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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현지 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에센바흐시. 평범해 보이는 주택가 사거리 신호등에 카메라와 검은 박스가 달려 있었다. 이곳은 유럽연합(EU)의 도로 안전 헌장을 수상한 ‘미래의 신호등(Traffic Light of the Future)’ 시스템의 시범 운영 현장이다. 미리 설정된 시간에 맞춰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일반 신호등과 달리, 이곳은 인공지능(AI)이 카메라로 교차로 상황을 실시간 감지해 신호를 탄력적으로 제어하고 위험을 예방한다. 보행자의 안전과 차량 흐름의 효율을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다.● 소방·구급차에 ‘무정차 통과’ 우선 신호에센바흐 스마트 교차로 시스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긴급차량 우선 신호다. 소방차나 구급차 등 긴급차량이 교차로에 접근하면 진행 방향은 초록불을 미리 켜주고, 충돌 가능성이 있는 다른 방향은 빨간불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긴급차량이 신호 대기를 위해 멈추거나 속도를 줄일 필요가 없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는 차량에 장착된 무선통신장치(OBU)와 교차로 신호 제어기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기에 가능하다. 바이에른주 건설국의 프랑크 뵐링 프로젝트 매니저는 “차량이 교차로에 접근하기 150m 전부터 신호가 조정된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이 OBU 탑재 차량을 타고 소방서에서 출발해 시속 50km로 교차로를 통과해 보니, 신호등이 알아서 초록불을 열어준 덕분에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없었다. 뵐링 씨는 “우선 신호 도입 후 긴급차량이 교차로를 통과하는 시간이 평균 2, 3초 줄었다”며 “첨단기술이 생명을 구하는 골든타임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범 운영 초기엔 차량과 교차로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이 많은 도시 특성상 신호가 굴절하면서 긴급차량이 접근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 현재는 이동통신 기지국과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통합한 덕분에 이 문제를 해결했고, 안정성이 높아진 상태다. 긴급차량에 신호를 우선 부여하는 이 시스템은 스마트 교차로 시범 운영 동안 지역민의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바이에른주는 우선 신호 부여 고도화와 안정성 검증을 위해 향후 총 18개 교차로로 테스트를 확대할 예정이다.● 사각지대 위험 감지해 50% 사고 감축 스마트 교차로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은 ‘충돌 경고 신호’다. 보행자와 자전거, 차량이 뒤섞이는 교차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 키 높이의 주황색 신호를 설치했다. 사각지대 충돌 등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되면 신호가 깜빡이면서 도로 위 모든 주체가 주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 주는 형태다. 독일의 도로는 차량용과 자전거용, 보행자용으로 구분된 3중 구조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길을 건널 때 자칫 우회전 차량 운전자가 이를 보지 못하고 사고를 낼 수 있는데, 충돌 경고 신호는 그 위험을 크게 낮춰준다. 실제로 신호가 설치된 곳을 걸어가 보니, 주변에서 접근하는 차량이나 자전거를 충돌 경고 신호로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신호등에 열화상 카메라와 레이더가 장착돼 모든 물체와 사람의 이동 궤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이 교차로에서 사각지대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률이 약 50% 감소했다고 한다. 바이에른주가 자전거 안전에 집중하는 이유는 높은 사고 비중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495명 가운데 자전거 운전자가 94명(19.0%)이었다. 2023년엔 전체 사망자 499명 중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85명(17.0%)이었다. 시범 지역은 낮 시간대 자전거 통행량이 최대 294대에 달해 신기술의 효과를 입증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교차로 자체가 하나의 AI 컴퓨터” 스마트 교차로에는 보행자가 미처 건널목을 다 건너지 못했을 때 초록불을 7∼15초 자동으로 연장해 주는 기능도 구현돼 있었다. 자전거 이용자에겐 교차로를 안정적으로 건너기 위한 적절한 속도를 안내해 준다. 통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이 모든 기능은 교차로의 신호등을 하나의 컴퓨터처럼 설계했기에 가능했다. 카메라와 레이더는 사물을 인지하는 센서 역할을 하고, 수집한 데이터는 AI가 보행자와 자전거, 차량을 구분해 상황을 판단한다. 이후 사전에 설정한 규칙에 따라 상황에 맞게 신호를 제어한다.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망을 새로 깔고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는 총 10만 유로(약 1억8000만 원)의 예산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지보수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특히 개발 과정에서 오픈소스 AI를 사용해 유지 비용을 월 240유로(약 42만 원) 수준으로 절감했다. 한편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AI가 탑재된 카메라나 레이더를 활용한 교통신호 운영 방식 도입을 준비 중이다. 에센바흐 사례와 유사하게 교통신호가 사전에 입력된 값에 따라 고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해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경찰 관계자는 “새로운 신호 운영 방식이 도입된다면 향후 자율주행 차량 시대가 왔을 때 효율적으로 교통신호를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건널목 초록불 자동 연장 시스템의 경우는 올해 9월 기준 국내 전체 횡단보도 6만 개 중 288개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보행신호가 종료되는 시점에 횡단보도상에 보행자가 있다면 최대 10초간 보행 신호를 늘려서 노약자 등 보행이 어려운 이들의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것이다. 다만 보행 신호를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차량의 흐름이 불편하게 될 것을 고려해 교차로에 있는 건널목에는 적용하지 않았다.좁히고 굽히고 돌 깔고… 표지판 없어도 서행 유도직선 대신 S자 곡선-어긋난 교차로‘의도적 불편함’으로 과속 차단독일의 스마트 교차로가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첨단기술을 통해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첨단을 달린다면, 도로 설계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고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주택가 등 주거 시설이 밀집한 지역의 폭이 좁은 생활도로(이면도로)에는 차량 속도를 줄이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바이에른주 뮌헨의 생활도로는 한국과 비교해 폭이 좁을 뿐 아니라 직선 대신 완만한 ‘S자’ 구간이 곳곳에 형성돼 있었다. 특히 생활도로끼리 만나는 교차 지점도 정십자가 형태가 아니고 약간씩 어긋나게 배치했다. 무심코 직진하면 보행로에 설치된 볼라드와 충돌하는 구조다. 이런 교차로에는 성인 한 명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간격으로 5, 6개의 볼라드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또 생활도로와 일반 차로를 잇는 출입구는 3차로인 경우에도 생활도로는 2차로로 좁혀 차량 운전자가 진입할 때 속도를 줄여야 하는 형태였다.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이용하는 생활도로 중 커브구간과 같이 사고 가능성이 큰 곳은 큰 돌로 도로를 포장했다. 운전자가 노면의 질감을 통해 주의 구간에 진입했음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게 한 것이다. 도로포장을 달리하는 방식은 비단 생활도로뿐만이 아니고 차량과 트램, 보행자와 자전거 등이 복잡하게 통행하는 구간에도 적용됐다. 일반도로도 건널목이나 교통섬 앞에선 차로를 줄여 서행하도록 설계했다. 이 같은 도로 형태는 독일 도로교통법 제45조에 근거한 정책이다. 독일의 도로교통법과 도로 설계 표준은 주거 지역을 ‘시속 30km 제한 구역’으로 묶는 동시에, 운전자가 표지판을 보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속도를 낼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고 있다. 즉, 설명이 필요 없이 바로 알 수 있는 도로를 만든 것이다. 독일에서 18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한 교민은 한국과 독일의 도로 차이에 대해 “독일은 환경이나 소음 등의 이유로 도심의 어지간한 도로를 30km 속도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속도를 제한하는 것뿐 아니라 운전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치들로 운전 집중력을 높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뮌헨·에센바흐=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경찰이 캄보디아 현지에 파견된 ‘코리아 전담반’과 현지 경찰의 공조 작전으로 베트남 접경지대인 몬돌키리의 온라인 사기(스캠) 단지에 감금된 우리 국민 1명을 구출하고 한국인 범죄 피의자 26명을 검거했다. 21일 경찰청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약 300km 떨어진 몬돌키리 지역에서 합동 작전을 펼쳐 범죄 단지에 갇혀 있던 20대 남성 1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전은 지난달 한국과 캄보디아의 합동수사팀인 코리아 전담반이 출범한 이후 양국 경찰이 함께 펼친 세 번째 작전이다.사건은 2일 실종 신고를 통해 한국인의 감금 피해 사실이 알려지며 시작됐다. 경찰은 즉시 전담반 소속 경찰관 4명을 현장에 급파해 단지의 규모와 경비 배치, 예상 도주로 등을 정밀 분석했다. 하지만 구출 작전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됐다. 해당 단지는 베트남 국경과 불과 50m 떨어져 있는 데다 출입문이 3개나 돼, 자칫 조직원들이 국경 너머로 도주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국가정보원 등과 국내외 정보를 종합해 진입로와 내부 구조를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캄보디아 몬돌키리 지방경찰청과 협력해 단지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며 세부 작전을 세웠다.당초 20일로 예정됐던 작전은 현장의 긴박함에 따라 18일로 전격 앞당겨졌다. 단지 경비원들이 도주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되자 전담반은 즉각 현지 경찰 40여 명을 투입해 도주로를 차단했다. 