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선수 두 번 죽이는 대한체육회의 무뇌행정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월 22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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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사건의 가해자를 돌아오게 해주겠다.”

피해자가 이 말을 제3자로부터 들었다면, 이는 명백한 2차 피해다. 웬만한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을 대한체육회가 했다.

일련의 사건은 알려진 대로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직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에게 수년간 폭행을 당했고, 이를 참지 못해 진천선수촌을 이탈했다가 복귀했다. 이 기간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심석희에게 “조재범 코치가 돌아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애초 대한체육회는 이를 극구 부인했다. “심석희와 (이기흥) 회장님이 만난 적도 없고, 그런 말씀을 한 적도 없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22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전명규 교수의 입장은 달랐다. 당시 이 회장, 심석희와 동석했던 전 교수는 “(이기흥 회장이) ‘조재범 코치를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것과 유사한 얘기를 했다. 내가 (심)석희에게 ‘회장님이 보고를 잘못 받은 것 같다. 신경 쓰지 말고 다가올 경기에 전념하라’고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대한체육회가 오히려 피해자를 두 번 죽인 셈이다. 작은 불씨를 피하려다 거짓말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 회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고를 잘못 받았다면 체육계 현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고, 조 전 코치의 폭행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2차 가해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체육을 대표하는 기관이 오히려 선수가 눈치를 보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대한체육회를 믿지 못하겠다”는 선수들의 목소리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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