수출 효자로 떠오른 K농산물

    여행 가서 과일만 실컷 먹고 와도 남는다는 나라가 베트남, 태국, 대만 등이다. 종류도 많고 값도 싼 ‘과일 천국’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선 성주 참외, 태국에선 논산 딸기, 대만에선 경북 샤인머스캣이 최고급 과일로 대접받으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당도가 높고 식감이 아삭한 것이 비결이다. 한국 과일은 안전하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현지 과일보다 몇 배나 비싼데도 매년 수출 물량이 늘고 있다. ▷2001년 농축산물 시장을 대폭 개방했을 때만 해도 국내 한우 농가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으로 봤다. 24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수출 품목이 됐다. 두바이 5성급 호텔 한식 레스토랑에 공급되고, 말레이시아에선 할랄 인증을 통과했다. 구웠을 때 일본 와규보다 스르르 녹는 감칠맛이 일품이라는 평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경남 합천군 축산 농가에선 변정일 씨(47)가 인공지능(AI)으로 사육 환경을 모니터링해 육질 1++ 이상의 고급 한우로 키우고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김밥 따라 먹기처럼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자 올해 상반기 쌀 가공식품 수출액이 1억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역대 최대다. 쌀 가공식품 60%가 미국에 수출된다. H마트 등 한국 마트뿐만 아니라 ‘코스트코’, ‘트레이더 조’ 등 현지 마트에서도 김밥, 햇반이 팔려 나간다. 글루텐프리(gluten-free)를 내세운 쌀과자나 떡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밀가루 속 단백질인 글루텐은 미국에선 흔한 알레르기 물질이라 쌀로 만든 음식은 건강식으로 통한다. ▷K팝, K드라마가 K푸드를 ‘힙’한 음식으로 만들었고 덩달아 K농산물의 수요도 급증했다. 대표적인 내수 산업으로 신토불이(身土不二)를 강조하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농업에 로봇, AI 등 첨단 기술이 빠르게 접목되기 시작한 것도 수출 산업으로 도약할 기회다. 노동집약적이고 고령 농부가 종사하는 농업에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찬 씨(38)의 경남 함양군 과수원에선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방제 로봇이 구불구불한 길을 돌며 농약과 영양제를 척척 투입했고, 이규화 씨(30)의 경기 화성시 스마트팜에선 로봇이 센서를 통해 숙성도를 판단해 잘 익은 딸기를 땄다. ▷지난해 농식품 수출액은 99억8000만 달러로 K뷰티 인기를 업은 한국 화장품 수출액(102억 달러)에 맞먹는다. 그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제조업 리쇼어링과 관세 장벽 등 세계 무역 질서가 재편되는 와중에 농업이 수출 효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식량 안보 확보 차원에서도 농업을 첨단 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창농, 귀농을 택한 청년 농부들이 귀한 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이 수출 역군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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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급증하는 남성 난임 환자

    지난해 난임을 진단받은 남성 환자가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6년 새 38% 급증했다. 일단 난임 검사를 받는 남성이 늘었다. 난임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3분의 1씩 그 원인이 있고 나머지 3분의 1은 이유를 잘 모른다. 여성 탓만 하던 과거와 달리 남성이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환자가 늘었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진 영향도 크다. 통상적으로 35세가 지나면 정자 운동성, 정액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 난임은 정자가 생산되지 않거나 돌아다니지 않아서 발생한다. 고환 주변 정맥이 늘어나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해진 ‘정계정맥류’가 남성 난임의 35∼40% 정도를 차지한다. 고환이 따뜻해져 정자 생성 능력이 떨어진다. 그다음은 무정자증이 10∼15% 정도를 차지한다. 정관이 막혀 정자가 배출되지 않거나, 호르몬 이상 등으로 정자 생성이 아예 안 되는 경우다. 이렇게 원인이 분명하면 약물 치료나 외과적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잘못된 식습관에 따른 환경적 요인도 남성 난임의 주요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비만 상태이거나 고혈압, 당뇨 등 대사 질환을 앓게 되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저하시키고, 고환 온도를 높여 정자 생성을 방해한다. 성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전립샘비대증이나 고혈압, 당뇨 환자가 늘어나는 30대 후반 결혼이 늘어난 것도 남성 난임 환자 증가의 한 원인이다. 흡연이나 음주가 정자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의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남성 난임 환자들은 여성 난임 환자들 못지않게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난임을 단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성 상실이라고 여겨 우울증을 앓거나 자존감이 저하된다고 한다. ‘미안해서 아내를 못 보겠다’며 자책하기도 한다. 남성 난임이라고 할지라도 체외수정, 인공수정 같은 보조생식술로 연결되므로 배우자도 신체적인 부담을 나눠 갖는다. 아직 생식 능력을 남자다움으로 여기는 문화가 남아 있어 숨기고 싶어 하는 남성이 많다고 한다. 최근 난임 시술을 받는 남성 환자가 크게 늘었는데도 남성은 난임 휴가를 받는 경우도 드물다. ▷남성 난임을 공개하기를 꺼리다 보니 정부 지원에서도 소외돼 있다. 