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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주는 사진’과 ‘찍는 사진’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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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주는 사진’과 ‘찍는 사진’ 사이에서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입력 2019-02-01 03:00수정 2019-02-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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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2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민노총은 참석하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면담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동계가 참여해 현안을 풀고 경제 안정에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였다. 본보와 몇몇 매체의 경우 생동감은 떨어지지만 무표정하게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택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 신문들은 양대 노총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실었다.

이때만 해도 대타협이 이뤄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사흘 후 민노총은 난상토론 끝에 대화기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청와대가 제공한 ‘서로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이 무색해졌고 국민은 실망했다. 청와대는 면담 전날 출입기자단에 비공개 행사라고 통보했다. 실제 80분간의 면담은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들의 접근이 차단된 채 진행됐다. 면담 후 청와대는 총 6장의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다. 방송사들은 동영상 없이 6장의 사진을 편집해 뉴스로 내보냈다.

다음 날 신문에 실린 사진 밑에는 ‘○○○ 기자’나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신 ‘청와대 제공’이라는 바이라인(기자 이름)이 실렸다. 대통령의 행사를 찍는 이들 중에는 신문사 사진기자 외에 대통령 전속 사진사가 있다. 이들은 대통령 공식 행사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까지 기록한다. 다만 청와대 입장에서 난처할 가능성이 있는 사진은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에도 전속 사진사가 있다. 애견과 달리기를 하거나 머리를 숙여 어린아이에게 머리를 만지게 한 버락 오바마의 모습은 ‘친근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양 노총 비공개 면담 사진은 전속 사진사가 찍었다. 출입 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에서 청와대 본관이나 대통령 관저로 가는 문은 닫혀 있다. 의전비서관실과 춘추관실의 사전 조치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대통령의 일정이 있더라도 허락이 없다면 누가 왔다갔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취재가 불가능하다. 만약 국회의장이 비공개로 노총 위원장을 만난다면 국회 본관으로 드나드는 모습이라도 찍을 수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날 면담을 비공개하기로 정한 게 청와대의 결정인지 아니면 노총의 요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노동 문제는 민감한 이슈인 데다 강건파와 온건파로 의견 대립이 심한 상황 때문에 청와대는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언론이 ‘화합보다는 갈등을 강조한 사진을 내보내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처럼 만든 이벤트를 언론이 부정적인 면만 부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접근을 차단했다고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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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중앙회 임원들과 송년회를 비공개로 열어 기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유족과의 면담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정치권력과 사회단체가 협상을 하는 과정은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 기자가 그날 청와대 면담을 기록하는 역할을 했다면 악수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문 대통령과 두 위원장의 무거운 어깨와 표정을 노렸을 것이다.

또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 보려는 청와대의 노력이 꼭 깔끔한 사진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고민하는 대통령과 위원장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더 많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사진이 해결의 에너지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설령 사진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역사, 갈등의 과정 그 자체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정치 사진의 인기가 점점 없어지는 이유는 뭘까? 사진기자들이 찍을 수 있는 정치 현실이 점점 세트 속에 갇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카메라는 훨훨 날아 더 많이 담고 싶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cut@donga.com
#문재인 대통령#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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