이어 한국 경찰이 포함된 합동팀이 단지 내부로 진입해 인명 구출과 피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합동 작전에 대해 “낯선 땅의 위험하고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임무를 완수한 경찰관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며 격려했다. 이어 “앞으로도 온라인 스캠과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국제 조직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각국 법 집행기관과의 공조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경찰이 캄보디아 현지에 파견된 ‘코리아 전담반’과 현지 경찰의 공조 작전으로 베트남 접경지대인 몬돌끼리의 온라인 사기(스캠) 단지에 감금된 우리 국민 1명을 구출하고 한국인 범죄 피의자 26명을 검거했다.21일 경찰청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약 300km 떨어진 몬돌끼리 지역에서 합동 작전을 펼쳐 범죄 단지에 갇혀 있던 20대 남성 1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전은 지난달 한국과 캄보디아의 합동수사팀인 코리아 전담반이 출범한 이후 양국 경찰이 함께 펼친 세 번째 작전이다.사건은 2일 실종 신고를 통해 한국인의 감금 피해 사실이 알려지며 시작됐다. 경찰은 즉시 전담반 소속 경찰관 4명을 현장에 급파해 단지의 규모와 경비 배치, 예상 도주로 등을 정밀 분석했다. 하지만 구출 작전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됐다. 해당 단지는 베트남 국경과 불과 50m 떨어져 있는 데다 출입문이 3개나 돼, 자칫 조직원들이 국경 너머로 도주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이에 경찰은 국가정보원 등과 국내외 정보를 종합해 진입로와 내부 구조를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캄보디아 몬돌끼리 지방경찰청과 협력해 단지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며 세부 작전을 세웠다.당초 20일로 예정됐던 작전은 현장의 긴박함에 따라 18일로 전격 앞당겨졌다. 단지 경비원들이 도주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되자 전담반은 즉각 현지 경찰 40여 명을 투입해 도주로를 차단했다. 이어 한국 경찰이 포함된 합동팀이 단지 내부로 진입해 인명 구출과 피의자 검거에 성공했다.이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합동 작전에 대해 “낯선 땅의 위험하고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임무를 완수한 경찰관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며 격려했다. 이어 “앞으로도 온라인 스캠과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국제 조직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각국 법 집행기관과의 공조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철근 구조물이 무너져 작업자 2명이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1명이 사망했다. 18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22분경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아치형 지하터널 상단에 설치돼 있던 철근 구조물이 붕괴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사고로 레미콘(콘크리트 타설) 차량을 운전하던 50대 남성이 쏟아진 철근 더미에 머리를 크게 다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 그는 작업을 마치고 차량을 몰고 현장 밖으로 나오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물 상단에서 철근 작업을 하던 또 다른 50대 작업자도 함께 추락해 발목에 상처를 입고 치료 중이다.사고가 난 곳은 지상에서 약 70m 아래 신안산선 여의도역 정거장 건설 현장이다. 높이 약 16m의 터널 상단부에 여러 가닥의 철근을 교차해 설치한 뒤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과정에서 구조물이 무너진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현장에는 근로자 104명이 작업 중이었다. 나머지 작업자는 다른 장소로 대피했다가 오후 2시 52분경 모두 구조됐다.신안산선 공사 현장 감리단은 터널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나 추가 붕괴 위험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 감리단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터널은 암반 위에 건설 중이며 방수 작업도 완료돼 추가적인 붕괴나 지반 침하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장비 23대와 인력 88명을 투입해 현장을 수습했으며, 경찰과 함께 안전관리상 미비점이 있었는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번 사고로 신안산선 여의도 공사 현장은 당분간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 신안산선은 경기 안산시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수도권 서남부를 잇는 길이 44.9km의 광역철도 노선이다. 이날 사고가 발생한 여의도 구간인 4-2공구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아 2026년 12월 31일까지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올해 4월에도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 구간에서 지하터널이 붕괴해 작업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 역시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구간에서 발생해 신안산선 공사 전반에 대한 안전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계엄에 가담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경찰청장에게 부여된 헌법 수호의 사명과 책무를 사실상 포기한 것.” 18일 오후 2시 13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김상환 헌재 소장이 이같이 주문을 낭독하며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피청구인 경찰청장 조지호(사진)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치안 총수가 국회의 탄핵 소추로 파면된 것은 조 전 청장이 처음이다. ● 헌재 “경찰청장의 헌법 수호 사명과 책무 포기”헌재는 “피청구인의 행위는 경찰청장에게 부여된 헌법 수호의 사명과 책무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며 “이는 어떤 사정에 비춰 보더라도 정당화하거나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조 전 청장이 경찰청장으로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시가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것이었는지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와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계엄 선포 직후 경찰 300여 명을 국회 출입문 중심으로 배치하고, 포고령 발령 이후 경찰을 추가 투입해 최종적으로 1700여 명을 국회 주변에 배치하는 등 국회 출입을 전면 차단해 국회의원의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적극 방해했다고 봤다. 이로써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가 지연됐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공권력 투입도 파면 사유가 됐다. 헌재는 조 전 청장이 김준영 당시 경기남부경찰청장을 통해 선관위 경기 과천청사와 수원 선거연수원 등에 220여 명의 경찰을 배치해 시민 출입을 막은 행위가 국군 정보사령부 요원들의 영장 없는 압수수색 등을 지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선관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설명이다. 조 전 청장 측은 국회의원 체포 지시 등을 거부했고 국회의원 월담을 막지 않았기에 계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조 전 청장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7시 20분경 대통령 안전가옥 회동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이 여소야대 상황 타개를 위해 국회와 선관위 등에 군을 투입하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경찰 수장 공백, 371일 만에 해소 길 열려 헌재는 “30년 이상 경찰에서 근무하면서 주요 보직을 역임해 온 경찰청장으로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경찰의 임무와 한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대통령에게 지시받는 경우 스스로의 지위와 권한에 비추어 자신의 직무 안에서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지시를 판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들은 계엄에 저항하기 위해 국회로 모였고, 현장에 출동한 군경들도 일반 시민을 맞닥뜨리자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계엄의 위헌·위법성은 평균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회 일반인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조 전 청장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며, 경찰과 공직사회 모두 저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헌재는 ‘지난해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경찰과 참가자 간 충돌을 유도해 계엄 선포 조건을 만들려고 했다’는 국회 측 탄핵 소추 사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치안 총수의 파면이 확정되면서 이재명 정부가 임명할 첫 경찰청장 인선에도 관심이 쏠린다. 경찰 안팎에선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59·경찰대 5기)과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59·5기), 박정보 서울경찰청장(57·간부후보생 42기)이 차기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유 대행은 현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말부터 직무대행을 맡아 12·3 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본부장은 최근 캄보디아 범죄 단지 사태가 벌어졌을 때 현지 당국과 직접 협상해 보이스피싱 조직 등 대규모 송환을 주도해 범죄 발생률을 낮추는 데 앞장섰다. 박 청장은 부임 이후 서울교통 리디자인(재설계) 사업에 시민 참여를 유도해 실제 교통사고를 줄이는 등 성과를 냈다.