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수, 국가안보 지키되 새 지평 열어야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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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그제 보수 정치권을 향해 “나를 보수 대통합의 수단, 보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한 데 이어 어제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계속 자기 자신을 진화시켜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치 교체’를 화두로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그 정치에 발부리가 걸려 넘어진 사람이,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임하다 정체성 논란에 시달렸던 사람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람이 겪은 20일간의 정치권 체험담이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보수정부 10년간 한국의 보수세력은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며 부패의 먹이사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설득하기는커녕 사익을 위해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강압적 무릎 꿇리기까지 서슴지 않았던 모습이 바로 작금의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다. 그러다가 정권 연장이 불리해지니까 반 전 총장에게 보수의 프레임을 씌워 ‘보수 대 진보’의 진영 논리에 따른 표 결집을 시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보수를 자처했던 정치 지도자라면 자신이 진정 보수였는지, 기득권에만 집착한 수구는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수정치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지키면서 법치에 입각한 책임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매달리는 새누리당의 태도는 부적절하다. 선거관리 책임을 맡긴 심판에게 선수로 뛰라고 재촉하면서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낳는 사태까지 만든다면 우리 정치는 더욱 희화화될 뿐이다.

 하지만 보수라고 해서 공정과 평등의 가치를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고 했다. 세계 최초로 사회복지제도를 도입한 인물도 독일 보수를 상징하는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다. 지금 보수에 중요한 것은 재집권이 아니다. 최우선 가치인 국가안보만 남기고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가치를 재정립해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이다.

 보수의 붕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진보를 내세우는 야권 주자들도 더는 표만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해선 안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일제히 한쪽으로만 몰리면 운동장 자체가 무너지고 만다. 특히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안보 현안에 대해선 분명한 태도로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줘야 한다. 최근 야권 주자들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하나둘씩 “번복은 어렵다”는 현실론을 펴는 점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각 당의 당론은 ‘배치 반대’ ‘차기 정부 재검토’다. 보수라면 이런 안보 불안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시련을 맞은 보수가 지켜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가치는 국가 안보다.
#보수정치#보수세력#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책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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