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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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5-11-23~2025-12-23
문화 일반77%
여행17%
문학/출판3%
인물/CEO3%
  • 싱가포르의 주토피아 실험… ‘자연 속 도시’ 만다이[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오전 7시 반, 싱가포르 북부 만다이 보드워크. 입장권이 필요 없는 이 자연 산책로에 들어서자 열대의 새소리가 가득 퍼졌다. 치르르, 끼리릭. 고요한 저수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3.3km 길이의 나무 데크는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와 서식처를 방해하지 않도록 숲의 허리춤에 떠 있었다. 이 초록길의 주인은 야생동물이었다.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시민들을 만나도 피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들 삶의 터전을 스쳐 가는 무해한 방문객일 뿐이었다. 길에는 안내문이 있었다. ‘야생 원숭이는 싱가포르 주민입니다.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합시다.’ 운이 좋으면 멸종 위기인 노란머리직박구리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 싱가포르의 ‘자연 속 도시’1960년대부터 ‘정원 도시’를 표방한 싱가포르가 2021년 새롭게 내세운 국가 비전은 ‘자연 속 도시(City in Nature)’다. 단순히 공원과 정원을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생태계로 편입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사람들이 일하고 여행하는 삶의 방식 속에 자연을 엮어 넣겠다는 것이다. 만다이는 이 전략의 핵심 공간이다. 1973년 싱가포르동물원이 들어선 이래 2010년대 야생동물·자연유산 정비구역으로 재정비됐다. 서부 주롱 지역에 있던 세계 최대 규모 새 공원도 만다이로 옮겨와 2023년 ‘버드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올해엔 반얀그룹의 100번째 호텔 만다이 레인포레스트 리조트 바이 반얀트리(이하 만다이 리조트)도 들어섰다.만다이는 싱가포르 정부와 국부펀드 테마섹이 지원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싱가포르동물원, 나이트 사파리, 버드 파라다이스, 야생동물병원과 만다이 리조트까지 하나의 계획 아래 통합된 국가 전략형 생태관광 단지다. 지난달 말 만다이 리조트 그랜드 오프닝 축제에 싱가포르 대통령이 참석하고 축제 수익 전액을 ‘대통령 챌린지’라는 이름의 사회 공헌 캠페인에 기부한 것은 만다이 개발이 단순한 관광 사업이 아니라 도시 복지이자 공적 책무라는 점을 상징한다. 자연에 접근할 권리를 도시가 보장하고 자연을 시민 삶의 공공재로 다루겠다는 싱가포르식 선택이다.● 문턱을 낮춘 ‘포용적 럭셔리’만다이 리조트도 자연 속 도시 전략의 하나다. 리조트 건물 1층은 벽 없이 기둥만으로 땅에서 띄워 야생동물 이동을 방해하지 않고, 새들을 부르기 위해 싱가포르 토착 수종을 심어 숲을 복원했다. 입구 양옆에 들어선 레인트리와 인디언비치트리도 그 자리에 있던 오래된 나무를 베지 않고 보존한 것이다. 포탄나무 열매 모양 놀이터 정글짐, 씨앗 껍질을 형상화한 트리하우스, 빗줄기처럼 건물을 덮는 초록 덩굴식물 같은 디자인 요소도 인상적이었지만, 객실마다 정수기를 두어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없앤 게 더 눈길을 끌었다. 이 리조트는 지난달 그랜드 오프닝을 하면서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창립자와의 대화 세션’과 ‘도시와 자연’ 패널 대담을 열었다. 싱가포르 출신의 반얀그룹 공동 창립자들은 왜 이제야 싱가포르에 처음으로 호텔을 열었을까. 1994년 반얀그룹을 공동 창립한 호권핑 회장과 아내 클레어 창 수석 부사장은 말했다. “마리나베이나 오차드로드처럼 그저 좋은 위치가 아니라, ‘진정한 상징적 장소’를 오래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만다이는 여행객들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야생을 접하며 환경과 공동체를 더 나은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여행 수익이 멸종위기종 복원과 사회공원으로 환원되는 재생적 관광(regenerative tourism)이지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숲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 목소리에 정부와 기업은 재생과 공존이라는 정교한 설계로 답해야 했다. 호 회장은 ‘포용’을 강조했다. “본래 반얀트리 스타일이라면 1박에 약 1000달러인 트리하우스만 지었겠지만, 1박에 약 300달러인 숙박동 객실도 함께 지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기준으로는 저렴하지 않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특별히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에르메스처럼 희소성을 내세우는 브랜드도 있지만 조금 비싸도 많은 이가 찾는 애플 같은 포용적 브랜드도 있죠.” 하룻밤 300달러는 여전히 재력을 갖춘 이들을 위한 포용이지만, 럭셔리의 배타성을 걷어내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건 사실이다. 숙박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찾아와 주변 자연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조경은 이런 포용을 가능하게 했다. 조경가를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시켜 서식처를 복원하고, 기후 위기 회복력을 높이는 공공 기술로 조경을 활용했다.● 다른 종(種)이 함께하는 세상 싱가포르동물원에 들어서면 두 번 놀란다. 첫째, 철창이 있는 한국 동물원과 달리 도랑못을 비롯한 지형을 이용해 동물을 감금하지 않는다. 둘째, 사람이 있든 말든 개의치 않는 동물의 태도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인데도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긴 시내 금융가 한복판을 야생 닭이 활보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싱가포르의 일상이다. 청 웬 하우 만다이 와일드라이프 그룹 부대표(최고생명과학책임자)는 “사람들이 동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함부로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싱가포르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동물의 야생성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을 철저히 계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동물원 야생동물 헬스케어 연구센터에서는 도시에서 부상당한 채 구조된 동물을 치료해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날개 깃털 일부가 불에 탄 독수리는 자연사한 다른 새들 깃털을 이식받아 새로운 날개로 10km 넘게 비행했다. 3D 프린터로 만든 보철기 등은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걸 돕는다. 유리창 너머 의료진 모습에서 위기에 처한 동물을 최전선에서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도시는 자연 속에 존재할 수 있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처럼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일부 환경단체는 만다이 개발에서 서식지 교란, 조류 충돌 가능성, 야생동물 이동 경로 단절을 문제 삼아 왔다. 만다이는 이런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답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깜깜한 밤 만다이 리조트 연못에서 들었던 개구리들의 우렁찬 합창 소리, 버드 파라다이스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수많은 새집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다이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우리가 파괴한 생태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묵직하게 질문한다. 우리는 정원박람회나 일회성 축제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생태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는가. ‘보기 좋은 초록’을 늘리는 데 급급해 인간 개입이 낳을 부작용에는 눈 감고 있지는 않은가. 만다이는 ‘더 많이 만드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자연’을 보여준다.싱가포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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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의 주토피아 실험… ‘자연 속 도시’ 만다이[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오전 7시 반, 싱가포르 북부 만다이 보드워크. 입장권이 필요 없는 이 자연 산책로에 들어서자 열대의 새소리가 가득 퍼졌다. 치르르, 끼리릭. 고요한 저수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3.3km 나무 데크는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와 서식처를 방해하지 않도록 숲의 허리춤에 떠 있었다. 이 초록길의 주인은 야생동물이었다.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시민들을 만나도 피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들 삶의 터전을 스쳐 가는 무해한 방문객일 뿐이었다. 길에는 안내문이 있었다. ‘야생 원숭이는 싱가포르 주민입니다.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합시다.’ 운이 좋으면 멸종 위기인 노란머리직박구리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의 ‘자연 속 도시’1960년대부터 ‘정원 도시’를 표방한 싱가포르가 2021년 새롭게 내세운 국가 비전은 ‘자연 속 도시(City in Nature)’다. 단순히 공원과 정원을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생태계로 편입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사람들이 일하고 여행하는 삶의 방식 속에 자연을 엮어 넣겠다는 것이다. 만다이는 이 전략의 핵심 공간이다. 1973년 싱가포르동물원이 들어선 이래 2010년대 야생동물·자연유산 정비구역으로 재정비됐다. 서부 주롱 지역에 있던 세계 최대 규모 새 공원도 만다이로 옮겨와 2023년 ‘버드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올해엔 반얀그룹의 100번째 호텔 만다이 레인포레스트 리조트 바이 반얀트리(이하 만다이 리조트)도 들어섰다.만다이는 싱가포르 정부와 국부펀드 테마섹이 지원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싱가포르동물원, 나이트 사파리, 버드 파라다이스, 야생동물병원과 만다이 리조트까지 하나의 계획 아래 통합된 국가 전략형 생태관광 단지다. 지난달 말 만다이 리조트 그랜드 오프닝 축제에 싱가포르 대통령이 참석하고 축제 수익 전액을 ‘대통령 챌린지’라는 이름의 사회 공헌 캠페인에 기부한 것은 만다이 개발이 단순한 관광 사업이 아니라 도시 복지이자 공적 책무라는 점을 상징한다. 자연에 접근할 권리를 도시가 보장하고 자연을 시민 삶의 공공재로 다루겠다는 싱가포르식 선택이다.● 문턱을 낮춘 ‘포용적 럭셔리’만다이 리조트도 자연 속 도시 전략의 하나다. 리조트 건물 1층은 벽 없이 기둥만으로 땅에서 띄워 야생동물 이동을 방해하지 않고, 새들을 부르기 위해 싱가포르 토착 수종을 심어 숲을 복원했다. 입구 양옆에 들어선 레인트리와 인디언비치트리도 그 자리에 있던 오래된 나무를 베지 않고 보존한 것이다. 포탄나무 열매 모양 놀이터 정글짐, 씨앗 껍질을 형상화한 트리하우스, 빗줄기처럼 건물을 덮는 초록 덩굴식물 같은 디자인 요소도 인상적이었지만, 객실마다 정수기를 두어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없앤 게 더 눈길을 끌었다.이 리조트는 지난달 그랜드 오프닝을 하면서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창립자와의 대화 세션’과 ‘도시와 자연’ 패널 대담을 열었다. 싱가포르 출신의 반얀그룹 공동 창립자들은 왜 이제야 싱가포르에 처음으로 호텔을 열었을까. 1994년 반얀그룹을 공동 창립한 호권핑 회장과 아내 클레어 창 수석 부사장은 말했다. “마리나베이나 오차드로드처럼 그저 좋은 위치가 아니라, ‘진정한 상징적 장소’를 오래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만다이는 여행객들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야생을 접하며 환경과 공동체를 더 나은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여행 수익이 멸종위기종 복원과 사회공원으로 환원되는 재생적 관광(regenerative tourism)이지요.”