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이창환]조선왕릉, 600년 전 시작된 서울의 그린벨트

  • 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서울과 경기 일원에 천년의 숲이 있다. 광릉수목원이다. 광릉(光陵)은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의 능이다. 세조는 자신의 무덤을 만들 때 풍수가 좋은 양지바른 곳에 석실을 회벽실로 하고 병풍석은 간편한 난간석으로 하라는 능제의 간소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나무를 심고 가꾸어 주기를 바랐다. 이것이 광릉수목원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국장이 이루어지면 5개월 동안 능역을 조성하여 장례를 치른다. 장지가 선정되면 능침(봉분)에서 보이는 사가의 무덤과 민가는 이전을 하고 숲을 가꾸어 관리했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함부로 베면 혼이 났다. 큰 능역은 수백만 m²나 되었다. 이렇게 만든 게 광릉 숲과 청량리의 홍릉 숲이다.

왕권을 장악한 태종은 계모 신덕왕후릉인 정릉(貞陵)을 도성 밖으로 이장하면서 도성을 중심으로 10리(4km) 이내에 묘역 조성을 금했다. 이렇게 시작된 조선의 능역은 도성 10리 밖 풍수적 길지에 집중적으로 조성됐다. 이후 왕의 친행 시 환궁을 고려하여 도성 100리 이내에 능역을 조성하는 원칙을 정한다. 이런 관행은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그린벨트가 됐다. 대한제국시대 조선 왕릉의 규모는 수천만 m²에 이르는 거대한 숲이었으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면적이 매각되거나 공공기관에서 점유해 사용한다. 그래도 이번에 1756만9000m²의 넓은 면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도성 10리 밖, 100리 이내에 조성

1408년에 조성된 태조의 건원릉 건설은 박자청이 총책임자였다. 박자청은 도성과 궁궐, 종묘 그리고 왕릉을 조성한 당시 최고의 건설 본부장이었다. 왕릉 조성은 산릉도감에서 시행했다. 최고의 풍수가, 건설가, 조각가를 동원해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그래서 왕릉은 시대의 철학, 사상,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주변의 다른 유교국가에서는 왕릉을 조성할 때 사후에도 통치한다는 의미를 부여해 지하궁전을 만들고 웅장하고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만들었다. 조선의 왕릉은 속세에서의 고단함을 잊고 편안히 쉬는 공간으로 꾸몄다. 언덕의 양지바른 곳에 적당한 크기의 석물과 회벽실을 만들어 잔디로 피복하여 아름다움을 더했다. 선왕의 혼백이 능역에 나와 노시기를 바라 혼유석(혼이 노니는 상석)을 능침 앞의 고석(북 모양의 돌) 위에 올려놓았다.

조선시대 능원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돌아가신 선왕은 산언덕을, 현세의 왕은 언덕 아래 평지를 이용했다. 제례 시 선왕은 능상의 언덕에서 내려와 정자각에서 현세의 왕과 만나게 했다. 능원은 정자각을 중심으로 3단계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재실 등이 있는 진입공간은 산 자의 공간이고,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을 중심으로 한 곳은 선왕과 현세의 왕이 만나는 성과 속의 공간인 제향공간이다. 그리고 언덕 위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과 석물이 조성된 공간은 선왕의 공간으로 곧 성역의 능침공간이다.

능역의 진입은 명당수가 흐르는 개천을 따라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진입하게 해 능원의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능역 입구의 연못은 풍수적 합수지이면서 참배자의 마음을 씻는 공간이다. 입구에 있는 재실에는 목욕실을 두어 몸을 깨끗이 하고 제례를 준비하도록 했다.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제례에 임한다는 뜻이다. 곡선의 참배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돌다리인 금천교를 만난다.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속세의 영역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금천교를 지나면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홍전문이 있다.

조선왕릉은 40기의 모든 능을 돌아보아야 그 시대의 정치 철학 사상 조영기술을 익힐 수 있다. 한 곳을 들라면 나는 파주의 인조 장릉(長陵)을 추천한다. 영조 때 만든 천장릉으로 조선후기 대표적 모방사례 능이다.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부모 묘를 김포로 옮기면서 장릉(章陵)이라 했다. 두 장릉은 조산(朝山)을 인천의 계양산으로 한다. 즉 아버지와 아들이 수십 km 떨어졌으나 하나의 조산을 바라본다. 무슨 의미인지 연구가 요구된다. 최근 파주장릉 앞을 택지로 개발하는 중이다. 나는 장릉에서 계양산까지 이어지는 축을 녹지벨트화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유럽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다. 문화유산은 주변의 경관을 고려하여 보전하고 관리해야 한다.

정치-철학-사상-기술 집대성

조선왕릉은 우리 민족 제례문화공간의 결정체로서 세계유산대회사상 유례가 없는 호평을 받아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됐다. 훼손된 능제시설을 복원하고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향유할 문화공간으로 관리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등재는 1000년 후 서울의 도심 속에 2000년 된 역사경관 숲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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