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카리스마’로 백악관 군기잡는 켈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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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도 들지 않고 중립유지… 혼란 수습엔 강력한 영향력 발휘
FT “위기탈출 관건은 트럼프”

이달 8일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71)이 기자들 앞에서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즉흥적으로 내뱉고 있을 때 ‘백악관 실세’ 존 켈리 비서실장(67·사진)은 말없이 대통령 곁에 앉아 있었다. 막말 파장을 우려해 대통령에게 외교적 수사로 잘 다듬어진 원고를 읽도록 조언했을 법했는데 말이다. 다른 실세 관료였다면 ‘대통령의 진의를 설명하겠다’며 기자들에게 백브리핑을 자처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이런 일화를 소개하며 “켈리 실장은 북한 위기 국면 속에서조차 정치와 거리를 두는 실세”라고 해석했다. 전쟁 위기를 숱하게 겪어본 해병대장 출신으로서 할 말이 많겠지만, 대통령에게 함부로 조언하지 않고 논쟁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전언이다. WP는 “켈리 실장의 비당파적인 특성은 백악관 참모들 중 유일무이하다. 대다수 참모는 ‘정치적인 동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켈리 실장의 ‘편들지 않기’ 원칙은 오랜 그의 소신에서 비롯됐다. 그의 지인들은 WP에 “켈리 실장은 정치에 대해 오래 말하길 싫어한다”고 전했다. 정치 얘기를 할 시간에 실무를 논하길 원했다는 얘기다. 실제 주변 참모들은 켈리 실장이 참모들의 출신과 배경에 무심한 점을 의아하게 여길 정도다.

켈리 실장은 비서실장으로서 웨스트윙 내부 혼란을 정비할 때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취임 직후 앤서니 스캐러무치 공보국장과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 중 실세였던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를 퇴출시킨 주역이다. 최근에는 백악관 관료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군기 잡기에 나서고 있던 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는 취임 5일째 되는 날 백악관 참모 200명을 불러 놓고 정보를 유출하거나 대통령 눈에 들려는 행동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 결정권은 실무자들에게 넘기는 스타일이다. 조세 정책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그는 ‘나는 세금을 내는 사람이라 세금 내길 싫어한다’는 말 외엔 어떤 의견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복수의 관료들이 WP에 전했다. 실장을 통해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싶었던 관료들은 허탈해했다. 켈리 실장은 회의 중 목소리를 내지 않고 실무자들의 말을 경청했다. 실무자들 토론에서 결론이 나오면 그 내용을 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WP는 켈리 실장의 비당파적 리더십이 야권을 설득해 정책을 관철해낼 동력을 낳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백악관 위기의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인데, 대통령의 관행이 계속되는 한 사태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켈리#트럼프#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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