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개선 열쇠는… 韓 “사죄와 보상” 日 “경제-기술 협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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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본보-아사히 공동 여론조사]

이번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한국 경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경계심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한일 경제 협력을 양국 관계 개선의 열쇠로 꼽는 일본인들도 늘었다. 일본에서 한류 붐은 점차 식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이 일본과 경제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은 22%, 일본인은 26%만 ‘그렇다’고 답했다. 5년 전 조사(한국인 41%, 일본인 47%)와 비교할 때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낮아진 것이다. 이는 아베노믹스로 주가가 배 이상으로 오르며 오랜 침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일본과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한국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런 한편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경계심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파트너인가, 라이벌인가’라는 질문에 일본인의 64%가 ‘라이벌’이라고 답했다. ‘파트너’라는 답변은 18%였다. 이는 한국 일부 기업이 점차 일본 기업과 맞먹는 실적을 내고 있는 현실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은 최근 삼성과 같은 한국 기업들이 소니 등 일본 기업을 제치고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선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또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목을 매고 있는 사이 한국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과 차례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가며 경제영토를 넓힌 것도 수출 품목이 겹치는 일본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만한 대목이다.

일본인들은 악화된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로 경제 협력을 우선 꼽았다. ‘한일 양국이 상호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일본인의 27%가 ‘경제와 기술 협력’을 든 것. 한국 경제가 부쩍 성장한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한일 경제 협력이 양국 모두에 이익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읽힌다. 한일 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의 제3국 진출이나 투자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관계 개선 해법으로 ‘사죄와 보상 문제 재검토’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 일본인들과 인식 차가 뚜렷했다. 한일 모두 두 번째로 많은 답변은 ‘역사 공동연구’였다.

일본인들은 ‘유학 등 인적 교류’(17%)나 ‘문화 스포츠 교류’(16%)로 한일 관계를 풀자는 답변도 상당수 내놓았지만 한국인들은 최대 현안인 역사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한일 관계가 좋아질 수 없다고 인식했다.  
▼ “한드 안봐” 40%… 5년전보다 7%P↑… 한국 선호도, 음식-영화·드라마順 ▼

일본에서 한류가 식어가는 현실이 이번 조사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어느 정도 보느냐’는 질문에 ‘자주 본다’고 답한 일본인이 9%에 불과했던 것. ‘가끔 본다’는 사람도 20%에 그쳤다. ‘전혀 보지 않는다’는 답도 2010년 6월 조사 때와 비교하면 33%에서 40%로 늘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주로 시청한다고 답한 일본인들의 연령대와 성별은 ‘50, 60대 여성’으로 나타났으며 전혀 보지 않는다고 답한 연령대와 성별이 가장 높았던 층은 ‘20∼40대 남성’이었다.

한국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는 ‘음식’이 첫손에 꼽혔고 영화 및 드라마, 역사와 전통, 케이팝(K-pop)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케이팝’이라는 답변은 젊은 여성들에게서 특히 많이 나왔다. 그러나 ‘한국 음식을 자주 또는 가끔 먹는다’고 답한 일본인은 40%에 그쳐 5년 전에 비하면 7%포인트 줄었다. 전반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식은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연령대와 성별로 보면 20대 여성 60%가 ‘한국 음식을 먹는다’고 답한 반면에 70대 이상 남성 80%가 ‘거의 먹지 않거나 전혀 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사람으로는 박근혜 대통령(21%)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배용준(19%), 김연아(7%), 김대중 전 대통령(5%) 순이었다. 5년 전에는 배용준(23%)이 가장 높았고 김연아(11%), 김 전 대통령(10%), ‘겨울연가’의 여주인공 최지우(5%) 순이었다.

특이한 점은 박 대통령을 떠올린 이들 중에 ‘한국이 싫다’고 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이른바 ‘고자질 외교’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주간지 및 우익 언론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 북핵 대응, 韓은 대화-日은 제재 주문… 韓 58% “통일된다” 日 80% “안될 것” ▼

한반도 통일 전망 조사에서도 한일 간 인식 차이가 뚜렷했다. 한국인은 절반을 넘긴 58%가 ‘통일이 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통일 가능성에 부정적인 의견은 35%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40, 50대에서 통일에 대한 희망적 견해가 많았다.

반면 일본인들은 ‘통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80%로 압도적이었다. 통일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 의견도 15%에 불과했다. 통일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일본인들의 비율은 5년 전(67%)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일본 측의 우려는 여전했다. 절반이 넘는 일본인(53%)이 ‘불안을 크게 느낀다’고 답했다. ‘어느 정도 느낀다’를 포함하면 불안을 느낀다는 이들이 열 명 중 아홉 명이었다. 5년 전에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북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처 방법을 둘러싸고도 의견이 갈렸다. 일본인의 54%는 ‘경제 제재 등 강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강경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한국인 중에서는 ‘외교 노력으로 대화를 심화해야 한다’며 유화책을 요구한 이들이 47%로 더 많았다. 한국에서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평가한 국민 중에 강경책을 요구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 “日 과거사 피로감 증폭… 韓에 냉담해져” ▼

니시노 준야 日게이오대 교수가 본 설문 결과


이번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역사문제에 대한 양국민 인식 격차가 5년 전보다 더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두 번에 걸친 조사에서 모두 90% 이상이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일본의 사죄는 불충분하다고 본 반면에 일본에서는 해결됐다는 응답이 39%에서 49%로, 충분히 사죄했다는 답변 역시 10%포인트 오른 65%가 됐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공감이 아니라 ‘피로감’을 낳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한국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답변이 많았는데, 이는 여성 대통령이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 더해 일본 정치 지도자의 역사인식을 반복적으로 비판한 것이 연일 보도됐기 때문이다. 이번 결과를 보면 한국 이상으로 일본이 과거보다 한일관계를 냉담하고 부정적으로 보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한일 국민의 ‘인식’을 일치시킬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양국민은 조사결과에 나타난 인식 차이를 제대로 이해할 때가 됐다. 그동안의 추이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상대에 대해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교 50년은 절호의 기회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관계개선#국교정상화#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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