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숲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 목소리에 정부와 기업은 재생과 공존이라는 정교한 설계로 답해야 했다. 호 회장은 ‘포용’을 강조했다. “본래 반얀트리 스타일이라면 1박에 약 1000달러인 트리하우스만 지었겠지만, 1박에 약 300달러인 숙박동 객실도 함께 지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기준으로는 저렴하지 않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특별히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에르메스처럼 희소성을 내세우는 브랜드도 있지만 조금 비싸도 많은 이가 찾는 애플 같은 포용적 브랜드도 있죠.”하룻밤 300달러는 여전히 재력을 갖춘 이들을 위한 포용이지만, 럭셔리의 배타성을 걷어내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건 사실이다. 숙박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찾아와 주변 자연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조경은 이런 포용을 가능하게 했다. 조경가를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시켜 서식처를 복원하고, 기후 위기 회복력을 높이는 공공 기술로 조경을 활용했다.● 다른 종(種)이 함께하는 세상싱가포르동물원에 들어서면 두 번 놀란다. 첫째, 철창이 있는 한국 동물원과 달리 도랑못을 비롯한 지형을 이용해 동물을 감금하지 않는다. 둘째, 사람이 있든 말든 개의치 않는 동물의 태도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인데도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긴 시내 금융가 한복판을 야생 닭이 활보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싱가포르의 일상이다. 청 웬 하우 만다이 와일드라이프 그룹 부대표(최고생명과학책임자)는 “사람들이 동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함부로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싱가포르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동물의 야생성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을 철저히 계산한 결과이기도 하다.싱가포르동물원 야생동물 헬스케어 연구센터에서는 도시에서 부상당한 채 구조된 동물을 치료해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날개 깃털 일부가 불에 탄 독수리는 자연사한 다른 새들 깃털을 이식받아 새로운 날개로 10km 넘게 비행했다. 3D 프린터로 만든 보철기 등은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걸 돕는다. 유리창 너머 의료진 모습에서 위기에 처한 동물을 최전선에서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도시는 자연 속에 존재할 수 있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처럼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일부 환경단체는 만다이 개발에서 서식지 교란, 조류 충돌 가능성, 야생동물 이동 경로 단절을 문제 삼아 왔다. 만다이는 이런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답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깜깜한 밤 만다이 리조트 연못에서 들었던 개구리들의 우렁찬 합창 소리, 버드 파라다이스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수많은 새집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다이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우리가 파괴한 생태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묵직하게 질문한다. 우리는 정원박람회나 일회성 축제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생태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는가. ‘보기 좋은 초록’을 늘리는 데 급급해 인간 개입이 낳을 부작용에는 눈 감고 있지는 않은가. 만다이는 ‘더 많이 만드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자연’을 보여준다.싱가포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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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폴키즈, 2026년 신학기 책가방 출시

    삼성물산 패션부문 브랜드 빈폴키즈가 클래식한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취향과 경량성을 고려한 2026년 신학기 책가방을 선보였다.빈폴키즈는 클래식한 멋을 담은 책가방 구성을 강화하면서 빈폴을 상징하는 ‘B’ 로고를 활용한 ‘모노그램 책가방’ 시리즈를 새롭게 내놓았다. 컬러풀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오로라 색상과 단정하고 깔끔한 디자인 등을 다채롭게 준비했다. 자전거 로고와 고유 패턴인 헤릿 체크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도 제안했다.화려함을 좋아하는 취향에 맞춘 책가방도 출시했다. 트위드와 애나멜 소재, 리본과 구슬 장식, 오로라와 하트 퀼팅 패턴 등을 활용해 화사하고 반짝이는 디자인을 선보였다.이번에 출시한 ‘곰돌이 책가방’은 375g으로 매우 가벼운 게 특징이다. 곰돌이 캐릭터와 시그니처 체크를 적용해 귀여우면서도 클래식한 감성을 표현했다. 또 브랜드명과 자전거 로고로 심플하게 디자인한 ‘레터링 백팩’도 390g으로 제작해 가벼운 책가방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했다.정아롱 삼성물산 패션부문 빈폴키즈 팀장은 “빈폴의 브랜드 정체성과 아이들의 성별 취향, 경량성을 두루 고려해 내년 책가방 라인업을 다채롭게 준비했다”면서, “아이들을 위한 연말·새해 선물로 새학기의 설렘을 담은 책가방을 추천한다”고 말했다.빈폴키즈는 연말을 맞아 홀리데이 무드의 신상품도 공개해 호응을 얻고 있다. 레드, 그린이 섞인 체크 패턴이 적용된 셔츠, 트위드 원피스와 퍼 가방 세트, 반짝이는 샤 원피스 등을 선보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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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버랜드, 눈썰매장 ‘스노우 버스터’가동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이 운영하는 에버랜드가 온 가족이 함께 겨울 판타지 속 야외 활동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눈썰매장 ‘스노우 버스터’를 순차 가동했다.하얀 눈빛이 반짝이는 알파인 빌리지에 마련된 스노우 버스터에서는 눈썰매 체험 뿐 아니라 스노우 플레이 그라운드, 스노우 야드 등 더 넓고 다양해진 눈놀이터가 마련돼 신나는 겨울 추억을 선물한다.에버랜드는 눈썰매를 기다려온 고객들이 더 빨리 눈빛 레이스를 즐길 수 있도록 올해 스노우 버스터 오픈 일정을 예년보다 약 일주일 가량 앞당겼다.12일 스릴 넘치는 눈썰매장 레이싱 코스와 스노우 야드가 먼저 개장했고, 19일에는 스노우 플레이 그라운드가 추가 오픈할 예정이다. 200m 길이의 눈썰매장 익스프레스 코스는 기상 상황에 따라 다음달 초 가동을 계획하고 있어 기대감을 더한다.가장 먼저 가동되는 레이싱 코스에서는 높은 경사에서 설원을 빠르게 질주하며 눈썰매 경주를 펼칠 수 있다. 최대 4명까지 거대한 원형튜브로 함께 타고 내려오는 익스프레스 코스에서는 가족, 친구, 연인이 서로 마주 보며 비명과 웃음을 터뜨리는 이색적인 눈썰매 체험을 즐길 수 있다.온 가족이 함께 눈놀이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눈썰매장 앞에 마련된 체험존에서 자유롭게 스노우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던 스노우 트랙을 확장해 새롭게 조성한 스노우 플레이 그라운드에는 바디 슬라이드 존이 운영되는 등 체험 콘텐츠가 풍성하다. 더욱 넓어진 공간에서 레인을 따라 나무 썰매를 타볼 수 있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눈사람 조형물, 가랜드 등도 함께 연출돼 겨울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눈 세상에서 신나게 뛰어논 방문객들을 위한 ‘핫푸드 스트리트’와 ‘베이글 위시 라운지’도 알파인 빌리지 입구에 마련된다. 핫푸드 스트리트에서는 군고구마와 붕어빵같은 따끈따끈한 겨울 간식부터 유부꼬치어묵우동, 매콤가래떡볶이 등 든든한 식사 메뉴들을 맛볼 수 있다. 베이글 위시 라운지에서는 편안하게 쉬며 귀여운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스노우 버스터는 에버랜드 이용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코스에 자동 출발대, 튜브 이송대(리프트), 눈 턱으로 만든 전용 레인, 충격방지용 에어바운스 등이 마련돼 있어 편리하고 안전한 눈썰매 체험이 가능하다.한편 오즈의 마법사 테마 겨울축제가 한창인 에버랜드에서는 다양한 겨울 시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알파인 빌리지에 마련된 ‘마녀의 서프라이즈 박스’에서는 선물상자 안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360도 회전 카메라를 이용해 이색적인 영상을 찍을 수 있다. ‘스노우 오즈 포토월’에서는 레니와 친구들 캐릭터를 배경으로 특별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포시즌스 가든은 크리스마스 컨셉의 에메랄드 시티로 변신해 도로시, 양철나무꾼, 허수아비 등 오즈의 마법사 캐릭터별 스토리를 살린 테마존을 선보이며 연말까지 매일 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불꽃쇼’도 펼쳐진다. 퍼레이드, 댄스, 포토타임 등 크리스마스 콘텐츠를 통해 산타, 루돌프를 만나며 성탄절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겨울 시즌 에버랜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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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우더 스노우 위의 겨울 리트리트, 무와 니세코

    럭셔리 웰니스 리조트 ‘무와 니세코’(MUWA NISEKO)가 국제적 어워드에서 연이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쉐린 가이드의 일본 호텔 셀렉션에서 미쉐린 원키(Michelin One Key)를 2년 연속 획득한 데 이어, 글로벌 럭셔리 매거진 롭 리포트 홍콩(Robb Report Hong Kong)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2026’의 ‘알파인 어드벤처’ 부문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 수상으로 무와 니세코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스키 리조트로서의 위상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무와 니세코는 세계적인 스키 여행지로 알려진 니세코 그랜드 히라후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홋카이도 산악 마을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 디자인은 시선을 잡아 끌면서도 주변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특히 스키 시즌에는 객실 테라스 및 리조트 전용 입구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파우더 스노우’에 곧바로 발을 디딜 수 있는 독보적 경험을 자랑한다.무와 니세코가 2년 연속 선정된 ‘미쉐린 키(Michelin Key)’는 미쉐린 가이드가 새롭게 도입한 호텔 평가 기준이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미쉐린 스타처럼, 뛰어난 호텔과 매력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숙박 시설을 평가해 1개에서 3개의 열쇠를 부여한다. 이 중 미쉐린 원키는 ‘특별한 체류를 제공하는 숙박시설’에게 부여된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첫 미쉐린 키 호텔을 발표했으며, 무와 니세코는 2023년 12월 개관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원 키 호텔로 선정되었다. 올해에는 일본 전역 128개 숙박시설이 미쉐린 키를 수상했으며 무와 니세코는 2년 연속 원 키를 획득했다.글로벌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롭 리포트 홍콩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2026: 트레블, 익스피리언스 & 호스피탈리티 에디션’은 ‘알파인 어드벤처’ 부문에 ‘니세코의 시크한 겨울 리트리트(Chic Winter Retreat in Niseko)’를 선정했다. 같은 부문에는 아만 로사 알피나(Aman Rosa Alpina), 식스센스 크랑 몬타나(Six Senses Crans-Montana)등 세계적 스키 리조트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무와 니세코는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웰니스 여정을 제공한다. 특히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 불리우는 요테이산의 숨막히는 경치를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야외 인피니티 온천 경험은 무와 니세코를 대표하는 웰니스 체험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개인 맞춤형 트리트먼트를 제공하는 무와 스파를 비롯해 7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를 획득했던 스타 셰프 ‘타쿠보’가 이끄는 올 데이 이탈리안 다이닝 ‘히토 바이 타쿠보’, 113년 전통과 10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에 빛나는 스키야키 레스토랑 ‘스키야키 히야마’ 등을 통해 고요한 휴식부터 활기찬 연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는 웰니스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무와 니세코 관계자는 “잇따른 국제적 어워드 수상은 무와 니세코가 글로벌 수준의 호스피탈리티를 제공하는 리조트임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무와 브랜드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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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생활건강 비욘드·VDL, ‘2025 올리브영 어워즈’ 3관왕 영예… 프리미엄 뷰티의 완성