남성 난임 환자의 치료 및 수술은 부부가 함께 시술받지 않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무정자증 환자는 직접 정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받지만, 정자가 발견돼 보조생식술로 연결되지 않으면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자채취술은 최대 300만 원까지도 들고, 여러 번 받아야 해서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아이가 간절한 마음은 아빠도 엄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성 난임 환자의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줄 지원이 필요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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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극한직업’ 아파트 경비원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고령자들이 생계를 위해 찾는 일자리가 경비원이다. 최저임금을 받고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일이다. 궂은일을 도맡아 몸도 힘든데 입주민을 상대하는 감정 노동도 고되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일자리’로 통한다. 최근 경기 부천시 한 아파트에 ‘선풍기를 치우라는 주민이 있다. 최소한의 일할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경비원의 호소문이 붙어 그 열악한 근무 환경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요즘 같은 폭염에 에어컨도 없는 경비실의 선풍기를 끄라고 했다는 것이다. ▷직장갑질119가 2023년 발표한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에는 입주민의 폭언, 폭행을 마치 업무처럼 견뎌내는 경비원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XX야, 일 안 하고 뭐 하냐” 같은 고성 섞인 욕설이나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직원으로 채용했냐” “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 분리수거 차량 진입을 위해 차를 옮겨달라고 했거나 차단기를 늦게 열어줬다고 행패를 당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내용도 많았다. ▷입주민의 이런 갑질에 대한 대처법은 ‘무대응’이었다. 경비원들은 “아무 힘이 없다”고 했다. 입주민과 싸우려면 사직을 각오해야 하고, 관리소장에게 말해 봤자 괜히 찍힐 뿐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라 상처를 꾹꾹 눌러 담는다. 근무 환경 개선은 감히 요구하지도 못한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매달 주던 식비 5만 원을 삭감하거나 경비원끼리 에어컨 비용을 걷어 설치하고 전기요금을 자비로 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경비원이 업무상 사고와 질병 등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4984건이었다. 상반기 추세를 볼 때 올해 50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경비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비용 절감을 위해 1개월, 3개월 ‘쪼개기’ 계약이 성행하는 계약직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입주자 대표 회의가 직접 고용하든, 경비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이든 일자리가 불안정한 건 마찬가지다. 이러니 경비원을 보호할 법을 만들어도 현장에선 ‘종이호랑이’가 된다. ▷‘저같이 억울하게 당하다가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주세요.’ 2020년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행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모멸감과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주민 갑질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졌고 정부는 부랴부랴 경비원 근무 환경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경비원의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아파트와 빌딩에 대략 150만 명 이상 경비원이 근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이가 들어 ‘마지막 일자리’까지 밀려났다고 해서 평생 능력이 없었던 것도, 성실하지 않았던 것도, 멸시가 당연한 것도 아니다. 존엄하지 않은 직업이란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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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위험천만한 이륜차 리튬배터리 집안 충전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17일 서울 마포구 아파트 화재는 아들 방에서 충전 중이던 전동 스쿠터의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불이) 석유를 부은 것처럼 확 올라왔다”고 했고, 이웃 주민은 “펑, 펑, 펑 폭발음이 세 번 반복됐다”고 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의 특징인 ‘열폭주’ 현상이다. 꼭 닮은 사고가 한 달 전 부산 북구 아파트에서도 있었다. 전동 스쿠터 배터리, 에어컨,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보관했던 현관 바로 옆방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솟구쳐 미처 대피하지 못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졌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작고 강한 심장에 비유할 수 있다. 부피당 전기 에너지 밀도가 높아 크기가 작고 충전이 빠르다. 수명도 길다. 그래서 스마트폰, 노트북 등 소형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전동 스쿠터와 킥보드, 자전거 등 전기 이륜차에도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온도, 습기, 충격에 아주 민감해서 잘못 관리하면 불이 나기 쉽다.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야외에 대충 세워 둔 전동 스쿠터나 킥보드에 갑자기 불이 붙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배터리 내부에 양극(+)과 음극(―)을 나누는 분리막이 온도가 높거나 습기가 차면 손상되기 쉽기 때문이다. 