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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故 최종근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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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故 최종근 하사

이기홍 논설실장 입력 2019-05-31 03:00수정 2019-05-3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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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귀환 장병의 안타까운 죽음… 대통령은 조문도, 영결식 참석도 안해
국가 위해 희생한 제복 영웅들을 왜 우리는 좀 더 예우하지 못할까
이기홍 논설실장
소말리아 해역 아덴만 파병근무를 마치고 귀환한 해군 장병이 입항 행사 도중 사고로 숨졌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왜 특히 더 안타까웠을까.

얼마나 덥고 험한 바다였을지, 그곳에서의 파병 근무는 얼마나 고됐을지, 제대를 한 달 남겨놓고 고국 항구에 들어올 때 미래에 대한 꿈에 얼마나 부풀었을지….

그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아 며칠 뉴스를 보고 검색을 해봤지만, 막상 고 최종근 하사의 스물두살 삶에 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검색 뉴스들은 그의 죽음을 모독한 남혐 성향 인터넷 사이트 논란과 영결식 행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최 하사의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어떤 표현으로도 담을 수 없을 큰 아픔을 다시 건드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29일 밤 통화에서 최 하사 부친은 근 한 시간 동안 조용한 어조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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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을 안장할 때 유골함에 가족사진을 함께 넣으셨더군요.

“아들을 어둡고 무서운 곳으로 혼자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너 옆에 아빠 엄마 여동생이 항상 함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24일 아침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내 부두에서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이 다가와 정박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부두엔 환영 나온 가족 800여 명이 있었다. 이제 곧 선상 행사가 끝나면 아들이 배에서 내려오겠지… 설레며 기다리는데 폭발음이 들렸다. 앰뷸런스가 달려왔다. 부두의 가족들은 다들 불안감에 발을 굴렀다. 옆의 아내도 “불길하다”고 중얼거렸다.

앰뷸런스가 3 대째 도착하고 다친 수병들이 내려왔다. 그런데 들것에 실린 수병을 앰뷸런스에 태우던 군 관계자가 “최종근”이라고 아들 이름을 크게 불렀다. 가족을 찾는 것이었다. 아내는 거의 실신했고, 최 씨만 앰뷸런스에 올랐다. 아들에게 눈을 떠보라 했지만 응급실 의사는 심장이 멎었다고 말했다.

정말 귀하게 키운 아들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캐나다에 유학 보내 기러기 생활도 했다.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던 아들은 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해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제대가 한 달 남았는데 귀국 당일부터 보름 휴가고,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면 파병 기간 못 쓴 휴가를 다시 받게 돼 있어 군 복무는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

아라비아반도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40도를 넘는 고온, 계절풍을 타고 오는 높은 파도 속에 300명이 4300t 배 안에서 견뎌야 하는 6개월. 관 크기의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잘 알려졌듯 목숨을 건 해상작전이 언제 전개될지 모르는 날들이지만, 갑판병 아들은 위성통화에서 한 번도 힘들다거나 불평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집에 가면 아빠하고 맥주에 교촌치킨 먹고 푹 자고 싶다는 말에서 고된 생활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런 아들을 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에도 그는 단 한번도 누구의 멱살을 잡거나 욕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통화 중간 중간 슬픔에 목이 메는 듯 말을 멈췄지만, 조용한 목소리를 이어가던 그는 딱 한 번 단호히 분노를 표출했다.

최 하사 사고를 모욕한 인터넷 집단에 대해서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안 받으려 하지만 강한 사람이 못 되는지 상처를 받았습니다. 상처 치유는 힘들 것 같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갖고 남의 죽음을 모독해선 안 된다는 걸 어릴 때부터 교육시켜야 합니다.”

필자가 미국 주재원 시절 목도했던 숱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숨진 장병의 유해가 돌아오는 날 아무리 한밤중이어도 대통령이 공항에 나가 거수경례로 맞이하던 장면들, 연방 예산과 인력·펀딩 배분 때 보훈처(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를 최우선으로 하는 게 당연한 문화, 비행기를 탈 때 흔히 듣는 “군인 먼저 탑승하세요”라는 안내방송….

한국에서 성적 우수 학생들이 판검사가 되려고 기를 쓰던 시절이 있었듯 미국의 성적 최우수자들은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투자은행 등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걸 꿈꾼다. 하지만 정말 지도층의 자제들은 군에서 일정 기간 국가에 봉사하는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최고의 엘리트 지도자 코스로 여겨진다.

사회가 제복을 최고로 예우해주는 만큼 공복으로서의 사명감이 매우 강하며 윤리 의무를 어겼을 때 받는 페널티도 매우 엄하다. 군복이 무색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 평화운동가로 혼동하는 듯한 국방관료들, 법복이 부끄러운 일부 이념 판사들, 정치권에 외교 기밀을 알려주는 외교관 등으로 시끄러운 우리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

최 하사 부친과의 대화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한국여성이 포함된 인질구출작전 중 숨진 프랑스 특공대원 2명의 영결식(14일 파리)으로 이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영결식장에서 유족들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슬픔을 함께 나눴다. 27일 최 하사 영결식에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은 없었다.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와주셨으면 힘이 됐을 거라는 생각은 어느 부모라도 하겠지요. 군인 소방 경찰 이런 분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이라도 남을 위해 희생해 유명을 달리했을 때 국가가 최고로 예우해 떠나보내 준다면 유가족의 마음도 조금은 더 위로를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해군 장병#아덴만 파병근무#엘리트 지도자 코스#국가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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