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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우리 마을이 이겨냈듯, 대구도 꼭 일어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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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우리 마을이 이겨냈듯, 대구도 꼭 일어설 것”

순창=신지환 기자 , 조건희 기자 입력 2020-03-14 03:00수정 2020-03-1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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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격리’ 순창 장덕마을 주민들
대구경북을 진원지라 부르면 안돼
당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아팠던지
쏟아진 격려-응원물품에 힘 얻어
2015년 발생한 메르스로 마을 전체가 격리됐던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마을회관 앞에 모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향해 “힘내세요”라는 구호를 외쳤다. 순창=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북 순창군 버스터미널에서 북쪽으로 약 2km. 구불구불한 왕복 2차로를 따라가면 ‘장덕마을’이라 적힌 비석이 나온다. 축구장 2개 넓이쯤 되는 이 마을엔 정겨운 농가 5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시골 어디서나 마주칠 듯한 평범한 농촌 마을. 하지만 이곳에선 5년 전 국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마을 주민 강모 씨(당시 72세·여)가 국내 51번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로 확진됐기 때문이다. 장덕마을은 무려 14일 동안 마을 전체가 통째로 봉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격리 도중 강 씨는 세상을 떠났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우울증 확산



장덕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태진 씨(88)는 대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얘기부터 꺼냈다. 김 회장은 “대구 사람들은 괜찮은 것이냐”며 걱정을 쏟아냈다. 여당 부대변인의 말실수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봉쇄 논란’ 소릴 들었을 땐 가슴이 덜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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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래요. 우리가 먼저 겪어봤잖아. 주민도 다들 안타까워합디다. 이달 초만 해도 마스크 쓰고서라도 노인회관에 모여 함께 TV 보며 한마디씩 했어. 그런데 언젠가부터 옛날 그 ‘악몽’이 떠오르나 봐요. 감염 우려 탓도 있겠지만 슬금슬금 회관에도 잘 안 옵니다.”

장덕마을로 통하는 도로는 모두 합쳐 4개. 이 도로들을 전면 봉쇄한 건 순창군이 강 씨의 확진을 전한 직후인 2016년 6월 4일이다. 강 씨는 같은 해 5월 18일 메르스 1번 확진자와 같은 경기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격리 안내를 받지 못했던 강 씨는 2주 동안 장덕마을 주민들과 수시로 접촉했다.

당연히 당국은 강 씨가 정확히 누구를 접촉했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공동체나 다름없는 마을에서 주민들은 주민회관이나 복분자밭 등 어디서건 마주쳤다. 결국 주민 102명 모두에게 마을은 물론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자가 격리’ 명령이 내려졌다. 주민 모두가 아직도 기억하는, 오후 11시 반이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당시 마을 청년회장이던 양희철 씨(47)는 뭣보다 주민들의 가슴을 사로잡은 건 ‘우울함’이었노라고 했다.

“두려움도 있었겠죠. 숨 막히기도 했고요.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하필이면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 하는 억울한 감정이 컸습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아팠죠. 6월이면 한창 농번기예요. 담장 너머 밭에서 말라 죽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TV로 대구를 보니 그 활기찼던 도심이 마치 ‘유령도시’처럼 보입디다. 그분들도 ‘마음의 상처’가 더 크게 와닿을 거예요.”

○“낙인은 안 돼, 서로 보듬어야지”

장덕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꼭 보태는 말이 있었다. “대구경북을 코로나19의 발원지나 진원지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 양기주 장덕마을 이장(53)은 “일부에서 ‘대구 코로나’라 부른다는 소릴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게 당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속을 후벼 파는지 아느냐”고 했다.

“우리는 안 그랬겠어요. 어떻게든 살아서 이겨내기 벅찼지만, ‘그 이후의 삶’도 너무 불안했습니다. 몇몇 주민은 ‘혹시 장덕마을은 봉쇄가 풀린 뒤에도 영원히 메르스 마을이라 불리면 어떡하지’ 걱정했어요. 말이란 게 얼마나 무섭습니까. 한번 낙인찍는 건 쉬워도 벗어나긴 정말 어렵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감싸야 한다고 당부했다. 당시 순창보건의료원 예방의학계장을 맡았던 권미경 씨는 “격리자는 공중보건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의 이웃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주민 문치현 씨(83)는 “우린 그래도 14일만 버티면 됐다. 코로나19는 그런 기약이 없으니 얼마나 힘들겠냐. 이럴 때일수록 ‘잘 이겨낼 수 있다’며 서로 다독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분투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등에 대한 따뜻한 시각도 잃지 말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다툴 때가 아니란다.

“메르스 격리 때가 거의 여름이 다 됐을 때였지. 한데 공무원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쉴 방역복을 다 껴입어서 땀을 됫박으로 흘렸어요. 그런데도 주민부터 챙기더라고, 거 참. 그 덕에 우리도 무사히 이겨낸 게 아닌가 싶습디다.”(문 씨)

○“지원물품에 담긴 ‘힘내라’ 쪽지에 울컥”

놀랍게도, 장덕마을에선 2016년 6월 19일 0시 출입 통제가 해제될 때까지 단 한 명의 이탈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추가 확진자도 없었다. 주민들은 보건 당국의 발열 체크 등 메르스 의심 증상 감시에 빠짐없이 응했다. 출입 통제도 잘 따랐다. 사태 종료 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와 언론이 마을을 ‘메르스 극복의 모범사례’라며 극찬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왜 힘들지 않았겠나. 격리 8일째였던 12일엔 강 씨가 끝내 숨졌다. 주민 문정식 씨(59)는 “돌이켜 보면 몸은 멀쩡해도 속으론 ‘마음의 병’을 앓았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들에겐 큰 힘이 되는 ‘버팀목’이 있었다. 바로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국민들의 응원이었다. 주민 성삼채 씨(62)도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온갖 과자와 마스크 등 다양한 지원물품을 보내왔다”며 “물품도 요긴했지만, 하나하나마다 ‘힘내세요’란 쪽지가 붙어 있던 박스가 기억난다. 눈물을 글썽거릴 만큼 고마웠다”고 떠올렸다.

메르스 사태 당시 장덕마을회관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민과 기업, 관공서 등에서 보낸 구호품이 천장까지 꽉 찼다고 한다. 농번기 일손 공백도 인근 지역 경찰을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와 피해를 최소화했다. 부녀회장 신정순 씨(74)는 그 구호품을 바라보며 나누던 대화를 아직 잊지 못한다.

“어디서 뭐가 왔다고 안내방송이 들리면 그때마다 이랬습니다. ‘이렇게 많이들 응원해주니 뭔들 못 이겨내겠는가’라고. 지금 대구와 같은 아픔을 겪는 곳에 필요한 건 바로 ‘함께하는 마음’이에요.”

순창=신지환 jhshin93@donga.com / 조건희 기자
#순창 장덕마을#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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