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구민기 기자 koo@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계엄에 가담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경찰청장에게 부여된 헌법 수호의 사명과 책무를 사실상 포기한 것.”18일 오후 2시 13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김상환 헌재 소장이 이같이 주문을 낭독하며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피청구인 경찰청장 조지호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치안총수가 국회의 탄핵 소추로 파면된 것은 조 청장이 처음이다.● 헌재 “경찰청장의 헌법수호 사명과 책무 포기”헌재는 “피청구인의 행위는 경찰청장에게 부여된 헌법수호의 사명과 책무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며 “이는 어떤 사정에 비춰보더라도 정당화하거나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헌재는 조 전 청장이 경찰청장으로서 윤 전 대통령 지시가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것이었는지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와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계엄 선포 직후 경찰 300여 명을 국회 출입문 중심으로 배치하고, 포고령 발령 이후 경찰을 추가 투입해 최종적으로 1700여 명을 국회 주변에 배치하는 등 국회 출입을 전면 차단해 국회의원의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적극 방해했다고 봤다. 이로써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가 지연됐다는 것이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공권력 투입도 파면 사유가 됐다. 헌재는 조 전 청장이 김준영 당시 경기남부경찰청장을 통해 선관위 경기 과천청사와 수원 선거연수원 등에 220여 명의 경찰을 배치해 시민 출입을 막은 행위가 국군 정보사령부 요원들의 영장 없는 압수수색 등을 지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선관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설명이다.조 전 청장 측은 국회의원 체포 지시 등을 거부했고 국회의원 월담을 막지 않았기에 계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조 전 청장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7시 20분경 대통령 안전가옥 회동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이 여소야대 상황 타개를 위해 국회와 선관위 등에 군을 투입하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경찰 수장 공백, 371일 만에 해소 길 열려헌재는 “30년 이상 경찰에서 근무하면서 주요 보직을 역임해 온 경찰청장으로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경찰의 임무와 한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대통령에게 지시받는 경우 스스로의 지위와 권한에 비추어 자신의 직무 안에서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지시를 판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시민들은 계엄에 저항하기 위해 국회로 모였고, 현장에 출동한 군경들도 일반 시민을 맞닥뜨리자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계엄의 위헌·위법성은 평균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회 일반인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조 전 청장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며, 경찰과 공직사회 모두 저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다만 헌재는 ‘지난해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경찰과 참가자 간 충돌을 유도해 계엄 선포 조건을 만들려고 했다’는 국회 측 탄핵 소추 사유는 인정하지 않았다.치안총수의 파면이 확정되면서 이재명 정부가 임명할 첫 경찰청장 인선에도 관심이 쏠린다. 경찰 안팎에선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59·경찰대 5기)과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59·5기), 박정보 서울경찰청장(57·간부후보생 42기)이 차기 후보군으로 거론된다.유 대행은 현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말부터 직무대행을 맡아 12·3 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본부장은 최근 캄보디아 범죄 단지 사태가 벌어졌을 때 현지 당국과 직접 협상해 보이스피싱 조직 등 대규모 송환을 주도해 범죄 발생률을 낮추는 데 앞장섰다. 박 청장은 부임 이후 서울교통 리디자인(재설계) 사업에 시민 참여를 유도해 실제 교통사고를 줄이는 등 성과를 냈다.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구민기 기자 koo@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철근 구조물이 무너져 작업자 2명이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18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22분경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아치형 지하터널 상단에 설치돼 있던 철근 구조물이 붕괴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사고로 레미콘(콘크리트 타설) 차량을 운전하던 50대 남성이 쏟아진 철근 더미에 머리를 크게 다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그는 작업을 마치고 차량을 몰고 현장 밖으로 나오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물 상단에서 철근 작업을 하던 또 다른 50대 작업자도 함께 추락해 발목에 상처를 입고 치료 중이다.사고가 난 곳은 지상에서 약 70m 아래 신안산선 여의도역 정거장 건설 현장이다. 높이 약 16m의 터널 상단부에 여러 가닥의 철근을 교차해 설치한 뒤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과정에서 구조물이 무너진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현장에는 근로자 104명이 작업 중이었다. 나머지 작업자는 다른 장소로 대피했다가 오후 2시 52분경 모두 구조됐다.신안산선 공사 현장 감리단은 터널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나 추가 붕괴 위험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 감리단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터널은 암반 위에 건설 중이며 방수 작업도 완료돼 추가적인 붕괴나 지반 침하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소방당국은 장비 23대와 인력 88명을 투입해 현장을 수습했으며, 경찰과 함께 안전관리상 미비점이 있었는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번 사고로 신안산선 여의도 공사 현장은 당분간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신안산선은 경기 안산시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수도권 서남부를 잇는 길이 44.9㎞의 광역철도 노선이다. 이날 사고가 발생한 여의도 구간인 4-2공구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아 2026년 12월 31일까지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올해 4월에도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 구간에서 지하터널이 붕괴해 작업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 역시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구간에서 발생해 신안산선 공사 전반에 대한 안전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경찰이 통일교 압수수색 영장에 ‘한학자 총재가 정관계 로비 의혹의 최종 책임자’라는 취지의 진술을 적시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이날 경찰 등에 따르면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금품 지원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은 전날 통일교 등 압수수색에서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이 한 총재의 지시를 받아 여야 정치인에게 금품과 선물을 공여했다고 김건희 특검 조사에서 시인했다”는 내용의 영장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여야 의원에게 금품을 준 최종 책임자로 한 총재를 지목한 것이다. 이는 경찰이 윤 전 본부장의 일탈이 아닌, 한 총재의 지시하에 이뤄진 ‘조직적 뇌물 범죄’에 무게를 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찰 전담수사팀은 17일 서울구치소를 찾아 한 총재를 접견 조사하며 이를 집중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 다만 경찰은 한 총재 개인 금고에 있던 280억 원이나 시계 실물은 압수하지 않았다. 금고 속 현금 등이 로비에 직접 사용된 것인지에 대한 입증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경찰이 한 총재를 ‘지시 주체’로 보는 근거는 윤 전 본부장의 위상과 내부 문건이다. 윤 전 본부장은 2020년부터 세계본부장 및 총재 비서실 사무총장을 겸직하며 통일교 내 2인자로서 대내외 업무를 총괄해 왔다. 그가 작성한 ‘특별보고’ 문건에는 한 총재를 뜻하는 ‘TM(True Mother)’ 일정이라는 표현과 함께 전 의원 등과의 만남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야당 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자금 지원 정황도 들여다보고 있다. 취재팀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통일교 산하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은 2020년 6월 세계본부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 고문 위촉’ 명목으로 수수료 1400만 원과, 통일교 측의 국회 활동비 5600만 원의 예산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의원 측 관계자는 “그 기간 강의료 900만 원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합법적인 돈이었고, 고문료는 받은 적 없다”고 해명했다. 통일교 측은 ‘윤 전 본부장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는 입장이다. 통일교 관계자는 “본인이 말을 뒤바꾸고 있지 않나. 교단의 지시로 그런 일을 했다면 진술을 번복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라고 했다. 전 의원은 “그 어떠한 금품 수수도 절대 없었다”는 입장이고,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역시 “사실이 아니고 윤 전 본부장도 모른다”는 입장이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경찰이 통일교 압수수색 영장에 ‘한학자 총재가 정관계 로비 의혹의 최종 책임자’라는 취지의 진술을 적시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경찰은 17일 서울구치소를 찾아 한 총재를 접견 조사하며 금품 전달 지시 여부와 시점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을 방침이다.