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대학을 바꾼다/고려대학교]낡은 교육제도 모두 타파… 21세기 ‘개척하는 지성’ 양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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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는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앞장서서 이끌어왔다. 민족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웠던 1905년,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은 ‘교육구국’이란 이념 아래 태어났다.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법률학과 이재학이 기둥이 됐다. 이 두 학문은 광복 이후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인재들을 키워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학은 이렇게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고려대의 건학이념인 교육구국은 지금도 유효한 가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문명사적 대전환기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우리 사회 곳곳은 여전히 낡은 제도와 관념에 젖어 있다. 젊은 세대는 활력을 잃었다. 경제는 침체를 못 벗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누적된 모순을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채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염재호 총장
염재호 총장
고려대는 ‘대학이 바뀌면 사회와 국가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변화를 실천하는 비전은 ‘개척하는 지성’이다. 고려대는 거친 파도를 현명하게 활용해 목적지에 다다르는 방법을 알아내는 인재를 키우려고 한다. 격랑에 휩쓸려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학생은 고려대의 인재상이 아니다.

이를 위해 먼저 교육에 스며 있는 낡은 제도를 타파했다. 2015년 시험감독 출석확인 상대평가를 없애는 ‘3무정책’을 도입했다. 학생을 스펙관리와 성적경쟁에 옭아매지 말자는 취지였다. 학생들은 자율 신뢰 책임의 원칙 아래 스스로 학습을 실현해 낼 수 있는 능동적인 자세를 키워가고 있다. 염재호 총장은 “고려대 학생의 경쟁 상대는 옆자리에 앉은 학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는 성적우수 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은 ‘정의장학금’을 통해 아르바이트 대신 학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등록금 외에 매달 생활비까지 추가 지급받는 덕분이다. 경제적 장애가 학업의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는 게 장학금 개편의 핵심이다.

학생들은 ‘진리장학금’을 통해 더 넓은 세상에 마음껏 도전한다. 학생이 스스로 도전 또는 체험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제안하면 장학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장학금을 지원한다. 중국 일본 라틴아메리카 북유럽 등에 갈 수 있는 ‘KU-글로벌리더십프로그램’ 장학금이 대표적인 예다. 학생들은 항공료와 해당 국가 학교 기숙사비, 수업료 등을 지원받는다. 염 총장은 “장학금은 배움을 장려하는 본연의 목적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며 “고려대의 장학제도 개편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고려대는 2018학년도 입시부터 논술전형을 폐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한다. 공교육을 바로 세워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논술시험은 사교육 시장을 확대하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공교육이 권위를 회복하면 사교육 시장의 과잉 성장을 막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가계 가처분 소득 잠식이나 내수 경기 불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고려대는 입시학원에서 맞춤형으로 훈련된 학생이 아니라 잠재력을 갖춘 원석을 직접 골라낼 방침이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입학처를 인재발굴처로 개편하기도 했다.

오늘의 고려대는 미래를 헤쳐 나갈 글로벌 지성을 길러내고 있다. 과거 보성전문이 민족의 앞날을 밝힐 등불을 켰던 것처럼 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앞으로 100년은 지난 100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될 것이다. 염 총장은 “21세기형 인재는 문제해결 능력과 문제탐색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무한 경쟁과 스펙 쌓기로는 절대 그런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려대는 이미 낡은 교육과 작별했다. 새로운 교육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성장 동력을 찾아낼 의지를 다지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고려대학교#4차산업혁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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