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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출생아 수 반등의 흐름이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9월 출생아 수는 2만2369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6% 증가했다. 같은 달 혼인 건수도 1만8462건으로 20.1%나 늘었다. 월별 출생아 수가 전년 동월 대비 이 정도로 오른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서울·부산·경기 등 거의 모든 시도에서 출생아 증가가 나타난 점도 눈에 띈다.출생아 증가에 힘입어 9월 기준 월별 합계출산율은 0.85명으로 0.06명 반등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합계출산율이 3년 만에 0.8명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증가를 이끈 30대 후반 출산…만혼이 만든 새로운 출산축출생아 증가의 핵심 요인은 ‘30대 후반의 출산 확대’로 분석된다. 35~39세 여성의 1000명당 출생아 수가 전월 대비 6.3명 늘었고, 30대 초반 여성도 4.4명 증가하며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만혼 흐름이 굳어지면서 과거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담당했던 출산의 중심축이 자연스럽게 30대 중후반으로 이동한 것이다.실제 2024년 기준 남성 초혼 평균연령은 33.9세, 여성은 31.6세였다. 여성 평균 출산연령은 33.7세로 역대 가장 높았고, 첫째 아이 출산 평균도 33.1세까지 올랐다. 1995년의 초혼 연령(남성 28.5세, 여성 25.7세)과 비교하면 결혼은 약 5~6년, 출산은 약 7년 늦어진 셈이다. 한 세대 만에 결혼·출산의 시간표가 크게 재편됐다.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주거를 마련하는 등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결혼과 출산 연령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고 있다. 요즘 30대의 라이프스타일도 영향을 미쳤다. 건강 관리, 운동, 취미, 자기계발 등이 일상화되면서 30대는 예전의 ‘중년 초입’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세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포티가 있다면 그들은 영써티랄까. 외모와 생활양식 모두 20대 못지않게 젊고 활동적인 30대가 많다. 이런 경향은 출산을 30대 후반까지 미루더라도 크게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 결혼한 대학 후배만 해도 20년 가까이 연애 끝에 남녀 각각 마흔과 서른다섯에 결혼에 골인했다. 앞으로도 30대 후반 여성의 출산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만혼·만산에 줄어드는 ‘둘째의 시간’어느 연령대서든 출산이 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지만 문제는 만혼자들의 경우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통상 출산 후 휴가나 휴직을 갖고 직장에 복직하는 걸 감안하면 첫 임신부터 다시 둘째를 고민하기까지 3년이 훌쩍 지나가기 일쑤다. 30대 후반에 첫째를 낳은 여성이라면 둘째를 가질 수 있는 ‘생물학적 시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셈이다. 남편의 연령이 평균적으로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둘째를 출산한다고 가정할 때 남편의 나이는 40대 초중반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부모 입장에서도 향후 양육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부담이 크다.이 때문에 출생아 구성은 첫째아 중심으로 더욱 기울고 있다. 9월 출생아 중 첫째 비중은 63.3%로 전보다 증가했고, 둘째·셋째 비중은 감소했다. 만혼·만산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1자녀 가구 고착화’는 피하기 어려운 흐름이다.실제 “둘째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지인 가운데도 30대 후반에 결혼해 아이를 가진 이들은 많지만, 둘째는 물리적으로 어려워 포기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물학적 시계 뿐 아니라 자녀 양육에 드는 경제적 부담까지 고려하면 2명 이상의 자녀는 갈수록 택하기 어려운 선택이 되고 있다.● 2명이 1명도 낳지 않는다면…9월에도 5732명 인구 자연감소인구를 유지하려면 2명이 2명은 낳아야 한다. 이를 대체출산율이라고 한다. 다음 세대가 현 세대 인구를 그대로 대체하기 위한 출산율이다. 영아사망률 등을 고려해 보통 2.1명을 선진국의 대체출산율로 본다. 한국은? 두 명은커녕 OECD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0명대를 장기간 이어온 국가다. 대만·싱가포르·일본도 초저출산에 포함되지만, 한국처럼 0명대가 8년 넘게 지속된 사례는 없다. 인구학에서는 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인 상황만 따로 떼어서 ‘초저출산’ 상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국은 사실상 ‘극초저출산’ 혹은 ‘초초저출산’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처럼 2명이 1명도 낳지 않는 식이라면 다음 세대 수는 절반 아래로 떨어진다. 아무리 출산율이 0.8명으로 오른다 해도 전체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는 셈이다. 한국은 유럽과 일본처럼 이민이 많거나 외부 유입이 다양한 구조도 아니어서, 인구 구조의 급격한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출생아 증가라는 희소식에도 마냥 팡파레를 울릴 수 없는 이유다. 실제 인구 자연 감소는 이번 통계에서도 드러났다. 2025년 9월 자연증가(출생 - 사망)는 -5732명으로 마이너스 수치를 나타냈다. 사망자 수가 전년보다 3.9% 줄긴 했지만, 3분기 전체 사망자는 8만5051명으로 출생아(6만5039명)보다 2만 명 이상 많았다. 사망자의 연령별 구성에서도 85세 이상 고령층 비중이 상승했다. 사망자 집단에서도 고령화가 진행된 셈이다. 이는 앞으로 자연감소 폭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금, 요양급여 등 5년 내 한계통계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책 효과로 출생아는 늘었다. 그러나 인구 감소의 큰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출생아 증가’와 ‘자연감소 확대’라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을 동시에 맞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출생아 반등이 긍정적 지표로 읽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령화가 더 빠른 속도로 인구 규모를 줄일 것이다. 출생아 증가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의 ‘가속화’에 대비한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출산 지원정책과 더불어 인구가 줄어도 경제·사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동·연금·지역정책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고령화로 연금과 요양급여 등이 한계에 이르는 데 단 5년이 남았다는 분석도 있다. 일시적 반등의 기쁨에 머무를 시간이 아니다. 이번 통계는 출생아 증가의 흐름을 살릴 기회이자, 인구 감소 시대를 정면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아이와 함께 있으면 처신에 더욱 신경 쓰게 된다. 혼자라면 초록불이 깜빡일 때 후다닥 뛰어 건널 텐데 아이와 함께라면 “깜빡일 땐 기다려야 해”라고 말하고 멈춰 서고, 함께 게임을 할 때도 “꼼수는 안 된다”며 한결 더 정직하게 임한다. 남이 보든 안 보든 몸가짐도 더욱 바르게 하게 됐다.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적이나 성취를 떠나, 아이가 바르고 올곧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그런 부모의 입장에서 근래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유수 대학에서 잇따라 드러난 인공지능(AI) 커닝 사태였다. 도구와 수법이 무엇이었는지를 떠나, 많은 학생이 그토록 쉽게 양심의 문턱을 넘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을 안겼다. ● 명문대에서 잇따라 드러난 ‘AI 커닝’지난 9일 연세대는 지난달 말 신촌캠퍼스 3학년 대상 교양 수업 중간고사에서 40명 넘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벌인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온라인 시험에서 최소 40여 명의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캡처해 유출하거나, 촬영 화면을 고의로 가리고 챗GPT 같은 생성형 AI 프로그램으로 답을 구했다.연세대 사례가 보도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고려대 사례가 이어졌다. 고려대에서는 비대면 강의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집단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안암캠퍼스 한 교양과목 중간고사에서 일부 수강생이 오픈채팅방에 시험 문제를 공유하고 답안을 주고받았다. AI 도구로 답안을 작성한 정황도 파악됐다.곧이어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역시 지난달 치러진 서울대 교양과목 중간고사에서 다수의 학생이 AI를 이용해 문제 풀이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른바 ‘SKY’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 세 곳에서 모두 부정행위가 확인된 것이다.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모인다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실망스럽지만, 더 우려스러운 건 이 세 건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재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다른 수업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답하거나, “이미 흔하다,” 심지어 “이번에 걸린 곳들은 재수가 없어 걸린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 “나만 안 쓰면 손해”…‘유능한 도구’ 사용에 큰 죄책감 느끼지 않아입시와 취업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집단 부정행위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12년 서울대 경영대학에서는 경제원론 시험 문제가 외부에 유출된 사실이 드러나 강사가 직위해제되고, 학교가 전체 성적을 다시 산정하는 일이 있었다. 2015년 전북대 의대에서는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일부 정답을 돌려본 의혹이 확인돼 7명이 징계를 받았다.고교 단계로 범위를 넓히면 사례는 더욱 많다. 2017년 숙명여고에서는 교무부장이던 아버지가 시험지를 여러 차례 유출해 쌍둥이 자녀의 성적을 올린 이른바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같은 해 전북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는 새벽에 학교에 들어가 수학·영어 등 기말고사 시험지를 훔쳐 돌려본 학생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4학년도 수능 때 광주·전남 지역에서 수험생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정답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 300명 넘는 성적이 무효 처리된 사건도 있었다.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특히 눈길을 끈 건 비대면 수업과 온라인 시험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AI라는 ‘유능한 도구’가 결합하는 순간, 학생들의 윤리적 기준이 더욱 쉽게 무뎌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은 이에 대해 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기사들을 보면 “나만 (AI 사용) 안 하면 손해”라는 식으로 답한 학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가’ 교육과 합의 필요해사실 ‘AI라는 새롭고 유능한 도구를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가’ 하는 윤리적 고민은 국제적으로도 화두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AI를 기존 컴퓨터나 검색 툴 같은 단순 ‘도구’로 인식해 시험·보고서에 활용하는 것을 큰 부정행위로 여기지 않는 인식들이 확인된다. 실제 해외 유명 대학에서도 AI를 활용한 집단 부정 사례들이 다수 적발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긴 하다. 보고서 주제 선정과 기본 구조는 내가 잡았지만 초안만 AI에게 쓰게 한 뒤 문장을 다듬어 제출한 경우는 부정일까 아닐까. 시험 전에 “수업 자료를 모두 분석해서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를 정리해 달라”고 AI에게 요청해 그 요약본만 보고 공부했다면 이는 편법일까. 시험 중 AI에 정답을 직접 묻지 않고 단순 개념 설명이나 접근 방법만 확인했다면 이것도 부정행위로 봐야 할까.기술의 발달 속도는 윤리 규범과 제도 정비보다 훨씬 빠르다. 