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vs 밀레니얼세대… 선거판 흔드는 ‘老靑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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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세대갈등 몸살]<4>선거의 핵심 변수, 세대전쟁

“노동당의 지진(Labour’s Earthquake)이다.”

올해 9월 영국 노동당 당수 선거에서 강경 좌파로 분류되는 제러미 코빈 의원이 59.5%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선출되자 영국 언론들은 이런 표현을 썼다. 중도파인 ‘블레어주의자’가 다수인 노동당에서 좌파 진영이 구색 맞추기로 낸 후보가 덜컥 당선됐기 때문이다. 코빈이 당수로 선출된 데에는 전통적인 노동당원보다 3파운드(약 5200원)를 내고 자발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2030 일반 유권자들의 지지가 크게 작용했다. 코빈은 선거 기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커진 부의 편중 현상을 적나라하게 비판해 젊은층의 표심을 움직였다.

○ 이념에서 세대 간 대결로

앞서 7월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의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앞두고 아테네 그리스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에선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제안한 구제금융안 찬반 투표에서 청년층의 절대다수는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안을 거부하자는 쪽에 표를 던진 반면 50대 이상 장년층은 긴축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들이 거리 곳곳에서 자신의 주장을 적은 푯말을 들고 맞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달 21일 신타그마 광장에서 만난 20대 그리스 청년은 “재정을 긴축하면 가장 타격을 받는 게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며 “아버지 세대는 안정된 일자리와 연금이 있지만 우리 젊은이에게 남은 것은 실업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관광, 해운업으로 그리스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초 그리스 공무원 노조와 업종별 노조들은 정치권으로부터 임금 인상과 연금을 보장받는 대신 표를 제공하는 카르텔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기성세대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세대는 시간당 3달러(약 3400원)를 버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그리스 청년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찾으면서 급진 좌파연합은 만년 소수당에서 벗어나 창당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

이전까지 유럽에서는 투표가 이념, 계층 간 대결의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세대 간 대결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복지 지출 증가로 청년세대를 위한 지원이 줄어들자 그 불만이 표심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인종, 남녀 간 투표 대결에 주목하던 미국에서도 2016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세대 간 투표 대결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50대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에서는 공화당에 대한 지지자가 더 많지만 18∼34세의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는 친(親)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유권자 수 측면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7540만 명, 밀레니얼 세대는 7480만 명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2008년, 2012년 두 차례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밀레니얼 세대의 민주당에 대한 투표 쏠림 현상을 최소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밀레니얼 세대가 정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투표하지 않고 기권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존 힐스 런던정경대(LSE)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영국은 물론이고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서 젊은이들의 분노가 투표로 이어지고 있다”며 “그동안 각국 정부는 열심히 투표하는 노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였지만 청년들의 표 결집이 더 강해지면 정부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특정 세대 편향 정책 우려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에 표를 몰아주고 있다.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 이후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치러진 13차례 선거 중 스웨덴 총선을 제외한 12번의 선거에서 우파 성향의 정당이 승리했다. 올해 5월 영국 총선에서도 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제1 야당인 노동당이 집권 보수당에 참패했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노동자들이 ‘반이민 정책’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유리한 정책을 펴는 우파 쪽에 표를 몰아준 영향이 컸다.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하던 젊은이들이 투표에 적극 나서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특정 세대가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면서 선거의 세대 간 표 대결 양상이 심화되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자칫 정부 정책이나 정당의 공천에까지 세대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다시 세대별 투표를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행정학)는 “정치권이 세대 간의 갈등을 악용할 경우 정치 양극화가 뚜렷해질 수 있다”면서 “각 세대가 정치권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세대 내 소통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사회 고령화로 정치 보수화 경향”


2026년 유권자 절반이상이 50세이상… 18대 대선이후 세대별 몰표 뚜렷


한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등 지역과 이념에 따른 투표 성향이 강했지만 2012년 18대 대선과 지난해 6·4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세대별 대결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18대 대선 당일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투표 대상자를 상대로 실시한 예측조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30대로부터 28.3%를 얻을 것으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71.1%의 득표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60대 이상에선 박 후보가 74.7%, 문 후보가 25.2%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지방선거에서도 2030세대는 새정치민주연합에, 5060세대는 새누리당에 몰표를 던지는 투표 양극화가 극명히 드러났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 구조의 변화는 선거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5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하는 2026년에 투표권을 가진 19세 이상 인구 중 50세 이상 장년층의 비율은 절반이 넘는 53.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년층의 범위를 40세 이상으로 확대하면 전체 유권자의 70.6%가 중장년이 된다.

이 때문에 세대 갈등 양상이 심화되면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유리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 전문가들은 2012년에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부터 고령화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눈에 띄게 커졌다고 본다. 당시 투표율은 17대 대선(63.0%)과 16대 대선(70.8%)을 훌쩍 뛰어넘는 75.8%였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야당이 유리하다’는 통념 때문에 투표일 낮까지만 해도 야권에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여권이 여유 있게 승리했다. 반전의 원인은 유권자들의 연령 변화였다. 18대 대선 유권자 중 50세 이상 유권자는 40.0%, 30세 미만이 38.2%였다. 17대 대선(2007년)에서 2030세대가 44.0%, 5060세대가 33.5%였던 것과 비교하면 인구 구조가 크게 바뀐 것이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성향이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가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경우 정치 이념상 보수에 가깝지만 세월호 참사나 국정 교과서 등의 문제에서는 진보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하임숙 경제부 차장 artemes@donga.com

▽팀원

프랑크푸르트·쾰른·파리=홍수용 경제부 기자
런던·스톡홀롬·삿포로=손영일 경제부 기자
아테네·밀라노=김준일 경제부 기자
김철중 경제부 기자
#지구촌 세대갈등 몸살#베이비부머#밀레니얼세대#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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