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사람에 희망의 울림 주고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노유진씨, 유엔 한국대표부서 연주회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노유진 씨가 9일 미국 뉴욕 맨해튼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리셉션 행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노유진 씨가 9일 미국 뉴욕 맨해튼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리셉션 행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최고의 소리를 세상에 선물하고 싶습니다. 제 음악이 마음이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게 도와주세요.’

9일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앞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리셉션에서 300여 명의 장애인과 회의 관계자에게 감동의 연주를 선사한 피아니스트 노유진 씨(28)가 날마다 드리는 기도다. 그는 출생 직후 병원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 산소가 너무 많이 주입되는 바람에 시력을 잃었다. 햇빛조차 느낄 수 없는 완전 실명(失明) 상태. 평생 그의 눈은 어머니 양유희 씨(55). 행사장에서도 어머니는 딸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노 씨는 13세 때인 2000년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로 왔다.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의 미래는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14세 때 교회 예배 시간에 피아노 반주 소리를 듣다가 문득 “엄마, 나 피아노를 배워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불현듯 다가온 피아노는 그의 인생이 됐다. 미국의 유명 음대인 ‘뉴잉글랜드 콘서버토리 오브 뮤직(NEC)’에 진학해 학사(4년)와 석사(2년), 전문 연주가 예비 과정(2년)을 마쳤다. 그 사이 미국 내 몇몇 음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음악 전문가들은 “늦게 피아노를 시작한 시각장애인이 기적의 소리를 연주한다”고 극찬했다.

피아니스트로서 노 씨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악보 외우기. 어머니 양 씨는 “딸은 악보 외우기를 비빔밥 만들기에 비유한다. 비장애인은 눈대중으로도 요리할 수 있지만 딸은 그 많은 음식 재료 하나하나의 크기 모양 등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다 암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상하기 힘든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딸은 ‘시각장애인이 저 정도 연주하다니 대단하다’라는 동정심으로 평가받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연주 테크닉은 (비장애인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깊은 마음속 울림의 소리로 당당하게 승부하겠다. 아름다운 소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 꿈과 소망을 주고 싶다’는 딸의 간절한 기도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믿어요.”

11일 딸 대신 1시간 넘게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한 어머니 양 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더니 끝내 수화기 너머로 조용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시각장애#피아니스트#노유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