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금품지원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은 전날 통일교 등 압수수색에서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이 한 총재의 지시를 받아 여야 정치인에게 금품과 선물을 공여했다고 김건희 특검 조사에서 시인했다”는 내용의 영장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여야 의원에게 금품을 준 최종 책임자로 한 총재를 지목한 것이다.이는 경찰이 이번 사건을 윤 전 본부장의 개인적 일탈이나 과잉 충성이 아닌, 한 총재의 구체적인 지시 하에 이뤄진 ‘조직적 뇌물 범죄’에 무게를 두고 수사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찰 전담수사팀은 17일 한 총재 수사 접견에서도 이를 집중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다만 경찰은 한 총재 개인 금고에 있던 280억 원이나 시계 실물은 압수하지 않았다. 금고 속 현금 등이 로비에 직접 사용된 것인지에 대한 입증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비에 사용된 시계의 모델명이나 금액도 영장에는 적혀있지 않았다.경찰이 한 총재를 ‘지시 주체’로 보는 근거는 윤 전 본부장의 위상과 내부 문건이다. 윤 전 본부장은 2020년부터 세계본부장 및 총재 비서실 사무총장을 겸직하며 통일교 내 2인자로서 대내외 업무를 총괄해 왔다. 그가 작성한 ‘특별보고’ 문건에는 한 총재를 뜻하는 ‘TM(True Mother)’ 일정이라는 표현과 함께 전 의원 등과의 만남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야당 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자금 지원 정황도 들여다보고 있다. 취재팀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통일교 산하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은 2020년 6월 세계본부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 고문 위촉’ 명목으로 수수료 1400만 원과, 국회 활동비 5600만 원의 예산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의원 측 관계자는 “그 기간 강의료 900만 원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합법적인 돈이었고, 고문료는 받은 적 없다”고 해명했다.통일교 측은 ‘윤 전 본부장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는 입장이다. 통일교 관계자는 “본인이 말을 뒤바꾸고 있지 않나. 교단의 지시로 그런 일을 했다면 진술을 번복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라고 했다. 전 의원은 “그 어떠한 금품 수수도 절대 없었다”는 입장이고,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역시 “사실이 아니고 윤 전 본부장도 모른다”는 입장이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15일 사건을 넘긴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명목상 누락된 자료 확보를 위한 통상 절차이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특검이 분류조차 되지 않은 2000장 분량의 수사 기록을 뭉텅이로 떠넘겼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시점에 이뤄진 이른바 ‘자료 폭탄’ 이첩을 두고 특검이 수사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은 15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웨스트 내 김건희 특검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수사 자료 일체를 확보했다. 10일 사건을 넘겨받은 지 닷새 만에 이뤄진 강제수사다. 양측은 이첩 과정에서 누락된 자료를 절차에 따라 넘겨받기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확보한 수사자료가 증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영장을 통한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1월 내란 특검이 김건희 여사의 휴대전화와 비화폰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타 특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거나, 임의제출 형식으로 영장을 집행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압수수색이 특검의 ‘늑장 대처’와 ‘부실 이첩’에서 비롯된 후폭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의 발단이 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은 이미 8월 김건희 특검 조사 과정에서 확보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법 제2조는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범죄’도 수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특검은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여당 유력 인사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4개월 가까이 뭉개다 이달 10일에야 경찰에 넘겼다. 문제는 촉박한 시간이다. 전 의원의 금품 수수 시점이 2018년경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공소시효(7년)는 이미 완성됐거나 만료 직전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이 이첩 직후 숨 돌릴 틈도 없이 강제수사에 속도를 내는 배경이다. 하루가 급한 상황에서 수사의 기초 자료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넘어오자 경찰에선 곤혹스러운 기류가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는 특검이 경찰에 2000장 이상의 자료를 넘기며 제대로 자료를 정리하거나 분류해 주지 않아 “뒤늦게 경찰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사건을 던진 것 아니냐”거나 “정보 공유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금품 지원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15일 통일교 천정궁과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의 자택, 국회 사무실 등 10곳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찰이 10일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으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은 지 5일 만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은 이날 오전 경기 가평군에 있는 통일교 천정궁과 서울 용산구 통일교 본부 등에 수사관을 보내 금품 전달 의혹이 있는 2018년을 포함한 통일교 내 보고·회계 자료를 확보했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의 자택도 포함됐다.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이미 수감 중인 한학자 총재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구치소 거실, 수사를 뭉갰다는 의혹을 받는 김건희 특검 사무실 등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전 의원의 경우 ‘2018년 무렵 현금 2000만 원과 약 1000만 원 상당의 고가 시계(불가리 시계) 1점’을 수수한 혐의가, 임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에 대해선 ‘2020년 4월 총선 무렵 각각 약 3000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 의원에겐 뇌물수수 혐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고, 나머지 2명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한 총재와 윤 전 본부장은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송유근 기자 big@donga.com}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금품 지원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15일 사건을 넘긴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지 닷새 만에 이뤄진 첫 강제 수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은 15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내 김건희 특검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수사 자료 일체를 확보하고 있다. 양측은 이첩 과정에서 누락된 자료를 절차에 따라 넘겨받기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특검이 통일교 관련 수사를 제때 하지 않은 것에 의한 후폭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건희 특검법 제2조 제1항 제16호에서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범죄행위’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검이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수사하거나 사건을 인지한 이후 수사 기간에 이첩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통일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는 전 의원이 만약 2018년경 금품을 수수했다면 이미 해당 혐의의 공소시효가 완성됐거나 그 직전일 수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이 때문에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이 강제수사에 급히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 또 경찰 내부에서는 특검이 자료를 넘기며 2000장 이상의 분량의 자료를 제대로 분류해 주지 않아 “특검이 뒤늦게 경찰에 떠넘기는 식으로 사건을 던진 것 아니냐”란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금품지원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 번복과 별개로 관련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를 통해 증거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에선 여야 정치권에 대한 금품 지원을 진술했다가 돌연 12일 공판에선 입장을 번복한 게 최근 논란에서 비켜가기 위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警, 윤영호가 바꾼 진술은 신빙성 낮다고 판단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 전담수사팀은 주말 동안 출근해 윤 전 본부장의 11일 서울구치소 접견 진술과 기존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에서의 진술을 비교 분석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경찰은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 조사에서 금품을 건넸을 당시 앞뒤 맥락과 구체적인 장면까지 상세하게 진술했던 점을 감안할 때 최근 