이런 회색지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헷갈리니 일단 금지하자”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AI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아무리 감독과 제재를 강화해도 모든 부정행위를 걸러낼 수는 없다.어디까지를 ‘학습을 돕는 도구’로 보고, 어디부터를 ‘정직을 훼손하는 행위’로 볼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쌓아야 한다. 동시에 AI 기술 사용법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감각을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 주는 교육도 필요하다.● 결과 위해서라면 편법과 꼼수 눈감는 사회 분위기도 성찰해야더불어 이 문제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돌아봐야 한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의 결과주의,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순진한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가 청년들에게 ‘성공을 위해 어느 정도 편법은 괜찮다’는 메시지를 줘 온 게 사실이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과정의 꼼수쯤은 눈감아 주는 문화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AI 윤리교육을 강화해도 말로만 남을 것이다. AI 시대가 새로운 역량을 요구하는 시대라지만, 그 바탕에는 오히려 가장 오래된 덕목인 정직과 신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정직하게 쌓은 과정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을 갖는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일 것이다.AI 커닝 사태를 계기로 많은 대학이 시험 관리와 감독 강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기술적·행정적 조치와 함께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놓고 살아왔는지 성찰하는 논의가 병행하길 바란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젊어 보이는 40대, 이른바 ‘영포티(Young Forty)’가 몇 달째 화제다. 처음 이 말이 등장했을 때는 젊은 패션과 소비, 취미를 즐기며 활기차게 산다는 긍정적 이미지로 쓰였다는데, 언제부턴가 ‘젊어 보이려 애쓰는 중년’을 뜻하는 조롱의 뉘앙스가 덧붙었고 요즘엔 온라인상에서 각종 밈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 7, 8년 전에도 있었던 ‘영포티’ 비판 사실 이전의 영포티가 내내 긍정적인 의미였던 건 아니다. 과거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영포티를 비판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젠더적 시각에서의 비판도 있었다. 영포티라는 단어가 성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영포티라고 하면 ‘남성’을 떠올린다. 2017년 통계청이 영포티를 ‘새로운 아재 문화’와 연결 지어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 기사나 칼럼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20대 여성 사회 초년생과 사랑에 빠지는 서사를 지적하며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을 타자화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지금도 영포티를 비판할 때면 흔히 ‘20대 여직원이 날 좋아하나 착각하는 40대 상사’의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언급된다.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영포티가 다시 비난의 표적이 된 이유로 청년 세대의 위기감이 지목된다. 가진 것 없는 20대들이 “젊음마저 침범당한다”는 불안감 속에서,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갖춘 40대 중년들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청춘을 상징하는 ‘젊음’이 40대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확장되자, 그에 대한 반감이 혐오로 표출된 셈이다.● 피규어 즐기는 ‘키덜트’…영포티,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냐물론 40대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영포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나이키·아디다스·마블 같은 브랜드는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소비해 온 문화 코드이기 때문이다. 젊음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젊을 때 향유하던 문화를 계속 소비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들의 항변처럼 젊게 살고자 하는 중년 문화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키덜트(kidult)’로 불리는 소비층이 시장의 큰 축을 차지했다. 젊은 문화를 넘어 과거 어린이들의 문화로 여겨지던 게임, 장난감, 캐릭터 굿즈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어른들이다. 실제 요즘 이들 매장에 가보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훨씬 많다. 레고 매장만 봐도 유아용 ‘듀플로’ 제품을 제외하면, 일반 제품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사람 대부분이 어른들이다. 닌텐도, 피규어, 프라모델, 보드게임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많다. 내 주변에도 청소년들의 전유물 같던 취미를 즐기는 40대가 많다. 모바일 게임은 물론, 컬러링북 채색, 애니메이션 굿즈 수집, 미니어처 가구 만들기까지 다양하다.삶의 주기가 늦춰지면서 이런 흐름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만혼과 늦은 출산으로 인생 주기가 전반적으로 지연되면서, 과거 ‘아저씨’로 불리던 30대는 청년, 40대는 젊은 아저씨가 됐다. 20년 전만 해도 40대라 하면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오고 ‘애가 둘 이상 딸린’ 가장의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지금의 40대는 다르다. 배가 나오지 않은 건 물론이고 결혼하지 않은 경우도 태반이다. 고령화로 한국의 중위연령도 30대 초반에서 45세로 상승했다. 이제 40대는 사회의 중심 세대다. 과거 청년들의 자리를 그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영’한 아동청소년들 놀이 문화는 사라져중장년층이 ‘영’한 문화로 넘어오는 새,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영’한 세대인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이런 놀이 문화에서 밀려났다. 한국 아동청소년의 놀이 시간이 국제적으로 매우 짧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은 모든 아동이 연령에 맞는 휴식과 놀이,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놀이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아동의 전인적 성장과 행복을 위한 기본적 인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2024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하루 여가 시간은 평균 1시간 32분으로 5년 전보다 더 줄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평일 자유시간이 1시간 미만인 학생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는 9~17세 아동 중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42.9%였지만, 실제로 놀았다는 비율은 18.6%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실제 요즘 놀이터만 봐도 종일 썰렁하다. 그나마 아이들이 모이는 시간은 오후 8시 넘어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때다. 학원을 전전하느라 그 시간이 돼야 겨우 자유시간이 나는 것이다. 밤 9시에 퇴근할 때, 그제야 가방을 메고 귀가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적잖이 본다. ● ‘정규수업 외에도 4시간 이상 공부’…놀 시간 없는 韓 아이들지난해 여성가족부 ‘사교육 참여 및 시간’ 통계에서 초·중·고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78.5%였고, 초등학생의 경우 10명 중 약 4명(40.2%)이 정규 수업 후 하루 3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학습시간’ 통계에서도 지난해 초·중·고 학생의 정규 수업 외 학습(방과후 수업, 학원수업, 과외, 자습 등) 시간이 “4-5시간”이라는 비율이 10.4%, “6시간 이상”의 비율도 3.7%에 달했다. 아동청소년들이 놀 공간도 부족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데려갈 곳이 많았는데 요즘은 주말마다 어디 놀러갈지 찾는 게 숙제다. 중학생이 된 우리 첫째가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가는 곳은 노래방이나 영화관, 방탈출 카페 같은 상업시설이다. 성인들을 위해 만든 공간에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서비스가 덧붙은 것이지, 아동청소년을 위한 놀이 공간이라 할 수는 아니다. 지자체 역시 유아용 놀이시설을 확충하고 있는 데 반해 청소년을 위한 공간엔 관심이 적다. ● 아이들 줄어들며 생긴 문화·경제적 공백, 어른들이 메워이렇게 아동·청소년의 입지가 좁아지는 사이, 그들의 인구도 급감했다. 1990년대 초 0~14세 인구가 약 1400만 명이던 것이 현재는 600만 명 미만으로, 30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아이들이 사라진 문화와 소비의 빈자리를 어른들이 채웠다. 어쩌면 영포티로 대표되는 ‘젊음화(化)’와 ‘청춘화’ 현상은, 아이들이 줄어들며 생긴 문화적·경제적 공백을 메우려는 산업계의 전략과 어른 세대의 욕망이 맞물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젊음의 불균형’이 영포티라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얼마 전 쉬는 날 아이와 길을 걷다가 식겁한 경험을 했다. 교차로가 있는 8차선 도로를 건너려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 아이가 말했다.“엄마, 저 할아버지는 왜 초록불로 안 바뀌었는데 건너가시지?”시선을 돌리니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고령의 어르신 한 분이 차도로 들어서고 계셨다. 가까운 차로의 차량은 멈춰 있었지만, 맞은편 차도는 여전히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어르신은 고관절이 불편하신 듯 보폭이 좁고 걸음이 느렸다. 초록불이 켜져도 다 건너지 못할까 봐, 미리 발을 떼신 모양이었다.곧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보행 신호는 수십 초간 이어졌다.8살 막내와 느긋하게 걸어 건너편에 도착했지만, 어르신은 여전히 중앙선쯤에 머물러 계셨다. 그때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어, 어 안 되는데” 하는 새 맞은편 교차로에서 좌회전 차량들이 어르신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아이와 나는 “멈춰요! 사람 있어요!”를 외치며 팔을 흔들었다. 다행히 지나던 젊은 행인 두 명이 차도로 뛰어들어 어르신을 부축해 길을 건넜다.● 8차선 도로, 50초도 버거운 노인들“엄마, 우리 할아버지도 저렇게 길을 못 건너게 되면 어떡해?”길을 건너온 아이가 던진 질문에 심란해졌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도로뿐 아니라 부모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칠순을 넘긴 양가 부모님은 이미 근골격계나 시력 등 노화로 인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빨간불로 바뀐 8차선 한가운데 부모님이 서 계신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보행 신호 시간은 보통 ‘1m를 1초에 걷는다’는 기준으로 계산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보행자 신호 시간은 ‘보행 진입 7초 + 횡단보도 길이(m)당 1초’다. 정부는 최근 고령자 통행이 많은 구간의 기준을 ‘1m당 1초’에서 ‘0.7m당 1초’로 완화했다.이를 8차선 도로(폭 약 26m)에 대입하면 일반 구역은 약 33초, 노인·어린이 보호구역은 약 44초, 주요 교차로에서 신호를 3~6초 연장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33~50초 사이가 된다. 보통 성인은 1m를 1~1.5걸음에 건너기에 충분한 시간이다.하지만 고령자는 1m당 네댓 걸음이 걸릴 수 있다. 앞서 본 어르신만 해도 1m 걷는 데 5초가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실제 거리에서는 수많은 어르신이 매일 ‘빨간불 중간’에 멈춰 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대수명은 늘고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보내는 ‘비건강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 인구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카드 대면 보행 신호 늘고, 알아서 늘려주고가장 손쉬운 해법은 신호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신호를 무작정 늘릴 수는 없다. 