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백선생’? 아이스하키에도 ‘백선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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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L 스타 출신 백지선 대표팀 감독

백지선 한국 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이 3일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대표팀을 조직력이 강한 ‘원팀’으로 만들기 위해 선수들과 하나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스틱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출신 백 감독은 대표팀을 기량뿐만 아니라 정신력에서도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고양=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백지선 한국 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이 3일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대표팀을 조직력이 강한 ‘원팀’으로 만들기 위해 선수들과 하나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스틱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출신 백 감독은 대표팀을 기량뿐만 아니라 정신력에서도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고양=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평창 올림픽에서 캐나다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들이 불참하더라도 한국에 162-1로 이긴다.”

지난해 NHL 관련 해외의 유명 블로거가 쓴 글이다. 이 얘기를 하자 백지선 감독(50)은 눈을 부릅떴다.

“신경 안 써요 ! 우리 선수들은 늘 최선을 다할 겁니다. 굳이 우리를 다른 팀과 비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팀이든 ‘컨트롤’이 가능하니까요.”

강한 어조였다. 대화 시작부터 승부욕이 발동한 듯했다. 세계 최고의 아이스하키 무대인 NHL 스타 출신인 백 감독의 눈빛은 강렬했다.

해외에서 짐 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는 동양인 최초로 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들어올린 주인공이다. 캐나다 교포인 그는 미국의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뛰던 1990∼1991, 1991∼1992시즌 두 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동양인 최초의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로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뛰던 1990∼1991시즌에 우승을 차지한 뒤 스탠리컵을 들고 환호하고 있는 백지선 한국 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첫번째 사진). 그는 2014년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매일 작전판과 씨름하고 있다. 동아일보DB·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동양인 최초의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로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뛰던 1990∼1991시즌에 우승을 차지한 뒤 스탠리컵을 들고 환호하고 있는 백지선 한국 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첫번째 사진). 그는 2014년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매일 작전판과 씨름하고 있다. 동아일보DB·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캐나다 국적을 지니고 있는 그가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몇 년 전이다. 2014년 여름 어느 날,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절박한 심정으로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을 수소문했다. 아이스하키는 겨울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이다. 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한국과 세계 수준의 격차를 인정한 협회는 개최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리고 싶었다. 핏줄 때문이었을까. 협회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을 통해 감독 후보를 수소문할 때 그는 부모의 나라를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 수줍은 소년은 안 돼!

“당신은 한국 국가대표입니다. 매일 생각하세요. 지금 우선순위는 국가라고….”

백 감독이 대표팀 첫 미팅 때 가장 먼저 한 말이다. 국제대회만 나가면 대패의 쓴맛을 봐온 선수들에게는 태극마크가 부담스러운 게 당연했다. 경기에서 동료를 위해 애써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조직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 때문에 백 감독은 기술적 분석보다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수줍은 소년(Shy Boy). 안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선수들이 스펀지예요.”

부임 2년 7개월째 접어든 백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스케이팅과 기본기를 팀을 위해 활용하라는 주문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에서 ‘스펀지’라는 표현을 썼다.

백 감독이 이끈 변화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2016 IIHF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1 그룹A에서는 34년간 1승도 못 거두고 상대 전적 1무 19패를 기록했던 일본을 3-0으로 제압하고 사상 첫 일본전 승리를 거두는 역사를 썼다. 백 감독은 “나부터 무척 흥분했다. 일본을 이기고 나서 선수들이 ‘하키만 생각하면 모든 게 풀린다’고 믿게 됐다. 삿포로 아시아경기(19일 개막) 아이스하키에서 금메달을 놓고 격돌하는 일본전은 한국 아이스하키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기가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 평창 올림픽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끝이 아니라 시작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빈 공백을 메우는 것 같아요. 한국 아이스하키는 ‘베이비 스텝’ 단계지만 점차 넓은 보폭을 배우면서 어른이 될 겁니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를 점차 세계 랭킹 10위권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백 감독은 “아이스하키 강국의 전술을 아무 생각 없이 복사해 우리 팀에 입히는 일은 절대 없다”며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원 팀’ 만들기를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부적으로 공격, 수비 지역과 이 사이 중립 지역 내에서 골리(골키퍼)를 제외한 5명이 순식간에 상대의 플레이 공간을 줄이면서 3피리어드 60분 내내 수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백지선표’ 하키의 키워드다. 체격이나 힘으로는 일대일로 유럽과 미국, 캐나다 선수들을 상대하기 벅차기 때문에 동료를 활용해 수적 우위 상황을 잘 만드는 선수들을 중용하는 쪽으로 팀 운영의 포인트로 잡았다.

평창 올림픽에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하는 남자 대표팀은 19일 개막하는 삿포로 아시아경기에서 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한다. 평창 올림픽에 나오지 못하는 카자흐스탄(22일 경기)과 일본(24일 경기)이 한국을 상대로 강한 승부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 감독은 “선수들 눈높이가 높아졌다. 무조건 금메달이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아시아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 그 기세를 평창으로 이어가겠다는 게 백 감독의 생각이다. 대표팀은 평창 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캐나다와 체코(6위), 스위스(7위)와 조별리그 A조에서 예선을 치른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올림픽이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지금은 우리를 잘 모르시겠지만 올림픽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요리로 유명한 ‘백 선생’처럼 한국 선수들 본연의 맛을 살리겠다는 백 감독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백지선 감독#짐 팩#아이스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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