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 난리인데 한국은 속수무책”… 수출기업 아우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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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비상구 없는 수출한국]<上>패닉상태 기업현장

코스피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주가가 이틀 연속 급락하면서 3일 현대차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지난달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판매량이 각각 12.1%와 10.3%가 급락하면서 해외영업담당 부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위기 대응력을 키우기 위해 서울 본사에 있는 글로벌 종합상황실 근무를 긴급 점검하고, 각국 시장과 환율 변화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24시간 모니터링 시스템도 강화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국 시장은 무조건 가격이다. 6만 달러(약 6600만 원)가 안 되는 차들은 가격경쟁력이 구매를 좌우한다. 일본, 유럽 업체들이 지금 환율 때문에 엄청나게 깎아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깎아줘야 하는데 부품업체도 같이 가격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환율로 기업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정부는 기업이 해외서 벌어들인 달러를 현지 법인이 갖고 있게 하든지, 현지 투자를 유도해서라도 외환보유액을 줄여 적극적으로 환율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수출이 복합 위기로 빠져들면서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전후로 세계 교역량이 급격히 감소한 가운데 저유가와 엔화 약세(엔저), 중국 산업의 구조 변화에 직면했다. 내부적으로도 한국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악화하면서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더는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 아우성치는 기업들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LG실트론은 지난해 영업적자가 348억 원으로 전년보다 두 배로 늘었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141억 원의 적자를 냈다. 반도체 산업이 호황임에도 이 회사의 실적이 악화한 것은 공급 과잉에 엔저까지 덮친 탓이다. 웨이퍼 산업은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높은 대표적 산업군으로 일본의 신에쓰와 섬코 등 경쟁사들은 엔저에 기대 가격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LG실트론 측은 “엔저에 힘입은 일본의 상위 2개 기업이 올해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내수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은 엔저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랜드는 일본에서 운영하고 있던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인 스파오 3곳과 미쏘 2곳 등 총 5곳의 매장을 올해 3월 초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했다. 2013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지 2년 만이다. 아모레퍼시픽도 일본 매장 4곳을 모두 접었다. 엔저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으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유가 급락으로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석유업계도 비상이다. 중국의 저성장과 유럽의 불황으로 수요는 줄고 미국 셰일가스 열풍과 신흥국 설비 증설로 공급은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최근 “수출형 사업구조를 지닌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생존 위기에 몰렸다”고 진단한 이유다.

○ 한국 수출, 구조적 위기에

한국의 수출 위기는 대외환경의 영향이 크다. 세계 시장의 교역량이 급감하는 데다 주력 시장인 중국의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 중국의 부품 수입비율은 2000년 61%에서 최근 43%까지 줄었다. 부품 위주의 가공무역이 주력인 한국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 끼면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도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스마트폰 시잠점유율이 24%로 집계되면서 애플을 제치고 1등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시장점유율이 7.2%포인트 줄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신제품 주기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중저가의 화웨이와 샤오미 ZTE 등 중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일제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에 밀리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의 추격을 받는 구조적인 덫에 빠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정부가 적극적인 통화정책 펴야”

기업과 산업 전문가들은 한국이 수출 성장세를 단기적으로 회복하려면 결국 원화 약세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가 불가피한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올 초 경제 규모 상위 40개국 중 25개국이 정책금리 인하나 양적 완화 등을 통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각국이 환율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하루속히 제대로 된 통화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환율정책은 외교적으로 한계가 있고 금리 인하 역시 가계부채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적극적인 해외투자와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을 조절해 적정 환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한국이 과거에는 외국인 투자를 무조건 반겼지만 현재 상황에선 고용창출이나 기술이전에 도움이 안 되는 금융부문의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새롭게 점검해 환율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강유현·황태호 기자
#환율전쟁#한국#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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