보행 시간이 길어지면 차량 대기 시간이 늘고, 도심 교통 혼잡도 커진다.이런 딜레마를 해소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에서는 걸음이 느린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해 횡단보도 초록불 시간을 늘려주는 교통카드를 도입했다. ‘그린 맨 플러스(Green Man Plus)’ 제도다. 노인·장애인용으로 발급된 카드를 신호등 기둥의 단말기에 갖다 대면 초록불이 3초에서 최대 13초까지 연장된다. 2009년 5개 교차로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한 뒤 현재는 1000곳 이상으로 확대됐다. 모든 신호 시간을 일괄적으로 늘리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만 시간을 더 주는 방식이다. 보행자가 카드를 갖다 대지 않아도 신호등이 알아서 ‘스마트’하게 작동하는 방법도 있다. 영종·청라국제도시 등에 추진되는 스마트 횡단보도는 인공지능(AI) 카메라가 사람을 인식해, 아직 차도에 보행자가 남아 있을 경우 보행 신호를 자동적으로 5~10초 연장하는 기능을 갖췄다.도로 자체를 스마트하게 바꾸려는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보행자·차량 신호 중첩(Overlap) 운영’ 방식은 교차로 구조와 교통량을 분석해 보행자 신호와 차량 신호를 일정 구간 겹쳐 운용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보행자가 진입할 때는 차량이 잠시 멈추고, 횡단이 끝나갈 즈음엔 다른 방향 차량이 움직이도록 신호를 배분한다. 교통 혼잡이 큰 도심에서는 실시간 교통량을 분석해 보행 시간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스마트 교차로’ 연구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47년 뒤면 길을 건너는 보행인 절반이 노인 초록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는 ‘보행자 잔여시간 표시등’, 빨간불 잔여시간을 알려주는 ‘적색 잔여시간 신호등’도 신호 시간을 바꾸지 않고 위험을 줄이는 장치다. 원래는 무단횡단을 줄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겐 다음 신호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예고등’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전에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당시 취재한 어르신들도 “빨간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으니, 때맞춰 일어나 건널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72년이면 한국의 중위연령은 63.4세가 된다. 길을 건너는 사람 절반이 노인이 될 거란 이야기다. 지금은 길을 건너시던 그 어르신이 ‘남의 부모님’일지 몰라도, 머지않아 그 자리에 서 계실 분은 우리의 부모님이고, 언젠가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번번이 어르신들 곁에서 길을 건너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네 명의 부모님을 모시는 자녀이자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다. 많은 시간을 부모님께 할애하긴 힘들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횡단보도 위 노인들이 안전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언젠가 우리 모두 길 위의 느린 보행자가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전 세계 면적의 46.1%를 차지한다. 인구는 29억1000만 명, 국내총생산(GDP)은 62조 달러로 전 세계 GDP의 62.2%에 달한다. 이들 국가의 경제 성장과 번영을 위해 1989년 창설된 공동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의 32차 정상회의가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21개 회원국·지역의 정상, 대표단, 경제인 등 6000여 명이 한국을 찾는다. 특히 이번 회의는 자유무역주의를 근간으로 한 국제무역 질서가 흔들리는 시점에 열려 주목된다. 그 갈등의 중심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해 6년 만에 회동한다.》한국은 2005년 부산에서 13차 회의를 개최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천년의 고도’,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는 슬로건으로 유치를 이끈 경주에서는 역사적 순간을 맞기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민선 7·8기 경주시장을 맡아 정상회의 유치를 이끈 주낙영 시장(65)은 24일 “경주에서 천년의 유산이 내일의 혁신과 만나게 될 것”이라며 “이번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경주가 글로벌 행사를 상시 유치할 수 있는 도시로 도약하고, ‘동양의 다보스(매년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스위스 도시)’가 되길 기원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 상황은…. “주요 시설은 이번 주까지 대부분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유치가 결정된 지난해부터 1년여간 행정력을 총동원해 준비했다. 인프라는 공정 98%로 대부분 준공을 앞두고 있다. 회의가 열릴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는 전면 리모델링해 재구성했다. 국제미디어센터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VIP 숙소를 포함해 특급호텔, 리조트, 게스트하우스 등 총 1만3000여 객실을 확보했다. 포항·김해공항과 연계한 셔틀버스 체계도 마련했고, 행사 기간에는 친환경 전기·수소 버스를 투입한다. 총리께서 네 번이나 내려오셨다. 장차관님들도 수시로 경주에 오고 있다. 힘들지만 그만큼 행사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높다는 뜻이니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남은 한 달 동안 시운전을 거쳐 완벽하게 준비하겠다.” ―미중 정상이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시진핑 주석도 참석한다고 했다. 정부에서도 중국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 향후 국제무역 질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중 양국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래서 시 주석도 참석을 결정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안전과 의전을 최우선으로 준비하고 있다. 주요 정상들은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도착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늘 그렇듯 헬기를 타고 미군기지 비행장에 내리지 않겠나 싶다. 보문관광단지와 화백컨벤션센터 일원을 특별교통대책구역으로 지정해 대표단 전용 차량 동선을 별도 관리할 계획이다.” ―회의 규모가 상당히 커질 것 같다. “미중 양국 정상이 온다면 말 그대로 ‘장이 서는 것’이다. 양국 정상이 정상회담을 열 것이고, 두 정상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이 경주를 찾을 것이다. 역대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최대 규모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 수행 인원만 550명 수준이라고 들었다. 미중, 한미, 한중 등 주요 양자회담도 잇따를 것이다. 회의 중요도가 한층 커졌다.” ―세계적인 기업인들이 많이 참석한다. “정상들만큼 주목해야 할 게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 많이 온다는 사실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APEC CEO 서밋 의장을 맡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글로벌 CEO들을 3000명 이상 부르겠다고 하더라. 우리나라 CEO들까지 합치면 경제인만 5000∼6000명인 대규모 서밋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젠슨 황을 비롯해 글로벌 CEO들이 회의를 열고 기조연설도 할 예정이다.”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회의에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경주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다. 이런 경주에서 세계무역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는 전환점의 회의가 열린다는 건 매우 상징적이라 생각한다.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 관계도 중요한데, 관련한 4대 강국 정상이 경주에 모이는 것이다. 과거의 유산 위에서 새로운 무역 질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는 경주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공식 만찬장이 바뀌면서 논란이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중정에 만찬장을 지었는데, 준비위원회에서 라한호텔 대연회장으로 변경 의결하면서 ‘혈세 낭비’ 지적이 나왔다. 애초 기왕 경주에서 행사한다면 한국 전통의 미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곳에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서 불국사까지 고려했다. 그런데 정상들이 오가는 데만 2시간이 걸려서 안 되겠더라. 중앙정부와 협의해 경주박물관 중정에 건물을 지어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만찬 때 식사뿐 아니라 식사에서 볼 공연도 멋있게 해야 한다고 무대를 크게 잡다 보니 만찬 공간이 좁아졌고, 수용 인원이 225명으로 줄었다. 미중 정상이 온다면 참석자가 어마어마할 게 아닌가. 박물관은 차량 동선도 아주 복잡할 거라고 하더라. 정부에서 그렇게 설명하니 우리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아쉽지만 많은 분이 참석할 수 있도록 장소를 변경하게 됐다. 목조건축이라 조리가 어렵다거나 화장실이 멀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기존 만찬장은 어떻게 되나. “정상·글로벌 CEO 회담 장소로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있다. 예를 들어 미중 정상회담을 박물관에서 여는 식이다. 전 세계에 13점 있는 금관 중 경주에 있는 6점을 한자리에 모아 최초로 특별전을 할 계획인데, 그때 전시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구상되고 있다.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는 중이다.” ―‘1박 5000만 원 바가지 숙소’ 논란도 제기됐다. “일부 언론에서 그렇게 보도했는데, 예약 사이트에 성수기 최고가가 노출되면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다만 숙박업소들 요금이 평상시 대비 많이 오른 건 사실이다. 숙박업계와 ‘상생요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합리적 가격 질서를 유도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숙박업소 관계자들에게 시장 명의의 서한도 보냈고, 교육도 시행 중이다. 숙소 위생에도 신경 쓰고 있다. ‘깨끗함이 최고의 환대’라는 생각으로 경북도와 함께 숙소 위생감시원을 운영 중이다. ‘손님들을 뜨내기 취급해선 안 된다. 경주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돌아가야 다음에도 다시 경주를 찾을 것이다’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일반 관광객 맞이 준비는…. “주요 정류장에 영어·중국어·일본어 표지판을 정비하고 ‘스마트 경주’ 앱과 연계해 AI 기반 실시간 번역 서비스도 지원한다. 세계유산 야간 개장, 신라 고취대 공연, 황리단길 퍼레이드 등 다양한 행사도 준비했다. 사실 경주가 세계 100대 관광지 중 한 곳이고 ‘타임’,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유수 언론에서 한국을 소개할 때도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소개되는 곳인데, 과연 그만한 인프라와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스스로에게 의문이었다. 과거 APEC 정상회의 개최지들을 보면 행사를 계기로 관광을 발전시켜 이후 관광객이 5, 6배씩 늘어난 곳이 많다. 경주도 이 기회에 시설과 내용을 고양하고 인지도를 높여서 세계 100대가 아닌 50대 관광지 안에 들어보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경주 APEC이 어떤 행사로 기억되길 바라나.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회원국들이 모인다.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경주 선언’이 나온다면 경주는 세계사에 남을 것이다. 역사책에서 배우는 ‘카이로 회담’, ‘포츠담 선언’을 보라.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 독립을 보장한 회담, 전쟁 막바지 독일 처리 문제와 일본 최후통첩을 논의한 회담이다. 