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나 대마초 피우는 여자야” 블로그에 자랑 했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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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취업 한국인女 과시성 글-사진, 누리꾼에 신상 털리고 신고 당해
경찰, 마약 투약 혐의 내사 착수

미국에 거주 중인 20대 한 여성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대마초 관련 사진들. 이 여성의 글과 사진을 본 누리꾼들의 신고가 수사기관에 이어지고 있다. 블로그 홈페이지 캡처
미국에 거주 중인 20대 한 여성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대마초 관련 사진들. 이 여성의 글과 사진을 본 누리꾼들의 신고가 수사기관에 이어지고 있다. 블로그 홈페이지 캡처
“warmup sesh.”(여럿이 어울려 대마초를 함께 피운다는 뜻의 영어 속어)

올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 20대 한국 여성 A 씨가 최근 인터넷 블로그에 대마초로 보이는 뭉치를 손가락에 쥐고 찍은 사진과 함께 공개적으로 올린 글이다. 서울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로스앤젤레스로 가 패션업계에서 인턴으로 일한다는 A 씨 블로그에는 평소 대마초를 즐겨 흡연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과시성 사진과 글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떨(대마초를 뜻하는 한국 속어)로 하나 되는 칠링타임(어울려 노는 시간)”이라는 글과 함께 파티 현장에서 맥주, 피자와 더불어 대마초로 보이는 뭉치를 찍어 올렸다. 예전 룸메이트 언니에게 받았다며 대마 성분이 함유됐다는 스티커가 붙은 빵 사진도 자랑스레 게시했다.

‘나 대마초 하는 여자야’라는 식의 그릇된 과시욕은 결국 화를 불러왔다. 지난주 블로그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대검찰청과 경찰청 등 수사기관에 신고가 집중됐고, A 씨의 한국 거주지인 서울 마포경찰서가 사건을 배당받아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한국 형법은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어 내국인이 외국에서 마약을 복용했더라도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A 씨는 인터넷에서 블로그가 논란거리가 되자 즉각 폐쇄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게시물이 널리 퍼진 뒤였다. 누리꾼들이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대규모 ‘신상털이’에 나서 A 씨의 이름과 나이, 학력, 직장 등도 인터넷에 공개됐다.

경찰은 누리꾼이 제보한 사진과 정황 증거 등을 토대로 A 씨의 마약 투약 및 소지 혐의에 대해 정식 수사에 착수할지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상으론 대마를 상습 소지하고 복용한 게 유력한 것으로 보일 만큼 다양한 사진이 있지만 처벌은 쉽지 않다는 게 검경 마약수사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마약 전과가 없는데, 대마초 초범은 대부분 머리카락에 마약 성분이 남지 않고 소변으로도 2∼5일이면 배출돼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설령 신체에서 증거가 발견되더라도 A 씨가 입을 닫으면 마약 복용 일시나 장소를 특정할 수 없어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법원이 공소를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대마를 소지한 것 자체만으로도 처벌할 수는 있지만 A 씨가 자신은 사진 속 주인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증인이 없는 한 입증이 어렵다.

이번 미국 대마녀 사태는 ‘마약’ ‘한국 여성’ ‘미국’ ‘인터넷 과시’ 등의 키워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에 반발심을 가진 젊은 남성 누리꾼이 일종의 분풀이 대상으로 신고를 쏟아 낸 측면도 있다. A 씨 신상을 털고 수사기관에 인터넷으로 신고하는 걸 일종의 ‘공동의 유희’로 삼아 과도한 인격 훼손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에 마약 복용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이들에 대한 신고를 보면 경쟁 관계에 있는 지인들이 음해성으로 신고하는 사례도 많아 정식 수사 착수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미국#대마초#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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