법정에서의 진술 번복이 오히려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은 8월 특검 조사에서 “통일교의 숙원 사업이었던 한일 해저터널과 관련된 청탁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에게 2018년 9월경 현금 4000만 원을 작은 박스에 담아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 의원이 처음엔 거절했지만 ‘복돈이니 받아도 된다’고 하자 금품을 받아 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 한학자 총재에게 보고하는 2018년 9월 10일 특별보고에 “(통일교 성지인) 천정궁에 방문했던 전 의원도 (통일교 관계자) 600여 명이 모인 부산 5지구 모임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며 “우리 일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적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해당 진술이 모두 허위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특검과 경찰은 전 의원이 당시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이었고, 그해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당선된 오거돈 전 시장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금품을 건넨 목적과 경위가 비교적 뚜렷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직접 수사하진 않았지만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밖에도 윤 전 본부장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과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서도 “2020년 총선 전에 만나 각각 3000만 원씩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의원에겐 친명(친이재명)계 연결고리 역할을 기대하는 차원에서, 한일의원연맹 소속인 김 전 의원에 대해선 일본 교세 확장에 힘써 달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다는 게 윤 전 본부장의 주장이었다. 앞서 특검이 구속 기소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 대한 혐의도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이 결정타가 됐다. 권 의원이 천정궁에 방문해 한 총재에게 큰절을 하고 금품이 든 쇼핑백을 받아 갔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는데, 관련 내용이 전 의원에 대한 진술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점에서 향후 경찰 수사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뇌물 사건은 받은 쪽이 부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이 정치인들의 천정궁 방문 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얼마나 잘 보강하느냐가 수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본부장은 2020년 5월 세계본부장으로 오른 뒤 한 총재의 최측근이자 통일교 내 2인자로 불렸다. 그는 인사나 자금 등 조직 운영은 물론이고 외부 협력 등 대내외 업무를 총괄해 왔다.● 일부 정치인 “윤영호 만난 건 맞다” 인정하기도 윤 전 본부장은 12일 권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제가 만난 적도 없는 분들에게 금품을 제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이미 공여자로 지목된 정치인 중 일부는 금품 수수 의혹은 부인하면서도 윤 전 본부장 등 통일교 측과의 만남 자체는 인정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일교 행사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윤 전 본부장과 만나 인사한 적이야 있겠지만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했다. 임 전 의원도 “여럿이서 봤을 순 있지만 따로 만난 적은 없다. 금품 수수 사실도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금품 수수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야 정치인 5명 중 한 명으로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에서 거론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역시 “윤 전 본부장을 야인 시절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만남 자체는 인정하기도 했다. 윤 전 본부장이 2022년 대선 당시 접촉했다고 언급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도 “통일교 관계자가 면담을 요청해 와 한 차례 만난 바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같은 정황에 비춰 볼 때 강제수사를 통한 증거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 조사를 위한 일정 조율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윤 전 본부장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수사가 난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자들이 금품 수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윤 전 본부장마저 경찰 조사에서 비협조적으로 일관할 경우 혐의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 내부에선 “윤 전 본부장이 공여자로 추가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입장을 번복한 것 같다”는 분석도 제기된다.송유근 기자 big@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금품지원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 번복과 별개로 관련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를 통해 증거 확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에선 여야 정치권에 대한 금품 지원을 진술했다가 돌연 12일 공판에선 입장을 번복한 게 최근 논란에서 비켜가기 위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 警, 윤영호가 바꾼 진술은 신빙성 낮다고 판단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 전담수사팀은 주말 동안 출근해 윤 전 본부장의 11일 서울구치소 접견 진술과 기존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에서의 진술을 비교 분석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경찰은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 조사에서 금품을 건넸을 당시 앞뒤 맥락과 구체적인 장면까지 상세하게 진술했던 점을 감안할 때 최근 법정에서의 진술 번복이 오히려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은 8월 특검 조사에서 “통일교의 숙원 사업이었던 한일 해저터널과 관련 청탁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에게 2018년 9월경 현금 4000만 원을 작은 박스에 담아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 의원이 처음엔 거절했지만, ‘복돈이니 받아도 된다’고 하자 금품을 받아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 한학자 총재에게 보고하는 2018년 9월 10일 특별보고에 “(통일교 성지인) 천정궁에 방문했던 전 의원도 (통일교 관계자) 600여 명이 모인 부산 5지구 모임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며 “우리 일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적은 것으로도 알려졌다.이에 대해 전 의원은 해당 진술이 모두 허위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특검과 경찰은 전 의원이 당시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이었고, 그해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당선된 오거돈 전 시장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금품을 건넨 목적과 경위가 비교적 뚜렷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직접 수사하진 않았지만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밖에도 윤 전 본부장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과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서도 “2020년 총선 전에 만나 3000만 원씩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의원에겐 친명(친이재명)계 연결고리 역할을 기대하는 차원에서, 한일의원연맹 소속인 김 전 의원에 대해선 일본 교세 확장에 힘써달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다는 게 윤 전 본부장의 주장이었다. 앞서 특검이 구속 기소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 대한 혐의도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이 결정타가 됐다. 권 의원이 천정궁에 방문해 한 총재에게 큰절을 하고 금품이 든 쇼핑백을 받아갔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는데, 관련 내용이 전 의원에 대한 진술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점에서 향후 경찰 수사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뇌물 사건은 받은 쪽이 부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이 정치인들의 천정궁 방문 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얼마나 잘 보강하느냐가 수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 전 본부장은 2020년 5월 세계본부장으로 오른 뒤 한 총재의 최측근이자 통일교 내 2인자로 불렸다. 그는 인사나 자금 등 조직 운영은 물론 외부 협력 등 대내외 업무를 총괄해왔다.● 일부 정치인 “윤영호 만난 건 맞다” 인정하기도윤 전 본부장은 12일 권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제가 만난 적도 없는 분들에게 금품을 제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이미 공여자로 지목된 정치인 중 일부는 금품 수수 의혹은 부인하면서도 윤 전 본부장 등 통일교 측과의 만남 자체는 인정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통일교 행사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윤 전 본부장과 만나 인사를 한 적이야 있겠지만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했다. 임 전 의원도 “여럿이서 봤을 수는 있지만 따로 만난 적은 없다. 