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국 대응-국제여론 지켜보며 추가보복 품목-시기 결정할듯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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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2차 경제보복] 추가규제 없이 백색국가 제외 公布

일본 정부가 7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과 시행세칙을 공개하면서도 개별허가가 필요한 품목을 추가하지 않은 것은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정치적 목적의 보복이 아니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본이 이미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칼을 꺼내 든 만큼 언제든 한국의 다른 급소를 찌를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불시에 단행한 반도체 3개 소재 수출 규제 조치처럼 개별허가 품목 추가도 경제산업성 단독으로 시행세칙만 바꾸면 된다.

○ 최악의 수급대란 일단은 피했지만

이날 일본은 기존에 화이트리스트와 비(非)화이트리스트로 나눠 운영하던 수출 절차를 A, B, C, D 4개 그룹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B그룹에 넣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B그룹에는 발트 3국 등 16개국이 들어가 있다.

B그룹이 되면 전략물자는 원칙적으로 개별허가 대상이 된다. A그룹은 한 번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허가가 면제되고 기업이 전략물자를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B그룹 이하는 수출 기업에 대한 현장 검사가 의무화되고 수출 심사도 최장 90일이 걸린다.

한국을 수출관리상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7일 공포됐다. 이날 일본 관보 홈페이지에 실린 시행령(사진)에는 “대한민국을 삭제한다”는 내용과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 관보 홈페이지 캡처
한국을 수출관리상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7일 공포됐다. 이날 일본 관보 홈페이지에 실린 시행령(사진)에는 “대한민국을 삭제한다”는 내용과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 관보 홈페이지 캡처
다만 일본 정부가 명확히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하지 않은 소재·부품 장비는 예외 규정인 특별일반포괄허가에 따라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은 기업으로부터 현재처럼 수입이 가능하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시행세칙에서 한국으로 수출할 때 일반허가는 불허하되 특별일반포괄허가는 허용한다고 밝혔다.

특별일반포괄허가는 CP 기업에 한해 3년 단위로 포괄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CP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은 약 1300곳으로 추산된다. 다만 CP 인증 여부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개하게 돼 있다. 현재 공개된 CP 인증 기업은 632곳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이 일본의 CP 인증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박태성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국내 대기업은 거의 100% CP 인증을 받은 일본 공급처를 가지고 있지만 CP 기업과 거래하지 않는 중소기업은 수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CP 기업의 규모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중소기업이 원할 경우 공급처를 CP 기업으로 바꾸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 추가 수출 규제 불씨는 여전

일본 정부가 얼마든지 시행세칙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불안 요소다. 시행세칙 변경은 각의 의결이 필요 없다. 지난달 4일 일본이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소재를 개별허가 품목으로 돌릴 때도 시행세칙 변경을 통해 신속하게 규제에 나섰다. 일본이 한일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시행세칙의 내용을 변경·추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략물자관리원에 따르면 CP 인증을 받은 기업 중 일부는 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달 반도체 관련 3개 소재를 개별허가 품목에 포함한 뒤 단 1건도 한국으로 수출되지 않았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서 캐치올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된 점도 교역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캐치올은 전략물자가 아니어도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품의 수출을 제한하는 제도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캐치올 대상 품목은 약 74개로 티타늄합금, 탄소섬유, 대형 진공펌프 등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관보에 ‘목적 외 전용에 엄격하게 대처하겠다’는 표현을 넣은 만큼 일본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태풍 전야 재계 “공급처 다변화에 안간힘”

재계는 일단 최악의 수급대란은 피했다며 안도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1, 2차 협력사 가운데 CP 인증을 받지 못한 기업이 있는지, 있다면 대체재를 찾을 수 있는지를 파악 중이다”라고 말했다.

전자업체 관계자는 “일본이 당장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며 “일본 정부가 언제든 무역 장벽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산 소재·부품에 대해서는 공급처 다변화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칭가스 등 3개 소재 수입이 막힌 반도체업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수출 절차가 까다로워진 수준이지만 아예 수출 금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지난달 3개 소재의 수출 제한으로 한국에 시그널을 충분히 보냈기 때문에 당장 전면전으로 확대하진 않았다”며 “한국의 첨단 산업에 꼭 필요한 일부 품목을 추가로 제한할 경우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서동일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日 2차 경제보복#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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