이번 회의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온다면 경주도 세계인의 입에 오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같이 선 자리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경주 회의가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포스트 APEC’ 계획은…. “APEC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겠다. 부산은 정상회의 이후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를 보존·발전시켜 명소로 만들었다. 경주는 유치 결정이 늦어 새 행사장을 짓지 못하고 기존 시설을 활용했다. 행사가 끝나면 기존 시설 사용을 위해 APEC 관련 시설은 철거해야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APEC 기념관’을 별도로 꾸리려 한다. 정상회의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정상들이 앉았던 의자, 사용했던 물건도 전시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옆에 트럼프 등신대를 세워 기념 촬영도 가능하게 하고 싶다. 경주엑스포대공원 광장에 APEC 기간 대한민국의 산업·기술 우수성을 알리는 전시장이 설치될 예정인데, 이곳을 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공원 내 ‘APEC 기념의 숲’도 조성할 구상이다.”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PEC은 경주만의 행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품격을 세계에 보여주는 무대다. 성공은 경주의 역량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환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민이 민간 외교사절이 돼 손님맞이를 잘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시기에 경주시장을 맡은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고, 협조해 주시는 시민들께 감사드린다. 경주는 ‘천년의 미소’로 세계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주낙영 경주시장(65)△경북 경주 출생△대구 능인고 졸업△성균관대 행정학과 학사△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미국 아이오와대 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석사△경북대 대학원 행정학과 박사△29회 행정고시 합격△경상북도 행정부지사△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장△민선 7·8기 경주시장경주=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물이 차올라서 (추가 구조 인력이) 조금 필요할 것 같긴 하거든요?” 11일 새벽, 갯벌에 고립된 남성을 구하러 홀로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 해양경찰관 고 이재석 경사는 파출소 팀장에게 무전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추가 인력은 오지 않았다. 당직자 4명은 규정된 3시간의 휴게 시간을 훌쩍 넘긴 6시간 동안 쉬라는 지시를 받고 잠들어 있었고, 팀장은 그들을 깨우지 않았다. 결국 34세의 젊은 경찰은 자신의 구명조끼까지 고립된 남성에게 벗어준 채 차디찬 바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다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규정을 어기고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간부들은 대기 발령됐고 징계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몇몇의 무거운 징계로 끝나선 안 된다. 올 초 나온 해양경찰청의 ‘중기 인력 관리 계획(2026∼2029)’에 따르면 자연재해, 해상사고로 인한 구조·구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인력 증가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2029년 필요 인력 대비 실제 근무 인력이 1792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기준 전체 인력의 10%가 넘는 수다. 이런 인력 부족은 현장에서 치안과 안전을 담당하는 일선 경찰서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미 2023년 자료에서도 해경 현원은 기준 정원보다 199명 부족했는데, 이 중 179명이 경찰소, 파출소 등에서 미달했다. 문제는 상황이 크게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출산으로 청년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데다, 야간·비상 출동이 잦고 보수와 처우는 상대적으로 낮은 해경의 직업으로서 매력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파출소가 휴게 시간을 규정보다 길게 보장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 소방, 군 등 다른 ‘MIU(Man In Uniform)’ 직군 전체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군 인력이 줄면서 의무경찰제가 폐지됐다. 이에 따라 육상 경찰도 지방 인력을 서울로 차출하는 횟수가 최근 2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전체 인력은 제자리걸음이거나 감소세다. 서울에서만 2023년 순경 4626명이 결원 상태라고 한다. 5년 이하 신참 경찰들의 ‘엑소더스’도 늘어나는 추세다. 소방공무원 노조도 “인력 부족으로 2인 1조 투입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2023년 전북 김제에서도 새내기 소방관이 홀로 화재 현장에 진입했다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조사 결과 이 소방관이 근무한 안전센터 근무인력은 정원보다 3명이나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저출산·고령화로 이런 인력난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출생아 수는 더욱 급감했고, 이제 그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앞으로 공공안전 현장은 전에 없이 심각한 인력 가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인력 편성과 근무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순찰·출동 거점을 통폐합하고, 해경이 인력 부족으로 도입한 야간 드론 순찰처럼 드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적극 활용해 작지만 효율적인 ‘스마트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더불어 MIU 직군의 처우 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호주머니가 가벼우면 허리가 굽는다’는 말처럼, 합당한 보상과 처우 없이 긍지와 명예를 기대할 순 없다. 숭고한 희생은 그 사회와 시스템이 숭고하지 않음을 증명할 뿐이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전 세계 수억 명이 시청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에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이 등장한다. 게임 호객꾼 ‘딱지맨’이 공원에서 어르신과 노숙인들을 상대로 참가자를 모집하는 장면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탑골공원은 이처럼 갈 곳 없는 어르신과 노숙인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묘사돼 왔다. 언론 보도에서는 ‘어르신 놀이터’ ‘노숙인 성지’ 같은 표현도 흔히 쓰인다.최근 종로구가 이런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며 공원 담장 옆 바둑·장기판을 철거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어르신들이 모여 게임을 하다 말다툼과 몸싸움이 잦았고, 노상방뇨 같은 불쾌한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른 시민들의 이용이 어렵다는 게 구청 측이 설명한 철거 이유다. 하지만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환경을 개선하면 될 일을 굳이 어르신들의 놀이 공간 철거로 해결하려 했느냐는 반론도 뒤따랐다. 노인 혐오와 낙인을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됐다.구청의 고충도 이해할 만하다. 탑골공원에서는 노인·노숙인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상인들은 “상권이 죽는다”는 불만을 거듭 제기해왔다. 1897년 조성된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은 사적 제354호로 지정된 국가문화유산이다. 3·1운동의 발상지로 매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이 역사적 공간이 노인·노숙인 집결지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가려지는 상황을 행정 당국이 마냥 방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그러나 노인들이 탑골공원으로 모이게 된 구조적 이유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광복과 6·25전쟁, 강남 개발 등 격변의 현대사를 따라가지 못한 수많은 노인이 사회적 약자로 전락했다. 생계와 자녀 양육에 매달리느라 노후 준비는 뒷전이었고, 노인이 되고 나서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현재 생산가능인구 중심 노동시장에서 노인이 맡을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단순노무직이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이들조차 경비원, 대리주차, 가방에 단추 붙이기 같은 단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다.공적연금의 실질소득대체율도 20% 남짓에 불과하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지만,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줄곧 최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노년기를 전기(65∼74세)와 후기(75세 이상)로 나눠 보면, 후기로 갈수록 빈곤은 더 심각하다. 근로소득이 줄고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7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50%를 넘어선다.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노인들이다. 고령화로 가난한 노인들이 늘면 사회적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인의 수는 2025년 약 27명에서 2050년 74명, 2070년에는 81명에 이를 전망이다. 탑골공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틀딱충’ 같은 노인 혐오 표현은 이런 현실에서 오는 젊은 세대의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탑골공원 장기판 철거 논란은 결국 근본적 보장과 제도가 부족한 현실에서 생겨난 약자들의 집결, 그리고 그로 인한 행정력 낭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70년이면 우리 인구의 절반 가까운 46%가 65세 이상이 된다. 고령사회의 거대한 다수가 될 노인의 경제사회적 역할을 확충해 새로운 ‘착점(着點)’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오늘의 탑골공원 갈등은 내일 또 다른 공간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유병진 전 명지대 총장(사진)이 29일 명지대 용인 자연캠퍼스에서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교육부가 수여하는 청조근정훈장은 사립학교 교원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다. 유 전 총장은 교육과 연구 등 다방면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비혼 출산이 제도화되면 정말 출산이 늘어날까요?”지난해 만난 40대 남성 취재원은 비혼 출산 제도 도입에대한 생각을 묻는 내 질문에 이렇게 되물었다.그래, 생각해 보면 막연히 ‘다양성이 늘면 긍정적 영향이 있겠지’라고만 생각했을 뿐, 비혼 출산 같은 변화가 실제 출생아 수나 합계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해당 취재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비혼으로 본인들끼리 행복하게 살지, 아이를 가질지 알 수 없잖아요. 여전히 결혼은 안 했는데 아이가 있다, 이럼 다 이상하게 보는데 과연 아이가 늘까요? 난 잘 모르겠는데요.”● 눈치 보는 사회, ‘정상 가족’의 벽은 여전히 높아그의 지적처럼 비혼 제도 도입이 곧장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지는 미지수다. 한국 사회는 남과 다른 것을 경계하고 혼자 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한 사회다. 미국 스탠퍼드대 문화심리학자 미셸 겔펜드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법과 제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여기는 사회적 규범을 무형의 규범이라 정의하고, 이것이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국가별로 순위를 매겼다. 이른바 ‘빡빡한 문화(tight culture)’ 순위다.