분리막이 손상돼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으면 온도가 1000도까지 올라가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난다. 배터리가 전소할 때까지 진화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은 통계적으로 화재 발생률이 가장 낮은 계절이었는데,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빈번해지면서 화재에 계절도 없어졌다. ▷최근 5년간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10건 중 9건은 킥보드, 자전거 등 전기 이륜차가 그 원인이었다. 전기차와 달리 전기 이륜차는 과충전을 막아주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탑재하지 않았거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집에서 직접 충전하는 경우가 많아 화재 피해를 키우고 있다. 주로 공동주택 생활을 하는 국내에서 실내 충전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올바르게 사용하면 안전한 기술이다. 품질 인증을 받은 정품 배터리와 충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취침이나 외출 중에 충전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과충전은 화재를 부른다. 충전이 완료되면 즉시 플러그를 뽑는다. 불씨를 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꺼번에 여러 기기를 멀티탭에 꽂아두는 것도 금물이다. 배터리 제품을 차량 내부, 창가, 베란다 등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지 않은 곳에 두면 안 된다. 배터리가 충격을 받았다면 분리막이 변형될 수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고 수리를 받아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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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권력형’ 재테크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대통령의 부인이 반클리프아펠, 샤넬, 디올 등 명품을 받고 공직을 넘기거나 예산을 줬다고 한다. 그 뒤에는 무속인이 있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여성, 명품, 종교 등 흡입력 있는 줄거리에 ‘눈떠 보니 후진국’이라는 자괴감이 더해지며 김건희 여사 의혹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왔다. 그에 비해 남성, 주식, 정책 등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 이춘석 의원의 차명 주식 거래는 금세 분노가 휘발된 것 같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의 사익 추구가 우리 사회에 덜 해롭다고 할 수 있을까.권력이 돈을 탐할 때 이 의원의 차명 주식 거래 의혹은 고약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4일 오후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 발언 중 고개를 푹 숙인 채 주가 호가창을 띄워 네이버 주식을 5주씩 거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본업을 팽개치고 주식 거래를 한 것부터 성실 의무 위반인데 알고 보니 보좌관 명의 주식 계좌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도중에도 보좌관 명의로 주식 거래를 하다 들킨 적이 있다. 만약 차명 거래로 확인된다면 국회 법사위원장이 금융실명제법과 공직자윤리법을 대놓고 위반한 셈이다. 주식 거래 내용은 더욱 놀랍다. LG CNS 420주와 네이버 150주, 모두 6400만 원어치를 신용 매수했다. 지난해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약 373만 원) 17개월 치를 ‘빚투’한 것인데 보통 사람이라면 함부로 베팅할 수 없는 돈이다. 그는 인공지능(AI) 국가대표 기업 발표 직전에 이들 주식을 매수했다. 국정기획위원회 AI 정책 담당 분과장이었으니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지금까지 정황만으로도 이해 충돌 소지가 다분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이 의원은 “보좌관 전화를 잘못 들고 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분증과 다름없는 휴대전화를 바구니에 두고 같이 쓰기라도 한다는 건가. 만약 거짓말이라면 보좌관은 이름까지 뺏긴 갑질을 당한 셈이다.선출된 권력의 사익 추구 더 위험 이 의원은 주식 창을 여는 수고라도 했지만 새 정부 인사청문회 과정을 보면 돈이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배추 농사에 2억 원을 투자하고 미국 유학 2년간 매달 450만 원을 받았다. 연간 수익률이 27%다. 축의금, 부의금, 출판기념회로는 수억 원을 벌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2023년 5곳, 2024년 4곳의 기업과 대학에서 약 1억5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김 총리와 권 장관 모두 십수 년간 공천을 못 받거나 낙선을 했는데도 일종의 명예로 그만한 돈을 벌어들였다. 낙선 의원도 이런데 현직 의원은 어땠을까.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하면서 묻혔지만 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남편이 보유한 주식도 석연치 않다. 강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이었던 2020년부터 그의 남편은 바이오 업체 감사로 일했고 2022년에는 스톡옵션 1만 주를 받았다. 재산 신고에도, 인사청문회 자료에도 누락된 주식이다. 강 의원은 “스톡옵션 거부 의사를 밝혀 취소된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정부 규제에 민감한 바이오 업체가 국회의원의 남편을 월급도, 주식도 주지 않고 무보수로 부린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할 자리에서 사익을 좇기 시작하면 정책 결정은 왜곡되고 줄을 대려는 반칙이 난무한다. 권력을 쥐고 돈을 벌기로 작정하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이를 스스로 경계할 수 없다면 제발 경계할 수밖에 없도록 장치를 만들라.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권력형 재테크’를 엄벌하는 선례를 남겨야 하는 건 물론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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