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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문화재청 ‘증도가자는 가짜’ 통보 묵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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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문화재청 ‘증도가자는 가짜’ 통보 묵살

김상운 기자 입력 2015-10-28 03:00수정 2015-10-2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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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가짜” 파문]
국과수 금속활자 검증결과 알고도 다음날 전문가 회의때 알리지 않아
본보 보도후에야 “101개 모두 조사”
문화재청이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한 증도가자가 가짜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검증 결과를 이달 초 사전에 통보받고도 관계 전문가 회의 때 묵살한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계 관계자 A 씨는 “문화재청 직원들이 6일 강원 원주시 국과수를 찾아가 증도가자가 가짜라는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 검증 결과를 듣고 왔다”며 “다음 날 열린 문화재청의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 회의에서 한 전문가가 금속활자에 대한 CT 검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을 때도 회의를 주재한 문화재청 연구관은 이미 국과수 CT 결과가 나온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고인쇄박물관 활자가 증도가자라는 보고서를 낸 산하 기관(국립문화재연구소)의 부실 검증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국과수 검증 결과를 묵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27일 국과수 검증 결과를 인용한 동아일보 보도가 나간 뒤에야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가 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금속활자 101개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문화재청은 뒤늦게 “금속활자에 대해 CT 등 다양한 과학적 조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도 냈다. 윤순호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은 이날 “고인쇄박물관 활자와 출처가 같다는 주장이 나오는 김 대표 소유 활자를 검증하기 위해 김 대표에게 활자 전수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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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국과수 검증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고서의 신뢰성이 의심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해 연구기관을 새로 선정해 재검증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보고서 연구용역을 맡아 고인쇄박물관의 금속활자를 증도가자와 고려활자라고 판정한 경북대 산학협력단(단장 남권희 교수)은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과수 검증에도 “진위판단 일러”… 문화재청 책임모면 급급▼

활자 검증하는 국과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분광비교분석기로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증도가 원문 중 ‘반(般)’ 자를 확대 촬영하고 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한 ‘般’ 자 활자(아래쪽 사진)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고서에서 증도가자로 분류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공

“증도가자와 증도가(번각본)의 활자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증도가자가 공개된 2010년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주 중원대 교수(한문학)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검증으로 긴 논란을 끝낼 수 있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학계는 과학적 검증으로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이상 금속활자의 제조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감성적 호소를 뛰어넘어 합리적인 검증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 문화재청 사과 없이 국과수 검증 깎아내려

문화재청은 27일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가 보유한 활자 101개도 전수 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을 일단 밝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과수의 검증 결과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오전 ‘동아일보 보도에 대한 입장’이라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서 “국과수가 조사한 청주 고인쇄박물관 소장 금속활자 7점은 국가지정문화재 신청 대상은 아니다”라며 “국과수 조사 결과를 지정 신청된 모든 금속활자로 확대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재로 지정 신청된 금속활자란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 소유의 활자 101개와 국립중앙박물관의 활자 1개를 뜻한다. 가짜로 밝혀진 고인쇄박물관의 활자는 문화재 지정 신청 대상이 아니어서 김 대표의 활자와는 다른 것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고인쇄박물관 활자 3개와 김 대표의 활자 59개를 모두 증도가자로 함께 분류하면서 “3곳(김 대표, 고인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 활자는 형태적 측면에서 서로 공통적인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두 활자의 상호 유사성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고미술업계에서는 두 활자 모두 출처가 중국 단둥(丹東)이라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문화재청의 해명 자료 어디에도 학자 32명과 국가 예산 2억 원을 투입해 작성한 용역 보고서가 희대의 위조품을 증도가자와 고려활자로 결론을 내린 데 대한 최소한의 유감 내지 사과 표명조차 없었다. 문화재위원회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산하 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마땅한 고려시대 대조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진위를 판단하기는 아직 섣부르다”며 국과수 검증 결과의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 검증을 통해 가짜임을 밝혀낸 국과수 대신 가짜 활자를 진짜라고 결론 낸 국립문화재연구소에 향후 금속활자 검증을 다시 맡기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CT 검증을 위한 장비나 인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 학계·청주시 “국과수 검증 믿을 만하다”

‘문제’ 못 걸러낸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11월 작성한 증도가자 연구보고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증 대상이었던 청주 고인쇄박물관 소장 활자가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의 활자와 공통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 보존과학 전공자들은 이번 국과수 검증으로 CT에서 균일한 이중(二重) 단층이 확인돼 가짜로 결론이 난 증도가자는 더이상 진실성을 갖기 힘들다는 의견이 다수다. 금속공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CT에서 보이는 외부 단면이 균일하면서도 두꺼워 자연적으로 생긴 녹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고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서지학계도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증도가자로 분류된 금속활자와 목판 번각본(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목판 위에 놓고 똑같이 다시 새긴 것)의 자획이 서로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서지학자는 “이 정도 서책을 새긴 각수(刻手)들은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었을 것”이라며 “이들이 원판과 전혀 닮지 않게 번각을 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인쇄박물관 활자를 구입한 청주시도 국과수의 조사결과를 신뢰하는 분위기다. 청주시는 경북대 산학협력단(단장 남권희 교수)을 상대로 구입 대금 회수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증도가자가 맞다”는 남 교수의 감정에 따라 시 예산을 들여 증도가자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만약 경북대 측이 이를 거부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과수 검증 결과를 접한 청주시 안에서는 내심 이를 반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을 청주시의 상징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1985년 직지심체요절을 찍어 낸 흥덕사 터가 청주시에서 발견돼 세계적인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증도가자가 공개된 2010년 당시 청주시민들 사이에서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의 위상을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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