    LG생활건강이 최근 ‘올리브영’에서 주최하는 어워즈에서 △비욘드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 △VDL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 △VDL 커버 스테인 하이커버 쿠션 등 3개 제품이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올리브영 어워즈는 1년간 고객들의 구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부문별 우수 제품을 선정하는 프로모션이다. 실제 소비자의 선택 결과를 반영한 만큼 업계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지표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클린뷰티 브랜드 비욘드의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는 핸드케어 부문 1위를 차지했고,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VDL의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과 ‘커버 스테인 하이커버 쿠션’은 각각 베이스 부문 ‘MD’s Pick(엠디스 픽)’과 트렌드 부문 ‘Rising Star(라이징 스타)’로 선정됐다.비욘드의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는 2023년 올리브영 어워즈 핸드케어 부문 3위에서 올해 1위로 올라서며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2005년 4월 출시 이후 약 655만 개가 팔리는(1분당 약 9개 판매)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다.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는 포근한 살냄새로 잘 알려진 은은하고 섬세한 파우더리 머스크향과 우수한 잔향 지속력으로 전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더불어 촉촉하면서도 끈적임 없는 산뜻한 사용감으로 일상에서 폭넓게 사용되며 핸드케어 카테고리의 리더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달에는 뷰티플랫폼 ‘글로우픽’과 ‘앳코스메’가 공동 진행한 ‘2025 글로우픽 어워드 겸 앳코스메 코리아 어워드’에서 핸드크림 부문 2위에 올라 높은 소비자 만족도를 입증했다.VDL은 ‘베이스 명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과 ‘커버 스테인 하이커버 쿠션’으로 올리브영 어워즈 2관왕을 달성했다. 두 제품 모두 얇고 가벼운 사용감과 우수한 지속력으로 ‘사용이 편리하면서도 완벽한 베이스’라는 평가를 받으며 MZ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특히 VDL의 대표 제품인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은 기초 화장품보다 구매 주기가 긴 색조 화장품임에도 불구하고 2023년 리뉴얼 이후 10∼2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3년도 채 안돼 110만 병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VDL의 올리브영 입점 매장 수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485개점에서 1140개점으로 2배 이상 늘었으며, 올해 1∼10월 VDL의 올리브영 매출액 또한 전년 동기 대비 약 135% 늘었다.LG생활건강은 이번 수상을 기념해 한정 수량으로 올리브영 단독 기획세트를 선보였다. 비욘드는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 기획’을 통해 기존 100ml 본품에 30ml 용량을 추가 증정하고, VDL은 소프트한 감성의 패션 브랜드 ‘소프트서울’과 협업한 한정판 굿즈를 마련했다. 기획세트는 풍성한 구성으로 연말연시 선물로도 제격이다.LG생활건강 관계자는 “앞으로도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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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배송 쇼핑몰 오아이스마켓과 함께 하는 ‘오아시스 삼성카드’

    삼성카드가 새벽배송 전문 쇼핑몰 ‘오아시스마켓’과 함께 ‘오아시스 삼성카드’를 선보였다.오아시스마켓은 친환경·유기농 프리미엄 상품을 365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온·오프라인 전문 쇼핑몰로, 이 카드로 오아시스마켓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3만 원 이상 결제시 5000원 할인을 전월 실적에 따라 월 최대 4회 제공한다. 할인 혜택을 정액으로 제공함으로써 고객이 할인 혜택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커피전문점·델리 이용금액의 50%를 월 5000원까지 할인해주고, 의료 업종 이용시 10% 할인 혜택을 월 최대 1만 원까지, 올리브영·다이소 이용시에는 10% 할인 혜택을 월 최대 1만 원까지 제공한다. 해외 가맹점 이용시에는 전월 이용 실적과 할인 한도 없이 1.5%를 할인해준다.삼성카드와 오아시스는 카드 출시를 기념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연말까지 진행한다. 오아시스마켓에서 오아시스 삼성카드로 4만 원 이상 결제시 3만 원을 캐시백 해준다. 31일까지 오아시스마켓에서 누적 30만 원 이상 이용시에는 추가로 3만 원을 캐시백 해준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오아시스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오아시스마켓 혜택은 물론 고객들이 선호하는 일상 영역에서도 다양한 할인 혜택을 담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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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국회의원 유족회, 14일 창립 30주년 출판기념회 열어

    (사)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유족회(회장 윤인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14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글래드 호텔 블룸홀에서 ‘시대의 얼굴들-제헌국회의원을 추억하다’(미래엔) 출판기념회를 연다. 1948년 5월 31일 개원한 제헌국회는 2년의 임기 동안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뽑힌 재보선 포함 209명의 제헌국회의원이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고 국가 운영 체제인 헌법을 제정했다. 초대 대통령과 9명의 초대 내각을 배출하는 등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1995년 창립된 (사)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유족회는 올해 30주년을 맞아 제헌국회의원 44명의 사진과 편지, 증언을 모아 가족의 시선에서 본 선대의 모습을 책으로 엮었다. 대한민국 정부 초대 내무부 장관 등을 지낸 윤치영 제헌국회의원의 손자인 윤인구 회장은 “창립 30주년 기념 서적은 제헌국회의원들의 인간적 면모를 담은 시대의 증언”이라며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의 기록으로 대한민국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하는 역사적 숨결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회 숙원 사업이었던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은 여야 다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으며 통과 시 내년 7월 17일 제헌절은 18년 만에 공휴일로 재지정 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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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 떠난 자리, 350살 밤나무… 만추(晩秋)의 광릉숲엔 철학이 있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수북하게 쌓인 낙엽은 ‘바스락’ 소리를 내는 단풍칩 양탄자였다. 계수나무 낙엽에서는 여전히 달콤한 향이 났다. 봄부터 가을까지 소명을 다하고 땅에 내려온 낙엽은 저마다 찬란했을 삶의 초상(肖像). 그들은 비로소 자유로울까, 회한이 남았을까. 광릉숲에 자리한 국립수목원에서 낙엽을 밟으면 걸음이 느려지고 말수는 준다. 560년 된 숲에 조성된, 특별한 정원 두 곳이 만추(晩秋)에 깊은 사유를 일으킨다.● 감금의 흔적을 품은 정원시멘트벽에 걸린 반달가슴곰 사진 위로 가을 햇살이 철창 형태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달 초 국립수목원에 새롭게 선보인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3000㎡)이다. 1991년부터 2017년까지 곰 사육장이었던 이곳은 동물원 폐쇄 후 폐허처럼 방치돼왔다. 녹슨 철창, 벽면에 찍힌 곰 발바닥 자국…. 정원은 그 감금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품었다.1998년 11월 이 사육장에 살던 백두산 반달가슴곰이 죽었다. 정확한 사인(死因)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멘트 독(毒)이 올라 곰이 발바닥을 딛고서지 못하고 ‘낮은 포복’하듯 기어 다녔다”는 방문객의 목격담이 당시 신문기사에 실려 있다. 몸을 숙여 곰이 살던 비좁고 어두운 방을 둘러보니 죽은 곰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밖으로 나와 농익은 가을빛이 스민 광릉숲을 보고나서야 숨이 트였다. 잠시 나는 곰이 되었던 걸까.벽체 일부를 걷어내 숲의 경관을 끌어들인 옛 사육장엔 자생식물이 들어섰다. 빛이 스며들 때 그림자가 아름다운 식물을 심은 섬세함이 돋보였다. 여전히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는 이끼나 버섯으로 감금의 시간을 은유했다. 사육사가 곰의 출산을 지켜보던 벽체의 작은 구멍에 눈을 갖다 대니, 루페(확대경) 렌즈를 통해 안쪽 식물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깊은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자 식물의 생명력을 새삼 알아차리게 됐다. 정원은 기억 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사육사가 머물던 공간에는 식물 수집가 고(故) 어니스트 헨리 윌슨(1876~1930)이 1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찍은 숲의 사진을 전시했다. 우리가 여력이 없던 시절 이방인이 남긴 숲의 기록은 친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올여름 수해 때 쓰러진 전나무로 만든 벤치에 앉아 건물 위를 올려다보자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식물, 동물, 미생물이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아가는 숲의 의미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보였다.국립수목원은 왜 폐허를 정원으로 만들었을까. 이 사업은 산림청이 공공정원 확대를 위해 추진 중인 ‘생활권역 실외정원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버려진 땅에 생태적 회복의 의미를 부여해 다양한 생명체가 숲의 주권자임을 드러내겠다는 취지다.공사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그대로 둬도 훌륭한 숲에 굳이 정원이라는 인위성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참회인지 감동인지 모를 방문객들의 눈물을 본다. 