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책은행의 굼뜬 구조조정이 좀비기업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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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올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부실 징후 중소기업이 175개사로 작년보다 40%(50곳) 늘었다고 어제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이어지던 2009년의 512개사 이후 6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 결과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 최하위 D등급도 105개사로 48%(34곳) 증가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급증한 것은 장기 내수 침체에 글로벌 시장의 경기 둔화로 중소 제조업체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상당수는 은행의 금융 지원이 끊기면 생존이 불가능한 좀비기업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은행 지원이 계속되면 정상적인 기업 생산 활동에 쓰일 자금은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채권은행들은 거래 기업에 자금 지원을 끊으면 은행 장부상 부실이 늘고 은행에 책임이 돌아올까 봐 구조조정에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어제 내놓은 보고서에서 “국책은행이 시중은행보다 부실기업의 워크아웃 개시 시점을 평균 2.5년 지체시키고 금융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지적했다. 재임 중 손에 피 묻히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낙하산’ 행장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정치인과 노조 눈치 보기 등 국책은행의 굼뜬 구조조정이 좀비기업을 더 키우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달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4조2000억 원 지원을 발표한 대우조선해양 사례가 대표적이다. “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며 단기부양책에 치중한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

국책은행부터 확 달라져야 한다. 노조가 고용 보장이나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고 해서 구조조정의 칼이 무뎌지는 구태(舊態)가 재연돼선 안 된다. 회생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우량기업은 별개로 치더라도 악성 부실기업은 신속히 솎아내는 것이 전체 사회의 일자리나 투자에도 도움이 된다.

이르면 다음 달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라는 외생 리스크까지 감안하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늦출수록 한국 경제에 부담이 커질 것이다. 일본이 1990년대 좀비기업을 제때 정리하지 못해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구조조정#좀비기업#국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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