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발레 대국 러시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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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대국 러시아에 와 있습니다. 기온이 영하 7도에서 영상 3도 정도이니 서울보다 딱히 춥지는 않군요. 제 성장기에는 공산주의의 총본산이자 ‘동토의 왕국’으로 알려진 음험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곳이었고, 더 자라서는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들로 인해 훨씬 친근한 인상으로 다가온 곳입니다. ‘동서 진영의 화해가 이뤄져서 나도 차이콥스키의 나라를 가볼 수 있는 때가 올까’라고 막연히 상상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일요일에는 소련 시절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작곡가였던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을 볼쇼이 대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소련을 대표하는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화려하고도 효과 높은 안무와 비장미를 한껏 높이는 의상, 황후 역을 맡은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열연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습니다. 자하로바는 ‘발레의 황후(차리나)’라는 별명으로 러시아인들에게 사랑받는 발레리나이기도 합니다.

오늘(28일)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역시 소비에트 발레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출신 작곡가 멜리코프의 ‘사랑의 전설’을 관람할 예정입니다. 역시 그리고로비치 안무이며, 20세기 발레를 대표하는 명작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소비에트가 화려한 예술의 대명사인 발레에서 세계를 압도하게 되었을까요?

그 첫 단추를 끼운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그중에서도 첫 작품인 ‘백조의 호수’(1877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아련한 감상주의가 빛을 발하는 이 작품은 이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으로 이어지면서 러시아가 프랑스를 압도하는 세계 최고의 발레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3월 4일은 ‘백조의 호수’가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 지 140년이 되는 날이로군요. 호수는 아니지만 호수만큼 넓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을 바라보며, ‘백조의 호수’ 대표 선율인 ‘정경’ 장면의 애틋한 오보에 선율을 떠올려 봅니다. 강은 얼어 있지만, 곧 봄 햇살이 강물을 녹이겠죠.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차이콥스키#발레#유리 그리고로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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