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행복을 자신하지 마라,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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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아요.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 ―다섯째 아이(도리스 레싱·민음사·1999년) 》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여성들에게 “요즘 어떻게 사는가”라고 물으면 거의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그들의 일상이란 일과 육아로 녹초가 되는 날과 햇살 같은 아이의 웃음으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날이 벌이는 이어달리기와 같기 때문이다.

질문을 바꿔 “그럼 행복해?”라고 물으면 여성들은 답을 찾는 데 꽤 시간을 들인다. 결혼한 여성의 행복이란 그야말로 팽팽하게 당겨진 실과 같기 때문이다. 너그러운 남편과 물질적 안정, 순종적인 자녀들이 뒷받침돼 이뤄진 행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확신하기 어려워서다. 지금 나의 행복을 유지해주는 여러 조건 중 하나가 사라져도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어서다.

소설 ‘다섯째 아이’의 주인공은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는 다섯 번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행복을 자신했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며 행복했고 첫째 아이부터 넷째 아이를 낳으며 행복했다. 자녀에게 필요한 엄마일 수 있어서, 풍족하진 않아도 굶지 않는 중산층일 수 있어서 그는 삶에 만족했다.

하지만 행복은 예상치 못한 순간 무너졌다. ‘근육질에다 기다랗고 노르스름한 11파운드(약 5kg)’짜리 아이를 낳은 뒤 주인공은 급격히 불행해졌다. 아니, 스스로 행복이 사라졌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느리고 눈빛이 탁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의 행복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소설은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 하는 믿음이 덧없다고 설명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외친다. 그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지금까지 그의 행복을 지탱해 오던 ‘출산과 육아’였다.

소설은 ‘당신은 스스로의 행복을 자신할 수 있느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충고한다. “선량하고 행복하다 자신하지 마라.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행복#인간#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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