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vs 케이로스 날선 신경전 “복수의 칼 갈았다” vs “한국팀 연구 많이 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31일 05시 45분


신태용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왼쪽)과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이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하루 앞둔 8월 30일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두 감독 모두 강한 승리 자신감을 드러냈다. 파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신태용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왼쪽)과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이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하루 앞둔 8월 30일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두 감독 모두 강한 승리 자신감을 드러냈다. 파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신태용 감독 “이란, 10일된 우리팀 모른다”
여유만만 케이로스 쇼자에이 질문엔 급흥분
신 감독 “공은 둥글다” 멘트로 분위기 정리


능구렁이와 여우가 만났다. 한국판 페르시아 전투에서다.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을 하루 앞둔 8월 30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한국, 이란 사령탑이 30분 시차를 두고 공식 인터뷰에 참석했다. 겉으로는 평온했고, 미소가 넘쳤다. 종종 터지는 농담에 여유마저 느껴졌다. 물론 속내는 달랐다. 한국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47) 감독과 이란대표팀 카를로스 케이로스(64·포르투갈) 감독은 뼈 있는 한 마디씩 던지며 다가올 경기가 전쟁임을 실감케 했다.

꼭 이겨야 하는 자와 자존심만 지키면 되는 자. 그런데 이렇게 쉽게 단순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란도 무패·무실점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란은 최근 한국에 4연승을 하면서 역대전적 13승7무9패로 크게 앞서 나갔다. 케이로스 감독은 “아직 배가 고프다”는 2002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 감독의 명언까지 사용했다.

8월 21일 강화훈련을 시작했고, 유럽파가 집결한 8월 28일부터 ‘완전체 훈련’을 이어온 신 감독도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부상자 리스트에 오른 황희찬(21·잘츠부르크)∼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의 출전여부나 전술적인 색채 관련 물음에는 “양해를 구한다. 성격상 전부 공개하고 함께 고민하고 싶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인 지금은 협조를 부탁한다”는 짧은 답을 했으나 “우리 국민, 팬들이 더욱 잘 안다. 월드컵에 한발 더 다가서고, 최근 밀린 전적을 되갚아주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두 사령탑은 서로에게 존중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줬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이란이 8월 26일 입국한 뒤 현장 인터뷰로, 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간접 설전을 펼쳤지만 이날은 평소와 달랐다. 오히려 신 감독은 “(격앙된)상대 감독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선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역할이고,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카운트어택, 선 수비-후 역습이 좋다. 특히 (감독과) 오래 호흡하며 생긴 끈끈함이 있다. 벤치 철학을 선수들이 잘 따른다. 신체조건도 좋고 세트피스도 위협적”이라며 이란을 한껏 높여줬다.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우리 벤치를 향해 ‘주먹감자’를 흔들어 비호감이 된 케이로스 감독 역시 “한국은 우수한 화력을 보유했다. 이렇게 좋은 상대와 경기를 꾸준히 해야 우리 실력을 키울 수 있다. 그간의 정황을 살필 때 한국은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졌을 것”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팀 자체만으로 보면 이란이 한수 위다. 케이로스 감독은 2011년 4월부터 이란대표팀을 이끌어왔다. 이란축구계 행정이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틈날 때마다 “사퇴 하겠다”고 으름장을 늘어놓고도 지휘봉을 내려놓진 않았다. 신 감독도 이를 인정한다. 그는 7월 부임해 고작 열흘 정도 태극전사들을 지휘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승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다. 신 감독은 “이란이 우리의 10일을 잘 모르지만 우린 이란의 7년을 잘 안다”는 촌철살인의 코멘트를 남겼다. 이에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 감독 관련 정보는 많지 않아도 그가 밟아온 과정과 팀 컬러를 연구했다”고 받아쳤다. 정확한 언급은 피했으나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과 올해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의 ‘연령별 신태용호’를 지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소 딱딱한 질문이 계속되자 “한국 미디어가 너무 긴장한 것 같다. 축구는 축구다. 여유를 갖자”고 한껏 웃던 케이로스 감독이지만 마지막에는 미소를 잃어야 했다. 한 외신기자가 이란의 가장 민감한 상처를 찔렀다.

그리스 소속 팀이 이스라엘 클럽과 치른 유럽 대항전에 나섰다가 정치권의 퇴출 압력을 받은 캡틴 마수드 쇼자에이(31)가 왜 빠졌는지 묻자 금세 표정이 굳었다. 달변가는 차갑게 식은 채 “그건 전 세계 언론이 계속 보도하지 않았느냐”며 한껏 흥분했다. “공은 둥글고 축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도 선수들을 믿는다. 또 우리는 틀림없이 할 수 있다고 믿겠다”며 자리를 떠난 신 감독은 바다처럼 깊고 평온했다.

파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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