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서동일]3년 전 택시기사들의 약속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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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부 기자
서동일 산업부 기자
15일 오후 11시 반,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택시 승차 거부를 당했다. ‘예약’ 불이 켜진 택시가 목적지를 듣고 가버리길 몇 번, 빈차가 지나가기에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일단 탔다. (경기 고양시) 삼송으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기사가 되물었다. “(서울 강남구)삼성요?” “아니 삼송요” “이쪽은 강남 가는 방향이잖아요”라는 짜증 섞인 답이 돌아왔다.

3년 전 8월 택시업계는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Uber)의 한국 진출로 시끄러웠다. 전국택시노조와 서울개인택시조합 소속 기사 3000여 명이 서울시청 앞에 모여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도 열었다. 당시 택시업계는 “불법인 우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버가 던진 숙제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승차 거부와 난폭 운전, 흡연 등이 없는 안전하고 친절한 운행을 통해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택시 서비스의 질은 좋아졌을까.

우버의 편리한 서비스가 이슈가 되자 당시 국토교통부,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 등은 이에 대응한다며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전국 콜택시 사업자를 통합하는 ‘택시 통합 콜센터 구축사업’을 발전시켜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60억 원 넘게 쏟아 부은 이 사업은 앱도 못 만들어 보고 폐지됐다. 통합번호 ‘1333’으로 전화를 걸면 지역 콜센터로 연결해주는 단순 연결 서비스만 하다 끝났다. 당시 TF에 참여했던 A 씨는 “내가 써 봐도 불편해서 못 쓸 정도였다”고 말했다.

장거리를 갈 때 미터기를 끄고 웃돈을 요구하는 사례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버는 3년 전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으면 내릴 때 알아서 결제가 되는 앱미터기 방식을 썼다. 결제 과정이 단순화될 뿐만 아니라 미터기를 운전사가 조작하지 않기 때문에 요금 관련 분쟁도 막을 수 있다. 카카오택시를 운영하는 카카오는 앱미터기 개발을 마쳤지만 아직 일반 택시에는 적용을 못하고 있다. 택시는 정해진 기관에서 검증받은 미터기만 사용할 수 있다는 자동차관리법 때문이다.

낡은 규제와 택시업계의 이기심 때문에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택시 서비스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예약’이라고 표시된 택시가 행선지를 물어본 뒤 도망치듯 액셀을 밟는다. 담배 냄새로 찌든 택시가 다니고, 가까운 거리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늦은 밤 택시를 잡아 본 사람들이 겪는 불편이 얼마나 컸으면 ‘콜 버스’라는 심야 운행서비스까지 생겼을까.

최근에는 반려동물 전용 이동서비스가 불법 논란에 휩싸였다. 이른바 ‘펫택시(Pet+Taxi)’다. 기본요금은 8000∼1만2000원, 택시 요금의 3배에 이르는 액수지만 인기가 많다. 버스나 택시기사의 승차 거부나 눈치를 받지 않고 반려동물과 이동할 수 있어서다.

택시업계는 이에 대해 우버 때처럼 또 반발하고 있다.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사람을 태워서 돈을 받고 있으니 불법이라는 주장을 편다.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시도는 혁신이 아닌 불법이니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 서비스에 대한 불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불법 논란에 휩싸인 우버는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접었다. 결과적으로 법적 테두리 안에 있던 택시업계가 이겼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시장의 큰 인기를 끈 혁신적인 서비스는 대부분 법적 테두리 안팎이 모호한 곳에서 탄생했다. 택시업계가 언제까지 법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없는 이유다. 앞으로의 승부에서 택시업계가 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3년 전 약속을 지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뿐이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
#택시 승차 거부#택시#우버#펫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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