최근 국립수목원에서 열린 ‘2025 국제정원치유 심포지엄’ 발표자로 방한한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울리카 K. 스티그도터 교수도 이 정원을 함께 둘러보며 말했다. “좁은 공간에 동물을 가두었던 과거를 드러내고 자연을 회복시키는 방식을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누구나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치유라고 부르든 치료라고 부르든 우리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하는 감동적인 정원이다.”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곰을 가뒀던 인간이 그 흔적 위에 정원을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비로소 곰의 시선에서 숲을 대하고 있을까. 정원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침대형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여기에 누워 나무를 올려다보자 30m 떨어진 계곡의 물소리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평양냉면을 닮은 한국의 숲 정원”광릉숲의 역사는 조선 제7대 세조의 능림(陵林)이 조성된 14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릉으로 엄격하게 보존 관리돼 온대 중부 낙엽활엽수림의 극상림(생태계가 안정된 숲의 마지막 단계)을 보여주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늘 궁금해한다. ‘이 오래된 숲의 속살은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광릉숲의 대부분 구역은 생태 보전을 위해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광릉숲 2426ha 중 국립수목원 전시원은 102ha 규모다.국립수목원이 지난해 가을 조성한 ‘비밀의 정원’(7000㎡)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 ‘보여줄 수 없는 숲을 보여주자’. 인간이 의도적으로 질서를 만들어낸 수목원 내 전나무 인공림을 통과하면 어느 순간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천연림으로 전이되는 공간이 나온다. 그곳이 ‘비밀의 정원’의 시작점이다.쓰러진 나무로 만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숲속에 폭 1.8m의 길이 이어졌다. 양쪽에는 오래된 나무와 그 아래에서 막 자라기 시작한 어린나무가 함께 서 있었다. 나이가 들어 힘이 빠져야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를 품는다는 서어나무는 나무껍질이 근육질처럼 우람했다. 물푸레나무는 잎을 떨군 뒤라 까막딱따구리가 커다랗게 파놓은 둥지가 선명했다. 오래돼 쓰러진 졸참나무는 나무가 살아온 시간을 상상하게 했다.길 따라 걷다 보면 광릉숲에서 가장 오래된 350살 밤나무를 만난다. 천천히 이 나무를 만나도록 길은 일부러 둥글게 돌아간다. 가슴둘레가 4m가 넘는 밤나무를 안아보니 나무가 견뎌낸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무를 감상하도록 조금 떨어져 놓인 의자에 앉으니 나무 뒤로 해가 비추었다.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왜 ‘비밀의 숲’이 아니라 ‘비밀의 정원’일까.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단지 미개방지역을 연 게 아니라, 숲의 서사를 발견해 드러냈다”고 말한다. 졸참나무, 서어나무, 엄나무가 엉켜 있는 자리에는 ‘치열한 공존’이란 푯말이 붙어 있었다. 몸을 비틀거나 가지 틈으로 뻗으며 함께 자라던 나무들은 죽어서도 서로를 받쳐준다. 다래가 층층나무에 해를 입히지 않고 감아 올라가는 모습엔 ‘슬쩍 기대어 살아가는’이란 문구가 있었다. 인간의 개입을 덜어내자,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들이 현자(賢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정원을 둘러본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비밀의 정원은 평양냉면 같다. 양념에 의존하지 않고 재료에 집중하는 평양냉면처럼 숲의 본질을 드러낸 ‘한국형 숲 정원’의 모범이다.”정원이 과잉소비되는 시대,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은 숲의 주권자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일깨운다. 온전한 숲이 유지됐기에 가능했던 ‘비밀의 정원’에서는 오래된 나무들이 삶의 태도를 가르쳐준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철학이 있어야 정원이다. 글·사진 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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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력 단절 딛고 연 매출 1500억 원 일군 여성 CEO 스토리

    국내 아동복 신화를 일군 ‘더캐리’ 이은정 대표(45)가 자기계발 에세이 ‘캐리 온: 10년 후, 꿈꾸던 내가 되었다(에피케)’를 최근 펴냈다. 25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연 매출 1500억 원을 올리는 글로벌 패션그룹을 일군 기록이다. 2010년 블로그 ‘솔맘 스토리’가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면서 2014년 유아동복 ‘베베드피노’의 법인을 설립한 뒤, 주니어 브랜드 ‘아이스비스킷’, 키즈 편집숍 ‘캐리마켓’ 등을 만들어온 여성 창업가로서의 궤적을 담았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이 대표의 이야기가 ‘골든걸’ 독자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줄 것 같아 최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사업의 시작은.“첫째 아이 돌잔치 때 입힐 옷을 찾는데 국내 브랜드 중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뭔가 다른 옷’을 찾다가 색감이 알록달록한 북유럽 브랜드에 꽂혔다.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를 해서 블로그에서 엄마들에게 돌복을 대여해주다가, 결국엔 아동복을 직접 만들게 됐다. 아이를 들쳐 매고 서울 남대문 시장을 돌며 원단을 구해 옷을 만들었다. 순전히 입소문으로 블로그, 카페, 온라인, 오프라인숍으로 베베드피노 사업이 확장됐다.”-어려운 일은 없었나.“매 순간 늘 많았다. 베베드피노를 입고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아이스비스킷을 입을 줄 알았는데 10∼20%도 연결되지 않아 2∼3년 고전했다. 책가방을 아이스비스킷의 대표 아이템으로 삼고 노력했더니 언젠가부터는 눈에 보이는 아이들마다 우리 가방을 들고 다녔다.”-패션 감각은 타고났나.“부모님이 패션 일을 해서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남달랐던 것 같다. 친구들이 쇼핑 갈 때면 ‘네가 골라주는 걸 제일 잘 입는다’며 항상 데려갔다.”-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엄마가 진짜 멋진 분이셨다.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져 대구로 내려가 출판사와 화장품회사 방문판매를 하셨는데 실적이 늘 톱이었다. 자주 손님을 집에 초대해 10인분, 20인분 뚝딱 밥을 차려내고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 엄마의 생활력과 배포를 어려서부터 배웠다.”-책을 읽어보니 더캐리에 공동대표로 합류한 남편의 ‘외조’도 놀라웠다.“남편은 삼성디자인학교(SADI)를 수석으로 졸업한 성실의 아이콘이다. 난 지방대 출신에 해외유학파도 아니어서 스펙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남편은 늘 ‘너만큼 패션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칭찬해줬다. 엄마가 암투병할 때엔 신혼 옥탑방 살림인데도 모시고 살자고 했고, 회사를 일부러 옮겨 마련한 퇴직금으로 엄마 간병비를 댔다. 이듬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남편이 참 고맙다.”-일을 쉬다가 창업했다고 책에 썼다.“엄마를 간병하면서 일을 쉬고 아이를 낳았다. 돌이켜보면 육아의 시간이 참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스스로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많이 생각한 시간이었다. 지금의 ‘베베드피노’가 탄생한 때다.”-처음 다닌 회사는 어떤 회사였나.“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패션 수입회사에 패션 머천다이저로 들어갔다. 작은 회사여서 기획에서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다 했다. 그런데 그때 진짜 일을 많이 배웠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대기업만 가려 하지 말고, 나중에 내 일을 할 수 있는 걸 배운다는 마음으로 직장을 고르라고. 난 내가 기획한 제품에 대해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현장 판매지원도 자진해 나갔다.”-현재 ‘더캐리’ 사업은.“지난해 매출이 1500억 원이었다. 국내 206개 매장, 중국에 2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 진출도 모색 중이다. 지난해엔 ‘푸마 키즈’ 사업도 시작했다. 건강기능식품 등 패밀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요즘 일과는.“퇴근 후 저녁 약속은 거의 잡지 않는다. 대신 운동하고 무조건 밤 9시 반에는 잠자리에 드는 루틴이다. 여행을 가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물멍’이나 ‘하늘멍’한다. 그럴수록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건강한 일상이 건강한 생각을 낳는다.”-‘골든걸’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요즘엔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브랜드가 진짜 많다. ‘더캐리’도 육아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책을 썼다. 시작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자신을 믿는 마음과 열정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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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으로 빚은 명화, 복제가 기억이 되다

    이곳이야말로 일찍이 앙드레 말로가 말했던 ‘상상의 박물관’이 아닐까.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오츠카국제미술관에서 여러 생각이 휘몰아쳤다. 일본에서 가장 유속(流速)이 빨라 신비로운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나루토 해협 부근에 자리한 이 거대한 미술관은 ‘세라믹 복제의 낙원’이다. 이탈리아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와 벽화에서부터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여 점의 세계 명화가 실제 크기의 도판(陶板) 명화로 재현돼 있다. 말로가 사진 복제의 시대를 예견하며 세계 명화를 한 데 모으는 것을 상상한 것을 이 미술관은 100% 복제품으로 구현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미술관지난달 21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 40분 후 일본 도쿠시마 공항에 내렸다. 렌터카로 곧장 오츠카국제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 3층부터 2층까지 전시가 4km 관람로로 이어지는 2만 9412㎡ 규모의 장대한 미술관이다. 가히 ‘걸어서 감상하는 세계 미술사’다.도판은 흙을 이용해 구운 도기 판을 뜻한다. 1000도 이상의 고온에 구워 원작을 재현한 것이 ‘도판 명화’다. 이 미술관은 ‘포카리스웨트’ 음료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츠카 제약그룹의 창립 75주년 기념사업으로 1998년 문을 열었다. 오츠카 그룹은 나루토 해협의 흰 모래를 활용해 타일을 만드는 ‘오츠카 오미 도업 주식회사’를 1973년 세웠다가 바로 그해 제1차 오일쇼크를 맞았다. 석유 가격이 급등해 각종 건설이 전면 중지되자 머리를 맞대 내놓은 대안이 ‘도판으로 미술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원화 본연의 크기로 복제해 대형 미술 도판을 만든 건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에는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다. ‘오리지널이 아니잖아.’ 그런데 반나절을 보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미술관은 오츠카 오미 도업㈜의 도판 기술로 원작의 느낌을 구현해 교과서에 나오는 전 세계의 명화, 정확히는 명화 복제품을 ‘원스톱’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노년의 관람객까지 실물 크기의 복제품을 자유롭게 보고 만진다.