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치는 낭비’라던 명나라, 산업발전 기회 놓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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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의 제국/우런수 지음·김의정 외 3인 옮김/596쪽·2만9000원·글항아리

“손승우는 연회를 한 번 베풀면 생물 1000여 마리를 죽이고, 이덕유는 국을 한 번 끓이면 2만 냥을 썼으며 채경은 메추라기를 먹는데 하루에 1000개는 잡았다.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망으로 잔인하게 살생함이 이처럼 극에 달했도다.”

중국 명나라 때의 수필집 ‘오잡조(五雜俎)’에는 당대 부유층의 음식 사치를 이같이 기록하고 있다. 단지 음식에만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 중엽 이후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 경제가 크게 발전하면서 중국 대륙 전체가 소비사회로 변모해갔다. 특히 명나라 말기에는 가마, 가구, 복식, 여행 등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사치문화가 등장했다.

저자는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소비를 즐긴 명·청 교체기의 사회상을 되살린다. 사실 명나라는 조선이 본보기로 삼을 만큼 유교에 충실한 국가였다. 검소와 절제를 근간으로 하는 ‘예교(禮敎)’ 제도의 틀 아래에서 신분에 따라 의식주 양식 전반에 제한을 가할 정도였다.

점차 하급 사대부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인들이 등장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변하기 시작한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뽐내기 위해 고관대작들만 타고 다니던 가마에 화려한 장식을 더해 길거리를 활보했고, 평민 사이에서조차 유행복을 따라 소비하는 문화가 팽배해졌다. 사대부는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학식을 자랑할 수 있는 서재용 가구를 사 모으는 등 신분을 초월해 ‘사치’가 명나라 말기를 설명하는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명 말의 사회상은 19세기 산업혁명 직전에 나타난 영국의 18세기 소비사회와 유사하다. 그러나 중국은 산업사회로 변모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미 상업시대로 접어든 영국은 사치를 ‘새로운 지식’으로 포용할 수 있었지만 농본사회였던 당대 중국은 재정 세수를 고려할 때 사치를 ‘낭비’라는 개념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관념의 차이가 현재까지 두 대륙의 역사를 바꿔놓은 갈림길이었다는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사치의 제국#우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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