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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의 악몽… 하룻밤 사이 축구장 735배 불 타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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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의 악몽… 하룻밤 사이 축구장 735배 불 타 사라져

고성=김자현 기자 , 박상준 기자, 강릉=신아형 기자입력 2019-04-06 03:00수정 2019-04-0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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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산불 재난사태 선포]화마 할퀴고 간 속초-강릉-고성-인제
폭탄 맞은 듯 5일 오전 강원 속초시 영랑동 한 폐차장의 폭탄을 맞은 듯한 모습. 전날 밤 강원 고성군에서 시작돼 강풍을 타고 번진 불이 폐기 예정 차량 100여 대를 새까맣게 태웠다. 차량은 대부분 철골 형체만 남았다. 속초=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4일 강원도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민가를 덮치면서 속초시와 강릉시, 고성군과 인제군 일원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전체 40여 가구 중 절반이 불에 타 없어진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은 큰불이 잡힌 5일 오후까지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러 집의 지붕이 주저앉았고 숯덩이처럼 새카맣게 탄 나무기둥이 길가에 나뒹굴었다. 장독대 위로 담벼락이 무너져 내리면서 깨진 장독 틈으로 누런 된장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마당 한편에는 불에 타 녹아내린 분홍색 어린이 자전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대피한 마을엔 적막이 흘렀다.

장천마을에서 나고 자란 엄기성 씨(47)는 터만 남은 집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엄 씨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부터 50년 넘게 살면서 두 형제를 키워주신 곳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농사지으며 이 집에서 우리를 키우셨다”고 했다.

바람이 향하는 방향에서 비껴 있어 불길을 피한 주민들은 피해를 입은 주민의 손을 붙잡고 함께 울었다. 이들은 “힘내라는 말도 안 나와, 어떡해” “뭘 좀 먹어야지, 살았으면 되는 거야”라는 말을 건네며 위로했다. 새카맣게 타버린 집 앞에는 이웃들이 가져다 놓은 빵과 물, 과자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불에 탄 마을 곳곳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마을 너머로는 파란 바다가 넘실거렸다. 하지만 화마가 훑고 지나간 자리는 흑백사진처럼 회색빛으로 바래 있었다.

속초시와 고성군 일대 관광 명소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한화리조트 안에 있는 6만3720m²(약 2만 평) 규모의 영화세트장은 거대한 잔해로 변했다. 드라마 ‘대조영’ 등 사극 촬영지로 인기가 많았던 곳이다. 바다를 마주한 풍차 모양 건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던 한 대형 커피전문점은 육각형 철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영랑호 리조트 인근 펜션과 창고 일부도 불에 탔다.

축사에 갇혀 있던 가축들도 화를 면치 못했다. 고성군 토성면에 사는 이모 씨(62)의 축사에는 소 두 마리가 네 다리를 뻗은 채 누워 있었다. 용케 살아남은 다른 소들은 등과 머리를 새카맣게 그을린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 씨는 “6월 출산 예정인 소가 죽을 것 같다. 어미도 그렇지만 배 속에 있는 새끼가 너무 불쌍하다”며 울먹였다. 주인이 함께 데려가지 못한 강아지는 목줄이 매인 채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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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의 한 물류창고는 불길에 휩싸이면서 지붕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창고에 있던 맥주병 1만여 개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엉겨 붙어 있었다. 속초터미널의 물류창고에도 불길이 옮겨 붙었다. 속초 전역 택배 물량의 절반 이상이 여기서 처리돼 택배 발송에 당분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5일 터미널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택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불이 옮겨 붙으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주유소 주변에는 밤새 소방관들이 사투를 벌인 흔적이 남아있었다. 속초시 노학동의 한 주유소와 폐차장 주변에는 밤새도록 뿌린 물들이 재와 뒤섞여 얼룩져 있었다. 또 연료통을 떼지 않은 폐차들이 급히 옮겨진 듯 도로변에 제멋대로 주차돼 있었다. 고성군에 있는 경동대 기숙사에도 불이 옮겨 붙을 뻔했다. 학교 뒷산을 집어삼킨 불이 건물로 번지기 직전에 진화된 듯 불에 탄 검은 땅과 타지 않은 땅의 경계가 뚜렷했다.

고성=김자현 zion37@donga.com·박상준 / 강릉=신아형 기자
#강원 동해안 대형산불#재난사태#속초#강릉#고성#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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