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방송]최영묵/TV 방송연장 재고하라

  • 입력 2002년 4월 9일 18시 25분


KBS MBC SBS 등 지상파 TV 3사의 방송시간이 월드컵 개막 45일 전인 15일부터 하루 5시간씩 늘어난다. 또 월드컵 기간과 그 1주일 후까지인 5월31일∼7월7일에는 24시간 방송이 허용된다. 편성 가능한 내용을 스포츠와 건전 프로그램으로 제한하긴 했지만 방송위원회의 이 같은 조치로 방송시간 연장 논란은 일단 지상파 TV 3사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방송위가 방송시장의 독과점 사업자인 지상파 TV 3사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방송위는 이번 결정을 위해 지난해 방송협회가 시간연장을 건의한 이후 나름대로 연구와 의견수렴을 거쳤다고 한다. 월드컵이라는 국가적 잔치를 뒷받침한다는 확실한 명분도 있다.

▼뉴미디어 생존 위협▼

하지만 이번 결정은 방송위의 방송철학 부재와 무기력의 산물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잖다. 방송시간 연장은 그리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광고시간과 외주제작물, 국내 제작 프로그램 편성 등 대부분의 방송사업 규제는 총 방송시간을 근거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광고시장만 봐도 3사가 매일 5시간씩 방송시간을 늘리면 매일 15시간 이상 방송하는 지역민방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새로운 채널 하나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지상파 TV의 1일 방송시간을 15시간(주말 19시간)으로 제한하는 근거는 방송사 허가증이다. 이 시간은 사업자들이 방송위의 추천을 받아 (재)허가를 받을 때 정책 지침에 따라 인정한 시간이다.

과거 석유파동 때 방송시간을 제한한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방송시간을 제한한 이유는 틈새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케이블TV 등 뉴미디어 방송의 생존 근거와 관련이 있었다.

지상파 3사의 시장 독과점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현재 지상파 3사의 시청점유율은 75% 안팎이고 광고시장 점유율은 80%가 넘는다. 지역민방 중 광고시장 점유율이 1%가 넘는 곳은 부산방송 등 서너 곳뿐이다. 37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77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광고매출액을 다 합해도 전체 방송광고 시장의 8% 정도에 불과하다. 다미디어 다채널 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도 지상파 3사의 독과점은 이렇듯 심각하다.

지상파 사업자의 프로그램 제작과 공급여건도 이전과 비교해 개선된 것이 없다. 오히려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까지 진출하는 바람에 인력이나 재원, 콘텐츠 등 어느 면에서 봐도 여건이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시간을 늘리게 되면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 3사의 과잉 시청률 경쟁과 이에 따른 프로그램의 저품질화는 심각한 지경이다.

지상파 3사는 현재 방송시간 규제로 어려움이 많다고 하지만 실상을 보면 필요할 경우 방송위의 승인을 받아 방송시간을 연장해 왔다. 지난해 통계만 봐도 지상파 3사가 연장신청을 한 것이 3300건이 넘어 실제 매일 2시간 이상 방송시간을 연장했다. 늘어난 시간에 내보낸 프로그램을 보면 스포츠 중계와 연예 오락프로그램 재방송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낮이나 심야시간대는 시청자나 광고주에게 별로 인기가 없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품질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3사가 방송시간 연장을 요구할 만한 이유는 있다. 그 시간대의 시장가치가 커지고 있는 데다 광고시장 확대 등 총 방송시간 확대로 얻는 부수적 이익이 많기 때문이다.

▼빅3 편성계획 재검토 필요▼

이 상황에서 방송위가 우선 검토해야 할 사항은 연장시간에 대한 편성계획이다. 사업자가 방송시간을 늘려 어떤 프로그램을 내보내려고 하는지 먼저 검토한 후 채널별로 차별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KBS1 TV에 대한 시한부 시간 연장은 가능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고품질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는 데다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지상파 방송 3사에 대한 방송시간 연장은 재고해야 한다. 연장을 요청하는 기간 중의 편성계획을 근거로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규제완화’ 시대라고 해도 방송정책의 목표는 독과점을 제한하고 여러 사업자의 생존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양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 현 시점에서 방송시간 확대는 이러한 정책목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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