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국가들, 북한 거부감 확산…“北대사 발언, 심각한 모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22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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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의 유력한 배후 세력으로 북한이 지목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을 조작으로 몰고 가려는 북한의 움직임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리까지 나서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냉전 때에도 가까웠던 말레이시아-북한의 외교 관계가 최대 위기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성 용의자 2명 중 한 명이 자국 여성으로 드러난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 내 북한 식당이 북한 정찰총국의 근거지로 이용됐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유엔 제재로 국제적 고립에 빠진 북한이 우호적인 활동무대였던 동남아에서마저 입지가 줄어들면 외교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아니파 아만 외교장관은 20일(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의 주장에 대해 “심각한 모욕이며 망상과 거짓, 남을 속이기 위한 반쪽 사실에 근거한 발언”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고 말레이시아 중국계 신문 중국보(中國報)가 21일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소환 명령을 받은 모하맛 니잔 북한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는 이날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기자들과 만나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과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한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이 북한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북한과의 비자면제 협정을 철회하라”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무하맛 푸아드 오스만 북부말레이시아대 교수는 이날 현지 언론 뉴스레이츠타임스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가 암살에 적합한 장소란 평가까지 받게 될 상황”이라며 비자면제 협정 재검토를 요구했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연구소(ISIS) 스티븐 웡 부소장은 “북한 배후가 확인되면 양국 국민의 이동 문제뿐 아니라 북한과의 외교 관계 전반이 재검토 대상이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축구연맹(FAM)은 다음 달 28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한과의 아시안컵 예선전 경기 장소를 제3국으로 변경해 달라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측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정남 피살 전 분위기와 180도 바뀐 것이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NK뉴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김정남 피살 나흘 전인 9일 박물관과 도서관 소장자료, 예술작품, 문화재 전반의 ‘문화 교류 확대’와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파장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로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 영자지 더스타는 이날 “인도네시아 경찰이 인도네시아 외교부와 함께 수도 자카르타 내 북한 식당이 북한 스파이들의 근거지로 이용됐는지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찰 측은 “우리는 먼저 그들(북한 식당)의 사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식당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움직임은 자국 여성을 김정남 암살에 이용한 북한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싱가포르 매체 아시아원은 “자카르타 등의 북한 식당들은 북한 정찰총국 인도네시아 지부의 일부”라고 전했다.

태국 언론 방콕포스트는 21일 ‘용납할 수 없는 북한’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다시 한 번 동남아에서 긴장과 분노를 유발했다”며 “이번에는 말레이시아에 피를 뿌렸고 김정남 살해는 단순한 외교 사안을 초월한 사태”라고 비판했다. 방콕포스트는 “김씨 왕조의 범죄가 해외까지 뻗쳐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이 김씨 3대 세습자의 살인범들이 자행한 더럽고 피비린내 나고 야만적인 범죄의 뒤처리를 해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범법자인 북한이 아직 문명국가로 대접받고 있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놀란다. 태국과 아세안이 북한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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