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완준]‘인민은 행복하다’는 중국, 여론은 행복하지 못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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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시는 5월부터 안전 규정을 위반한 옥외 광고판과 간판 철거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노후돼 안전 위험이 큰 옥외 광고판과 간판을 최대한 빨리 모두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이징의 중국 공산당원 사이에 돌고 있는 옥외 광고판 철거 배경은 ‘안전 위험’과는 거리가 있다.

베이징시에 301병원이라 불리는 중국인민해방군총병원이 있다.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이용하는 병원이다. 이 병원 옥상에 장쩌민(江澤民)의 서체를 이용해 만든 붉은 글씨의 ‘중국인민해방군총병원’ 대형 옥외 간판에 ‘장쩌민’이라는 이름까지 같이 있다. 이를 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화를 내며 철거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장쩌민은 시 주석 견제 세력의 대부다. 301병원 간판만 제거하면 노골적이다 싶었는지 베이징시 당 서기 차이치(蔡奇)가 베이징시 전역의 위법 광고판, 간판을 철거하면서 301병원 간판도 철거하겠다는 묘책을 냈다는 게 최근 베이징 공산당원들 사이에 설왕설래하는 소문이다. 차이치는 시 주석의 최측근이다. 소문이긴 하지만 적어도 공산당원들이 시 주석에게 집중되고 있는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준다.

오늘도 회사에 출근한 베이징의 공산당원들은 퇴근 전까지 하루 1시간씩 모여 시 주석의 통치이념인 치국이정(治國理政·이치와 정치로 나라를 다스린다)을 소리 내어 읽는다.

최근 시진핑 1인 체제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시 주석 개인숭배를 두드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시 주석 사상 선전구호, 포스터가 철거되고 있다고 기자가 말하자 한 중국인은 ‘치국이정 학습’을 들려주며 개인숭배가 약화된다는 데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시 주석을 향한 권력 집중은 강력한 여론 통제의 기초 위에 서 있다. 중국을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외교가 아니라 내치, 사회 안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 매체의 보도도 사회 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해 통제된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중국 관영 매체 보도는 늘 ‘삼단논법’”이라는 유머가 돈다. ①중국 지도자는 인민들을 위해 매우 바쁘다. ②그래서 중국 인민들은 항상 행복하다. ③그러나 해외 인민들은 재난, 사건사고 등으로 고통을 당한다.

그런데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건들이 중국이 추구해온 사회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영·유아에게 접종하는 백신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폭로된 ‘가짜 백신’ 사건에 대한 중국 민심의 분노는 중국 공산당과 정부를 직접 향한다.

중국 당국은 시 주석의 권력 안정과 이를 위한 사회 안정을 해치지 않기 위해 강력한 여론 통제로 대응한다. 가짜 백신 사건에 대해 정부가 이제까지 뭐 했느냐는 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댓글은 일찌감치 삭제됐다.

통제된 소셜미디어의 중국엔 아무 일 없고 인민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하지만 진짜 여론은 거의 유일하게 중국의 검열 대상에서 빠진 주중 미국대사관 웨이보 계정 등을 찾아 답답함을 분출한다. 이 계정엔 “여기 올린 댓글에서 민심을 읽을 수 있다” “(여론의) 자유를 체험한다”는 댓글이 붙는다. 이달 초순 공산당 최고 지도부와 전·현직 지도자들의 비공개 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열린다. 그들이 중국 민심의 분노를 권력 안정만을 위한 여론 통제가 아닌 방법으로 해결할 묘책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베이징#장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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