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이태진]덕종 어보는 모조품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의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 어보’전에 나온 ‘덕종어보’가 논란이다. 1924년 4월 9일 밤 종묘 영녕전 제10실의 덕종, 예종의 어보가 없어졌다. 최근 한 언론은 이 덕종어보가 매국노 이완용의 둘째 아들 이항구가 ‘짝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전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보도하였다. 종묘일기에 보더라도 1924년 5월 6일 새로 만든 어보를 봉안할 때 순종이 임어한 기록은 없고, 예식과장 이항구가 와서 봉안한 사실을 증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고궁박물관 측은 이항구는 어디까지나 이왕직 예식과장으로서 ‘재(再)제조’의 일을 담당하여 봉안한 것으로 이는 곧 왕실의 공식 처사로 봐야 한다고 답하였다.

이 도난 사고에 대해 당시 동아일보는 세 차례 보도 기사를 냈다. 1924년 4월 12일자 ‘종묘전내에 의외의 사변’에서 도난 사실을 처음 알렸다. 두 번째 1924년 4월 13일자 ‘종묘내의 절도는 500년래 처음 있는 일’에서는 관련 몇 가지 보도 가운데 전사(典祀) 정만조(鄭萬朝)의 소감이 눈에 띈다.

그는 “매우 황송한 일이지만 자기는 병중에 있어 도무지 어떻게 된지를 모르며 만일 찾지 못할 때는 다시 만들어 안치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고 발언하였다. 정만조는 총독부에 많이 협력한 인물이지만 왕조의 전례와 고사에 매우 밝은 인물이다. 이로 보면 ‘재제조’는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짝퉁’설은 다시 ‘모조품’설로 바뀌었지만 이것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친일 행위와 관련해 총독부 간여설도 나왔지만 종묘 의례 행사 관련 분야에 총독부가 간여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15일자 보도는 ‘이항구의 폭언―이 무슨 무엄한 말이냐’는 제목을 달았다. 골프 놀이 보도에 화가 난 이항구가 기자들 앞에서 “어보란 것이 당장 나라에서 쓰이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쳐도 몇 푼 안 되는 것인데 그런 것 잃었다고 골프도 못 치느냐. 그렇다면 집에서 술 먹거나 계집다리고 노는 것도 못하겠다”고 폭언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면 이항구는 짝퉁이든 모조든 도난품 채우기 자체에 관심을 가질 위인이 아니다. 담당 과에서 새로 만든 것을 과장으로서 마지못해 봉안에 임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덕종어보는 공식적 재제조품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덕종어보#역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