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의 악마’ 장착한 보이스피싱, 10년전 정보까지 언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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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5월 23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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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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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와서 선생님 예금을 인출하려고 했어요!”

지난해 12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70대 남성 A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전화 건 사람은 자신을 ‘○○은행 지점장’으로 소개했다. 그는 “대리인이라는 사람이 와서 돈을 빼내려다 들키자 도주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며 생생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잠시 후 경찰 수사관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사관은 “용의자가 또 범행을 시도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그러면서 ‘예금 보호’를 위해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A 씨의 통장에 있던 2700만 원이 몽땅 빠져나갔다.

더 이상 중국 옌벤(延邊) 사투리를 쓰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은 없다. 요즘은 기관 뿐 아니라 10년 전 정보까지 언급하며 ‘디테일’을 살리고 있다. 경찰과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 지킴이’ 웹사이트(phishing-keeper.fss.or.kr)를 통해 확보한 정부기관 사칭, 대출 빙자형 범행 수법 분석 결과를 23일 공개했다.

이들은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가며 구사한다. “최근 압수한 물품에서 경기 △△시에서 발급된 당신 명의의 ○○은행 XX은행 통장이 나왔다”며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정부정책자금 대출인데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로 접수하면 된다”처럼 어려운 단어를 섞어 쓰며 상대방을 혼란하게 만든다.

의심을 걷어내기 위한 방법도 교묘해졌다.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 및 비밀번호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범행 대상을 안심시킨 뒤 행동대원을 만나 돈을 건네도록 하거나 직접 송금을 유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출 빙자형 범죄의 경우 “원래대로라면 승인이 어려운데 내가 조건부 승인으로 바꿨다”는 식으로 신뢰감 형성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후 “기존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 수백만 원을 미리 입금해달라”며 특정 계좌번호로 입금을 유도해 돈을 빼앗는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면 일단 전화를 끊고, 해당 기관에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112에 신고하고 입금 은행에 지급 정지를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특징 (자료: 경찰청, 금융감독원)

▽‘디테일’ 살린다
“10년 전 ○○은행에서 근무한 김XX 씨 아세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인데 정부정책자금 필요하시죠?”

▽‘특별대우’ 강조한다
“대출 어려운데 내가 노력해 조건부 승인 받았다”
“정상진행 힘들지만 편법으로 도와 드릴게요”

▽‘안전’ 앞세운다
“임시 아이핀으로 안전하게 본인 확인한다”
“개인정보는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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