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를 다니며 원본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곳은 ‘예술 접근성의 민주화’를 실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원작 소장 기관들은 저작권과 색감, 촬영방식 등에 대한 엄격한 계약을 맺고 시장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문화적 접근을 허용한다. 그 결과 오츠카 그룹의 고향인 일본의 시골에 있는 이 미술관에 지난해 57만 9000명이 다녀갔다.>> 복제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발터 벤야민은 저서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원작이 가진 ‘아우라’의 상실을 예견했다. 예술이 대량복제되면 진품의 유일무이한 역사성과 장소성이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바로 그 경계의 지점에 서 있다. 원작의 향기와 장소성은 없지만, 아우라의 부재가 오히려 새로운 사유를 일으킨다. 복제된 이미지 속을 걷다 보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말로가 품었던 생각을 이 미술관은 도판 기술로 현실화한 셈이다.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도 관람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는 복제가 현실을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현실을 대체하는 상태, 즉 ‘시뮬라크르’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벤야민의 원작의 부재, 즉 아우라의 소멸을 기술로 메우는 시뮬라크르적 공간이 아닐까.오츠카국제미술관의 철학은 분명하다. 전쟁, 화재, 환경오염 등에 예술품의 원작은 훼손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까. 2000년 이상 지나도 색과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는 도판 명화는 이런 불안에 정면으로 맞선다. 원작의 모습을 보존한 복제품이 미래의 기억 장치가 되겠다는 것이다.이 미술관을 만든 오츠카그룹은 기본적으로 기술기업이다. 그들의 복제 과정은 예술적 재현이라기보다는 도판 기술의 정밀함을 과시하는 산업적 프로젝트에 가깝다. 여기에서 또 질문이 던져진다. 기술적 완벽함이 예술적 진정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던져진 것인지도 모른다.>> 야외 정원에 설치된 모네의 ‘수련’오츠카국제미술관은 다양한 실험을 한다. 일례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원작은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의 타원형 방에 전시돼 있지만 오츠카국제미술관은 이 작품의 도판을 야외 정원에 설치했다. 이 정원에서는 모네가 생전에 그토록 그리고 싶어 했던 푸른 수련을 10월 하순에도 볼 수 있었다. 분명히 원작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감각의 확장을 제공하고 있었다.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7점을 한곳에 모은 전시구역은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역 중 하나다. 1945년에 소실된 한 점을 비롯해 현재 각국에 나뉘어 소장된 작품들의 도판 명화를 한데 모아 놓았다.‘걸어서 세계 미술사 여행’은 계속되며 이따금씩 개인적 경험과 맞닻는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미술관에서 봤던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봤던 교회를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오베르의 교회’…. 추억이 깃든 그곳들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세계의 명화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는 경험은 새로웠다. 이곳에서 ‘미메시스(모방)’ 개념은 세상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승화되는 것 같았다.관람을 마치고 뮤지엄숍에 들러 미술관 입장료보다 비싼 도판 명화 기념품을 세 개나 샀다. 소실된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이날 유독 마음에 들었던 휴 골드윈 리비에르의 ‘에덴의 정원’이다. ‘에덴의 정원’의 경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런던 길드홀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을 브리지먼 아트 라이브러리의 자료를 이용해 도판으로 재현했다고 명확히 표기함으로써 복제의 윤리를 제도화했다. 복제가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 기억의 기술로 변모한 것이다.언젠가 영국에 가서 ‘에덴의 정원’의 원작을 보고, 그림 속 장소로 추정되는 공원을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시절에 가보았던 프랑스 오베르 교회를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복제의 공간을 걷는 일은 원본의 빈자리를 채우는 예술의 또 다른 길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복제의 신전’이라는 오츠카국제미술관이 내게 준 선물이다. 오츠카국제미술관 관람 정보위치: 일본 시코쿠섬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나루토초 나루토공원 내개관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월요일 휴관)입장료: 일반 3300엔/대학생 2200엔/초중고생 550엔나루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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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과 자연이 함께 차린 식탁, 용인 ‘포도와’ 기부 만찬

    해가 천천히 산등성이 뒤로 물러나며 포도넝쿨 사이로 금빛이 흘렀다. 빛은 유리잔에 닿아 별무리처럼 반짝였다. ‘포도와’에서의 만찬은 그렇게 시작됐다.‘포도와’는 2019년 경기 용인시 백암면에 문을 연 800평 규모의 유기농 포도농장이다. 김민아 대표가 남편과 함께 도시의 삶을 내려놓고 귀농해 국내에서는 드문 지중해 품종 포도나무 68주를 기르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건강해지는 농장’을 꿈꾸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토양과 생명의 순환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포도 시즌이면 포도 따기 등 각종 체험행사를 연다.지난달 12일, 이곳에서는 특별한 자선 만찬이 열렸다. 4년째 이어온 기부 만찬 행사로, 올해의 주제는 ‘팜 파티(Farm Party·농장 파티)’였다. ‘포도와’는 그동안 환경 보호와 노숙인 지원 등에 수익금을 나눠왔고, 올해는 신생아 위탁 기관에 전액을 기부한다.농장 한가운데 놓인 긴 테이블에는 대지의 색을 닮은 린넨 테이블보가 깔려 있었다. 그 위로 포도송이와 넝쿨, 마른 수국, 허브 잎이 놓였다. 황혼이 깔리자 양초와 샹들리에의 불빛이 와인잔과 유리병에 반사돼 포도밭 전체가 따뜻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손님들은 포도 향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며 금세 어우러졌다. 복합문화공간 대표, 도예가, 원예 전문가, 의사 등 하는 일은 달라도 정원과 미식에 대한 관심은 한결같이 높았다. 한 손님이 데려온 ‘시월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밤의 포도 농장을 아장아장 걷던 오리들도 이 특별한 순간을 함께 한 생명체들이었다.이날의 코스 메뉴는 포도와 포도잎이 주제였다. 장미향과 은은한 산미가 어우러진 ‘머스캣 함부르크’, 고급스러운 향의 ‘알렉산드리아’ 등 지중해 품종의 포도들이 다양한 요리로 변주됐다.머스캣 함부르크 포도즙에 향신료를 더해 끓인 따뜻한 뱅쇼가 가장 먼저 나왔다. 입안 가득 번지는 온기가 마음까지 덥혔다. 이어서 알렉산드리아와 머스캣 함부르크 포도로 만든 처트니(과일 절임), 단새우·관자·청포도를 곁들인 세비체(생선회 무침), 건포도를 올린 땅콩호박 스프가 이어졌다.메인 요리는 레몬 버터 소스를 곁들인 프랑스식 가자미구이. 머스캣 함부르크 포도잎으로 싼 돌마(포도잎으로 고기와 쌀 등을 싸서 쪄낸 음식)가 함께 나오자 손님들은 “맛있다”고 탄성을 질렀다. 이어진 적포도 소스 돼지고기에는 개복숭아 트러플 절임이 곁들여져 향긋함이 더해졌다. 포도와 치즈 플래터, 그리고 포도 소르베와 파운드 케이크가 식사의 여운을 마무리했다.만찬이 끝날 즈음엔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김 대표가 손님들에게 가위를 나눠주며 밤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게 한 것. 이날이 올해 포도와 농장의 마지막 포도 수확날이었다. 다들 잠시 어린아이가 된 듯 천진난만하게 포도를 땄다.이날 테이블 스타일링은 ‘윤릴리안’, 꽃 디자인은 ‘라플롱트 스튜디오’, 음식은 ‘소요살롱’이 협업했다. 행사를 준비한 이들은 “밤의 향기가 포도밭을 감싸고 촛불 아래 웃음이 번질 때마다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고요한 기쁨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며 “지치고 외로운 순간에 마음 속 포도 한 알을 터뜨려 그 향기로 위로받는 시간이길 바란다”고 했다. 그 말이 가슴에 포도알처럼, 보석처럼 박혔다. ‘오늘의 이 포도 향기가 살면서 든든한 힘이 되겠구나.’포도와의 자선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인간과 자연이 다시 관계를 맺는 방식, 느리게 익어가는 삶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은 축제였다. 음식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나눔이 되는 자리였다. 근사한 농장 파티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의 땅, 우리의 계절에서도 가능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을 근간으로 예술적 농장 모델을 실험하는 용인의 작은 포도 농장의 진심이 깊이 느껴졌다.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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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암미술관 ‘옛돌정원’과 ‘희원’, 이우환 작가의 신작 상설 전시

    호암미술관이 그동안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던 호수 주변 ‘옛돌정원’을 최근 공개하면서 이우환 작가의 조각 설치 작품 세 점을 새롭게 선보였다. 또 전통정원 ‘희원’에도 이 작가의 신작 ‘실렌티움(묵시암)’을 전시했다.삼성문화재단은 이 작가의 작품을 오랜 기간 수집하고 소장해왔으나 2003년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 회고전 이후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망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호암미술관의 유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번 프로젝트는 이 작가가 직접 제안한 것으로,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의 예술 세계를 수도권에서 상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것이 호암미술관 측의 설명이다.이번에 처음 일반에 공개된 옛돌정원은 호암미술관 앞 너른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얕은 구릉지 산책로에 조성됐다. 이곳에 설치된 이 작가의 대형 신작 세 점은 철과 돌을 통해 문명과 자연의 만남을 보여준다.지름 5m의 스테인레스스틸 링 작품인 ‘관계항-만남’은 향후 링 양쪽을 마주 보는 두 개의 돌이 더해져 완성될 예정이다. 직선으로 뻗은 20m 길이의 슈퍼 미러 스테인레스 스틸 판과 돌로 이뤄진 ‘관계항-하늘길’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작품 표면에 비친 하늘을 보며 하늘 위를 걷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위쪽 산책로에 설치된 ‘관계항-튕김’은 튕겨 나갈 듯 구부러진 두꺼운 철판과 두 개의 자연석이 역동적 균형을 이룬다.전통정원 ‘희원’에 설치된 ‘실렌티움(묵시암)’은 실내 작품 세 점과 야외 설치 한 점으로 구성됐다. 실렌티움(Silentium)은 라틴어로 ‘침묵’, 묵시암(默視庵)은 ‘고요함 속에서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작가는 “내 작품은 보자마자 감각이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이나 에너지가 중요하다”며 “관람객이 침묵 속에 머물며 세상 전체가 관계와 만남, 서로의 울림과 호흡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용인=글 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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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암미술관 ‘비밀의 정원’이 열렸다…이우환과 정영선의 ‘무위(無爲)’[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가는 세월 붙잡을 수 없는 게 유독 아쉬운 계절이다. 