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이세형]미국과 이란, ‘아프간 新격돌’ 임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세형 국제부 기자
2001년 ‘9·11테러’의 기획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이며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반군 조직 탈레반의 거점으로 악명을 떨쳐온 아프가니스탄(아프간)에서 미국은 16년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9·11테러 직후 미국이 주도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다. 미군 2403명이 사망했다. 전쟁비용은 7830억 달러(약 885조 원)∼8410억 달러(약 951조 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비록 실질적인 영향력이 수도 카불 지역에 국한돼 있어 ‘카불정권’으로 불리지만 탈레반이 지배해 온 아프간에 친미 정권이 세워졌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미국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해 온 또 다른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대표적인 반미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바로 이란이다. 시아파 맹주이며 동시에 중동의 핵심 플레이어인 이란은 지리·문화적으로 아프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없는 관계다. 두 나라는 약 8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프간 인구(약 3300만 명)의 절반 정도가 페르시아어 계통 언어인 ‘다리어’를 쓴다.

이란과 가까운 아프간 서부 지역은 아예 ‘작은 이란’으로도 불린다. 이란산 식료품과 공산품이 넘치고 패션도 ‘이란 스타일’이 인기다. 공무원과 경찰 중에도 친이란 성향 인사가 많다. 아프간인의 ‘이란 러시(rush)’ 역사도 길다. 1979∼1988년 옛 소련의 침공을 계기로 약 300만 명이 아프간을 떠나 이란에 정착했다.

아프간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행사 정점에는 ‘탈레반 지원’이 있다. 물론 이란은 자신들이 탈레반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한다. 실제로 탈레반과 이란은 종파가 다르고 과거에는 적대적인 관계였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 등 해외 언론과 중동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란은 탈레반과 최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대가 테러와의 전쟁을 진행하며 아프간에 주둔하고 영향력을 키우자 이란은 탈레반을 적이 아닌 대리전(proxy war)을 치러주는 조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서방의 군대가 바로 옆 이웃 나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못마땅하지만 직접 개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이란에 탈레반은 더욱 유용하게 느껴졌다.

이란은 탈레반에 자금, 무기, 석유 등을 꾸준히 제공했다. 군사훈련과 정보도 지원했다. 궁극적으로는 아프간 주둔 미군과 나토군이 탈레반과의 전쟁에 지쳐 철수하는 것을 희망했다. 이란의 탈레반 지원 배경에는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 중 이슬람국가(IS)보다는 탈레반이 다루기가 더 용이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아프간에서 IS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보다는 탈레반 중심의 현 상태를 더 나은 조건으로 봤다는 것이다. 탈레반을 적절히 통제해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인 아프간에서 만들어진 마약이 자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는 데도 이란은 관심이 많았다.

이 같은 이란과 탈레반의 관계를 감안할 때 미국의 적극적인 아프간전쟁 개입은 미-이란 갈등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최근 아프간에 대한 대규모 미군 추가 파병과 탈레반에 대한 공격 강화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대선 때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한 이란 핵 협상과 대(對)이란 화해 분위기 조성을 ‘최악의 협상’으로 표현했을 만큼 이란에 대해 삐딱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이란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이어왔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아프간, 아제르바이잔, 이라크 같은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의 큰 목적 중 하나는 이란 견제”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간에 대한 개입 의지를 강조하면서 이란은 파키스탄(탈레반을 보호한다고 트럼프가 직접 비난)만큼은 아니어도 현 사태를 심각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아프간에서 미-이란 갈등이 커지면 그동안 안정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해온 ‘온건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이란의 강경파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이란의 변화가 어려워지고 중동의 긴장도 고조될 수 있다.

아직 ‘트럼프표’ 아프간 개입 조치는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정세 변화가 아프간과 이란, 나아가 중동과 서남아시아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국을 비롯해 경제, 외교안보적으로 대외 변화에 민감한 나라들은 긴장하고 지켜봐야 할 이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아프간의 탈레반을 대하는 방식에서 또 다른 문제 국가인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을 가늠할 수 있어 더욱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아프간#이란 탈레반 지원#미국 아프간 전쟁 개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