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잡으려 했는데 역부족”…김웅 차장검사 사의글에, 좌천된 간부들도 댓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5일 2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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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모를 당해가면서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으려 애썼는데 역부족이었다. 아예 들어보려고 하지를 않았다.”

문찬석 광주지검장(59)은 15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이렇게 쓰면서 “주어진 소임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역사 앞에 떳떳하다”고 했다. 전날 법무연수원 교수인 김웅 차장검사(50)가 국회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두고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사직 의사를 밝힌 글에 단 댓글이다. 지난해 7월까지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으로 근무한 문 지검장은 당시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이던 김 차장검사와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업무를 총괄했었다.

●현 정권 겨냥 수사하다 좌천된 간부들도 글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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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10시 31분 이프로스에 올라온 김 차장검사의 글에는 15일 오후 7시 현재 587개의 댓글이 달렸다. ‘살아 있는 권력’인 현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이끌다 13일자로 단행된 법무부의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좌천성 발령이 난 검사들도 글을 남겼다.

박찬호 제주지검장(54)은 “후배가 먼저 전하는 사직 소식을 접하니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착잡하다”면서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행로난(行路難)’ 중 일부를 함께 적었다. ‘행로난’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이 험하고 어렵다’는 의미로, 박 지검장은 ‘큰 바람이 물결을 가르는 때를 만나면 높은 돛을 바로 달고 넓은 바다를 건너겠다’는 부분을 인용했다. 박 지검장은 이번 검찰 고위 간부 인사 전까지 대검 공공수사부장으로 청와대의 2018년 지방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수사를 지휘했던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47)는 “(김 차장검사와) 함께 근무할 기회는 없었지만 오래 같이 근무한 마음”이라는 글을 남겼다.

한 초임 검사는 “이해가 불가능한 거대한 파도 앞에서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고 썼고 “한때의 적막을 견딜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던 옛글이 생간난다”고 한 검사도 있었다.

● 진보 성향 단체 내부서도 우려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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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양홍석 소장(42·변호사)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하기에 앞서 14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법무부의 검찰 직제 개편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실련은 논평을 통해 “검찰 개혁은 필요하지만 이번 개편안은 경제범죄 등 부패범죄 수사의 축소를 가져올 수 있어 우려스럽다”며 직제 개편안에 대한 재고를 촉구했다. 경실련은 “지금 법무부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는 검찰 개혁안은 부패범죄에 대한 올바른 검찰권 행사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검찰개혁이)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대안도 없이 이뤄진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수사권 조정 법안의 국회 통과와 관련해 일부 검사들이 사표를 낸 데 대해 “법 통과가 개혁의 일부라고 판단해 검찰 개혁에 동참하는 검사들도 있을 것”이라고 15일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검찰의 권한이 경찰로 넘어가는 부분에 대해 당연히 그런 반발이나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는 국민들의 요구가 높았던 안건이고 그래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처리한 것”이라고 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신동진 기자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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