그 결과 한국은 33개 대상국 가운데 파키스탄, 싱가포르 등과 함께 5위를 기록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하거나 규율이 엄격한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겔펜드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무형의 규범이 강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습이나 통념을 벗어난 행동을 하기 어렵다. 웬만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를 드러내기보다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사실 이런 이론을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한국이 ‘튀는 행동’을 싫어하는 사회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눈치를 보는 문화’가 뿌리 깊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정상 가족’의 틀이 공고하다. 정상 가족이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형태라고 여기는 가족, 즉 남녀 부모와 혈연 자녀로 구성된 2세대 가족을 의미한다.● 다양성이 오히려 가족 파괴 부추긴단 우려도그런 맥락에서 다양성이 전통 가족을 허물고 가족의 유대를 약화시켜 결혼과 출산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대 사회의 파편화를 부추겨 인간관계를 더 소홀히 만들고 사회적 유대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과거 읽은 글 가운데 ‘애초에 혼인의 복잡한 속박을 피하려고 혼인 밖 제도를 선택한 사람들이, 육아라는 더 큰 속박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일리가 있다. 가족 제도의 부담을 피해 새로운 가족을 택한 사람들이 더욱 큰 부담을 안기는 출산과 육아를 택하려 할까? 성소수자 결합이나 비혼 출산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늘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곧바로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리라는 건 어쩌면 순진한 기대일 수 있다.실제로 프랑스에는 비혼 커플을 위한 ‘팍스(PACS)’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를 택한 커플이 혼인 커플보다 아이를 적게 낳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파리1대학을 졸업한 박준혁 법학 박사가 202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8~39세 PACS 커플의 46%가 자녀가 없었던 반면 혼인한 부부 중 자녀가 없는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85%의 혼인 부부가 자녀를 두고 있었다. 2011년 기준으로 보면 동거 중인 커플 가운데 PACS를 맺어 신고한 비율은 3%에 그쳐 제도의 실효성 자체에도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선택지 좁히면 결혼도 출산도 더 줄어들 뿐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아이를 직접 많이 낳게 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출산은 가족이라는 결합의 한 결과물일 뿐이다. 비혼 커플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통적인 기혼 커플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결혼만 고집한다면 청년들은 좁은 선택지 안에 갇혀 결혼도 하지 않고, 새로운 결합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미 전통적 기혼 부부의 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비혼 커플이 기혼 커플보다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지금처럼 전통적 결혼만 인정한다면 가족 수와 출생아 수는 모두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결국 법률혼 외에도 다양한 결합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청년들이 가족을 하나라도 더 선택하고 사회도 구성원들의 유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자면 부담스러운 결혼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그런 변화의 결과로 아이도 늘어날 수 있다. 실제 법률혼 외 결합을 인정한 국가들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2021년 기준 멕시코의 비혼 출산 비율은 70.4%였는데 합계출산율은 1.82명에 달했다. 프랑스 역시 비혼 출산 비율이 62.2%였지만 합계출산율은 1.8명(2022년 기준)이었다. OECD 39개국 가운데 비혼출산 비율이 평균 이상인 나라들의 합계출산율은 평균 1.61명이었고, 평균 미만인 나라들의 출산율은 1.45명에 그쳤다. ‘한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해 유명해진 인구학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출산율이 1.6명을 넘는 나라 중 비혼출산 비율이 30% 미만인 곳은 단 한 곳도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콜먼 교수가 지난해 방한했을 때 만났는데 그는 한국 저출산 해법을 묻는 질문에 “무엇보다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가족…‘제이미 맘’식 획일적 육아 문화도 변하지 않을까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 결혼과 육아를 둘러싼 강박적 기준도 완화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단지 가족의 형태뿐 아니라 이상적인 결혼 시기와 나이, 배우자의 조건까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세세히 규정해왔다. 이런 획일적 규범은 청년들이 결혼을 주저하게 하고 출산을 겁내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다양한 가족 형태가 자리 잡는다면 육아의 방식 역시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명문대 진학과 전문직 취업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일명 ‘제이미 맘’식 육아도 변할 수 있다. 비혼 동거·성소수·다문화·입양 가족 등 각기 다른 배경의 가족들이 만들어내는 양육 모델은 지금보다 더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다양한 가족은 저출산에 유효한 해법이란 답에 이른다. 적어도 결혼과 출산의 장벽을 낮추고, 청년들이 느끼는 육아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을 완화할 것만큼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관광객들이 ‘편백나무가 기가 막히게 좋다’ 이렇게들 말씀하세요. 그럼 제 자식이 칭찬받은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내가 틀린 선택을 한 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21일 경남 하동군 옥종면 편백나무 숲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김동광 씨(74)가 말했다. 편백숲은 김 씨 가족이 아버지로부터 아들까지 3대째 가꿔온 숲이다. 김 씨는 2015년 이 숲 가운데 축구장 42개 규모인 30.4ha를 하동군에 기부했다.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숲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하동군은 이 숲을 ‘하동 편백 자연휴양림’으로 조성해 2020년 7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휴양림에는 숲길 5.9km와 숙박시설·글램핑장·트리하우스 등이 들어섰다. 연일 많은 관광객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숲을 찾고 있다.● 지역 인구 6배 넘는 관광객이 숲 찾아 김 씨 가족은 원래 모래만 있던 민둥산을 울창한 편백나무 숲으로 바꿔냈다. 김 씨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귀국 후 사업으로 모은 자금으로 민둥산 일대를 산 후 1966년부터 숲 가꾸기에 나섰다. 197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35만 그루를 심어 현재 79ha 규모, 축구장 110개를 합친 크기의 숲을 만들었다. 지금은 높이 15∼20m, 둘레 1m에 이르는 대형 편백나무 약 20만 그루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숲을 키운 공로로 김 씨 아버지는 1995년 대통령 표창을, 2000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 씨 가족은 자신들이 가꾼 숲을 지역사회에 개방했다. 김 씨는 “좋은 산을 가족만 누리긴 아까웠다”며 “많은 사람과 함께하면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매일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방문객은 2022년 2만1742명, 2023년 2만2926명, 2024년 2만6271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휴양림이 위치한 옥종면 인구(4032명)의 6배를 넘는 수치다. 조용한 산촌은 관광지로 변모했다. 숲은 지역경제에도 파급효과를 주고 있다. 주민들은 농사 외에 관광업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생활 인구’도 늘었다. 생활 인구는 정주 인구 외에 관광·업무 등으로 월 1회 이상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사람을 뜻하는 개념이다. 군 관계자는 “휴양림은 하동군을 대표하는 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며 “방문객 증가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숲 관광지, 441억 원 생산유발 효과 숲을 관광지로 개발해 인구와 경제가 살아난 사례는 하동만이 아니다. 강원 인제군의 자작나무 숲도 대표적인 사례다. 산림청이 1970∼90년대 조성한 이 숲에는 자작나무 7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2012년 개방 이후 매년 30만 명이 찾는다. 이는 인제군 인구(3만956명)의 10배에 달한다. 산림청 추산에 따르면 자작나무 숲의 생산유발 효과는 441억 원, 일자리 창출 효과는 332명에 이른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숙박업·외식업·농산물 판매가 동시에 살아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인제군 전체 인구는 최근 10년간 줄었지만 자작나무 숲이 있는 인제읍은 오히려 인구가 늘었다. 2015년 6월 9235명이던 인제읍 인구는 2025년 6월 9852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제군 전체는 3만3139명에서 3만939명으로 감소해 대조적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21∼2024년 방문객의 소비 패턴을 분석했다. 휴대전화 이동 자료 7200만 건, 신용카드 사용 1억8000만 건, 신용정보 8억1000만 건을 종합한 결과, 인제군 전체 방문객 중 최대 27.6%가 자작나무 숲을 다녀갔다. 자작나무 숲 관람객 소비의 19.4%는 인제군에서 이뤄졌다. 식비(44.0%)와 물품 구매(49.1%)가 대부분이었다. 식비 비중은 숲을 찾지 않은 일반 방문객보다 1.7배 높았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 숲은 산림청이 지정한 세계적 산림관광지로 연간 100만 명이 다녀가며 울진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충북 괴산군의 산막이옛길 숲길 역시 2010년 개방 이후 매년 100만 명 이상을 유치하며 소멸 위기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관광산업의 확장이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의 중요한 단서로 본다. 이수광 산림과학원 산림휴먼서비스연구과 연구원은 “숲은 단순한 생태 자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생활 인구를 끌어오는 핵심 기반”이라며 “앞으로는 숲 관광을 지역 교육, 문화, 복지와 결합해 지속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요새는 숲길 걷는다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오더라고요.” 21일 충남 태안군 동서트레일 구간에서 만난 최진기 씨(67)는 점심 장사를 준비하며 “요즘 장사에 숲길 인기 덕을 톡톡히 본다”고 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 구간은 주말마다 전국에서 찾아온 ‘트레킹족’으로 붐빈다. 최근 걷기와 러닝 인구가 늘면서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각 숲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은 ‘숲길’이 관광과 여가의 새로운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도 국민이 가장 즐기는 생활체육은 걷기(34.6%)로 나타났고 헬스(13.1%), 요가·필라테스(7.2%)가 뒤를 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는 점이 숲길의 매력이다. 동서트레일은 충남 태안에서 경북 울진까지 849km, 55개 구간을 잇는다. 2023년 착공해 2027년 완전 개통을 목표로 조성 중이다. 총사업비는 604억 원. 완공되면 5개 시도, 21개 시군, 87개 읍면, 239개 마을을 지난다. 산림청은 올해 10월 전체 구간의 35%인 311km를 먼저 개통해 시범 운영에 나선다.특색 있는 숲길도 인기를 끌고 있다. 