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몰래 현관문 사이두고… 암호처럼 “별일 없나” “왜 가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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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비상]자가격리자도 보건당국도 곤혹

“별일 없으세요?”(보건소 직원) “아무 일 없으니 그냥 가세요.”(자가 격리 대상자)

요즘 서울 일부 지역에서 매일 벌어지는 상황이다. 보건당국 직원들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환자들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격리 대상자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확인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이 지역 보건소 직원들은 지난달 자가 격리자가 처음 발생하고 보름째 비상근무 중이다. 자가 격리자는 질병관리본부의 통보를 받아 해당 지역 보건소가 관리한다. 이 지역에는 현재까지 10여 명이 자가 격리 조치됐다. 보건소 직원들은 오전 7시부터 메르스 확산 여부를 살피고 학교나 병원의 동향을 파악한다.

가장 중요한 건 자가 격리자 관리 업무다. 직원들은 매일 4차례 이들과 정기적으로 통화한다. 원래는 매일 2차례 전화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2일 자가 격리 중이던 김모 씨(63·여)가 전북 고창까지 내려가 골프를 친 사실이 확인되면서 관리가 한층 강화됐다. 김 씨는 1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긴 했지만 격리 조치가 해제되지 않았었다. 원칙적으로 자가 격리 대상이 되면 잠복기인 14일이 지날 때까지 집 밖에 나올 수 없다.

격리자와의 통화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단외출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어 “격리 사항을 잘 지키고 있느냐” “기침 및 호흡곤란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이 있느냐” 등 구체적인 상태를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문제는 상당수 자가 격리자가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화가 이뤄져도 “괜찮으니까 그만 연락해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전화로 확인하기가 어려우면 보건소 직원이나 지원에 나선 주민센터 직원이 직접 집을 방문한다. 얼마 전까지는 주간에만 찾았지만 지금은 필요하면 한밤중에도 수시로 격리자의 집으로 간다. 사실상 24시간 밀착 관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자가 격리자를 방문하는 방법도 ‘첩보영화’ 수준이다. 이 지역 주민센터 직원들은 인적이 드문 시간을 골라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방문한다. 혹시 주민들이 직원의 얼굴을 알아볼까 염려해서다. 행여나 이웃에 자가 격리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웃들이 알게 되면 불안감이 확산되고 주민 간 갈등이 생길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집 앞에 가도 격리자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문전박대하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굳게 닫힌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 직원이 “별일 없느냐”고 물으면 “그냥 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외출을 못 해 답답해 죽겠다” “아무런 증상도 없는데 왜 가두느냐”며 오히려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집 안에 있는지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린다.

110여 명의 자가 격리자를 관리하는 경기지역의 한 보건소 직원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공장과 학교가 밀집해 혼자 생활하는 1인 가구가 많다. 이 때문에 자가 격리자들은 생필품이나 음식 조달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집에 온 직원들에게 “장을 좀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는 다행이다. “슈퍼에서 먹을거리를 좀 사서 오라”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급기야 이 보건소는 5일부터 원하는 물품을 직접 구입해 전달하기로 했다. 간병인이나 건설현장 인부처럼 일용직 근로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 제발 나가게 해 달라”며 직원들에게 읍소하는 경우도 있다.

보건소 관계자는 “격리자들이 전화를 제때 받지 않거나 무단으로 외부 출입을 하면 우리로서는 호소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며 “자가 격리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한정된 인력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지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영달 dalsarang@donga.com·박은서 /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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