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새것”… 신상 강박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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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77>외면받는 중고시장

올해 초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한 중학교 강당. 신입생을 위한 중고 교복 장터가 열렸다. 동복과 하복에 체육복 등 교복을 새 것으로 두 벌씩 구입하려면 100만 원이 넘어간다. 이 때문에 쓰던 교복을 한 벌당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는 장터가 열렸다.

하지만 ‘교복값 거품’ 논란이 벌어지면 학생복 업체들의 상술을 비난하던 학부모들이 정작 중고 장터에선 쉽게 물건을 고르지 못했다. “다른 애는 새 옷을 입는데 우리 애만 낡은 옷을 입히기가…” “애가 싫어할까 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첫 학기에는 그렇다 쳐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몸집이 커져 새로 교복을 사야 할 경우에도 대부분 수십만 원 하는 새 교복만 찾는 게 현실이다.

교복뿐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중고시장이 상설시장처럼 열리고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못하다. 이왕이면 새것을 써야 한다는 ‘신상(신상품) 강박증’ 때문이다. 요즘은 옷이나 신발의 품질이 좋아져 과거처럼 쉽게 해져서 못 쓰게 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철 지난 물건들은 그냥 집에 처박혀 있거나 버려지곤 한다.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생활용품도 중고로 구입하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물건이 많지만 직접 중고 제품을 구매해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용정신이 강한 나라 독일에서 공부한 정모 씨(26·여)도 “독일에는 중고 매장이 곳곳에 있고 고급차를 몰고 와서도 아무렇지 않게 중고제품들을 사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매장조차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막상 중고를 구입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중고가구를 약간 손질해서 파는 매장에서 책상을 구입한 직장인 김정규 씨(42)는 “수리를 잘해서 그런지 새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며 “새 제품은 40만 원쯤 하는데 6만 원에 구입해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같은 중고 물건이라도 이른바 ‘명품’은 또 다르다. 고가의 해외 브랜드 제품은 중고 거래도 활성화돼 있다. 샤넬, 루이뷔통처럼 수백만 원짜리 가방은 찾는 사람도 많다 보니 중고도 신상품 가격 못지않게 팔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품질 디자인 수준도 있지만 그보다는 제품에 붙어 있는 ‘로고’가 고객에게 주는 심리적 만족감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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