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TK 물갈이’와 맞춘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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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소신 있게 일할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이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 경제를 볼모로 삼고 있다”면서 “국무회의 때마다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메아리일 뿐인 것 같아 통탄스럽다”는 말도 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경제활성화법안 등의 통과를 막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6월 국무회의에서 당시 여당 원내대표(유승민 의원)를 지목해 국회의 법안 처리 지연을 비판하며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금은 ‘총동원령’이라도 받은 듯 청와대와 내각의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이 대구경북(TK) 지역 출마를 위해 줄줄이 사퇴하고 있는 시점이다. 대통령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이 8일 “대구경북에서 물갈이를 해 필승공천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박근혜 사람들’을 뽑아달라는 주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직접 야당 낙선 운동을 선동하고 여당 내 비주류를 협박하는 일”이라는 야당 대변인의 비판이 나올 만하다.

총선에서 개혁적 인물을 공천함으로써 새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정치 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할 장관이나 청와대 출신을 TK 지역에 꽂아 넣는 것을 개혁적 공천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통령 임기 후반은 물론이고 퇴임 뒤를 보장해줄 친위 세력의 구축으로만 비칠 뿐이다.

어제 국무회의에는 8일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총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청와대에 이미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참석했다. 두 사람을 포함해 전체 국무위원 18명 중 7명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상태로 ‘빈껍데기 국무회의’라는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내각이나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의 신임을 내세우며 총선에 출마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출마가 기정사실화된 장관들은 즉시 사퇴하고 후임자를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장관들을 앉혀 놓고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한다면 국정은 뒷전이고 총선에만 관심을 둔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의 먹구름까지 몰려오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총선의 조기 과열에 불을 지펴서야 공직사회의 영(令)이 서겠는가.
#물갈이#박근혜#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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