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옥죄는 정부… 대학들 “손발 다 묶으면 경쟁력 어떻게 키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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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규제정책에 불만 커져

정부가 앞으로 사립대 적립금 공개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또 적립금 기금운용심의회에 교직원과 학생이 3분의 1 이상 참여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새로 시행된다. 현재는 적립액과 사용액만 공개하지만 앞으로는 사용 계획도 밝혀야 한다. 정부는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학들은 “16개 사립대 종합감사와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의 2025년 일반고 전환 등 일련의 압박성 정책에 이어 나온 ‘사학 통제의 종합판’”이라며 반발했다.

교육부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사학 혁신 추진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교육부는 사립학교법 등을 개정해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이 방안들을 시행할 방침이다.


○ 정부는 ‘공공성 강화’, 사학은 ‘자율성 제한’

교육부가 밝힌 이번 방안의 목표는 사학의 회계 투명성 강화와 족벌 경영 타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셀프 감사’ 논란을 줄이기 위해 회계 부정이 확인된 사립대는 교육부 장관이 최대 2년간 외부 회계감사 기관을 지정하기로 했다. 현재 총장으로 돼 있는 업무추진비 공개 대상은 이사장과 상임이사까지 확대한다. 이사회 회의록 공개 기간은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난다.

현재는 교육 당국의 시정요구 없이 임원 취임의 승인 취소를 할 수 있는 기준이 ‘학교법인의 재산을 횡령한 경우’라고만 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1000만 원 이상 배임·횡령’한 경우로 구체화된다. 한 사학 관계자는 “규정에 배임이 들어가면 연대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모든 임원 취임을 승인 취소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지금도 권한은 없고 책임만 묻는다며 임원 선임이 쉽지 않은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립 학교법인의 개방이사에 설립자와 그 친족, 해당 법인 임원 경력자나 학교장을 제외하는 방안도 시행한다. 학교법인 임원이나 설립자와 친족 관계에 있는 교직원 수도 공시한다. 개방이사는 기업의 사외이사처럼 학교법인 이사 중 일부를 외부 인사로 채워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교육부는 설립자 등으로 개방이사를 채우면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학 측은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관계자는 “현재도 이사장 직계 존비속이 이사회의 2분의 1을 못 넘게 돼 있는데 이것까지 도입되면 이중 규제가 된다”며 “설립자 등이 개방이사인 경우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사학의 반발을 의식한 듯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학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부터 현재까지 우리 교육을 지켜오고 발전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온 동시에 일부 사학의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비리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사학 통제를 이어온 탓에 반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사학에 필요한 대책은 안 나오고 두들기기만”

사학들은 현 정부 들어 사립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고 육성하는 정책은 없고 규제만 남발되고 있다며 자괴감을 토로했다. 사립대학총장협의회 관계자는 “혁신은 자율성이 전제가 돼야 하는데 이번 정책은 전부 통제”라며 “대학도 기업도 규제가 너무 많아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손발 다 묶어 놓고 외국 대학과 싸우라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령인구가 줄어서) 지방대는 다 문 닫아야 할 판인데 정말 필요한 대책은 안 나오고 두들기기만 한다. 내용을 보면 문제만 많다는 건데 우리가 그렇게 적폐인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대 관계자는 “국공립대의 감사 결과도 연구비 부정, 자녀 입학 비리 등 일부 사학과 유사한데 왜 사학만 잡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의 이번 방안이 일종의 ‘나비 효과’를 일으켜 사립대가 내년에 11년간 동결된 등록금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지난달 “내년부터 법적 인상률 범위 내에서 등록금 자율 책정권을 행사한다”는 결의서를 채택한 바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부가 국가장학금 지급을 가지고 압박해 등록금 인상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 몇십억 원은 포기해도 국가장학금을 못 받으면 학생들이 안 올 텐데 그건 매우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강동웅 기자
#사학#교육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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