대전 대덕구 계족산에는 2006년 조성된 황톳길이 있는데, 두툼한 황토 위를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총길이 14.5km 규모로, 해마다 100만 명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됐다. 지리산 둘레길(전남·전북·경남, 300km),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제주 곶자왈 도보길 등도 연간 수십만 명이 찾는 인기 코스다. 최근에는 접근성을 강화한 ‘무장애 숲길’도 확산되고 있다. 숲속을 누구나 걸을 수 있도록 목재 덱을 설치하는 형태다. 서울시는 2011년 성북구 북한산과 양천구 신정산에 처음 조성한 뒤 현재 총 37곳, 69.32km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6.84km를 추가로 조성해 총 76.16km로 늘린다. 어린이·노약자·장애인도 편히 걸을 수 있어 도심 속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산림청도 이런 흐름에 맞춰 전국의 걷기 좋은 길 가운데 ‘명품 숲길 50선’을 선정했다. 지방 산림청과 시도가 추천한 30곳, 국민 추천 20곳을 합쳐 총 50곳이다. 하루 산행이 가능한 접근성 높은 코스이면서도 산림 생태와 역사·문화적 가치가 풍부한 곳들이다. 지역별로는 강원 15곳, 경기·서울·인천 7곳, 충청·대전 7곳, 경상·대구·부산·울산 13곳, 전라·제주 8곳이 포함됐다. 산림청은 12월까지 완주 인증제를 운영해 모든 숲길을 걸은 이에게 인증서와 기념 배지를 수여한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지리산 둘레길 조성 이후 인근 마을 주민 소득은 평균 18% 늘었다. 김주호 배재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숲길에 마을 체험, 역사 탐방을 녹여내는 융합형 관광도 늘고 있다”며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지역을 살리는 활로(活路)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윤석열 정부에서 신설된 행정안전부 소속 경찰국이 설치 3년 만에 폐지된다.이재명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경찰국 폐지 내용을 담은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경찰국은 오는 25일까지 활동한 뒤 공식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이번 개정령안은 경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구체적으로는 경찰국 폐지와 함께 정원 13명(치안감 1명, 총경 1명, 총경 또는 4급 1명, 경정 4명, 경감 1명, 경위 4명, 3·4급 또는 총경 1명)을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경찰국은 지난 정부에서 2022년 신설된 조직으로, 경찰 관련 주요 정책을 수립·추진하고 총경 이상 고위직 경찰관의 임용 제청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출범 당시부터 경찰 권한을 행안부가 직접 통제하려는 시도라는 비판과 함께 경찰 내부 반발이 거셌다. 특히 총경급 간부들이 집단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총경회의’는 경찰국 설치 논란의 상징으로 꼽힌다.경찰국이 공식 폐지됨에 따라 당시 총경회의에 참석했던 간부들에 대한 명예회복 절차도 진행될 전망이다. 경찰은 창경(創警) 80주년 기념 사업으로 집필 중인 ‘한국경찰사’에 총경회의 관련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하향 전보 등 불이익을 받았던 인사들에 대해서도 이르면 이달 말 예정된 정기 인사에서 복권 조치가 반영될 가능성이 제기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엄마, 아빠, 누나, 동생. 네 가족이 4인 식탁에 둘러앉아 일과를 나누며 깔깔 웃는 장면은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 부를 만큼 함께 밥을 먹는 일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그런데 그렇게 밥을 먹는 가족이 줄어들고 있다. 올해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5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은 세계에서 저녁을 혼자 먹는 비율, 즉 저녁 ‘혼밥’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주간 평균 ‘타인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횟수는 1.6회에 그쳐, G20 국가 중 최저 수준이었다.함께 사는 가족, 식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때 ‘정상 가족’이라 불리던 가장 보편적이고 전형적이던 4인 가족은 지난달 집계 이래 처음으로 300만 가구 아래로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 열 가족 중 한 가족으로 쪼그라든 4인 ‘정상 가족’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국내 4인 가구는 299만9680가구로, 한 달 전(300만5979가구)보다 줄며 처음 200만 가구대로 내려앉았다. 2016년 400만 선이 무너진 지 9년 3개월 만이고, 2021년 2월 350만 가구 아래로 내려간 뒤 4년여 만이다. 이제 4인 가구는 전체 2423만8510가구 중 12%에 불과하다.줄어든 자리는 1~3인 가구가 채웠다. 3인 가구는 2017년 처음 4인 가구를 추월한 뒤 계속 증가해 올해 6월 406만 가구를 넘겼다. 2인 가구도 607만 가구에 달했다.1인 가구는 이제 명실공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다. 지난해 3월에는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 3·4인 가구를 합친 수보다 훨씬 많다. 보편성만 따지면 이제 ‘나 혼자’ 사는 사람이 ‘정상 가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가족 규모 축소의 원인은 명확하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아이는 줄고 어르신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자녀로 구성된 2세대 가구의 규모는 줄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 다세대 대가족은 거의 사라지는 수순이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이른바 ‘독거노인’ 등 노인만 사는 1·2인 가구는 늘고 있다. ● 가족의 돌봄·경제안전망 약화…공적 체계 부담 커질 우려가족 규모 축소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혼자 또는 둘만 사는 사람을 겨냥한 이른바 ‘솔로노미’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1인용 전기밥솥, 미니 냉장고, 소형 식기세척기, 휴대용 커피머신 등 소형 가전 판매가 늘고, 편의점 간편식·밀키트·1인 배달 메뉴가 일상화됐다. 여행·숙박업계는 1인 전용 객실과 투어 상품을, 영화관·노래방·헬스장은 1인 전용 좌석과 부스를 확대하고 있다.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가구 규모 축소에 대해선 우려와 비관적 전망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구성원이 줄면 가족이 전통적으로 수행해 온 돌봄과 경제적 안전망의 역할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정치·사회적 불신이 커지고 사회자본이 감소할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더불어 외로움과 고립은 우울증·불안장애 발병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립감을 하루 15개비 흡연과 맞먹는 건강 위해 요인으로 평가했다. 혼자 산다고 다 외롭고 우울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지거나 우울감을 느낄 가능성은 높다. 실제 국회미래연구원이 2021년 한국인의 행복 조사 서베이 자료를 활용하여 1인 가구, 다인 가구의 행복감을 비교한 결과 전반적 행복감은 1인 가구 6.22점, 다인 가구 6.61점으로 가족구성원이 많을수록 유의미하게 높았다. ● 전통적 가족의 감소, 가족 해체 의미할까그러나 현 가족의 축소나 해체가 꼭 고립과 외로움으로 이어진다고 볼 순 없다. 우리가 엄마, 아빠, 형제로부터만 위로와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고, 꼭 엄마와 아빠가 다 있어야만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지난해 한 톱스타의 ‘비혼 출산’ 소식이 화제가 됐다. 유명 배우와 모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는 엄마가 키우기로 했다. 기존 상식에서 벗어난 선택에 언론과 대중은 ‘새로운 가족’이라며 주목했다. 최근엔 이 배우가 아이의 엄마가 아닌 다른 여성과 결혼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 배우의 사례는 대안 가족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비혼 출산’과는 거리가 있다. 보통은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남녀가 아이를 원해서 비혼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를 갖는 걸 비혼 출산이라 한다. 즉 가족은 이루되 전통적 혼인 제도만 거부하는 형태로 해당 배우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그럼에도 해당 사례가 ‘비혼 출산’으로 화제가 된 건, 그만큼 한국 사회에 비혼 상태의 가족이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터키 등과 함께 거의 모든 아이가 혼인 관계 안에서 태어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가족 유형이 매우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셈이다. 반면 프랑스는 이성 파트너, 동성 부부 등 기존 혼인 관계가 아닌 관계에서 탄생한 비혼 출생아가 전체의 출생아의 절반을 넘는다. 영국·미국도 40% 안팎, OECD 평균도 40%에 이른다.● 세계 꼴찌였던 韓 비혼출산율도 최근 2배로…가족 대신 식구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전통 가족의 축소가 오히려 새롭고 다양한 가족을 위한 마중물이 된다면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이 줄어드는 대신, 함께 밥을 먹고 생활을 공유하는 ‘식구’ 형태의 관계가 늘어나는 것이다. 비혼 동거, 친구나 지인과 함께 사는 이른바 ‘생활 동반자’ 가구가 그 예다. 세상에는 ‘남보다 못한 혈연 가족’과 사는 사람도 많다. 반면 영화 ‘가족의 탄생’(2006)에서 올케, 올케의 배다른 아이와 사는 주인공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그 어떤 가족보다 끈끈하게 어울리는 식구도 있다.비혼 동거는 비단 젊은 세대만의 일이 아니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외로움이나 돌봄의 필요로 새 파트너와 가구를 이루는 노인도 적지 않다. 초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생애 후반 동반자를 찾는 노인은 더 늘어날 것이다.한국의 비혼 출산율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동안 2%대에 머물며 일본과 세계 최하위권을 다투던 수치가 2023년에는 4.7%로 두 배 뛰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80, 90%가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와의 동거에 긍정적으로 답한다.저출산과 고령화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두 배 이상 빠른 한국에서, 유독 더딘 것이 가족 형태의 다양화다. 전통 가족의 축소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제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가족 모델을 제도와 정책 속에 담아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비혼 출산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길 바란다. 어쩌면 20여 년간 수백조 원을 투입하고도 성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는 저출산 정책도 이 과정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다양한 결합을 포용하는 나라들이 한국보다 출산율도 높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광주·전남 지역에 200mm 폭우가 쏟아진 3일 밤, 광주 북구 운암시장도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지난달 중순에도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던 상인들은 오후 10시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보며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때 인근 주민과 상인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서더니 빗물받이를 막고 있던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흙탕물에 빗물받이 위치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맨손, 맨발로 쓰레기를 걷어내고, 부유물을 치웠다. 그렇게 1시간 20분, 골목에 고였던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며 빠지기 시작했고 운암시장은 두 번째 침수 위기를 넘겼다. 시민들은 “그저 동네가 또다시 잠겨선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운암시장은 시민들의 손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했다. 광주 북구 등 많은 지역이 지난달에 이어 보름 만에 또다시 물에 잠겼다. 