단풍이 절정인 지금, 오랫동안 닫혀 있다가 드디어 열린 ‘비밀의 정원’이 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호암미술관에 이달 4일 문을 연 ‘옛돌정원’이다. 호암미술관은 잔잔한 호수를 향해 있다.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을 조성할 때 만들어진 인공 호수로, 넓이가 약 3만6000평이라 ‘삼만육천지’로 불린다.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호를 따 ‘호암호’로도 불린다. 매표소에서 이 호수를 따라 걸으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안쪽은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호암미술관의 전통정원 ‘희원’처럼 일찍이 만들어 두고도 공개하지 않던 ‘비밀의 정원’. 그곳이 마침내 열렸다.계기는 세계적 작가 이우환(89)의 제안이었다. 그는 호암미술관의 유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신작을 선보이고 싶다는 뜻을 미술관 측에 전했다. 이에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은 “많은 이들이 언제든지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정원 개방을 결정했다.그렇게 열린 옛돌정원에는 이우환의 ‘관계항(關係項)’ 시리즈 신작 세 점이 설치됐다. 동선상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 지름 5m의 스테인리스 스틸 링 작품인 ‘관계항-만남’이다. 그런데 아직 미완성이다. 작가는 문명과 자연의 만남을 구현할 두 개의 돌을 여전히 찾고 있다고 한다. 어떤 돌이 놓일까. 사람 간의 관계, 사람과 사물의 관계는 얼마나 많은 인연과 우연의 결과일까. 이 정원과 작품의 만남이 그러했듯이….정원은 조경가 정영선(84)이 맡았다. 그는 호암미술관 희원도 조성한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조경가다. 옛돌정원이 자리 잡은 지형은 호수 건너편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이 내려다보이는 완만한 구릉지. 그의 조경 철학인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를 펼치기에 제격인 장소다.정원의 억새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노랗게 잎이 물든 생강나무와 히어리, 빨간 열매를 매단 가막살나무와 쑥부쟁이는 가을의 농익은 색감을 전했다.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관계항-만남’의 철제 링이 단풍을 반사해 비추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와 함께 걷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것이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아닐까. 억지로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두는 것.이우환은 “버리고 비우면 보다 큰 무한이 열린다”고 했다. 그의 말은 노자의 ‘도덕경’ 제 48장을 떠올리게 한다. ‘배움을 행하면 날마다 보태지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덜어진다. 덜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지경에 이르는구나. 무위를 행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천하를 차지하는 것은 항상 일거리를 없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거리를 만들면 천하를 차지할 수가 없다.’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일본 도쿄 니혼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우환은 마르틴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 니시다 기타로의 장소론 등에 심취했다. 1960년대에는 ‘모노하’(物派) 운동을 주도하며 ‘사물을 만들지 않고 존재하게 둔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관계와 여백 속에서 세계의 질서를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그의 대표작 ‘관계항’은 ‘존재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사유에서 출발한다. 돌과 철, 빛과 바람, 관람자까지 모두 하나의 관계항이 된다.이우환의 철은 하늘을 비추고, 정영선의 억새는 바람을 드러낸다. 둘의 관계는 ‘무위’ 즉, ‘하지 않음’에서 만난다. 정영선의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고 억지로 꾸미지 않는 데 있다. 이우환이 비움을 통해 관계성을 추구하는 것과 닮았다.더 걷자 ‘관계항-하늘길’이 나타났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비추는 20m 길이의 직사각형 스테인리스 스틸 판 위에 서니 마치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작품 ‘관계항-튕김’은 휘어진 철판과 두 개의 돌이 마주 선 형태. 낙엽이 내려앉은 바닥의 하얀 자갈을 밟아보니 걸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흰 눈밭의 정적 속 에너지가 이런 걸까. 길 건너 전통정원 ‘희원’에는 이우환의 또 다른 신작 ‘실렌티움(Silentium·묵시암)’이 설치됐다. 실렌티움은 라틴어로 침묵, 묵시암은 ‘고요함 속에 본다’는 뜻이다. 빛과 어둠, 실내와 실외,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이 만난다. “침묵 속에 머물며 세상 전체가 관계와 만남, 서로의 울림과 호흡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작가가 관람객에게 바라는 바다. 옛돌정원에서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걷다가 호수를 향해 앉아 고요하게 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그토록 서두르는 걸까. 옛돌정원에는 억지로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두는 걸음들이 있었다. 걷고, 멈추고, 다시 흘러갔다. 이우환의 ‘비움’이 정영선의 ‘절제’ 위에서 빛을 얻고 있었다. 정원은 예술과 조경이 서로를 허락하는 무위(無爲)의 공간이었다.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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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외 정원으로 나온 모네의 ‘수련’…우리 시대 복제의 의미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이곳이야말로 일찍이 앙드레 말로가 말했던 ‘상상의 박물관’이 아닐까.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오츠카국제미술관에서 여러 생각이 휘몰아쳤다. 일본에서 가장 유속(流速)이 빨라 신비로운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나루토 해협 부근에 자리한 이 거대한 미술관은 ‘세라믹 복제의 낙원’이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서부터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여 점의 세계 명화가 실제 크기의 도판(陶板) 명화로 재현돼 있다. 말로가 사진 복제의 시대를 예견하며 세계 명화를 한 데 모으는 것을 상상한 것을 이 미술관은 100% 복제품으로 구현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미술관지난달 21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 40분 후 일본 도쿠시마 공항에 내렸다. 렌터카로 곧장 오츠카국제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 3층부터 2층까지 전시가 4km 관람로로 이어지는 2만 9412㎡ 규모의 장대한 미술관이다. 가히 ‘걸어서 감상하는 세계 미술사’다. 도판은 흙을 이용해 구운 도기 판을 뜻한다. 1000도 이상의 고온에 구워 원작을 재현한 것이 ‘도판 명화’다. 이 미술관은 ‘포카리스웨트’ 음료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츠카 그룹의 창립 75주년 기념사업으로 1998년 문을 열었다. 오츠카 그룹은 나루토 해협의 흰 모래를 활용해 타일을 만드는 ‘오츠카 오미 도업 주식회사’를 1973년 세웠다가 바로 그해 제1차 오일쇼크를 맞았다. 석유 가격이 급등해 각종 건설이 전면 중지되자 머리를 맞대 내놓은 대안이 ‘도판으로 미술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원화 본연의 크기로 복제해 대형 미술 도판을 만든 건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에는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다. ‘오리지널이 아니잖아.’ 그런데 반나절을 보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미술관은 오츠카 오미 도업㈜의 도판 기술로 원작의 느낌을 구현해 교과서에 나오는 전 세계의 명화, 정확히는 명화 복제품을 ‘원스톱’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노년의 관람객까지 실물 크기의 복제품을 자유롭게 보고 만진다.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를 다니며 원본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곳은 ‘예술 접근성의 민주화’를 실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작 소장 기관들은 저작권과 색감, 촬영방식 등에 대한 엄격한 계약을 맺고 시장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문화적 접근을 허용한다. 그 결과 오츠카 그룹의 고향인 일본의 시골에 있는 이 미술관에 지난해 57만 9000명이 다녀갔다.●복제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발터 벤야민은 저서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원본이 가진 ‘아우라’의 상실을 예견했다. 예술이 대량복제되면 진품의 유일무이한 역사성과 장소성이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바로 그 경계의 지점에 서 있다. 원작의 향기와 장소성은 없지만, 아우라의 부재가 오히려 새로운 사유를 일으킨다. 복제된 이미지 속을 걷다 보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말로가 품었던 꿈을 이 미술관은 도판 기술로 현실화한 셈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도 관람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는 복제가 현실을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현실을 대체하는 상태, 즉 ‘시뮬라크르’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벤야민의 원작의 부재, 즉 아우라의 소멸을 기술로 메우는 시뮬라크르적 공간이 아닐까.오츠카국제미술관의 철학은 분명하다. 전쟁, 화재, 환경오염 등에 예술품의 원작은 훼손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까. 2000년 이상 지나도 색과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는 도판 명화는 이런 불안에 정면으로 맞선다. 원작의 모습을 보존한 복제품이 미래의 기억 장치가 되겠다는 것이다.이 미술관을 만든 오츠카그룹은 기본적으로 기술기업이다. 그들의 복제 과정은 예술적 재현이라기보다는 도판 기술의 정밀함을 과시하는 산업적 프로젝트에 가깝다. 여기에서 또 질문이 던져진다. 기술적 완벽함이 예술적 진정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던져진 것인지도 모른다. ●야외 정원에 설치된 모네의 ‘수련’오츠카국제미술관은 다양한 실험을 한다. 일례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원작은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의 타원형 방에 전시돼 있지만 오츠카국제미술관은 이 작품의 도판을 야외 정원에 설치했다. 이 정원에서는 모네가 생전에 그토록 그리고 싶어 했던 푸른 수련을 10월 하순에도 볼 수 있었다. 분명히 원작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감각의 확장을 제공하고 있었다.한편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7점을 한곳에 모은 전시구역은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역 중 하나다. 1945년에 소실된 한 점을 비롯해 현재 각국에 나뉘어 소장된 작품들의 도판 명화를 한데 모아 놓았다. ‘걸어서 세계 미술사 여행’은 계속되며 이따금씩 개인적 경험과 맞닻는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미술관에서 봤던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봤던 교회를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오베르의 교회’…. 개인적 추억이 깃든 그곳들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세계의 명화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는 경험은 새로웠다. 이곳에서 ‘미메시스(모방)’ 개념은 세상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승화되는 것 같았다. 관람을 마치고 뮤지엄숍에 들러 미술관 입장료보다 비싼 도판 명화 기념품을 세 개나 샀다. 소실된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이날 유독 마음에 들었던 휴 골드윈 리비에르의 ‘에덴의 정원’이다. ‘에덴의 정원’의 경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런던 길드홀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을 브리지먼 아트 라이브러리의 자료를 이용해 도판으로 재현했다고 명확히 표기함으로써 복제의 윤리를 제도화했다. 복제가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 기억의 기술로 변모한 것이다. 언젠가 영국에 가서 ‘에덴의 정원’의 원작을 보고, 그림 속 장소로 추정되는 공원을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시절에 가보았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를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복제의 공간을 걷는 일은 원본의 빈자리를 채우는 예술의 또 다른 길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복제의 신전’이라는 오츠카국제미술관이 내게 준 선물이다. 나루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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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만원으로 시작해 연 매출 1500억 일군 경단녀 성공 스토리

