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피아노-헬스, 다른 세상에 눈뜨니 게임 생각 사라져” 극심한 게임중독 20세 대학생의 탈출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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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간 물리적 차단 후 치료도… 게임 대체할 여가 활동 찾아보길

“성준(가명)이가 공부 열심히 하면 아빠가 살아 돌아오실 거야.”

대학생 이성준 씨(20)는 초등학교 3, 4학년 시절 어머니의 이런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학교와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책상에 앉아 눈에 불을 켜고 문제집을 풀었다. 학교에선 우등생으로 꼽혔고 전국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적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하늘나라에 있을 아빠가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2011년 겨울, 어머니는 이 씨에게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사실은 살아있지만 이혼한 뒤 이 씨를 보러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서운함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지금까지 뭘 위해 공부를 한 거지?’ 허탈감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때부터 이 씨는 공부와 담을 쌓았다.

학원 수업과 자습으로 이어진 방과 후 스케줄이 텅텅 비자 이 씨는 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온라인 전략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는 그의 ‘최애(최고 애정)’였다. 한번 마우스를 잡으면 8시간은 기본이었다. 이기면 기분이 좋아서, 아슬아슬하게 지면 아쉬워서 ‘마지막 한 판만 더’를 계속 외쳐댔다. 피곤해서 곯아떨어져도 게임을 충분히 한 것 같지 않았다.

이 씨의 일상은 빠르게 무너졌다. 수업이 있는 평일에도 오전 11시경 일어나 곧장 게임에 접속했다. 밥도 먹지 않고 이튿날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하다가 잠들곤 했다. 어머니와 다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머니가 애원하다시피 학교에 보내도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게임 전략을 구상했다. 시험지는 백지로 냈다. 이런 일상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반복됐다. 양쪽 시력은 1.2에서 0.7로 떨어졌다.

수업일수가 부족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없게 될 지경에 처하자 이 씨는 2013년 3월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에 입교했다. 4개월간 게임과 물리적으로 차단된 환경에서 치료를 받으며 수업일수를 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가까운 PC방이 걸어서 2시간 거리인 터라 이 씨의 생활은 산책과 명상으로 채워졌다. 마당에서 푸들과 놀거나 다른 입교생들과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게임 없는 일상은 상상도 못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게임 생각이 나지 않았다.

4개월의 교육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등산이나 절권도, 피아노 등 각종 취미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동호회를 찾아다녔다. 디딤센터 최경찬 치료팀장의 조언대로 게임을 대체할 여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씨는 웨이트트레이닝에 취미를 붙였다. 몸에 근육이 붙자 자신감도 커졌다. 그렇게 무사히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자기처럼 게임에 푹 빠진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는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이 씨는 지금도 간혹 온라인 게임을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게임보다 청소년지도사의 꿈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게임을 자제하기 어려워하는 청소년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얘들아, 너희가 사회에서 하고 싶은 역할이 생기면 언젠가는 게임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야. ‘다들 나처럼 살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둘러보면 그렇지 않아. 혹시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에 독립하고 싶니? 부모님이 PC방 갈 용돈 주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너희가 스스로 벌어서 PC방비라도 내려면 게임은 적당히 해야 해.”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게임중독#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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