문제는 이런 침수가 올해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해 주민들은 “폭우만 오면 침수 피해가 반복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는 광주시와 자치구를 상대로 민사 소송과 형사 고발을 예고했다. 하천 범람을 막는다며 차단벽과 방수막을 설치해 놓고 정작 배수 관리에는 소홀해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도심 홍수는 결국 배수 문제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로, 시멘트로 포장된 인도는 비가 오면 물을 담는 거대한 돌그릇이 된다. 빗물받이와 배수로가 제 역할을 해야만 물이 빠져나갈 수 있다.빗물받이와 배수로는 관리가 조금만 소홀해도 쉽게 막힌다. 시간이 지나면서 흙과 오물이 퇴적되고, 무단 투기된 담배꽁초나 쓰레기들이 쌓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강남역 침수 사태를 겪은 서울시는 56만 개가 넘는 빗물받이를 관리하기 위해 ‘빗물받이 전담 관리자’ 100명을 두고 있다. 이들이 1∼3일 사흘간 1만9963곳을 점검해 6795곳을 청소했고, 1078곳에선 누군가 막아둔 덮개를 제거했다. 빗물받이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 스티커와 ‘옐로박스’ 띠도 만들었다. 25개 자치구에 특별 순찰반도 운영 중이다. 올해 서울에서 침수 피해가 적게 보고된 데는 이 같은 기본 관리도 한몫했을 것이다.많은 재난은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다. 2023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잠기며 14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도 부실하게 쌓은 미호천 제방이 폭우에 무너지며 발생했다. 얼마 전 이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감리단장이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그를 포함해 처벌받은 누구도 도면 없이 임시로 만든 둑 하나가 그렇게 많은 생명을 앗아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물론 인간의 대비만으로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다. ‘스콜성 강우’는 더 빈번하고 강해지고 있다. 도시 인프라가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막힌 곳을 뚫고 물길을 열어두는 도시 치수의 기본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 사고가 반복된 SPC 공장을 찾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라며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침수가 반복된다면 그 역시 피해를 용인하는 일이다. 자연만 탓할 일이 아닌 셈이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수사 중인 기업 측에 기밀 정보를 흘리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검찰 수사관이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공무상 비밀누설, 부정처사 후 수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검찰 수사관 김모 씨에게 징역 3년과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김 씨에게 수사 정보를 넘겨받고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SPC 그룹 전무 백모 씨에게도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됐다.파리바게뜨, 던킨, 배스킨라빈스 등을 운영하는 제빵·외식업체 SPC 그룹은은 당시 그룹 회장인 허영인 씨가 공정거래법 위반과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김 씨는 수사관으로 재직 중이던 2020년 9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총 60여 차례에 걸쳐 SPC 측에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는 SPC 계열사 사장의 출국금지 조치 여부를 확인해 알려주거나, 공정거래조사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의 이름과 기수, 직급 등이 담긴 내부 배치표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전송했다. 또 압수수색 영장 청구 사실, 수사 범위, 내부 검토보고서 등도 전달했다.이 같은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백 전무는 김 씨에게 총 620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2심 재판부는 “김 씨는 자신이 수사하던 기업 임원과 직접 연락하며 수사 기밀을 흘리고, 그 대가로 뇌물까지 받은 점에서 공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백 전무에 대해서는 “금품 액수는 크지 않지만, 검찰 수사관은 물론 법원, 국세청 직원과의 인맥을 동원해 편의를 구하려 한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 판단에 법리적인 문제는 없다고 보고, 양측의 상고를 기각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더욱 가혹하다. 기후 재난도 마찬가지다. 취약계층들은 더욱 혹독한 추위와 더위에 노출된다. 올여름 장마전선이 예년보다 빠르게 북상한 탓에 7월 초부터 한여름 같은 무더위가 시작됐다. 요 며칠 전선의 영향권에 들면서 잠시 더위가 주춤하고 있지만, 곧 다시 전선이 북상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것이다. 더위는 누군가에겐 잠시 피해 가면 되는 불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틀 전기조차 아까운 사람들에겐 목숨을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실제 7월 초까지만 7명이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많은 수치다.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은 대표적인 기후 취약계층이다. 특히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경우에는 위험이 더욱 커진다. 문제는 이렇게 취약한 어르신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평균 수명 증가, 유례없는 초저출산으로 인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다.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45년이면 노인 인구가 37%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뿐만 아니다. 결혼과 출산이 줄며 혼자 사는 노인도 늘고 있다. 통계청은 노인 1인 가구가 2037년 335만 명, 2052년에는 496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계한다. 5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기후 취약계층 조건에 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유소년 인구가 줄고 노인 인구만 남아 고령화율이 크게 오른 지방자치단체들엔 비상이 걸렸다. 전남도 기초지자체 상당수는 드론 순찰을 시작했고, 폭염특보 발령 시 역내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그 어르신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알림 문자를 보내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대표 혹서 도시 대구는 쪽방 주민들에게 쿨토시 등 냉방용품을 지급함은 물론 삼계탕 같은 보양식까지 지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지원으로 고령화와 온난화라는 쌍끌이 재난 피해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앞으로 한국은 더 더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사라지지 않고 축적돼 지구 기온을 계속 끌어올린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한낮 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 일수는 2050년까지 35일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매년 한 달 넘는 폭염이 반복될 것이란 이야기다. 취약계층의 폭염 저항성을 높일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냉방기기 설치 지원, 전기요금 감면은 물론이고 노인 1인 가구의 돌봄, 건강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면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드론, 원격 감지기, 위치 기반 이상 신호 감지 시스템 등이 그 예다. 쉼터 등 지역 복지관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이상 징후를 즉시 감지할 수 있도록 하고,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지역 응급망도 갖춰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급증하는 솔로, 딩크족은 언젠가 노인 단독 가구가 될 것이다.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다. ‘부모를 모신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기후 취약계층 증가는 국가가 풀어야 할 숙제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든 산을 가꾸면서 생활비까지 벌 수 있다니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친환경도 돈이 될 수 있구나’ 배웠습니다.” 25일 오후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모래봉에서 박도현 씨(82)는 자신이 가꾼 버드나무와 백일홍을 손으로 짚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1960년부터 부친과 함께 이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벌거숭이였던 산은 183ha(헥타르) 규모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했다. 박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엔 일대에 묘소도 장만했다. 이 숲 덕분에 박 씨는 100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는 최근 3년간 산림청으로부터 총 1400만 원의 임업직불금을 받았다. 2022년부터 본격 시행된 임업직불금 제도는 산림을 성실히 가꾸고 보전한 임업인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보상 성격의 지원금이다. 공공의 가치를 창출한 개인에게 국가가 그 가치를 현금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박 씨는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후손의 터전을 지킨다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숲 지키며 얻는 수익 502억 원 숲에서 나는 산물도 돈이 되지만 숲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과거에는 산림 보전이나 숲 가꾸기가 그저 공익사업이나 자원봉사 정도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에 따라 실질적인 소득 창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그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임업직불금이다. 산림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육림업’ 종사자가 탄소 흡수 등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면, 산림청이 ha당 연간 32만∼13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산림을 탄소중립 실현의 핵심 수단이자 경제적 자산으로 보는 정책 변화가 반영된 제도다.박 씨처럼 직불금을 받는 임업인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2년 2만614곳, 2023년 2만336곳에 이어 올해는 2만2973곳이 직불금 수령 대상에 포함됐다. 지급 금액도 해마다 늘어 2022년 468억 원, 2023년 489억 원, 올해는 502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이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회공헌형 산림탄소상쇄제도’ 역시 숲을 가꾸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산림 보호와 같은 활동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 임업인에게 흡수한 탄소량에 따라 배출권 거래 등의 방식으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한다. 임업인이 산림청에 사업계획을 제출하면 산림청은 이를 검토한 뒤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실제 탄소 흡수량을 계산한다. 산정된 흡수량은 탄소배출권으로 등록돼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소규모 임업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이 제도에 등록된 사업체는 총 673곳이다. 산림 면적으로 따지면 약 5만5607ha에 달한다. 이 가운데 62곳은 실제 탄소흡수량을 거래해 수익을 얻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추정한 t당 적정 거래가(1만6500원)를 적용하면, 약 3억8000만 원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 셈이다. 