    국내 아동복 신화를 일군 ‘더캐리’ 이은정 대표(45)가 자기계발 에세이 ‘캐리 온: 10년 후, 꿈꾸던 내가 되었다(에피케)’를 최근 펴냈다. 25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연 매출 1500억 원을 올리는 글로벌 패션그룹을 일군 기록이다. 2010년 블로그 ‘솔맘 스토리’가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면서 2014년 유아동복 ‘베베드피노’ 법인을 설립한 뒤, 주니어 브랜드 ‘아이스비스킷’, 키즈 편집숍 ‘캐리마켓’ 등을 만들어온 여성 창업가로서의 궤적을 담았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업의 시작은.“첫째 아이 돌잔치 때 입힐 옷을 찾는데 국내 브랜드 중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뭔가 다른 옷’을 찾다가 색감이 알록달록한 북유럽 브랜드에 꽂혔다. 해외 사이트 ‘직구’를 해서 블로그를 통해 돌복을 대여해주다가, 결국엔 아동복을 직접 만들게 됐다. 아이를 들쳐 매고 서울 남대문 시장을 돌며 원단을 구해 옷을 만들었다. 순전히 입소문으로 블로그, 카페, 온라인, 오프라인숍으로 베베드피노 사업이 확장됐다.”-어려운 일은 없었나.“매 순간 늘 많았다. 베베드피노를 입고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아이스비스킷을 입을 줄 알았는데 10~20%도 연결되지 않아 몇 년을 고전했다. 책가방을 아이스비스킷의 대표 아이템으로 삼고 노력했더니 언젠가부터는 눈에 보이는 아이들마다 우리 가방을 들고 다녔다.”-패션 감각은 타고났나.“부모님이 패션 일을 해서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남달랐던 것 같다. 친구들이 쇼핑갈 때면 ‘네가 골라주는 걸 제일 잘 입는다’며 항상 데려갔다.”-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엄마가 진짜 멋진 분이셨다.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져 서울 살다가 갑자기 대구로 내려갔다. 엄마가 출판사와 화장품회사 방문판매를 했는데 실적이 늘 톱이었다. 자주 손님을 집에 초대해 10인분, 20인분 뚝딱 밥을 차려내고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 엄마의 생활력과 배포를 어려서부터 배웠다.”-책을 읽어보니 더캐리에 공동대표로 합류한 남편의 ‘외조’도 놀라웠다.“남편은 삼성디자인교육원(SADI)을 수석으로 졸업한 ‘성실의 아이콘’이다. 난 지방대 출신인데다 해외유학파도 아니어서 스펙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남편은 늘 ‘너만큼 패션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칭찬해줬다. 엄마가 암투병할 때엔 신혼 옥탑방 살림인데도 모시고 살자고 했고, 회사를 일부러 옮겨 마련한 퇴직금으로 엄마 간병비를 댔다. 이듬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남편이 참 고맙다.”-‘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나.“첫째 낳고 엄마 간병하고 둘째 낳기까지 4년간 경단녀였다. 경단녀였던 시절, ‘더캐리’의 시작인 ‘베베드피노’ 브랜드가 탄생했다. 돌이켜보면 육아의 시간이 참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스스로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많이 생각한 시간이었다.”-처음 다닌 회사는 어떤 회사였나.“지방대를 졸업하고 작은 패션 수입회사에 머천다이저로 들어갔다. 작은 회사여서 기획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다 했다. 그런데 그때 진짜 일을 많이 배웠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대기업만 가려 하지 말고, 나중에 내 일을 할 수 있는 걸 배운다는 마음으로 직장을 고르라고. 난 내가 기획한 제품에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현장 판매지원도 자진해 나갔다.”-현재 ‘더캐리’ 사업은.“지난해 매출이 1500억 원이었다. 국내 206개 매장, 중국에 2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 진출도 모색 중이다. 지난해엔 ‘푸마 키즈’ 사업도 시작했다. 건강기능식품 등 패밀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요즘 일과는.“퇴근 후 저녁 약속은 거의 잡지 않는다. 대신 운동하고 무조건 밤 9시 반에는 잠자리에 드는 루틴이다. 여행을 가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물멍’이나 ‘하늘멍’한다. 그럴수록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건강한 일상이 건강한 생각을 낳는다.”-동아일보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요즘엔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브랜드가 진짜 많다. ‘더캐리’도 육아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책을 썼다. 시작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자신을 믿는 마음과 열정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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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치고 외로울 때 마음 속 포도 한 알을 터뜨려 위로받기를”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해가 천천히 산등성이 뒤로 물러나며 포도넝쿨 사이로 금빛이 흘렀다. 빛은 유리잔에 닿아 별무리처럼 반짝였다. ‘포도와’에서의 만찬은 그렇게 시작됐다.‘포도와’는 2019년 경기 용인시 백암면에 문을 연 800평 규모의 유기농 포도농장이다. 김민아 대표가 남편과 함께 도시의 삶을 내려놓고 귀농해 국내에서는 드문 지중해 품종 포도나무 68주를 기르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건강해지는 농장’을 꿈꾸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토양과 생명의 순환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포도 시즌이면 포도 따기 등 각종 체험행사를 연다. 지난달 12일, 이곳에서는 특별한 자선 만찬이 열렸다. 4년째 이어온 기부 만찬 행사로, 올해의 주제는 ‘팜 파티(Farm Party·농장 파티)’였다. ‘포도와’는 그동안 환경 보호와 노숙인 지원 등에 수익금을 나눠왔고, 올해는 신생아 위탁 기관에 전액을 기부한다.농장 한가운데 놓인 긴 테이블에는 대지의 색을 닮은 린넨 테이블보가 깔려 있었다.그 위로 포도송이와 넝쿨, 마른 수국, 허브 잎이 놓였다. 황혼이 깔리자 양초와 샹들리에의 불빛이 와인잔과 유리병에 반사돼 포도밭 전체가 따뜻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손님들은 포도 향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며 금세 어우러졌다. 복합문화공간 대표, 도예가, 원예 전문가, 의사 등 하는 일은 달라도 정원과 미식에 대한 관심은 한결같이 높았다. 한 손님이 데려온 ‘시월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밤의 포도 농장을 아장아장 걷던 오리들도 이 특별한 순간을 함께 한 생명체들이었다.이날의 코스 메뉴는 포도와 포도잎이 주제였다. 장미향과 은은한 산미가 어우러진 ‘머스캣 함부르크’, 고급스러운 향의 ‘알렉산드리아’ 등 지중해 품종의 포도들이 다양한 요리로 변주됐다.머스캣 함부르크 포도즙에 향신료를 더해 끓인 따뜻한 뱅쇼가 가장 먼저 나왔다. 입안 가득 번지는 온기가 마음까지 덥혔다. 이어서 알렉산드리아와 머스캣 함부르크 포도로 만든 처트니(과일 절임), 단새우·관자·청포도를 곁들인 세비체(생선회 무침), 건포도를 올린 땅콩호박 스프가 이어졌다.메인 요리는 레몬 버터 소스를 곁들인 프랑스식 가자미구이. 머스캣 함부르크 포도잎으로 싼 돌마(포도잎으로 고기와 쌀 등을 싸서 쪄낸 음식)가 함께 나오자 손님들은 “맛있다”고 탄성을 질렀다. 이어진 적포도 소스 돼지고기에는 개복숭아 트러플 절임이 곁들여져 향긋함이 더해졌다. 포도와 치즈 플래터, 그리고 포도 소르베와 파운드 케이크가 식사의 여운을 마무리했다.만찬이 끝날 즈음엔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김 대표가 손님들에게 가위를 나눠주며 밤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게 한 것. 이날이 올해 포도와 농장의 마지막 포도 수확날이었다. 다들 잠시 어린아이가 된 듯 천진난만하게 포도를 땄다.이날 테이블 스타일링은 ‘윤릴리안’, 꽃 디자인은 ‘라플롱트 스튜디오’, 음식은 ‘소요살롱’이 협업했다. 행사를 준비한 이들은 “밤의 향기가 포도밭을 감싸고 촛불 아래 웃음이 번질 때마다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고요한 기쁨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며 “지치고 외로운 순간에 마음 속 포도 한 알을 터뜨려 그 향기로 위로받는 시간이길 바란다”고 했다. 그 말이 가슴에 포도알처럼, 보석처럼 박혔다. ‘오늘의 이 포도 향기가 살면서 든든한 힘이 되겠구나.’ 포도와의 자선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인간과 자연이 다시 관계를 맺는 방식, 느리게 익어가는 삶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은 축제였다. 음식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나눔이 되는 자리였다. 근사한 농장 파티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의 땅, 우리의 계절에서도 가능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을 근간으로 예술적 농장 모델을 실험하는 용인의 작은 포도 농장의 진심이 깊이 느껴졌다.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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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를 품은 돌봄의 숲길…남산하늘숲길 걸어보니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코로나19 시절, 거의 매일 남산을 찾았다. 돌이켜보니 남산은 사랑이었다. 새벽의 남산도, 밤의 남산도 든든하고 아련했다. 다만 딱 한 가지가 아쉬웠다. 늘 오르던 코스로는 친정엄마와 함께 걷기 어려웠다는 것.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어르신이 오르기엔 힘겨운 길이었다.26일 이른 아침, 남산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전날 시민에게 공개된 ‘남산하늘숲길’을 걸어보았다. 남산도서관 옆, 그러니까 남산 주차장으로 들어서기 전 오른편에서 시작하는 1.45km 무장애 나무 데크길이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편안하게 걸으면 어느덧 남산 정상 가까이에 닿는다.개장 이틀째였는데도 이른 시간부터 시민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걷다가 이 길을 점검하러 나온 오세훈 서울시장과 딱 마주쳤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 설계자인 조경설계회사 HEA의 백종현 대표도 함께였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걷게 됐다.나는 자타공인 남산 애호가다. 남산에서 걷고 뛰고 자전거 탄 세월이 쌓여 몇 시 무렵 어느 지점에 ‘캣맘(길고양이를 돌보는 여성)’이 등장하는지, 어떤 달리는 무리가 활동하는지 안다. 그래서 서울시가 남산에 정원을 만들고 각종 정비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굳이~’ 싶었다. 