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신청했던 남북… 유네스코 총장이 “평화 위해 공동등재” 권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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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인류무형유산 등재]우여곡절끝 첫 공동등재된 씨름

김홍도 ‘씨름도’처럼… 씨름은 1600여 년간 한반도에 뿌리내린 민속경기다. 16세기 무렵부터 단오에 
여성은 그네뛰기를, 남성은 씨름을 즐겼다. 18세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가운데 사진). 대한민국(왼쪽 
사진)과 북한(오른쪽 사진)의 씨름은 분단으로 용어와 규칙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샅바를 매고 상대를 넘어뜨리는 고유한 규칙과 전 
국민이 즐기는 전통 문화라는 공통점을 간직하고 있다. 뉴스1·문화재청 제공·유네스코 홈페이지
김홍도 ‘씨름도’처럼… 씨름은 1600여 년간 한반도에 뿌리내린 민속경기다. 16세기 무렵부터 단오에 여성은 그네뛰기를, 남성은 씨름을 즐겼다. 18세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가운데 사진). 대한민국(왼쪽 사진)과 북한(오른쪽 사진)의 씨름은 분단으로 용어와 규칙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샅바를 매고 상대를 넘어뜨리는 고유한 규칙과 전 국민이 즐기는 전통 문화라는 공통점을 간직하고 있다. 뉴스1·문화재청 제공·유네스코 홈페이지
5세기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角저塚·씨름 무덤)’에는 짧은 바지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맞댄 채 상대의 허리띠를 잡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18세기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단원풍속도첩’에서도 씨름 장면이 나타나는 등 각종 문헌과 회화 등에서 씨름의 명확한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씨름은 1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 및 지역적 배경, 성별에 관계없이 계승되어 온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지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처음으로 남북 공동 등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씨름의 남북한 공동 등재가 처음 논의된 것은 2014년이다. 그러나 이듬해 3월 북한이 유네스코에 씨름을 단독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무산됐다. 2016년 열린 제1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북한의 씨름에 대해 등재 보류 판정을 내렸다. 신청서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용어’와 ‘엘리트 체육 위주’로 작성된 점을 지적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2016년 3월 유네스코에 단독으로 씨름 등재 신청서를 냈고, 북한이 지난해 3월 재도전에 나서면서 원치 않게 경쟁 구도가 돼버렸다.

반전의 계기는 올 4월부터였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씨름 공동 등재 아이디어가 다시 부각됐다. 불을 붙인 건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었다. 대북제재에 대한 부담 없이 남북 화해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가 유네스코의 과학·문화 분야라고 여긴 아줄레 사무총장은 올해 8월 적극적으로 남과 북에 씨름 공동 등재를 권유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수락했으나 북한은 거절하겠다고 밝혔다. 각각 따로 등재를 신청해도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어서 굳이 같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꺼져가던 남북 공동 등재의 불씨를 되살린 건 지난달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이었다. 프랑스 방문길에 아줄레 사무총장과 만난 문 대통령은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씨름 공동 등재가 좋은 아이디어다. 다시 추진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표부 한국대사가 파리에 나와 있는 김용일 주유네스코 북한대사와 만나 문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했다. 북한은 처음에는 “남북 경제 협력 사업에 집중하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세계 평화에 대한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자 남북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득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한 외무성에서 수용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줄레 사무총장도 평양에 유네스코 사무총장 특사를 파견해 설득하고, 남북 공동 등재가 “세계 평화를 위한 좋은 방향”이라며 예외적으로 서둘러 절차를 진행하도록 배려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결국 유네스코 무형유산위는 씨름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전승된 민속경기로, 남북이 신청한 유산이 사실상 같다고 판단해 26일 공동 등재 결정을 내렸다.

씨름을 계기로 남북 문화유산 공동 등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차기 후보로는 문 대통령이 아줄레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 언급했던 비무장지대(DMZ) 생물다양성 보존 등이 꼽힌다.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4km 폭의 DMZ는 6·25전쟁 이후 출입이 통제돼 생태계가 잘 보존됐다는 점에서 자연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궁예가 강원도 철원에 세운 계획도시인 태봉국 철원성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각종 군사시설이 존재해 문화유산으로서의 성격도 갖추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남북 간에 먼저 논의가 이뤄진 후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유네스코로 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 신나리 기자
#유네스코 총장#평화 위해 공동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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