금품 수수 사실도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금품 수수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야 정치인 5명 중 한 명으로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에서 거론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역시 “윤 전 본부장을 야인 시절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만남 자체는 인정하기도 했다. 윤 전 본부장이 2022년 대선 당시 접촉했다고 언급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도 “통일교 관계자가 면담을 요청해 와 한 차례 만난 바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같은 정황에 비춰볼 때 강제수사를 통한 증거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 조사를 위한 일정 조율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다만 윤 전 본부장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수사가 난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자들이 금품 수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윤 전 본부장마저 경찰 조사에서 비협조적으로 일관할 경우 혐의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 내부에선 “윤 전 본부장이 공여자로 추가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입장 번복을 번복한 것 같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특정 종교단체와 정치인 간 불법적 연루 의혹에 대해 여야,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이 국민의힘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확산되자 엄정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전날 통일교를 겨냥한 위법 종교단체 해산을 거론한 지 하루 만이다. 국민의힘과 김건희 여사에게 금품을 전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이날 열린 결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 통일교가 지원했다고 주장한 민주당 인사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날 공지를 통해 이 대통령이 통일교와 정치인의 불법 연루 의혹에 대한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전날 ‘종교 단체 해산’ 언급에 대해 국민의힘이 ‘민주당 방어용’이라고 비판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같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지시는 통일교의 정치권 연루 의혹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운데 나왔다. 2022년 대선 전후 통일교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김 여사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이 민주당 전현직 의원 등을 후원하거나 접촉했다는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에 나서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윤 전 본부장은 특검에 “2018년 민주당 전재수 의원(해양수산부 장관)이 천정궁에 방문해 한학자 총재를 만난 뒤 현금과 시계 등을 지원받았다”고 진술했으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한 총재와 만났지만 금품은 거절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에겐 수천만 원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전 장관은 “10원짜리 하나 불법적인 금품 수수는 없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정 장관은 “내일(11일) 입장문을 발표하겠다”며 “싱거운 내용이 될 것”이라고 했고, 김 전 의원은 “식사비 등 일체의 금품을 받은 적 없다”고 했다. 윤 전 본부장이 접촉했다고 주장한 이 대통령의 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고,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은 “(통일교 관계자를) 한 차례 만났지만 그 이후 어떤 접촉이나 교류도 없었다”고 했다. 윤 전 본부장 측 변호인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 심리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특정 정당만 접근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통일교 측 지원을 받은 민주당 정치인 명단을 폭로할 것이라고 했던 윤 전 본부장은 최후진술에서 구체적인 인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종교단체 해산 발언이 실제로 입틀막 효과를 낸 것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피할 수 없다”며 “‘통일교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진짜 특검’ 도입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송혜미 기자 1am@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지난해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이 선포된 밤.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안팎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의 사투가 벌어졌다.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국회가 무너져선 안 된다’는 마음은 같았다. 동아일보는 계엄 1년을 맞아 그날 국회에 있었던 시민 15명을 만났다. 이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건 “계엄을 막은 건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뛰어나온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날의 염원이 잊혀지면 다음 위기에서는 민주주의가 버티지 못한다”는 경고였다.● “뛰는 길에 유서 써” “가족 만류에도 ‘지키러’”오후 10시 27분, 강영수 노무사(33)는 형에게서 걸려 온 전화로 잠에서 깼다. “계엄 했다는데….”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뛰어나와 국회로 향하는 30분 동안 그는 카카오톡에 짧은 유서를 남겼다. ‘겁난다.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그냥 움직이고 있다.’ 네 아이를 둔 오수정 씨(49)는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신발을 구겨 신는데 중학생인 막내딸이 다리에 매달렸다. “엄마, 위험한 일 당하면 어떡해.” 오 씨는 차분하려 애쓰며 말했다. “우리나라 군인 경찰 아저씨, 그런 사람들 아니야. 걱정하지 마.” 역사 교사를 지망하는 한일환 씨(25)는 미래의 제자를 떠올리며 경북 경산에서 렌터카를 몰고 국회로 향했다. 불안과 혼란 속에 국회에 모인 건 4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무렵. 국회 담장 앞, 봉쇄된 문을 사이에 두고 군경과 마주한 시민들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김원경(44) 방희준 씨(48) 부부는 집을 나서며 혹시 구금될 상황에 대비해 당뇨약 일주일 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담장 앞에서 겁이 밀려왔지만, 앞서 넘어간 시민이 걸어둔 태권도 도복 띠를 보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부부는 그 ‘즉석 사다리’를 붙잡고 담을 넘었다. 정문 앞에는 군경의 진입을 막기 위한 ‘3겹 스크럼’이 만들어졌다. 이석찬 씨(33)는 처음에는 ‘혹시라도 표결이 무산돼 잡혀가는 건 아닐까’ 불안에 떨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서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용기가 났다고 했다.● 본회의 지켜낸 보이지 않는 손들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하게 계엄을 해제하려면 전자투표 시스템을 가동할 기술 인력이 필요했다. 이광복 대신정보통신 이사(58)는 그 역할을 맡았다. 가까스로 국회에 도착했을 때 그를 담장 안으로 넘겨준 건 다른 시민이었다. 이 이사가 “들어가야 한다”고 소리 지르자 한 노신사가 그를 저지하는 경찰에게 말을 거는 등 시선을 돌려 도움을 줬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국회 방호과에서 일하는 박유수(39) 김영완 주무관(51)은 ‘전 직원 즉시 출근. 월담해서라도 본청으로 집결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본관 1층으로 달려갔다. 진압군이 깨진 유리를 군홧발로 밟으며 들어서고 있었다. 박 주무관은 군인이 든 소총 줄을 무작정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손이 찢어진 건 나중에야 알았다. 4일 오전 1시 1분,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이 통과되자 모였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수백 명이 따라 불렀다. 박민상 씨(25)는 “이렇게 화가 난 시민이 여전히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고 했다. 한광섭 행정사(56)는 ‘2차 계엄이 또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이 틀 때까지 국회 앞을 떠나지 않았다.● “양극화 아쉬워… 이제는 우리가 미래 지켜야” 시민들은 그날의 경험이 ‘민주주의와 자신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국어학원을 운영하는 최영신 씨(41)는 “상식 있는 사람들 덕분에 권력의 오작동을 멈출 수 있었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남았다”고 했다. 강영수 노무사는 “계엄 사태를 거치며 ‘해선 안 될 일’에 대한 전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게 큰 성과”라고 말했다. 상흔도 컸다. 이석찬 씨는 몇몇 친구가 ‘(국회 앞을 막아선 시민을) 다 잡아서 없앴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고 연락을 끊었다. 김원경 씨는 “계엄 이후 극단적으로 정치화한 청년들이 늘었다”며 “정치적 관심은 필요하지만, 권력에 대한 감시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김규리 씨(25)는 “계엄이 정권 교체를 위한 대형 사건처럼만 소비되고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계엄 해제 나흘 후 소설가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로 달려갔던 시민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열네 살 때 전남 목포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목격한 황인수 신부(57)는 “그때 희생된 이들이 보여준 용기와 두려움, 그 뒤의 침묵을 기억한다. 이번엔 침묵하는 편에 서고 싶지 않았다”며 국회를 지킨 배경을 설명했다. 이광복 이사는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훗날엔 이 일 또한 과거가 되어 또 다른 미래, 그때의 현재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지난해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밤.