이미 훌륭한 숲에 굳이 손댈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남산하늘숲길은 그런 나의 우려를 단번에 걷어냈다. 내딛는 걸음마다 행복했다. 단풍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잎이 손바닥처럼 생긴 튤립나무가 반겼다. 산 중턱 데크길에서 만난 나무는 훨씬 가깝고 정겹게 느껴졌다. 길 양쪽에 심어진 노란 털머위꽃, 붉게 물들기 시작한 화살나무에도 절로 시선이 향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새로운 길은 새로운 시야를 만들고, 관점과 생각을 낳는다는 것을.남산하늘숲길은 데크를 들어 올려 설치해 자연 지형을 최대한 보존했다. 완만한 경사여서 휠체어도 불편 없이 오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시민이 건강한 환경에 접근할 권리를 갖는 환경복지이고 문화복지다. 탐조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남산의 새소리를 이젠 이동 약자들도 찾아와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 길은, 공공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다른 사람의 감각을 돌보는 일이란 것을, 여러 생명체와 어우러져 살게 하는 일이란 것을 일깨운다.이 길은 자전거와 러너들이 다닐 수 없어 고요하다. 옆 사람 혹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걷는 길이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면 폭설로 쓰러진 목재를 재활용해 만든 곤충 호텔, 남산에서 채취한 종자로 심었다는 어린 소나무들이 나타난다. 지구에 함께 사는 생명체들을 생각하게 된다.서울에는 서대문구 안산처럼 잘 조성된 데크길이 여럿 있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남산의 데크길은 가히 독보적이다. 유리 펜스를 활용해 공중에 뜬 느낌을 주는 노을전망대, 숲을 배경으로 도심을 조망하는 바람전망다리,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추억을 주는 모험놀이데크와 탐험가의 정원 등 다양한 조망 포인트와 정원이 있다. 군데군데 놓인 의자마다 앉아보았다. 각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과 들리는 소리가 다 달랐다. 그 길을 걷고 내려오다가 아침 산책을 나온 지인과 마주쳤다. 길이라는 건, 그렇게 우연하고 반가운 만남을 이끄는 마법이 있다.앞으로 외국인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면 도심과 자연을 잇는 이 보행네트워크를 가장 먼저 데려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봤다면 남산하늘숲길 안내 표지판 위에 갓 쓰고 살포시 앉은 까치 조각상을 얼마나 귀여워할까. 남산하늘숲길이 시민들로부터, 한국을 흠모해 찾아오는 세계인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길이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은 앞만 보고 빨리 달리는 길이 아니라 세심하게 주변을 배려하고 돌보는 길을 만드는 수준이 되었다. 조만간 엄마와 그 길을 걸어야겠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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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귀족 저택에 피어난 한국 정원의 속삭임

    영국 사우스요크셔의 작은 마을 웬트워스에는 18세기 귀족 저택 ‘웬트워스 우드하우스’가 있다. 건물 정면 길이가 185m에 달하는 영국 최대 규모 개인 주택 중 하나다. 1804년 창립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원예단체인 영국왕립원예협회(RHS)는 올해 7월 이곳에서 처음 플라워쇼를 열었다.왜일까. 영국은 정원을 통해 문화유산과 지역을 되살리는 품격 있는 방식을 택한다. RHS는 112년 전통의 세계적 정원 디자인 쇼인 ‘첼시 플라워쇼’를 비롯해 영국 전역에서 플라워쇼를 열며 지역의 삶을 회복시키는 문화를 만든다.웬트워스의 황갈빛 석조 저택 앞 잔디밭 위에 흰 기둥의 정원이 피어났다. 이번 쇼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중간 단계인 실버 길트(Silver-gilt) 메달을 받은 한국 조경팀(최혜영 성균관대 교수·최연길 현대건설 책임)의 ‘정원이 속삭이다’(Garden Whispers) 작품이다. 이 정원을 만든 세 사람, 즉 최 교수와 최 책임 그리고 식재 디자이너인 주례민 ‘오랑쥬리’ 대표를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한국 정원의 속삭임한국 조경팀의 정원은 이번 플라워쇼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출품작이 영국 시골풍 정원(코티지 가든)인데 비해 ‘정원이 속삭이다’는 높낮이가 다른 하얀 기둥(지름 5cm, 높이 35∼185cm) 473개가 곡선의 플랫폼 위로 리듬감 있게 서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기둥 사이를 오가며 관람객의 시선을 따라 각기 다른 장면을 만들었다. 바람에 따라 식물이 흔들거리는 모습, 햇빛이 움직이며 남기는 그림자는 관람객에게 명상의 시간을 선사했다. 보랏빛 에린지움과 그라스류는 공간에 깊이를 주고 오이풀과 뱀무는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심사 과정에서 친환경 재료와 첨단 기술의 조화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대자동차의 헤드라이트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3D 프린팅 의자,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공병을 활용해 반짝임을 준 바닥은 정원 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정원은 내년 현대건설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문을 여는 ‘디에이치 방배’에 재현될 예정이다. 최 책임은 “현대건설은 2018년부터 ‘디에이치’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헤리티지 가든’을 만들어 왔다”며 “이제 아파트는 단순한 조경을 넘어 ‘세계적 정원을 집 앞에서 매일 즐기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돌봄의 정원RHS 플라워쇼의 중요한 심사 기준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 브리프’(Client’s Brief)다. 정원 설계의 의도와 상상 속 대상 고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항목이다. 이번에 한국 팀은 현대미술관을 상정해 설계한 반면 다른 팀들은 어린이 호스피스센터처럼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기관을 설정하고 실제 스폰서도 받아 참여했다.친환경, 지속가능성과 함께 ‘누구나 정원을 누릴 수 있는가’도 주요 심사 기준이었다. 휠체어가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동선 설계는 기본이었다. 최 교수는 “플라워쇼의 주요 관람객이 중장년층이고, 고령사회에서 정원은 복지 공간의 역할을 한다”며 “공공성을 중시하는 RHS는 식재도 사계절 유지 관리될 수 있는지 엄격하게 심사했다”고 전했다.“영국에서는 기업이나 기관이 후원한 정원이 플라워쇼에 선보인 후 그곳으로 옮겨져요. 돈만 내는 게 아니라 정원의 위로와 효과를 실제로 가져가는 거죠.”》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을 위하여RHS는 단지 정원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서 깊은 저택과 마을을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되살리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정원을 통해 건축과 자연, 지역사회가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이 영국이 오랜 세월 유지해온 정원 문화의 힘이다. 주 대표는 “런던에서 2시간여 차를 몰아야 하고 7만 원이 넘는 입장료에도 하루에 수만 명이 찾아와 진지하게 묻고 감상했다”며 “꽃과 가드닝 제품을 살 수 있는 가든 센터가 지역의 문화 허브 역할을 하는 게 부러웠다”고 말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국내 정원박람회들도 단순히 보여주기 전시가 아니라 이렇게 지역 삶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이번 프로젝트에는 현대건설뿐 아니라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도 힘을 보탰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지난해 전라남도와 함께 미국 뉴욕한국문화원에 한국 소쇄원 애양단(愛陽壇)을 본딴 한국 정원을 조성하고 앞으로 세계에 한국 정원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세계가 K-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지금, 어떤 한국 정원을 국제 무대에 선보여야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꼭 전통 정자나 담장을 표현해야만 한국 정원일까. 확실한 것은 이번 웬트워스 플라워쇼에서 세계인들이 한국 정원의 3D 프린팅 의자에 앉아 바람결과 풀잎의 속삭임을 들었다는 것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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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가 옛 대명리조트?”… ‘소노캄 경주’의 고품격 변신

    경북 경주시 보문단지 ‘소노캄 경주’에서 하룻밤 머물고 난 후 든 생각은 ‘아, 이젠 경주에 적어도 2박3일을 하러 와야겠구나’였다. 하루는 요즘 ‘핫’한 경주의 문화공간들을 다니고, 하루는 이 숙소에서 오롯이 쉬어야겠다고. 그러고 보니 잔잔한 보문호를 원 없이 바라보며 차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이 호텔 1층 카페 이름도 ‘오롯’이다.객실의 첫인상도 신선했다. 가장 먼저 한국의 전통미를 구현한 툇마루. 침실이 따로 있지만, 툇마루에 침구를 펴면 4∼5인 가족도 넉넉하게 잘 수 있겠다 싶었다. 한국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전통 다기 세트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을 통해 세계인에게 알려진 공기놀이를 객실에 구비해 둔 디테일도 세심했다. 보문호의 벚꽃잎을 모티브로 한 ‘화양연화’와 경주의 맑은 바람과 달빛을 허브 블렌딩으로 표현한 ‘청충명월’ 차를 다기로 우려내고 있노라니 호텔 객실이 아니라 차실(茶室) 같았다.대명소노그룹 소노인터내셔널은 1700억 원을 투입해 1년여 전면 리뉴얼을 거쳐 기존의 소노벨 경주를 5성급 프리미엄 리조트 ‘소노캄 경주’로 탈바꿈시켰다. 과거 대명리조트가 2006년 소노벨 경주로 바뀐 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또 다시 거듭났다. 지하 2층∼지상 12층, 9182평 규모로 418개 객실과 400명 이상 들어가는 연회 공간 등을 갖췄다.단연 돋보이는 시설은 ‘웰니스 풀앤스파’다. 대명리조트 경주 시절부터 유명했던 약알칼리 온천수를 활용해 보문호수를 바라보는 야외 스파 수영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풀장의 설계가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이다. 경주의 동궁과 월지, 포석정 등을 재해석해 깊지 않은 따뜻한 물길이 굽이친다. 어르신들이 ‘아쿠아로빅’하듯, 이 물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길 따라 걸으면 하나둘씩 나오는 프라이빗 카바나와 북유럽풍 건식 사우나는 진정한 쉼의 공간이다. 보문호수를 바라보는 프라이빗 카바나에 누우면 윤슬이 비치는 저 물은 호수인지 바다인지 싶다. 물놀이 공간 군데군데 놓인 커다란 돌들은 수영장을 물길로 해석한 수변공간의 조경이다. 수영장에 심어진 은목서의 단아한 향기가 고급스럽게 퍼졌다. 야외 공간에는 ‘심상의 기원’이라는 명상 공간도 있다. 이곳에도 물길이 흐른다. 혼자서 또는 단체로 명상이나 요가를 해도 좋고, 그저 앉아 가만히 머물러도 좋겠다.이 호텔 12층에는 국내 최대 규모(569㎡·약 172평)의 정상급 숙소(프레지덴셜 스위트·PRS)가 마련돼 이번 APEC 기간 국빈과 수행원이 숙박하게 된다. 천장 높이 4m에 거실 전면이 통유리창이라 보문호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통 온돌 시스템을 적용했고, 전용 출입통로를 통해 프라이버시와 보안성을 높였다. 손선원 소노인터내셔널 홀딩스 상무는 “한식당과 객실, 유니폼 등 모든 요소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녹여내려고 했다”며 “이번 APEC을 통해 소노캄 브랜드를 전 세계에 각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경주로 온전한 쉼을 떠난다면 굳이 차량을 대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서울역에서 2시간 KTX를 타고 경주역에 도착한 후 30분간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 보문단지 내 소노캄 경주에 도착한다. 주요 유적은 경주 시티버스로도 둘러볼 수 있다.경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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