탄소배출권 거래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산림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정량화해 거래하는 산림탄소흡수량 거래 실적은 2022년 1만1266t에서 2023년 1만6726t, 지난해에는 2만3042t으로 늘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배출권을 거래해 200만 원의 수익을 얻은 최남용 씨(82)는 “처음엔 이런 사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요즘은 주위 임업인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산을 가꾸는 보람에 더해 경제적 보상까지 따라오니 더없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숲의 공익 효과는 60조 원에 달해 잘 가꿔진 숲은 그 자체로도 경제적 가치가 높다. 주변 환경을 개선해 부가적인 이익을 창출하고 사회적 비용도 줄여준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지역 주민들이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숲의 푸른 녹음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산림청 분석 결과 숲이 제공하는 휴양 기능과 경관 기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60조2000억 원에 달한다. 박 씨도 자신의 숲 한쪽에 잔디밭을 조성해 마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박 씨는 “부모님 묘소가 있는 산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잔디밭을 만들었다”며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잠금장치도 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주민들은 자유롭게 박 씨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주민 김진곤 씨(73)는 “답답할 때 이곳 산에 올라 전망을 둘러보면 속이 탁 트인다”라며 “스트레스가 풀려서 병원비를 아끼는 것 같다. 고마운 마음에 종종 이곳 제초 작업도 도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기분 탓일까요? 종일 땀이 뻘뻘 났는데 숲에 들어오니 하나도 안 덥네요. 바로 앞 아스팔트 도로랑 천지 차이예요.” 29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홍릉숲에서 산책하던 홍윤서 씨(34)는 숲속 그늘 아래에서 쾌적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기온은 30도가 넘었지만 숲길을 따라 뛰노는 아이들도 한결 밝은 표정이었다. 홍릉숲은 41.8ha(헥타르)에 이르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녹지 공간이다. 1922년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자 임업시험장이 들어선 곳으로 1993년부터 시민에게 개방됐다. 도시숲은 빌딩과 도로로 열이 갇히는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산림이 도시 안에 조성될 경우 평균 기온을 3∼7도 낮춰준다. 건물 옥상이나 벽면에 식물을 심을 경우에도 최대 5도가량 기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도시에서도 숲에 들어오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닌 것이다. 산림청은 이러한 열섬 완화 기능이 연간 약 6000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고 추산한다. 도시숲은 도심의 대기질도 개선한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홍릉숲은 인근 지역보다 미세먼지를 25.6%, 초미세먼지를 40.9% 줄여주는 등 공기 정화 효과가 뚜렷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경기 시흥시의 미세먼지 차단숲인 ‘곰솔누리숲’ 일대 대기질을 분석한 결과 숲이 조성된 2006년에서 2023년 사이 미세먼지 농도가 ㎥당 평균 85.2㎍(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에서 43.0㎍으로 거의 절반(49.5%)이나 줄었다.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시민도 3만6709명에서 2만776명으로 43.4% 감소했다. 탄소흡수 효과도 탁월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 산림은 ha당 6.9t의 온실가스를 흡수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도시에서는그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지자체에서 산림청 국비 지원을 받아 조성한 도시숲은 214곳으로, 지자체 평균 1곳에도 못 미쳤다. 지금까지 전국에 조성된 생활권 도시숲은 5963개소 이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14.07제곱미터로 WHO 권고기준 15제곱미터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산림청은 지난해 ‘기후대응 도시숲’ 107곳, ‘도시바람길숲’ 20곳, ‘자녀안심그린숲’ 60곳 등을 신규 조성하는 등 도시숲을 확대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찬열 생활권도시숲연구센터장은 “국민 모두 도시숲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시숲의 양적·질적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편백나무는 버릴 게 없어요. 생각보다 더 다양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걸 젊은 청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22일 전남 순천시 외서면 백이산 편백나무 숲 제재소에서 만난 서승욱 씨(55)는 이렇게 말했다. 서 씨는 축구장 107개 넓이에 해당하는 75ha(헥타르) 규모의 숲을 3대째 이어받아 편백나무를 키우고 있다. 전남대 임학과를 졸업한 그는 “친환경 제품으로 목재의 가치를 높이자”는 생각으로 2013년 소 축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해 제재소를 만들었다. 현재는 이곳에서 편백을 활용한 다양한 목재 제품과 생활용 친환경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제품 생산이 늘면서 지역 주민 20여 명도 고용했다. 서 씨는 이에 더해 2013년부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더 많은 청년들이 임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예비 임업인을 위한 실습과 교육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매년 약 100명의 청년들이 서 씨의 실습장을 거쳐 간다.● 연 100여 명 청년들에게 임업 기술 전수 서 씨의 편백나무 숲은 1963년 할머니가 민둥산이던 산 자락을 구입해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조성됐다. 이후 편백, 소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식재됐다. 서 씨 아버지는 나무들을 관리하기 위해 숲길(임도) 13km를 직접 냈다. 60년간 이어진 노력 끝에 민둥산은 현재 약 25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자라는 숲으로 변모했다. 서 씨는 ‘버릴 게 없는 편백’을 활용해 30여 종의 제품을 만든다. 큰 나무는 가구용으로, 작은 나무는 베개 속 큐브형 충전재로, 잎은 정유로 가공한다. 톱밥이나 부스러기는 퇴비나 땔감으로 활용된다. 이를 통해 연간 약 1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편백은 단순한 원목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 국산 목재 인증도 받은 그의 제품은 친환경 소비 확산과 함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제품 생산이 늘면서 지역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졌다.서 씨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보고 “젊은이들이 임업에 많이 도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2013년부터 예비 임업인을 위한 교육과 실습을 시작했다. 산림 관련 학과 대학생, 귀산촌을 준비하는 초보 임업인들이 서 씨의 교육장을 찾는다. 일정은 비정기적이며, 참가 희망자나 기관이 직접 연락해 일정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교육 내용은 묘목 관리부터 벌채, 제재,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아우른다. 서 씨의 편백 숲은 2023년 전남 산림자원연구소로부터 현장 실습장으로 지정됐다.● 산림산업 종사 57만 명, 숲치유 등 전문직도 증가산림 산업은 최근 경제, 환경, 복지를 동시에 중시하는 사회 흐름과 맞물려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산림청이 발표한 ‘2024년 산림산업조사’에 따르면 국내 산림 산업 종사자는 57만7000명으로, 전년(54만2000명)보다 3만5000명 늘었다. 같은 기간 산업 매출은 146조 원에서 148조7000억 원으로 증가했고, 관련 사업체 수도 13만5000개에서 15만2000개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관련 전문직이 늘어나며 일자리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 정식 등록된 산림복지전문업체는 1484개로, 산림치유업, 숲 해설업, 유아숲교육업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이에 따라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기동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국토 면적의 63%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임업은 단순히 나무를 심고 베는 일을 넘어, 드론이나 로봇, 위성 기술 등 첨단 산업과 융합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며 “미래형 산림 산업으로 발전하려면 다양한 재능을 갖춘 청년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유입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림 일자리는 단순한 고용 창출을 넘어 지역 경제 전반에도 파급 효과를 미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산림 산업은 10억 원의 생산이 이뤄질 때 약 17억3000만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내고, 같은 금액 기준으로 13.6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대 명품 숲’으로 선정된 전남 장성군 축령산 편백숲의 경우 연간 3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61억 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고, 지역 인구도 연평균 1% 증가해 소멸 위험에서 벗어났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산림기능사·산림기사 같은 자격증뿐만 아니라 목공, 임업기계, 드론까지 실습해요. 취업이 빨라질 수밖에 없죠.” 26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한국산림과학고 교사 김대건 씨는 이같이 말했다. 산림과학고는 산림기능사, 산림기사 등 국가자격증 취득을 지원하고 목재 가공, 산림 측량, 임업기계 조작, 드론 운용 등 현장 직무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실습실에서 전문가인 교사로부터 직접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법을 배운다. 체인톱 수업 시간의 경우 교사 2명이 들어가 일대일로 학생들에게 직접 사용법을 가르치는 식이다. 재학생들은 국립산림치유원, 지방산림조합 등과 연계한 현장체험과 인턴십에 참여할 수 있다.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과 임업 관련 기업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들을 수 있다. 학생들은 졸업 전 4∼5개 이상의 실무 자격까지 갖추고 졸업한다. 그러다 보니 취업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2024년 졸업생 취업률은 81%에 달했다. 학교 관계자는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교육 시스템과 산학 연계, 자격증 취득 중심의 교육이 진로 선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졸업생 40명 중 11명이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에, 3명이 공기업에 취업했다. 현재 산림 특성화고로 운영 중인 곳은 산림과학고(경북 봉화), 청주농업고(충북 청주), 동래원예고(부산) 등 전국에 3곳이다. 전체 재학생 수는 약 390명이다. 산림 산업 분야의 고용 수요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산림청은 올해 산림 분야에서 신규 일자리 1만7667개를 포함해 총 3만6625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특히 청년 임업인 육성과 일자리 확대를 위해 79억 원을 투입했다. 산불, 병해충, 사방사업 등 산림 재난 대응 분야에서 무인항공기 예찰, 산림재난대응단 운영 등 새로운 수요가 생기며 청년층의 진입 기회도 함께 늘고 있다. 산림청 안진호 일자리정책담당은 “산림 현장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역 소멸 위기 대응과 청년 정착 기반 마련을 위해 교육-일자리 연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