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안팎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의 사투가 시작됐다. 누군가는 퇴근길에, 누군가는 가족과 집에 있다가, 또 누군가는 국회에서 근무하다가 그곳으로 향했다.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국회는 무너져선 안 된다’는 마음 하나로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뛰었다.동아일보 취재팀은 계엄 1년을 맞아 ‘그날’ 국회에 있었던 시민 15명을 만났다.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시민들은 처음엔 믿기 힘든 ‘당혹’을, 이후엔 모여든 사람 속에서 ‘연대’를, 그리고 계엄 해제 순간에는 ‘안도와 벅참’을 떠올렸다고 공통으로 증언했다. 그리고 그들을 막아섰던 군·경은 ‘고통’과 ‘후회’를 털어놨다.● “뛰는 길에 유서 써” “가족 만류에도 ‘지키러’”오후 10시 27분, 강영수 노무사(33)는 평범한 화요일 밤을 보내던 중 형에게서 걸려 온 전화로 잠에서 깼다. “계엄했다는데….”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신발을 챙겼다. 강남구 자택에서 국회까지 향하는 30분 동안 그는 카카오톡에 짧은 유서를 남겼다. ‘겁난다.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그냥 움직이고 있다.’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용기 낸 이들도 있었다. 네 아이를 둔 오수정 씨(49)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암울한 미래가 머리에 그려졌다고 한다. 그런 나라에서 아이들을 살게 할 순 없었다.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신발을 구겨 신는데 중학생인 막내딸이 다리에 매달렸다. “엄마, 가서 위험한 일 당하면 어떡해.” 오 씨는 차분하려 애쓰며 말했다. “우리나라 군인 경찰 아저씨, 그런 사람들 아니야. 걱정하지 마.” 대학원생 김규리 씨(25)는 한 시간 정도 고민하다가 이렇게 결심했다. ‘어차피 잠 자긴 글렀는데, 머릿수라도 보태는 게 낫겠지.’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뒤숭숭하다. 어디 나가지 말아라.” 김 씨는 “네”라고 대답하면서 길을 나섰다.마포구에 살던 이석찬 씨(33)는 국회를 향해 무작정 달렸다. 빌릴 수 있는 따릉이가 한 대도 없었고, 택시도 안 잡혔다. 박민상 씨(25)는 연인과 저녁을 먹고 귀가하다가 소식을 들었다. 누구에게 설명할 정신도 없이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상공에서 들려오는 헬기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경기 고양시에서 국어학원을 운영하는 최영신 씨(41)는 잠든 임산부 아내에게 차마 ‘국회로 간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차를 끌고 나왔다. 그는 “장갑차가 진입한다면 내 차로라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향했다”고 했다. 역사 교사를 지망하는 한일환 씨(25)는 미래의 제자를 떠올리며 경북 경산에서 밤중 4시간 동안 렌터카를 몰고 국회로 향했다.●“담 넘고 3겹 스크럼… 연대가 솟았다”혼란한 마음을 안은 이들이 국회에 모인 건 4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국회 담장 앞, 봉쇄된 문을 사이에 두고 시민들은 군·경이 마주 선 자리에서 긴장감과 연대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김원경(44) 방희준 씨(48) 부부는 강동구 자택을 나서며 혹시 모를 구금에 대비해 당뇨약 일주일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국회 담에 걸린, 앞서 넘어간 시민이 걸어둔 태권도 도복 띠를 보는 순간 불안감이 사라졌다. 김 씨 부부는 그렇게 ‘즉석 사다리’를 붙들고 담을 넘었다.국회 정문 앞에는 군·경의 진입을 막기 위한 ‘3겹 스크럼’이 만들어졌다. 이석찬 씨는 처음에는 다들 ‘혹시라도 표결이 실패해 우리가 잡혀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떨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같은 두려움을 안고 나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용기를 줬다고 했다. 그는 ‘잡혀가면 잡혀가는 거지. 설마 죽이기까지 하겠나’ 하는 마음으로 스크럼에 섰다.군·경과의 충돌을 막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강영수 노무사는 “격해지는 순간마다 오히려 시민들이 경찰을 말렸다”고 했다. “이분들도 갑자기 끌려나온 거라 당황스러울 것”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나왔다고 한다.● 본회의 시스템 지켜낸 보이지 않는 손들국회에는 알려지지 않은 조력자도 있었다. 본회의를 열어도 신속하게 계엄을 해제하려면 전자투표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필요했다. 이광복 대신정보통신 이사(58)도 그중 한 명이었다.3일 오후 11시 40분경 이 이사가 국회에 도착했을 때 담장 안으로 넘겨준 건 다른 시민이었다. 이 이사가 “들어가야 한다”고 소리 지르자 한 노신사가 눈짓을 줬다. ‘내가 막을 테니 들어가라’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그렇게 이 이사는 바리케이드를 디딤돌 삼아 담장을 넘었고, 본관까지 전력 질주했다. 가까스로 도착해 투표 시스템을 열었는데, 투표 단말기가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작동했다. 천운이었다.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국회 방호과에서 일하는 박유수 주무관(39)은 의원회관에서 당직을 서던 중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전 직원 즉시 출근. 월담해서라도 본청으로 집결하라.’ 본관 1층으로 달려가니 군인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이 군화에 밟히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군인이 든 소총줄을 무작정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손이 찢어진 건 나중에야 알았다.● 가결 후 환호보다 컸던 안도의 한숨4일 오전 1시 1분,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통과되자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벅찬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석찬 씨는 “가결 직후 환호성보다 ‘휴’ 하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더 컸다”고 했다. 이내 국회 밖에서 누군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수백 명의 시민이 따라 불렀다고 한다. 박민상 씨는 “‘이렇게 화가 난 시민이 여전히 존재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희망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하지만 계엄 해제 직후에도 사람들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다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 앞에 있었던 한광섭 행정사(56)는 “돌아보면 ‘우리가 이겼다’는 승리감도 분명 있었지만, 그땐 ‘2차 계엄이 또 나올 수 있다’는 긴장감이 훨씬 컸다”고 했다. 그래서 대다수 시민은 동이 틀 때까지 국회 앞을 떠나지 않았다.● “과거가 현재를 붙들었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나흘 후 소설가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로 달려갔던 시민들은 그날의 경험을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열네 살 때 전남 목포에서 5·18을 직접 목격한 황인수 신부(57)는 “그날 희생된 이들을 떠올리며 살아왔다”며 “그때 누군가가 지키지 못했다면, 이번엔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5·18 때 어른들이 보여준 용기와 두려움, 그 뒤의 침묵을 기억한다. 이번엔 침묵하는 편에 서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광복 이사는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훗날엔 이 일 또한 과거가 되어 또 다른 미래, 그때의 현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계엄 1년. 그날 국회를 지킨 시민 15명이 입을 모아 강조한 건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뛰어나온 평범한 시민들이 계엄을 막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국회 앞에 켜졌던 불빛과 목소리가 잊히지 않아야, 다음 비상 상황에서도 민주주의가 버틸 수 있다”는 경고였다.● “스스로에게 자긍심…인간에 대한 신뢰 생겨”불법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 당시 국회로 달려와 군 병력에 맞섰던 시민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날의 경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성하는 내밀한 기억으로 남았다. 국회 앞에서 뛰고, 붙잡고, 밀치며 서로를 확인했던 순간은 이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를 되살린 시간이었고, 동시에 ‘그날 그곳에 있었던 나’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졌다.국회 방호과에서 일하는 김영완 주무관(51)은 지금도 국회를 지킨다. 언성을 높이는 민원인을 진정시키고, 늦은 밤에 불 꺼진 국회를 순찰하는 일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예전에 국회는 직장으로서 의미가 더 컸지만, 이제는 민주주의의 핵심 공간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대학원생 김규리 씨는 최근 졸업 논문 심사를 앞두고 부쩍 바빠졌다. 김 씨는 비상계엄 이전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지만, 계엄 당일 이후 꾸준히 집회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예비 심사를 앞두고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때였는데, 시민들과 연대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다”며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순간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시민들은 그날의 경험이 ‘민주주의와 자신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최영신 씨는 “계엄 직후 한동안 군 헬기가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렸다”면서도 “현장에서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던 경찰과 군인을 목격하며 오히려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다”고 했다. 한일환 씨는 “1년 전 비상계엄을 막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이젠 교단에 서야 하는 동력이 되었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강영수 노무사는 “계엄 사태를 거치며 ‘해선 안 될 일’에 대한 전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게 큰 성과”라고 말했다.● “양극화 아쉬워… 이제는 우리가 미래 지켜야”상흔도 컸다. 