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나치즘의 바이블 ‘게르마니아’… 그 오독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는 20세기 초까지 진정한 게르만족의 삶을 제시하는 주요 원전으로 널리 읽혀 왔다.―가장 위험한 책(크리스토퍼 크레브스·민음인·2012년)》

역사는 사관(史官)에 따라 사실과 전혀 다르게 기록되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미국 하버드대 고전학 교수인 크리스토퍼 크레브스가 쓴 ‘가장 위험한 책’은 오독이 낳은 결과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지목된 책은 로마를 대표하는 역사가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가 서기 98년에 쓴 ‘게르마니아’다. ‘게르만족의 기원과 관습’이란 주제로 쓰인 이 소책자의 원본은 30쪽이 채 되지 않는다. 1부에서는 게르만족의 나라 제도 관습 사생활 등이, 2부에서는 게르만족 개별 부족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그중 문제가 된 것은 게르만족의 습성을 다룬 부분이다. 타키투스는 ‘사치와 악덕과 타락을 경계했다’ ‘아무도 악행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지 않고, 타락시키고 타락하는 것을 시대적 추세라고 말하지 않는다’ 등의 표현을 통해 게르만족의 청렴 검소 자유 등을 강조했다. 로마인이었던 타키투스가 뜬금없이 게르만족에 관심을 갖고 책을 낸 이유는 그가 살던 시대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네로 황제, 성인이 된 후에는 ‘기록말살형’을 당한 폭군 도미티아누스의 지배하에 인생을 보낸 타키투스는 그전까지 로마인의 미덕이라 칭송받았던 경건함과 소박함, 규율 등이 무너진 사회를 바라보며 한탄했다. 이런 상황에서 타키투스는 게르만 지역을 방문한 적도 없으면서 그들의 도덕성을 보여줌으로써 로마 사회를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후대에 와서 게르마니아는 나치 독일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독일 혈통의 순수성과 우수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변질돼 다른 민족에 대한 폭력의 단초를 제공한다. 나치 독일의 목표는 게르마니아에 묘사된 것 같이 순수한 독일인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타키투스는 게르만 민족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했을까. 타키투스는 전쟁을 잘하는 대신 농경 기술이 부족하고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채 미개한 상태로 남아 있던 게르만족의 모습도 아울러 보여줬다. 읽고 싶은 것만 읽고 그것을 자신에게 맞게 재해석하는 인간 특유의 습성을 잘 보여주는 책이 바로 ‘게르마니아’였던 것이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