이석찬 씨는 몇몇 친구가 ‘(국회 앞을 막아선 시민을) 다 잡아서 없앴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고 연락을 끊었다. 그는 “그날 현장에 있던 내가 잡혀갔다면 똑같이 말하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전엔 사회생활에서 튈까 조심했지만, 이제는 해야 할 말은 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했다. 박유수 주무관은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말을 더듬게 된다고 한다. 13년간 방호 업무를 해왔지만, 그날만큼 급박한 순간은 없었다. 본 회의장 2층에서 수십 명의 군인을 마주한 순간은 큰 충격으로 남았다.시민들은 계엄 이후 양극화된 사회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원경 씨는 “계엄 이후 극단적으로 정치화한 청년들이 늘었다”며 “정치적 관심은 필요하지만, 권력에 대한 감시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규리 씨는 “계엄이 정권 교체를 위한 대형 사건처럼만 소비되고 취약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계엄 속보를 접한 순간 곧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망설임 없이 국회로 향한 직장인 류호성 씨(34)는 “계엄은 시민들의 힘으로 하루 만에 끝났지만, 군부독재나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중대한 사안이었다”며 “이번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황인수 신부는 지금의 상황을 ‘솔로몬의 재판’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계속 서로를 적으로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반쪽짜리 아기라도 차지하겠다는 식으로 자기 이익만 앞세우면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가정집, 백화점, 어린이집 등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 인터넷프로토콜(IP) 카메라 12만여 대가 해킹돼 영상이 외부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이렇게 탈취한 영상을 불법 촬영물로 편집·판매한 이들을 붙잡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30일 IP 카메라 해킹 피의자 4명을 검거하고, 영상물을 성착취물로 제작·판매한 A 씨 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로 공범 관계는 아니며 각자 별도의 방식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카메라에 접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IP 카메라는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영상을 확인할 수 있어 가정에서는 자녀나 반려동물 모니터링,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방범용으로 널리 쓰인다. 피의자들은 이런 특성을 악용해 보안 설정이 취약한 카메라를 무작위로 찾아내 접속했고, 내려받은 영상을 성착취물이나 ‘몰카’ 형식으로 재편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킹된 장소는 백화점, 병원, 사진관, 코인노래방, 폴댄스 연습실, 음식점, 어린이집 등 업종과 공간을 가리지 않았다. 비밀번호가 단순하거나 여러 기기에 동일하게 설정된 취약점을 노린 것으로 확인됐다. 검거된 20대 남성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6만3000대의 카메라를 해킹해 545개의 불법 영상을 제작했다. 이후 해외 불법 사이트에 팔아 3500만 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인 30대 남성도 7만 대를 해킹해 648개 영상을 제작·판매해 약 1800만 원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두 사람이 올린 영상이 해당 해외 사이트의 최근 1년 게시물 중 62%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30대 자영업자는 1만5000대를, 30대 회사원은 136대를 해킹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자영업자는 해킹 영상 일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까지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불법 촬영물을 구매하거나 시청한 이용자 3명도 추가로 검거했다. 해외 서버 기반의 불법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서는 인터폴 등 해외 수사기관과 공조 수사를 진행 중이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당 사이트 접속 차단을 요청한 상태다. 경찰은 피해가 확인된 장소 58곳에 비밀번호 변경 및 기기 점검을 안내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협력해 영상 유출 위험이 높은 IP 카메라 제조사·유통사·사업장도 점검하고 있다. 피해자에게는 전담 경찰관 지정, 삭제·차단 요청 지원 등 보호 조치도 병행하며, 2차 가해에 대해서도 엄정 대응할 방침이다.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쿠팡의 이번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은 쿠팡에서 이미 퇴직한 중국 국적 직원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쿠팡 측은 경찰에 ‘신원불상자’를 대상으로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에 제출한 사건경위 보고서에는 전 중국 국적 직원이 쿠팡의 해외 서버를 통해 국내 메인 서버에 무단 접근했다는 등 범행 정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 수사 과정에서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 체류 중 개인정보를 빼돌린 뒤 협박성 이메일을 보낸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경찰과 쿠팡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퇴사 후 해외로 나간 상태에서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며 “보안을 강화하지 않으면 유출 사실을 언론에 알리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회사 측에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금전 요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해당 이메일 발송자가 빼돌린 개인정보를 이미 제3자에게 전달하거나 판매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디지털 포렌식 등 추가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정부는 쿠팡 서버의 인증 절차, 즉 로그인 과정 자체가 취약한 점이 이번 정보 유출의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쿠팡의 최초 신고서에 따르면 공격자는 ‘유효한 인증 없이 접근한 기록이 발견됐고, 서명된 액세스 토큰을 악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돼 있다. 액세스 토큰은 특정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정보기술(IT) 업계와 유통업계는 해당 직원이 IT 개발자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국적 직원이라면 개인정보 접근 프로세스 개발자일 가능성이 있다”며 “쿠팡 정도 규모의 보안 체계를 고려하면 직원 단독 범행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는 30일 중국 국적 직원의 소행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수사의 영역”이라며 “저희는 경찰과 정부 기관에 적극 협조 중이며 조사나 수사가 이뤄지면 그런 부분은 명확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보 유출이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외국 기업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는 “쿠팡은 사실상 대부분의 국민이 이용하다 보니 쿠팡 고객 정보는 국내 소비자를 겨냥하는 다른 업체에 매력적인 표적”이라며 “유출된 내용이 한국 시장을 공략할 때 유용한 내용이다 보니 다크웹 같은 곳에서 비트코인을 통해 수백억 원에 거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유출 사고로 알리익스프레스(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C커머스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최대 경쟁자인 쿠팡을 흔드는 사건이 터진 것”이라며 “유출된 정보들이 C커머스로 흘러들어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국내 1위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가 해킹으로 445억 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탈취당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이 합병을 공식화한 다음 날 대규모 해킹 사고가 난 것이다. 6년 전 같은 날인 2019년 11월 27일에도 북한 정찰총국 산하 조직의 해킹으로 580억 원가량의 가상자산이 유출된 바 있다. 업비트는 27일 오전 4시 42분경 약 445억 원에 해당하는 솔라나 네트워크 계열의 가상자산이 업비트가 지정하지 않은 알 수 없는 지갑 주소로 전송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출된 자산은 솔라나를 포함한 총 24개의 가상자산이다. 솔라나 플랫폼은 이더리움의 대항마로 주목받는 가상자산 플랫폼이다. 업비트는 비정상적인 출금 행위를 인지하자마자 회원 자산 보호를 위해 입출금 서비스를 중단하고, 전면적인 점검 절차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및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마쳤다. 오경석 업비트 대표는 “회원들의 자산에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전액 업비트의 자산으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에 따라 해킹과 전산 사고 등에 대비한 업비트의 준비금은 9월 말 기준 670억 원이다. 앞서 업비트는 6년 전인 2019년 11월 27일 같은 날 당시 시세로 580억 원에 달하는 이더리움 34만2000여 개를 탈취당한 바 있다. 당시 해킹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조직인 ‘라자루스’와 ‘안다리엘’의 범행으로 조사됐다. 당시에도 업비트는 피해 자산 전액을 회사 자산으로 충당해 고객 피해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해킹이 재발한 것에 대해 보안의 허술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분야의 한 변호사는 “보안 허점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 준다”며 “업비트가 해킹 사실을 늦게 알리는 바람에 이용자가 자산을 늦게 인출했을 수 있으니 ‘늑장 고지’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테러수사대는 이날 발생한 업비트 해킹 사건과 관련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날 업비트 해킹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하고, 운영사인 두나무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